판시사항
1. 헌법 제25조 공무담임권의 보호영역
2.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유예를 받은 경우에는 공무원직에서 당연히 퇴직하는 것으로 규정한 국가공무원법 제69조 중 제33조 제1항 제5호 부분이 헌법 제25조의 공무담임권을 침해하는 것인지 여부(적극)
결정요지
1.헌법 제25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공무담임권을 가진다.”고 하여 공무담임권을 보장하고 있다. 공무담임권의 보호영역에는 공직취임의 기회의 자의적인 배제 뿐 아니라, 공무원 신분의 부당한 박탈도 포함되는 것이다.
2.국가공무원법 제69조 중 제33조 제1항 제5호 부분은 공무원이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유예를 받은 경우에는 공무원직에서 당연히 퇴직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같은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유예를 받은 경우라고 하여도 범죄의 종류, 내용이 지극히 다양한 것이므로 그에 따라 국민의 공직에 대한 신뢰 등에 미치는 영향도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입법자로서는 국민의 공직에 대한 신뢰보호를 위하여 해당 공무원이 반드시 퇴직하여야 할 범죄의 유형, 내용 등으로 그 당연퇴직의 사유 및 범위를 가급적 한정하여 규정하였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위 규정은 금고 이상의 선고유예의 판결을 받은 모든 범죄를 포괄하여 규정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오늘날 누구에게나 위험이 상존하는 교통사고 관련 범죄 등 과실범의 경우마저 당연퇴직의 사유에서 제외하지 않고 있으므로 최소침해성의 원칙에 반한다.
오늘날 사회구조의 변화에 따른 공무원 수의 대폭적인 증가 및 민간기업조직의 대규모화, 전문화 등, 사회전반의 변화로 인하여 공직은 더 이상 사회적 엘리트로서의 명예직으로 여겨질 수 없는 상황이고, 따라서 ‘모든 범죄로부터 순결한 공직자 집단’이라는 신뢰를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게 공익만을 우선한 것이다. 다른 한편, 현대민주주의 국가에 이르러서는 특히 사회국가원리에 입각한 공직제도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개개 공무원의 공무담임권 보장의 중요성이 더욱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더욱이, 위 규정은 지방공무원의 당연퇴직사유를 공무원 채용시의 임용결격사유와 동일하게 규정하고 있는데, 일단 공무원으로 채용된 공무원을 퇴직시키는 것은 공무원이 장기간 쌓은 지위를 박탈해 버리는 것이므로 같은 입법목적을 위한 것이라고 하여도 당연퇴직사유를 임용결격사유와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할 수 없다.
헌법재판소는 2002. 8. 29. 2001헌마788 등 결정에서 지방공무원에 대하여 이 사건 법률조항과 동일한 내용을 규율하고 있는 지방공무원법 제61조 중 제31조 제5호 부분에 대하여 위헌으로 판시한 바 있는데, 이 사건 법률조항에 대하여 지방공무원법 규정에 관한 위 2001헌마788 등 결정과 그 판단을 달리할 특별한 사정도 없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하여 공무담임권을 침해하는 조항이라고 할 것이다.
심판대상조문
국가공무원법(2002. 12. 18. 법률 제6788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69조(당연퇴직) 공무원이 제33조 각호의 1에 해당할 때에는 당연히 퇴직한다.
국가공무원법(2002. 12. 18. 법률 제6788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33조(결격사유) ① 다음의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자는 공무원에 임용될 수 없다.
1.~4. 생략
5.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유예를 받는 경우에 그 선고유예기간중에 있는 자
6.~8. 생략
② 삭제
참조조문
국가공무원법(2002. 12. 18. 법률 제6788호로 개정된 것) 제69조(당연퇴직) 공무원이 제
33조 각호의 1에 해당할 때에는 당연히 퇴직한다. 다만, 동조 제5호에 해당할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참조판례
헌재 2002. 8. 29. 2001헌마788 등, 판례집14-2, 219
당사자
청 구 인 1. 방○순(2002헌마684)
대리인 변호사 김태원
2. 박○순( 2002헌마735 )
대리인 변호사 이관표
3. 김○호( 2002헌마763 )
대리인 변호사 김영성
주문
구 국가공무원법 제69조 중 제33조 제1항 제5호 부분(2002. 12. 18. 법률 제6788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
이유
1. 사건의 개요와 심판의 대상
가. 사건의 개요
(1) 2002헌마684 사건
청구인은 1991. 10.경 검찰서기보로 임명된 이후 부산지방검찰청 강력부, 울산지방검찰청 특수부, 전주지방검찰청 군산지청 등에서 마약수사업무에 종사하던 중, 2002. 6. 27. 서울지방법원에서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죄로 징역 8월의 선고유예 판결을 받고(2002노2229), 상고하였으나 2002. 9. 24. 상고가 기각됨으로써 위 선고유예의 원심판결이 확정되었다(2002도3628). 이로써 청구인은 구 국가공무원법 제69조 중 제33조 제1항 제5호의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유예의 판결이 확정된 경우에 해당되어 공무원직으로부터 당연퇴직 당하게 되었다. 청구인은 이에 위 국가공무원법 규정에 의하여 헌법상 보장된 평등권 및 공무담임권 등이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면서 2002. 10. 25.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2) 2002헌마735 사건
청구인은 1974. 5. 15. 농업직 국가공무원으로 채용된 이후, 2001. 3. 8.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북지원 음성·진천출장소 유통계장(6급)으로 근무하던 중, 2002. 10. 23. 청주지방법원으로부터 뇌물수수, 허위공문서작성 및 동행사죄로 징역 10월의 선고유예판결(2002노667)을 선고받았는데, 위 판결이 2002. 10. 31. 확정됨으로써 같은 날 구 국가공무원법 제69조 중 제33조 제1항 제5호에 따라 당연퇴직하게 되었다. 청구인은 위 규정에 의하여 헌법상 보장된 평등권, 공무담임권 등 청구인의 기본권 등이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면서 2002. 11. 19.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3) 2002헌마763 사건
청구인은 1994. 5. 16.경부터 동해지방해양수산청 항만공사과 소속 국가공무원으로서 위 부서에서 항만공사설계 및 현장감독의 업무를 담당하던 중, 2002. 11. 14.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에서 뇌물수수죄로 징역 6월의 선고유예 판결(2002노274)을 선고받고, 같은 달 22. 위 판결이 확정됨으로써 같은 날 구 국가공무원법 제69조 중 제33조 제1항 제5호에 따라 당연퇴직하게 되었다. 청구인은 위 규정에 의하여 헌법상 보장된 평등권, 공무담임권 등 청구인의 기본권 등이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면서 2002. 12. 3.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나.심판의 대상
이 사건 심판대상은 구 국가공무원법 제69조 중 제33조 제1항 제5호 부분(2002. 12. 18. 법률 제6788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이 사건 법률조항’이라고 한다)의 위헌 여부인바, 그 내용 및 관련규정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69조(당연퇴직) 공무원이 제33조 각 호의 1에 해당할 때에는 당연히 퇴직한다.
제33조(결격사유) ① 다음의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자는 공무원에 임용될 수 없다.
1. 금치산자 또는 한정치산자
2. 파산자로서 복권되지 아니한 자
3.금고 이상의 형을 받고 그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된 후 5년을 경과하지 아니한 자
4.금고 이상의 형을 받고 그 집행유예의 기간이 완료된 날로부터 2년을 경과하지 아니한 자
5.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유예를 받은 경우에 그 선고유예기간중에 있는 자
6.법원의 판결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여 자격이 상실 또는 정지된 자
7.징계에 의하여 파면의 처분을 받은 때로부터 5년을 경과하지 아니한 자
8.징계에 의하여 해임의 처분을 받은 때로부터 3년을 경과하지 아니한 자
제69조(당연퇴직) 공무원이 제33조 각 호의 1에 해당할 때에는 당연히 퇴직한다. 다만, 동조 제5호에 해당할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2. 청구인들의 주장과 관계기관의 의견
가. 청구인들의 주장
(1) 이 사건 법률조항에 의한 공무원의 당연퇴직사유에 따르면 벌금형은 결격사유로 규정하지 않으면서 벌금형보다 더 가벼운 선고유예는 공무원의 당연퇴직사유로 규정하고 있는바, 이는 헌법 제10조에 의한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 제11조 제1항이 보장하는 평등권 내지는 체계정당성의 원칙을 침해하는 것이다.
(2) 공무원관계의 종료여부에 관해서는 형사판결의 결과만이 아니라, 다른 요소들까지 종합적으로 감안할 수 있도록 징계절차를 통하여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공직제도의 신뢰성과 공무원의 기본권을 보다 적절하게 조화시키는 방안이다. 순간적인 과실로 인하여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유예를 받은 경우에도 공무원을 당연히 공직에서 퇴직시키는 것은 해당 공무원의 공무담임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기본권 제한의 한계인 과잉금지의 원칙에 반한다.
나. 행정자치부장관, 해양수산부장관의 의견
(1)공무원은 헌법과 관계 공무원법 규정에 의하여 고도의 윤리성과 성실성을 갖출 것이 요구되고 있다. 이 사건 법률조항은 공무원의 윤리성 등을 갖추게 하여 공무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고자 하는 공익을 위하여 두게 된 규정이며 입법자의 입법재량 범위내의 입법이다.
(2)국가공무원법상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유예를 받은 경우와 금고 미만의 형의 선고유예를 받은 경우를 구분하여,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유예를 받은 경우만 임용결격사유 및 당연퇴직사유로 하고 있으므로 과잉금지원칙에 반하여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할 수 없다. 더욱이 법원은 재판을 받은 공무원에 대하여 공무원법상의 당연퇴직사유를 고려하여 그 선고형을
결정할 수 있는 양형 판단의 재량권을 가지고 있다.
3. 판 단
가.헌법재판소는 2002. 8. 29. 2001헌마788 등 결정에서 지방공무원에 대하여 이 사건 법률조항과 동일한 내용을 규율하고 있는 지방공무원법 제61조 중 제31조 제5호 부분에 대하여 위헌으로 판시한 바 있는데 그 이유의 요지는 다음 나. 항과 같다.
나.이 사건 법률조항의 위헌여부(헌재 2001헌마788 등 결정이유의 요지)
먼저 공무담임권을 침해하였는지 여부에 관하여 본다.
(1) 공무담임권의 보호영역
헌법 제25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공무담임권을 가진다.”고 하여 공무담임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공무담임권이란 입법부, 집행부, 사법부는 물론 지방자치단체 등 국가, 공공단체의 구성원으로서 그 직무를 담당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여기서 직무를 담당한다는 것은 모든 국민이 현실적으로 그 직무를 담당할 수 있다고 하는 의미가 아니라, 국민이 공무담임에 관한 자의적이지 않고 평등한 기회를 보장받음을 의미하는바, 공무담임권의 보호영역에는 공직취임의 기회의 자의적인 배제 뿐 아니라, 공무원 신분의 부당한 박탈까지 포함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후자는 전자보다 당해 국민의 법적 지위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크다고 할 것이므로, 이를 보호영역에서 배제한다면, 기본권 보호체계에 발생하는 공백을 막기 어려울 것이며, 공무담임권을 규정하고 있는 위 헌법 제25조의 문언으로 보아도 현재 공무를 담임하고 있는 자를 그 공무로부터 배제하는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헌재 2000. 12. 14. 99헌마112 등, 판례집 12-2, 399, 409-414; 헌재1997. 3. 27. 96헌바86 , 판례집 9-1, 325, 332-333 참조).
(2) 과잉금지 원칙의 위반여부
헌법 제37조 제2항에 의하면,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그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하여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입법을 함에 있어서 준수하여야 할 기본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따라서, 기본권을 제한하는 입법은 입법목적의 정당성과 그 목적달성을 위한 방법의 적정성, 입법으로 인한 피해의 최소성, 그리고 그 입법에 의해 보호하려는 공익과 침해되는 사익의 균형성을 모두 갖
헌법 제25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공무담임권을 갖는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공무담임권의 내용에 관하여는 입법자에게 넓은 입법형성권이 인정된다고 할 것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헌법 제37조 제2항의 기본권제한의 입법적 한계를 넘는 지나친 것이어서는 아니 된다. 그러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에 의한 공무담임권이라는 기본권의 제한이 과연 이러한 헌법적 한계 내의 것인지 살펴보기로 한다.
(가)이 사건 법률조항의 입법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정성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당연퇴직제도를 두는 입법목적은 임용결격사유에 해당하는 자를 공무원의 직무로부터 배제함으로써 그 직무수행에 대한 국민의 신뢰, 공무원직에 대한 신용 등을 유지하고, 그 직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확보하며, 공무원범죄를 사전에 예방하고, 공직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자 함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입법목적은 입법자가 추구할 수 있는 헌법상 정당한 공익이라고 할 것이고, 이러한 공익을 실현하여야 할 현실적 필요성이 존재한다는 것도 명백하다.
또한 공무원이 범죄로 인하여 형사 유죄판결의 일종인 선고유예의 판결을 받은 경우에 공직 전체에 대한 신뢰의 유지라는 공익에 영향을 미치므로, 이 경우 당해 공무원에게 그에 상응하는 신분상의 불이익을 가하는 것은 공익을 위하여 적절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나) 최소침해성 원칙 위반여부
입법자는 공익실현을 위하여 기본권을 제한하는 경우에도 입법목적을 실현하기에 적합한 여러 수단 중에서 되도록 국민의 기본권을 가장 존중하고 기본권을 최소로 침해하는 수단을 선택해야 한다(헌재 1998. 5. 28. 96헌가5 , 판례집 10-1, 541, 556).
이 사건 법률조항은 공무원이 저지른 범죄의 종류나 내용을 불문하고 범죄행위로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유예를 받게 되면 당연히 공직에서 퇴직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같은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유예를 받은 경우라고 하여도 범죄의 종류, 죄질, 내용이 지극히 다양하므로, 그에 따라 국민의 공직에 대한 신뢰 등에 미치는 영향도 큰 차이가 있다. 또한 일반적으로 선고유예의 판결을 받은 경우는 법정형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벌금형인 경우로서
개전의 정상이 현저한 경우를 그 요건으로 하여 법원이 재량으로써 특별히 가벼운 제재를 하는 경우이다. 이 사건 법률조항이 규율하는 경우는 비록 선고유예 가운데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경우로 한정되어 있으나, 이 경우에도 역시 당해 피고인의 책임 및 불법의 정도가 현저하게 크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입법자로서는 유죄판결의 확정에 따른 당연퇴직의 사유로서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유예의 판결을 받은 모든 범죄를 포괄하여 규정할 것이 아니라, 입법목적을 달성함에 반드시 필요한 범죄의 유형, 내용 등으로 그 범위를 가급적 한정하여 규정하거나, 혹은 적어도 당해 공무원법상에 마련된 징계 등 별도의 제도로써도 입법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를 당연퇴직의 사유에서 제외시켜 규정하였음이 마땅하였으며, 이와 같은 방식으로 규정함이 최소침해성의 원칙에 따른 기본권 제한 방식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 법률조항은 과실범의 경우마저 당연퇴직의 사유에서 제외하지 않고 있는바, 일반적으로 과실범은 법적인 주의의무를 게을리 한 데 대한 법적인 비난가능성은 존재하지만, 이러한 범죄로 인하여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유예를 받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당연히 그 공무원을 공직에서 퇴직시켜야 할 만큼 그 행위가 공직자로서의 품위를 크게 손상시킨다고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더욱이 이 사건 법률조항의 제정 당시와는 달리 오늘날에는 자동차 등 위험성이 잠재되어 있는 현대 문명의 이기의 이용이 일상화되고 있기 때문에 공무원이 그와 같은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순간적인 과실로 인하여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고, 이러한 위험에 따른 과실범의 문제를 바라보는 일반 국민들의 시각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는 점도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한편, 독일, 미국, 영국 등의 외국의 입법례를 살펴보더라도, 범죄의 종류 내지 내용, 경중을 중시하여 직무관련범죄, 일정 기간 이상의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받은 고의범, 중죄(felony)의 유죄판결을 받은 경우 등으로 그 당연퇴직사유의 범위를 제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 법익균형성 원칙의 위반여부
1)공무원의 퇴직이란 당해 공무원의 법적 지위에 대한 가장 본질적인 제한이며, 이 가운데 당연퇴직이란 일정한 사유만 발생하면 별도의 실체적, 절차적 요건 없이 바로 퇴직되는 것이므로 공무원직의 상실 가운데에서도 법적 지위가 가장 예민하게 침해받는 경우이다. 따라서, 공익과 사익간의 비례성
형량에 있어서 더욱 엄격한 기준이 요구되는 경우라고 할 것이다.
이 사건 법률조항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당연퇴직사유를 적절한 제한 없이 포괄적으로 규정함으로써 공익을 사익에 비해 지나치게 우선시키고 있어 법익균형성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 법률조항은 그 외에도 다음과 같은 이유로 공익과 사익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입법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2)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화사회로 이행되어 가는 오늘날의 사회구조는 공직사회 및 민간기업조직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즉, 민간기업사회에도 공직사회와 같은 대규모의 관리조직이 생겨나게 된 한편, 국가조직도 능률성, 효율성의 개념을 중시하면서 민간기업의 관리 경영기법이 도입되고, 그 인적구성에 있어서도 전문적인 지식·경험·기술로 무장된 관료집단을 필요로 하여 공무원과 일반의 근로자간, 공직과 사직간의 유사성의 증대, 신분적 특성의 동질화를 가져왔고, 이러한 현상은 점점 더 심화되리라고 보인다. 이와 같은 사회구조의 변화는 일반인의 공직에 대한 인식에도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는바, 사회구조의 변화에 따른 사회국가적 행정임무의 증대와 이에 따른 공무원 수의 대폭적인 증가현상은 자연히 공무원의 질과 사회적 지위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공무원이 종래 누렸던 엘리트적인 면모가 손상을 입게 되었다. 물론 오늘날 공직의 구조 및 공직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은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지위를 지니는 것이고 공정한 공직수행을 위한 직무상의 높은 수준의 염결성은 여전히 강조되는 것이다. 다만, 엘리트적 면모와 사회적 명예직으로서의 공직 인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할 것이며, 따라서, ‘모든 범죄로부터 순결한 공직자 집단’이라는 신뢰를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국민의 공직에 대한 신뢰를 과장하여 해석하는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다른 한편, 현대민주주의 국가에 이르러서는 사회국가원리에 입각한 공직제도의 중요성이 특히 강조되고 있는바, 이는 사회적 법치국가이념을 추구하는 자유민주국가에서 공직제도란 사회국가의 실현수단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사회국가의 대상이며 과제라는 점을 이념적인 기초로 한다. 이는 모든 공무원들에게 보호가치 있는 이익과 권리를 인정해 주고, 공무원에게 자유의 영역이 확대될 수 있도록 공직자의 직무의무를 가능한 선까지 완화하며, 공직자들의 직무환경을 최대한으로 개선해 주고, 공직수행에 상응하는 생활부양을 해 주고, 퇴직 후나 재난, 질병에 대처한 사회보장의 혜택을 마련하는 것 등을
그 내용으로 한다. 그런데, 공무원의 생활보장의 가장 일차적이며 기본적인 수단은 ‘그 일자리의 보장’이라는 점에서 오늘날 사회국가원리에 입각한 공직제도에서 개개 공무원의 공무담임권 보장의 중요성은 더욱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와 같은 공익과 사익의 현대적인 상황 속에서 단지 금고 이상의 선고유예의 판결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예외 없이 그 직으로부터 퇴직 당하는 것으로 정하고 있는 이 사건 법률조항은 지나치게 공익만을 강조한 입법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3) 더욱이 이 사건 법률조항은 공무원의 당연퇴직사유를 공무원의 임용결격사유와 동일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바, 이는 규정체계상 공익과 사익간에 적절한 균형이 이루어진 입법이라고 할 수 없다.
같은 입법목적을 위한 것이라고 하여도 공무원으로 채용되려고 하는 자에게 채용될 자격을 인정하지 아니하는 사유와 기존에 공무원으로서 근무하는 자를 퇴직시키는 사유를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공무원을 새로 채용하는 경우에는 채용될 자격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여도 해당자가 잃는 이익은 크다고 할 수 없지만, 일단 채용된 공무원을 퇴직시키는 것은 공무원이 장기간 쌓은 지위를 박탈해 버리는 것이므로 당해 공무원이 잃는 이익은 대단히 크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다루고 있는 이익의 크기가 현저하게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공무원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한 자격의 문제로 파악하여 그 사유를 규정함에 있어 공직취임 이전의 임용결격사유와 이후의 당연퇴직사유를 동일하게 규율하는 것은 공직취임 이후의 퇴직자의 사익에 비하여 지나치게 공익을 우선한 입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4) 또한 이 사건 법률조항과 같이 선고유예 판결의 경우를 당연퇴직의 사유로서 규정하는 것은 법원으로 하여금 형사범죄의 판단을 함에 있어 불필요한 왜곡을 가져오기도 한다. 즉, 당연퇴직 규정이 당해 공무원의 법적 지위에 미치는 효과는 중대한 것으로, 경미한 죄의 경우에는 오히려 형법상의 형벌의 효과보다 크다고 할 수 있는 정도이기 때문에 피고인의 책임 정도에 따른 처벌을 하고자 하는 법원으로서는 당해 형사범죄에 대한 유·무죄 및 선택형의 결정, 양형 판단을 하면서, 법원으로 하여금 벌금형을 선택하게 하는 압력으로 작용함으로써 자칫 형사판결이 왜곡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형법 및 특별법상 범죄에 대한 법정형 중 벌금형이 선택형으로 규정되어 있
지 않은 경우가 다수 존재하는데, 증거에 의하여 범죄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한 법원으로서는 형사처벌 외에 공무원직마저 상실하게 하는 것이 범죄행위에 비하여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판단한다고 하여도 달리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이 없게 된다.
(3) 소 결
결국 이 사건 법률조항은 범죄의 종류와 내용을 가리지 않고 모두 당연퇴직사유로 규정함으로써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의 정도를 넘어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였고, 공직제도의 신뢰성이라는 공익과 공무원의 기본권이라는 사익을 적절하게 조화시키지 못하고 과도하게 공무담임권을 침해하였다고 할 것이다.
4. 결 론
이 사건 법률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하여 청구인들의 기본권인 공무담임권을 침해하는 것이어서 헌법에 위반되므로, 관여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재판관
재판관 윤영철(재판장) 하경철(주심) 김영일 권 성 김효종 김경일 송인준 주선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