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권이전등기말소][공1989.5.15.(848),667]
가. 민사소송에 있어서 확정판결의 증명력
나. 확정판결에서 확정한 사실을 배척한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 하여 채증법칙위반으로 원심을 파기한 사례
가. 민사소송에서 다른 민사나 형사재판에서 인정된 사실에 구속을 받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미 확정된 관련 있는 민사나 형사판결에서의 인정사실은 이를 채용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나타나 있지 않는 이상 유력한 증거자료가 된다.
나. 이미 확정판결에서 인정한 사실을 배척한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 하여 채증법칙 위반으로 원심을 파기한 사례
가. 민사소송법 제187조
이중희 소송대리인 변호사 이태훈
이근홍 외 11인 피고들 소송대리인 변호사 김윤행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민사지방법원 합의부에 환송한다.
피고들 소송대리인의 상고이유에 대하여, 원심은 이 사건 임야에 관하여 소외 이인영이 1975.8.19. 안유선을 상대로 서울민사지방법원 75가합3261호 로 소유권이전등기 청구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판결을 받고 그 확정판결에 기하여 대위보존등기를 거쳐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친 다음 위 임야를 분할하여 피고들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 및 지분소유권이전등기를 순차 경료하였으나 위 판결은 1956.11.15. 사망한 안유선을 상대로 한 당연무효의 판결이며 이를 기초로 하여 이루어진 위의 각 등기는 모두 원인무효라 할 것이므로 안 우선(일명 안유선)의 며느리로서 호주상속과 함께 단독으로 재산상속을 한 원고에게 이 인영의 공동상속인을 포함한 피고들은 그 소유권 및 지분소유권이전등기를 말소하여 줄 의무가 있다고 판시하였다.
그리고 원심은 이 사건 임야에 대하여 위 이 인영의 조부 이 창균이 1919.2.12. 선대의 분묘로 사용하기 위하여 그 소유자이던 안 유선으로부터 매수하였기 때문에 원고가 말소를 구하는 위의 각 등기는 결국 실체적 권리관계에 부합하는 유효한 등기라고 하는 피고들의 주장을 배척하면서 이 인영이 곽 용산을 상대로 제기한 이 사건 임야의 소유권보존등기말소등기 청구소송에서 이인영이 승소한 확정판결과 원고가 곽용산을 상대로 제기한 같은 소송에서 원고가 패소한 확정판결등 마저도 피고들 주장의 매매사실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되지 못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과연 위의 판결들을 배척한 원심의 조치가 적법한지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민사나 형사재판에서 인정된 사실에 관하여 민사소송에서 이에 구속을 받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미 확정된 관련 있는 민사나 형사판결에서의 인정사실은 이를 채용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나타나 있지 아니한 이상 유력한 증거자료가 된다 고 하는 것이 이미 확립된 판례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먼저 원고가 곽용산을 상대로 한 서울민사지방법원 71가합4105 이 사건 임야에 대한 소유권보존등기말소 청구소송의 1972.2.1.선고된 판결(을제1호증의 1)을 보면 곽용산이 위 임야를 관리하고 있음을 기화로 그 소유인 것처럼 허위문서를 작성하여 소유권보존등기를 경료하였다고 하는 원고의 주장에 대하여 위 임야가 원고의 선대 안우선의 소유이거나 안우선이 안유선과 동일인이라고 하는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하여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것이고 이 판결은 항소심에서 항소장 각하(을제1호증의 2)로 확정된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음 이 인영이 곽 용산을 상대로 한 서울민사지방법원 72가합1262호 이 사건 임야에 대한 소유권보존등기말소 청구소송의 1973.5.31. 선고된 판결(을제2호증의 1)을 보면 이 인영의 조부인 이 창균이 1919.2.12. 안 유선으로부터 이 사건 임야를 현전 80량과 벼 3섬을 대금으로 하여 매수한 사실과 이 창균이 위 임야를 그 선산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매수한 것이며 그 관리를 곽 용산의 부인 곽 영선에게 맡겼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매매사실을 인정한 자료로서 최 찬균의 증언에 의하여 진정성립을 인정한 이 창균과 안유선 사이에 작성된 매매문건(갑제22호증의 1, 을제10호증의 24), 수령증서(갑제22호증의 2, 을제10호증의 25) 그 매매대금에 관한 영수증(갑제22호증의 3, 을제10호증의 26)을 들고 있다. 이 판결의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판결(을제2호증의 2)을 보면 위 서증에 대하여 최찬균 외에 김 창옥의 증언을 보태어 진정성립을 인정하고 제1심판결과 같은 취지에서 항소를 기각하였고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을제2호증의 3) 되었는 바 대법원판결에 의하면 원심의 사실인정을 지지하면서 아울러 매매문건상에 임야대금으로 기재된 화폐단위 "량"에 대하여 이미 1901년에 "원"으로 바뀌어 매매당시의 법제상 화폐단위가 아니었다는 상고논지에 대하여 1919년에는 법제상으로 "량"단위의 화폐가 통용되지 아니한지 10여년이 지난 후이지만 종래의 관습, 풍속, 언어, 반일적 민족감정등에 의하여 1원을 5량, 20전을 1량으로 환산하여 호칭되어 온 사실을 인정하고 계약당사자에 있어서는 신화폐 16원을 대금으로 지급하면서 단지 그 호칭을 구관대로 80량으로 표현한 것으로 추인된다고 판시하였다.
그리고 앞의 서울민사지방법원 72가합1262호 사건에서 이 인영의 신청에 의하여 이 사건 임야가 이 인영의 소유라는 점에 대하여 유리한 진술을 한 소외 1과 소외 2가 그 사건에서 패소한 곽용산에 의하여 위증죄로 고소를 당하고 기소되었던 바 제1,2심판결(을제8호증의1,2)은 민사재판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창균이 안유선으로부터 이 사건 임야를 매수하여 곽용산의 선대에게 관리를 시켜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위 증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하였고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검사의 상고가 기각되어(을제8호증의 3) 확정된 사실을 알 수 있다.
원심은 이상의 민·형사판결들이 확정한 사실관계를 모조리 외면하고 민사재판 과정에서 채택된 증거문서들에 관하여 여러 가지 이유를 나열하여 그 진정성립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인정하고 그 매매관계서류를 기초로 한 판결들은 결국 피고들 주장의 매매사실을 인정할 자료가 되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리고있으나 위 민사판결은 앞에서 본 내용 이외에도 매매대금의 화폐단위 표현문제를 비롯하여 이 창균이 이 사건 임야에 그의 아버지인 이 덕규와 어머니 인숙인 박씨의 분묘를 설치한 사실이라던가 매매문건에 매수인인 이 창균의 날인이 없다고 하더라도 계약상대방인 안유선의 날인이 있고 그 문서를 이 창균이 소지한 사실에 미루어 볼 때 그 진정성립을 부인하는 사유로 삼기 어렵다는 점등 원심판결이 위 증거문서를 배척하는 이유로 삼고 있는 주요사항들에 대하여 소상하게 판단을 거치고 있는 만큼 원심이 위 증거들을 새삼스럽게 배척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원심이 확정판결에서 인정된 사실과 다른 사실이 인정된다는 이유로 피고들의 이 사건 임야에 관한 매매의 주장을 배척한 것은 채증법칙에 위배된 증거취사로서 소송촉진등에관한특례법 제12조 제2항에 해당된다고 아니할 수 없다. 논지는 이유 있다.
이에 더 나아가 나머지 상고이유에 대하여 판단을 거칠 것 없이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