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배상(국)] 확정[각공2019하,1105]
뉴질랜드 국민인 갑이 국가 산하 교육부가 시행하는 ‘EPIK(English Program in Korea) 사업’(이하 ‘EPIK 사업’이라 한다)의 신규 원어민 영어보조교사로 채용이 확정되어, 광역시교육청 교육감과 원어민 영어보조교사 고용계약을 체결하고 초등학교에서 원어민 영어보조교사로 근무하였는데, 재계약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교육감이 EPIK 사업지침에 따라 갑에 대하여 에이즈(HIV) 검사 등을 포함한 건강검진 수검 결과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갑이 교육감의 건강검진 수검 요구가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 조치라는 이유로 이를 거절하였고 이에 교육감이 갑에 대한 초등학교 교장과 동료 교사들의 평가 점수가 낮지 않았는데도, 갑을 재계약 검토 대상에서 제외한 결과 갑에 대한 재계약이 체결되지 않은 사안에서, 교육감이 피고용자로서 구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시행령에 따른 에이즈 검진 대상자에 해당되지도 아니하는 갑에 대해서 에이즈 검진결과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 구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제8조의2 제3항 에 위반되는 행위이거나 위법성이 농후한 행위로서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행위라는 이유 등으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사례
뉴질랜드 국민인 갑이 국가 산하 교육부가 시행하는 ‘EPIK(English Program in Korea) 사업’(이하 ‘EPIK 사업’이라 한다)의 신규 원어민 영어보조교사로 채용이 확정되어, 광역시교육청 교육감과 원어민 영어보조교사 고용계약을 체결하고 초등학교에서 원어민 영어보조교사로 근무하였는데, 재계약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교육감이 EPIK 사업지침에 따라 갑에 대하여 에이즈(HIV) 검사 등을 포함한 건강검진 수검 결과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갑이 교육감의 건강검진 수검 요구가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 조치라는 이유로 이를 거절하였고 이에 교육감이 갑에 대한 초등학교 교장과 동료 교사들의 평가 점수가 낮지 않았는데도, 갑을 재계약 검토 대상에서 제외한 결과 갑에 대한 재계약이 체결되지 않은 사안이다.
구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2013. 4. 5. 법률 제11749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에이즈예방법’이라 한다)의 입법 목적과 내용, 규정 형식 등에 비추어 보면, 사업자가 근로자에게 후천성면역결핍증에 관한 검진결과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할 수 없도록 정한 구 에이즈예방법 제8조의2 제3항 은 외국인 근로자에 대하여도 적용되는 강행법규에 해당하는데, 교육감이 피고용자로서 구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시행령에 따른 에이즈 검진 대상자에 해당되지도 아니하는 갑에 대해서 에이즈 검진결과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 구 에이즈예방법 제8조의2 제3항 에 위반되는 행위이거나 감염인 또는 감염인으로 오해받아 불이익을 입을 처지에 놓인 사람에 대한 보호의무를 저버린, 위법성이 농후한 행위로서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행위이며, 교육감이 갑에 대하여 후천성면역결핍증에 관한 검진결과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한 것은 국가의 지침에 따른 것이므로 비록 국가가 갑과 사이에 고용계약을 체결하거나 갑에 대하여 직접 위 요구를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교육감 등과 공동하여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위법행위를 저질렀음을 인정할 수 있고, 국가 소속 공무원들의 과실 또한 인정된다는 이유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사례이다.
원고 (소송대리인 변호사 이탁건 외 1인)
대한민국 (소송대리인 정부법무공단 담당변호사 박지용 외 1인)
2019. 8. 20.
1. 피고는 원고에게 30,000,100원 및 이에 대하여 2018. 6. 20.부터 2019. 5. 31.까지 연 15%,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2%의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2. 원고의 나머지 청구를 기각한다.
3.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4. 제1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피고는 원고에게 30,000,100원 및 이에 대하여 소장 부본 송달일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5%의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1. 인정 사실
가. 피고 산하 교육부(명칭이 ‘교육부’에서 2001년 ‘교육인적자원부’로,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로, 2013년 ‘교육부’로 변경되었다. 이하 ‘교육부’라 한다)는 전국 초·중·고등학교 학생들과 교수들의 영어구사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1995년부터 영어 상용국 원어민을 영어보조교사로 초청, 활용하는 “EPIK(English Program in Korea) 사업”(이하 ‘EPIK 사업’이라 한다)을 시행하였다. 교육부는 2007. 7. 1. EPIK 사업의 주체를 당초 한국교원대학교에서 교육부 산하 국제교육진흥원(당시 명칭은 ‘국제교육진흥원’이었다. 2008년에 ‘국립국제교육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하 ‘국립국제교육원’이라 한다)으로 이관하였다. 국립국제교육원은 2007. 11. 원어민 영어보조교사의 모집 및 관리와 관련하여 교육청과 일선 학교의 원어민 영어보조교사 담당자가 숙지해야 할 업무 처리 절차, 각종 서식과 지침(규정), 협력 수업과 방과 후 학교 운영 사례 등을 수록한 ‘원어민 영어보조교사 초청·활용 이렇게 하세요 Ⅱ’(이하 ‘2008년도 지침’이라 한다) 책자를 발간하였다.
2008년도 지침에 의하면, EPIK 사업의 주체는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다. 교육부는 EPIK 사업 전반에 대한 종합 계획의 수립 및 지도, 평가를 수행한다. 시도교육청은 EPIK 사업에 관한 예산 및 조달 업무, 원어민 영어보조교사의 산하 기관 근무지 배정, 원어민 영어보조교사의 활용 및 관리 업무를 담당한다. 국립국제교육원은 EPIK 사업 전반에 대한 세부 추진 계획을 수립하고, 초청 사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하며, 신규 원어민 영어보조교사의 사전 연수, 시도 배치, 활용 업무를 관장하고, 시도교육청에 대하여 관련 자문을 담당한다. 재외공관은 국립국제교육원과 함께 지원 서류의 접수 및 심사, 지원자의 면접 및 심사, 입국지원 및 각종 정보 제공 업무를 담당한다. 교육부 담당관과 국립국제교육원, 시도교육청의 EPIK 사업 담당관으로 구성된 EPIK 위원회는 EPIK 사업의 주요 사안에 대해서 심의, 결정하고, 신규 원어민 영어보조교사 최종 심사 및 채용을 확정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나. 원고는 뉴질랜드 국민이다. 원고는 피고 산하 EPIK 위원회로부터 신규 원어민 영어보조교사로 채용 확정되어, 피고로부터 E2 비자(이 비자로는 초·중등학교에서 한국인 교사와 함께 실용외국어교육을 담당하거나 그 밖의 학원, 연구소 등 기관·단체에서 외국어 회화지도에 종사하며, 회화지도 이외에 다른 영리 활동을 할 수 없다. 또한 입국 후 90일 이내에 외국인등록을 해야 한다)를 발급받고 2008. 8. 27. 대한민국에 입국하였다. 원고는 2008. 9. 1. 울산광역시교육청 교육감(이하 ‘교육감’이라 한다)과 사이에 급여 2,400만 원, 고용기간 2008. 9.부터 2009. 8.까지 1년간으로 하여 원어민 영어보조교사 고용계약(이하 ‘이 사건 계약’이라 한다)을 체결하였다. 이 사건 고용계약 중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위 고용기간에 불구하고 피고용자와 고용자 간의 상호 합의에 의하여 1년 단위로 재계약할 수 있다(제10조 제1항).
② 고용자는 피고용자가 신체적 또는 정신적 질환이 있어 계속 근무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피고용자는 고용자가 건강진단을 요구하면 즉시 이에 응하여야 한다)(제18조 제1항 제5호).
다. 원고는 2008. 9. 2. 대한민국 내 ○○병원에서 에이즈(HIV) 검사, 마약반응 검사(T.B.P.E) 등 건강검진을 받고 결과를 제출하였다. 원고는 그 무렵부터 울산광역시교육청 산하 △△초등학교(이하 ‘△△초등학교’라 한다)에서 원어민 영어보조교사로 근무하였다.
라. 국립국제교육원은 2008년 무렵 다음 해 EPIK 사업을 위한 ‘원어민 영어보조교사 초청·활용 이렇게 하세요’ 책자(이하 ‘2009년도 지침’이라 한다)를 발간하였다. 2009년도 지침에 첨부된 원어민 영어보조교사 표준고용계약서안에는, ‘고용자는 피고용자가 신체적 또는 정신적 질환이 있어 계속 근무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피고용자는 고용자가 건강진단을 요구하면 즉시 이에 응하여야 한다).’(제18조 제1항 제5호)는 조항 외에 ‘피고용자는 출입국관리국에서 요구하는 검사(마약, 에이즈 등)를 국내에서 받아야 한다.’(제18조 제1항 제5호 b목)는 조항이 새로 추가되어 있다.
마. 원고는 피고로부터 이 사건 계약에 관한 갱신 의사를 조회받고, 2009. 4. 22. △△초등학교를 통하여 재계약 희망 의사를 밝혔다. 그 무렵 실시된 원고에 대한 △△초등학교 교장과 동료 교사들의 평가 점수는 낮지 않았다. 교육감은 2009년도 지침에 따라 2009. 5. 13. 원고에 대하여 에이즈(HIV) 검사(그 외에 마약반응 검사인 T.B.P.E 검사 등도 포함되어 있다)를 포함한 건강검진 수검을 2009. 5. 30.까지 완료하고 그 결과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였다. 원고는 교육감의 건강검진 수검 요구가 외국인인 원고에 대한 차별적 조치라는 이유로 이를 거절하였다. 교육감은 2009. 5. 26. 원고가 건강검진을 받지 않으면 재계약을 체결할 수 없다고 하면서 위 건강검진 결과를 제출할 것을 다시 요구(이하 ‘이 사건 요구’라 한다)하였다. 원고가 끝내 이에 응하지 아니하자, 교육감은 2009. 6.경 원고를 재계약 검토 대상에서 제외하였고, 그 결과 원고와 피고 사이에 재계약이 체결되지 않았다. 원고는 2009. 9. 3. 대한민국을 출국하였다.
[인정 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2 내지 4호증, 을 제4호증(각 가지번호 있는 경우 가지번호 포함한다. 이하 같다)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원고의 청구 요지
피고가 2009년 재계약 논의 과정에서 원고에 대하여 HIV 검사 결과가 포함된 건강검진 결과의 제출을 요구한 것은 원고의 평등권, 근로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및 사생활비밀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하 ‘자유권규약’이라 한다),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하 ‘사회권규약’이라 한다),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협약(이하 ‘인종차별철폐협약’이라 한다) 등을 위반한 위법행위이다. 이 사건 요구는 법무부의 출입국정책에 발맞춘 교육부의 지침에 따라 정책적 차원에서 실시된 것으로 관련 공무원들은 위 정책, 지침 및 그에 따른 이 사건 요구가 위법함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음에도 이를 시행한 고의 또는 과실이 있다. 피고 또는 산하 공무원들의 위와 같은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는 근무성적이 좋았음에도 재계약을 하지 못하여 1년간 영어 원어민 보조교사로 근무하지 못하였고,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따라서 피고는 원고에게 1년간의 영어 원어민 보조교사 급여에 상당한 24,000,000원과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6,000,100원 등 합계 30,000,100원을 지급해야 한다.
3. 손해배상책임의 성립에 관한 판단
가. 청구원인에 관한 판단
위 인정 사실 및 위 각 증거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실 또는 사정을 종합하면, 피고 소속 공무원들이 불법행위를 저질렀음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국가배상법 제2조 에 따라 피고는 원고에게 그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진다.
즉, 구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2013. 4. 5. 법률 제11749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약칭인 ‘구 에이즈예방법’이라 한다) 제1조 는 “이 법은 후천성면역결핍증의 예방·관리와 그 감염인의 보호·지원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국민건강의 보호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규정한다. 같은 법 제3조 는 제1항 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후천성면역결핍증의 예방 및 관리와 감염인의 보호 및 지원을 위한 대책을 수립·시행하고 감염인에 대한 차별 및 편견 방지와 후천성면역결핍증의 예방을 위한 교육과 홍보를 실시하여야 한다.”, 제4항 에서 “그 경우에 국가·지방자치단체 및 국민은 감염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고 그 기본적 권리를 보호하며 이 법에서 정한 이외의 불이익을 주거나 차별대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5항 에서 “사용자는 근로자가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근로관계에 있어서 법률로 정한 것 외의 불이익을 주거나 차별대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한다. 같은 법 제8조 는 제3항 에서 “해외에서 입국하는 외국인 중 대통령령이 정하는 장기체류자는 입국 전 1월 이내에 발급받은 후천성면역결핍증 음성확인서를 보건복지가족부장관에게 제시하여야 한다. 이를 제시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입국 후 72시간 이내에 검진을 받아야 한다.”라고 규정한다. 같은 법 제8조의2 는 제3항 에서 “사업주는 근로자에게 후천성면역결핍증에 관한 검진결과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할 수 없다.”라고 규정한다. 같은 법 제27조 제3호 후단은 ‘ 제8조의2 제3항 을 위반하여 검진결과서 제출을 요구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한편 같은 시기 시행되던 구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시행령(대통령령 제20987호, 이하 ‘구 에이즈예방법 시행령’이라 한다) 제10조 는 제2항 에서 “ 법 제8조 제3항 전단에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장기체류자’란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을 말한다. 다만 배우자를 동반하는 사람은 제외한다. 1. 91일 이상 국내에 체류하기 위하여 입국하는 사람(체류기간을 연장하여 91일 이상 체류하는 사람을 포함한다)으로서 수입을 목적으로 한 연예·운동경기, 그 밖의 흥행업을 하려는 사람(다른 목적으로 입국하여 수입을 목적으로 한 연예·운동경기, 그 밖의 흥행업을 하는 사람을 포함한다) 2.「출입국관리법」에 따른 재난상륙허가의 대상자로서 보건복지가족부장관이 후천성면역결핍증의 예방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위와 같은 구 에이즈예방법의 입법 목적과 내용, 규정 형식 등에 비추어 보면, 구 에이즈예방법 제8조의2 제3항 (‘사업주는 근로자에게 후천성면역결핍증에 관한 검진결과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할 수 없다.’는 규정)은 외국인 근로자에 대하여도 적용되는 강행법규에 해당한다.
앞서 인정 사실에서 본 바와 같이 교육감은 2009. 5. 13. 피고용자로서 구 에이즈예방법 시행령에 따른 에이즈 검진 대상자에 해당되지도 아니하는 원고에 대해서 에이즈 검진결과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하였다. 이는 그 자체로 구 에이즈예방법 제8조의2 제3항 에 위반되는 행위이거나 감염인 또는 감염인으로 오해받아 불이익을 입을 처지에 놓인 사람에 대한 보호의무를 저버린, 위법성이 농후한 행위로서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행위이다.
피고 산하 국립국제교육원이 스스로 밝힌 바에 의하면, EPIK 사업은 공동 사업주체인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에 의해 진행되었다. 실제로도 피고나 피고 소속 공무원들은 EPIK 사업과 관련하여 단순히 시도교육청에 대한 내부적 자문 수준에 머무르지 않았다. 피고 소속 공무원들은 EPIK 사업 전반에 대한 종합 계획의 수립 및 지도, 평가, 사업 전반에 대한 세부 추진 계획의 수립, 초청 사업의 주도적 추진, 신규 원어민 영어보조교사의 사전 연수, 시도 배치, 활용 업무, 시도교육청에 대한 자문, 지원 서류의 접수 및 심사, 지원자의 면접 및 심사, 입국지원 및 각종 정보 제공, 사업의 주요 사안에 대한 심의, 결정, 신규 원어민 영어보조교사 최종 심사 및 채용 확정 등 사업의 전반에 나서서 관여하며, 2008년도 지침 및 2009년도 지침 등 지침을 통해 시도교육청의 업무를 지도하였다. 즉, 교육감이 원고에 대하여 후천성면역결핍증에 관한 검진결과서를 제출하도록 이 사건 요구를 한 것은 피고의 지침에 따른 것이다. 피고나 소속 공무원들은 지침에 포함된 표준고용계약서를 통해 사실상 고용계약의 내용을 형성하였으며, 원고로부터 지원서류를 받고, 그에 대하여 면접 및 심사를 하였으며, 채용 확정 결정까지 하였다. 결국 구 에이즈예방법의 내용과 피고의 관여 정도에 비추어 보면, 비록 피고가 원고와 사이에 고용계약을 체결하거나 원고에 대하여 직접 이 사건 요구를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교육감 또는 울산광역시교육청 소속 공무원들과 공동하여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위법행위를 저질렀음을 인정할 수 있고, 피고 소속 공무원들의 과실 또한 인정된다.
나. 피고의 항변(주장)에 관한 판단
1) 상호보증의 법리에 따라 국가배상법이 적용되지 아니한다는 주장
가) 주장의 요지
국가배상법 제7조 는 ‘이 법은 외국인이 피해자인 경우에는 해당 국가와 상호보증이 있을 때에만 적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원고의 국적인 뉴질랜드에서 대한민국 국민이 뉴질랜드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할 수 있는지, 그러한 경우 대한민국의 국가배상법에서 정한 요건과 균형을 상실하지 아니한 정도의 요건을 갖추어서 실질적으로 거의 차이가 없는 수준으로 보장되고 있는지 확인되고 있지 아니하다. 따라서 국가배상법상 상호보증 법리에 따라 원고에게는 국가배상법이 적용되지 아니하므로, 원고의 청구는 이유 없다.
나) 판단
국가배상법 제7조 는 대한민국만이 입을 수 있는 불이익을 방지하고 국제관계에서 형평을 도모하기 위하여 외국인의 국가배상청구권의 발생요건으로 ‘외국인이 피해자인 경우에는 해당 국가와 상호보증이 있을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해당 국가에서 외국인에 대한 국가배상청구권의 발생요건이 대한민국의 그것과 동일하거나 오히려 관대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게 외국인의 국가배상청구권을 제한하는 결과가 되어 국제적인 교류가 빈번한 오늘날의 현실에 맞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보호를 거부하게 하는 불합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대한민국과 외국 사이에 국가배상청구권의 발생요건이 현저히 균형을 상실하지 아니하고 외국에서 정한 요건이 대한민국에서 정한 그것보다 전체로서 과중하지 아니하여 중요한 점에서 실질적으로 거의 차이가 없는 정도라면 국가배상법 제7조 가 정하는 상호보증의 요건을 구비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 그리고 이와 같은 상호보증은 외국의 법령, 판례 및 관례 등에 의하여 발생요건을 비교하여 인정되면 충분하고 반드시 당사국과의 조약이 체결되어 있을 필요는 없으며, 당해 외국에서 구체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에게 국가배상청구를 인정한 사례가 없더라도 실제로 인정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 상태이면 충분하다( 대법원 2004. 10. 28. 선고 2002다74213 판결 , 대법원 2013. 2. 15. 선고 2012므66, 73 판결 등 참조).
원고가 뉴질랜드인으로서 피고 소속 공무원들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인한 피해에 대하여 국가배상법의 적용을 받으려면 뉴질랜드에서 대한민국의 국가배상법 제7조 가 정하는 상호보증이 있어야 한다. 뉴질랜드 정부소송법(Crown Proceedings Act 1950) 제1편(실체법) 제3조 제2항 b호, 제6조는 뉴질랜드 정부는 그 공무원 또는 기관에 의해 저질러진 불법행위로 인한 모든 책임을 지고, 뉴질랜드 국민 여부를 떠나 모든 사람은 뉴질랜드 정부가 불법행위책임을 지는 위법행위와 관련하여 뉴질랜드 정부를 상대로 민사소송으로 손해배상청구를 제기할 권리를 갖는다는 취지로 규정하고 있다. 뉴질랜드에서의 국가배상청구권의 발생요건이 대한민국과 비교하여 현저히 균형을 상실하지 아니하고 대한민국의 국가배상법이 정한 것보다 전체로서 과중하지 아니한바, 뉴질랜드 법원이 대한민국 국민에 대하여 정당한 국가배상청구를 인정할 것이라고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달리 반증이 없다). 결국 대한민국과 뉴질랜드 사이에 국가배상법 제7조 가 정하는 상호보증이 있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피고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2) 교육부의 지침에 따른 행위이므로 위법성 또는 과실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주장
가) 주장의 요지
울산광역시교육청 소속 담당 공무원은 교육부가 마련한 행정규칙인 2009년도 지침에 따라 원고에 대하여 HIV 검사, 마약 검사가 포함된 신체검사를 요구하였으므로 위법성 또는 공무원의 과실을 인정할 수 없다.
나) 판단
설령 국립국제교육원이 만든 2009년도 지침이 행정규칙에 해당한다 하더라도 이는 구 에이즈예방법에 위배되는 행위로서 무효이다. 원고는 피고 소속 공무원들이 HIV 검사 결과를 제출하라는 내용의 2009년도 지침을 제정하고 그에 따라 교육감을 통하여 이 사건 요구를 한 것이 위법하다는 취지로 주장하고 있다. 피고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3) HIV 검사가 포함된 신체검사 요구가 위법하다거나 형평의 원칙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의 주장
가) 주장의 요지
원어민 영어보조교사들은 미성년자인 학생들과 교육현장에서 직접 긴밀하게 접촉·교류하므로, 이들에 대하여 엄격한 심사를 통하여 학생들의 안전권을 확보할 공익적 필요성이 존재하였다. 당시 다수의 원어민 영어보조교사들이 에이즈에 감염되고 마약거래를 하다가 적발되는 등 사회적 물의가 빚어졌다. 교육부는 2009년도 지침을 통하여 HIV 및 마약 검사를 포함한 신체검사서를 요구하여 원어민 영어보조교사의 적격 여부를 엄격하게 심사할 것을 요구하였다. 원어민 영어보조교사들은 국내 교사들과 달리 주로 해외에서 생활하여 한국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로 교육현장에 곧바로 투입된다는 점에서 기본적인 자격 검증이 필요하고, 따라서 이들을 국내교사와 동등하게 취급하지 아니할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원어민 영어보조교사인 원고에 대하여 엄격한 신체검사를 요구하였다는 사실만으로 그의 기본권을 침해하였다거나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
나) 판단
위 인정 사실 및 위 각 증거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실 또는 사정을 종합하면, 피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
즉, 구 아동복지법(2011. 8. 4. 법률 제11002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은 아동이 건강하게 출생하여 행복하고 안전하게 자랄 수 있도록 아동의 복지를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같은 법 제4조 는 제1항 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아동의 건강과 복지증진에 노력하여야 하며 이를 위한 시책을 시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같은 법 제9조 는 제3항 에서 ‘아동복지시설, 영유아보육시설, 유치원, 초·중·고등학교의 장은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교통안전, 실종·유괴의 예방과 방지, 약물오남용 예방, 재난대비 안전 및 성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원고를 포함한 원어민 영어보조교사에 대하여 HIV 검사나 마약 검사를 실시하려는 정책의 목적은 일응 정당하다. 그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요구는 위법한 행위이다. 피고가 제출한 증거(을 제1호증의 1)에 의하면, 2007년부터 2009년 사이에 경기도 교육청에서 채용한 원어민 교사 중 에이즈 양성반응으로 계약 해지된 사람은 총 3명이다. 그러나 경기도 교육청의 경우 자체적으로 원어민 영어보조교사 사업을 추진하여 총 원어민 영어보조교사 수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고, 전국 교육청의 내역은 제출되지도 아니하였으므로 함부로 일부 원어민 영어보조교사들이 에이즈 양성반응을 보였다거나 따라서 원어민 영어보조교사들에 대하여 HIV 검사를 실시할 필요성이 존재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 2013년부터 2017년 사이의 자료(을 제1호증의 2)는 그 시기상 피고 주장의 당부, 즉 이 사건 요구의 타당성을 평가하기 위한 자료로 사용할 수 없으나, 그 자료에 의하더라도 에이즈 양성반응을 보여 계약 해지된 원어민 영어보조교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원고는 2008. 9. 2. 실시된 검사에서 에이즈에 관하여 양성반응이 검출되지 않았다(마약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원고가 그 후 2009년 재계약 논의 무렵까지 사이에 에이즈에 걸렸다고 의심할 만한 사정은 없다. 피고는 2010년부터는 더 이상 원어민 교사에 대하여 HIV 검사를 요구하지 않는데(을 제3호증), 그 사이에 피고의 갑작스런 정책 변경을 정당화할만한 다른 사정도 찾을 수 없다.
4)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
가) 항변의 요지
국가배상법 제8조 , 국가재정법 제96조 제2항 에 따르면, 원고의 이 사건 손해배상채권은 원고가 손해를 안 날부터 3년, 그러한 행위가 있은 날부터 5년 내에 행사되어야 한다. 이 사건 소송은, 교육감이 원고에게 재계약을 위하여 다시 신체검사서를 요구한 2009. 5. 26.부터 5년이 지난 2018. 6. 8. 제기되었으므로, 원고 주장의 손해배상채권은 이미 소멸시효 완성으로 소멸하였다.
나) 판단
이 사건 소송이 교육감의 이 사건 요구 시점인 2009. 5. 26.부터 소멸시효 기간인 5년이 지난 후인 2018. 6. 8. 제기되었음은 역수상 명백하다.
그러나 갑 제3 내지 9호증, 을 제4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실 또는 사정에 비추어 보면, 피고의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은 단기소멸시효 기간이 경과하지 않았거나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 따라서 피고의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본문 전단 규정에 따른 배상책임을 묻는 사건에 대하여는 같은 법 제8조 의 규정에 의하여 민법 제766조 제1항 소정의 단기소멸시효제도가 적용되는 것인바, 여기서 가해자를 안다는 것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가해 공무원이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와 공법상 근무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또한 일반인이 당해 공무원의 불법행위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직무를 집행함에 있어서 행해진 것이라고 판단하기에 족한 사실까지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민법 제766조 제1항 소정의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이라 함은 손해의 발생, 위법한 가해행위의 존재, 가해행위와 손해의 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는 사실 등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에 대하여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하였을 때를 의미하고, 피해자 등이 언제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을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한 것으로 볼 것인지는 개별적 사건에 있어서의 여러 객관적 사정을 참작하고 손해배상청구가 사실상 가능하게 된 상황을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인정하여야 한다( 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4다33469 판결 , 대법원 2012. 4. 26. 선고 2012다4091 판결 참조).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고 이에 권리행사를 기대할 수 있는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가 행사되었다거나, 채권자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대법원 2011. 6. 30. 선고 2009다72599 판결 , 대법원 2011. 9. 8. 선고 2009다66969 판결 , 대법원 2013. 5. 16. 선고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원고는 2009. 7. 8. 국가인권위원회에 울산광역시교육청의 원어민 교사에 대한 의무적 건강검진정책이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고 위 정책이 비합리적 차별에 해당하는 경우 울산광역시교육청에 대한 개선권고를 하라는 내용의 진정을 제기하였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0. 4. 5. 개인 진정으로 조사하기에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원고의 진정을 각하하였다.
원고는 2009. 7. 9. 대한상사중재원에 울산광역시교육청을 상대로 이 사건 재계약에 관한 중재를 신청하였다(Arbitration Case No. 생략). 원고는 울산광역시교육청이 대한민국법상 금지된 차별적 계약 조건을 부당하게 적용하여 원고에 대하여 부당한 건강검진 수검 요구를 하고, 매독 및 카나비노이드 검사를 추가로 진행하도록 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대한상사중재원 중재판정부는 2011. 6. 30. 원고의 중재 신청을 기각하였다.
원고는 2012. 12. 12. 인종차별철폐협약 제8조에 따라 설립된 인종차별철폐에 관한 위원회(이하 ‘인종차별철폐위원회’라 한다)에 피고를 당사국으로 하여 울산광역시교육청의 의무적 HIV 검사 및 마약 검사 수검 정책이 인종차별철폐협약 제1조의 인종차별에 해당하고, 피고가 인종차별철폐협약상 원칙 및 외국인에 대한 차별 철폐에 관한 인종차별철폐위원회 일반논평 제30호상 원칙을 위반하였으며, 피고의 국가인권위원회가 울산광역시교육청의 정책이 차별인지 여부를 조사하지 않아 인종차별철폐협약상 실효성 있는 구제를 거절하였고, 피고가 울산광역시교육청의 정책을 수정, 폐기 및 무효화하지 않은 부작위가 협약상 원고의 권리를 침해하였다는 등의 이유로 개인 진정을 제기하였다(진정사건번호 생략). 피고는 2013. 4. 12. 원고의 진정에 관하여 심리적격성에 대한 반대의견이 없다고 확인하면서 다만 ‘피고가 원어민들을 공립학교의 보조교사로 근무하도록 초청하는 영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시도교육청에서 외국인 영어교사의 채용 및 계약 갱신과 관련한 지침으로 교육부 산하기관인 국립국제교육원이 발간한 지침을 활용하는데, 2010년 지침부터는 외국인 교사가 재계약을 위해 한국에서 시행한 HIV 검사 및 마약 검사 결과를 제출해야 한다고 명시하지 않고 있다. 울산광역시교육청도 2010년 이후에는 원어민 교사들과 계약 갱신을 하는 데 위 검사들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등 본안에 관하여 의견을 밝혔다(그 외에 대한상사중재원의 중재판정에 의하여 분쟁이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거나 국가인권위원회가 원고의 진정을 각하한 것은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부합한다는 취지의 의견도 포함되어 있다).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2015. 5. 제86차 회의에서 ‘피고의 국가인권위원회가 원고의 진정에 대한 조사를 각하하고, 대한상사중재원 등 피고의 국가기관이 의무적 에이즈 및 마약 검사 정책이 인종차별철폐협약에 위배되는지 여부에 관하여 판단하지 않았는바, 이는 인종차별철폐협약 제2조 제1항 (c), (d) 및 제6조에 명시된 원고의 권리를 침해하였다. 피고의 의무적 에이즈 및 마약 검사 정책은 한국계 외국인 영어교사나 한국인 교사들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아니하고 그들은 위 검사를 면제받으므로 이는 인종에 기초하여 결정되는 것이다. 채용, 입국, 체류 및 거주 목적의 의무적 HIV 검사가 공중보건에 실효성이 없고, 근본적인 인권 향유를 침해하고 차별적이므로 국제 기준과 상충된다. 피고가 의무적 검사정책을 정당화하는 어떠한 이유도 제시하지 못하였고, 오히려 일부 울산광역시교육청 공무원들은 위 중재과정에서 에이즈 및 마약 검사가 외국인 영어교사의 가치관과 도덕성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고려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피고가 인종차별철폐협약 제5조 (e)항 (i)의 근로에 대한 권리에 있어서 평등을 보장할 당사국의 의무를 위반하여 원고의 인종, 피부색, 민족이나 종족의 기원의 구분 없이 일할 권리가 침해되었다’는 취지의 견해를 밝혔다. 그리고 ‘피고에 대하여 원고에게 근무하지 못한 1년간의 임금에 대한 보상 및 협약 위반으로 인해 원고가 입은 정신적 및 실질적 손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제공할 것’과 관련 규정 및 정책의 검토, 외국인혐오에 대한 대책 마련 등을 권고하는 견해를 밝혔다.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2015. 6. 12. 위 견해를 외부에 공개하였다.
인종차별철폐위원회의 견해의 타당성이나 그 효력에 관한 논의와는 무관하게, 최소한 원고는 외국인으로서 피고 소속 공무원들의 위법한 지침에 따라 울산광역시교육청이 원고에 대하여 이 사건 요구를 한 것을 알지 못하다가 원고의 진정에 따라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2015. 6. 12. 견해를 외부에 공개하면서 비로소 이 사건 요구에 관한 전모와 구체적인 진상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원고는 2015. 6. 12.에야 비로소 이 사건 요구 관련 가해자들과 그들이 피고 소속 공무원으로서 직무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2009년도 지침을 작성, 배포하였음을 알게 되었으므로 그때부터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가 사실상 가능하였다. 결국 원고의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채권에 관한 단기소멸시효는 그때부터 진행하고, 원고의 이 사건 소는 그때부터 3년이 지나기 전인 2018. 6. 9. 제기되었으므로 단기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볼 수 없다.
인종차별철폐위원회의 이 사건 요구에 대한 견해 공개가 있었던 2015. 6. 12.까지는 객관적으로 원고가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 원고는 이 사건 요구에 불응하여 계약 갱신을 하지 못하고 출국하는 등 피해를 입었으나, 위법한 지침의 폐지와 자신의 권리 구제를 위하여 국내, 국외에서 법적 노력을 계속해 왔다. 많은 사정들이 드러난 지금의 상황에서 보건대, 원고의 그러한 노력이 민사법적 관점에서는 다소 미흡한 점들이 있기는 하나, 최소한 원고가 결코 권리 위에 잠자고 있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위와 같은 원고를 보호할 필요성은 매우 크다. 반면, 피고나 울산광역시교육청은 이 사건 요구 바로 다음 해인 2010년부터 더 이상 원어민 영어보조교사들에 대하여 HIV 검사 결과를 요구하지 않았는바, 피고 스스로 이미 이 사건 요구에 부당한 점이 있다고 판단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피고는 원고의 조치에 대하여 다투기만 할 뿐 현재까지도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그러한 피고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여 채무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다. 따라서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
4. 손해배상의 범위에 관한 판단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현실적으로 손해가 발생한 때에 성립하는 것이고, 현실적으로 손해가 발생하였는지 여부는 사회통념에 비추어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대법원 2004. 11. 26. 선고 2003다58959 판결 참조).
위 각 증거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실 또는 사정을 종합하여, 이 사건 요구로 인한 피고가 배상해야 할 원고의 소극적 손해를 2,400만 원, 정신적 손해를 6,000,100원으로 인정한다.
즉, 원고는 원고 및 교육감의 계약 갱신 의사, 원고의 근무 성적 등에 비추어 2009년 울산광역시교육청과 사이에 고용계약을 갱신할 것이 거의 확실하였다. 그런데 원고는 피고 소속 공무원들 또는 울산광역시교육청 소속 공무원들의 위법한 이 사건 요구로 인하여 계약 갱신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 결과 그에 따른 급여 2,400만 원을 얻지 못하는 손해를 입었다. 그리고 원고가 그 과정에서 정신적 고통을 입었음도 인정할 수 있는바, 앞서 본 사건의 경위와 이 사건 요구의 위법성 정도 등에 비추어 위자료는 원고가 구하는 바와 같이 6,000,100원으로 정함이 타당하다.
따라서 피고는 원고에게 합계 30,000,100원(= 24,000,000원 + 6,000,100원) 및 이에 대하여 소장 부본 송달 다음 날인 2018. 6. 20.부터 2019. 5. 31.까지 개정 전 소송촉진 등에 관한 법령에 따라 연 15%,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개정 후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령상 연 12%의 비율에 의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5. 결론
원고의 청구를 위 인정 범위 내에서 받아들인다.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