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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13. 7. 12. 선고 2006다17553 판결

[손해배상(기)][미간행]

판시사항

[1] 국제재판관할의 결정 기준 및 물품을 제조·판매하는 제조업자에 대한 제조물책임소송에서 손해발생지 법원에 국제재판관할권이 있는지 판단하는 방법

[2] 구 섭외사법 제13조 제1항 에서 정한 불법행위에서 ‘그 원인된 사실이 발생한 곳’의 의미

[3] 제조물책임의 대상이 되는 제조물의 의미 및 특정 소비자와의 공급계약에 따라 그 소비자에게 직접 납품되어 사용되는 것이 제조물에 포함되는지 여부(적극)

[4] 제조물책임을 부담하는 제조업자의 의미 및 정부와의 공급계약에 의해 정부가 제시한 제조지시에 따라 제조물을 제조·판매한 경우에도 제조물의 결함에 대하여 제조물책임을 부담하는지 여부(적극)

[5] 인체에 유해한 독성물질이 혼합된 화학제품을 설계·제조하는 제조업자가 부담하는 위험방지의무의 내용 및 제조업자가 위 의무를 위반한 채 생명·신체에 위해를 발생시킬 위험이 있는 화학제품을 설계하여 그대로 제조·판매한 경우, 그 화학제품에 결함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원칙적 적극)

[6] 갑 등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이 을 외국법인 등에 의해 제조되어 베트남전에서 살포된 고엽제 때문에 염소성여드름 등 각종 질병이 발생하였다며 을 법인 등을 상대로 제조물책임 등에 따른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에서, 참전군인들 중 일부가 고엽제의 TCDD에 노출되어 특이성 질환인 염소성여드름이 발생하는 손해를 입었다고 본 원심판단을 정당하다고 한 사례

[7] 특정 위험인자와 비특이성 질환 사이에 역학적 상관관계가 인정되는 경우, 어느 개인이 위험인자에 노출된 사실과 비특이성 질환에 걸린 사실의 증명만으로 양자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만한 개연성이 증명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소극) 및 이 경우 개연성을 증명하는 방법

[8] 갑 등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이 을 외국법인 등에 의해 제조되어 베트남전에서 살포된 고엽제 때문에 당뇨병 등 각종 질병에 걸렸다며 을 법인 등을 상대로 제조물책임 등에 따른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에서, 참전군인들 중 일부가 고엽제의 TCDD에 노출되어 비특이성 질환인 당뇨병 등 질병이 발생하는 손해를 입었다고 본 원심판결에 역학적 인과관계와 개연성 등에 관한 법리오해 등 위법이 있다고 한 사례

[9] 민법 제766조 제1항 에서 정한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의 의미와 판단 기준 및 피해자 등이 ‘손해를 안 시기’에 대한 증명책임의 소재(=소멸시효 완성의 이익을 주장하는 자)

[10] 가해행위와 손해의 발생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있는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채권의 경우, 민법 제766조 제2항 에서 정한 장기소멸시효의 기산점이 되는 ‘불법행위를 한 날’의 의미 및 ‘객관적·구체적으로 손해가 발생한 시기’에 관한 증명책임의 소재(=소멸시효의 이익을 주장하는 자)

[11] 갑 등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이 베트남전에서 살포된 고엽제 때문에 염소성여드름 등 질병에 걸렸다며 고엽제 제조회사인 을 외국법인 등을 상대로 제조물책임 등에 따른 손해배상을 구하자, 을 법인 등이 소멸시효 항변을 한 사안에서, 일부 참전군인들에 대한 소멸시효 항변은 권리남용에 해당하지만, 고엽제후유증환자로 등록한 날부터 3년이 경과한 후에 가압류신청 또는 소를 제기한 일부 참전군인들에 대한 소멸시효 항변은 권리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 사례

[12]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가해행위와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비율적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소극)

원고(선정당사자), 상고인 겸 피상고인

원고 1 외 5인 (소송대리인 변호사 백영엽)

피고, 피상고인 겸 상고인

다우 케미칼 컴퍼니 외 1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충정 외 2인)

주문

1. 원심판결의 피고들 패소 부분 중 원심판결 별지 제3목록 기재 선정자 4, 163, 456, 600, 769, 897, 950, 976, 1,162, 1,277, 1,362, 1,422, 1,477, 1,613, 1,933, 2,061에 관한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2. 원고(선정당사자)들의 상고와 피고들의 나머지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3. 상고비용 중 제1항 기재 선정자들과 피고들 사이에 생긴 부분은 상고인들 각자가 부담한다.

이유

상고이유(상고이유서 제출기간 경과 후에 제출된 상고이유보충서는 상고이유를 보충하는 범위 내에서)에 대하여 판단한다.

1. 피고들의 상고이유에 대하여

가. 국제재판관할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점

국제재판관할은 당사자 간의 공평, 재판의 적정, 신속 및 경제를 기한다는 기본이념에 따라 결정하여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소송당사자들의 공평, 편의 그리고 예측가능성과 같은 개인적인 이익뿐만 아니라 재판의 적정, 신속, 효율 및 판결의 실효성 등과 같은 법원 내지 국가의 이익도 함께 고려하여야 하고, 이러한 다양한 이익 중 어떠한 이익을 보호할 것인지는 개별 사건에서 법정지와 당사자 사이의 실질적 관련성 및 법정지와 분쟁이 된 사안 사이의 실질적 관련성을 객관적인 기준으로 삼아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 대법원 2005. 1. 27. 선고 2002다59788 판결 등 참조). 특히 물품을 제조·판매하는 제조업자에 대한 제조물책임 소송에서 손해발생지의 법원에 국제재판관할권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경우에는 제조업자가 그 손해발생지에서 사고가 발생하여 그 지역의 법원에 제소될 것임을 합리적으로 예견할 수 있을 정도로 제조업자와 손해발생지 사이에 실질적 관련성이 있는지를 고려하여야 한다 ( 대법원 1995. 11. 21. 선고 93다39607 판결 등 참조).

원심은, 선정자들은 제2차 베트남전쟁(이하 ‘베트남전’이라 한다) 동안 우리나라 군대의 구성원으로 베트남에 파병되어 복무한 베트남전 참전군인들 또는 그 유족들로서 모두 국내에 거주하는 우리나라 국민인 점, 선정자들은 베트남전 동안 복무지역에 살포된 고엽제에 노출되어 귀국한 후 우리나라에서 질병이 발생하였다고 주장하며 그 당시 고엽제를 제조·판매한 피고들을 상대로 제조물책임을 묻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한 점, 피고들은 우리나라 군인들이 베트남전에 참전하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베트남에서 살포된 고엽제에 노출된 우리나라 군인들이 귀국한 후 질병이 발생할 경우 우리나라에서 피고들을 상대로 제조물책임을 묻는 소를 제기할 수 있음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던 점,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의 베트남전 복무 및 그 발생 질병에 관한 자료들이 모두 우리나라에 있고 피고들이 우리말로 번역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외국 자료의 분량에 비하여 월등히 많으며, 손해액 산정에 필요한 자료 또한 우리나라에서 수집하는 것이 편리한 점, 우리나라는 베트남전 참전국가로서 참전 중의 행위로 발생한 우리나라 군대 구성원의 질병에 관한 분쟁에 관하여 정당한 이익이 있는 점 등 여러 사정을 참작하여, 분쟁이 된 사안의 손해발생지 겸 당사자의 생활근거지인 우리나라는 이 사건의 사안 및 당사자와 실질적 관련성이 있으므로, 우리나라 법원은 이 사건 소에 관하여 국제재판관할권을 가진다고 판단하였다.

앞서 본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은 국제재판관할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없다.

나. 준거법에 관한 법리오해의 점

구 섭외사법(2001. 4. 7. 법률 제6465호로 전문 개정되기 전의 것) 제13조 제1항 에 의하면, 외국적 요소가 있는 섭외사건에서 불법행위로 인하여 생긴 채권의 성립 및 효력은 그 원인이 된 사실이 발생한 곳의 법에 의하여 판단하여야 하고, 불법행위에서 그 원인이 된 사실이 발생한 곳에는 불법행위를 한 행동지뿐만 아니라 손해의 결과 발생지도 포함된다 ( 대법원 1994. 1. 28. 선고 93다18167 판결 등 참조).

우리나라는 분쟁의 대상인 이 사건 손해의 발생지일 뿐만 아니라, 앞서 본 바와 같이 우리나라 법원이 이 사건 소에 관하여 국제재판관할권을 가지는 이상, 우리나라의 법은 이 사건 제조물책임에 관한 준거법이 될 수 있다.

같은 취지의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은 준거법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없다.

다. 제조물책임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점

(1) 고엽제가 제조물인지 여부

제조물책임의 대상이 되는 제조물은 원재료에 설계·가공 등의 행위를 가하여 새로운 물품으로 제조 또는 가공된 동산으로서 상업적 유통에 제공되는 것을 말하고, 여기에는 여러 단계의 상업적 유통을 거쳐 불특정 다수 소비자에게 공급되는 것뿐만 아니라 특정 소비자와의 공급계약에 따라 그 소비자에게 직접 납품되어 사용되는 것도 포함된다 .

원심이 같은 취지에서 고엽제는 피고들이 미국 정부와의 개별적 공급계약에 따라 대량으로 제조하여 미국 정부에 판매하고 실질적으로는 베트남전에 참전한 불특정 다수의 군인들에 의하여 사용된 물품으로서 제조물책임의 적용 대상이 되는 제조물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은 제조물책임의 적용 대상이 되는 제조물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없다.

(2) 제조물책임을 부담하는 제조업자에 해당하는지 여부

제조물책임을 부담하는 제조업자는 제조물의 제조·가공 또는 수입을 업으로 하는 자 또는 제조물에 성명·상호·상표 기타 식별 가능한 기호 등을 사용하여 자신을 제조업자로 표시하거나 제조업자로 오인시킬 수 있는 표시를 한 자를 말하고, 정부와의 공급계약에 따라 정부가 제시한 제조지시에 따라 제조물을 제조·판매한 경우에도 제조물에 결함이 발생한 때에는 제조물책임을 부담한다 .

원심이 피고들이 실제로 고엽제를 제조하여 미국 정부에 판매한 이상 제조물책임에서 말하는 제조업자의 지위를 가진다고 판단한 것은 위와 같은 법리에 따른 것으로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은 제조물책임의 제조업자 지위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없다.

(3) 고엽제의 제조물로서의 결함 유무

(가) 제조업자가 인체에 유해한 독성물질이 혼합된 화학제품을 설계·제조하는 경우, 그 화학제품의 사용 용도와 방법 등에 비추어 사용자나 그 주변 사람이 그 독성물질에 계속적·반복적으로 노출될 수 있고, 그 독성물질이 가진 기능적 효용은 없거나 극히 미미한 반면, 그 독성물질에 계속적·반복적으로 노출됨으로써 사용자 등의 생명·신체에 위해가 발생할 위험이 있으며 제조업자가 사전에 적절한 위험방지조치를 취하기 전에는 사용자 등이 그 피해를 회피하기 어려운 때에는, 제조업자는 고도의 위험방지의무를 부담한다. 즉 이러한 경우 제조업자는 그 시점에서의 최고의 기술 수준으로 그 제조물의 안전성을 철저히 검증하고 조사·연구를 통하여 발생 가능성 있는 위험을 제거·최소화하여야 하며, 만약 그 위험이 제대로 제거·최소화되었는지 불분명하고 더욱이 실제 사용자 등에게 그 위험을 적절히 경고하기 곤란한 사정도 존재하는 때에는, 안전성이 충분히 확보될 정도로 그 위험이 제거·최소화되었다고 확인되기 전에는 그 화학제품을 유통시키지 말아야 한다 .

따라서 제조업자가 이러한 고도의 위험방지의무를 위반한 채 생명·신체에 위해를 발생시킬 위험이 있는 화학제품을 설계하여 그대로 제조·판매한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화학제품에는 사회통념상 통상적으로 기대되는 안전성이 결여된 설계상의 결함이 존재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

(나)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① 고엽제의 원료인 2,4,5-T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그 전단계의 물질로 TCP(trichlorophenol)를 생산하여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독성물질인 2,3,7,8-TCDD(2,3,7,8-tetrachlorodibenzo-p-dioxin, 이하 ‘TCDD’라 한다)가 부산물로 생성되고, TCDD는 제초효과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불순물로서, 2,4,5-T 제조공정에서 제거되지 않으면 고엽제도 TCDD에 오염되는 사실, ② 피고들은 고엽제를 제조하여 미국 정부에 판매할 당시 TCDD가 함유된 고엽제에 노출될 경우 인체에 유해한 결과를 발생시킬 위험이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고, 특히 피고 다우 케미컬 컴퍼니(이하 ‘피고 다우’라 한다)는 당시 1ppm 수준의 TCDD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염소성여드름의 발생 등 건강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동물실험에 근거하여 1ppm 이하의 TCDD도 인체에 유해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의심하였던 사실, ③ 또한 피고들은 자신들이 베트남전 동안 제조·판매한 고엽제가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의 복무지역이나 그 인근에 살포되어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이 TCDD에 계속적·반복적으로 노출될 수 있다는 사정을 알거나 알 수 있었고, 미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고엽제 용기에 TCDD의 인체 유해성이나 주의사항에 관하여 경고 표시를 하지 아니함으로써 이를 알지 못한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이 TCDD에 노출될 경우 위험을 적절히 회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사정도 알거나 알 수 있었던 사실, ④ 피고 다우는 1965년 초경 2,4,5-T에 포함된 TCDD 농도를 1ppm 이하 수준까지 탐지할 수 있는 가스색층분석방법을 개발하고, 2,4,5-T 내 TCDD의 농도를 1ppm 정도 수준까지 낮추도록 하는 제조명세서를 수립하였으며, 당시 2,4,5-T의 생산과정에서 폐수처리공정을 통하여 TCDD를 응축·제거함으로써 TCDD 오염의 위험성을 급격히 줄이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사실, ⑤ 피고 몬산토 컴퍼니(이하 ‘피고 몬산토’라 한다)는 고엽제 제조·판매 당시 2,4,5-T 내 TCDD의 농도에 관한 제조 기준은 세우지 않았으나, 당시 논의되고 있던 TCDD의 유해성에 관한 정보를 접하였고, 피고 다우가 사용하던 가스색층분석방법의 존재를 알았으며, 2,4,5-T 생산과정에서 폐수처리공정 등을 추가함으로써 TCDD 오염의 위험성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는 점도 알았던 사실, ⑥ 한편 피고들이 고엽제를 미국 정부에 납품할 당시 또다른 미국 내 제초제 제조회사인 허큘리스(Hercules)는 피고들과는 다른 제조공정을 채택함으로써 2,4,5-T 내 TCDD가 0.1ppm 이하로 함유된 고엽제를 생산한 사실 등을 알 수 있다.

(다) 위 사실관계를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보면, 피고들에게는 베트남전 당시의 최고의 기술 수준으로 TCDD의 인체 유해 가능성과 고엽제의 안전성을 철저히 검증하고 조사·연구를 통하여 발생 가능성 있는 위험을 제거·최소화하는 한편, 그 안전성이 충분히 확보될 정도로 그 위험이 제거·최소화되었다고 확인되기 전에는 고엽제를 유통시키지 말아야 할 고도의 위험방지의무가 있었음에도, 이러한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아니한 채 단지 2,4,5-T 내 TCDD 함량 기준을 1ppm을 넘지 않도록 설정하거나 그러한 기준조차 설정하지 않은 채로 고엽제를 제조하여 이를 유통시켰으므로, 피고들이 베트남전 동안 제조·판매한 고엽제에는 인체의 안전을 위한 고도의 위험방지의무를 위반함으로써 사회통념상 통상적으로 기대되는 안전성을 결여한 설계상의 결함이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

원심의 이유설시에 다소 미흡하거나 적절하지 아니한 부분이 없지 아니하나, 피고들이 제조·판매한 고엽제에 설계상의 결함이 있다고 본 결론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제조물의 결함이나 증명책임의 소재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변론주의를 위반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 등이 있다고 할 수 없다.

(4) 개발위험을 이유로 한 면책 주장

제조업자가 당해 제조물을 공급한 때의 과학·기술 수준으로 결함의 존재를 발견할 수 없었을 때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제조업자에게 결과 발생에 대한 예견가능성이 없다고 보아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한 책임을 지우지 아니할 수 있다.

그러나 피고들이 앞서 본 바와 같이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이 고엽제에 함유된 독성물질인 TCDD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어 생명·신체에 유해한 결과가 발생할 위험이 있음을 예견하거나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그 위험을 방지할 고도의 주의의무를 위반하였다고 인정되는 이상, 피고들이 고엽제를 제조·판매한 때의 과학·기술 수준으로 고엽제의 결함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이를 전제로 하는 피고들의 면책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원심의 이유설시에 다소 적절하지 아니하거나 미흡한 점이 없지 아니하나, 피고들의 개발위험을 이유로 한 면책 주장을 배척한 결론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은 주의의무 위반과 면책에 관한 법리오해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없다.

(5) 법령 기준의 준수를 이유로 한 면책 주장

원심은, 피고들의 고엽제 제조·판매 당시 미국의 법령에 2,4,5-T나 이를 원료로 하는 고엽제의 TCDD 함유량에 관한 어떠한 기준도 존재하지 아니하였고, 고엽제 공급계약과 그 제조명세서에도 TCDD의 함유 여부나 그 정도에 관한 기준이 제시된 바 없어 고엽제의 결함이 미국의 방위물자생산법이나 그에 근거하여 체결된 고엽제 공급계약 등의 준수로 인하여 발생하였다고 볼 수 없으며, 오히려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를 충분히 취하지 아니한 피고들의 잘못으로 발생하게 된 것이라고 보아 법령 기준의 준수를 이유로 한 피고들의 면책 주장을 배척하였다.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은 주의의무 위반과 면책 등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없다.

라. 인과관계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점

(1) 고엽제 노출과 특이성 질환인 염소성여드름과의 인과관계 유무

원심은 그 채용 증거를 종합하여, 베트남전에 참전한 관련 선정자들에게 베트남전 복무 종료 후 염소성여드름이 발생한 사실, 염소성여드름은 고엽제에 함유된 TCDD에 노출될 경우 발생하는 이른바 ‘특이성 질환’인 사실 등을 인정하였다.

나아가 원심은 고엽제에 함유된 TCDD에 대한 개개인의 신체적 감수성이 그 발현 여부와 형태에 미치는 영향, TCDD에 노출된 후 염소성여드름이 발병하는 기간, 만성적인 염소성여드름의 발생 가능성, 관련 선정자들이 베트남전 복무 종료 후 염소성여드름이 발생하는 데 걸린 기간, 우리나라에서의 염소성여드름 발생 빈도, 우리나라의 폐기물 소각량이나 소각 처리율과 폐기물처리업체 근로자나 일반주민에 대한 혈청 TCDD 농도에 관한 조사 결과, 관련 선정자들이 베트남전 복무 후 귀국하여 국내에서 환경적으로 TCDD에 노출되었을 가능성 등을 종합하여, 관련 선정자들이 베트남전 복무기간 동안 고엽제에 함유된 TCDD에 노출되어 특이성 질환인 염소성여드름이 발생하였을 개연성이 인정되고, 달리 그 개연성을 뒤집을 만한 반증이 없으므로, 관련 선정자들은 베트남전 동안 복무지역 등에 살포되거나 잔류하는 고엽제의 TCDD에 노출되어 염소성여드름이 발생하는 손해를 입게 되었다고 판단하였다.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인과관계 및 개연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 등이 있다고 할 수 없다.

(2) 고엽제 노출과 비특이성 질환과의 인과관계 유무

(가) 원심은, 임상의학이나 병리학적으로 고엽제에 함유된 TCDD가 인체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작용기전에 관하여 명확히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에 관한 인체실험이 가능한 것도 아니므로, 이러한 경우에는 고엽제에 노출된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관찰하여 TCDD와 질병 발생 사이에 역학적으로 인과관계가 있음을 밝히고 이러한 역학적 인과관계를 바탕으로 개별 피해자에게 TCDD가 도달한 후 질병이 발생한 사실로부터 개별 피해자의 질병이 TCDD 노출로 인하여 발생하였을 상당한 개연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전제하였다.

나아가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사정을 들어, 고엽제 노출과 각종 질병 사이의 연관성(association)을 조사한 미국 국립과학원 보고서는 전문성, 종합성, 과학성, 객관성 등의 측면에서 신뢰할 수 있다고 보고, 위 보고서에서 고엽제 노출과 원인적 연관성을 인정할 증거가 충분하다(sufficient)고 분류한 질병 및 고엽제 노출과 원인적 연관성을 인정할 증거가 시사적이지만 제한적(suggestive but limited)이라고 분류한 질병 중 ① 비호지킨임파선암, ② 연조직육종암, ③ 염소성여드름, ④ 만발성피부포르피린증, ⑤ 호지킨병, ⑥ 폐암, ⑦ 후두암, ⑧ 기관암, ⑨ 다발성골수종, ⑩ 전립선암, ⑪ 2형당뇨병(위 11개 질병에서 ‘염소성여드름’을 제외한 나머지 질병을 ‘이 사건 비특이성 질환’이라 한다)은 고엽제 노출과 역학적 인과관계를 인정하기에 충분하고, 우리나라 군부대의 베트남에서의 작전지역과 임무, 관련 선정자들의 베트남전 복무기간 및 복무지역, 유해물질이 포함된 고엽제의 살포지역, 살포량 및 살포방법, TCDD의 환경 잔류, 인체흡수 및 축적경로 등을 종합하여, 고엽제가 살포되기 시작한 1965. 1.경부터 우리나라 군대가 철수한 1973. 3.경 사이에 베트남전에서 복무한 관련 선정자들은 그 복무 당시 복무지역과 인근 지역에 살포된 고엽제의 TCDD 또는 그 복무 이전의 고엽제 살포로 그 지역에 잔류하는 TCDD에 직·간접적인 경로를 통하여 노출되었을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원심은 관련 선정자들이 베트남전에서 TCDD에 노출되어 각 보유 질병에 걸렸을 상당한 개연성이 있음을 원고들이 증명한 이상, 피고들이 반증으로 관련 선정자들이 베트남에 복무할 당시 노출된 TCDD가 각 보유 질병을 발생하게 할 정도의 농도가 아니라거나, 그 질병에 관하여 실제 TCDD에 노출된 베트남전 참전군인의 발병률이 TCDD에 노출되지 아니한 집단과 유사하거나 그보다 낮다는 점을 증명하거나, 또는 관련 선정자들의 각 보유 질병이 전적으로 다른 원인에 의하여 발생한 것임을 증명하여야만 그 책임을 면할 수 있는데,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리하여 원심은 베트남전에 참전한 관련 선정자들이 피고들에 의하여 제조되고 미국 정부에 판매되어 베트남전에서 살포된 고엽제의 TCDD에 노출됨으로 인하여 각 보유 질병이 발생하는 손해를 입게 되었다고 판단하였다.

(나) 그러나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수긍하기 어렵다.

1) 역학(역학)이란 집단현상으로서의 질병의 발생, 분포, 소멸 등과 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여 여러 자연적·사회적 요인과의 상관관계를 통계적 방법으로 규명하고 그에 의하여 질병의 발생을 방지·감소시키는 방법을 발견하려는 학문이다. 역학은 집단현상으로서의 질병에 관한 원인을 조사하여 규명하는 것이고 그 집단에 소속된 개인이 걸린 질병의 원인을 판명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어느 위험인자와 어느 질병 사이에 역학적으로 상관관계가 있다고 인정된다 하더라도 그로부터 그 집단에 속한 개인이 걸린 질병의 원인이 무엇인지가 판명되는 것은 아니고, 다만 어느 위험인자에 노출된 집단의 질병 발생률이 그 위험인자에 노출되지 않은 다른 일반 집단의 질병 발생률보다 높은 경우 그 높은 비율의 정도에 따라 그 집단에 속한 개인이 걸린 질병이 그 위험인자로 인하여 발생하였을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를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

한편 특정 병인에 의하여 발생하고 원인과 결과가 명확히 대응하는 ‘특이성 질환’과 달리, 이른바 ‘비특이성 질환’은 그 발생 원인 및 기전이 복잡다기하고, 유전·체질 등의 선천적 요인, 음주, 흡연, 연령, 식생활습관, 직업적·환경적 요인 등 후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하는 질환이다. 이러한 비특이성 질환의 경우에는 특정 위험인자와 그 비특이성 질환 사이에 역학적으로 상관관계가 있음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그 위험인자에 노출된 개인 또는 집단이 그 외의 다른 위험인자에도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항시 존재하는 이상, 그 역학적 상관관계는 그 위험인자에 노출되면 그 질병에 걸릴 위험이 있거나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데 그칠 뿐, 그로부터 그 질병에 걸린 원인이 그 위험인자라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비특이성 질환의 경우에는 특정 위험인자와 비특이성 질환 사이에 역학적 상관관계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어느 개인이 그 위험인자에 노출되었다는 사실과 그 비특이성 질환에 걸렸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만으로 양자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만한 개연성이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 이러한 경우에는 그 위험인자에 노출된 집단과 노출되지 않은 다른 일반 집단을 대조하여 역학조사를 한 결과 그 위험인자에 노출된 집단에서 그 비특이성 질환에 걸린 비율이 그 위험인자에 노출되지 않은 집단에서 그 비특이성 질환에 걸린 비율을 상당히 초과한다는 점을 증명하고, 그 집단에 속한 개인이 위험인자에 노출된 시기와 노출 정도, 발병시기, 그 위험인자에 노출되기 전의 건강상태, 생활습관, 질병 상태의 변화, 가족력 등을 추가로 증명하는 등으로 그 위험인자에 의하여 그 비특이성 질환이 유발되었을 개연성이 있다는 점을 증명하여야 한다 .

2) 원심판결 이유를 위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본다.

대부분의 관련 선정자들이 걸린 당뇨병 등 이 사건 비특이성 질환은 고엽제에 포함된 TCDD 노출에 의하여만 생기는 특이성 질환이 아니라, 다른 여러 선천적·후천적 요인들에 의하여 생길 수 있는 질환이다.

원심이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근거로 삼은 미국 국립과학원 보고서는 베트남전에 참전하였다가 고엽제에 노출되어 여러 질병에 걸렸다고 주장하는 미국 참전군인들에 대하여 보훈정책적 목적에서 보상과 지원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하여 제정된「1991년 고엽제법(Agent Orange Act of 1991, Public Law 102-4)」에 따라 미국 연방의회와 보훈처에 관련 자료를 제출하기 위하여 작성된 것이다.

위 보고서는 고엽제 노출과 이 사건 비특이성 질환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점, 즉 고엽제 노출과 이 사건 비특이성 질환의 발병 위험의 증가 사이에 통계학적 연관성(statistical association)이 있다는 점만을 나타낼 뿐, 양자 사이에 인과관계(causation)가 존재함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나아가 여기서 말하는 통계학적 연관성은 일반적인 인구군에서 고엽제 노출과 그 결과 사이의 연관성을 나타내는 것일 뿐, 어느 개인이 걸린 질환이 고엽제 노출과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나 고엽제 노출로 인하여 유발될 가능성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밝히고 있다.

또한 위 보고서는 베트남전에 참전한 우리나라 군인이나 미군을 특정 집단으로 설정한 후 다른 일반 집단과 대조하여 직접 역학조사를 실시한 것이 아니라, 주로 산업적·환경적으로 다이옥신에 노출된 인구군을 상대로 한 기존의 논문들을 바탕으로 그 역학적 연구성과를 분석하여 고엽제 노출과 이 사건 비특이성 질환 사이에 통계학적 연관성이 있음을 인정한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까닭에 위 보고서는 이 사건 비특이성 질환이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에게서 발병한 비율이 고엽제에 노출되지 아니한 일반 사람들에게서 발병한 비율보다 더 높은지 여부 및 높으면 얼마나 더 높은지를 규명할 수 없고, 고엽제 노출로 인하여 이 사건 비특이성 질환의 발병 위험이 얼마나 증가하는지를 밝힐 수 없다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단지 고엽제 노출과 이 사건 비특이성 질환 사이에 통계학적 연관성이 있다는 사정과 베트남전에 참전하였던 관련 선정자들이 이 사건 비특이성 질환에 걸렸다는 사정만으로는 관련 선정자들 개개인의 이 사건 비특이성 질환이 베트남전 당시 살포된 고엽제에 노출됨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고 인정할 만한 개연성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이는 관련 선정자들이 베트남전 복무 당시 그 복무지역과 인근 지역에 살포된 고엽제의 TCDD에 노출되거나 그 복무 이전의 고엽제 살포로 그 지역에 잔류하는 TCDD에 직·간접적인 경로를 통하여 노출되었을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는 사정을 보태어 보더라도 달라지지 아니한다.

3) 그런데도 원심은 이와 달리 그 판시와 같은 사정만으로 관련 선정자들이 베트남전 복무 당시 TCDD 노출로 인하여 이 사건 비특이성 질환에 걸렸을 개연성이 인정되고, 그 개연성을 뒤집을 만한 피고들의 반증이 없는 이상, 관련 선정자들이 피고들이 제조·판매한 고엽제의 TCDD에 노출됨으로 인하여 이 사건 비특이성 질환이 발생하는 손해를 입게 되었다고 판단하였다.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에는 역학적 인과관계와 개연성에 관한 법리 및 증명책임의 소재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이 점에 관한 상고이유의 주장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

마. 소멸시효 항변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점

(1) 민법 제766조 제1항 에서 정한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는지 여부

(가) 민법 제766조 제1항 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간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소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이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손해 및 가해자를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한 날을 의미하며, 그 인식은 손해발생의 추정이나 의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손해의 발생사실뿐만 아니라 가해행위가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는 사실, 즉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에 대한 인식으로서 위법한 가해행위의 존재, 손해의 발생 및 가해행위와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 등이 있다는 사실까지 안 날을 뜻한다 ( 대법원 2011. 3. 10. 선고 2010다13282 판결 등 참조). 그리고 피해자 등이 언제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을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한 것으로 볼 것인지는 개별 사건의 여러 객관적 사정을 참작하고 손해배상청구가 사실상 가능하게 된 상황을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인정하여야 하고 ( 대법원 2002. 6. 28. 선고 2000다22249 판결 등 참조), 손해를 안 시기에 대한 증명책임은 소멸시효 완성으로 인한 이익을 주장하는 자에게 있다 ( 대법원 2001. 9. 14. 선고 99다42797 판결 등 참조).

(나)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사정을 종합하여,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이 국가를 상대로 고엽제 노출로 인한 피해보상 등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은 고엽제 노출로 인한 손해에 관하여 적절한 근거를 가지고 한 것이 아니므로, 그 무렵 고엽제 노출로 인한 손해에 대하여 손해배상청구권의 행사를 가능하게 할 정도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인식이 있었다고 볼 수 없고, 그들이 구「고엽제후유의증환자 진료 등에 관한 법률」(1995. 12. 30 법률 제514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또는「고엽제후유의증환자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이하 두 법률을 구분하지 않고 ‘고엽제법’이라 한다)에 따라 고엽제후유증환자 판정을 받고 그에 관한 등록을 마칠 무렵 고엽제 노출과 보유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에 관하여 적절한 근거를 가지게 됨으로써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원심판결 별지 제3목록 기재 선정자들 중 고엽제후유증환자 등록을 마친 날부터 3년이 경과하기 전에 피고들의 특허권 중 일부에 대하여 가압류를 신청하거나 이 사건 소를 제기한 선정자들은 민법 제766조 제1항 에서 정한 단기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앞서 본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이 베트남전에서 고엽제에 노출되어 염소성여드름이 발병한 선정자들 중 고엽제후유증환자 등록일부터 위 가압류신청일(1999. 5. 4.)이나 이 사건 소제기일(1999. 9. 30.)까지 민법 제766조 제1항 에서 정한 3년의 소멸시효기간이 경과한 선정자들과 원심판결 별지 제3목록 기재 선정자 1,222, 1,243, 1,882를 제외한 나머지 선정자들에 대하여 위 규정에 따른 피고들의 소멸시효 항변을 위와 같은 이유로 배척한 조치는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은 민법 제766조 제1항 에서 정한 단기소멸시효의 기산점 및 그 증명책임의 소재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없다.

다만 원심은 위 선정자 1,222, 1,243, 1,882가 염소성여드름 발병 후 고엽제후유증환자로 각 등록한 날이 1988. 3. 18.과 1972. 6. 1. 및 1972. 1. 1.이라고 인정하였으나, 고엽제법이 1993. 3. 10. 법률 제4547호로 제정되어 1993. 5. 11.부터 시행된 점에 비추어 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고엽제후유증환자 등록일에 관한 사실인정은 잘못되었음이 명백하고, 오히려 기록에 의하면 한국보훈병원장이 1994. 1. 11.경 천안보훈지청에 위 선정자 1,222의 염소성여드름 검진 결과를 통보하고, 광주보훈병원장이 1995. 3. 9.경 국가보훈처장에게 위 선정자 1,243에 대한 염소성여드름 검진 결과를 통보하였으며, 부산보훈병원장이 1993년 8월경 진주보훈지청에 위 선정자 1,882에 대한 염소성여드름 검진 결과를 통보한 사실을 알 수 있는 점에 비추어, 위 각 통보일에 즈음하여 위 선정자들에 대한 고엽제후유증환자 등록이 이루어졌을 여지가 있다.

따라서 원심으로서는 위 선정자들이 염소성여드름 발병 후 고엽제후유증환자로 등록한 날이 언제인지와 그 등록일부터 3년의 기간 내에 권리행사를 하였는지 여부를 심리하여 위 선정자들의 피고들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시효로 소멸하였다고 볼 수 있는지를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이와 달리 판단한 이 부분 원심판결에는 사실을 오인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하여 소멸시효 항변에 관한 판단을 그르침으로써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이 부분에 관한 상고이유의 주장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

(2) 민법 제766조 제2항 에서 정한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는지 여부

(가) 민법 제766조 제2항 에 의하면, 불법행위를 한 날부터 10년을 경과한 때에도 손해배상청구권이 시효로 소멸한다고 규정되어 있는바, 가해행위와 이로 인한 손해의 발생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있는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의 경우, 위와 같은 장기소멸시효의 기산점이 되는 ‘불법행위를 한 날’은 객관적·구체적으로 손해가 발생한 때, 즉 손해의 발생이 현실적인 것으로 되었다고 할 수 있을 때를 의미하고, 그 발생 시기에 대한 증명책임은 소멸시효의 이익을 주장하는 자에게 있다 ( 대법원 1992. 5. 22. 선고 91다41880 판결 등 참조).

(나) 원심은,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한 소멸시효의 기산점은 소멸시효의 이익을 주장하는 피고들에게 그 증명책임이 있는데, 선정자들의 진술서 등에 의하여 발병시점이 밝혀져 그 시점부터 선정자들 일부가 피고들의 특허권 중 일부에 대하여 가압류를 선정자 1,105 1999. 5. 4.이나 이 사건 소를 제기한 1999. 9. 30.까지 10년이 경과하였다고 인정되는 질병을 제외하고는 질병 발생 시기에 대한 피고들의 증명이 없다는 이유로, 그 부분에 대한 피고들의 민법 제766조 제2항 에 따른 소멸시효 항변을 배척하였다.

앞서 본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이 염소성여드름 발병 후 위 가압류신청일이나 이 사건 소제기일까지 민법 제766조 제2항 에서 정한 10년의 소멸시효기간이 경과한 선정자들(이하 ‘장기소멸시효기간 경과 선정자들’이라 한다)을 제외한 나머지 선정자들에 대하여 위 규정에 따른 피고들의 소멸시효 항변을 위와 같은 이유로 배척한 조치는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은 민법 제766조 제2항 에서 정한 장기소멸시효의 기산점 및 그 증명책임의 소재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없다.

(3) 소멸시효기간이 경과한 선정자들에 대한 소멸시효 항변이 권리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

(가)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고, 채무자가 그로부터 권리행사를 기대할 수 있는 상당한 기간 내에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였다면,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 대법원 2002. 10. 25. 선고 2002다32332 판결 , 대법원 2013. 5. 6. 선고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다만 위와 같이 신의성실의 원칙을 들어 시효 완성의 효력을 부정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의 달성, 입증곤란의 구제, 권리행사의 태만에 대한 제재를 그 이념으로 삼고 있는 소멸시효 제도에 대한 대단히 예외적인 제한에 그쳐야 할 것이므로, 위 권리행사의 ‘상당한 기간’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상 시효정지의 경우에 준하여 단기간으로 제한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개별 사건에서 매우 특수한 사정이 있어 그 기간을 연장하여 인정하는 것이 부득이한 경우에도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의 경우 그 기간은 아무리 길어도 민법 제766조 제1항 이 규정한 단기소멸시효기간인 3년을 넘을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대법원 2013. 5. 6. 선고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나)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고엽제 제조회사인 피고들이 고엽제에 함유된 독성물질인 TCDD에 의하여 생명·신체에 위해를 발생시킬 위험이 있다는 사정을 예견하거나 예견할 수 있음에도 위험방지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아니한 채 고엽제를 제조·판매하여 경제적 이익을 취한 점, 그 결과 베트남과 미국 정부의 파병 요청에 따라 베트남전에 참전한 우리나라 군인들이 아무런 잘못 없이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받게 된 점,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야 고엽제의 후유증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탓에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이 복무 종료 후 귀국하여 신체에 염소성여드름이 발생하였다 하더라도 그 이전에는 그것이 고엽제로 인하여 생긴 질병이라는 것을 가늠하기 어려웠던 점, 또한 염소성여드름은 일반적인 피부질환과 구별하기 어려워 의료기관에서 그 피부질환이 염소성여드름이라고 진단받고 그 질병이 고엽제와 관련성이 있다고 고지받기 전에는 고엽제에 노출됨으로써 자신이 어떠한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가 극히 곤란하였던 점, 베트남전 복무 종료 시부터 장기간이 경과한 후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하더라도 피고들이 그로 인하여 이 사건 소송에서 증거자료를 상실하는 등 방어권을 행사하는 데 지장을 받게 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오히려 이 사건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인과관계 등에 관한 과학적 연구성과물이 축적되어 온 점 등의 사정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정들과 그 밖에 원심이 판시한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보면, 장기소멸시효기간 경과 선정자들이 고엽제후유증환자로 등록하여 자신의 피부 질환이 염소성여드름에 해당하고 그것이 피고들이 제조·판매한 고엽제에 노출된 것과 관련이 있다는 점을 알게 됨으로써 피고들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존재에 관하여 인식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이들에게 객관적으로 피고들을 상대로 고엽제 피해와 관련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그러므로 장기소멸시효기간 경과 선정자들이 고엽제후유증환자로 등록한 후 상당한 기간 내에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하였다면, 피고들이 이들에 대하여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나아가 고엽제후유증환자로 등록한 후 위와 같이 가압류를 신청하였거나 이 사건 소를 제기한 선정자들 중 원심판결 별지 제3목록 기재 선정자 4, 163, 600, 769, 897, 950, 1,162, 1,277, 1,362, 1,933, 2,061의 경우에는, 베트남전 당시 살포된 고엽제가 미국에 소재하는 피고들에 의하여 제조·판매된 것이어서 국제재판관할과 준거법에 관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였고, 고엽제에 함유된 TCDD의 인체 유해성, 고엽제의 결함 등에 관한 증거자료의 상당수가 미국에 소재하고 있어, 위 나머지 선정자들 개개인이 고엽제후유증환자 등록 후 민법상 시효정지의 경우에 준하는 단기간 내에 피고들을 상대로 가압류신청을 하거나 소제기를 하는 등 권리행사를 하는 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던 점 등 매우 특수한 사정이 있었고, 이를 감안하면 위 선정자들은 피고들의 소멸시효 항변을 배제할 만한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행사를 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

따라서 원심의 이 부분 이유설시에 다소 적절하지 아니하거나 미흡한 점이 없지 아니하나, 위 선정자들에 대한 피고들의 소멸시효 항변을 배척한 결론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은 소멸시효 항변의 권리남용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없다.

(다) 그러나 원심이 원심판결 별지 제3목록 기재 선정자 32, 66, 114, 132, 160, 206, 226, 348, 351, 358, 373, 479, 513, 576, 627, 712, 808, 876, 1,009, 1,043, 1,062, 1,105, 1,126, 1,416, 1,471, 1,756, 1,765, 1,823, 1,883, 2,028, 2,180, 2,213, 2,319의 손해배상청구권 행사에 대하여도, 이들이 고엽제후유증환자로 등록할 때까지는 피고들을 상대로 고엽제 피해와 관련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할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장애사유가 있었다는 이유로 피고들의 소멸시효 항변이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한 부분은 그대로 수긍하기 어렵다.

원심판결 이유에 따르면, 위 선정자들은 모두 고엽제후유증환자로 등록한 날부터 3년이 경과한 후에 피고들의 특허권 중 일부에 대한 가압류를 신청하거나 그러한 가압류 신청 없이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고, 위 선정자들이 달리 그 이전에 권리행사를 하였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다.

이러한 사실관계를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보면, 위 선정자들은 고엽제후유증환자로 등록함으로써 피고들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존재를 인식하였고 그 손해배상청구권의 행사도 가능하게 되었다고 할 것이어서 객관적으로 권리행사를 기대하기 어려운 장애사유도 소멸하였다고 할 것인데, 그때부터 3년이 경과한 후에야 가압류를 신청하거나 가압류 신청 없이 이 사건 소를 제기하는 등 권리행사를 한 것이므로, 이들에 대한 피고들의 소멸시효 항변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와 달리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이유만으로 위 선정자들에 대한 소멸시효 항변이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으므로, 이 부분 원심판결에는 소멸시효 항변의 권리남용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고, 이는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하다. 이 점에 관한 상고이유의 주장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

바. 그 밖의 상고이유

(1) 미국법상의 정부계약자 항변에 관한 법리오해의 점

우리나라 법을 이 사건 준거법으로 인정하는 이상, 불법행위의 성립요건, 불법행위능력, 불법행위의 효력 등에 관한 사항들은 모두 우리나라 법에 의하여 판단하여야 하고, 그 책임의 면제사유에 관하여만 미국법을 준거법으로 삼을 수는 없다. 따라서 미국법에서만 인정되는 이른바 정부계약자 항변은 이 사건에서 받아들여질 여지가 없다.

같은 취지의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은 준거법이나 미국법상 정부계약자 항변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없다.

(2) 정당행위 여부

원심은 고엽제의 설계상 결함은 피고들이 고엽제의 사용으로 아군의 안전을 확보한다는 고려보다는 고엽제 납품으로 높은 이익을 얻으려는 동기에서 비롯된 측면이 큰 점 등 그 판시와 같은 사정을 종합하여, 피고들이 고엽제를 제조·판매한 행위가 법령에 바탕을 둔 업무행위라고 하더라도 피고들이 고도의 위험방지의무를 위반한 채 결함 있는 고엽제를 제조·판매한 것은 사회적 타당성이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정당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3) 강요된 행위 여부

원심판결 이유를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이 그 판시와 같은 사정을 종합하여, 피고들이 결함 있는 고엽제를 제조·판매한 행위는 그 회피를 기대할 수 없었던 강요된 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은 강요된 행위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없다.

(4) 긴급피난 여부

원심판결 이유를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이 그 판시와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여, 피고들이 결함이 있는 제조물을 제조·판매한 행위는 현재의 급박한 위난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없고 부득이한 경우로 볼 수도 없으므로 긴급피난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은 긴급피난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없다.

(5) 위자료 산정에 관한 주장

법원은 피해자 측과 가해자 측의 제반 사정을 참작하여 위자료의 액수를 정하여야 하므로,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당해 사고로 입은 재산상 손해에 대하여 배상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 및 그 배상액의 다과 등과 같은 사유도 위자료 액수를 정할 때 참작할 수 있다.

원심은 원심판결 별지 제3목록 기재 선정자들이 입게 된 재산상 손해는 대부분 그 액수를 확정하거나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곤란하여 이를 전보받을 수 없다고 보아 이러한 사유도 위자료 액수를 정하는 데 참작하였다.

앞서 본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고엽제에 노출되어 염소성여드름이 발병한 선정자들 중 손해배상청구권이 시효로 소멸되지 않은 선정자들에 관한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은 위자료 산정에 관한 법리오해의 위법이 없다.

그 밖에 위자료의 산정에 관한 상고이유의 주장은 사실심의 전권에 속하는 증거의 취사선택과 사실인정을 탓하는 것에 불과하여 적법한 상고이유가 될 수 없다.

(6) 지연손해금의 기산일에 관한 변론주의 위반 여부

불법행위에 있어 위법행위 시점과 손해발생 시점 사이에 상당한 시간적 간격이 있는 경우에는 손해발생 시점이 기산일이 된다( 대법원 2011. 7. 28. 선고 2010다76368 판결 참조).

원심은 원심판결 별지 제3목록 기재 선정자들이 입게 된 손해는 고엽제에 노출된 후 그로 인한 질병이 발생한 시점에 현실화하여 그 시점부터 손해배상금에 대한 지연손해금이 발생한다고 하면서도 그 판시와 같은 사정을 들어 고엽제후유증환자 등록 시점을 기산일로 하여 각 손해액에 대한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명하였다.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지연손해금의 기산일을 실제 손해발생일보다 늦게 인정하여 피고들에게 유리하게 한 것이므로, 피고들이 고엽제에 노출되어 염소성여드름이 발병한 선정자들 중 손해배상청구권이 시효로 소멸되지 않은 선정자들에 대하여 변론주의 위반 등을 주장하며 지연손해금의 기산일 산정이 잘못되었다고 다투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7) 그 밖의 소송절차의 위법 유무

피고들은 원심이 원고들에게 부당하게 증거제출을 권유하였고, 변론재개신청에 따라 변론을 재개한 후 피고들에게 방어의 기회를 단기간만 부여하였으며, 군복무기록이나 의료기록 등이 현출되지 않은 채로 증거조사절차를 진행한 위법이 있다고 주장하나, 이러한 상고이유의 주장은 결국 법원의 재량 또는 석명권 행사의 범위 내에 속하거나 사실심의 전권에 속하는 증거의 취사선택을 탓하는 것에 지나지 아니하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

2. 원고들의 상고이유에 대하여

가. 인과관계에 관한 채증법칙 위반, 법리오해 등의 점

(1) 원심은 그 채용 증거를 종합하여 그 판시와 같은 사실을 인정한 다음, ① 고엽제법의 고엽제후유의증이나 고엽제후유증 중 말초신경병, 버거병은 고엽제 노출과의 역학적 인과관계를 인정할 만한 자료가 부족함에도 보훈정책적 차원에서 보상 또는 지원을 하기 위하여 인정된 질병인 점, ② 소외 1 보고서의 조사 결과는 미국 법원에 제기된 고엽제 관련 소송에서 그 소송의 원고 측 의뢰에 따라 작성된 선서진술서로서 작성자인 소외 1이 역학이나 의학에 관한 전문적 지식을 보유하였다고 보기 어렵고 자료의 선별 과정에서도 객관성이 떨어지는 점, ③ 소외 2 교수의 역학조사보고서는 폭로군 선별 과정 등에 대한 신뢰성이 낮고 고엽제법에 근거하여 조사가 이루어졌음에도 그 과학성 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어 그 후 고엽제법의 개정 과정에서도 그 연구보고 결과가 거의 반영되지 아니하는 등 역학적 연구방법의 적정성을 신뢰하기 어려운 점, ④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보고서 초안은 미국 환경보호청이 공식적인 발표를 앞두고 그 기술적 정확성 등에 관한 내부적 평가를 위하여 회람하고 있는 단계의 문서로서 그 인용을 금하고 있어 역학적 인과관계의 인정을 위한 증거로 삼기에 적합하지 아니한 점, ⑤ 미국 국립과학원의 보고서는 말초신경병과 고엽제 노출 사이에 원인적 연관성을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증거가 불충분하고, 특히 말초신경병이 TCDD를 직접적 원인으로 하여 발생하는 질병인지 아니면 당뇨병 발생에 따라 2차적으로 발생하는 질병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는 점, ⑥ 그 밖에 갑 제38호증(세계보건기구 국제암연구소 논문), 갑 제47호증의 2(다이옥신 2001의 논문)는 모두 다이옥신의 발암성에 관한 논문들을 일부 발췌한 것으로 그 역학적 인과관계에 관한 실질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아니하고, 갑 제39호증의 1(죽음을 부르는 다이옥신), 갑 제39호증의 2(다우는 이 땅을 어떻게 더럽히는가)는 비정부단체에서 환경운동을 목적으로 기존의 역학적 연구 결과들을 편집한 것이어서 그 내용의 객관성,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점 등 그 판시와 같은 여러 사정에 비추어, 고엽제법의 관련 규정이나 위와 같은 증거들만으로 고엽제후유의증 및 고엽제후유증 중 말초신경병, 버거병과 고엽제 노출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취지로 판단하였다.

원심판결 이유를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수긍할 수 있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인과관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2) 또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가해행위와 손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는 존재하거나 부존재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이고, 이를 비율적으로 인정할 수는 없으므로, 이른바 비율적 인과관계론은 받아들일 수 없다 .

같은 취지의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은 비율적 인과관계에 관한 법리오해의 위법이 없다.

나. 위자료 산정에 관한 법리오해의 점

(1) 재산적 손해에 대한 배상청구와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청구는 각각 소송물을 달리하는 별개의 청구이므로 소송당사자는 그 금액을 특정하여 청구하여야 하고, 법원도 그 내역을 밝혀 각 청구의 당부에 관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대법원 2006. 9. 22. 선고 2006다32569 판결 등 참조). 또한 불법행위로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액수는 사실심법원이 여러 사정을 참작하여 그 직권에 속하는 재량으로 확정할 수 있다( 대법원 2005. 6. 23. 선고 2004다66001 판결 등 참조).

(2) 원심판결 이유를 위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이 재산적 손해배상을 갈음하는 내용의 포괄적 위자료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고, 또한 원심이 정한 위자료 액수가 과소하다고도 볼 수 없으므로,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은 위자료 산정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없다.

3. 원심판결 중 피고들 패소 부분의 파기 범위

가. 원심판결 별지 제3목록 기재 선정자들 중 염소성여드름이 아닌 다른 질병에 걸린 선정자들의 손해배상청구를 일부 인용한 부분은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려운 질병에 대하여 손해배상청구를 인용한 것이어서 위법하므로, 이 부분은 파기되어야 한다.

다만 염소성여드름과 당뇨병에 함께 걸린 같은 목록 기재 선정자 976의 청구를 일부 인용한 부분은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려운 당뇨병에 대하여 인과관계를 인정한 잘못은 있으나, 원심이 상이등급을 주요한 기준으로 고려하여 위자료의 액수를 정한 점, 산정한 위자료의 액수, 그 밖에 기록에 의하여 알 수 있는 여러 사정을 참작하면, 당뇨병에 걸린 사정을 고려하지 아니하더라도 원심이 위 선정자에 대하여 산정한 위자료의 액수는 적정하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이 부분은 그 결론이 정당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없으므로 파기사유가 없다.

나. 한편 원심판결 별지 제3목록 기재 선정자 1,222, 1,243, 1,882의 손해배상청구를 일부 인용한 부분은 고엽제후유증환자 등록일에 관한 사실을 오인하는 등으로 소멸시효 항변에 관한 판단을 그르쳐 위법하다. 또한 같은 목록 기재 선정자 32, 66, 114, 132, 160, 206, 226, 348, 351, 358, 373, 479, 513, 576, 627, 712, 808, 876, 1,009, 1,043, 1,062, 1,105, 1,126, 1,416, 1,471, 1,756, 1,765, 1,823, 1,883, 2,028, 2,180, 2,213, 2,319의 손해배상청구를 일부 인용한 부분은, 이들에 대한 피고들의 소멸시효 항변이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음에도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보아 그 청구를 인용한 것이어서 위법하다. 따라서 위 각 부분도 파기되어야 한다.

다. 결국 원심판결의 피고들 패소 부분 중 ① 민법 제766조 제1 , 2항 에서 정한 각 소멸시효기간이 모두 경과하지 아니한 원심판결 별지 제3목록 기재 선정자 456, 769, 976, 1,422, 1,477, 1,613과 ② 민법 제766조 제1항 에서 정한 소멸시효기간은 경과하지 아니하고 같은 조 제2항 에서 정한 소멸시효기간은 경과하였으나 피고들의 소멸시효 항변이 권리남용에 해당하는 같은 목록 기재 선정자 4, 163, 600, 897, 950, 1,162, 1,277, 1,362, 1,933, 2,061에 관한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파기되어야 한다.

4. 결론

그러므로 원심판결의 피고들 패소 부분 중 제3의 다.항에서 본 바와 같이 청구를 일부 인용하는 선정자들에 관한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며, 피고들의 나머지 상고와 원고들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김신(재판장) 민일영 이인복(주심) 박보영

심급 사건
-서울중앙지방법원 2002.5.23.선고 99가합84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