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배상(기)][공2011하,2046]
[1]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는 경우
[2] 1949년 공비소탕작전을 수행하던 군인들이 문경군 석달마을 주민들을 무차별 사살한 이른바 ‘문경학살 사건’ 희생자들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에서, 국가가 소멸시효완성을 주장하여 채무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여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한 사례
[1]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 원칙과 권리남용금지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 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2] 1949년 공비소탕작전을 수행하던 군인들이 전투능력은 물론 공비 협력 활동을 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어린이, 노약자, 부녀자들을 포함한 문경군 석달마을 주민들을 무차별 사살한 이른바 ‘문경학살 사건’ 희생자들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에서, 공비 소탕작전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군인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행위는 객관적으로 외부에서 알기 어려워 희생자들의 유족이라도 국가에 의하여 진상이 규명되기 전에는 국가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점, 문경학살 사건에 대하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의한 진실규명결정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가해자가 소속된 국가가 진상을 규명한 적이 없었고, 오히려 사건 초기 국군을 가장한 공비에 의한 학살 사건으로 진상을 은폐·조작하였던 점, 유족들의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만으로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유족들이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해소되었다고 볼 수 없는 점, 전쟁이나 내란 등에 의하여 조성된 위난의 시기에 개인에게 국가기관이 조직을 통하여 집단적으로 자행하거나 또는 국가권력의 비호나 묵인하에 조직적으로 자행된 기본권 침해에 대한 구제는 통상의 법절차에 의해서는 사실상 달성하기 어려운 점 등에 비추어 위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이 있었던 때까지는 객관적으로 유족들이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보아야 하고, 여기에 어떠한 경우에도 적법한 절차 없이 국가가 보호의무를 지는 국민의 생명을 박탈할 수는 없다는 점을 더하여 보면, 진실을 은폐하고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조차 게을리 한 국가가 이제 와서 뒤늦게 문경학살 사건의 유족들이 위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에 따라 진실을 알게 된 다음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의 소에 대하여 미리 소를 제기하지 못한 것을 탓하는 취지로 소멸시효완성의 항변을 하여 채무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여 신의칙에 반하는 것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한 사례.
[1] 민법 제2조 , 제162조 [2] 민법 제2조 , 제166조 제1항 , 제751조 , 제766조 ,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 제8조 , 국가재정법 제96조
[1] 대법원 1994. 12. 9. 선고 93다27604 판결 (공1995상, 434) 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4다33469 판결 (공2008하, 1109) 대법원 2011. 2. 10. 선고 2010다25933 판결 대법원 2011. 6. 30. 선고 2009다72599 판결 (공2011하, 1515)
원고 1 외 3인 (소송대리인 변호사 김수정 외 1인)
대한민국
원심판결 중 문경학살 사건을 직접적인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나머지 상고를 기각한다.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문경학살 사건을 직접적인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 부분에 관하여
가.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이른바 문경학살 사건을 직접적인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은 문경학살 사건이 발생한 때부터 5년이 경과한 1954. 12. 24.경 시효완성으로 인하여 소멸되었다고 할 것인데, 이 사건 소가 2008. 7. 10. 제기된 사실은 기록상 명백하므로 피고의 소멸시효 주장은 이유 있고, 나아가 원고들이 적어도 문경학살 사건으로 인한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이라고 할 수 있는 헌법소원 청구일인 2000. 3. 18.부터 3년이 경과하여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으므로 이 점에서도 위 손해배상청구권은 시효완성으로 소멸하였다고 판단한 다음, 민간인 학살의 가해자인 국가가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것은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고들의 주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사유를 들어 배척하였다.
(1) 문경학살 사건 이후 피고가 사건을 은폐하려 기도한 바 있지만 다수의 피해자 겸 목격자들이 생존하고 있는 상태에서 1960. 4. 19. 이후 국회 차원에서 조사가 이루어지기도 하였고, 희생자의 유족들 또한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행정부에 진정하거나 국회에 청원한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객관적으로 원고들이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함에 있어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이 점에서 의문사 사건 등에서 국가가 정보기관을 통하여 장기간에 걸쳐서 사건의 진실을 철저히 은폐, 왜곡해 온 사례와 다르다).
(2) 피고가 2005. 5. 31.「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하 ‘법’이라 한다)을 제정·시행하였는데, 법 제34조 는 ‘국가는 진실규명사건 피해자의 피해 및 명예의 회복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는 한편 법 제36조 제1항 은 ‘정부는 규명된 진실에 따라 희생자, 피해자 및 유가족의 피해 및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정리위원회’라고만 한다)가 문경학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결정을 하면서 국가에게 생존한 부상자들에 대한 의료비 지원과 희생자 유족들에 대한 생계비 지원을 권고하였지만, 위와 같은 피고의 일련의 행위는 법의 제정 목적 및 취지에 비추어 볼 때 과거에 존재하던 반민주적·반인권적 행위에 대해 반성하고 그에 기초하여 장래의 국민적 화해와 통합을 기하고자 하는 것이어서 이를 근거로 피고가 법과 별도의 법제인 국가배상법상의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에 관하여 시효의 이익을 포기하였거나 시효 주장을 하지 아니하겠다는 태도를 취하였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3) 유족들이 국가기관에 진실규명을 지속적으로 요청한 점에 비추어 볼 때 유족들 자신은 문경학살 사건의 진상을 알고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고,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진실규명 조사결과를 의결함으로써 비로소 원고들이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볼 수 없다. 유족들 중 원고 1을 포함한 일부 사람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한 때인 2000. 3. 18.부터 소멸시효기간인 3년이 훨씬 경과한 때에 이 사건 소가 제기되었다.
(4) 국가에 의한 집단학살 사건과 같은 반인륜적 범죄라는 이유만으로 법률에 규정된 소멸시효의 적용을 배제할 수 없고, 또 이에 대해 소멸시효항변을 하는 것이 신의칙에 반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나. 그러나 이와 같은 원심의 판단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수긍할 수 없다.
(1)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 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 대법원 1994. 12. 9. 선고 93다27604 판결 , 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4다33469 판결 , 대법원 2011. 2. 10. 선고 2010다25933 판결 등 참조).
(2) 원심이 적법하게 확정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
(가) 피고는 공비 토벌을 위하여 육군 제2사단을 창설한 다음 1949. 9. 28.부터 1950. 3. 15.까지 경북 및 태백산 지역 일대에서 공비토벌작전 임무를 주력으로 수행하도록 하였는데, 육군 제2사단 예하 부대로 25연대 제2대대 제7중대 제2소대 및 제3소대가 있었다.
(나) 1949. 12. 23. 16:00경 제2소대 및 제3소대는 주둔지였던 점촌과 예촌을 출발하여 다음날 10:00경 상선암에서 합류하였고, 그 후 같은 날 정오경 석달마을에 도착한 다음 제2소대 및 제3소대 군인들은 소대장의 지시·명령에 따라 마을을 포위한 채 불을 지르고, 이에 대피하던 마을주민들을 모두 마을 앞 논에 모아 놓고 군용무기로 무차별 사살하였으며(이후 확인사살까지 하였다), 마을 주변을 포위·경계하던 군인들은 마을 뒤 산모퉁이에서 마을로 돌아오던 마을 청장년들과 귀가하던 초등학생들을 총살하였다.
(다) 이에 마을주민 127명 중 81명이 현장에서 즉사하였고 부상자 중 4명은 방치되어 사망하였으며 나머지 1명은 병원에 입원·가료 중 사망하여 총 86명이 희생되었는데, 사망자 중 70% 가량은 전투능력은 물론 공비 협력 활동을 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어린이, 노약자 또는 부녀자로 밝혀졌다.
(라) 문경학살 사건 발생 다음날인 1949. 12. 25. 문경경찰서 소속 경찰관 4명이 이 사건 현장에 출동하여 현장조사를 실시하고, 당시의 전소된 마을전경과 현장을 사진 촬영하였다.
(마) 문경학살 사건 발생 이후 제7중대장 소외 1 대위와 제3소대장 소외 2 소위는 사건을 은폐·조작하고 군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문경경찰서장과 공모하여 게릴라 70명이 학살을 저질렀다고 상부에 허위보고를 하였고, 1950. 1. 26.자 연합신문은 문경학살 사건과 관련한 군 보도과의 발표를 게재하였는데, 당시 군 보도과에서는 문경학살 사건을 “공비의 최후적 만행으로서 국군을 가장하고 부락에 침입하여 살인방화 등을 감행한” 사건으로 보도하였다.
(바) 한편 당시 국방장관 소외 3은 1950. 1. 17. 이 사건 현장에서 4㎞ 가량 떨어진 김룡국민학교를 방문하여 당시 문경군수 소외 4에게 ‘생존자 위로금’ 명목으로 100만 원을 전달하였고, 생존자들에게 가구당 미군용 담요 1장씩과 약간의 식량을 전달하였는데, 위로금은 1950년 5월경 산북면사무소에서 ‘주택건축 보조금’ 명목으로 생존자 1세대당 1만 6,000원씩 전달되었으며, 그에 따라 13세대 31명이 8평 남짓의 가옥을 새로 마련하여 입주하였다.
(사) 1960. 4. 19. 이후 전국 각지에서 6·25 전쟁 전후 발생하였던 민간인 희생사건에 대한 제보들을 바탕으로 언론보도가 다수 이루어짐에 따라 피해지역을 지역구로 둔 국회의원들이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결의안을 제출하였는데, 소외 5 외 11인은 통영, 남원, 문경지구 양민학살사건 조사에 관한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그 진상 조사를 위해 양민학살사건진상조사특별위원회가 설치되어 문경지역에 대한 현지조사가 실시되기도 하였다.
(아) 문경학살 사건 희생자의 유족인 원고 1은 1960. 5. 27. 석달동 양민집단학살의 진상규명과 신원을 요구하는 호소문을 관계 당국에 전달하였으나, 그 직후의 군사정권은 호소문의 내용 중 일부를 반국가행위로 규정하여 원고 1을 수배하기도 하였다.
(자) 1993. 5. 3. 문경학살 사건 희생자의 유족들이 유족회를 결성한 후 같은 해 5. 20. 여러 관계 행정당국에 탄원서를 전달하였는데, 접수기관은 위 사안이 국방부 소관이라고 판단하여 국방부로 이관하였으나, 국방부는 ‘문경 양민학살 사건 사실에 대한 전사자료 미보유로 확인 불가’ 입장을 유족회에 전달하였다.
(차) 위와 같이 유족회 결성 이후 유족회 또는 유족 중 일부 구성원들은 1990년대에 이르러 수차례 국회청원을 제출하였으나, 미달성으로 처리되거나 임기만료를 이유로 자동폐기되기도 하였다.
(카) 문경학살 사건 희생자의 유족 중 일부인 소외 6 외 17인은 2000. 3. 18. 헌법재판소에, 1949. 12. 24. 11:00경 석달동에서 국군 제3사단 제25연대 제3대대 제7중대 제2소대 및 제3소대 소속으로 추정되는 군인 7, 80여 명이 주민들에게 공비와의 내통혐의를 이유로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주민 86명을 살해하고 12명을 부상하게 하였는데, 국가는 위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나 보상 없이 사건을 은폐하여 오면서 위 학살사건의 진상조사, 명예회복, 피해보상을 위한 특별입법을 아직까지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유족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 행복추구권 등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입법부작위 위헌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을 청구하였으나, 헌법재판소는 2003. 5. 15. 2000헌마192, 508(병합)호 로 유족들의 헌법소원 청구를 각하하였다.
(타) 문경학살 사건 희생자의 유족 중 일부가 과거사정리위원회에 문경학살 사건의 진상 규명을 신청하여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조사 결과 2007. 6. 26. 문경학살 사건은 국군이 비무장 민간인들을 어떠한 선별절차나 법적 근거 없이 무차별적이고 무자비하게 집단학살한 사건으로서 명백한 위법행위라고 규정하고, 국가에 대하여 과거 가해 국군이 저지른 잘못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건 관련 희생자와 유족들 및 국민들에게 진솔하게 사과하여야 하며, 현재 생존한 부상자들에게 의료비를 최대한 지원하고, 유족들의 생계 상황을 파악하여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생계비를 지원할 것을 권고하는 내용의 결정을 하였다.
(파) 원고들은 문경학살 사건 희생자들의 유족이다.
(3) 위와 같은 사실들에 비추어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공비소탕작전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군인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행위는 객관적으로 외부에서 거의 알기 어려워 원고들과 같은 희생자들의 유족이라고 하더라도 국가에 의하여 진상이 규명되기 전에는 국가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것은 좀처럼 기대하기 어렵다고 할 것인 점, 문경학살 사건에 대하여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의한 진실규명결정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가해자가 소속된 국가가 그 진상을 규명한 적이 없었고, 오히려 사건 초기 국군을 가장한 공비에 의한 학살 사건으로 진상을 은폐·조작하였던 점, 원고들을 비롯한 유족들이 1993. 5. 3. 유족회 결성 이후 관계 당국에 여러 차례 탄원서 제출, 국회청원, 헌법소원심판 청구를 제기한 것은 결국 규명되지 못한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한 것으로 볼 수 있을 뿐인데,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만으로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유족들이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해소되었다고 볼 수 없는 점, 전쟁이나 내란 등에 의하여 조성된 위난의 시기에 개인에 대하여 국가기관이 조직을 통하여 집단적으로 자행하거나 또는 국가권력의 비호나 묵인하에 조직적으로 자행된 기본권 침해에 대한 구제는 통상의 법절차에 의해서는 사실상 달성하기 어려운 점 등에 비추어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결정이 있었던 2007. 6. 26.까지는 객관적으로 원고들이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여기에 어떠한 경우에도 적법한 절차 없이 국가가 보호의무를 지는 국민의 생명을 박탈할 수는 없다는 점을 더하여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진실을 은폐하고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조차 게을리 한 피고가 이제 와서 뒤늦게 문경학살 사건의 유족인 원고들이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에 따라 진실을 알게 된 다음 제기한 이 사건 소에 대하여 미리 소를 제기하지 못한 것을 탓하는 취지로 소멸시효완성의 항변을 하여 그 채무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여 신의칙에 반하는 것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원심이 그 판시와 같은 사정만으로 피고의 소멸시효완성 항변이 신의칙에 반하거나 권리남용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판단하여 원고들의 이 부분 청구를 기각한 것은 관련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의 주장은 이유 있다.
2. 문경학살 사건 후의 새로운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 부분에 관하여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피고가 문경학살 사건을 공비에 의한 학살로 진상을 왜곡·은폐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족들 중 일부를 반국가행위자라고 규정하여 체포한 행위는 모두 문경학살 사건 직후나 1960년 무렵에 이루어졌으므로, 피고의 행위로 인하여 원고들이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고 하더라도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시효로 소멸하였다고 할 것이고, 1961년경 군사정권하에서 원고 1이 문경학살 사건의 진상규명 등을 요구하는 호소문으로 인해 수배를 당한 사실이 있으나, 그 후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 조사결과가 의결될 때까지 피고가 위 사건을 적극적으로 은폐하려고 하거나 진상규명을 방해하였다는 자료가 없는 이상 단순히 진상규명을 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그것이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거나 피고의 불법행위가 계속되었다고 볼 수 없으며,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사회적 냉대와 고초 등을 겪어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는 주장 사실만으로는 구체적으로 피고가 어떠한 위법행위를 했다는 것인지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 부분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하였다.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앞서 본 법리 및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위배하고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소멸시효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없다. 이 부분 상고이유의 주장은 이유 없다.
3. 결론
그러므로 원심판결 중 문경학살 사건을 직접적인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며, 나머지 상고를 기각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