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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15. 10. 15. 선고 2012다64253 판결

[손해배상(기)][공2015하,1641]

판시사항

[1] 계약당사자가 계약내용을 처분문서인 서면으로 작성한 경우, 의사표시의 해석 방법 및 유효하게 성립한 계약상의 책임을 공평의 이념 및 신의칙과 같은 일반원칙에 의하여 제한할 수 있는지 여부(한정 적극)

[2] 갑 주식회사가 을 주식회사의 주주들인 병 주식회사 등과 주식양수도계약을 체결하면서, 병 회사 등이 ‘을 회사가 행정법규를 위반한 사실이 없고, 행정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거나 협의를 진행하는 것은 없다’는 내용의 진술과 보증을 하고, 진술 및 보증 조항 위반사항이 발견될 경우 손해를 배상하기로 하였는데, 갑 회사가 당시 이미 을 회사 등과 담합행위를 하였고, 양수도 실행일 이후 을 회사에 담합행위를 이유로 과징금이 부과된 사안에서, 주식양수도계약에 따른 갑 회사의 손해배상청구가 공평의 이념 및 신의칙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1] 계약당사자 사이에 어떠한 계약내용을 처분문서인 서면으로 작성한 경우에 문언의 객관적인 의미가 명확하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문언대로의 의사표시의 존재와 내용을 인정하여야 하며, 문언의 객관적 의미와 달리 해석함으로써 당사자 사이의 법률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초래하게 되는 경우에는 문언의 내용을 더욱 엄격하게 해석하여야 한다. 그리고 채권자의 권리행사가 신의칙에 비추어 용납할 수 없는 것인 때에는 이를 부정하는 것이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을 것이나, 일단 유효하게 성립한 계약상의 책임을 공평의 이념 및 신의칙과 같은 일반원칙에 의하여 제한하는 것은 자칫하면 사적 자치의 원칙이나 법적 안정성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으므로 신중을 기하여 극히 예외적으로 인정하여야 한다.

[2] 갑 주식회사가 을 주식회사의 주주들인 병 주식회사 등과 주식양수도계약을 체결하면서, 병 회사 등이 ‘을 회사가 행정법규를 위반한 사실이 없고, 행정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거나 협의를 진행하는 것은 없다’는 내용의 진술과 보증을 하고, 진술 및 보증 조항 위반사항이 발견될 경우 손해를 배상하기로 하였는데, 갑 회사가 당시 이미 을 회사 등과 담합행위를 하였고, 양수도 실행일 이후 을 회사에 담합행위를 이유로 과징금이 부과된 사안에서, 주식양수도계약서에 갑 회사가 계약 체결 당시 진술 및 보증 조항의 위반사실을 알고 있는 경우에는 손해배상책임 등이 배제된다는 내용이 없는 점 등에 비추어, 주식양수도계약서에 나타난 당사자의 의사는, 양수도 실행일 이후에 진술 및 보증 조항의 위반사항이 발견되고 그로 인하여 손해가 발생하면, 갑 회사가 위반사항을 계약 체결 당시 알았는지와 관계없이 병 회사 등이 손해를 배상하기로 합의한 것이고,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행위에 대한 조사를 개시한 것은 주식양수도계약의 양수도 실행일 이후여서, 갑 회사가 주식양수도계약을 체결할 당시 공정거래위원회가 을 회사에 담합행위를 이유로 거액의 과징금 등을 부과할 가능성을 예상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기는 어려우므로, 주식양수도계약에 따른 갑 회사의 손해배상청구가 공평의 이념 및 신의칙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고 본 원심판단에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한 사례.

원고, 상고인

현대오일뱅크 주식회사 (소송대리인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담당변호사 도건철 외 5인)

피고, 피상고인

한화케미칼 주식회사 외 3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광장 담당변호사 고원석 외 3인)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상고이유서 제출기간이 지난 후에 제출된 상고이유보충서의 기재는 상고이유를 보충하는 범위 내에서)를 판단한다.

1. 원심판결 이유를 본다.

원심은 그 채택 증거를 종합하여, ① 원고는 1999. 4. 2. 한화에너지 주식회사(이후 인천정유 주식회사로 상호가 변경되었는바, 이하 ‘인천정유’라고 한다)의 주주들인 피고들 및 한화에너지프라자 주식회사(이하 ‘한화프라자’라고 한다)의 주주들인 주식회사 한화 등(이하 ‘프라자 주주들’이라고 한다)으로부터 피고들이 소유하고 있던 인천정유 발행주식 9,463,495주 및 프라자 주주들이 소유하고 있던 한화프라자 발행주식 4,000,000주를 양수하는 계약(이하 ‘이 사건 주식양수도계약’이라고 한다)을 체결하고, 1999. 8. 31. 위 계약에 따라 피고들 및 프라자 주주들에게 주식양수도대금을 지급하고 그들로부터 위 주식을 교부받은 사실, ② 이 사건 주식양수도계약에서 주식양도인인 피고들은 주식양수인인 원고에게 ‘이 사건 주식양수도계약 체결일 및 양수도 실행일에 인천정유가 일체의 행정법규를 위반한 사실이 없고, 이와 관련하여 행정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거나 협의를 진행하는 것은 없다’는 내용의 진술과 보증을 하였고[이 사건 주식양수도계약 제9조 제1항 (거)호, 이하 ‘이 사건 진술 및 보증 조항’이라고 한다], 양수도 실행일 이후 이 사건 진술 및 보증 조항을 포함한 제9조의 보증 위반사항이 발견된 경우 또는 이 사건 주식양수도계약상의 약속사항을 위반함으로 인하여 인천정유 또는 원고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 피고들은 500억 원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위 보증 및 약속위반과 상당인과관계 있는 손해를 원고에게 배상하기로 약정한 사실(이 사건 주식양수도계약 제11조), ③ 원고가 인천정유 및 다른 정유사들(에스케이 주식회사, 엘지칼텍스정유 주식회사, 에쓰대시오일 주식회사)과 함께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실시된 군용유류 구매입찰에 참가하면서 사전에 유종별 낙찰예정업체, 낙찰예정업체의 투찰가격 및 들러리 업체의 들러리 가격 등에 대하여 구체적인 합의를 하고, 그 합의된 내용대로 응찰하고 낙찰을 받아 그에 따라 군용유류공급계약을 체결하여(이하 ‘이 사건 담합행위’라고 한다), 당시 시행 중이던 구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2004. 12. 31. 법률 제7315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공정거래법’이라고 한다) 제19조 제1항 제1호 를 위반하여 부당한 공동행위를 한 사실을 인정하였다.

원심은 위 사실관계를 토대로, 이 사건 담합행위에 직접 참여했던 원고는 이 사건 주식양수도계약 체결 당시에 이미 이 사건 진술 및 보증 조항의 위반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 사건 진술 및 보증 조항의 위반사실을 알고 있는 원고가 계약협상 및 가격산정 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 위반사실을 가격산정에 반영하였거나 또는 충분히 가격산정에 반영할 수 있었음에도 방치하였다가 이후 위반사실이 존재한다는 사정을 들어 뒤늦게 주식양도인인 피고들에게 그 위반에 대하여 책임을 묻는 것은 공평의 이념 및 신의칙상 허용될 수 없으므로, 피고들은 위와 같은 악의의 주식양수인인 원고에 대하여 이 사건 진술 및 보증 조항의 위반에 따른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2.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1) 계약당사자 사이에 어떠한 계약내용을 처분문서인 서면으로 작성한 경우에 문언의 객관적인 의미가 명확하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문언대로의 의사표시의 존재와 내용을 인정하여야 하며, 문언의 객관적 의미와 달리 해석함으로써 당사자 사이의 법률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초래하게 되는 경우에는 그 문언의 내용을 더욱 엄격하게 해석하여야 한다 ( 대법원 2010. 11. 11. 선고 2010다26769 판결 , 대법원 2011. 12. 8. 선고 2011다78958 판결 참조). 그리고 채권자의 권리행사가 신의칙에 비추어 용납할 수 없는 것인 때에는 이를 부정하는 것이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을 것이나, 일단 유효하게 성립한 계약상의 책임을 공평의 이념 및 신의칙과 같은 일반원칙에 의하여 제한하는 것은 자칫하면 사적 자치의 원칙이나 법적 안정성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으므로 신중을 기하여 극히 예외적으로 인정하여야 한다 ( 대법원 2004. 1. 27. 선고 2003다45410 판결 , 대법원 2013. 7. 12. 선고 2011다66252 판결 참조).

(2)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① 이 사건 주식양수도계약 제11조는 주식양수도 실행일 이후 이 사건 진술 및 보증 조항의 위반사항이 발견된 경우, 원고는 즉시 피고들에게 이를 통보하고, 피고들은 통보받은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위 위반사항을 시정하거나 원고에게 위 보증위반과 상당인과관계 있는 손해를 배상하도록 정하고 있는 사실, ② 이 사건 주식양수도계약의 양수도 실행일 이후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사건 담합행위에 대한 조사를 개시하여 2000. 10. 17. 인천정유가 이 사건 담합행위로 인해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시정명령, 법위반사실공표명령 및 과징금 47,522,000,000원의 납부명령을 내렸고, 이후 위 과징금납부명령에 대한 이의신청 및 일련의 과징금납부명령 취소소송 등을 거쳐, 공정거래위원회는 2009. 1. 14. 과징금을 재산정하여 인천정유를 합병한 에스케이에너지 주식회사에 대하여 과징금 14,511,000,000원의 납부명령을 내렸던 사실, ③ 대한민국은 2001. 2. 14. 이 사건 담합행위로 인하여 군용유류 구매입찰에서 적정가격보다 고가로 유류를 공급받는 손해를 입었다는 이유로 인천정유를 포함한 5개 정유회사를 상대로 158,419,669,721원의 지급을 구하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여 10여 년째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3) 원심이 인정한 사실관계와 위와 같은 사실관계로부터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① 이 사건 주식양수도계약서에는 원고가 계약 체결 당시 이 사건 진술 및 보증 조항의 위반사실을 알고 있는 경우에는 위 손해배상책임 등이 배제된다는 내용은 없는 점, ② 원고와 피고들이 이 사건 주식양수도계약서에 이 사건 진술 및 보증 조항을 둔 것은, 이 사건 주식양수도계약이 이행된 후에 피고들이 원고에게 진술 및 보증하였던 내용과 다른 사실이 발견되어 원고 등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 피고들로 하여금 원고에게 500억 원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 손해를 배상하게 함으로써 원고와 피고들 사이에 불확실한 상황에 관한 경제적 위험을 배분시키고, 사후에 현실화된 손해를 감안하여 주식양수도대금을 조정할 수 있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경제적 위험의 배분과 주식양수도대금의 사후 조정의 필요성은 원고가 피고들이 진술 및 보증한 내용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경우에도 여전히 인정된다고 할 것인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주식양수도계약서에 나타난 당사자의 의사는, 이 사건 주식양수도계약의 양수도 실행일 이후에 이 사건 진술 및 보증 조항의 위반사항이 발견되고 그로 인하여 손해가 발생하면, 원고가 그 위반사항을 계약 체결 당시 알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피고들이 원고에게 그 위반사항과 상당인과관계 있는 손해를 배상하기로 하는 합의를 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

그리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이 사건 담합행위에 대한 조사를 개시한 것은 이 사건 주식양수도계약의 양수도 실행일 이후여서, 원고가 이 사건 주식양수도계약을 체결할 당시 공정거래위원회가 인천정유에 이 사건 담합행위를 이유로 거액의 과징금 등을 부과할 가능성을 예상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원고가 이 사건 담합행위를 알고 있었고 이 사건 담합행위로 인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 가능성 등을 이 사건 주식양수도대금 산정에 반영할 기회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러한 점만으로 이 사건 주식양수도계약 제11조에 따른 원고의 손해배상청구가 공평의 이념 및 신의칙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

(4) 그럼에도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이유만으로, 원고가 피고들에 대하여 이 사건 주식양수도계약 제11조에 따른 책임을 묻는 것이 공평의 이념 및 신의칙상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말았으니,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처분문서의 해석이나 신의칙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3. 그러므로 나머지 상고이유에 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이상훈(재판장) 김창석 조희대(주심) 박상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