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보(제101호)]
가.위헌제청되지 않은 법률조항을 심판대상에 포함시킨 사례
나. 헌법과 전통의 관계
다. 호주제가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적극)
라.위헌결정으로 초래되는 다른 법제도의 공백을 이유로 헌법불합치결정을 한 사례
가.처의 부가(夫家)입적을 규정한 민법 제826조 제3항 후단은 무호주로의 변경을 구하면서 호주제의 위헌성을 다투는 위헌제청신청의 취지와 무관하지 않을 뿐 아니라, 법원이 위헌제청한 민법 제778조, 제781조 제1항 본문 후단과 결합하여 호주제의 골격을 이루고 있으므로 호주제의 위헌여부라는 중요한 헌법문제의 보다 완전한 해명을 위하여 그 조항의 위헌여부도 심판의 대상으로 삼아 한꺼번에 심리·판단하는 것이 헌법재판의 객관적 기능에 비추어 상당하다.
나. (1) 헌법은 국가사회의 최고규범이므로 가족제도가 비록 역사적·사회적 산물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헌법의 우위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가족법이 헌법이념의 실현에 장애를 초래하고, 헌법규범과 현실과의 괴리를 고착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면 그러한 가족법은 수정되어야 한다.
(2)우리 헌법은 제정 당시부터 특별히 혼인의 남녀동권을 헌법적 혼인질서의 기초로 선언함으로써 우리 사회 전래의 가부장적인 봉건적 혼인질서를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헌법적 결단을 표현하였으며, 현행 헌법에 이르러 양성평등과 개인의 존엄은 혼인과 가족제도에 관한 최고의 가치규범으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한편, 헌법 전문과 헌법 제9조에서 말하는 ‘전통’, ‘전통문화’란 역사성과 시대성을 띤 개념으로서 헌법의 가치질서, 인류의 보편가치, 정의와 인도정신 등을 고려하여 오늘날의 의미로 포착하여야 하며, 가족제도에 관한 전통·전통문화란 적어도 그것이 가족제도에 관한 헌법이념인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에 반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한계가 도출되므로, 전래의 어떤 가족제도가 헌법 제36조 제1항이 요구하는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에 반한다면 헌법 제9조를 근거로 그 헌법적 정당성을 주장할 수는 없다.
다.(1)심판대상조항인 민법 제778조, 제781조 제1항 본문 후단, 제826조 제3항 본문이 그 근거와 골격을 이루고 있는 호주제는 ‘호주를 정점으로 가(家)라는 관념적 집합체를 구성하고, 이러한 가를 직계비속남자를 통하여 승계시키는 제도’, 달리 말하면 남계혈통을 중심으로 가족집단을 구성하고 이를 대대로 영속시키는데 필요한 여러 법적 장치로서, 단순히 집안의 대표자를 정하여 이를 호주라는 명칭으로 부르고 호주를 기준으로 호적을 편제하는 제도는 아니다.
(2)호주제는 성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에 기초한 차별로서, 호주승계 순위, 혼인 시 신분관계
형성, 자녀의 신분관계 형성에 있어서 정당한 이유없이 남녀를 차별하는 제도이고, 이로 인하여 많은 가족들이 현실적 가족생활과 가족의 복리에 맞는 법률적 가족관계를 형성하지 못하여 여러모로 불편과 고통을 겪고 있다. 숭조(崇祖)사상, 경로효친, 가족화합과 같은 전통사상이나 미풍양속은 문화와 윤리의 측면에서 얼마든지 계승, 발전시킬 수 있으므로 이를 근거로 호주제의 명백한 남녀차별성을 정당화하기 어렵다.
(3)호주제는 당사자의 의사나 복리와 무관하게 남계혈통 중심의 가의 유지와 계승이라는 관념에 뿌리박은 특정한 가족관계의 형태를 일방적으로 규정·강요함으로써 개인을 가족 내에서 존엄한 인격체로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가의 유지와 계승을 위한 도구적 존재로 취급하고 있는데, 이는 혼인·가족생활을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지에 관한 개인과 가족의 자율적 결정권을 존중하라는 헌법 제36조 제1항에 부합하지 않는다.
(4)오늘날 가족관계는 한 사람의 가장(호주)과 그에 복속하는 가속(家屬)으로 분리되는 권위주의적인 관계가 아니라, 가족원 모두가 인격을 가진 개인으로서 성별을 떠나 평등하게 존중되는 민주적인 관계로 변화하고 있고, 사회의 분화에 따라 가족의 형태도 모와 자녀로 구성되는 가족, 재혼부부와 그들의 전혼소생자녀로 구성되는 가족 등으로 매우 다변화되었으며, 여성의 경제력 향상, 이혼율 증가 등으로 여성이 가구주로서 가장의 역할을 맡는 비율이 점증하고 있다. 호주제가 설사 부계혈통주의에 입각한 전래의 가족제도와 일정한 연관성을 지닌다고 가정하더라도, 이와 같이 그 존립의 기반이 붕괴되어 더 이상 변화된 사회환경 및 가족관계와 조화되기 어렵고 오히려 현실적 가족공동체를 질곡하기도 하는 호주제를 존치할 이유를 찾아보기 어렵다.
라.호주제의 골격을 이루는 심판대상조항들이 위헌으로 되면 호주제는 존속하기 어렵고, 그 결과 호주를 기준으로 가별로 편제토록 되어 있는 현행 호적법이 그대로 시행되기 어려워 신분관계를 공시·증명하는 공적 기록에 중대한 공백이 발생하게 되므로, 호주제를 전제하지 않는 새로운 호적체계로 호적법을 개정할 때까지 심판대상조항들을 잠정적으로 계속 적용케 하기 위하여 헌법불합치결정을 선고한다.
재판관 김영일, 재판관 권 성의 반대의견
현행법상의 호주제는 고대 이래 조선 중기까지 이어져온 우리 고유의 합리적 부계혈통주의의 전통을 이어받아 부계혈통주의의 존립을 위한 극히 기본적인 요소만을 담고 있는 것으로서, 일제 잔재로서의 색채를 불식하고 우리 고유의 관습으로 복귀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으며, 혼인과 가족관계를 규율하는 가족법은 전통성·보수성·윤리성을 강하게 가질 수밖에 없어서 혼인과 가족관계에 관한 헌법규정을 해석함에 있어서는 가족법의 전통적 성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특히 가족법의 영역에서 도식적인 평등의 잣대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함부로 재단함으로써 전통가족문화가 송두리째 부정되고 해체되는 결과를 초래하여서는 아니되는바, 현행법상의 호주제는 전통 가족제도의 핵심인 부계혈통주의에 입각한 가의 구성 및 가통의 계승을 위한 제도로서 이를 위하여 마련된 처의 부가입적 원칙, 자의 부가입적 원칙 및 호주승계제도는 우리 사회의 오랜 전통과 현실에 기초한 것일 뿐만 아니라 여성에 대한 실질적 차별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평등원칙에 위반되지 아니하며, 호주제가 신분관계를 일방적으로 형성되는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가족제도를 법제화하는 과정에서 부득이한 것일 뿐만 아니라 임의분가, 호주승계권의 포기 등 이를 완화하는 제도를 두고 있으므로 개인의 존엄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라 보기도 어려우므로 결국 헌법 제36조 제1항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재판관 김영일의 위 반대의견에 대한 별개의견
민법 제781조 제1항 본문 후단이 규정하고 있는 자의 부가입적 원칙이 그 자체로서 위헌은 아니나, 그 원칙에 대한 예외의 설정이 너무 좁게 한정되어 있어서 다수의견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현실에 맞지 않고 불합리하게 자의 의사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모를 실질적으로 차별하므로 개인의 존엄 및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고 하지 않을 수 없어, 결론적으로 민법 제778조, 제826조 제3항 본문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하나, 민법 제781조 제1항 본문 후단은 헌법에 위반된다.
재판관 김효종의 반대의견
민법이 가제도(家制度)를 두고 있는 것은 헌법 제36조 제1항이 제도보장의 하나로 규정한 가족제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할 것이고, 각개의 가(家)에 호주를 두고 있는 것은 우리의
전통문화에 터 잡은 것으로 봄이 상당하므로, 민법 제778조가 법적 개념으로서 가(家)의 존재를 인정하고 여기에 호주의 관념을 도입하였다 하여 헌법 제36조 제1항을 비롯한 헌법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으며, 호주제의 양성차별적 요소는 민법 제984조 등 위헌성이 있는 관련 개별규정의 효력을 상실시키거나 입법적 개선이 이루어지면 해소될 수 있는 문제여서 그러한 위헌적 요소가 가제도의 기본조항인 민법 제778조에 본질적으로 내재된 문제라고 볼 수 없다. 따라서 민법 제781조 제1항 본문 후단, 제826조 제3항 본문에 관하여는 위헌이라는 다수의견과 견해를 같이 하지만 민법 제778조는 가족제도의 보장을 위한 입법재량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 입법적 조치로서 헌법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
가.헌재 1999. 1. 28. 98헌가17 , 판례집 11-1, 11, 14
헌재 2000. 8. 31. 97헌가12 , 판례집 12-2, 167, 172
나. 헌재 1989. 9. 8. 88헌가6 , 판례집 1, 199, 205
헌재 1997. 7. 16. 95헌가6 등, 판례집 9-2, 1, 19
다.헌재 2000. 4. 27. 98헌가16 등, 판례집 12-1, 427, 445, 446
제청법원 서울지방법원서부지원(2001헌가9)
서울지방법원북부지원( 2001헌가10 내지15)
대전지방법원( 2004헌가5 )
당해사건 서울지방법원서부지원 2000호파988 입적신고불수리처분에 대한 불복신청(2001헌가9)
서울지방법원북부지원 2000호파1673 호적공무원의 처분에 대한 불복신청( 2001헌가10 )
서울지방법원북부지원 2000호파1674·1675·1676·1677·1678 호적 공무원의 처분에 대한 불복신청( 2001헌가11 내지 15)
대전지방법원 2002호파722 호적사무관장자처분에 대한 이의신청( 2004헌가5 )
제3항 본문은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
2.위 법률조항들은 입법자가 호적법을 개정할 때까지 계속 적용된다.
1. 사건의 개요 및 심판의 대상
가. 사건의 개요
(1) 2001헌가9·10 사건
당해사건의 신청인들은 혼인하였다가 이혼하고 일가를 각 창립한 자들로서, 전 부(夫)와의 사이에 태어난 그들 자(子)의 친권행사자이며 양육자인데도 그들 자(子)의 호적은 부(父)인 전 부(夫)가 호주로 있는 가(家)에 편제되어 있다. 신청인들은 그들의 자(子)를 자신의 가(家)에 입적시키기 위하여 2000. 10.경 관할 호적관청에 각기 입적신고를 하였으나 호적관청은 민법 제781조 제1항 본문을 들어 입적신고를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다.
이에 신청인들은 당해사건 법원에 각 호적관청의 처분에 대한 불복을 신청하였고, 그 재판계속 중에 민법 제778조, 제781조 제1항 본문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면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였는데, 당해사건 법원은 2001. 3. 27.(2001헌가9 사건의 경우) 및 같은 달 29.( 2001헌가10 사건의 경우) 민법 제781조 제1항 본문 중 후단에 대한 신청은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고, 나머지 조항에 대한 신청은 모두 각하하였다.
(2) 2001헌가11 내지 15 사건
당해사건의 신청인들은 혼인하여 각 그 배우자와 하나의 가(家)를 이루어 동일한 가적에 올라 있고, 호적상 호주는 부(夫)인 신청인들( 2001헌가11 ·14 사건의 경우) 또는 신청인들의 부(夫)( 2001헌가12 ·13·15 사건의 경우)로 되어 있다. 신청인들은 부(夫)가 호주로 되어 있는 가를 무호주, 즉 호주가 없는 가로 바꾸기 위하여 2000. 10.경 또는 동년 11.경 각기 관할 호적관청에 호주변경신고를 하였으나, 호적관청들은 현행법상 무호주제도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호주변경신고의 수리를 거부하였다.
이에 신청인들은 당해사건 법원에 각 호적관청의 수리거부처분에 대한 불복을 신청하였고, 그 재판계속 중에 민법 제778조, 제826조 제3항 본문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면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였는데, 당해사건 법원은 2001. 3. 29. 민법 제826조 제3항 본문에 대한 신청은 모두 각하하고, 민법 제778조에 대한 신청은 모두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였다.
(3) 2004헌가5 사건
당해사건의 신청인들은 서로 혼인하여 동일한 가적에 올라 있고, 호적상 호주는 부(夫)인 신청인으로 되어 있다. 신청인들은 부(夫)가 호주로 되어 있는 가를 무호주, 즉 호주가 없는 가로 바꾸기 위하여 2002. 3.경 관할 호적관청에 호주변경신고를 하였으나, 호적관청은 현행법상 무호주제도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호주변경신고의 수리를 거부하였다.
이에 신청인들은 당해사건 법원에 호적관청의 수리거부처분에 대한 불복을 신청하였고, 그 재판계속중에 민법 제778조, 제826조 제3항 본문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면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였는데, 당해사건 법원은 2004. 2. 9. 민법 제826조 제3항 본문에 대한 신청은 각하하고, 민법 제778조에 대한 신청은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였다.
나. 심판의 대상
(1) 헌법재판은 단순히 제청신청인이나 헌법소원 청구인의 주관적 권리구제만을 위한 제도가 아니고, 객관적 헌법질서를 수호·유지하기 위한 제도이기도 하다.
헌법재판소는 피청구인 또는 심판대상을 직권으로 확정하기도 하고(헌재 1993. 5. 13. 91헌마190 , 판례집 5-1, 312, 320; 1998. 3. 26. 93헌바12 , 판례집 10-1, 226, 232), 위헌제청되지 않은 법률조항이라 하더라도 체계적으로 밀접불가분의 관계에 있거나 동일한 심사척도가 적용되는 등의 경우에는 그 법률조항도 심판대상에 포함시켜 위헌제청된 법률조항과 함께 그 위헌 여부를 판단하기도 하였다(헌재 1999. 1. 28. 98헌가17 , 판례집 11-1, 11, 14; 2000. 8. 31. 97헌가12 , 판례집 12-2, 167, 172). 이는 모두 헌법재판의 객관적 기능을 충실히 구현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2)민법 제826조 제3항 본문에 대한 심판의 필요성이 있는지 본다.
당해사건의 신청인들 중 무호주로의 호주변경신고를 한 신청인들의 본질적 취지는 부부의 어느 일방도 호주가 됨이 없이 동등한 가족구성원으로 되는 가(家)를 구성하게 해달라는 것이고, 여기에는 처의 무조건적인 부가(夫家)입적을 다투는 취지도 포함되어 있다고 볼 것이므로, 호주 지위의 설정에 관한 민법 제778조와 더불어 처의 부가(夫家)입적에 관한 민법 제826조 제3항 본문 또한 제청신청의 취지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민법 제826조 제3항 본문은 제778조, 제789조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조항이다. 전자는 후자와 결합하여, 남녀가 혼인하면 처는 부(夫)의 가(夫가 호주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에 강제로 편입된다는 법률결과를 창출하는 것인데, 이는 민법 제778조가
근거조항인 호주제의 핵심적 내용의 하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호주제의 위헌여부가 쟁점인 이 위헌제청사건에서 민법 제826조 제3항 본문이 위와 같은 정도로 민법 제778조와 긴밀한 관계에 있다면, 설사 제청법원의 견해와 같이 전자의 조항에 엄밀한 의미의 재판의 전제성이 없다 하더라도, 호주제의 위헌여부라는 중요한 헌법문제의 보다 완전하고 입체적인 해명을 위하여 그 조항에 대하여도 심판의 필요성을 인정하여 그 위헌여부까지도 심판의 대상으로 삼아 한꺼번에 심리·판단하는 것이 위에서 본 헌법재판의 객관적 기능에 비추어 보아 상당하다 할 것이다.
민법 제778조(호주의 정의) 일가의 계통을 계승한 자, 분가한 자 또는 기타 사유로 인하여 일가를 창립하거나 부흥한 자는 호주가 된다.
제781조(자의 입적, 성과 본) ①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르고 부가에 입적한다. 다만, 부가 외국인인 때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고 모가에 입적한다.
제826조(부부간의 의무) ③ 처는 부의 가에 입적한다. 그러나 처가 친가의 호주 또는 호주승계인인 때에는 부가 처의 가에 입적할 수 있다.
〔관련조항〕
제779조(가족의 범위) 호주의 배우자, 혈족과 그 배우자 기타 본법의 규정에 의하여 그 가에 입적한 자는 가족이 된다.
제784조(부의 혈족 아닌 처의 직계비속의 입적) ① 처가 부의 혈족아닌 직계비속이 있는 때에는 부의 동의를 얻어 그 가에 입적하게 할 수 있다.
② 전항의 경우에 그 직계비속이 타가의 가족인 때에는 그 호주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제785조(호주의 직계혈족의 입적) 호주는 타가의 호주아닌 자기의 직계존속이나 직계비속을 그 가에 입적하게 할 수 있다.
제787조(처등의 복적과 일가창립) ① 처와 부의 혈족아닌 그 직계비속은 혼인의 취소 또는 이혼으로 인하여 그 친가에 복적하거나 일가를 창립한다.
② 부가 사망한 경우에는 처와 부의 혈족아닌 그 직계비속은 그 친가에 복적하거나 일가를 창립할 수있다.
제788조(분가) ① 가족은 분가할 수 있다.
제789(법정분가) 가족은 혼인하면 당연히 분가된다. 그러나 호주의 직계비속 장남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제980조(호주승계개시의 원인) 호주승계는 다음 각 호의 사유로 인하여 개시된다.
1. 호주가 사망하거나 국적을 상실한 때
2.양자인 호주가 입양의 무효 또는 취소로 인하여 이적된 때
3. 여호주가 친가에 복적하거나 혼인으로 인하여 타가에 입적한 때
제984조(호주승계의 순위) 호주승계에 있어서는 다음 순위로 승계인이 된다.
1. 피승계인의 직계비속남자
2. 피승계인의 가족인 직계비속여자
3. 피승계인의 처
4. 피승계인의 가족인 직계비속여자
5. 피승계인의 가족인 직계비속의 처
제991조(호주승계권의 포기) 호주승계권은 이를 포기할 수 있다.
2. 제청이유와 관계기관의 의견
가. 제청이유
(1)민법 제778조는 “일가의 계통을 승계한 자, 분가한 자 또는 기타 사유로 인하여 일가를 창립하거나 부흥한 자는 호주가 된다.”라고 규정함으로써 모든 가(家)에는 반드시 호주가 존재하는 이른바 호주제도를 우리 가족제도의 기본원칙으로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조에 의한 호주제도는 호주에게 우월적 지위를 부여하여 일가를 구성하는 구성원들로 하여금 호주를 정점으로 강제적이고 일률적으로 순위 지워지게 함으로써 존엄한 인격을 가진 개인들이 평등한 차원에서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고 있으므로 위 법조는 민주적 기본질서를 규정한 헌법 전문 및 제4조에 위반된다.
(2)위와 같이 호주제도는 개인에게 자신의 법적 지위를 스스로 형성할 기회를 부여하지 아니하는 결과 개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각자를 지배·복종 관계에 강제로 편입시키고 호주 아닌 가족을 호주에게 종속시킴으로써 개인의 자율적인 법률관계 형성을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열위의 지위를 강제하여 인격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위 법조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을 규정한 헌법 제10조에도 위반된다.
(3)위 법조에 기초하는 호주제도는 혼인과 가족생활에서 그 구성원 상호간의 평등한 법률관계 형성을 막고 남성에게 호주가 되는 우선적인 지위를 인정함으로써 합리적 근거 없이 아내의 지위를 남편보다 하위
에, 어머니의 지위를 아버지보다 하위에 각 위치하게 하는 정당성 없는 남녀차별을 초래하여 성별에 의한 차별을 금지한 헌법 제11조 제1항과 개인의 자율적 의사와 양성의 평등에 기초한 혼인생활과 가족생활의 자유로운 형성을 보장하는 헌법 제36조 제1항에 각 위반된다.
(4)우리 사회의 가족제도를 유지하기 위하여 개인의 권리를 부득이 제한할 필요가 있다 하더라도 위 법조에 의하여 형성되는 호주제도는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합성, 법익의 최소침해성 및 법익침해의 균형성을 갖춘 정당한 기본권 제한이 아닐 뿐만 아니라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까지 침해하고 있어 위 법조는 과잉금지원칙을 규정한 헌법 제37조 제2항에 위배된다.
(5)민법 제781조 제1항 본문 후단은 부계중심주의 원칙을 채택하여 자녀가 속할 가를 원칙적으로 아버지의 가로 정하여 남녀의 성(性)에 따른 차별을 두고 있으므로 헌법 제11조 제1항 및 제36조 제1항에 위배된다.
(6)민법 제781조 제1항 본문 후단을 비롯한 자녀의 입적에 관한 민법의 체제는 일단 아버지의 가에 속하게 된 자녀가 부모의 이혼 등으로 아버지와의 가족공동생활이 불가능하게 된 경우에도 자녀에 대하여 어머니의 가로의 전적의 여지를 두지 아니하고 있는데 이는 모자의 권리를 지나치게 침해하는 것으로서 헌법 제37조 제2항에 위배된다.
나. 법무부장관의 의견
정부는 가족제도에 있어 헌법상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 양성평등의 이념을 보다 충실히 구현하고, 기존의 호주를 중심으로 한 가족제도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현실의 다양한 가족형태를 포용하고 국민의 변화된 가족관념과 새로운 가족제도 구성에 대한 국민적 여망을 반영하여, 호주제 폐지, 자녀 성(姓)결정에 있어 부성(父姓)강제 완화, 자녀의 복리를 위한 성의 변경 허용을 근간으로 하는 민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다. 여성부장관, 국가인권위원회의 의견
위 제청이유와 대체로 같다.
3. 판 단
가. 호주제의 개관
(1) 민법 제778조 등과 호주제의 관계
헌법재판소는 심판대상이 된 법률조항의 위헌여부만을 판단한다. 그런데 어떤 법률조항은 법률 내에서 고립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법률조항들을 전제로 하거나 조건으로 하기도 하고, 다른 법률조항들과 결부하여 하나의 법률효과를 지향하기도 한다. 그
러한 법률조항의 의미와 기능은 체계적 관련성 속에서만 올바로 이해될 수 있다. 특히 민법 제778조와 같이 어떤 법제도의 근거조항인 경우 더욱 그러하다. 호주제는 민법 제4편 제2장 ‘호주와 가족’을 중심으로 한 여러 법률조항들이 그물망처럼 서로 연결되어 구성된 제도이다. 민법 제778조는 그러한 호주제의 근거조항으로서 핵심적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조항이다. 따라서 민법 제778조는 호주제와의 관련성을 떠나서는 고립적으로 그 위헌여부를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
한편 민법 제781조 제1항 본문 후단 및 제826조 제3항 본문 또한 호주제의 골격을 구성하는 주요 법률조항들이고 민법 제778조와도 불가분의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렇다면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들의 위헌여부는 결국 호주제라는 제도 자체의 위헌여부로 귀착된다고 할 것이므로, 이 사건에서는 호주제 전반의 내용, 위헌여부를 살펴보고 이와 결부시켜서 심판대상조항들의 위헌여부를 판단함이 상당하다.
(2) 호주제의 개념
호주제의 개념을 정의한 법률조항은 따로 없다. 호주제란 민법 제4편 제2장 ‘호주와 가족’, 동편 제8장 ‘호주승계’를 중심으로 일정한 법률조항들을 묶어, 이러한 법률조항들의 연결망이 형성하는 법적 상태를 지칭하는 말이나, 민법의 개별조항들이 담고 있는 내용들을 종합하여 보면 결국 ‘호주제’란 ‘호주를 정점으로 가(家)라는 관념적 집합체를 구성·유지하고, 이러한 가를 원칙적으로 직계비속남자에게 승계시키는 제도’라고 집약하여 정리할 수 있고, 이를 달리 말하여 보면 남계혈통을 중심으로 가족집단을 구성하고 이를 대대로 영속시키는데 필요한 여러 법적 장치라고도 할 수 있다. 호주제가 단순히 집안의 대표자를 정하여 이를 호주라는 명칭으로 부르고 호주를 기준으로 호적을 편제하는 제도는 아니다.
(3) 호주제의 구성요소
호주제를 위와 같이 정리한다면 결국 호주제의 핵심적인 구성요소는 ‘가(家)의 구성’과 ‘호주승계’라고 할 수 있다.
(가) 가(家)의 구성
민법은 가(家)의 개념을 여러 곳에서 사용하면서도 정의규정은 두고 있지 않다. 그러나 민법 제778조와 제779조 및 기타 관련조항을 모아 보면 가란 원칙적으로 호주와 가족으로 구성됨을 알 수 있다. 호주란 “일가(一家)의 계통을 계승한 자, 분가한 자 또는 기타 사유로 인하여 일가를 창립하거나 부흥한 자”를 말하고
(민법 제778조), 가족이란 “호주의 배우자, 혈족과 그 배우자 기타 민법의 규정에 의하여 그 가에 입적한 자”를 말한다(민법 제779조). 자(子)는 부가(父家)에 입적하고(민법 제781조 제1항 본문 후단), 처는 부(夫)의 가에 입적한다(민법 제826조 제3항 본문). 이러한 조항들을 통하여 호주와 가족으로 이루어지는 가의 기본형이 구성된다. 모든 국민은 호주 또는 가족으로서 반드시 어떤 가에 속하게 된다.
가는 호주를 중심으로 하여 호주와 가족이라는 신분관계로 상호간에 연결된 관념적인 가족단체로서, 현실생활공동체와는 무관하다. 망부의 장남자로서 호주의 지위를 승계한 가상의 인물 갑(甲)의 예를 들어 보면, 갑이 가족을 떠나 다른 곳에서 내연의 처와 동거하고 있더라도, 혹은 갑의 장남자인 을(乙)이 그의 처와 아들을 데리고 나와 독립가계를 꾸리고 있더라도 이들은 법률상 여전히 같은 가에 귀속되며, 호주는 여전히 갑이다.
이러한 가의 구성은 법률상 강제된다. 이 법률상 강제의 대표적인 내용을 신분당사자별로 나누어 살펴보면, 첫째, 민법 제778조의 요건이 충족되면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법률상 당연히 호주로 된다. 둘째, 장남자가 아닌 남자는 혼인하면 일가를 따로 거느리고 호주가 된다(민법 제778조, 제789조). 그러나 여자가 혼인하면 민법 제826조 제3항에 따라 ‘친정의 가족’에서 ‘남편이 호주인 가의 가족’ 또는 ‘시가의 가족’으로 신분관계가 변동된다. 셋째, 자녀가 출생하면 당연히 부가(父家)에 입적한다(민법 제781조 제1항 본문 후단). 이혼한 여자가 자녀의 친권자와 양육자로 지정되어 자녀를 보살피며 생활공동체를 이루더라도 그 자녀는 어머니와 가를 이루지 못하고 여전히 아버지가 호주인 가의 가족으로 남는다.
이와 같이 호주제는 호주를 정점으로 가를 구성하며, 가족원은 평등하고 독립된 인격체로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호주의 배우자, 호주의 혈족, 호주의 혈족의 배우자와 같은 식으로 호주와의 관계자로서만 파악된다(민법 제779조). 호주제는 호주를 가의 중심적 지위에 두고 가족원을 주변적 지위에 배치하여 놓고 있다. 그러므로 호주의 변경이 있는 경우에는 전 호주의 가족은 신 호주의 가족이 된다는 민법 제780조의 규정은 호주제의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다.
(나) 호주의 권한과 의무
첫째, 가족의 거가(去家)에 대한 동의권. 가족이 그 모의 재혼가에 입적할 경우 종래의 호주는 거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민법 제784조 제2항).
둘째, 직계혈족을 입적시킬 권한. 호주는 타가의 호주 아닌 자기의 직계존속이나 직계비속을 자신의 가에 입적시킬 수 있다(민법 제785조).
셋째, 친족회에 관한 권한. 가정법원에 대하여 친족회 소집을 청구할 권한(민법 제966조), 친족회에 출석하여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권한(민법 제968조), 친족회의 결의에 갈음할 재판을 청구할 권한(민법 제969조), 친족회의 결의에 대한 이의의 소를 제기할 권한(민법 제972조).
넷째, 폐가할 수 있는 권한. 일가창립 또는 분가로 인하여 호주가 된 자는 타가에 입양하기 위하여 폐가할 수 있고(민법 제793조), 여(女) 호주는 혼인하기 위하여 폐가할 수 있다(민법 제794조).
구 민법은 호주에 대하여 가족부양의무를 지우고 있었으나(제797조), 1990년 개정 시 삭제되었다.
이와 같이 1990년의 민법 개정으로 호주의 권한은 매우 빈약하게 되었고, 호주의 의무는 전혀 없게 되었다. 여기서 호주의 가부장적 권한이 거의 삭제되었으므로 호주제는 실질적으로 형해화된 것이고, 상징적인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거가동의권, 직계혈족 입적권과 같은 권리가 유보되어 있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강제적 가의 구성과 이에 수반되는 가족관계의 강제형성, 가의 승계라는 호주제의 요소는 엄존하고 있고, 이는 상징적인 의미만 지니는 것이 아니라 민사실체법적 효과를 지니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만 보더라도, 여자가 혼인하면 친가의 가족에서 시가 또는 부가(夫家)의 가족으로 신분이 전환되고, 자녀가 이혼한 모를 따라 재혼가정에서 가족공동체를 꾸리고 있더라도 재혼 부가(夫家)의 가족이 될 수 없으며, 호주의 장남자가 사망하고 그 처와 자녀들이 시가와는 별도로 완전히 독립된 생활공동체로 살아가더라도 그 처를 중심으로 한 독립적인 가족관계를 따로 형성하지 못하고 여전히 그 처의 시아버지이자 그 자녀들의 할아버지인 호주와의 가족관계에 얽매이게 된다. 신분관계를 이와 같이 강제로 변화시키기도 하고 변화를 방해하기도 하는 것은 엄연한 법적 효과이다.
(다) 호주의 승계(가의 영속성)
여기서 일가의 계통의 계승이란 곧 호주승계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민법 제984조는 호주승계의 순위를, ① 직계비속남자 ② 가족인 직계비속여자 ③ 처 ④ 가족인 직계존속여자 ⑤ 가족인 직계비속의 처로 정하고 있다. 즉, 사망한 전 호주의 아들, 손자, 미혼의 딸, 처, 어머니, 며느리 순으로 되어 있어 철저히 남성우월적 서열을 매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호주승계제도를 통하여 가는 그 구성원의 사망, 혼인, 분가 등에도 불구하고 부단히 후세에 이어지게 되어 그 영속성이 보장되는바, 그 기초에는 남계혈통은 계승되어야 한다는 관념이 놓여 있다.
구 민법은 호주의 직계비속장남자의 임의분가를 금지하고(제788조 제1항 단서), 호주상속권은 이를 포기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제991조), 호주라는 법적 지위를 강제로 승계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현행 민법은 호주의 직계비속장남자의 임의분가도 허용하고(민법 제788조 제1항), 호주승계권의 포기를 허용함으로써(민법 제991조) 강제적 호주승계의 제도는 해소되었다. 그러나 호주승계순위의 남성우월로 인하여 실제 직계비속남자들 모두(예컨대, 형제들 모두 또는 아들·손자 모두) 호주승계권을 포기하지 않는 한 호주의 지위는 남자에 의해 승계되므로, 호주승계포기조항으로 인하여 남계혈통의 계승이라는 호주제도 본래의 취지와 기능에 큰 변화가 생겼다고는 평가하기 어렵다.
나. 헌법과 전통
호주제를 비롯한 가족제도에 관하여는 그것이 민족의 역사와 문화에 뿌리박은 전통이므로 이를 함부로 합리성의 잣대로 평가하거나 남녀평등의 도식으로 재단하여서는 아니 되고, 그와 같이 하였을 경우 규범과 국민들의 의식 간에 괴리만 부채질하게 된다는 논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헌법과 전통, 헌법과 가족법간의 관계에 관하여 살펴본다.
(1) 헌법과 가족법
헌법은 모든 국가질서의 바탕이 되고 한 국가사회의 최고의 가치체계이므로 다른 모든 법적 규범이나 가치보다 우선하는 효력을 가진다는 점에 대하여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헌법은 한 국가의 최고규범으로서 입법·행정·사법과 같은 모든 공권력의 행사가 헌법에 의한 제약을 받는 것은 물론, 사법(私法)상의 법률관계도 직·간접적으로 헌법의 영향을 받게 된다. 헌법재판소는 일찍이 “헌법은 국민적 합의에 의해 제정된 국민생활의 최고 도덕규범이며 정치생활의 가치규범으로서 정치와 사회질서의 지침을 제공하고 있기
가족제도는 민족의 역사와 더불어 생성되고 발전된 역사적·사회적 산물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기는 하나, 그렇다고 하여 가족제도나 가족법이 헌법의 우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없다. 만약 이것이 허용된다면 민법의 친족상속편에 관한 한 입법권은 헌법에 기속되지 않으며, 가족관계의 가치질서는 헌법의 가치체계로부터 분리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이것이 입헌민주주의에서 용납될 수는 없다.
만약 헌법이 가족생활이나 가족제도에 관하여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면 다른 헌법규정과 저촉되지 않는 한 전통적 가족제도는 가급적 존중함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헌법이 가족생활에 관하여 중립을 지키지 않고 스스로 어떤 이념·가치,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면 그것이 가족생활·가족제도에 관한 최고규범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오늘날 헌법은 가족생활관계도 이를 단순히 사인(私人)간의 사적 문제로만 파악하지 않고 그것이 국민생활 내지 국가생활의 한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를 헌법사항에 포함시키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오늘날 많은 국가의 헌법에서 가족생활관계에 대해서도 그 근본이 되는 원칙을 헌법의 한 내용으로 다루고 있다. 우리 헌법도 제36조 제1항에서 혼인과 가족생활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특히 정치·사회적 변혁기에 새로운 정치·사회질서, 새로운 가치와 이념을 지향하면서 제정된 헌법(우리의 제헌헌법이 이에 해당한다)의 경우,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 전래의 제도를 헌법에 맞게 고쳐나가라는 헌법제정권자의 의사가 표출되기도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국민의 법감정이나 정서와 헌법규범간의 괴리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새로운 헌법이념의 채택에도 불구하고 고래로부터 이어져 온 의식은 쉽게 변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족법의 역할은 사회현상이나 국민의 법감정을 단순히 반영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의 최고가치질서인 헌법이념을 적극적으로 계도하고 확산시키는 역할 또한 가족법의 몫이다. 그런데 가족법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기는커녕 헌법이념의 확산에 장애를 초래하고, 헌법규범과 현실과의 괴리를 고착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면 그러한 가족법은 수정되어야 한다.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
한국민”을 강조하고 있으며, 헌법 제9조는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편 헌법 제36조 제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헌법 제9조와 제36조 제1항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어떻게 조화롭게 해석할 것인지 문제되는바, 그 해답의 단초는 헌법 제36조 제1항의 특별한 입헌취지에 더하여 전통 내지 전통문화의 헌법적 의미를 조명하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헌법 제36조 제1항의 연혁을 살펴보면, 제헌헌법 제20조에서 “혼인은 남녀동권(男女同權)을 기본으로 하며, 혼인의 순결과 가족의 건강은 국가의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한 것이 그 시초로서, 헌법제정 당시부터 평등원칙과 남녀평등을 일반적으로 천명하는 것(제헌헌법 제8조)에 덧붙여 특별히 혼인의 남녀동권을 헌법적 혼인질서의 기초로 선언한 것은 우리 사회 전래의 혼인·가족제도는 인간의 존엄과 남녀평등을 기초로 하는 혼인·가족제도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 하에 근대적·시민적 입헌국가를 건설하려는 마당에 종래의 가부장적인 봉건적 혼인질서를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헌법적 결단의 표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헌법의 의지는 1980년 헌법에서 더욱 강화되었다. 양성평등 명령이 혼인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가족생활로 확장되었고, 양성평등에 더하여 개인의 존엄까지 요구하였다. 여기에 현행 헌법은 국가의 보장의무를 덧붙임으로써 이제 양성평등과 개인의 존엄은 혼인과 가족제도에 관한 최고의 가치규범으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한편, 헌법 전문과 헌법 제9조에서 말하는 ‘전통’, ‘전통문화’란 역사성과 시대성을 띤 개념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과거의 어느 일정 시점에서 역사적으로 존재하였다는 사실만으로 모두 헌법의 보호를 받는 전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전통이란 과거와 현재를 다 포함하고 있는 문화적 개념이다. 만약 전통의 근거를 과거에만 두는 복고주의적 전통개념을 취한다면 시대적으로 특수한 정치적·사회적 이해관계를 전통이라는 이름 하에 보편적인 문화양식으로 은폐·강요하는 부작용을 낳기 쉬우며, 현재의 사회구조에 걸맞는 규범 정립이나 미래지향적 사회발전을 가로막는 장애요소로 기능하기 쉽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헌법 제9조의 정신에 따라 우리가 진정으로 계승·발전시켜야 할 전통문화는 이 시대의 제반 사회·경제적 환경에 맞고 또 오늘날에 있어서도 보편타당한 전통윤리 내지 도덕관념이라 할
것이다.”(헌재 1997. 7. 16. 95헌가6 등, 판례집 9-2, 1, 19)고 하여 전통의 이러한 역사성과 시대성을 확인한바 있다.
따라서 우리 헌법에서 말하는 ‘전통’ ‘전통문화’란 오늘날의 의미로 재해석된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오늘날의 의미를 포착함에 있어서는 헌법이념과 헌법의 가치질서가 가장 중요한 척도의 하나가 되어야 할 것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고 여기에 인류의 보편가치, 정의와 인도의 정신 같은 것이 아울러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가족제도에 관한 전통·전통문화란 적어도 그것이 가족제도에 관한 헌법이념인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에 반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자명한 한계가 도출된다. 역사적 전승으로서 오늘의 헌법이념에 반하는 것은 헌법 전문에서 타파의 대상으로 선언한 ‘사회적 폐습’이 될 수 있을지언정 헌법 제9조가 ‘계승·발전’시키라고 한 전통문화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원리, 전문, 제9조, 제36조 제1항을 아우르는 조화적 헌법해석이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전래의 어떤 가족제도가 헌법 제36조 제1항이 요구하는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에 반한다면 헌법 제9조를 근거로 그 헌법적 정당성을 주장할 수는 없다.
다. 호주제의 위헌성
(1) 양성평등원칙 위반
(가) 성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에 기초한 차별
헌법 제36조 제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에서 양성의 평등대우를 명하고 있으므로 남녀의 성을 근거로 하여 차별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되고, 성질상 오로지 남성 또는 여성에게만 특유하게 나타나는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필요한 예외적 경우에만 성차별적 규율이 정당화된다. 과거 전통적으로 남녀의 생활관계가 일정한 형태로 형성되어 왔다는 사실이나 관념에 기인하는 차별, 즉 성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에 기초한 차별은 허용되지 않는다.
호주제는 남계혈통을 중심으로 인위적 가족집단인 가를 구성하고 이를 승계한다는 것이 그 본질임은 위에서 본바와 같다. 인위적 가족집단인 가를 구성·유지하는 것이 정당한지 여부를 차치하고서, 남계혈통 위주로 가를 구성하고 승계한다는 것은 성에 따라 아버지와 어머니를, 남편과 아내를, 아들과 딸을, 즉 남녀를 차별하는 것인데, 이러한 차별을 정당화할 만한 사유가 없다.
숭조(崇祖)사상, 경로효친, 가족화합과 같은 전통사
상이나 미풍양속의 보존을 위하여 호주제를 존치하여야 한다는 견해도 있을 수 있으나, 그러한 것은 문화와 윤리의 측면에서 얼마든지 계승, 발전시킬 수 있다. 호주제를 유지한다고 하여 그러한 전통문화나 미풍양속이 저절로 배양되는 것도 아니고, 호주제를 폐지한다고 하여 그러한 것이 저절로 폐기되는 것도 아니다.
호주제의 남녀차별은 가족 내에서의 남성의 우월적 지위, 여성의 종속적 지위라는 전래적 여성상에 뿌리박은 차별로서 성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에 기초한 차별에 지나지 않는다.
(나) 호주승계 순위의 차별
민법 제778조는 민법 제984조와 결합하여 호주 지위의 승계적 취득에 있어 철저히 남성우월적 서열을 매김으로써 남녀를 차별적으로 취급하고 있다.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어머니와 누나들을 제치고 아들이, 또한 할머니, 어머니를 제치고 유아인 손자가 호주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미혼의 딸도 아들이나 손자가 없을 경우에는 호주가 될 수 있으나, 나중에 혼인하게 되면 남편 또는 시아버지가 호주인 가의 가족원으로 입적되므로 평생을 미혼으로 지내지 않는 한 호주의 지위를 계속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호주제는 모든 직계비속남자를 정상적 호주승계자로 놓고 고안된 제도이며, 여자들은 남자들이 없을 경우 일시적으로 가를 계승시키기 위하여 보충적으로 호주 지위가 주어지는 잔여범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다) 혼인 시 신분관계 형성의 차별
혼인이란 남녀가 평등하고 존엄한 개인으로서 자유로운 의사의 합치에 의하여 생활공동체를 이루는 것이어야 하므로 부부관계라는 생활공동체에 있어 남녀는 동등한 지위를 유지하여야 한다. 그런데 민법 제826조 제3항 본문에 의하여 여자는 혼인하면 법률상 당연히 부(夫)의 가에 입적하게 되는바, 이 조항은 민법 제789조와 결합하여 다음과 같은 법률효과를 일으킨다.
첫째, 부(夫)가 호주의 직계비속장남자인 경우에, 부는 법정분가하지 않고 그대로 자신의 가에 머무는 반면, 처는 종래 소속되어 있던 자신의 가를 떠나 부의 가의 새로운 가족원이 된다(대개의 경우 친정아버지가 호주인 가에서 시아버지가 호주인 가로의 전입을 의미한다).
둘째, 부(夫)가 호주의 직계비속장남자가 아닌 경우에, 부는 법정분가하면서 새로운 가의 호주가 되는 반면, 처는 부의 가에 입적되므로 입부혼을 제외하고는 그 가의 가족원이 될 뿐 호주지위를 획득할 수 없다. 부부는 혼인관계의 대등한 당사자로서 부부공동체에 있
어 동등한 지위와 자격을 누려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처의 입적제도는 처의 부에 대한 수동적·종속적 지위를 강제한다.
처의 입적제도는 호주승계에 있어서 여자의 열등적 지위와 결합하여 여성으로 하여금 어려서는 아버지(때로는 오빠 또는 남동생)의 가에, 혼인하여서는 남편의 가에, 늙어서는 아들의 가에 귀속토록 하고 있는데, 이는 여성에 대한 봉건적 삼종지의(三從之義)의 한 모습을 오늘날에 재현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을지언정 개개의 여성을 존엄한 독립적 인격체로서 존중하라는 헌법 제36조 제1항에서 예정하고 있는 여성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실제 처의 입적이라는 법률적 제도가 사회심리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매우 광범위하고 깊다. 법률적으로는 단순히 소속 가의 변경에 불과하지만, 이것이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인식에 미치는 상징적, 심리적 의미는 매우 중대하다. 혼인과 동시에 ‘호적을 파서’ 남편의 호적으로 옮긴다는 것은 이제 친정과의 결별이자 시가의 일원으로 편입되었다는 것에 대한 공식적인 확인의 의미를 지닌다. 실제 많은 여자들이 혼인신고 시에 정체성의 혼돈·상실이라는 경험을 겪는다고 한다. 그러한 공식적 확인을 통해 가족구성원의 인식과 심리에 이제 혼인한 여자는 ‘출가외인(出嫁外人)’으로 내면화되고, 가족관계에 있어 시댁과 친정이라는 이분법적 차별구조가 정착된다. 가족관계에 대한 이러한 인식과 양상은 당연히 남아선호라는 병폐와 연결되고, 사회적 관계에로 확장되었을 때에는 남성우위·여성비하의 사회적 풍토를 조성·유지하게 된다.
민법 제826조 제3항 단서는 처가 친가의 호주 또는 호주승계인인 때에는 부(夫)가 처의 가에 입적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이른바 입부혼), 이러한 제도를 두었다 하여 본문조항의 남녀차별성이 상쇄될 수 없다. 현실적으로 입부혼이 거의 행해지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통계를 보면 2000년도 보통의 혼인신고는 368,151건, 처가입적 혼인신고는 24건, 1999년도의 경우 전자는 398,040건, 후자는 34건, 1998년도의 경우 전자는 396,206건, 후자는 6건임을 알 수 있다), 법률적으로도 처가 친가의 호주 또는 호주승계인인 때로 한정하고 있는 점, 처가에의 입적여부를 부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게 한 점에서 처의 부가(夫家)입적의 경우와는 분명히 차별적 취급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보다 본질적으로 보면 입부혼 또한 가계계승의식의 발현으로서, 부계혈통계승의 영속화를 위해 1회적·잠정적으로 모계를 활용하는 편법에 불과하다.
(라) 자녀의 신분관계 형성의 차별
1) 부가입적(父家入籍)원칙의 문제
민법 제781조 제1항 본문 후단은 “자는 …… 부가에 입적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에 따라 혼인중의 자(子)는 출생에 의하여 당연히 부가(父家)에 입적한다. 입부혼(入夫婚)의 경우에는 반대로 부부간의 자는 모가(母家)에 입적한다(민법 제826조 제4항). 부가 외국인인 때에도 모가에 입적한다(민법 제781조 제1항 단서). 혼인외의 자는 부가 인지함으로써 부가에 입적한다. 부의 인지가 없는 혼인외의 자는 모가에 입적한다(민법 제781조 제2항).
이와 같이 현행 민법은 극히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를 부가에 입적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자녀가 태어나면 당연히 부가(父家)에 입적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가의 존재를 전제로 하여 자녀를 부계혈통만을 잇는 존재로 간주하겠다는 부계혈통 우위의 사고에 기초한 것인데, 이는 자녀가 부모의 양계혈통을 잇는 존재라는 자연스럽고 과학적인 순리에 반하며, 부에 비하여 모의 지위를 열위에 둠으로써 부당히 차별하는 것이다. 모가에 입적할 수 있는 예외적 규정을 두고 있지만 이는 모두 부가로의 입적이 불가능한 경우로 한정되어 그 범위가 너무 협소하므로 원칙적인 남녀차별성을 치유할 수 없다.
자를 부가에 입적시킨다는 이 민법조항의 본질적인 의의는 단순히 호적법상 호적편제의 기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남계혈통을 통한 가의 계승이라는 호주제의 관철에 있다. 대부분 호주의 지위를 겸하고 있는 부의 가에 자녀를 편입시키는 것은 ‘호주 중심의 가의 구성’을 위한 불가결의 요소를 이루며, 또한 ‘후손을 통한 가의 계승’이라는 호주제의 또 다른 내용을 실현하기 위한 전제가 된다.
2) 부모가 이혼한 경우의 문제
자(子)에 대한 신분법적 규율은 첫째로, 자의 복리향상에 그 목적을 두어야 하고, 둘째, 가능한 한 친자관계 당사자의 자율적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일률적으로 자를 부가(父家)에 입적하도록 함으로써 부모가 이혼한 경우에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야기된다. 부모가 이혼한 경우에는 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으며, 우리 사회의 이혼율 증가와 더불어 이혼 후 모가 자녀와 함께 사는 모자가정의 수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모(母)가 자녀의 친권자와 양육자로 지정되어 생활공동체를 형성하더라도 자녀는 민법 제781조 제1항 본문 후단에 따라 여전히 부(父)의
호적에 남아 있게 된다. 즉, 법적인 가족관계는 부자간에 있을 뿐이지, 모자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부(夫)의 혈족 아닌 처의 직계비속만이 친가복적이나 일가창립을 통하여 모와 동적(同籍)할 수 있을 뿐이다(민법 제787조 제1항).
그리하여 부의 양육권 포기, 재혼 등으로 부와 자녀간의 교류가 전혀 단절되어 있더라도, 자녀학대, 성추행, 폭행 등으로 가정파탄의 원인을 부가 제공한 경우에도, 당사자인 자녀가 아무리 부가를 떠나 모가에의 입적을 원하더라도, 부 스스로 자녀의 모가입적을 분명히 원하는 경우에도 그 자녀는 여전히 부가에 소속되고 그 부가 자녀들의 호주가 된다. 반면 모는 주민등록상의 ‘동거인’에 불과하게 된다. 모와 자녀가 현실적 가족생활대로 법률적 가족관계를 형성하지 못하여 비정상적 가족으로 취급됨으로써 사회생활을 하는데 여러모로 불편할 뿐 아니라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된다. 이러한 결과는 헌법에 반함은 물론 오늘날의 가족현실에도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3) 인수입적(引收入籍)의 문제
처가 부(夫)의 혈족이 아닌 직계비속을 가에 입적시키려면 부의 동의가 있어야 하며, 이 경우에 그 직계비속이 타가(他家)의 가족인 때에는 그 호주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민법 제784조). 그리하여 이혼 후 자녀를 양육하여 오다가 재혼한 처가 전부(前夫) 소생의 자녀들과 함께 살더라도 재혼한 부(夫)의 동의가 없으면 자녀들과 각기 다른 가의 구성원이 될 수밖에 없다. 설령 재혼한 부가 동의하더라도, 전부(前夫)가 동의하지 않으면 자녀들은 전부(前夫)의 가를 떠날 수 없다.
재혼율, 특히 여성의 재혼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문제 또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부(夫)가 처의 혈족이 아닌 직계비속을 입적함에는 처의 동의라는 제한이 없는데 비하여, 처의 경우 위와 같은 제한을 둔 것은 부계혈족 아닌 혈족의 부가(夫家)입적을 제한하려는 것이고(제784조 제1항의 경우), 또한 가계계승을 고려한 것으로서(동조 제2항의 경우) 역시 남계혈통만을 중시하는 호주제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4) 미혼모의 경우의 문제
미혼모가 자녀를 출산한 경우 부가 인지하지 않으면 모가에 입적한다(민법 제781조 제2항). 그러나 생부가 인지하면 모나 자녀의 의사에 상관없이 부의 가에 입적된다. 생부가 모와 혼인할 의사가 없고, 자녀를 양육하지도, 그럴 의사가 없더라도 생부의 일방적 행위에
의하여 자녀는 가족관계의 엄청난 변화를 감수하여야 하는데, 이 또한 남성우월적 사고에 터잡은 것이다.
(2) 개인의 존엄 위반
헌법 제36조 제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을 존중하는 가운데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함을 분명히 하고 있다. 혼인과 가족생활은 인간생활의 가장 본원적이고 사적(私的)인 영역이다. 이러한 영역에서 개인의 존엄을 보장하라는 것은 혼인·가족생활에 있어서 개인이 독립적 인격체로서 존중되어야 하고, 혼인과 가족생활을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지에 관한 개인과 가족의 자율적 결정권을 존중하라는 의미이다. 혼인과 가족생활을 국가가 결정한 이념이나 목표에 따라 일방적으로 형성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민주주의원리와 문화국가원리에 터잡고 있는 우리 헌법상 용납되지 않는다. 국가는 개인의 생활양식, 가족형태의 선택의 자유를 널리 존중하고, 인격적·애정적 인간관계에 터잡은 현대 가족관계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헌재 2000. 4. 27. 98헌가16 등, 판례집 12-1, 427, 445, 446 참조).
따라서 혼인·가족제도가 지닌 사회성·공공성을 이유로 한 부득이한 사유가 없는 한, 혼인·가족생활의 형성에 관하여 당사자의 의사를 무시하고 법률의 힘만으로 일방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개인의 존엄에 반하는 것이다.
그런데 호주제는 당사자의 의사와 자결권을 무시한 채 남계중심의 가제도의 구성을 강제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하여 신분당사자의 법률관계를 일방적으로 형성한다.
첫째, 대한민국 국민은 예외 없이 호주이든, 가족이든 법률상의 가족단체인 가에 소속되어야 한다.
둘째, 개인의 의사에 반하여 호주의 지위를 강제로 부여한다. 호주가 되면 가의 대표자로서의 지위, 일가의 계통을 계승하는 자의 지위에 놓이게 되며, 몇 가지 호주로서의 권한도 부여받게 된다. 이는 법률상 무의미한 지위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민법 제778조의 요건이 충족되면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법률상 당연히 호주로 되어, 자신과 가족에 관하여 의미있는 신분법상의 지위를 강요당하게 된다(다만, 승계취득의 경우 적극적으로 포기권을 행사한다면 호주의 지위를 면할 수 있다). 당해사건 제청신청인들의 사례는 이러한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부부 어느 쪽도 호주가 되길 원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무호주선택권은 인정되지 않고 혼인으로 인한 법정분가의 효과로 부(夫)에게 호주의 지위가 강제되었던 것이다.
셋째, 모든 개인은 가족 내에서 평등하고 존엄한 개체로서가 아니라 호주와의 관계를 통하여 가족 내의 신분적 지위가 자리매김 된다. 물론 여기에서 호주는 중심적 존재로서, 나머지 가족원은 주변적 존재로서 위계화된 가족질서 내에 배치된다.
이와 같이 호주제는 개인을 독립적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남계혈통 중심의 가의 유지와 계승이라는 목적을 위한 대상적·도구적 존재로 파악하고 있다. 호주제는 혼인과 가족생활 당사자의 복리나 선택권을 무시한 채 가의 유지와 계승이라는 관념에 뿌리박은 특정한 가족관계의 형태를 법으로써 일방적으로 규정하고 강요하는 것인데, 이는 혼인과 가족생활에서 개인의 존엄을 존중하라는 헌법 제36조 제1항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는다.
(3) 변화된 사회환경과 가족상(家族像)
부계혈통주의에 입각한 가부장적 가족제도가 우리 민족 전래의 가족제도임을 인정하고, 호주제가 그러한 가족제도와 일정한 연관성을 가진다고 가정하더라도 호주제가 성립·유지될 수 있었던 사회적 배경은 오늘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확산된 부계혈통주의에 입각한 가부장적 가족제도의 이념적 배경은 종법사상과 성리학이라 할 것인바, 이것이 오늘날의 우리 사회를 직접 이끌어가는 지도적 이념이나 원리라고 하기는 어렵고, 따라서 그에 기초한 가족제도 또한 오늘날 현대가족의 표준이 되기 어렵다.
조선후기와는 사회·경제적 환경도 완전히 바뀌었다. 가부장제의 경제적 토대는 농경사회였다. 그런데 20세기 중반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산업화의 진전은 우리 사회를 크게 변모시켰다. 농업중심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이행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생산관계의 변화는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정치·문화 등 모든 면에서 변화를 초래하였다. 도시화의 진전, 핵가족의 정착으로 가족공동체의 모습과 생활원리가 판이하게 달라졌고, 대중교육의 발달, 여성의 사회진출 증가는 개인의 자유의식, 여성의 인권의식을 신장시켰다.
오늘날 가족이란 일반적으로 부모와 미혼자녀로 구성되는 현실의 생활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고, 대부분의 가족이 그러한 소가족의 형태를 띠고 있다. 가족의 기능이나 가족원의 역할분담에 대한 의식도 현저히 달라졌고 특히 남녀평등관념이 정착되고 있다. 이제 가족은 한 사람의 가장(호주)과 그에 복속하는 가속(家屬)으로 분리되는 권위주의적인 조직이 아니며, 가족원 모두가 인격을 가진 개인으로서 존중되
는 민주적인 관계로 변화하고 있다. 부부의 관계는 물론 부모와 자녀의 관계도 대화와 상호 존중의 원리에 의해 형성·유지되어야 한다는 관념이 확산되고 있다.
한편, 사회의 분화에 따라 가족의 형태도 매우 다변화되고 있다. 부모와 자녀로 구성되는 전형적 가족뿐 아니라 자녀가 없는 부부만의 가족, 모와 자녀로 구성되는 가족, 재혼부부와 그들의 전혼소생자녀들로 구성되는 가족들도 많다. 할아버지부터 손자녀까지 같이 사는 3세대이상 가구는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여성의 경제력 향상, 이혼율 증가 등으로 여성이 가구주로서 가장의 역할을 맡는 비율이 점증하고 있다.
호주제와 가제도는 이러한 오늘날의 현실적 가족의 모습과 더 이상 조화되지 않으며 그 존립기반이 이렇게 무너진 지금 호주제를 더 이상 존치할 필요는 없다고 할 것이다.
호주제라는 법률제도를 폐지한다 하여 숭조(崇祖)사상, 경로효친과 같은 전통문화나 미풍양속이 더불어 폐기되는 것이 아니며, 가문이 무너지거나 혈통의 뿌리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개인의 혈통이나 가계의 전승은 족보를 통하여 충분히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고, 숭조사상, 경로효친과 같은 미풍양속은 사회·문화·윤리의 문제로서 호주제라는 법제도와 무관하게 얼마든지 유지·발전시킬 수 있음을 분명히 하여 둔다.
라. 심판대상조항들의 위헌성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호주제는 헌법 제36조 제1항에 위반된다. 심판대상조항인 민법 제778조, 제781조 제1항 본문 후단, 제826조 제3항 본문은 호주제의 핵심적 구성부분을 이루는 법규범이다. 위 법률조항들은 혹은 독자적으로 혹은 서로 결부하여, 혹은 다른 호주제 관련조항들과의 체계적 연관성을 통하여 호주제를 존속시키며 구체적으로 실현시키고 있으므로 위에서 본바와 같은 호주제가 지닌 위헌성을 심판대상조항들은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결론적으로, 민법 제778조는 당사자의 의사와 자결권을 외면한 채 법률로 호주의 지위를 강요한다는 점에서 개인의 존엄에 반할 뿐만 아니라 호주 지위의 획득에 있어 남녀를 차별하고 있으며, 민법 제781조 제1항 본문 후단 및 민법 제826조 제3항 본문은 당사자의 의사와 자율적 선택권을 무시한 채 혼인 및 자녀에 관한 신분관계를 일방적으로 형성한다는 점에서 개인의 존엄에 반하고 나아가 정당한 이유 없이 남녀를 차별한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심판대상조항들은 헌법에 위반된다.
마. 헌법불합치 결정의 선택
심판대상조항들은 호주제의 골격을 이루며 호주제와 불가분의 일체를 이루는 핵심요소이므로 이 조항들이 위헌으로 되면 호주제 및 가제도는 더 이상 존속하기 어렵다. 위헌결정으로 호주제가 폐지되면 호주를 기준으로 가별로 편제토록 되어 있는 현행 호적법이 그대로 시행되기 어려워, 신분관계를 공시·증명하는 공적 기록에 큰 공백이 생긴다. 이러한 법적 상태는 신분관계의 중요한 변동사항을 호적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으로서 중대한 법적 공백을 의미한다. 호주제를 전제하지 않는 새로운 호적정리체계로 호적법을 개정하는 데에는 일정한 시간이 소요되는 반면, 그 동안 국민들의 신분관계의 변동사항을 방치할 수는 없으므로 부득이 헌법불합치결정을 선고하면서 호적법 개정 시까지 심판대상조항들을 잠정적으로 계속 적용케 하는 것이 필요하다. 입법자는 조속히 호적법을 개정하여 위헌인 호주제의 잠정적인 지속을 최소화할 의무가 있다.
4. 결 론
이상과 같은 이유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이 결정에 대하여는 아래 5.와 같은 재판관 김영일, 재판관 권 성의 반대의견·아래 6.과 같은 재판관 김영일의 위 반대의견에 대한 별개의견과 아래 7.과 같은 재판관 김효종의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나머지 재판관 전원의 의견이 일치되었다.
5. 재판관 김영일, 재판관 권 성의 반대의견
다수의견은 호주제 자체가 헌법 제36조 제1항에 위반된다고 한 다음, 호주제의 핵심적 구성부분으로서 호주제가 지닌 위헌성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민법 제778조, 제781조 제1항 본문 후단 및 제826조 제3항 본문도 모두 위헌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호주제가 헌법에 위반된다는 다수의견에 대하여 반대하므로, 다음과 같은 반대의견을 밝히기로 한다.
가. 호주제의 의의와 호주의 지위
호주제란 호주를 중심으로 가(家)를 구성하고, 이러한 가를 원칙적으로 직계비속남자에게 승계시키는 제도이다. 이러한 호주제는 부계혈통주의(父系血統主義)에 입각한 가의 구성 및 가통의 계승을 위한 제도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민법의 제정이래 규정되어 온 호주제는 1990. 1. 13. 법률 제4199호로 민법을 개정하면서 호주상속제도를 호주승계제도로 하고 호주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등 대폭적인 수정이 가하여져, 호주의 권한은 매우 빈약하게 되었고, 호주의 의무는 전혀 없게 되었다.
이와 같이 호주의 가족에 대한 지배권·통제권이 완전히 제거됨으로써 호주는 가장 또는 호주권자로서의 지위를 박탈당하게 되었으나, 호주는 여전히 호적면상의 필두자(筆頭者)로서의 지위는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 원래 호주와 가족간의 권리의무관계를 의미하는 것이었던 호주제는 1990년 민법의 개정으로 가족법상의 권리의무제도로서는 유명무실하게 되었으나, 현행 민법은 이와 같이 호주제에 담겨 있던 권리의무관계를 거의 다 없애면서도 가적의 법정에 관한 규정은 여전히 남겨 두고 있고, 호적법은 그러한 가적을 호적편제의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호주제는 호적편제의 기준으로 되는 점에서는 여전히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호주의 가통계승자로서의 지위를 확보해 주는 규정이 거의 삭제되고, 호주상속인에게 인정되었던 제사용 재산의 승계권이 제사주재자에게로 옮겨진 점(민법 제1008조의3) 등으로 인하여 호주의 가통계승자로서의 성격이 많이 탈색되었으나, 호주승계제도가 있는 이상 호주는 적어도 상징적인 의미의 가통계승자로서의 지위를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나. 우리나라의 전통적 가족제도 및 호적제도
(1)유사이래 거의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인류의 보편적인 가족제도는 부계주의원리에 의해 형성·유지되어 왔듯이, 우리나라의 경우도 부계혈통주의는 전 역사를 통하여 유지되어온 원칙이었다고 할 수 있고, 부계혈통주의를 기반으로 한 가족제도는 고대에서 시작하여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으로 발전하여 왔다.
우리나라의 전통적 가족제도의 특징은 모계적 요소를 강하게 띰으로써 여성을 존중하는 비교적 합리적인 부계혈통주의의 모습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대이래 혼인으로 맺어진 두 개의 부계혈족집단(父系血族集團)은 동등한 관계를 형성하여, 여자는 혼인을 하게 되면 부(夫)의 혈족집단의 구성원의 신분을 취득하되, 본래 자신의 혈족집단의 구성원의 신분을 잃지 않으며, 남자 또한 자신의 혈족집단의 신분을 유지하면서 여자의 혈족집단의 구성원의 신분을 새로이 취득하였다. 즉, 여자는 혼인 후에도 원래의 부계혈족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신분상·재산상의 지위를 유지하였기 때문에, 여자의 지위는 남자에 비하여 그다지 열등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러한 모계적 요소로서는 고구려에서 행해진 이래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보편적으로 유지되면서 여성의
지위보장에 큰 역할을 해온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의 혼인풍습을 들 수 있고, 여자가 혼인을 하더라도 원래의 부계혈족집단의 표지인 부(父)의 성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부계혈통주의에 따른 가족제도를 형성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남성위주의 혼인문화를 발전시켜 왔고, 여자는 혼인을 하게 되면 본래의 성을 변경하여 부(夫)의 성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과는 명백히 구별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우리의 가족제도의 특징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 중기에까지 이어져 재산상속에 있어서 자녀의 균분상속이 인정되고 조상에 대한 봉사도 자녀가 윤행(輪行)하는 등 여자는 남자와 거의 대등한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중기 이후 점차로 합리적인 부계혈통주의의 모습이 퇴색하면서 남계중심의 완고한 부계혈통주의가 자리잡게 되어 혼인한 여자에게는 본래의 부계혈족집단의 구성원으로서의 신분을 인정하지 않고 그로부터 배제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는 필연적으로 친자제도·혼인제도·상속제도 등 가족제도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쳐 여자의 지위를 몹시 열악하게 변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로 인하여 조선후기에 접어들면서 가족제도가 점차로 가부장적 성격을 띠기는 하였으나, 호주는 경국대전 이래 대전회통에 이르기까지 대외적으로는 호적의 필두자로서 국가에 대하여 책임을 부담하고 대내적으로 가족을 통솔하는 지위를 가지고 있었을 뿐, 국가에 의하여 법적인 권한이 부여된 것은 아니었다.
(2)고려사(高麗史) 식화지(食貨志)에 의하면, 고려시대의 호적에는 호주 및 호주와 동거하는 자식·형제·질(姪)·서(壻) 등의 친족의 세계(世系)는 물론이고 노비와 그 세계까지도 기록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것은 호적이 단순한 징세와 부역을 위한 장부의 기능과 함께 신분과 출계를 확인할 수 있는 증명부의 역할을 겸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고려의 호적은 징세와 부역을 위해서 사실상의 거주를 기준으로 편제되었으면서도, 친족의 출계를 기록하여 족보적 기능을 하고 있었다. 고려의 호적은 부계와 함께 처계를 기록하다가, 점차 범위가 확대되면서 모계도 포함되었고, 사조(四祖)를 기록하는 호적과 팔조(八祖)를 기록하는 호적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의 호적은 경국대전에 이르러서 호주의 사조와 호주의 처의 사조가 기록되고 가족으로서 솔거하는 자녀와 서(壻) 그리고 노비 등을 기재하도록 하여
근본적으로는 고려의 호적제를 본받으면서도 그 범위를 축소하여 사조호구식(四祖戶口式)으로 규정하였다. 이것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호적 외에도 가계를 기록하는 족보가 사용되면서 호적에 있어서의 출계의 기록을 통한 신분증명의 기능이 축소되었으므로 호적에 팔조에 이르기까지 기록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손현경, “한국가족법상의 성씨에 관한 연구”, 부산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6 참조).
다. 호주제의 전통성 문제
현행법상의 호주제는 천황제를 유지·강화할 목적으로 창안된 일본의 가제도, 가독(家督)상속제도가 식민지 지배를 통하여 이식된 것이므로 우리의 전통적 가족제도 또는 순풍양속이라 할 수 없다는 비판이 있다.
우리의 전통적인 호주의 지위는 강력한 가부장권이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집안 어른 정도의 상대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고, 제사자·봉사자(奉祀者)의 계승은 있었으되, 호주가 상속의 대상으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일제식 호주제는 가에 포함되는 가족원의 범위가 매우 넓고, 그 가족원을 호주가 강력한 호주권으로써 통솔하며, 가의 재산도 호주로부터 호주(원칙적으로 장남)에게 단독상속시키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하는 것으로서 이것을 두고 우리의 전통적 가족제도 또는 순풍양속이라 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1990년 민법개정 이전의 호주제에 대하여는 상당부분 타당한 것이었을지 몰라도, 적어도 1990년 개정 이후의 현행법상의 호주제에 대하여 이를 일제유산이라고 쉽사리 매도하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
우선 호주 또는 호주제라는 용어 자체가 일제의 잔재라고 볼 수 없다.
원래 호주라는 용어는 이미 고려시대에 사용되었고, 조선시대에는 호수인(戶首人) 또는 호주라고도 부르다가 가장(家長)으로 통일되었으며, 호주, 호수인, 가장은 가의 공법상의 대표자의 뜻이었고 대한제국시대에 이르러 호주라고 통칭되고 그 이후 법률상의 용어로 확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현행법상의 호주제는 앞에서 본 일제식 호주제의 특징적 요소들을 모두 제거하고 있다.
분가제도에 의하여 완화된 현행법상의 가제도는 우리 고유의 대가족제를 상징적으로 표상하는 정도에 지나지 아니하고, 현행법상 호주에게는 호적부상의 필두자로서의 지위와 호주승계제도를 통하여 인정되는 상징적인 의미의 가통계승자로서의 지위만이 남아 있는데, 이와 같은 지위는 고대로부터 이어온 부계혈통주의의 상징적 표현으로서 우리의 전통으로부터 유리된
것이 아니다.
즉, 현행법상의 호주제는 조선 후기의 완고하게 변질된 부계혈통주의가 아닌 고대 이래 조선 중기까지 이어져온 우리 고유의 합리적 부계혈통주의의 전통을 이어받아 부계혈통주의의 존립을 위한 극히 기본적인 요소만을 담고 있는 것으로서, 일제의 잔재로서의 색채를 불식하고 우리 고유의 관습으로 복귀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라. 호주제와 사회환경의 변화
호주제는 그것이 성립·유지될 수 있었던 사회적 배경이 존재하지 않고 가족의 형태가 다변화된 오늘날에는 현실적 가족의 모습과 더 이상 조화될 수 없으며, 현실적 가족공동체를 질곡하고 민주적 사회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뿐이라는 비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이행과 도시화의 진전으로 인하여 가족공동체의 모습이 일반적으로 부모와 미혼자녀로 구성되는 핵가족의 형태로 바뀌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 민법도 이러한 현실을 감안하여 직계비속장남자를 포함하여 임의분가를 허용하고(민법 제788조 제1항), 혼인신고로 자동적으로 분가되는 법정분가의 제도(직계비속장남자는 제외)를 마련함으로써(민법 제789조), 호적과 현실생활공동체를 될 수 있는 대로 부합시키고 부부중심의 가족제도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호적법 제19조의2 제2항 제1호에서 입양, 입양의 취소, 파양, 이혼 기타의 사유로 인하여 타가에 입적하여야 할 자에게 배우자나 직계비속이 있는 때에는 법정분가에 준하여 신호적을 편제하도록 하고 있는 것도 부부중심의 가족제도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취지이다.
이제 호주의 권리가 대부분 삭제되어 거의 호적편성의 기준을 정하는 행정기술상의 제도에 지나지 않게 된 현행법상의 호주제는 호적에 등재되는 가족의 범위를 정함에 있어, 직계비속장남자의 임의분가는 허용하되, 법정분가는 인정하지 않아 삼대(三代) 가족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우리의 전통적인 가족제도를 고려하고, 호주승계의 순위에 있어 남자우선의 원칙을 규정하여 상징적인 의미에서 우리의 전통적인 부계혈통주의를 반영하고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다.
비록 오늘날 우리의 가족형태에서 핵가족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직도 부모를 모시는 삼대 가족이 상당수 존재하고 있고, 이는 여전히 권장되어야 할 우리의 전통적인 미풍양속인 것이다.
그렇다면 임의분가제도를 통하여 호적상 등재되는
가족구성관계의 선택권을 부여함으로써 삼대 가족을 강요하지는 않으면서도, 이러한 가족관계가 호적상 반영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있는 호주제가 현실적 가족공동체를 질곡하고 민주적 사회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마. 호주제의 합헌성
(1)혼인제도와 가족제도의 제도적 보장의 헌법규범적 의미
헌법 제36조 제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라고 규정함으로써 민주적인 혼인제도와 가족제도를 헌법적 차원에서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혼인과 가족생활은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전통과 관습의 모습으로 존재하면서 오늘에까지 이어져 온 것이므로, 혼인과 가족관계를 규율하는 가족법은 전통성·보수성·윤리성을 강하게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혼인과 가족관계에 관한 헌법규정을 해석함에 있어서도 가족법의 전통적 성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이를 도외시한 헌법해석은 규범과 현실의 괴리를 심화시켜 헌법생활의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헌법 제36조 제1항이 보장하고 있는 혼인과 가족생활에 대한 제도적 보장도 혼인과 가족생활의 민족문화적 전통성 때문에 당연히 이에 바탕을 둔 혼인제도와 가족제도의 보장을 뜻한다고 보아야 한다.
더욱이 헌법 제9조는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하여 국가의 전통문화의 계승·발전 의무를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는 터이므로, 현재의 혼인제도 및 가족제도가 전통문화의 근간을 이룬다고 할 수 있는 우리 고유의 혼인제도와 가족제도를 그대로 답습해야 하는 것은 물론 아니라 하더라도, 그로부터 완전히 유리된 형태의 것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혼인과 가족생활에 관한 헌법 또는 가족법의 규정을 해석·판단함에 있어서는 그 성격상 긴장관계에 있는 양성평등의 요청과 전통존중의 요청을 함께 충족시킬 수 있는 조화로운 방안을 모색하여야 할 것이나, 오늘의 시점에서 우리의 혼인과 가족생활에서 요구되는 평등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지를 규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평등사상이 역사적으로 다양한 변천과정을 거쳐오면서 약자에 대한 억압과 소외를 해소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해온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현대의 사회는 기존의 전통과 질서, 권위가 부정되고 해체되어 가는 경향을 띰으로써 ‘해체의 시대’로 특징지어지기도 하는바, 평등의 이념이 전통부정과 질서해체의 논리로 남용될 가능성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가족법의 영역에서 도식적인 평등의 잣대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함부로 재단함으로써 전통가족문화가 송두리째 부정되고 해체되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될 것이다.
(2) 양성평등의 원칙 위반여부
(가) 심사의 기준
평등원칙의 위반여부에 대한 심사는 그 심사기준에 따라 자의금지원칙에 의한 심사와 비례의 원칙에 의한 심사로 크게 나누어지는데, 우리 재판소는 비례의 원칙에 따른 심사를 하여야 할 경우로서 첫째, 헌법에서 특별히 평등을 요구하고 있는 경우 즉, 헌법이 차별의 근거로 삼아서는 아니되는 기준 또는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영역을 제시하고 있음에도 그러한 기준을 근거로 한 차별이나 그러한 영역에서의 차별의 경우 둘째, 차별적 취급으로 인하여 관련 기본권에 대한 중대한 제한을 초래하게 되는 경우를 들고 있다(헌재 1999. 12. 23. 98헌마363 , 판례집 11-2, 770, 787).
헌법 제36조 제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의 영역에서 특별히 남녀평등을 요구하고 있는바, 이러한 영역에서 남성과 여성을 달리 취급하는 호주제가 양성평등의 원칙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심사함에 있어서는 비례심사를 해야 할 것이다.
(나) 비례의 원칙 위반여부
1) 입법목적의 정당성
호주제의 입법목적으로는 전통적인 가족제도의 계승·발전과 함께 호적편제의 기준의 정립을 들 수 있으나, 호적편제의 기준의 정립은 부수적 입법목적에 지나지 아니하고 그 주된 목적은 전자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호주제를 통하여 계승·발전시키고자 하는 전통적인 가족제도의 핵심은 부계혈통주의에 입각한 가의 구성 및 가통의 계승이라고 요약할 수 있으므로, 호주제의 입법목적이 정당한 것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부계혈통주의의 유지 필요성이 먼저 규명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가족이나 친족집단의 존속과 통합을 꾀하기 위해서는 가통의 정립을 통한 최소한의 기준과 질서의 부여가 요청된다는 점은 이를 부인하기 어렵다.
가통의 정립이 반드시 부계혈통주의에 의해서만 가
능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전통적으로 부계혈통주의 및 이에 입각한 가통계승을 통하여 가족집단 및 친족집단의 유지에 필요한 질서를 부여하는 방법을 택하여 왔으며, 여기에는 남녀의 자연적 차이 및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여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족에 있어서 모자관계는 생래적으로 증명되고, 인간이 출생하여 성장하는 과정에서 모자간의 공동생활과 이를 통한 양육이 필수적이라고 한다면, 부자관계나 부자간의 공동생활은 반드시 그러하다고 볼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성주의(父姓主義) 등으로 대표되는 부계혈통주의는 부의 자에 대한 책임의식을 고취함으로써 모자관계에 비하여 소원할 수밖에 없는 부자간의 유대강화에 이바지하고 나아가 가족의 존속과 통합에 크게 기여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무릇 모든 질서와 제도는 많은 경우 차별과 소외를 수반하기 마련이라고 할 것인데, 부계혈통주의의 오랜 전통하에서 여성들이 가족 내에서 소외의 고통을 겪어왔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부계혈통주의가 가부장적 성격을 강하게 갖는 경우에는 여성이 느끼는 소외의 정도 또한 더욱 극심하였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적어도 조선 중기에 이르기까지는 여성을 존중하는 합리적인 부계혈통주의의 전통이 이어져 온 것은 앞에서 본 바와 같다.
이와 같이 부계혈통주의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필연적으로 여성의 소외를 수반한다는 점에서 그동안 단점만이 지나치게 부각되어 온 점이 있으나, 부계혈통주의는 가족 및 친족집단 나아가 인류사회에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인류가 문명사회로 나아가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고, 이에 입각한 가통계승제도는 인류로 하여금 천박한 당대주의(當代主義)에서 벗어나 문화의 전승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인류문명에 폭과 깊이를 더하여 왔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과소평가할 수 없고, 이러한 사정은 지금에 와서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할 것이다.
부계혈통주의가 갖는 위와 같은 기능은 모계혈통주의에 의하더라도 대체로 달성될 수 있다고 할 것이나, 역사적으로 부계혈통주의가 정착된 상황에서 일거에 전통을 뛰어넘어 모계혈통주의로 전환하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고, 그렇다고 하여 양계혈통주의를 취하는 방법으로는 가통의 정립을 통하여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가족이나 친족집단의 존속과 통합을 도모한다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불가능함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부계혈통주의의 필요성과 그 부득이함이 인정된다면, 어떻게 하면 이를 합리적으로 운용함으로써 이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여성의 차별과 소외를 최소화할 것인가의 문제만이 남는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호주제가 계승·발전시키고자 하는 전통적인 가족제도가 부계혈통주의에 근거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호주제의 입법목적 자체가 부당한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고, 이러한 점은 기본적으로 가족법이 갖고 있는 전통성과 보수성 및 국가의 전통문화의 계승·발전 의무를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9조에 비추어 보면 더욱 명백하다고 할 것이다.
2) 차별대우의 적합성
현행 민법상 호주제를 구성하고 있는 대표적인 원칙 및 제도로서는 처(妻)의 부가(夫家)입적 원칙, 자(子)의 부가(父家)입적 원칙 및 호주승계제도를 들 수 있는바, 이들 중 처의 부가입적 원칙과 자의 부가입적 원칙은 부계혈통주의에 입각한 가의 구성을 위한 것이고, 호주승계제도는 부계혈통주의에 입각한 가통의 계승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호주제는 위와 같은 원칙 및 제도를 통하여 입법자가 추구하는 전통적인 가족제도의 계승 및 발전이라는 입법목적의 달성을 촉진하고 있다고 할 것이므로, 정책수단으로서의 적합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3) 차별효과의 최소침해성
호주제를 구성하고 있는 처의 부가입적 원칙, 자의 부가입적 원칙 및 호주승계제도가 구체적으로 차별효과의 최소침해성을 충족하고 있는지를 본다.
가) 처의 부가입적 원칙과 자의 부가입적 원칙
여자가 혼인하면 부모를 떠나 남편의 가족이 된다는 관념은 농경사회 이래의 오랜 부계혈통주의 내지 부계중심사회의 전통하에서 당연한 것으로 자리잡았고, 현재에도 대체로 세계적인 관행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오랜 기간 이어져 온 남귀여가혼의 전통하에서도 남자가 일정기간 여자의 집에서 생활한 다음에 종국에는 여자가 남자의 집으로 옮겨와서 생활하였고, 조선 중기 이후 남귀여가혼의 전통이 퇴색하고 친영례(親迎禮) 또는 반친영례(半親迎禮)의 풍속이 자리잡게 되면서 여자가 혼인하면 남편의 가족으로서 생활의 터전을 부모에게서 남편에게로 옮긴다는 인식은 더욱 확고한 것으로 자리잡게 되었으며, 이러한 현실은 지금에 와서도 크게 변한 것이 없다고 할 것이다.
민법 제826조 제3항 본문에서 “처는 부의 가에 입적한다.”라고 하여 처의 부가입적 원칙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혼인과 동시에 여자의 생활기반이 남편으로 이동하는 현실을 반영하는 동시에 부부가 같은 호적에 등재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호적편성상의 기술에 관한 문제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위와 같이 보편화된 가족생활관계를 반영한 단순한 호적기록의 변경을 두고 여자의 신분의 종속적 변경이라고 보는 것은 지나친 것이다.
또한 민법 제826조 제3항 단서에 이른바 입부혼에 관한 규정을 두어 처가 친가의 호주 또는 호주승계인인 때에는 부가 처의 가에 입적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고 있다.
민법 제781조 제1항 본문 후단에서 정하고 있는 자의 부가입적 원칙은 처의 부가입적 원칙에 따른 부수적이고 필연적인 결과일 뿐만 아니라, 이 또한 우리 사회의 오랜 전통과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처의 부가입적 원칙과 자의 부가입적 원칙은 그것이 부계혈통주의에 입각한 가의 구성을 위한 전제로서 우리 사회의 오랜 전통과 현실에 기초한 것일 뿐만 아니라, 여성에 대한 실질적 차별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차별효과의 최소침해성을 충족시키고 있다고 할 것이다.
나) 호주승계제도
민법 제984조는 호주승계의 순위에 있어서 남자우선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는바, 이는 기본적으로 부계혈통주의에 입각한 가통의 계승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지만, 처의 부가입적 원칙과 관련하여 호적사무의 편의를 고려한 측면도 있다.
즉, 여자는 혼인하면 남편의 가에 입적하게 되어 친가의 가통을 영구적으로 이어갈 수 없게 되므로, 남자우선의 원칙을 적용하면 여자를 호주로 하게 될 경우 혼인시 여자의 거가(去家)로 인한 호주의 변동으로 초래되는 호적사무의 번거로움과 인적·물적 낭비를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결국 위와 같은 호주승계제도 또한 호주의 지위가 호적기재의 기준 즉, 호적부상의 필두자에 지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의 전통 및 호적사무의 편의를 고려하여 호주승계에 있어 남자를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일 뿐이므로, 여성에 대한 실질적 차별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차별효과의 최소침해성을 충족시키고 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호주제를 구성하고 있는 처의 부가입적 원
칙, 자의 부가입적 원칙 및 호주승계제도는 어느 것이나 차별효과의 최소침해성에 위배되지 아니하므로, 호주제는 차별효과의 최소침해성의 요건도 충족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4) 법익의 균형성
입법목적의 비중과 차별대우의 정도가 균형을 이루고 있는지를 본다.
호주제는 우리의 전통적인 가족제도가 그 근간으로 삼고 있는 부계혈통주의를 지탱하는 하나의 축을 이루고 있음은 분명하다고 할 것이나, 부계혈통주의는 호주제에 의하여만 지지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부계혈통주의를 유지함에 있어 보다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부성주의(父姓主義) 내지 부자동성(父子同姓)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행의 호주제가 폐지되거나 수정된다고 하여 바로 부계혈통주의가 형해화된다거나, 우리의 전통적인 가족제도가 일거에 붕괴의 위기에 처하리라고 단정하기는 어렵고, 다만 부계혈통주의에 근거하고 있는 제도적 장치인 호주제의 존립여부는 부성주의의 미래와도 무관하다고 할 수 없으므로, 호주제와 부성주의는 상호보완의 관계 또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부계혈통주의의 필요성과 그 부득이함이 인정되고, 호주제의 입법목적이 부계혈통주의에 입각한 가의 구성 및 가통의 계승을 핵심으로 하는 전통적인 가족제도의 계승·발전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실만으로 현행의 호주제가 합헌인 것으로 볼 수 없음은 물론이다.
만일 호주제로 인한 여성에 대한 차별대우의 정도가 심하여 호주제를 통하여 달성하려고 하는 입법목적에 비추어 법익균형성을 상실한 나머지, 오히려 호주제가 부계혈통주의의 합리적 운용에 저해가 되는 것으로 평가되기에 이른다면 그러한 호주제는 위헌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우선 호주제가 법익의 균형성 요건을 충족하고 있는지를 심사하기 위하여는 그로 인하여 초래되고 있는 차별효과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호주제로 인하여 여성들에게 초래되는 차별효과로는 우선 호주제로 인하여 여성을 남성에 비하여 이차적·종속적·열위적 존재로 인식되게 함으로써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상징적·심리적으로 불리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음을 들 수 있다. 그 밖에 구체적인 경우의 실제적인 차별효과로서 부모가 이혼한 경우, 인수입적(引收入籍)의 경우, 미혼모의 경우 등에 여성이나 자가
겪게 되는 곤란 등을 들 수 있으나, 이는 주로 자의 부가입적의 원칙에 있어 그 예외설정의 협소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현행의 호주제를 통하여 달성될 수 있는 입법목적이나 호주제의 유지를 통하여 현실적으로 얻게 되는 이익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호주제를 통하여 부계혈통주의에 입각한 가의 구성 및 가통의 계승을 핵심으로 하는 전통적인 가족제도를 계승·발전시킴으로써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중시하고 있는 가족 및 친족공동체의 존속·통합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전통에 대한 존중의식을 고양함으로써 날로 팽배해져 가는 물질주의 및 개인주의의 폐단을 막아내고 완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호적기재에 있어 삼대 가족의 길을 열어 놓음으로써 상징적으로나마 우리의 전통적 미풍양속이라고 할 수 있는 부모를 모시고 봉양하는 전통을 고무하고 조장하는 데 도움이 되고, 이를 통하여 날로 심각해져 가는 노인문제의 해결에도 일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실적인 면에서 보더라도, 호주를 기준으로 한 호적편제방법의 변경에 따른 인적·물적인 면에서의 막대한 국가적 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호주 등의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 수많은 법령의 개정에서 오는 혼란과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호주제로 인하여 초래되는 여성들에 대한 차별효과는 결코 경시될 수 없는 것으로서 법익의 균형성의 문제는 판단하기가 쉽지 아니하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부계혈통주의를 폐지하지 아니하는 한, 그로 인하여 초래되는 여성들에 대한 불리한 상징적·심리적 효과를 완전히 불식하기는 어려운 것이고, 구체적인 경우의 실제적인 차별효과는 호주제의 근간을 건드리지 않고서도 자의 부가입적의 원칙에 대한 수정·보완 등을 통하여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현행법상의 호주제가 법익균형성을 상실한 제도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 소결론
현행법상의 호주제는 남성에 비하여 여성을 비례의 원칙에 반하여 차별하는 것으로는 볼 수 없고, 따라서 평등의 원칙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3) 개인의 존엄 위반여부
현행 민법상 처의 부가입적 원칙, 자의 부가입적 원칙 및 호주승계제도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호주제는 그로 인하여 대한민국 국민은 예외 없이 호주 또는 가족으로 법률상의 가족단체인 가에 소속되어야 하고, 호주지위의 취득이 강요되며, 가족의 신분적 지위가 호주
와의 관계를 통하여 설정되는 등 신분관계가 일방적으로 형성되는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가족제도를 법제화하고 이를 호적제도와 연계시키는 과정에서 부득이한 것으로 인정될 수 있다.
그리고 현행 민법이 법제화하고 있는 가족제도의 내용을 살펴볼 때, 호주의 직계비속장남자의 경우도 임의분가가 가능하도록 하였으며(민법 제788조 제1항), 호주승계권을 포기할 수 있도록 하여 호주승계를 임의화하였을 뿐만 아니라(민법 제991조), 호주가 가족에 대하여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실질적으로 모두 소멸되어 호주의 지위가 호적기재의 기준 즉, 호적부상의 필두자 나아가 상징적인 의미의 가통계승자에 지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하면, 개인의 존엄을 실질적으로 침해하는 요소를 발견하기 어렵다고 할 것이므로, 이를 두고 혼인과 가족생활에서 개인의 존엄을 존중하라는 헌법 제36조 제1항의 명령에 위배되는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
바. 결 론
위에서 본 바와 같은 이유로 호주제는 헌법 제36조 제1항에 위반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다만, 구체적으로 이 사건 심판대상인 민법 제778조, 제781조 제1항 본문 후단, 제826조 제3항 본문의 위헌여부에 대하여, 재판관 김영일의 견해는 민법 제778조, 제826조 제3항 본문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하나 제781조 제1항 본문 후단은 아래 6.과 같은 이유로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이고, 재판관 권 성의 견해는 호주제가 헌법에 위반되는 것으로 볼 수 없는 이상 호주제의 주요 구성부분을 이루는 위 조항들 모두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는 것이다(가족과 혈연은 자연적으로 생성되어 실재하는 실체이지 단순한 관념상의 존재는 아니다. 호주제도는 실체로서 존재하는 가족과 혈연을 인식하는 기호의 체계로서 하나의 기술에 해당한다. 인식의 기술이 인식의 대상인 실체의 존재와 가치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통상의 논리에 의하면 호주제도는 가족과 혈연의 존재 및 가치에 무슨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것이다. 종법제나 가부장제와 같은 문화적 요소가 호주제도라는 인식기술에 덧씌워지는 일이 있지만 이렇듯 덧씌워진 문화적 외피가 일으키는 문제는 문화의 변천과 법률의 변화에 의하여 자연적으로 해결되는 것이고 또 그렇게 해결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여성이 갖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을 명하는 헌법의 정신과 원칙은 호주제와 같은 기술적 기호의 체계가 침범할 수 있는 영역의 밖에 있는 것이다).
6. 재판관 김영일의 위 반대의견에 대한 별개의견
나는 민법 제781조 제1항 본문 후단이 규정하고 있는 자의 부가입적 원칙이 그 자체로서 위헌이라고는 보지 아니하나, 민법 제781조 제1항 본문 후단은 그 원칙에 대한 예외의 설정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이유로 위헌이라고 생각하므로, 별개의견을 밝히기로 한다.
처의 부가입적 원칙에 대하여는 혼인의 취소 또는 이혼이나 부의 사망의 경우에 친가복적, 친가부흥, 일가창립 등으로 부의 가적에서 이탈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민법 제787조). 그런데 자의 부가입적 원칙에 대하여는 부가 외국인인 때(민법 제781조 제1항 단서), 부를 알 수 없을 때(동조 제2항), 입부혼의 경우(민법 제826조 제4항) 등 모가에 입적할 수 있는 예외적 규정을 두고 있기는 하나, 이는 모두 부가로의 입적이 불가능한 경우로 한정되어 그 범위가 너무 좁다는 점에서, 다수의견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우선 부모가 이혼한 경우에는 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은 실정에서 현실적으로 모가 자녀의 양육자로 지정되어 생활공동체를 형성하더라도, 자녀는 민법 제781조 제1항 본문 후단에 따라 여전히 부의 호적에 남아 있게 된다. 즉, 이러한 경우 당사자인 자녀가 아무리 부가를 떠나 모가에의 입적을 원하더라도 그 자녀는 여전히 부가에 소속되고 그 부가 자녀들의 호주가 되며, 반면 모는 주민등록상의 동거인에 불과하게 된다.
또한 미혼모가 자녀를 출산한 경우 부가 인지하지 않으면 ‘부를 알 수 없는 자’로서 모가에 입적하지만(민법 제781조 제2항), 생부가 인지하면 모나 자녀의 의사에 상관없이 부의 호적에 입적된다. 생부가 모와 혼인할 의사가 없고, 자녀를 양육할 의사가 없는 경우에도 그러하다.
위와 같은 경우는 자의 입적과 관련하여 현실에 맞지 않고 불합리하게 자의 의사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모를 실질적으로 차별하는 것으로서 개인의 존엄 및 평등의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서 위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바, 이러한 문제는 모두 자의 부가입적 원칙에 대한 예외가 협소하게 설정되어 있는 데 따른 것으로서, 이 경우 위헌의 책임은 자의 부가입적 원칙을 정하고 있는 민법 제781조 제1항 본문 후단에서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편, 부가 처의 혈족이 아닌 직계비속을 입적함에는 처의 동의라는 제한이 없는 데(민법 제781조 제1항 본문 후단 또는 제782조 제1항) 비하여, 인수입적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는 민법 제784조는 처가 부의 혈족
이 아닌 직계비속을 가에 입적시키려면 부의 동의가 있어야 하며, 이 경우에 그 직계비속이 타가의 가족인 때에는 그 호주의 동의를 얻도록 규정하고 있다. 위 조항 또한 호주제와 관련하여 여성을 실질적으로 차별하는 조항으로 지적되고 있으나, 이 사건 심판대상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 사건 심판대상 중 민법 제778조, 제826조 제3항 본문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고 보나, 다만, 자의 부가입적 원칙을 규정하고 있는 제781조 제1항 본문 후단은 그 원칙 자체가 위헌은 아니나 원칙에 대한 예외의 협소한 설정으로 개인의 존엄 및 평등의 원칙에 반하는 결과가 되어 헌법에 위반된다고 보는 것이다.
7. 재판관 김효종의 반대의견
나는 이 사건 각 심판대상조항중 민법 제781조 제1항 본문 후단, 제826조 제3항 본문에 관하여는 위헌이라는 다수의견과 견해를 같이 하지만 민법 제778조에 관하여는 다수의견과 견해를 달리 하므로 아래와 같이 반대의견을 밝힌다.
가. 호주제 및 가제도(家制度)와 그 관련조항
(1) 호주제 및 가제도의 개념
호주제의 개념을 정의하거나 그 효과를 따로 규정한 법률조항은 없다. 호주제란 민법 제4편 제2장 ‘호주와 가족’, 동편 제8장 ‘호주승계’를 중심으로 일정한 법률조항들을 묶어 이러한 법률조항들이 규율하는 법적 상태를 지칭하는 말이고, 현행 민법의 개별조항들을 종합하여 보면 결국 ‘호주제’란 ‘호주를 정점으로 가(家)라는 관념적 집합체를 구성·유지하고, 이러한 가(家)를 원칙적으로 직계비속남자에게 승계시키는 제도’라고 집약하여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법적 의미에서의 ‘가(家)’는 호주를 중심으로 하여 호주와 가족이라는 신분관계로 상호간 법률상 연결된 관념적인 호적상의 가족단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와 같이 파악된 호주제 및 가제도의 개념은 현재 존재하는 실정제도의 원칙적인 모습, 그것도 그 개략적 윤곽만을 반영함에 그친다고 할 것이고, 이러한 개념이 고착화되어 호주제가 개념필연적으로 부계혈통주의를 관철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할 것이다.
(2) 현행법상 관련규정의 구성체계
민법 제778조는 “일가의 계통을 계승한 자, 분가한 자 또는 기타 사유로 인하여 일가를 창립하거나 부흥한 자는 호주가 된다.”고 규정하여 호주를 정의하고 있으며, 가(家)에 관하여 직접 정의한 조항은 없지만, 민
법 제779조는 “호주의 배우자, 혈족과 그 배우자 기타 본법의 규정에 의하여 그 가(家)에 입적한 자는 가족이 된다.”고 규정하여 그 구성원의 범위를 정하고 있다.
그런데 위 호주제 및 가제도의 기본적 틀을 정하고 있는 위 민법 제778조는 실질적으로는 별다른 내용을 담고 있지 않은 형식적 규정에 불과하고, 그 구체적 내용은 다른 개별규정에서 정하고 있다. 그리고 가족의 범위 역시 민법 제779조만으로 확정될 수 없고, 배우자, 혈족 등에 관한 다른 개별규정이 적용되어야만 구체화되고 특정될 수 있다. 즉, 입법자는 호주제 및 가제도에 관한 민법의 규정들을 입법기술적으로 형식적 틀만을 정한 기본조항과 그 실질적 내용을 정한 개별조항으로 나누어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조문 구성체계만 보더라도, 호주제가 부계혈통주의 또는 남성우월주의와 연결된 흔적을 기본조항인 민법 제778조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추상적인 일반론에 기초하여 호주제 및 가제도 전반에 본질적으로 위헌성이 내포되어 있다고 보는 다수의견은 재고될 필요가 있고, 그 위헌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제도 전체의 대체적인 성격을 참고하되 위헌 여부가 문제되는 개별조항을 면밀히 검토하여 위헌적인 요소와 그 범위를 정확히 가려내는 작업이 선행될 필요가 있으며, 이와 같은 점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채 호주제 및 가제도를 구성하는 개별조항에 위헌성이 있다는 이유로 기본조항인 민법 제778조도 위헌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3) 호주제 및 가제도의 기본성격
호주제 및 가제도의 기본성격, 특히 호주의 법적 성격에 관하여는, 호주제와 부계혈통주의가 밀접,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보는 이른바 계종제도설(繼宗制度說)이 주장된 바 있으나, 현행 민법상 호주가 언제나 남계의 혈통에 따라 승계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 등을 고려하면, 호주는 가(家)의 형식적인 주재자로서 호적상 기준자의 지위에 불과하다고 봄이 상당하다. 이와 같이 호주제의 법적 성격에 대해서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극히 보수적인 견해에 따라 호주제가 본질적으로 부계혈통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단정하는 다수의견에는 찬성하기 어렵다.
민법 제778조는 가제도를 전제로 하고 있고 일가의 다른 구성원과 구별되는 호주라는 지위를 상정하고 있는바 이와 같은 구별이 헌법적으로 어떻게 평가될 것인가의 문제가 있을 뿐이다. 다수의견이 지적하고 있는 호주제의 부계혈통주의적 또는 남성우월주의적 경향은, 민법 제781조 제1항 본문 후단 및 민법 제826조
제3항 본문과 같은 개별규정들에 반영되어 있을 따름이다.
나. 호주제 및 가제도의 헌법적 의의
(1) 가족제도의 헌법적 보장
헌법 제36조 제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한다는 내용과 국가는 혼인과 가족생활을 보장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아우르고 있다. 논리적으로 보자면, 국가가 혼인과 가족생활의 존재를 보장하여야 한다는 일차적인 당위명제와 나아가 이를 토대로 그 구체적 내용이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형성되어야 한다는 이차적인 당위명제를 함께 담고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 다른 한편 헌법은 제9조에서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여 만일 가족제도에 담겨 있는 내용이 전통문화 또는 민족문화에 맞닿아 있다면, 이것 역시 헌법적인 보호의 대상이 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헌법 제36조 제1항이 정한 헌법적 가치, 즉 혼인과 가족생활에서의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이라는 가치와 상충되어 이를 해결하기 위한 헌법적 해석이 요구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해서는 아니 될 것은, 헌법 제36조 제1항은 일차적으로 어떤 경우에도 혼인과 가족생활 자체는 보장하겠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으므로, 혼인제도와 가족제도의 존재 그 자체는 서로 상이한 가치관의 대립에도 불구하고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 헌법제정권력자의 가치적 결단이라는 점이다.
그러면 가족제도를 보장하는 헌법 제36조 제1항의 헌법적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 것인가?
우선 헌법 제36조 제1항은 전래된 가족제도를 입법자의 자유로운 처분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가족제도에 대한 제도보장을 규정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헌재 2002. 8. 29. 2001헌바82 , 판례집 14-2, 180 참조).
제도보장은 객관적 제도를 헌법에 규정하여 당해 제도의 본질을 유지하려는 것으로서 헌법제정권력자가 특히 중요하고도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고 헌법적으로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제도를 헌법에 규정함으로써 장래의 법발전, 법형성의 방침과 범주를 미리 규율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러한 제도보장은 주관적 권리가 아닌 객관적 범규범이라는 점에서 기본권과 구별되기는 하지만 헌법에 의하여 일정한 제도가 보장되면 입법자는 그 제도를 설정하고 유지할
입법의무를 지게 될 뿐만 아니라 헌법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법률로써 이를 폐지할 수 없고, 비록 내용을 제한하더라도 그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헌재 1997. 4. 24. 95헌바48 , 판례집 9-1, 444, 445 참조).
따라서 입법자는 헌법적으로 보호되는 가족제도를 법률로써 구체적으로 형성할 수 있지만, 이러한 입법적 형성은 가족제도 자체를 폐지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그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는 한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제도보장의 대상인 가족제도는 그 존재 자체 또는 본질적 내용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범위 내에서는 일정 부분 국민의 기본권 제한을 정당화하는 사유가 될 수 있고, 그 범위 내에서 입법자는 가족제도 존치의 정당성에 대한 논증책임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2) 가제도의 헌법적 의미
가제도는 위와 같은 헌법적 보장의 대상인 가족제도의 사법상(私法上) 구현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가족제도의 보장을 위해서는 가(家)와 가족(家族)이라는 개념을 법적으로 명확히 규율할 필요가 있고, 이로써 공권력에 대한, 또는 공권력에 의한 보호의 대상과 범위가 보다 명확히 드러나게 되어 가족제도 보호의 보다 확고한 기초를 마련할 수 있게 된다. 가령 가족의 해체 또는 경시(輕視)를 초래할 수 있는 공권력의 작용에 대해서는 그로부터 방어되어야 할 대상이 사전에 보다 명확하게 인식될 수 있고, 조세행정, 급부행정 등의 영역에서 가족을 지원하는 정책을 수립, 시행함에 있어서 그 지원의 대상을 민법상 가(家)와 가족(家族)이라는 개념을 기초로 하여 이를 직접 또는 수정하여 사용함으로써 공권력 행사의 통일과 형평성을 기할 것을 기대할 수 있다.
가제도와 개인 사이에 빚어지는 긴장관계에서 발생하는 헌법적 문제는 아래에서 다시 검토하기로 한다.
(3) 호주제의 헌법적 의미
헌법이 보장하는 가족제도와 민법상 호주제 사이에 필연적인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가제도가 민법상 인정되고 가(家) 및 가족을 공시하는 호적제도가 인정된다면 적어도 호적상 필두자(筆頭者)로서의 의미가 있을 수 있겠으나, 이것은 헌법이 직접 요구한다기보다는 입법정책상의 문제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가족제도의 유지, 강화가 요구된다면 그 구심점으로서의 호주의 지위가 필요하다는 관점이 있을 수 있겠으나, 이 경우에도 가(家)와 가족들 사이의 유대감 또는 연대성에 대한 상징적 의미 이상을 갖기 어렵고, 역시 입법정책적으로 결정될 문제라고 생각된다.
다만 호주제와 관련하여서는 상충하는 개인의 존엄 및 양성의 평등이라는 헌법적 가치와 전통문화라는 헌법적 가치 사이에서 어느 범위에서 실제 조화로운 해석이 가능한지가 문제될 수 있는데, 이 점에 관하여는 아래에서 상세히 보기로 한다.
다. 민법 제778조의 위헌 여부
(1) 문제의 소재
다수의견이 호주제에 대한 위헌성의 근거로 들고 있는, 호주승계 순위에서의 양성의 차별 등 사유들은 헌법 제36조 제1항 전단에 저촉되는 것이어서 이에 기초한 위헌론은 충분히 수용할 만하다. 따라서 이와 같은 사유에 해당하는 관련 개별규정은 헌법에 위배되어 그대로 유지될 수 없다. 같은 맥락에서 자(子)의 부가입적(父家入籍)을 규정함으로써 부계혈통주의적인 요소를 담고 있는 민법 제781조 제1항 본문 후단 및 처(妻)의 부가입적(夫家入籍)을 규정함으로써 남성우월주의적인 요소를 담고 있는 민법 제826조 제3항 본문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다수의견에 찬성하므로, 이에 관한 판시 이유를 모두 원용한다.
그러나 민법 제778조에 관하여는 다수의견이 호주제가 개별규정의 내용을 떠나서 그 본질상 성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에 기초한 차별을 하고 있고 개인의 의사에 반하여 가족단체인 가(家)에 소속하거나 호주의 지위를 부여받을 것이 법률적으로 강제되는 것이 개인의 존엄에 반한다고 하여 위헌이라고 보고 있는바 이에 대하여는 동의할 수 없다.
민법 제778조가 담고 있는 중요한 규범적 내용은 ① 가(家)의 존재를 인정하고[해석상 개인은 가(家)에 소속하여야 한다는 요청을 도출할 수 있다], ② 그 가(家)에는 법률이 정하는 일정한 방법에 의하여 결정되는 호주가 있어야 한다는 두 가지 점이다.
다수의견은 위 각 규범적 내용이 헌법 제36조 제1항에 저촉된다고 보고 있으므로 아래에서는 위 각 사항의 헌법적합성에 관하여 살펴본다.
(2) 민법 제778조의 규범적 내용
민법 제778조는 호주가 되는 자로서 ‘일가의 계통을 계승한 자’, ‘분가한 자’ 또는 ‘기타 사유로 인하여 일가를 창립하거나 부흥한 자’를 들고 있지만, 여기에서도 앞서 조문의 구성체계와 관련하여 본 바와 같이 부계혈통주의적·남성우월주의적 요소를 찾아볼 수 없다.
먼저 ‘일가의 계통을 계승한 자’에 관하여 보건대, 이에 관하여는 호주승계에 관한 민법 제984조 이하의 개별조항들이 규정하고 있다. 민법 제984조가 정한 호주승계 순위는 피승계인의 직계비속남자를 최우선 순위
로 한 것(같은 조 제1호)만을 보더라도 부계혈통주의적인 요소가 강하게 반영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양성차별적 요소는 민법 제984조 및 관련 개별규정이 위헌이라고 보아 그 효력을 상실시키거나 입법적 개선이 이루어지면 해소될 수 있는 문제여서 위와 같은 위헌적 요소가 기본조항인 민법 제778조에 본질적으로 내재된 문제라고 보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그리고 ‘분가한 자’와 관련해서는 가족이 혼인하는 경우에는 법률상 당연히 분가되는 법정분가제도(민법 제788조 본문)가 특히 문제된다. 여기서 여자는 혼인으로 인하여 남편의 분가호적에 입적함으로써(민법 제826조 제3항 본문) 위 법정분가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이러한 법정분가에 관한 개별규정들에 의하면 남성우월에 입각한 양성의 차별이 존재한다고 볼 여지가 없지 않다. 그러나 이는 법정분가제도 또는 처의 부가입적(夫家入籍) 원칙에 내재된 문제일 뿐이지, 법정분가는 물론 양성을 균등하게 취급하는 임의분가(민법 제788조 제1항)의 경우에도 함께 적용되는 민법 제778조 소정의 ‘분가한 자’에 내재한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나아가 ‘기타 사유로 인하여 일가를 창립하거나 부흥한 자’에 관하여 본다. 일가의 부흥은 복적의 경우에 일가창립과 선택적으로 취할 수 있는 제도이므로(민법 제786조 제2항, 제787조 제3항), 복적 및 일가창립과 함께 살펴본다. 일가창립이 인정되는 다양한 사유들(민법 제781조 제3항 본문, 제782조 제2항, 제786조 제1항, 제787조 제1항, 제2항 등) 중 특히 양성차별적 요소를 지닌 것을 찾아보기 어렵고, 다만, 처가 혼인의 취소 또는 이혼으로 인하여 일가를 창립하거나 친가에 복적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민법 제787조 제1항)이 여자의 지위를 달리 규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그렇지만, 이 경우에도 복적 또는 일가창립은 처의 부가입적(夫家入籍) 원칙의 반면으로 혼인관계가 해소되는 경우의 처리를 규정한 것으로 독자적인 의미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이를 두고 여자를 차별한 것이라고 본다 하더라도 이는 그 개별규정에 국한된 의미가 있는 것이어서 민법 제778조와 연관시킬 것은 아니다.
따라서 민법 제778조가 규정하고 있는 개개의 사유를 살펴보더라도 그것이 개별규정과 연관되지 않는 이상 그 규정 자체가 개별규정의 내용을 떠나서 본질적으로 성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에 기초한 차별을 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고, 민법에 가(家)라는 개념 및 호주라는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그 형식적, 기본적인 틀만
을 제시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남는 문제는 가(家)의 존재와 호주의 지위를 인정하는 조치의 헌법적합성이라 할 수 있다.
(3) 가(家)의 존재의 인정
헌법 제36조 제1항에 의하여 가족제도가 헌법제정권력자에 의하여 특히 보호의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고 있음은 앞서 본 바와 같고, 그 범위에서 헌법은 개인의 기본권과 저촉하는 경우에도 가족제도 자체는 유지되어야 한다는 가치적 결단을 이미 내렸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 부분에 관하여 입법자가 갖는 형성적 자유는 헌법 제36조 제1항이 정한 기준에 저촉되지 않는 한 매우 광범위하다 할 것이고, 입법자가 형성한 법적 규율이 가족제도의 취지에 반하거나 자의적 조치라고 할 만큼 현저히 불합리하지 않는 이상 이를 헌법에 위반된다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앞서 본 바와 같이 가족제도에 관한 법률적 기초를 공고히 하고 가족간의 법률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하여 민법이 가제도(家制度)를 두고 있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가족제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할 것이어서 법적 개념으로서의 가(家)의 존재 자체를 규정하고 있는 민법 제778조가 헌법 제36조 제1항을 비롯한 헌법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
그리고 법률상 강제적으로 개인이 가(家)에 속하게 되는 것이 개인의 존엄에 반하는 것인지에 관한 문제는 인간과 사회 간의 관계에 관한 깊은 통찰을 요한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이성을 절대화하여 인간을 추상화된, 고립적인 개별 존재로 파악하는 입장에서는, 개인이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타인과 관계를 맺게 되는 것에 대하여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 현실에 존재하는 구체적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실존적 구조를 갖고 있다고 이해하는 입장에서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개인이 타인과 관계를 맺는 원초적인 출발점인 가족관계를 법적 관념에 반영하는 것은 오히려 인간의 본성에 부합한다는 시각 또한 있을 수 있다. 이와 같이 인간과 그 존재양식이 다양한 시각에서 달리 이해될 수 있음을 고려한다면, 헌법 스스로 보호하고자 하는 가족에 각 개인이 속하도록 하고 있는 입법적 조치가 개인의 존엄을 침해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오히려 헌법은 각 개인은 가족관계에서 사회적 관계의 공고한 기초를 찾아야 하고, 이를 기초로 할 때에만 사회적 연대성의 강화와 정치적 통합이 가능하다는 전제에 서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민법 제778조가 개인이 가(家)에 속하여야 한
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 규정 자체는 이에 따른 법률효과를 전혀 규정하고 있지 않으므로, 민법 제778조가 규정하는 가(家)와 개인의 관계는 관념적인 것으로서 상징적인 의미 이상을 가질 수 없어서 그로 인한 기본권 침해의 정도가 심대하다고 보기 어렵다. 헌법이 명문의 규정을 두어 가족제도를 특히 보장하고 있는 것은, 가족제도 존립을 위하여 위와 같은 최소한의 제약은 개인이 수용하지 않을 수 없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4) 호주의 지위
(가) 민법 제778조는 위와 같은 가족제도에 터 잡은 각개의 가(家)에 호주를 두고 있는바, 이는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의 전통문화에 터 잡은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
즉, 고려의 가족제도는 부계혈족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으나, 처(모)가 혼인으로 인하여 본래의 혈족집단의 구성원으로서의 신분과 부(夫)의 혈족집단의 구성원으로서의 신분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처(모)족이 존중되고 처(모)의 지위가 열악하지 않았고, 가족관계가 가부장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고려사 식화지(高麗史 食貨志)에 의하면 호적에는 호주 및 호주와 동거하는 자식·형제·질(姪)·서(壻) 등 친족의 세계(世系)는 물론이고 노비와 그 세계(世系)까지도 기록하도록 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도 중기까지는 재산상속에 있어서 자녀의 균분상속이 인정되고 조상에 대한 봉사(奉祀)도 자녀가 윤행(輪行)하는 등 여자의 지위는 남자에 비하여 열등하지 않았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도 호적은 호주의 사조(四祖)와 호주의 처의 사조(四祖)가 기록되고 가족으로서 솔거(率居)하는 자녀와 서(壻) 그리고 노비 등을 기재하도록 하여 근본적으로는 고려의 호적제를 본받았다. 그러나 그 후 점차 성씨제도가 정비되고 체계화되면서 수직적 부계혈족주의와 결합하여 부계혈통주의가 강화됨으로써 필연적으로 가족제도의 변천을 초래하게 되어 여자의 지위를 극히 열악하게 하였으며 친자제도를 비롯한 혼인제도·상속제도의 전반에 걸쳐서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한편, 조선의 가족제도는 1896년에 ‘호구조사규칙’이 칙령으로 공포되어 새로운 호적제도가 시행되면서 호주의 사조(四祖)만을 기재하게 하여 가족제도가 더욱 남계중심의 부계혈족주의로 진전되었다.
이와 같이 호주의 구체적인 지위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리 나타나고 있지만, 호주라는 관념 자체는 가족제도에 가부장적 성격이 강하게 나타났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일관되게 유지되었다. 이는 적어도 가족제도와 더불어 ‘호주’라는 관념은 우리의 전통문화에 깊이 뿌리 내린 문화적 침전물이라고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헌법 제9조에 의하여 그 계승·발전이 보장될 필요가 있다.
(나)한편, 호주라는 관념을 인정한다면 호주와 가족 간에는 가족 내 지위에 차이가 존재하고 호주의 지위가 강요되는 것이므로, 이것이 개인의 존엄에 반하는 것인지, 호주 아닌 가족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인지가 문제된다.
이와 같은 문제상황에서는 헌법 제36조 제1항 전단이 규정하고 있는 헌법적 가치와 헌법 제9조가 규정하고 있는 헌법적 가치의 상충이 일어나고 있는데, 헌법 스스로 서로 저촉될 수 있는 가치를 헌법질서 내에 수용하면서 그 상충관계를 해결할 만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아니한 것은, 입법자가 상충하는 가치를 둘러싼 이익상황을 정확히 진단하고 법공동체 구성원들의 가치적 지향점이 담겨 있는 정치적 의사를 수렴하여 상충하는 각 가치가 갖는 타당영역 사이의 경계를 법률로 설정하라는 뜻이라고 해석된다. 이에 따라 입법자에게는 입법의 방식·내용·형식의 결정에 있어서는 일정한 형성의 자유(Ge-stal-tungs-frei-heit), 즉 입법재량이 원칙적으로 귀속된다. 그러나 입법자의 입법재량도 일정한 한계를 갖게 마련이므로, 입법자가 구체적으로 입법적 형성을 한 경우에 사법적 심사의 범위는 입법자의 입법재량 행사가 그 한계를 일탈하였는지 여부에 국한되고, 그 심사에 있어서의 기준은 입법권이 자의적으로 행사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자의금지의 원칙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다)이를 전제로 민법 제778조가 추상적인 ‘호주’라는 관념을 도입한 것이 입법재량의 범위에 속하는 것인지 여부에 관하여 본다.
우선 가족제도가 존재한다면, 그 가족 구성원들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호주라는 관념을 도입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가적을 호적편제의 기준으로 삼는 경우에는 호주를 중심으로 하여 각 가족구성원들의 관계를 표시하는 것이 호적사무의 능률을 기하고 가독성을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족의 구심점으로서의 호주를 인정하고 가족구성원인 자녀들의 성이 통일적으로 정해지도록 규율하는 등의 조치는 가족의 유대감과 연대성을 보다 강화하는
측면이 있어 가족제도의 존속, 유지에 기여하는 바가 없지 않다. 게다가 우리의 전통에 터 잡은 호주제라는 것은 생존한 존속에 대한 봉양(奉養)과 사망한 조상에 대한 봉사(奉祀)와 무관하지 아니하고, 이를 미풍양속으로 여겨온 전통적 민족의식이 투영되어 있다 할 것이므로, 이를 계승·발전시키기 위하여 호주라는 관념을 입법에 반영한 것만을 들어 입법재량을 남용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현행 민법에 이르기까지 구 법상 갖고 있던 호주의 실질적 권한은 상당 부분 배제되어 호주의 지위가 단순한 호적상 기준자, 즉 필두자(筆頭者)의 지위에 불과하게 되었음을 고려하면, 호주의 관념을 민법에 도입한 것만으로 호주가 아닌 국민을 차별하여 그의 기본권이 심각하게 침해되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양성의 평등을 침해하는 등 위헌적 요소가 있는 개별규정이 효력을 상실하거나 합헌적으로 시정된다면, 굳이 형식적, 추상적으로 호주의 관념만을 인정한 민법 제778조가 입법재량을 벗어난 위헌적 규정이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가령, 호주제를 유지하되 그 호주승계의 순위를 남녀의 구분 없이 세대(항열)와 연령 순으로 일응 규정하고, 가족 구성원의 합의 등에 의하여 그 순위를 변경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준다면, 부계혈통의 유지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가계에서는 부계혈통에 따른 호주승계를 그대로 유지할 것이고, 부계혈통주의를 봉건적 악습이라고 보는 가계에서는 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호주를 결정할 것이다. 이렇듯 각기 달리 나타날 수 있는 각 개인 또는 가족집단의 취향과 의사결정에 국가가 간섭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개인 권리 보장의 영역과 전통문화의 영역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지 않음에도, 이를 전적으로 배제한 채 호주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민법 제778조를 포괄적으로 위헌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오히려 전통문화의 계승·발전에 장애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큰 문제점을 안고 있다.
나아가 민법 제778조에 의하여 호주가 되는 것이 강요된다는 점에 관하여 보더라도, 누가 호주가 되는가도 민법 제778조에 의하여 바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고 개별규정의 내용을 종합하여야 판단이 가능한 것이므로, 그 구체적 결정방법에 문제가 있다면 그 개별규정이 위헌인 것이지 민법 제778조가 당연히 위헌이라고 볼 수는 없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입법적 형성의 내용에 따라서는 누가 호주가 될 것인가를 당사자들의 합의에 의하여 정하는 방식을 취할 수도 있는 것이므로, 민법 제778조가 특정 개인이 호주가 되는 것을 강요하고 있
다고 보기 어렵다. 그리고 호주는 단지 호적상 기준자 또는 필두자의 지위를 가짐에 불과하여 현실적으로 개인의 신체와 행동의 자유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고 상징적 의미만을 갖는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상징적 의미라는 것은 사회 구성원들의 가치관에 따라 달리 평가될 수 있는 상대적인 것이다. 따라서 민법 제778조에 의하여 개인의 존엄이 다소 영향을 받는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이는 상대적인 것으로서 과대평가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고, 나아가 호주제가 가족제도의 존속, 유지에 미치는 앞서 본 바와 같은 긍정적 효과를 고려해 보면, 민법 제778조가 일가의 관념적 필두자로서 호주라는 개념을 인정하였고 이에 따라 의사에 반하여 호주가 되는 경우가 생긴다고 하여 그것이 현저히 자의적인 방식에 의하여 개인의 존엄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조치라고 할 수 없다.
(라)그렇다면 민법 제778조가 호주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는 것도 입법자의 입법재량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 입법적 조치라고 할 것이므로, 이를 헌법 제36조 제1항에 위배된 위헌인 규정이라고 할 수 없다.
라. 결 론
이상의 이유로 이 사건 심판대상 조항 중 민법 제781조 제1항 본문 후단 및 민법 제826조 제3항 본문은 헌법 제36조 제1항에 위배되어 헌법에 위반된다고 할 것이나, 민법 제778조는 가족제도의 보장을 위한 입법재량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 입법적 조치로서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재판관 윤영철(재판장) 김영일(주심) 권 성 김효종 김경일 송인준 주선회 전효숙 이상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