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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
부산고등법원 2007. 6. 8. 선고 2007노129 판결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주거침입강간등)][미간행]
피 고 인

피고인

항 소 인

피고인

검사

박환용

변 호 인

변호사 백중현(국선)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은 무죄.

이유

1. 항소이유의 요지

피고인은 피해자를 강간한 사실이 전혀 없음에도, 원심이 신빙성이 없는 피해자의 진술을 근거로 사실을 오인하여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였다.

2. 판단

가.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은 2004. 2. 13. 부산지방법원에서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13세미만 미성년자 강간 등)죄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2005. 9. 30. 가석방되어 같은 해 10. 16. 그 남은 형기가 경과된 사람인바,

2006. 8. 3. 11:20 무렵 부산 동구 좌천동 (이하 생략)에 있는 피해자 공소외 1(여, 9세)의 집에서, 잠겨 있지 않은 대문을 통해 집안으로 침입한 다음 작은 방 책상의자에 앉아 컴퓨터로 게임을 하고 있던 피해자를 발견하고 피해자를 강간하기로 마음먹고, 피해자 외에 집에 아무도 없음을 피해자에게 물어 확인한 후 피해자의 손을 잡아끌어 그 곳 방바닥에 깔려 있는 매트리스에 피해자를 강제로 눕힌 다음, 피해자가 입고 있던 바지와 팬티를 벗기고 “움직이면 죽는다, 발버둥치지 마”라고 협박하면서 피고인의 몸으로 피해자를 내리 눌러 발버둥치는 피해자의 반항을 억압한 후, 피고인의 성기를 피해자의 음부에 삽입하여 피해자를 강간하고, 이로 인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약 2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질벽열상 등을 입게 하였다.

나. 피고인의 주장

피고인은 수사기관, 원심, 당심에 이르기까지 일관하여, 피고인은 발기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집 위치도 모르고, 피해자 집 근처에 가 본 사실도 없음에도, 지문, 정액 등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다. 원심의 판단

원심은, 피해자의 어머니인 공소외 2의 법정진술, 진술녹화시디(CD)에 수록된 피해자의 진술내용, 진단서 및 상처부위사진 등의 기재와 영상, 피고인의 범죄전력 자료(판결문사본, 범죄경력조회, 출소일자 확인보고)의 기재를 증거로 삼아,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였다.

라. 이 법원의 판단

(1) 쟁점

피고인이 범행사실을 부인하는 이 사건에서,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 중 진술녹화시디에 수록된 피해자의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을 제외한 나머지 증거들은 피해자가 공소사실 기재 일시 무렵 피해자의 집에서 40대 이상으로 보이는 남성으로부터 강간을 당한 사실과 피해자가 피고인을 범인으로 지목하게 된 경위와 피고인에게 성폭력 범죄전력이 있다는 사실에 관한 것일 뿐, 피고인이 이 사건 강간 범행의 범인이라는 직접적인 증거는 되지 못하고, 위 피해자의 진술만이 유일한 직접적인 증거이므로, 이 사건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유무에 달려 있다 할 것이다.

(2) 기록에 나타난 피해자가 피고인을 범인으로 지목하게 된 경위

피해자는 사건 당일인 2006. 8. 3. 부산 연제구 거제동에 있는 부산의료원 내 부산여성·학교폭력 피해자 원스톱지원센터에서 피해 경위를 진술하면서 범인의 인상착의에 관하여 “범인의 얼굴은 넓적하고 사각형(턱을 가리키며)이고, 흑인만큼은 아니지만 지나가면 표가 날 정도로 얼굴과 팔 등이 검은 편이었으며, 눈은 조금 작고 쌍꺼풀이 있었으며, 눈과 이마에 주름이 있었고, 머리는 짧았으나 단정하지는 않았으며, 옷은 회색 반팔 면티에 긴청바지를 입고 있었고, 신장은 피해자의 어머니(163㎝) 정도로 작았으며, 체격은 뚱뚱해 보였고, 나이는 피해자의 아버지(42세)보다 많아 보였으며 얼굴에 점은 없었다”고 진술하였다. 탐문 수사를 하던 경찰은 사건 발생 4~5일 후에 용의자 인적사항을 확보하기 위해 피해자에게 ‘수법영상시스템’을 활용하여 300여명을 확인하게 하였으나, 용의자를 발견하지 못하였고, 그 후 피해자가 이 사건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을 이유로 경찰서에 출석하여 용의자 사진 확인하는 것을 거부하자, 경찰은 위 공소외 2가 의심한 중부산 케이블방송 동구점 직원들과 피고인을 비롯한 부산동부경찰서 관내 성폭력 우범자 총 47명의 주민등록 화상사진을 컴퓨터휴대용 저장장치(USB)에 저장한 후, 2006. 8. 28. 12:30 무렵 피해자 집에서 위 공소외 2 입회 아래 컴퓨터 화면을 통해 피해자를 상대로 확인하게 하였는데, 피해자가 “피고인의 사진이 범인과 아주 많이 닮았다”고 진술하자, 경찰은 부산지방법원으로부터 피고인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연고지 및 배회처를 상대로 수사하던 중 2006. 10. 11. 23:15 무렵 부산 동구 초량3동 1200-4에 있는 신풍빌딩 4층 부산역 고시텔 13호실 내에서 피고인을 체포하여 범행을 추궁하였으나, 범행 일체를 부인하여 피고인을 상대로 진술조서 작성 후, 피고인 동의 아래 자연스러운 모습을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하여 2006. 10. 12. 07:30 무렵 피해자의 집에서 위 공소외 2 입회 아래 피해자에게 확인하게 하자, 피해자가 “피고인이 자신에게 피해를 입혔던 범인이 맞다”고 진술하였고, 그 직후인 같은 날 아침 무렵 부산동부경찰서 숙직실에서, 유리를 통해 피해자만 피고인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상태에서 혼자 있는 피고인이 범인인지 여부를 확인하게 하여 피해자가 “범인이 맞다”고 하자, 이를 비디오로 녹화하기 위하여 같은 날 08:10 무렵 범인식별실에 피고인을 포함하여 평복을 입은 3명을 의자에 동시에 앉힌 상태에서, 공소외 2 입회 아래 피해자로 하여금 피해자만 피고인을 볼 수 있는 특수유리를 통해 범인 여부를 확인하게 하자, 피해자는 “피고인이 범인이 맞다”고 진술하였다.

(3)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여부

(가) 용의자의 인상착의 등에 의한 범인식별 절차에 있어 용의자 한 사람을 단독으로 목격자와 대질시키거나 용의자의 사진 한 장만을 목격자에게 제시하여 범인 여부를 확인하게 하는 것은 사람의 기억력의 한계 및 부정확성과 구체적인 상황 하에서 용의자나 그 사진상의 인물이 범인으로 의심받고 있다는 무의식적 암시를 목격자에게 줄 수 있는 가능성으로 인하여, 그러한 방식에 의한 범인식별 절차에 있어서의 목격자의 진술은, 그 용의자가 종전에 피해자와 안면이 있는 사람이라든가 피해자의 진술 외에도 그 용의자를 범인으로 의심할 만한 다른 정황이 존재한다든가 하는 등의 부가적인 사정이 없는 한 그 신빙성이 낮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대법원 2001. 2. 9. 선고 2000도4946 판결 참조). 이와 같은 점에서 볼 때, 범인식별 절차에 있어 목격자의 진술의 신빙성을 높게 평가할 수 있게 하려면, 범인의 인상착의 등에 관한 목격자의 진술 내지 묘사를 사전에 상세히 기록화한 다음, 용의자를 포함하여 그와 인상착의가 비슷한 여러 사람을 동시에 목격자와 대면시켜 범인을 지목하도록 하여야 하고, 용의자와 목격자 및 비교 대상자들이 상호 사전에 접촉하지 못하도록 하여야 하며, 사후에 증거가치를 평가할 수 있도록 대질 과정과 결과를 문자와 사진 등으로 서면화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여야 할 것이고, 사진 제시에 의한 범인식별 절차에 있어서도 기본적으로 이러한 원칙에 따라야 할 것이다( 대법원 2004. 2. 27. 선고 2003도7033 판결 등 참조).

(나) 앞서 본 바와 같이, 특수유리를 통해 피고인을 대면한 피해자가 범인식별 절차에서 피고인을 범인으로 지목한 진술은 피고인을 포함한 3명을 동시에 앉혀 놓은 상태에서 범인을 지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이기는 하였으나, 그 직전에 피고인만의 모습을 촬영한 비디오를 피해자에게 보여주고 범인 여부를 확인하게 하였고, 다시 피고인 혼자만 있는 상태에서 피해자로 하여금 범인 여부를 확인하게 하여 피해자가 “피고인이 범인이 맞다”고 진술하였다는 것이므로, 피고인을 범인으로 지목한 피해자의 이러한 진술들은 범인식별 절차에서 신빙성을 높이기 위하여 준수하여야 할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상태에서의 진술이고, 나아가 앞서 본 바와 같이 위 범인식별 절차 40여일 이전에 피해자가 여러 장의 용의자 사진 중에서 범인과 많이 닮은 사람으로 피고인을 지목하였다면, 피해자는 자신이 실제로 경험하고 기억하는 것에 의하여 범인을 지목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보고 범인과 닮았다고 처음 지목한 것 때문에 이후 피고인을 직접 대면한 상태에서 피고인을 범인이라고 지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 그리고 피해자가 사건 발생일로부터 25일이 지난 무렵 용의자들 사진 중에서 피고인의 사진을 보고 범인과 아주 많이 닮았다고 진술하였으나, 이는 피고인의 신체적 특성이나 특별한 인상착의를 근거로 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피해자는 범인의 얼굴과 팔 등이 지나가면 표가 날 정도로 검은 편이었다고 사건 당일 진술하였는데, 피해자에게 제시되었던 피고인의 사진을 보면, 그 얼굴색이 피해자의 진술처럼 표가 날 정도로 검은 편이라고는 보이지 아니하고, 달리 범행 당시 피고인의 얼굴과 팔 등이 피해자의 진술처럼 매우 검은 편이었음을 인정할 만한 증거도 없어, 피해자가 진술한 범인의 인상착의와 용의자로 제시된 피고인의 사진상의 인상착의가 과연 동일한지에 대해서도 분명하지 아니하다. 또한 피해자는 피고인의 사진을 지목하면서 범인과 아주 많이 닮았다고만 하였을 뿐 범인이라고 단정하지 아니한데다가, 피해자는 피고인을 포함한 용의자 사진들을 집에서 확인하기 전에,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을 이유로 경찰서에 출석하여 용의자 사진 확인하는 것을 거부하였는데, 경찰로부터 사진들 중 범인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으며, 그 중에서 아무도 고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한 피해자가, 빨리 범인을 지목함으로써 위와 같은 정신적 압박을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 등에 의하여 긍정적인 식별결과를 도출해야 한다는 강한 압박 아래 용의자 사진들 속에 범인이 없음에도, 피고인을 범인과 아주 많이 닮았다고 잘못 지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피해자는 범인이 회색 반팔 면티를 입고 있었다고 사건 당일 진술하였는데, 피해자에게 제시된 용의자 사진 47장 중 40대 이상의 남성으로 회색 옷을 입고 있는 용의자는 피고인과 공소외 3 뿐이다). 그리고 피해자는 범인의 얼굴에 점은 없었다고 사건 당일 진술하였으나, 이 법원의 검증결과에 의하면 피고인의 왼쪽 볼에 사마귀 같은 점이 있는 사실이 인정되는바, 비록 강간 당시 흥분 상태로 말미암아 피해자가 범인의 얼굴에 있는 점을 보지 못하였을 수도 있으나, 범인에게 쌍꺼풀이 있었다는 피해자의 진술에 비추어 쉽게 식별이 가능하다고 보이는 피고인의 위 얼굴의 점을 보지 못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라) 무릇 목격진술이라는 것이 그 자체로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충분히 믿을 만하다는 것은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할 것인데, 피고인이 종전에 피해자와 안면이 있는 사람이라든가 피해자의 진술 외에도 피고인을 범인으로 의심할 만한 다른 정황이 존재한다든가 하는 등의 부가적인 사정이 없는 이 사건에서, 피해자가 피고인을 범인으로 지목한 진술은 앞서 본 바와 같이 지목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오류의 가능성을 안고 있어, 그 신빙성이 낮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4) 소결

형사재판에서 공소된 범죄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는 것이고,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그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바, 이 사건에서 공소사실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인 피해자 진술은 앞서 본 바와 같이 그 신빙성이 낮고, 검사가 제출한 나머지 증거들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며, 달리 공소사실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음에도, 원심이 피해자의 진술 등을 받아들여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것은 채증법칙을 위반하여 사실을 잘못 인정한 위법을 저지른 것으로서, 이는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쳤음이 명백하므로, 이를 지적하는 피고인의 항소논지는 이유 있다.

3. 결론

따라서, 피고인의 항소는 이유 있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6항 에 따라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다시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이 사건 공소사실은 위 제2의 가.항 기재와 같은 바, 위 공소사실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따라 피고인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한다.

판사 정현수(재판장) 박형준 김해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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