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2014다66352 손해배상
원고피상고인
A 주식회사
피고상고인
주식회사 한국외환은행
원심판결
서울고등법원 2014. 9. 5. 선고 2014나989 판결
판결선고
2015. 3. 20.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상고이유 제1, 2점에 대하여 원심은 판시와 같은 이유를 들어, (1) 콜옵션 계약금액을 월 60만 달러, 계약기간을 1년으로 한 이 사건 통화옵션계약은 원고에게 과대한 현실적 손실을 초래할 수 있어 적합하지 아니한 상품이었다고 전제한 다음, (2) ① 피고는 원고가 이 사건 통화옵션계약을 체결할 경우 결제일에 현물이 확보되지 못하여 감당하기 어려운 손실을 입을 위험성이 있다는 사정을 충분히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고, ② 원고의 매출액 중 80%에 가까운 금액이 해외에서 수입하는 원자재 비용으로 지출되는 상황에서 인도 국영기업과의 대규모 수출계약이 체결되었다 하여 갑자기 무리한 내용의 통화옵션상품에 가입할 이유가 없었는데, 피고로부터 수입신용장 개설 승인을 빨리 받지 않으면 원자재 수입이 늦어져 수출계약을 예정대로 이행할 수 없게 될 처지에 있던 원고로서는 수입신용장 개설 승인과 맞물려 이루어진 피고의 키코 상품 가입 권유를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고, 원고의 이러한 사정을 피고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③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는 위 인도 국영기업과의 수출계약 금액에 대한 환헤지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원고에게 과대한 위험성을 수반하는 이 사건 통화옵션계약을 적극적으로 권유하였고, 그 권유 과정에서 이 사건 통화옵션계약의 위험성에 관하여 원고가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상세한 설명을 하지 아니하였다고 인정하여, (3) 피고는 이 사건 통화옵션계약을 체결하면서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를 위반하였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원심의 판단 중 사실인정을 다투는 취지의 상고이유 주장은 실질적으로 사실심 법원의 자유심증에 속하는 증거의 취사선택과 증거의 가치판단을 탓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원심판결 이유를 원심 판시 법리 및 적법하게 채택된 증거들에 비추어 살펴보아도, 원심의 판단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통화옵션계약에서의 적합성 원칙 및 설명의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난 위법이 없다.
2. 상고이유 제3점에 대하여
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단기소멸시효의 기산점이 되는 민법 제766조 제1항에서 정한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이란 손해의 발생, 위법한 가해행위의 존재, 가해행위와 손해의 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는 사실 등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에 대하여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하였을 때를 의미하고, 피해자 등이 언제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을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한 것으로 볼 것인지는 개별적 사건에서의 여러 객관적 사정을 참작하고 손해배상청구가 사실상 가능하게 된 상황을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인정하여야 한다(대법원 1998. 7. 24. 선고 97므18 판결, 대법원 2008. 4. 24. 선고 2006다30440 판결 등 참조). 그리고 여기서 '가해자를 안다'는 것은 사실에 관한 인식의 문제이지 사실에 대한 법률적 평가의 문제가 아니다(대법원 1993. 8. 27. 선고 93다23879 판결, 대법원 2012. 3. 29. 선고 2011다83189 판결 등 참조).
나. 원심은, (1) 이 사건 통화옵션계약의 최종 만기인 2008. 12. 15.부터 3년이 지난 2012. 10. 5. 이 사건 소가 제기되어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피고의 항변에 대하여, 원고가 이 사건 통화옵션계약의 각 관찰기간 만기일 또는 그 결제일에 손해의 발생 사실은 알았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원고가 각 관찰기간 만기일에 위 각 손해가 피고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발생하였다는 것까지 현실적·구체적으로 인식하였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여 피고의 항변을 배척하였는데, (2) 2008년 상반기에는 키코 상품에 대한 기업들의 주장이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는 상황이었고, 2008년 말경까지 100개 이상의 기업들이 통화옵션계약과 관련하여 은행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으므로, 원고가 늦어도 2008년 말경에는 피고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손해가 발생하였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었고 그 무렵부터 소멸시효가 진행되어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취지의 피고의 주장에 대하여는 판단하지 아니하였다.다. 그러나 원심판결 이유 및 적법하게 채택된 증거들을 비롯한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1) 2008. 2.경부터 원/달러 환율이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하여 이 사건 통화옵션계약에서 정한 콜옵션 효력이 발생하는 녹인 환율을 웃돌기 시작함에 따라 원고는 최종 만기에 이를 때까지 각 관찰기간 만기일의 시장 환율과 행사 환율의 차액 상당을 각 결제일에 피고에게 지급하여야 하는 손해가 발생하였는데, 계약기간이 만료된 2008. 12. 17.까지 발생된 손해액의 합계는 10억 2,000만 원으로서 이러한 손해 발생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2) 그리고 이 사건에서 피고의 불법행위는, 원고의 수출대금 및 수입대금에 비추어 환헤지 거래 필요성이 적었고 해당 결제일에 달러 현물을 확보하지 못하여 원고가 감당하기 어려운 과다한 현실적 손실이 초래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어 원고에게 적합하지 아니함에도 이 사건 통화옵션계약을 적극적으로 권유하였고, 또한 그 위험성에 관하여 원고가 인식할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상세한 설명을 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위와 같이 2008. 2.부터 계약기간 만료일까지 10개월에 걸쳐 원고의 예상을 훨씬 넘는 커다란 손실이 발생하여 이 사건 통화옵션계약의 위험성이 현실화됨에 따라, 원고로서도 그와 같은 위험성과 아울러 그 위험성을 안고 있는 이 사건 통화옵션계약이 원고에게는 적합하지 아니함에 대하여 점차 인식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고, 또한 그러한 위험성에 관하여 피고가 구체적이고 상세한 설명을 하지 아니하였음에 대하여도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원고는 시장 환율이 녹인 환율을 넘어 계속적으로 상승하여 2008. 2.부터 4개월 연속 600,000달러의 매도의무가 발생하자 2008. 6.부터 2008. 8.까지 각 만기가 도래하는 부분에 관하여 1억 3,500만 원의 수수료를 지급하고 녹인 환율을 인상하여 수정함으로써 그 기간에는 손해를 면하였는데, 이에 비추어 보더라도 원고는 그 당시에 이 사건 통화옵션계약이 내포하고 있는 구체적인 위험성 등에 관하여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3) 그뿐 아니라 2008. 3. 이후 원/달라 환율의 급격한 상승으로 말미암아 원고와 마찬가지로 원/달러 환율의 안정적인 하향세를 예측하여 통화옵션계약을 체결하였던 많은 중소기업들이 통화옵션계약에서 정한 은행의 콜옵션 행사에 따라 막대한 환차손을 입게 되어 커다란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되었다. 이로 인하여 2008. 4.경부터 금융감독위원회가 통화옵션과 관련한 은행의 위법행위 유무를 조사하였고 공정거래위원회도 통화옵션과 관련한 민원사항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였으며, 일부 회사들은 2008년. 말까지 사이에 은행을 상대로 통화옵션계약에 관한 소송을 제기하거나 가처분을 청구하였고 법원에서 그 가처분이 인용되기도 하였다.
라. 이러한 사실관계를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종합하여 보면, 원고로서는 이 사건 계약기간이 만료된 2008. 12. 17. 무렵에는 원고가 감당하기 어려운 과다한 현실적 손실이 초래될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는 이 사건 통화옵션계약과 관련한 피고의 불법행위를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인식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그 무렵부터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진행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사정을 제대로 살피지 아니하고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을 배척한 위와 같은 원심의 판단에는 소멸시효의 기산점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이를 지적하는 취지의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3. 결론
그러므로 나머지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하고 원심판결을 파기하며,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재판장대법관김소영
대법관이인복
주심대법관김용덕
대법관고영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