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엘에스전선 주식회사 (소송대리인 변호사 윤인성 외 1인)
피고
한국수력원자력 주식회사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지평 담당변호사 백종현)
2016. 12. 23.
주문
1. 피고가 2014. 9. 17. 원고에게 한 10년의 공급자등록제한이 무효임을 확인한다.
2.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주문 제1항 또는 선택적으로, 원고가 피고에 대하여 공급자등록신청을 할 수 있는 지위에 있음을 확인한다.
이유
1. 기초사실
원고는 2004. 2. 12.부터 2005. 3. 15.까지, 2008년 10월경 및 2010. 3. 15.경 피고가 실시한 원자력 발전용 케이블 구매입찰에서 다른 입찰 참가자들과 물량배분 비율을 정하고, 투찰 가격을 공동으로 결정하는 등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는 담합행위를 하였고, 이와 같은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하여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2014. 1. 10.경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피고[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공공기관운영법’이라 한다) 제5조 제3항 제1호 에서 정하고 있는 공기업에 해당한다]는 2014. 4. 15. 원고에게 위와 같은 담합행위를 이유로 2년의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을 하였고, 2014. 9. 17. 부정당업자 제재처분을 받았음을 이유로 원고에게 공급자등록 취소 및 10년의 공급자등록제한을 하였다(이하 ‘이 사건 공급자등록제한’이라 한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호증, 을 제1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이 사건 공급자등록제한의 적법 여부
가. 이 사건 공급자등록제한의 처분성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은 행정청이 행하는 구체적 사실에 관한 법집행으로서 공권력의 행사 또는 그 거부와 그 밖에 이에 준하는 행정작용이다( 행정소송법 제2조 제1항 제1호 ). 행정청의 어떤 행위가 항고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는 추상적·일반적으로 결정할 수 없고, 행정처분은 행정청이 공권력 주체로서 행하는 구체적 사실에 관한 법집행으로서 국민의 권리의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행위라는 점을 고려하고, 관련 법령의 내용과 취지, 행위의 주체·내용·형식·절차, 그 행위와 상대방 등 이해관계인이 입는 불이익과의 실질적 견련성, 그리고 법치행정 원리와 당해 행위에 관련한 행정청 및 이해관계인의 태도 등을 참작하여 개별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대법원 2012. 9. 27. 선고 2010두3541 판결 참조).
그런데 갑 제1 내지 9호증, 을 제1호증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더하여 인정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실 및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 공급자등록제한은 피고가 행정청의 지위에서 한 담합행위에 대한 제재로서 원고에게 10년간 공급자등록을 제한하여 입찰에 참가할 수 없게 하는 공권력 행사로서 처분에 해당한다.
① 오늘날 국가는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모든 업무를 국가가 수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임무수행을 민간이나 새로운 형태의 조직에 위탁한 후 감독기능만 수행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조직 등에 의하여 행정임무수행이 이루어지는 영역은 여전히 공적영역으로서 공동체적 규범과 가치가 유지되어야 하고, 이러한 사정은 행정처분성을 판단함에도 있어서도 고려되어야 한다( 서울고등법원 2015. 7. 15. 선고 2015누31024 판결 참조).
② 공공기관운영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공기업은 법률에 의하여 설립되거나 정부로부터 출연 또는 업무 위탁 등을 받는 기관으로서 기획재정부장관으로부터 지정을 받으면 성립한다. 정부는 임원의 임면, 예산의 편성과 회계 및 감사, 운영계획의 보고 및 경영실적에 대한 평가 등 공기업 운영전반에 관하여 상당한 개입을 하여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공공기관운영법 제6조 , 제25조 , 제40조 , 제42조 , 제52조 참조). 공기업은 정부로부터 출연을 받아 설립되고, 정부의 실질적인 지배력이 미치는 기관이므로 계약체결과 전 과정에 있어서 공정성과 투명성이 크게 요청된다.
특히 공공기관운영법 제39조 제3항 은 ‘회계처리의 원칙과 입찰참가자격의 제한기준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기획재정부령으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그 위임을 받은 공기업·준정부기관 계약사무규칙 제6조 는 계약을 체결하려면 일반경쟁에 부쳐야 하고, 경쟁은 입찰의 방법으로 하여야 하며,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입찰참가자격을 사전 심사하는 등 입찰참가자격에 필요한 요건을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공기업이 행하는 계약에 있어서도 국가와 동일한 기준을 도입하여 일정한 요건을 갖춘 자를 제한 없이 입찰에 참여할 수 있게 하고, 입찰방식, 낙찰자결정 등 계약의 전 과정에 있어서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확립하도록 하며, 계약에 있어서 공기업이 가질 수 있는 우월적 지위의 남용을 억제하고 있다. 이와 같은 공기업 설립, 구성, 운영 등의 기준에 비추어 보면, 공공기관운영법상의 공기업은 공적임무를 수행하는 영역에서는 행정권한의 위임 또는 그 위탁을 받은 행정청의 지위를 부여받았다고 볼 수 있다.
③ 피고가 시행하는 입찰에 참여하고자 하는 자는 입찰 서류 접수 전에 해당분야 공급자로 등록을 하여야 한다. 피고는 신청자에 대하여 자격심사 후 일정한 자격요건을 갖춘 자에게만 공급자등록을 하여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고 낙찰 받은 업체로부터 기자재 등을 제공받는다. 피고는 내부규정인 공급자관리지침으로 일정한 사유에 해당하는 업체는 일정 기간 동안 다시 공급자등록 신청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는데(공급자관리지침 제7조), 공급자등록을 못하게 되면 피고가 시행하는 입찰에 참여할 수 없게 되므로 피고의 공급자등록 제한은 결국 입찰에의 참여를 제한하는 기능을 하게 된다. 더욱이 부정당업자로 제재를 받은 경우 공급자등록 취소가 되고(공급자관리지침 제31조 제12호), 10년간 공급자등록제한을 받게 된다(공급자관리지침 제7조 제3호). 피고는 담합행위를 하여 부정당업자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원고에게 2014. 4. 25.부터 2016. 4. 24.까지 2년의 입찰참가자격제한 처분을 하였고, 그에 따라 공급자등록 취소를 한 후 2014. 4. 25.부터 2024. 4. 24.까지 10년의 공급자등록제한을 하였다. 원고로서는 2년간 입찰참가자격제한을 받았지만 같은 사유로 공급자등록이 취소되고, 10년간 공급자등록제한을 받게 됨으로써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의 효력발생일인 2014. 4. 25.부터 10년 동안 입찰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었다. 피고의 공급자등록취소, 공급자등록제한은 원고의 입장에서는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과 사실상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
④ 공공기관운영법 제39조 제2항 은 ‘공기업은 공정한 경쟁이나 계약의 적정한 이행을 해칠 것이 명백하다고 판단되는 사람·법인 또는 단체 등에 대하여 2년의 범위 내에서 일정기간 입찰참가자격을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공기업인 피고에게 입찰참가자격제한을 할 수 있는 행정권한을 수여하고 있으므로, 피고는 그러한 행정권한을 수여받은 공공단체로서 행정청의 지위에 있다. 한편, 피고가 행사하는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은 부정당업자가 계약에 관여하여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폐해를 사전에 방지하고 계약의 공정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공기업이 추구하는 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계약의 충실한 이행을 확보하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부정당업자에 대한 공급자등록을 취소하고 제한하는 공급자등록제도 또한 부정당업자의 입찰 참여자격을 박탈하여 공정한 경쟁이나 계약의 적정한 이행을 확보하려고 하는 목적에 이바지하게 된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공급자등록제도는 경쟁입찰에 의하여 계약을 체결하여야 하는 피고가 일정한 요건을 갖춘 자에게 입찰참가자격을 부여하기 위한 것인데, 이 사건과 같은 부정당업자의 경우 공급자등록취소와 등록제한이 되면 그 등록제한 기간 동안 필연적으로 입찰참가자격이 제한된다. 이와 같은 부정당업자에 대한 공급자등록의 취소·제한의 목적 및 효력 등을 종합하여 보면, 위 조항의 수권은 입찰참가자격제한을 할 권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급자등록취소나 등록제한을 할 권한부여에 미친다고 볼 수 있다. 피고는 공공기관운영법 제39조 제2항 의 수권에 따라 공급자등록취소 및 등록제한을 할 수 있는 공공단체로서 행정청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⑤ 이 사건 공급자등록제한을 피고의 내부규정인 공급자관리지침에 근거를 둔 사법상의 통지행위로 보게 되면, 원고는 동일한 담합행위로 인하여 이 사건 공급자등록제한 기간 동안 입찰참가자격제한 처분을 받은 것과 사실상 동일한 지위에 있게 됨에도 그 구제방법은 민사상 쟁송절차에 따라야 한다(이와 달리 입찰참가자격제한 처분에 대해서는 행정소송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다). 같은 당사자 사이에서 같은 행위로 인하여 사실상 같은 효력이 발생함에도 그 쟁송절차를 달리 하여야 할 합리적 이유를 찾기 어렵다.
이하 이 사건 공급자등록제한을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
나. 이 사건 처분의 적법 여부
피고는 공공기관운영법 제39조 제2항 으로부터 2년의 범위 내에서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음에도 내부규정인 공급자관리지침으로서 최장 10년 동안 사실상 입찰참가자격을 제한하는 효력이 있는 공급자등록제한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그에 근거하여 이 사건 처분을 하였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공급자등록제한이 피고가 행정청의 지위에서 원고에 대하여 한 불이익처분으로 볼 수 있는 이상 법률에 근거하여 처분을 하여야 하나, 10년의 공급자등록제한을 할 수 있는 근거법률이 없다. 공공기관운영법 제39조 제2항 에서 정하고 있는 입찰참가자격제한의 상한은 2년인데, 이 사건 10년의 공급자등록제한은 같은 담합행위를 사유로 한 것으로서 2년의 입찰참가자격제한을 넘어서 추가로 8년의 입찰참가자격제한을 가져온다. 공급자관리지침은 상위 법률에 반하는 것을 규정하고 있어 이 사건 공급자등록제한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이 사건 처분은 법률에 근거가 없고, 상위 법률에 반하는 공급자관리지침에 근거한 것으로 그 하자가 중대할 뿐만 아니라 객관적으로 명백하여 무효이다.
3.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이유 있어 인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