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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등법원 2003. 10. 14. 선고 2003노1753 판결
[상해치사][미간행]
피 고 인

피고인

항 소 인

검사

검사

함귀용

변 호 인

변호사 권성원외 2인

주문

검사의 항소를 기각한다.

이유

1. 항소이유의 요지

가. 미군 범죄수사대(Criminal Investigation Department, 이하 “CID”라고 한다)의 수사관 공소외 1 작성의 수사보고서 중 피고인의 진술부분에 대하여

피고인은 2002. 2. 4.부터 2002. 2. 6.까지 사이에 3회에 걸쳐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헌팅턴시 소재 (이름 생략) 호텔에서 위 공소외 1과 미국 연방수사국(Federal Bereau of Investigation, 이하 “FBI"라고 한다)의 한국 지부장인 공소외 2 및 FBI 소속의 거짓말탐지기 요원인 공소외 3으로부터 인터뷰 형식으로 조사를 받으면서 이 사건 공소사실을 자백하는 내용의 자술서를 작성하였고, 공소외 1은 위 과정에서 피고인이 자백하는 내용을 문답 형식으로 정리한 후 피고인의 서명날인을 받았다.

미국 형사재판 절차에서는 검사가 피의자를 신문하지 않으므로 사법경찰관이 피의자의 자백을 들은 경우, 사법경찰관은 법정에 출석하여 이러한 자백 사실을 증언하게 되고 위 증언에는 증거능력이 부여된다. 한편, 공소외 1은 대한민국 사법경찰관이 아니며, 피고인 역시 위 수사보고서 작성 당시 피의자의 신분이 아니었다. 이러한 점들을 감안할 때, 위 수사보고서 중 피고인의 진술을 기재한 부분은 형사소송법 제313조 제1항 단서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는 것이 타당할 것인데, 작성자인 공소외 1이 원심 법정에 출석하여 진정성립을 인정하였고, 피고인의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위 진술 부분에는 증거능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소외 1의 지위를 단순하게 대한민국 사법경찰관으로 봄으로써 위 수사보고서 중 피고인의 진술부분이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2항 소정의 피의자신문조서에 해당하여 피고인이 법정에서 내용을 부인함으로써 증거능력이 없다고 한 원심의 판단은 부당하다.

나. 피고인 작성의 진술서에 대하여

원심은, 피고인이 위와 같이 작성한 진술서 역시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2항 에 해당하고 피고인이 그 내용을 부인하므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시하였으나, 이러한 판단은 앞서 본 바와 같이 공소외 1 등을 검사 이외의 수사기관이라는 전제 하에 이루어진 것으로서 부당하다. 오히려, 위 진술서는 형사소송법 제313조 제1항 단서에 해당하여 그 작성자인 공소외 1에 의하여 진정성립이 증명되고 진술 당시의 특신상태가 인정되므로 증거능력이 있다.

다. 증인 공소외 2, 공소외 1의 각 법정 진술

원심은 위와 마찬가지 이유로 위 증인들의 진술이 증거능력이 없다고 하였으나, 위 증인들이 사법경찰관의 지위에 있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위 진술들은 형사소송법 제316조 제1항 에 해당하고 피고인의 진술이 특신상태 하에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증거능력이 있다.

라. 검사 작성의 공소외 2에 대한 진술조서의 진술기재

위 진술조서는 참고인에 대한 검사 작성의 진술조서로서 그 증거능력은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1항 본문에 의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인데, 공소외 2가 법정에서 그 진정성립을 인정한 이상 증거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위와 마찬가지 이유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함으로써 채증법칙 위반에 의한 사실오인의 위법을 범하였다.

마. 검사는 당심에서 추가로 미국 법원에서 작성한 피고인에 대한 범죄인 인도 공판조서를 증거로 제출하므로, 항소법원은 이를 참작하여 새로이 판단하여야 한다.

2. 항소이유에 대한 판단

가. 이 사건 공소사실에 관하여, 피고인은 위와 같이 미국에서 공소외 1 등으로부터 조사를 받으면서 자백한 이외에는 대한민국 경찰 이래 당심 법정에 이르기까지, 피고인은 피해자를 폭행한 사실이 전혀 없고 단지 술에 취한 피해자를 같이 묵고 있던 여관 방에 데려다 준 사실 밖에 없다고 진술하면서 극구 부인하고 있다.

나. 검사의 항소이유 중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미국 FBI 또는 CID 수사관인 공소외 1, 공소외 2, 공소외 3이 미국에서 피고인을 신문하고 청취한 자백이 대한민국 법정에서 증거법상 어떠한 효력을 갖는가 하는 점이다. 검사는 앞서 본 바와 같이, 미국에서는 검사가 아닌 경찰이 피고인을 신문하는 형사법적 특수성 때문에 경찰이 피고인의 자백을 들었다는 법정 증언이 당연히 증거능력을 갖고, 공소외 1 등은 대한민국 사법경찰관이 아니며, 피고인 역시 위 수사보고서 작성 당시 피의자의 신분이 아니었으므로, 피고인이 공소외 1 등 앞에서 자백하고 이를 기재한 수사보고서, 진술서 등은 형사소송법상 사법경찰관 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나, 이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받아들일 수 없다.

(1) 원심이 적법하게 조사, 채택한 증거들과 당심에 제출된 미국 공소외 4 검사가 작성한 “켄지 스나이던 사건 관련(In the Matter of Kenzi Snider)"이라는 서류의 기재에 의하면, ① 이 사건이 2001. 3. 17. 발생한 이후 대한민국 경찰(서울 용산경찰서)은 수사를 하던 중 피해자가 미국 시민이고, 범인이 미군일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2001. 5.경부터 FBI 및 CID와 서로 정보를 교환하면서 사건 수사를 진행한 사실, ② 당시 경찰은 피고인에 대한 별다른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하여 피고인에 대한 미국으로의 출국을 허용하였는데, 2001. 12. 20. FBI 소속의 공소외 2 및 CID 소속의 공소외 1과 함께 사건 현장을 다시 검토하던 중 피고인의 진술에 모순점이 있음을 발견한 사실, ③ 이에 공소외 1과 공소외 2는 대한민국 경찰과 상의를 거친 후 미국에 있는 피고인을 다시 신문하기로 하고 이를 상부에 보고한 다음 2002. 2. 4.부터 같은 달 6.까지 3회에 걸쳐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헌팅턴시 소재 (이름 생략) 호텔에서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FBI 소속인 거짓말 탐지기 담당자인 공소외 3을 만나 피고인을 함께 신문한 사실, ④ 공소외 1 등은 첫날 피고인을 상대로 피고인의 성장과정, 대한민국에 교환학생으로 가게 된 경위, 친구인 피해자가 죽은 후의 심경 등에 대해서 질문을 하였고, 그 다음날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는 자백을 들은 후 마지막 날 공소외 1은 피고인의 자백을 기재한 수사보고서를 작성하였고, 피고인은 위 자백에 대한 진술서를 작성하고 서명한 사실, ⑤ 미국 법률에 의하면, 해외에서 발생한 미국 시민에 대한 살인사건에 대하여는 FBI가, 용의자가 미군 형법(UCMJ, the Uniform Code of Military Justice)의 적용대상에 해당한다고 믿을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경우 CID가 수사권을 갖는다는 점에서 공소외 2, 공소외 3 및 공소외 1은 피고인을 수사할 권한이 있었던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위와 같은 공소외 1 등이 이 사건 수사에 참여하게 된 경위, 수사 참여 정도, 미국에서 피고인을 신문하게 된 동기, 경위 등에 비추어 보면, 공소외 1 등은 대한민국 경찰과의 공조수사라는 차원에서 미국 내에서 적법한 수사권한을 갖고 피고인을 참고인 자격이 아닌 피의자 신분으로 신문하게 되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한편,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2항 은 피의자신문조서의 작성 주체를 “검사 이외의 수사기관”이라고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는바, “검사 이외의 수사기관”이라 함은 통상 사법경찰관, 군수사기관을 의미한다. 대법원은 1997. 7. 25. 선고한 97도1351 판결 에서, 형사소송법 제312조 소정의 조서나 같은 법 제313조 소정의 서류를 반드시 우리나라의 권한 있는 수사기관 등이 작성한 조서 및 서류에만 한정하여 볼 것은 아니고, “외국의 권한 있는 수사기관” 등이 작성한 조서나 서류도 같은 법 제314조 소정의 요건을 모두 갖춘 것이라면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있는바, 범행 직후 미국 주 검찰 수사관이 작성한 피해자 및 공범에 대한 질문서(interrogatory)와 우리나라 법원의 형사사법공조요청에 따라 미합중국 법원의 지명을 받은 수명자(미국 검사)가 작성한 피해자 및 공범에 대한 증언녹취서(deposition)는 이를 형사소송법 제315조 소정의 당연히 증거능력이 인정되는 서류로는 볼 수 없다고 하더라도, 같은 법 제312조 또는 제313조 에 해당하는 조서 또는 서류로서 그 원진술자가 공판기일에서 진술을 할 수 없는 때에 해당하고, 그 각 진술 내용이나 조서 또는 서류의 작성에 허위 개입의 여지가 거의 없으며 그 진술 내용의 신빙성이나 임의성을 담보할 구체적이고 외부적인 정황이 있다고 할 것이어서 그 진술 또는 서류의 작성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 하에서 행하여진 것이라고 보기에 충분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14조 의 규정에 의하여 그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2항 의 명백한 규정과 위 대법원 판결의 취지에 따르면, 외국의 권한 있는 수사기관이 작성한 조서 역시 형사소송법 제312조 또는 제313조 에 해당하는 조서로서, 대한민국의 검사 지위에 부합하는 미국의 수사기관(미국 검사)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일 경우에만 같은 법 제312조 제1항 의 적용을 받을 뿐, 대한민국의 사법경찰관이거나 군수사기관의 지위에 해당하는 FBI나 CID가 작성한 피고인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에 대하여는 같은 법 제312조 제2항 이 적용되며, 단지 미국 수사체계가 우리 제도와 다르고 피고인이 참고인 신분에서 조사받았다는(앞서 본 바와 같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았음) 이유만으로 같은 법 제313조 제1항 이 적용될 수 없다.

(2) 1998. 6. 9. 체결되고, 1999. 12. 20. 발효된 대한민국정부와미합중국정부간의범죄인인도조약(EXTRADITION TREATY BETWEEN THE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GOVERNMENT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이하 범죄인 인도조약이라고 한다) 제1조 인도의무는 “체약당사국은 청구국에서 인도대상범죄에 대한 기소, 재판 또는 형의 부과나 집행을 위하여 수배된 자를 이 조약의 규정에 따라 상호 인도하기로 합의한다.”라고, 제8조 제3호는 “인도청구가 기소를 위한 것인 경우에는 다음이 첨부되어야 한다. 가. 법관 또는 다른 권한 있는 당국이 발부한 구속 또는 체포영장의 사본, 나. 기소관련 서류가 있는 경우 그 사본, 그리고 다. 인도청구된 자가 청구된 범죄를 행하였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근거를 제공하는 정보”라고 각 규정하고 있다.

한편, 1993. 11. 23. 체결되고, 1997. 5. 23. 발효된 대한민국과미합중국간의형사사법공조조약(TREATY BETWEEN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ON MUTUAL LEGAL ASSISTANCE IN CRIMINAL MATTERS, 이하 형사사법 공조조약이라고 한다) 제1조 제1호는 “체약당사국은 범죄의 예방. 수사. 기소 및 형사사건에서의 재판절차와 관련하여, 이 조약의 규정에 따라 공조를 제공한다.”라고 규정하고, 공조 내용에는 “가. 관계인의 증언 또는 진술의 취득, 나. 서류, 기록 및 증거물의 제공, 다. 서류의 송달, 라. 사람 또는 물건의 소재 또는 동일성 파악, 마. 구금중인 자의 증언 또는 다른 목적을 위한 이송, 바. 수색 및 압수요청의 집행” 등이 포함되어 있다(같은 조약 제1조 제2호). 또한, 공조요청은 피요청국의 중앙기관이 긴급한 상황에서 다른 양식의 공조요청을 받아들이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서면으로 하여야 하고, 공조요청서에는 “가. 요청과 관련된 수사. 기소 및 재판절차를 행하는 기관의 명칭, 나. 사건과 관련된 특정 범죄를 포함하여 수사. 기소 및 재판절차의 대상과 성격에 관한 기술, 다. 요청하는 증거. 정보 또는 기타 공조사항에 관한 기술, 라. 증거. 정보 또는 다른 공조요청의 목적에 관한 설명” 등이 포함되어야 하고, “필요하고 가능한 범위 안에서” 공조요청서는, “가. 증거취득 대상자의 신원 및 소재에 관한 정보, 나. 송달대상자의 신원 및 소재, 대상자와 재판절차와의 관계 및 송달 방법에 관한 정보, 다. 소재탐지 대상자의 신원 및 소재에 관한 정보, 라. 수색대상지 또는 대상자와 압수대상 물건에 관한 정확한 기술, 마. 증언. 진술의 취득 및 기록방법에 관한 기술, 바. 증인에 대한 질문사항” 등을 포함하여야 한다(같은 조약 제4조). 그리고 공조요청을 받은 중앙기관은 요청을 즉시 집행하거나, 적절한 경우에는 집행의 관할권을 가진 기관에 이를 이첩하여야 하고, 공조요청은 이 조약에서 달리 규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피요청국의 법에 따라 집행되어야 한다. 다만, 피요청국의 법에 금지되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요청서에 특정된 이행방식에 따른다(같은 조약 제5조 제1, 3호)라고 각 규정하고 있다.

앞서 본 바와 같이 범죄인 인도조약상, 인도대상범죄를 저지른 혐의자에 대하여 체약 당사국의 일방이 인도를 청구할 경우에는 청구된 자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근거를 제공하는 정보를 “청구국이 피청구국에게” 인도청구서에 첨부하여야 하는바, 이는 청구국 수사기관 또는 사법기관이 자국 내에서 획득한 정보를 제공할 것을 전제로 하는 것으로서 이러한 정보에 기초하여 피청구국이 범죄인 인도를 결정할 경우 청구국은 범죄인을 인도받은 후 자국의 형사사법제도 하에서 기소, 재판을 진행하면 족한 것이지, 체약 당사국 고유의 사법제도를 포기하면서까지 타방 당사국이 제출한 자료를 무리하게 해석하여 증거능력을 부여할 수는 없다.

나아가, 인도대상범죄를 저지른 혐의자가 미국으로 도주할 경우 그 피의자에 대한 수사가 미국 수사기관에 의하여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데 이러할 경우 피의자가 미국 수사기관에 자백하더라도 증거능력이 없어 처벌할 수 없다면 불합리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는 검사의 주장은, 범죄의 예방, 수사, 기소 및 형사사건에서의 재판절차와 관련하여 공조를 제공하고, 그 공조이행이 피요청국의 법에 금지되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요청서에 특정된 이행방식에 따라야 한다는 형사사법 공조조약의 규정에 의하여, 대한민국 사법체계에 부합하는 증거를 획득할 수 있다는 점에 비추어 받아들이기 어렵다. 또한, 앞서 본 97도1351 대법원 판결 이 외국의 권한 있는 수사기관이 작성한 조서가 형사소송법 제312조 내지 제313조 소정의 조서로서 형사사법 공조조약에 따른 요청에 따라 미국 법원이 이를 이행함으로써 그 조서가 특신상태하에 작성되었음을 인정하여 증거능력이 부여된 점에서도 검사의 위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공소외 1이 피고인의 자백을 기재한 수사보고서는 실질적으로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2항 소정의 검사 이외의 수사기관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이고, 피고인이 당시 작성한 진술서 역시 같은 법 제312조 제2항 이 적용되므로 피고인이 원심법정에서 그 내용을 부인하는 이상 모두 증거능력이 없다(뿐만 아니라 위 수사관들에 의한 피고인의 인터뷰 당시 변호인 선임권과 묵비권 고지도 이루어지지 아니하였다). 나아가, 원심증인 공소외 2, 공소외 1이 원심법정에서 한 각 진술과 검사 작성의 공소외 2에 대한 진술조서의 기재 역시 사법경찰관 지위에 있는 자가 청취한 피고인의 자백 경위에 관한 것으로서 같은 법 제312조 제2항 이 적용되어 모두 증거능력이 없다( 대법원 1995.3.24. 선고 94도2287 판결 등 참조).

그밖에 검사가 당심에 이르러 제출한 범죄인 인도공판 조서의 사본의 기재도 궁극적으로는 피고인이 이 사건 공소사실을 부인하고 있으며, 검사가 제출한 나머지 증거들은 증거능력이 없거나, 이 사건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

라. 가사, 피고인이 미국에서 한 자백이 증거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자백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믿기 어렵고, 또한 이를 뒷받침할 보강증거도 없다.

(1) 피고인과 피해자가 2001. 3. 18. 투숙하였던 서울 (상세 주소 생략) 소재 (상호 생략) 여관의 주인 공소외 5는 일관되게, 같은 날 03:30경부터 04:00경까지 피해자가 묵고 있던 위 여관 103호에서 황토색 랜드로바 신발을 신고 베이지 색 계통의 바지를 입고 있던 백인 남자가 바지 오른쪽 발목부터 무릎 사이에 피가 묻은 채 나온 것을 보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또한, 피고인 일행으로서 같은 날 위 (상호 생략) 여관 102호에 묵었던 공소외 6과 공소외 7은, 같은 날 04:00경 무렵 잠을 자다가 밖에서 “But, you are now here(하지만 넌 여기 있잖아)"라는 화가 난 남자의 미국 액센트 목소리를 들은 다음 작은 목소리의 비명소리와 바닥을 구르는 것 같은 ”쿵-쿵“ 소리가 났고, 그 다음 ”Let`s go(가자)"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2) 피해자가 사망한 (상호 생략) 여관 103호실에서 채취한 혈흔 중에는 위 103호 출입문 안쪽 손잡이에서 채취한 것이 있는데, 이를 유전자 분석한 결과 남자의 것으로, 나머지 방안 및 피해자의 옷 등에서 채취된 혈흔은 모두 피해자의 것으로 밝혀졌다. 피고인 및 피해자의 혈액형은 모두 B형, 피해자와 같은 방에 묵었던 공소외 8의 혈액형은 O형이었는데, 당시 사건현장의 피해자가 누워있던 주변 바닥과 몸 위, 머리 밑에서 채취한 모발 중 혈액형이 A형인 것이 다수 나왔다(수사기록 제1권 379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장 작성의 감정의뢰회보).

(3) 피고인의 키는 170cm, 체중은 91kg, 발 크기는 260mm이다. 사건현장 피해자의 몸 위와 방바닥에는 피가 묻은 발자국 모양이 있었는데, 경찰은 발자국 문형으로 보아 그 신발이 국내 제품이 아닌 “템버린(또는 틴버랜드)”이라는 상표의 외제품으로서 신발크기는 275mm로 추정된다는 수사보고를 하고 있다(수사기록 3권 844-845면).

(4) 사건현장인 (상호 생략) 여관 103호실 바닥과 옷가지에는 상당히 많은 양의 피해자의 피가 흘려져 있었다. 특히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바로 보이는 벽면 아래 쪽에 둥그런 모양으로 피가 묻어 있었고, 피해자의 얼굴과 상체에도 피가 상당히 많이 있어 피해자는 발에 의한 압박으로 인하여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만일 피고인의 자백과 같이 피고인이 발로써 피해자를 밟아 사망케 하였다면, 피고인의 신발이나 바지 등에 핏자국이 묻어 있거나 자신의 방인 104호로 돌아오는 복도 등에 그 흔적이 있는 것이 자연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초동 수사를 담당하였던 경찰은 이 점에 관하여 아무런 자료를 남겨 놓고 있지 않다(피고인에게 그러한 혐의점이 없었다고 추정된다).

(5) 피고인은 미국에서 공소외 1 등에게 신문받으면서, 이 사건 당시 피고인과 피해자가 103호실 화장실에서 동성애를 하던 중 4살 때 남자아이들이 자신의 바지를 벗긴 것이 생각나 순간적으로 피해자를 때려 실신시킨 다음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고 범행 동기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피고인은 피해자를 이 사건이 일어나기 보름 전쯤인 2001. 3. 초순 (명칭 생략)대학교 교환학생 신분으로 처음 만나 서울 관광을 하기 위하여 같이 (상호 생략) 여관에 묵게 된 점, 피고인과 피해자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이 사건 범행 전날인 2001. 3. 17. 밤에 이태원 소재 나이트클럽에서 각각 남자 미군과 춤을 추고 키스도 하며 즐겁게 같이 놀았던 점, 피해자는 당시 미국에 남자 약혼자가 있었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과 피해자가 동성애를 하였다거나 동성애 도중 피고인이 4살 때 당한 성추행이 생각나 갑자기 범행에 이르렀다는 것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6) 나아가, 공소외 1, 공소외 2 등이 피고인으로부터 받은 자백의 내용은, 피고인이 피해자와 동성애를 하던 중 오른손으로 피해자를 때려 실신시켰는데, 화장실로부터 피해자를 끌어내는 과정에서 피해자를 놓친 다음부터 죽을 때까지 피고인이 행동한 구체적인 과정이 생략된 채 바로 피해자를 발로 밟아 죽였다는 것이다. 즉, 피고인의 자백 내용은 범행 동기와 실행 과정만을 비교적 간단하게 밝히고 있을 뿐, 피고인이 어떤 식으로 피해자를 폭행하였고, 신고있던 신발은 어떻게 처리하였으며, 103호실의 출입문은 어떻게 하고 나갔는지 위 자백에 따른 구체적인 진술을 받지 못한 점은(수사기록 제3권 1355면), 피고인의 자백을 쉽게 믿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결국, 비록 피고인의 진술에 몇 가지 모순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앞서 본 바와 같이 103호실에서 백인 남자가 나왔고, 102호실에서 백인 남자의 음성을 들었다는 참고인들의 진술, 범행 현장에서 남자의 것으로 밝혀진 혈흔이 103호 손잡이에서 나왔고 A형 혈액형의 두발이 위 방바닥 및 피고인의 몸 위에서 발견되었으며,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신발의 크기가 피고인과는 다른 275mm로 보여지는 등 객관적 사항이 피고인이 아닌 제3자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의 자백에는 신빙성이 없다.

3. 결론

살피건대, 범죄사실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확신이 있을 때 비로소 증명이 된다 할 것인데, 앞서 본 바와 같이 검사가 제출한 위와 같은 증거들은 증거능력이 없거나 미약하여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고 단정할 정도의 확신에 이르기에는 부족하므로, 결국 이 사건 공소사실은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피고인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한 원심의 판단은 타당하고 달리 원심판결에 채증법칙을 위반하여 사실을 오인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음을 찾아 볼 수 없다.

따라서 검사의 항소는 이유 없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4항 에 따라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전봉진(재판장) 최승록 함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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