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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방법원 서부지원 2020. 5. 15. 선고 2019가단3880 판결
[손해배상][미간행]
원고

원고

피고

대한민국

2020. 3. 20.

주문

1.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2.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피고는 원고에게 100,0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이 사건 소장 부본 송달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5%의 비율에 의한 돈을 지급하라.

이유

1. 기초사실

가. 원고에 대한 체포·구금

1) 원고는 1974.경 피고 소속 수사기관 담당공무원들에 의하여 대통령 긴급조치(이하 ‘긴급조치’) 제1호 및 제4호 위반 혐의로 영장 없이 체포되어 1974. 4. 23. 구속되었다. 한편 원고에 대한 구속영장은 1974. 5. 1. 1차 연장된 이후 1974. 7. 1.까지 총 6차례 연장되었다.

2) 원고는 1974. 8. 8. 구속이 취소되어 출소하였다.

나. 원고에 대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의 결정

1) 위 가.항 기재 사건과 관련하여 피고 산하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이하 ‘보상심의위원회’라 한다)는 2007. 9. 10.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하 ‘민주화보상법’이라고 한다)에 따라 재심의를 통하여 원고에 대하여 민주화운동관련자 인정결정을 하였고, 2007. 12. 20. 및 2008. 1. 28. 각 보상금 지급결정을 하였다.

2) 원고는 2007. 12. 24. 및 2008. 2. 19. “보상결정에 이의가 없고, 보상금 등을 받을 때에는 그 사건에 대하여 화해계약하는 것이며, 그 사건에 관하여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다시 청구하지 아니하겠음 서약합니다.”라는 내용의 문구가 기재된 동의 및 청구서에 각각 서명·날인하여 보상심의위원회에 제출한 후, 보상금으로 9,000,000원 및 26,460,040원을 각 지급받았다.

다. 긴급조치 제1호, 제호에 관한 대법원 판결

1) 대법원은 2010. 12. 16. 2010도5986 전원합의체 판결 에서, 긴급조치 제1호는 그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목적상 한계를 벗어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함으로써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긴급조치 제1호가 해제 내지 실효되기 이전부터 이는 유신헌법에 위배되어 위헌·무효이고, 나아가 긴급조치 제1호에 의하여 침해된 기본권들의 보장 규정을 두고 있는 현행 헌법에 비추어 보더라도 위헌·무효라고 판단하였다.

2) 대법원은 2013. 5. 16. 선고 2011도2631 전원합의체 판결 에서, 긴급조치 제4호는 그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목적상 한계를 벗어나 민주주의의 본질적 요소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영장주의에 위배되며,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학문의 자유 및 대학의 자율성 등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그것이 폐지되기 이전부터 유신헌법은 물론 현행 헌법에 비추어 보더라도 위헌·무효라고 판단하였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내지 4호증, 갑 제7, 8호증, 을 제1, 2, 3호증의 각 기재, 이 법원의 보상심의위원회에 대한 사실조회결과, 변론 전체의 취지

2. 본안전 항변에 관한 판단

가. 피고는, 원고가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보상금을 신청하여 수령함으로써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 에 의해 위자료를 포함하여 이 사건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 일체에 대하여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이므로, 원고의 이 사건 소는 소의 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다고 주장한다.

나. 살피건대 원고가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되어 2007. 12. 24. 및 2008. 2. 19. 보상금 합계 35,460,040원을 지급받은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다.

그러나 민주화보상법 및 같은 법 시행령의 관련조항에 정신적 손해 배상에 상응하는 항목은 존재하지 아니하고, 이처럼 보상금 등의 산정에 있어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은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아 정신적 손해에 대해 적절한 배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적극적·소극적 손해의 배상에 상응하는 보상금 등 지급결정에 동의하였다는 사정만으로 정신적 손해에 대한 국가배상청구마저 금지하는 것은, 국가배상청구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에 해당하여 헌법에 위반된다( 헌법재판소 2018. 8. 30.자 결정 2014헌바180 등 참조).

따라서 비록 원고가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보상금 등 지급결정에 동의하고 보상금 등을 수령하였다 하더라도 정신적 손해인 위자료에 대하여서까지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볼 수 없는데, 원고는 이 사건 소로 위자료의 지급을 구하고 있으므로, 피고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3. 원고의 주장에 관한 판단

가. 원고의 주장

1) 피고 소속 수사기관 담당 공무원들은 위헌·무효인 긴급조치를 적용하여 원고를 체포·구금하고 수사하였으며, 수사과정에서 원고를 영장 없이 장기간 구금하는 한편 폭행 등의 가혹행위를 하는 등 위법한 수사를 하였다.

2) 구속취소로 석방된 이후 원고는 1975. 12월경 군대에 입대하였으나 군복무기간 중에도 보안관리로 구분되어 감시통제 하에 있었고, 군 제대 후에도 20여년 동안 보안사에 의하여 밀착감시를 받으며 사생활 침해를 받았다.

3) 원고는 위와 같은 피고의 가혹한 행위로 신체적, 정신적으로 큰 충격과 고통을 받았으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자신이 입었던 정신적 손해로 인한 위자료 1억 원을 손해배상으로 지급할 의무가 있다.

나. 수사과정에서의 불법행위 여부에 관한 판단

1) 이 사건 당시 시행되던 구 대한민국헌법(1980. 10. 27. 헌법 제9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제8조 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이를 위하여 국가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최대한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제10조 는 신체의 자유와 법률에 의한 체포·구속과 죄형법정주의 및 적법절차보장( 제1항 ), 고문의 금지와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할 권리( 제2항 ),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의한 체포·구속( 제3항 ),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와 국선변호인 제도( 제4항 ) 등을 규정함으로써 신체의 자유에 관한 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고 있었다.

또한 이 사건 당시 시행되던 구 형사소송법(1980. 12. 18. 법률 제3282호로 일부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같다) 제201조 제1항 은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제70조 제1항 각호의 1 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을 때에는 검사는 관할지방법원판사에게 청구하여 구속영장을 받아 피의자를 구속할 수 있고 사법경찰관은 검사에게 신청하여 검사의 청구로 관할지방법원판사의 구속영장을 받아 피의자를 구속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제202조 , 제203조 , 제205조 제1항 에서는 “사법경찰관이 피의자를 구속한 때에는 10일 이내에 피의자를 검사에게 인치하지 아니하면 석방하여야 한다( 제202조 ). 검사가 피의자를 구속한 때 또는 사법경찰관으로부터 피의자의 인치를 받은 때에는 10일 이내에 공소를 제기하지 아니하면 석방하여야 한다( 제203조 ). 지방법원판사는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수사를 계속함에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한 때에는 10일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한도에서 제203조 의 구속기간의 연장을 1차에 한하여 허가할 수 있다( 제205조 제1항 ).”고 규정하고 있었다.

따라서 수사기관이 영장 없이 피의자를 체포·구금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위법하고, 영장에 의하여 체포·구금할 경우에도 헌법과 형사소송법 등 법률에 규정된 체포요건과 영장 발부요건 등 적법절차를 준수하여야 하며, 수사기관은 자백을 받아내기 위하여 국민에게 고문이나 협박과 같은 직·간접적 수단을 이용하여 육체적·정신적 피해를 가하는 등 국민의 신체와 자유를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2) 앞서 든 증거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구 형사소송법에 의하면 사법경찰관과 검사의 구속기간이 10일로 제한되고 검사의 경우 1회에 한하여 법원의 허가를 받아 구속기간을 연장할 수 있었으므로 수사기관에서의 최장 구금기간은 30일이었음에도, 원고는 1974. 8. 8.에 이르러서야 석방되어 108일간 수사기관에 구금되어 있었으므로, 피고 소속 수사기관 담당공무원들은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음에도 영장주의 및 적법절차의 원칙에 반하여 원고를 불법 구금하는 등 위법 수사를 한 사실이 인정된다.

따라서 위와 같은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가 정신적 고통을 당하였을 것임은 경험칙상 명백하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고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본문에 따라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다. 정보기관에 의한 감시 및 불법사찰 여부에 관한 판단

다음으로 원고가 군복무기간 중에도 감시통제 하에 있었고, 제대 후 20여년 동안 보안사에 의하여 밀착감시를 받으며 사생활 침해를 받았는지에 관하여 보면, 원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이를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그러므로 원고의 이 부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4.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에 관한 판단

가. 피고의 주장

피고는, 원고의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권은 불법체포 및 감금행위가 있던 날 또는 늦어도 출소일인 1974. 8. 8.부터 민법 제766조 제1항 에 정한 3년의 단기 소멸시효가 진행되어, 이 사건 소 제기 전에 시효가 모두 완성되었다고 항변한다.

나. 시효완성 여부에 관한 판단

1)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본문 전단 규정에 따른 배상책임을 묻는 사건에 대하여는 같은 법 제8조 의 규정에 의하여 민법 제766조 제1항 소정의 단기소멸시효제도가 적용되는 것인바, 여기서 가해자를 안다는 것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가해 공무원이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와 공법상 근무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또한 일반인이 당해 공무원의 불법행위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직무를 집행함에 있어서 행해진 것이라고 판단하기에 족한 사실까지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민법 제766조 제1항 소정의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이라 함은 손해의 발생, 위법한 가해행위의 존재, 가해행위와 손해의 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는 사실 등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에 대하여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하였을 때를 의미하고, 피해자 등이 언제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을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한 것으로 볼 것인지는 개별적 사건에 있어서의 여러 객관적 사정을 참작하고 손해배상청구가 사실상 가능하게 된 상황을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인정하여야 한다( 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4다33469 판결 , 대법원 2012. 4. 26. 선고 2012다4091 판결 등 참조).

2)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원고에 대한 피고의 불법행위는 피고 소속 수사기관 담당공무원들이 헌법 및 형사소송법이 규정하고 있는 적법절차를 지키지 아니하고 원고를 강제로 연행하여 1974. 4. 23.경부터 1974. 8. 8.까지 불법구금하고, 그 과정에서 가혹행위를 하였다는 것인데, 원고로서는 불법구금 상태가 해소된 1974. 8. 8.경에는 손해 및 가해자를 인식할 수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이에 대하여 원고는 이에 대하여 정신적 손해에 대한 국가배상청구를 금지하는 것이 위헌이라는 2018. 8. 30.자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은 때 비로소 손해를 알거나 알 수 있었으므로 그때부터 소멸시효가 진행하며 이때의 소멸시효기간은 3년이라고 주장하나, 원고가 피고의 수사과정에서의 불법행위와 관련하여 2007. 9. 10. 민주화운동관련자 인정결정을 받고 이후 보상금을 수령한 사실이 앞에서 인정되는 이상 원고는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이전에 이미 손해의 발생, 위법한 가해행위의 존재, 가해행위와 손해발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 등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에 대하여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원고의 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이 사건 소는 그로부터 역수상 3년이 지난 2019. 5. 9. 제기된 것이 기록상 명백한 바, 원고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시효로 소멸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

다. 원고의 신의칙위반 내지 권리남용 등 재항변에 관한 판단

1) 원고의 주장

이에 대하여 원고는, 피고가 국민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 이 사건에서 피고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에 반하거나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2) 관련 법리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 금지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 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그리고 채권자에게 객관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는 사정을 들어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허용되지 아니한다고 평가하는 것은, 소멸시효의 기산점에 관하여 변함없이 적용되어 왔던 법률상 장애와 사실상 장애의 기초적인 구분 기준을 일반조항인 신의칙을 통하여 아예 무너뜨릴 위험이 있으므로 매우 신중하여야 한다. 또한 국가에게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사유만으로 국가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므로 이 역시 국가가 아닌 일반 채무자의 소멸시효 완성에서와 같은 특별한 사정이 인정될 때만 가능하다( 대법원 2015. 3. 26. 선고 2012다48824 판결 참조).

3) 이 사건의 경우

살피건대, 비록 원고가 수사 과정에서의 불법구금, 가혹행위 등을 받았으나 형사기소되어 유죄의 확정판결을 받은 것이 아니어서 원고로서는 재심절차 등을 전제로 하여야만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그렇다면 원고에게 피고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을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없는 객관적인 장애가 있었던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며, 달리 피고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들어 권리소멸을 주장하지 아니할 것이라는 데 대한 신뢰를 갖게 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고 볼 만한 자료도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이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되지 않는다고 할 수 없다.

5.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이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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