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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북부지법 2009. 2. 19.자 2008카합1003 결정
[게재금지가처분] 항고[각공2009상,500]
판시사항

일제강점기에 검사로 재직한 자를 친일인명사전에 게재하는 행위에 대한 사전 금지를 허용하지 않은 사례

결정요지

일제강점기에 검사로 재직한 자를 친일인명사전에 게재하는 행위에 대하여 그 후손이 게재금지가처분을 신청한 사안에서, 친일인명사전에 게재하는 행위는 의견을 표명하는 표현행위로 보아야 하는데, 그 전제가 되는 사실이 진실이 아니거나 그것이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으로서 그 목적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므로, 그 게재행위에 대한 사전 금지를 허용할 수 없다고 한 사례.

채권자

채권자(소송대리인 법무법인 민우 담당변호사 이주호)

채무자

채무자 사단법인(소송대리인 법무법인 해마루 담당변호사 장홍록)

주문

1. 채권자의 신청을 모두 기각한다.

2. 신청비용은 채권자가 부담한다.

주위적 신청취지 : 채무자는 소외인을 친일인명사전에 게재하여서는 아니 된다.

예비적 신청취지 : 채무자는 소외인을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정한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자와 오인할 수 있는 방법으로 친일인명사전에 게재하여서는 아니 된다.

이유

1. 기초 사실

기록 및 심문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다음의 사실이 소명된다.

가. 채권자는 1938년 11월경 일본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여 1948년까지 검사로 재직한 소외인의 아들이다.

나. 채무자는 한국근현대사와 민족문화에 대한 학술연구 등을 목적으로 설립되어 친일인명사전 편찬사업을 추진하여 왔는데, 2008. 4. 29. “① 조약체결 등 매국행위에 가담한 자나 독립운동을 직접 탄압한 자와 같은 민족반역자 전부, ② 식민통치기구의 일원으로서 식민지배의 하수인이 된 자나 침략전쟁을 미화·선전한 지식인·문화예술인과 같은 부일협력자 중 일정한 직위 이상인 자와 정치적·사회적 책임을 물어야 할 친일행위가 뚜렷한 자”를 수록대상으로 하여 친일인명사전을 출판할 예정이고, 구체적으로 사법 분야에서의 선정기준은 “판사·검사로 재직한 자 및 친일행위가 뚜렷한 일반 사법관리”로서 소외인이 사법 분야의 수록대상자에 포함되어 있다고 밝혔다.

다. 소외인은 1948. 8. 23. (직책 생략)에서 사임하면서 “일제하의 검사로서 다시 미군정에 협조하였음은 민족정기가 고창되고 있는 현 정세에 비추어 떳떳치 못하다고 생각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1957년 4월경 출간한 자서전 (제목 생략)에서도 “일제하의 검사를 지냈다는 것은 한없이 후회되는 일이고, 왜제통치(왜제통치)에 협력을 하였다는 것만은 아무리 사과를 하여도 모자랄 것이다”라는 내용을 서술하였다.

라. 한편,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하 ‘반민족행위진상규명법’이라 한다) 제2조 제15호 는 “판사·검사 또는 사법관리로서 무고한 우리민족 구성원을 감금·고문·학대하는 등 탄압에 적극 앞장선 행위”를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2. 주위적 신청에 관한 판단

가. 채권자의 주장

채권자는, 반민족행위진상규명법 제2조 제15호 와 달리 채무자가 일제강점기에 검사로 재직한 자를 일률적으로 친일인명사전의 수록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그 선정기준이 포괄적이고 자의적이며 합리적 근거도 없고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는 것으로, 단순히 소외인이 일제강점기에 검사로 재직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소외인을 수록대상자로 발표하여 친일인명사전에 게재한다면 소외인 또는 채권자를 비롯한 그 유족들의 명예 등 인격권을 침해당할 우려가 있으므로, 채무자는 소외인을 친일인명사전에 게재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주장한다.

나. 판 단

표현행위에 대한 사전억제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검열을 금지하는 헌법 제21조 제2항 의 취지에 비추어 엄격하고 명확한 요건을 갖춘 경우에만 허용된다고 할 것인바, 출판물에 대한 발행·판매 등의 금지는 위와 같은 표현행위에 대한 사전억제에 해당하고, 그 표현행위에 대한 사전금지는 원칙적으로 허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지만, 다만 그와 같은 경우에도 그 표현내용이 진실이 아니거나 그것이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으로서 그 목적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며, 또한 피해자에게 중대하고 현저하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힐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그와 같은 표현행위는 그 가치가 피해자의 명예에 우월하지 아니하는 것이 명백하고, 또 그에 대한 유효적절한 구제수단으로서 금지의 필요성도 인정되므로 이러한 실체적인 요건을 갖춘 때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사전금지가 허용되고( 대법원 2005. 1. 17.자 2003마1477 결정 참조), 어떤 사실을 기초로 하여 의견 또는 논평을 표명함으로써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에 있어서 그 행위가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에 관계되고, 그 목적이 공익을 도모하기 위한 것일 때에는 그 의견 또는 논평 자체가 진실인가 혹은 객관적으로 정당한 것인가 하는 것은 위법성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없고, 그 의견 또는 논평의 전제가 되는 사실이 중요한 부분에 있어서 진실이라는 증명이 있는가, 혹은 그러한 증명이 없다면 표현행위를 한 사람이 그 전제가 되는 사실이 중요한 부분에 있어서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가 하는 것이 위법성 판단의 기준이 되며( 대법원 1999. 2. 9. 선고 98다31356 판결 참조), 언론·출판의 자유와 명예보호 사이의 한계를 설정함에 있어서는, 당해 표현으로 명예를 훼손당하게 되는 피해자가 공적인 존재인지 사적인 존재인지, 그 표현이 공적인 관심사안에 관한 것인지 순수한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안에 관한 것인지 등에 따라 그 심사기준에 차이를 두어, 공공적·사회적인 의미를 가진 사안에 관한 표현의 경우에는 언론·출판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완화되어야 한다( 대법원 2003. 7. 8. 선고 2002다64384 판결 참조).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채권자는 친일인명사전에 게재될 소외인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아니라, 채무자가 소외인을 수록대상자로 발표하여 친일인명사전에 게재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아 그 금지를 구하고 있다.

그런데 채무자가 소외인을 수록대상자로 발표하여 친일인명사전에 게재하는 것은 소외인이 일제강점기에 검사로 재직하였다는 사실을 전제로 채무자의 가치판단에 기초하여 소외인이 친일인사라는 의견을 표명하는 표현행위라고 봄이 상당한바, 앞서 본 바와 같이 소외인이 일제강점기에 검사로 재직한 사실이 소명되는 데다가, 우리 사회에서 아직 친일이라는 단어의 개념과 범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명확하게 이루어지지 아니하여 이에 대하여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 논쟁에는 필연적으로 평가적인 요소가 수반되는 특성이 있고, 지도층 인사인 소외인의 일제강점기의 경력이나 친일 여부는 공공적·사회적 의미를 가진 사안에 관한 것인 점 등을 보태어 보면, 채권자가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채무자의 표현행위에 대하여 예외적으로 사전금지를 허용할 정도로 그 전제가 되는 사실이 진실이 아니거나 그것이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으로서 그 목적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 대하여 소명이 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채권자의 위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3. 예비적 신청에 관한 판단

가. 채권자의 주장

채권자는, 가사 채무자가 소외인을 친일인명사전에 게재한다 하더라도, 반민족행위진상규명법이 정한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자와 단순 친일인사를 구분하지 아니한 채로 친일인명사전을 출판한다면 소외인이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자로 오인될 수 있으므로, 채무자는 소외인이 위와 같이 오인될 수 있는 방법으로 친일인명사전에 게재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주장한다.

나. 판 단

앞서 본 바와 같이 반민족행위진상규명법 제2조 제15호 는 “판사·검사 또는 사법관리로서 무고한 우리민족 구성원을 감금·고문·학대하는 등 탄압에 적극 앞장선 행위”를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하고 있는 반면 채무자는 “판사·검사로 재직한 자 및 친일행위가 뚜렷한 일반 사법관리”를 수록대상으로 하고 있어 그 기준이 다르고, 소외인은 “검사로 재직한 자”라는 기준에 해당하여 친일인명사전에 게재한다는 것으로 피고가 이미 그 선정기준을 밝힌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채권자가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채무자가 반민족행위진상규명법이 정한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자와 단순 친일인사를 구분하지 아니한 채로 친일인명사전을 출판한다 하더라도 소외인이 반민족행위진상규명법이 정한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자로 오인될 것이라는 점에 대한 소명이 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채권자의 위 주장도 받아들일 수 없다.

4. 결 론

그렇다면 채권자의 이 사건 신청은 피보전권리 및 보전의 필요성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여 이유 없으므로 이를 모두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판사 이재영(재판장) 성원제 심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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