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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18. 10. 25. 선고 2016다223067 판결
[손해배상(기)][미간행]
판시사항

[1] 민사법 영역에서 과실에 의한 방조가 가능한지 여부(적극) 및 이 경우 과실의 내용 / 과실에 의한 방조행위와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 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는지 판단하는 기준

[2] 갑이 을 학교법인의 병 은행에 대한 예금채권을 압류한 다음 추심명령을 받아 병 은행을 상대로 추심금의 지급을 구하였고, 병 은행이 갑에게 추심금을 지급하자, 을 법인이 병 은행을 상대로 병 은행이 을 법인의 설명과 통지 등으로 갑의 추심행위가 위법하다는 점을 알았거나 알 수 있는데도 추심을 거절하거나 민사집행법 제248조 에 따른 공탁을 하지 않고 추심에 응하여 갑의 불법행위를 방조하였다며 예금채권 상실에 따른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에서, 제반 사정에 비추어 병 은행이 갑의 추심행위가 위법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거나 과실로 인해 이를 알지 못한 잘못이 있다고 단정할 수 없고, 병 은행은 집행법상 갑의 추심을 거절할 수 있는 지위에 있지 않았으며, 민사집행법 제248조 제1항 에 따른 공탁은 이른바 권리공탁으로서 제3채무자의 권리로 인정되는 것이므로 병 은행이 이를 행사하지 않았다고 하여 을 법인과의 관계에서 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보기 어려운데도, 병 은행의 과실에 의한 방조의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한 원심판단에는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다고 한 사례

원고, 피상고인

학교법인 한동대학교 (소송대리인 변호사 서동택)

피고, 상고인

중소기업은행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청률 담당변호사 김태창)

주문

원심판결 중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대구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민법 제760조 제3항 은 불법행위의 방조자를 공동불법행위자로 보아 방조자에게 공동불법행위의 책임을 부담시키고 있다. 방조는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직접, 간접의 모든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손해의 전보를 목적으로 하여 과실을 원칙적으로 고의와 동일시하는 민사법의 영역에서는 과실에 의한 방조도 가능하며, 이 경우의 과실의 내용은 불법행위에 도움을 주지 말아야 할 주의의무가 있음을 전제로 하여 그 의무를 위반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타인의 불법행위에 대하여 과실에 의한 방조로서 공동불법행위의 책임을 지우기 위해서는 방조행위와 불법행위에 의한 피해자의 손해 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하며, 상당인과관계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과실에 의한 행위로 인하여 해당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한다는 사정에 관한 예견 가능성과 아울러 과실에 의한 행위가 피해 발생에 끼친 영향, 피해자의 신뢰 형성에 기여한 정도, 피해자 스스로 쉽게 피해를 방지할 수 있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그 책임이 지나치게 확대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 대법원 2014. 3. 27. 선고 2013다91597 판결 등 참조).

2. 원심은, ① 피고는 원고와 예금계약을 체결한 당사자로서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를 다하여 원고의 예금을 보관하고 불법적인 예금인출을 방지할 의무가 있는 점, ② 피고는 원고로부터 수회에 걸쳐 ‘원고가 소외인에 대한 조정조서에 기한 채무를 모두 이행하였으므로 소외인의 추심요구에 응하여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통지를 받고, 원고가 소외인을 상대로 청구이의의 소를 제기하고 강제집행정지신청을 한 사실에 대해서도 고지를 받았으며, 특히 2013. 8. 14.경에는 원고로부터 ‘위 조정조서에 기한 강제집행을 정지한다’는 내용의 강제집행정지결정문을 송달받기도 한 점, ③ 피고는 추심금을 소외인에게 직접 지급하지 않더라도 민사집행법 제248조 에 따라 공탁함으로써 혹시 발생할 이행지체책임을 면할 수 있었고, 실제로 2013. 7. 22.경 제2차 추심명령을 송달받고는 그 사실을 원고에게 알리고 추심금 상당액을 공탁한 바도 있는 점, ④ 원고가 소외인을 상대로 위 조정조서의 집행력의 배제를 구하는 청구이의 소송을 제기하여 2013. 12. 27. 원고 승소판결이 확정된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는 원고와 사이에 예금계약을 체결하고 원고로부터 이 사건 예금을 위탁받은 금융기관으로서 원고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설명과 통지를 받음으로써 소외인의 이 사건 예금 추심행위가 위법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거나 적어도 과실로 인해 이를 알지 못한 잘못이 있고, 소외인의 위법한 추심요구를 거절하였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응하여 이 사건 예금을 그에게 지급함으로써 소외인의 불법행위를 방조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피고는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소외인과 공동하여 이 사건 예금채권 상실로 인한 원고의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3. 그러나 앞서 본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이러한 판단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그대로 수긍하기 어렵다.

가. 피고가 소외인에게 추심금을 지급할 당시, 이 사건 추심명령의 집행채권자인 소외인과 집행채무자인 원고의 주장이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으므로 제3채무자인 피고로서는 어느 쪽의 주장이 사실인지 스스로 가려내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고, 피고 자신의 권한과 책임으로 적극적으로 사실관계를 조사하여 파악할 의무가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따라서 원심이 들고 있는 사정들만으로는 피고가 소외인의 추심행위가 위법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거나 과실로 인해 이를 알지 못한 잘못이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

나. 집행채권의 소멸은 추심명령의 제3채무자가 집행채권자에게 추심금의 지급을 거절할 수 있는 사유가 되지 못하고, 나아가 강제집행정지결정이 있더라도 그 정지결정의 정본을 집행기관에 제출하여야 비로소 집행정지의 효력이 발생한다. 그러므로 설령 원고의 설명과 통지에 의하여 집행채권이 소멸하였다는 점이나 강제집행정지결정이 있었다는 점을 피고가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정지결정의 정본이 집행기관에 제출되지 아니한 이상, 피고는 집행법상 위와 같은 사정을 들어 소외인의 추심금 지급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지위에 있지 않았다.

다. 한편 원고로서는 위 강제집행정지결정의 정본을 집행기관에 제출하는 것만으로 소외인의 추심행위를 손쉽게 저지할 수 있었는데도, 피고가 소외인에게 추심금을 지급할 때까지 그와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채 피고에게 소외인의 추심금 지급 요구에 응하지 말 것을 반복해서 요청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라. 피고가 민사집행법 제248조 제1항 에 의하여 압류된 예금채권을 공탁함으로써 집행관계에서 이탈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이른바 권리공탁으로서 같은 조 제2항 제3항 에서 규정하고 있는 의무공탁과는 달리 어디까지나 제3채무자의 권리로서 인정되는 것이므로, 피고가 스스로를 위하여 그와 같은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하였다고 하여 원고에 대한 관계에서 불법행위가 성립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4. 그럼에도 원심은 앞서 본 사정만을 들어 피고의 과실에 의한 방조의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하였으니,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불법행위의 성립요건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 점을 지적하는 취지의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5. 그러므로 나머지 상고이유 주장에 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 중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김재형(재판장) 조희대 민유숙 이동원(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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