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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1996. 10. 29. 선고 96도2170 판결
[횡령][공1996.12.15.(24),3630]
판시사항

횡령의 대상이 된 재물이 피고인에게 명의신탁된 재산인 경우, 그 재물이 타인의 소유라는 점에 대한 확정 없이는 횡령죄로 처단할 수 없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는 것을 처벌하는 범죄이므로, 피고인을 유죄로 인정하기 위하여는 횡령의 대상이 된 재물이 타인의 소유라는 점이 입증되어야 할 것이고, 형사재판에서의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의심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가지게 하는 엄격한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그 재물이 당초 피고인에게 명의신탁된 재산인 점을 피고인이 시인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이후 신탁자가 권리를 포기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는 사정이 재판에 나타난다면 이러한 의문이 해명되지 아니하는 한 피고인을 유죄로 단정할 수는 없다는 이유로, 원심판결을 파기한 사례.

피고인

피고인

상고인

피고인

변호인

변호사 김창국 외 4인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지방법원 합의부에 환송한다.

이유

피고인 변호인의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제1심판결의 채택 증거를 종합하여 "이 사건 부동산은 처음 고소인의 자금으로 피고인이 구입하여 피고인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하여 둔 것으로 적어도 그 중의 1/2 지분은 고소인의 소유로서 피고인에게 명의신탁되었던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그 후 고소인이 자신의 지분을 포기한 사실을 인정할 만한 신빙성 있는 자료를 찾아 볼 수 없으므로, 피고인이 고소인의 지분까지 임의로 타인에게 처분한 것은 횡령죄를 구성한다 할 것이고, 고소인이 피고인에게 자신의 지분을 포기한다는 의사표시를 한 적이 없었던 이상 피고인에게는 불법영득의 의사도 있었다고 할 것이다."고 판시하여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는 것을 처벌하는 범죄이므로, 피고인을 유죄로 인정하기 위하여는 횡령의 대상이 된 재물이 타인의 소유라는 점이 입증되어야 할 것이고, 형사재판에서의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의심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가지게 하는 엄격한 증거에 의하여야 하는 것이므로, 그 재물이 당초 피고인에게 명의신탁된 재산인 점을 피고인이 시인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이후 신탁자가 권리를 포기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는 사정이 재판에 나타난다면 이러한 의문이 해명되지 아니하는 한 피고인을 유죄로 단정할 수는 없다 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 기록에 나타난 고소인 박연덕(이하 고소인이라고만 한다)의 진술에 의하면 그는 1970년 초경 100만 원의 자금으로 이 사건 부동산을 매수한 이래 20여 년이 경과하는 동안 피고인을 믿고 전혀 재산의 상태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여 등기명의조차 1993년도에 비로소 확인하였다는 것이나, 그 스스로 사업의 실패로 인한 부도발생으로 1977년경 실형을 복역하고, 1980년경 또 다시 부도가 발생하는 등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었음을 시인하고 있으며, 다른 증거에 의하면 피고인 또한 그가 사장으로 관여하던 회사의 부도로 1989년경 이 사건 부동산을 포함한 개인재산이 은행에 의하여 강제경매신청까지 되었던 것으로 나타나고, 고소인은 피고인과 계속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오면서 피고인의 사정을 충분히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지는바, 이러한 사정하에서 고소인이 그 동안 이 사건 부동산을 처분한다거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아무런 조치를 취한 바 없다는 것은 진정한 소유자라면 취하기 어려운 매우 이례적인 태도라 아니할 수 없다.

한편 기록에 의하면 고소인은 부도 직전인 1975. 11. 말경 피고인이 국외출장을 간 사이 피고인이 사장으로 있던 공소외 1 회사에 찾아가 사장인 피고인과 친구간임을 내세워 액면 금 20,600,000원에 달하는 어음을 회사 어음으로 바꾸어 줄 것을 강청하여 회사의 어음을 바꿔 간 후 자신의 어음은 곧바로 부도를 냄으로써 피고인의 부재 중에 이를 책임지고 처리했던 상무이사가 집을 팔아 변상하고 그 부족분을 피고인이 책임진 사적이 나타나며, 피고인의 변소를 보면 그 무렵 고소인을 만나 이를 추궁하면서 이 사건 부동산에 대한 권리를 포기받았다는 것이므로, 그 변소가 사실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할 것이다.

또한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은 이 사건 부동산 상에 20여 만 원 어치의 오동나무 묘목을 구입하여 식재하고, 1978년경에는 그의 고종사촌 동생인 공소외 2와 동업으로 목축업을 하기 위하여 당시 시가가 20,000,000원 정도이던 이 사건 부동산 상에 약 10,000, 000원의 비용을 들여 초지조성과 축사건축을 하였으며, 그 목장의 이름을 피고인의 호를 따서 성인목장이라고 명명한 사적이 나타나는바, 앞서 본 바와 같이 고소인과 피고인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점에 비추어 고소인이 이 사건 부동산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면 과연 피고인이 고소인과의 아무런 상의 없이 거금을 들여 부동산을 개발, 이용할 수 있었을 것인지 의문이 든다.

마지막으로 고소인은 1994. 1.경 녹음기를 비밀리에 소지하고 피고인을 만나 녹음한 내용을 이 사건 고소의 입증자료로 제출하고 있으나, 그 녹음 내용에 의하더라도 고소인이 자신의 권리를 정정당당하게 주장한 것이 아니라 "처지가 어려우니 좀 도와달라, 농사라도 짓게 이 사건 토지의 반만 떼 달라."고 사정조로 호소하고 있음에 반하여 피고인은 일관하여 이 사건 부동산이 그의 소유임을 주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바, 고소인은 그 이유를 증거확보를 하기 위한 불가피한 행동이었다고 변명하고 있으나, 이러한 변명은 쉽사리 수긍되지 아니한다.

결국 이 사건에서 원심은 고소인이 자신의 지분을 포기한 사실을 인정할 만한 신빙성 있는 자료를 찾아 볼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피고인을 유죄로 단정하였으나,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고소인이 이 사건 부동산에 대한 권리를 포기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고,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합리적인 해명이 된 것으로 볼 수 없음에도 원심이 이와 달리 판단한 것은 채증법칙을 위배하고 형사사건에 있어서의 입증책임의 소재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을 범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점을 지적하는 논지는 이유 있다.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관여 법관의 의견이 일치되어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김석수(재판장) 정귀호 이돈희(주심) 이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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