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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12.9.27.선고 2012도2658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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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2012도2658 살인, 사기, 공문서위조, 위조공문서행사, 사체은닉 ,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사기미수, 절도, 위계

공무집행방해, 공전자기록등불실기재, 불실기재공전

자기록등행사, 공문서부정행사

피고인

피고인

상고인

검사

변호인

변호사 김준한 ( 국선 )

원심판결

부산고등법원 2012. 2. 8. 선고 2011335 판결

판결선고

2012. 9. 27 .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으로 환송한다 .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

1. 살인죄 등과 같이 법정형이 무거운 범죄의 경우에도 직접증거 없이 간접증거만에 의하여 유죄를 인정할 수 있고, 살해의 방법이나 피해자의 사망경위에 관한 중요한 단서인 피해자의 사체가 멸실된 경우라 하더라도 간접증거를 상호 관련하에서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살인죄의 공소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이 경우 범행 전체를 부인하는 피고인에 대하여 살인죄의 죄책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사망이 살해의사를 가진 피고인의 행위로 인한 것임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어야 한다 . ( 대법원 1999. 10. 22. 선고 99도3273 판결, 대법원 2008. 3. 13. 선고 2007도10754 판결 등 참조 ). 여기서 합리적 의심이라 함은 모든 의문, 불신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와 경험칙에 의하여 요증사실과 양립할 수 없는 사실의 개연성에 대한 합리성 있는 의문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황에 대한 이성적 추론에 근거를 두어야 하는 것이므로, 단순히 관념적인 의심이나 추상적인 가능성에 기초한 의심은 합리적 의심에 포함된다고 할 수 없다 ( 대법원 2004. 6. 25. 선고 2004도2221 판결 등 참조 ) .

2. 원심은, 이 사건 공소사실 중 살인의 점에 관하여 피해자의 구체적인 사망경위가 제시되어 있지 않고, 피해자의 살해에 관한 피고인의 범행방법이나 구체적 행동 등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살해에 사용된 도구나 약물 등 피고인의 사건 당일의 행적과 피해자의 사망이 직접 관련되었음을 인정할 만한 물적 증거가 제출되지 않았으며, 피해자의 사망원인이 부검 등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고, 피해자의 사망 후 타살로 인정할 만한 근거가 되는 사체 외부의 상처 또는 혈흔이나 체액 , 토사물 등의 흔적이 남아 있었음을 인정할 만한 증거도 없는 이상, 피해자가 병적 소인이나 체질 또는 사건 당일의 음주 등의 영향으로 사망하였거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나머지 자살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이 부분 공소사실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

3. 그러나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볼 때,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그대로 수긍하기 어렵다 .

가. 피고인의 범행 동기에 관하여 원심도 적절하게 설시하고 있듯이, 제1심 및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한 증거들에 의하면, ① 피고인은 전남편과 헤어진 후 노모와 딸을 부양하면서 2010년 1월경부터 무직상태로 일정한 수입도 없이 거액의 부채만을 지고 있는 어려운 처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연하의 애인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고급차를 빌려 사용하는 등 과다한 금 전소비로 궁지에 몰린 형편에서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거액의 월 보험료를 지불하면서까지 피고인을 피보험자로 하는 다수의 생명보험에 가입하였고, 이후 노숙자를 물색한 사실, ② 그 무렵부터 이 사건 발생 이전까지 인터넷에서 메소밀 등의 독극물과 살인 방법 등을 여러 차례 검색하였던 사실, ③ 또한 대구 소재 여성노숙인 쉼터인 ( 쉽터 이름 생략 ) ( 이하 ' 쉼터 ' 라 한다 ) 의 인터넷카페에 접속하여 그 운영자인 목사 공소외 1에게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고 거짓말한 후, 당시 가족들과 연락이 거의 끊어진 피해자에게 자신이 일하는 어린이집에 취직시켜 월급도 많이 주고 대학도 보내서 자격증을 따게 해주겠다는 등으로 유혹하여 피고인이 거주하는 부산으로 데리고 간 사실, ④ 피해자의 사망 이후 피해자의 사체를 이용하여 마치 피고인이 사망한 것처럼 가장하였고, 사망신고 등 절차가 끝난 후 피고인이 미리 가입해 둔 생명보험금을 편취하였거나 편취하려고 한 사실 등을 알 수 있다 .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이 극도의 경제적 궁핍을 모면할 목적으로 자신을 피보험자로 하는 다수의 보험에 가입한 후 자신이 사망한 것처럼 가장하는데 필요한 사체를 획득할 목적으로 피해자를 유인하여 살해할 동기는 충분히 있었다고 보인다 .

나. 피고인 변소의 신빙성에 관하여 형사소송에서 범죄사실에 대한 증거는 검사가 제시하여야 하는 것이고 피고인은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할 것을 강제당하지 않게 되어 있는 만큼 피고인의 변소가 불합리하여 거짓말 같다고 하여도 그것 때문에 피고인을 불리하게 할 수는 없다 ( 대법원 1991. 8. 13. 선고 91도1385 판결 ). 다만 그 변소가 수긍할 만한 합리성이 있는지는 그 피고인이 범인이 아닐 가능성, 즉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증거에 대한 탄핵으로서 유효하게 기능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는 중요한 고려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이므로 이에 관하여 본다 .

피고인은, 자신은 피해자를 살해하지 않았고, 다만 부산 부산진구 개금동에 있는 △△아파트 앞에서 피해자가 흉통을 호소하여 곧바로 피고인의 승용차에 태우고 부산 사상구 주례동에 있는 ▽▽▽▽병원 응급실로 갔는데, 그곳에서 피해자가 사망한 사실을 알게 되어 순간적으로 피해자의 죽음을 이용하면 보험금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신의 인적사항을 피고인의 것으로 바꿔치기한 것이라고 변소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본 사실들 및 기록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 사정들을 종합해 보면, 피고인의 위와 같은 변소는 선뜻 수긍하기 어렵다 . ( 1 ) 피고인은 대구에서 피해자를 자신의 승용차에 태워 부산으로 온 후 피해자가 사망할 때까지 줄곧 같이 있었으며, 당시 부산 남구 용호동이나 그 인근인 이기대 공원 쪽에는 가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피해자가 부산으로 가는 도중 공소외 1 목사나 쉼터 동료였던 공소외 2에게 문자메시지를 발신한 점으로 보아 피해자는 휴대전화를 소지하고 있었음이 분명한데, 사망 당일인 2010. 6. 17. 00 : 38경 피고인이 피해자와 함께 있었다는 부산 해운대 쪽이나 위 개금동 △△아파트로부터는 상당히 떨어져 있는 용호1동 ( 지번 생략 ) 지역에서 피해자의 휴대전화로부터 발신한 내역이 조회되었다 .

( 2 ) 피고인은 2010. 6. 17. 02 : 30경부터 위 △△아파트 앞 벤치에서 피해자와 함께 술을 마시다가 술을 더 구입하기 위하여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와 보니 피해자의 몸상태가 이상하여 04 : 30경 곧바로 피해자를 피고인의 차에 태우고 위 응급실로 향하였다고 진술한 바 있다. 그러나 피고인이 피해자를 차에 태웠다는 장소로부터 ⑦⑦ ▽▽병원까지 그 시각에 자동차로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길어도 10분 이내인데, 피고인이 위 병원에 도착한 시각은 그로부터 약 30분 후인 05 : 00경으로 보이고, 한편 응급실에 내원하였을 때 피해자는 이미 심장의 반응이 전혀 없었고, 사체의 체온도 상당히 낮았던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사망한 때로부터 이미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 뒤인 것으로 보이고, 당시 응급실 담당의사였던 공소외 3은 내원 당시 피해자가 사망시각으로부터 30분 내지 2시간 정도 경과한 상태였다고 진술하였다 . ( 3 ) 위 △△아파트 인근의 □□□□병원은 피고인이 딸의 백혈병 치료를 위하여 수년간 다닌 관계로 그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병원보다 훨씬 크고 가까운 병원인데, 피고인이 자신의 신원이 공개될 것을 우려하였던 것이 아니라면, 굳이 그보다 더 먼 거리에 있고 유턴을 해야 하는 등 접근경로가 복잡한 소규모 병원인 ▽▽▽▽병원을 찾아 간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 ( 4 ) 피고인은 피해자가 사망하였음에도 피해자의 유족들이나 전날까지 피해자를 보호하고 있던 공소외 1 목사 등에게 그 사실을 전혀 알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피해자의 사망을 확인한 응급실 의사나 검안의에게 ' 피해자가 종전에도 심장검사를 하였으며 가족 중에 심장이 안 좋아 돌아가신 분이 있다 ' 고 거짓말까지 하였다. 그 거짓말을 믿은 검안의 등은 피해자의 사인을 급성심근경색으로 판정하는 한편, 시신의 인적사항을 피고인이 알려 준 대로 피고인의 것으로 기재하여 사체검안서를 작성하였고, 이에 따라 변사 내지 타살의 의심이 배제된 채 사망한 바로 다음날 피고인의 주도하에 신속하게 피해자의 시신에 대한 화장절차가 이루어졌다. 피고인은 화장절차 이후 피해자의 유골마저 바다에 뿌려버려 사망원인을 밝힐 가장 직접적이고 유일한 단서인 피해자의 시신을 통한 구체적 사망경위의 확인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피해자 사망 이후의 피고인의 일련의 행태는 순간적으로 신분을 바꿔치기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의 행동으로는 도저히 보기 어렵다 .

( 5 ) 한편 피고인은 시신에 대한 화장절차를 밟으려면 망인 가족의 확인과 참여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게 되자, 곧바로 피고인의 어머니 공소외 4에게 시신이 마치 피고인인 것처럼 시신의 어머니로 행세하여 달라는 부탁을 하였고, 그 경위를 묻는 공소외 4에게 ' 나 대신 피해자가 죽었다 ' 고 말하기도 하였다 . ( 6 ) 피고인은 수사기관에서 위와 같은 경위에 대해 전혀 다른 취지로 진술하다가 자신의 주장에 배치되는 사정이 확인될 때마다 종전 진술을 번복하였고, 특히 메소밀 등과 같은 독극물을 검색하거나 구입한 사실이 없다고 진술하였다가 검색기록 조사와 피고인이 이 사건 발생 후 메소밀을 가지고 있었다는 목격자 진술이 확인되자 다시 종전 진술을 번복하기도 하였다 .

다. 피해자의 돌연사나 자살 등 다른 사망원인의 가능성에 관하여 ( 1 ) 이 사건처럼 사체 등 피해자의 사망원인을 밝혀낼 직접적인 증거가 전혀 없는 경우에는 제시된 간접증거들이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적극적 증거로서 충분한지를 살펴야 할 뿐 아니라, 피고인의 행위 이외의 다른 어떤 원인으로 피해자가 사망할 가능성은 합리적으로 배제될 수 있는지에 대하여도 세심하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 ( 2 ) 그런데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은 피해자가 사망하기 전날인 2010. 6. 16 .

18 : 00경 대구에 있는 쉼터를 방문하여 피해자와 함께 20 : 00경 출발해서 22 : 00경 부산에 도착하였고, 피해자는 20 : 39부터 21 : 17 사이에 쉼터 원장에게 " 목사님 그동안 고맙 습니다, 부산 가서 돈 벌어서 목사님 은혜 갚을 게요 " 라는 등의 문자메시지를 5번 보낸 사실을 알 수 있고, 다음날 00 : 38경 피해자의 휴대전화가 부산 용호동 인근에서 발신된 기록이 있기는 하나, 그 외에 피해자가 05 : 00경 ▽▽▽▽병원에 사망한 상태로 실려 오기까지 사이의 행적은 피고인의 진술 이외에는 확인할 자료가 없다. 다만, 피고인은 수사기관에서부터 일관되게, 대구에서 피해자를 승용차에 태워 부산에 온 후 함께 부산 일대를 돌아다녔고 다음 날 새벽 △△아파트 앞 벤치에서 피해자와 함께 술을 마시다가 술을 더 구입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던 외에는 줄곧 피해자와 같이 있었으며, 그와 같이 잠시 자리를 비운 것도 넉넉하게 5분 또는 ' 정말 얼마 안 되는 시간 ' 이었고, △△아파트 앞 벤치에서 차를 타고 큰길까지 가서 편의점이 있나 보았지만 없었고 자기가 확실히 아는 슈퍼 ( 벤치에서 100미터 거리 ) 도 문이 닫혀 있어 맥주를 안사고 그냥 왔는데, 돌아와 보니 피해자가 벤치에 그대로 앉아 있는 채로 흉통을 호소하며 ' 계획대로 되었다, 이제 마음이 편하다 ' 는 취지로 이야기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위와 같은 여러 사정과 피고인의 진술로 보면, 피해자의 사망원인으로 제3자의 행위가 개입되었을 가능성은 우선 배제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 ( 3 ) 그러므로 합리적 추론이 가능한 피해자의 사망원인은 피고인의 행위가 아니면 피해자 본인의 자살이나 돌연사의 가능성뿐이라 할 것인데, 원심은 피고인에게 살해의 충분한 동기가 있었고 그 변소가 신빙성이 없으며 피해자가 피고인이 아닌 다른 제3자에 의해 살해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단서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피해자의 돌연사나 자살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피해자의 돌연사나 자살의 가능성을 합리적으로 배제할 수 없다는 근거로 원심이 든 사유들은, 기록에 나타나는 피해자의 행동이나 건강상태, 피고인의 행적 등에 비추어 모순되는 점들이 많으므로 그와 관련된 전후의 사실관계 등에 대하여 원심으로서는 좀더 세밀하게 심리했어야 한다 .

( 가 ) 우선 원심은, 피해자가 상당한 과체중이었고, 잦은 음주로 인하여 간 기능이 좋지 않았으며, 자궁미성숙으로 인한 여성호르몬제와 우울증으로 인한 치료약을 복용중이었을 뿐만 아니라 평소 흡연을 하였다는 점, 그와 같이 간의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사망 직전에 음주를 하였던 점 등을 종합하여, 급성 심근경색이나 급성 간성 혼수 등의 질병으로 갑자기 사망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취지로 판단하였 그러나,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한 증거들에 의하더라도, 피해자는 2010. 6 .

17. 사망 당시 만 26세의 젊은 여성으로서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사이에 실시된 건강검진에도 심전도 및 혈압검사결과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2008년 및 2009년의 콜레스테롤 측정결과도 정상범위 내에 있었으며, 다만 2007년 및 2008년의 간기능 검사 수치가 정상범위를 다소 벗어났으나 2009년에는 다시 정상범위내로 되돌아 온 사실 등을 알 수 있고, 사망검안의 공소외 5는 제1심 법정에서 피해자와 같은 젊은 여성이 심장질환 등으로 갑자기 사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다. 또한 피해자에 대한 건강보험 요양급여내역 ( 증거기록 550쪽 ) 에도, 피해자가 산부인과나 정신과 치료를 받은 내역은 없으므로 원심 판시와 같이 피해자가 우울증치료제나 여성호르몬제를 복용하여 왔는지 여부도 반드시 명확하다고는 보기 어렵다 .

한편 당시 응급실에 있었던 간호사 공소외 6은 " 피해자의 입술과 얼굴, 목부위에 토한 흔적이 지저분하게 붙어 있었다 " 고 진술하였고 ( 증거기록 583 ~ 584쪽 ), 간호사 최민지도 " 구토한 흔적에 대하여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당시 술냄새가 강하게 났고, 구토 냄새도 섞여서 난 것 같다 " 고 진술하였다 ( 증거기록 574 ~ 575쪽 ) .

그렇다면 원심으로서는, 피해자가 사망한 때로부터 1 ~ 2년 전의 건강검진 결과 등만을 이유로 위와 같이 막연하게 돌연사의 가능성이 있다고 할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사망할 무렵 여성호르몬제 내지 각종 치료약을 실제로 복용하여 왔는지, 복용하였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성분의 약물을 어느 정도 투약하였는지 등을 심리하고, 그와 같은 치료약의 복용과 음주, 흡연 등의 사정들이 특히 원심이 거론한 급성간성혼수나 심근경색으로 인한 사망가능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나아가 그와 같은 원인으로 돌연사하였다고 볼 경우 피고인이 주장하는 것처럼 피해자를 차에 태워 병원 응급실로 오는 동안의 짧은 시간 안에 사망에 이를 수 있는 것인지 등에 대하여 좀 더 자세하게 심리하였어야 한다 .

나 또한 원심은, 피해자에게 불우한 가정환경과 자궁미성숙 등 신체적 원인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우울증의 소견이 있었다는 등의 이유로, 피해자가 우발적 · 충동적으로 약물 등을 사용하여 자살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

그러나,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한 증거들에 의하면, 피해자는 2009년경부터 표정이 한결 밝아지고 여성호르몬제 투약으로 인하여 자궁의 건강도 개선된 사실, 피해자는 사망 전날 쉼터에서 피고인을 따라 부산으로 가던 중에도 쉼터 원장과 동료에게 앞으로 부산에서 열심히 노력하여 돈을 벌고 학업에 열중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실, 부산으로 떠나기 직전 쉼터 동료들에게 일단 여름옷만 가져가고 다른 옷들은 쉼터를 다시 방문하여 가져가겠다는 취지로 말한 사실 등을 알 수 있다 그 밖에 피해자가 쉼터에서 지내는 동안 자살을 암시하거나 이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는 등의 사정은 기록상 전혀 발견할 수가 없고, 또한 사망 당시 피해자에게는 아무런 외상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만약 피해자가 자살을 하였다면 이는 독극물 등에 의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데, 피해자가 스스로 독극물 등을 소지하고 있었다고 볼 만한 사정도 기록상 발견할 수가 없다 .

한편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변고가 생긴 바로 그 당시의 상황과 관련하여, 자신이 피해자를 부산에 데리고 온 이후 계속 함께 있었고 △△아파트 앞 벤치에 있을 때까지도 특별한 일이 없었는데, 인근에 술을 사러 갔다가 사지 못하고 길어야 5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돌아와 보니 피해자가 흉통을 호소하며 " 계획대로 되었다, 이제 마음이 편하다 " 고 했다는 취지로 변소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피고인이 술을 사러 갔다 오는 위와 같은 짧은 시간 동안에 피해자가 갑자기 자살을 감행할 만한 다른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 또 가능한 자살수단은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는지 등에 대하여도 원심에서는 심리된 바가 없다 .

따라서 원심으로서는, 피해자가 부산으로 오기 전에 쉼터에 있는 동안 자살 충동을 느낄 수 있을 만한 무슨 특별한 사정이 있었거나 그런 조짐을 나타내는 행동을 한 적이 있었는지, 부산에 온 이후 피고인이 술을 사러 가느라고 잠시 자리를 비우기까지 그 사이에라도 갑자기 자살을 결심할 계기가 될 만한 어떤 사유가 있었는지, 또 피해자의 태도나 행동에 그런 징후를 보이는 점이 조금이라도 있었는지, 피고인이 자리를 비운 짧은 시간 동안 독극물 등을 이용하여 자살하는 것이 당시 상황에서 가능한 일인지, 또 그렇게 급사할 정도의 자살 수단을 사용할 경우 시신의 상태가 피해자가 병원에 실려 왔을 때의 모습처럼 될 수 있는 것인지 등에 대하여 다각도로 깊이 있게 심리해 보았어야 한다 .

다 나아가 원심은, 피해자의 사체에서 농약 등 약물의 냄새가 나지 않은 점 , 피해자의 피부에 어떠한 외력의 흔적이 없었던 점, 독극물 등에 의한 사망을 추정할 만한 토사물 등이 피해자의 의복이나 몸 또는 차량에서 발견되지 아니한 점 등을 근거로 피해자가 타살되었다고 쉽사리 확신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

원심이 판시한 것처럼 이 사건에서 피해자의 구체적인 사망경위나 피고인의 범행방법을 객관적으로 인정할 만한 물적 증거가 제출된 바는 없다. 그러나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은 자신을 피보험자로 하는 다수의 생명보험에 가입한 무렵부터 이 사건 발생 이전까지 인터넷에서 ' 메소밀 ', ' 그라목손 ', ' 시안화칼륨 ' 등 독극물이나 ' 자살싸이트 ', ' 살인 방법 ', ' 사망신고절차 ' 등을 검색어로 하여 여러 차례 검색을 한 사실, 특히 이 사건 발생일로부터 약 20일 전인 2010. 5. 30. 경 쉼터를 방문하여 피해자를 면담한 후 2010. 6. 3. 메소밀을 판매하는 곳으로 의심되는 화훼단지에 전화하였고, 같은 날부터 다음날 사이에 인터넷으로 ' 메소밀 냄새, 메소밀 + 중독, 메소밀 + 음독, 메소밀 100㎖ 음독 ' 등의 검색어를 집중적으로 검색한 사실, 피고인은 이 사건 발생일로부터 약 2주 후인 2010년 7월 초순경 연하의 남자 친구를 만나 그의 아이를 임신하였다고 거짓말하면서 연인관계의 복원을 요청하였으나 이를 거절당하자 메소밀이 들어 있는 플라스틱 병을 꺼내 보이면서 " 사람들이 괜히 어려운 약 찾는데 이 약은 구하기도 쉽고 고통도 덜하게 죽는다. 나도 죽고 우리 아이도 죽게 하겠다 " 는 취지로 말하는 등 자살소동을 벌였던 사실 등을 알 수 있다 .

게다가 ▽▽▽▽병원의 응급실 간호사 공소외 6은 제1심 법정에서 피해자가 응급실에 실려 왔을 때 그 몸에서 별다른 냄새가 나지는 않았으나 타액이 앞가슴 부분까지 흘러나왔다고 진술하고 있고 ( 공판기록 253 ~ 254쪽 ), 부산지방검찰청 자문의인 공소외 7 작성의 의료자문보고서에 의하면 메소밀 복용시의 증상 중 하나로 과다한 침흘림이 있다고 되어 있다 ( 증거기록 798쪽 ). 또한 제1심이 적법하게 채택한 증거에 의하면, 피해자의 사망추정 시각은 응급실에 도착한 때로부터 적어도 30분 이전임을 알 수 있다 .

따라서 원심으로서는, 당초 검사가 피해자의 사망원인으로 주장하였던 메소 밀을 복용할 경우 사망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시간, 메소밀을 물이나 맥주 등에 탈 경우 냄새나 색깔, 맛 등으로 용이하게 알아채기 어려운지 여부, 치사량에 이를 정도가 되려면 어느 정도 분량을 타야 하는지, 그리고 피해자의 타액이 앞가슴 부분까지 흘러 나온 증상 등이 메소밀 등의 독극물을 복용한 사체에서 흔히 발견되는 현상인지 여부 등에 관하여도 심도 있게 심리하였어야 한다 .

라. 이상의 여러 사정을 종합해 보면, 원심이, 피해자의 사망경위나 피고인의 범행 방법을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가 없고 피해자의 돌연사 내지 자살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있다는 등 그 판시와 같은 이유만으로 이 부분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

데에는 살인과 같은 중대한 범죄사건에서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한 흠이 있다 할 것이고, 이는 판결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법사유에 해당한다 할 것이니,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의 주장은 이유 있다 .

한편 항소심이 여러 개의 범죄사실 중 일부를 유죄로 인정하여 하나의 형을 선고하고, 나머지에 대하여는 무죄를 선고한 데 대해 검사만이 상고를 제기하였는데, 무죄 부분에 대한 검사의 상고가 이유 있는 경우, 항소심이 유죄로 인정한 죄와 무죄로 인정한 죄가 형법 제37조 전단의 경합범 관계에 있다면 항소심판결의 유죄 부분도 무죄 부분과 함께 파기되어야 한다 .

4. 결론

이에 원심판결 전부를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 · 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

대법관

재판장 대법관 김창석

대법관양창수

주 심 대법관 박병대

대법관고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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