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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2004. 9. 14. 선고 2002가합3247 판결
[손해배상(기)] 항소[각공2004.11.10.(15),1550]
판시사항

[1] 법령의 명시적 근거 여부를 불문하고 국가나 관련 공무원에게 위험 배제를 위한 작위의무가 인정되는 경우

[2] 국가나 관련 공무원에게 납북자들을 구출하여야 할 구체적인 작위의무가 존재한다고 한 사례

[3] 우리 헌법의 통일원칙, 납북자 문제에 대한 북한의 태도와 이를 포괄적으로 해결하려는 정부의 노력, 6·15 남북공동선언의 의의 등에 비추어 볼 때, 6·15 남북공동선언 당시 납북자의 송환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것이 납북자들을 구출해야 할 공무원의 직무를 유기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1]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 등을 보호하는 것을 그 본래적 사명으로 하는 국가는 국민의 천부적 인권이 침해당하지 아니하도록 보호할 의무가 있을 뿐 아니라, 국민의 생명, 신체 등에 대하여 절박하고 중대한 위험상태가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어 국가가 초법규적, 일차적으로 그 위험 배제에 나서지 아니하면 그 국민을 보호할 수 없는 경우에는 형식적 의미의 법령에 근거가 있는지 여부를 따지지 아니하고 국가나 그 관련 공무원에 대하여 그러한 위험 배제에 나아가야 할 작위의무를 인정할 수 있다.

[2] 납북자들은 국가가 초법규적, 일차적으로 그 위험 배제에 나서지 아니하면 그 생명, 신체 등을 보호할 수 없는 절박하고 중대한 위험상태에 있으므로, 국가나 관련 공무원에게는 납북자들을 구출하여 그러한 위험을 배제할 구체적인 작위의무가 존재한다고 한 사례.

[3] 우리 헌법의 통일원칙, 납북자 문제에 대한 북한의 태도와 이를 포괄적으로 해결하려는 정부의 노력, 6·15 남북공동선언의 의의 등에 비추어 볼 때, 6·15 남북공동선언 당시 납북자의 송환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것이 납북자들을 구출해야 할 공무원의 직무를 유기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한 사례.

원고

최준화 외 25인 (소송대리인 변호사 임광규)

피고

대한민국 외 2인 (소송대리인 변호사 제강호 외 2인)

변론종결

2004. 8. 17.

주문

1.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2. 소송비용은 원고들이 부담한다.

청구취지

피고들은 원고 최준화, 이동금, 김태주, 최우영, 박원출, 이금숙, 김덕심, 박근균에게 각 10,000,000원, 원고 김태옥, 김상철, 정형남, 진곡순, 조달막, 박현일, 최석윤에게 각 20,000,000원, 원고 이종유, 이종무, 이종학, 임희순, 박성윤, 박연옥에게 각 6,666,000원, 원고 이수엽, 김상중, 김채중, 김효중, 김현중에게 각 4,000,000원 및 위 각 돈에 대하여 2000. 6. 16.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5%의 비율에 의한 돈을 지급하라.

이유

1. 기초사실

가. 원고들은 별지 목록 기재 각 해당 납북자들(이하 '이 사건 납북자들'이라 한다)과의 사이에 같은 목록 기재와 같은 가족관계가 있는 사람들이고, 피고 김대중은 1998. 2.부터 2003. 2.까지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재직하면서 2000. 6. 13.부터 같은 달 15.까지 평양을 방문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김정일과 공동으로 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한 사람, 피고 박재규는 당시 통일원장관으로 재직하면서 피고 김대중이 위와 같이 6·15 남북공동선언을 작성, 발표하는 것을 보좌한 사람이다.

나. 이 사건 납북자들은 별지 목록 각 해당 납북사유 기재와 같은 시간 및 장소에서 같은 경위로 납북되어 지금까지 돌아오지 못하였다.

다. 이 사건 납북자들 중 원고 7. 김태주 내지 원고 16. 진곡순의 가족들인 최종석, 김상섭, 김순근, 정일남, 진영오가 승선하였던 제27동진호가 납북된 이후, 북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적십자회 중앙위원장은 1987. 1. 21. 위 선박에 대한 조사가 끝난 후에 선원들을 돌려보내겠다고 통지하였다가 1987. 4.경 위 납북자들이 간첩임을 자백하였다는 내용을 방송하였다.

라. 6·15 남북공동선언은 2000. 6. 15.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김정일의 이름으로 발표된 것으로서 다음과 같은 5개 항을 그 내용으로 한다. ①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②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③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 ④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나가기로 하였다. ⑤ 남과 북은 이상과 같은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빠른 시일 안에 당국 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인정 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내지 14, 16 내지 18, 20 내지 22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판 단

가. 원고들의 주장

이 사건 납북자들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한민국의 보호를 받을 권리 및 불법 납치·억류를 당하였을 경우에는 모든 합당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구출받을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고 김대중은 2000. 6. 북한의 실질적 지배자인 김정일을 만난 자리에서 위와 같은 납북자 문제를 거론하지 아니하였을 뿐만 아니라 6·15 남북공동선언 제3항에서 이산가족 방문단의 교환 및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한다는 규정만을 두어 불법 납치된 납북자들을 이산가족과 같이 취급함으로써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위 납북자들을 구출할 직무를 유기하였고, 피고 박재규는 피고 김대중을 보좌하여 위와 같은 남북공동선언의 작성에 가담하였는바, 피고 김대중, 박재규의 위와 같은 행위는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기한 불법행위에 해당하므로 국가배상법 제2조 에 기하여 피고들은 원고들에게 그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

나. 판 단

(1) 이 사건 납북자들을 구출할 국가의 작위의무가 존재하는지 여부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 신체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등을 가지고, 대통령을 비롯한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지며, 나아가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음을 규정하고 있고, 세계인권선언 제3조 제2항은 모든 사람은 자신의 나라로 돌아갈 자유가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위와 같은 성문규정의 존부를 불문하고 불법 체포를 당하지 아니하고 억류·감금상태에서 벗어나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살 권리는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갖는 기본적 인권이라 할 것이다.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 등을 보호하는 것을 그 본래적 사명으로 하는 국가는 위와 같은 국민의 천부적 인권이 침해당하지 아니하도록 보호할 의무가 있을 뿐 아니라, 국민의 생명, 신체 등에 대하여 절박하고 중대한 위험상태가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어 국가가 초법규적, 일차적으로 그 위험 배제에 나서지 아니하면 그 국민을 보호할 수 없는 경우에는 형식적 의미의 법령에 근거가 있는지 여부를 따지지 아니하고 국가나 그 관련 공무원에 대하여 그러한 위험 배제에 나아가야 할 작위의무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대법원 2004. 6. 25. 선고 2003다69652 판결 참조).

이 사건 납북자들은 별지 목록 기재와 같은 경위로 납북되어 지금까지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은바, 그렇다면 위 납북자들에게는 국가가 초법규적, 일차적으로 그 위험 배제에 나서지 아니하면 그 생명, 신체 등을 보호할 수 없는 절박하고 중대한 위험상태가 발생하였다 할 것이어서, 국가나 관련 공무원에게는 위 납북자들을 구출하여 그러한 위험을 배제할 구체적인 작위의무가 존재한다고 할 것이다.

(2) 남북관계의 현황

우리 나라는 8·15 해방과 함께 남북으로 분단되어 1950.부터는 남북 간에 비극적인 전쟁이 있었고 아직도 휴전상태에서 남북이 막강한 군사력으로 대치하며 긴장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분단국으로, 조국의 통일은 우리 헌법이 천명하고 있는 국가적·민족적 과제이다. 오늘날 북한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임과 동시에 대남적화노선을 고수하면서 우리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전복을 획책하고 있는 반국가단체라는 이중적 성격을 함께 갖고 있으며, 남북 간의 대화를 계속하면서 평화통일의 기반을 다져 나가려는 대한민국의 입장에 반하여 북한은 한편으로는 대화에 응하는 듯하다가 갑자기 태도를 돌변하여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등 변화무쌍한 입장을 취하여 남북대화를 정치·외교·경제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전략적으로 이용하여 오고 있고 대한민국 정부는 남북대화를 계속하기 위하여 북한의 이러한 태도에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수동적인 자세로 끌려 오고 있는 현실이다.

(3) 납북자 및 국군포로에 대한 북한의 태도와 대한민국 정부의 노력

앞서 본 바와 같이 북한은 제27동진호의 납치 이후 위 선박이 간첩행위를 하였다고 방송하는 등 납북자 및 국군포로의 존재 자체를 강력하게 거부하는 입장에서 이를 남북대화에 있어서 우월적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해오고 있다.

대한민국은, 원고 20. 박원출 내지 원고 25. 박현일의 가족들이 승선하였던 수원 32, 33호의 납북 및 앞서 본 제27동진호의 납북과 관련하여 납북 직후인 1974. 2. 및 1987. 1. 대한적십자사를 통하여 송환요청 등을 하는 한편, 2000. 8. 15.부터 2004. 8.까지 10차례에 걸쳐 진행된 이산가족방문단 교환시 납북자 및 국군포로의 생사 확인 및 가족방문단 교환을 추진하고 있는바, 이는 납북 당시에는 해당 납북자별로 구체적인 송환요청을 하되 그 이후에는 납북자들에 대한 위와 같은 북한의 태도를 고려하여 납북자들을 이산가족에 포함시켜 생사 확인 및 가족 상봉 등을 실현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대한민국은 1990. 8. 1. 남북교류협력에관한법률을 제정하고, 1991. 9. 북한과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고, 1991. 12. 31. 남북 사이의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하는 등 우리 헌법이 분단극복에 관한 원칙으로 수용하고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의 원칙에 바탕을 둔 통일정책을 계속적으로 추진함으로써 납북자 문제의 포괄적 해결을 도모하고 있다.

(4) 피고 김대중, 박재규가 불법행위를 범하였는지 여부

1998. 2. 출범한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는 평화통일을 위한 기반을 다지기 위하여 '햇볕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가지 정책을 수행한 결과 분단이래 처음으로 2000. 6. 13.에서 15. 사이 남북한의 정상이 평양에서 직접 만나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 문제를 협의하고 남북한 사이에 산적한 문제들 중 그 우선 순위를 고려하여 5개항을 선정하여 앞에서 본 6·15 남북공동선언을 하게 되었고, 이는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의 기반을 구축하는데 크게 기여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피고 김대중과 박재규가 대한민국 대통령과 그를 보좌하는 국무위원으로서 위 남북정상회담 과정이나 그 결과물인 6·15 공동선언문에서 납북자나 국군포로 귀환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지 않은 것은 앞에서 인정한 국민의 생명·신체의 자유를 보장할 국가나 관련 공무원의 의무에 비추어 볼 때 일응 위법성을 인정할 만한 사유가 존재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을가 5, 6, 7호증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보태어 보면, 김대중 대통령은 6·15 남북공동선언 직후 남북 정상회담시 납북자 귀환문제를 비공식적 차원에서 제기한 바 있다고 진술한 사실, 6·15 공동선언문은 제3항에서 이산가족 방문단을 교환하기로 하는 등 인도적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규정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정부는 2000. 6. 27. 및 같은 해 9. 20. 개최된 제1, 2차 남북적십자회담에서 대한적십자사를 통하여 납북자 및 국군포로의 귀환문제를 제기하고, 2000. 8. 29. 개최된 제2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넓은 의미의 이산가족 차원에서 납북자 및 국군포로 귀환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한 사실이 인정된다.

우리 헌법의 통일 원칙과 위와 같은 6·15 남북공동선언의 의의, 그리고 앞에서 인정한 사실을 종합하여 고찰하면, 6·15 남북공동선언에서 납북자 송환 등을 이산가족 문제에 포함시켜 우선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에 대해서만 합의사항을 작성한 것은 피고 김대중, 박재규가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통일원 장관으로서 대한민국 국민인 납북자를 구출할 직무를 위반하거나 소홀히 하였다기보다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 달성이라는 궁극적 목표와 납북자에 대한 북한의 신경질적인 반응을 감안하여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지 않고 보다 큰 국가적 목표를 달성하면서 남북관계의 진전을 통하여 납북자 문제도 해결하기 위한 고도의 정책적 고려 끝에 나온 결과라고 볼 것이어서, 피고 김대중, 박재규가 위와 같은 내용의 6·15 공동선언을 작성, 선언함에 있어서 고의 또는 과실에 기하여 이 사건 납북자들을 구출할 직무를 유기하였다고는 인정하기 어렵다.

(5) 소 결

그렇다면 피고들이 그 직무를 집행함에 당하여 납북자들을 구출할 의무를 위반하였음을 전제로 한 원고들의 주장은 더 나아가 판단할 필요 없이 이유 없다.

3. 결 론

따라서 원고들의 청구는 이유 없어 모두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황한식(재판장) 박찬익 이정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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