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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2003. 1. 30. 선고 2002헌마358 공보 [입법부작위 위헌확인]
[공보(제77호)]
판시사항

가. 입법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의 적법요건

나.국가가 1980년 공권력의 부당한 행사를 통하여 헌납 명목으로 청구인들의 재산을 강제 취득한 것과 관련하여, 입법자에게 그 보상등을 위한 특별 입법의 의무가 발생하였는지 여부(소극)

결정요지

가.입법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은 헌법에서 기본권보장을 위해 명시적으로 입법 위임을 하였거나 헌법 해석상 특정인에게 구체적인 기본권이 생겨 이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입법의무가 발생하였음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입법자가 전혀 아무런 입법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경우가 아니면 원칙적으로 인정될 수 없고, 또한 입법자가 헌법상 입법의무가 있는 어떤 사항에 관하여 입법은 하였으나 그 입법의 내용·범위·절차 등을 불완전·불충분 또는 불공정하게 규율함으로써 입법행위에 결함이 있는 이른바 부진정입법부작위의 경우에는 그 불완전한 규정을 대상으로 하여 그것이 헌법위반이라는 적극적인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을 뿐 입법부작위로서 헌법소원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

나.국가는 헌법 제10조 제2문 및 헌법 제29조 제1항 제1문에 따라, 국가 자체의 불법행위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경우 그 손해배상을 하기위하여 필요한 입법을 할 의무를 갖는다. 그런데 입법부는 국가배상법민법의 규정을 통하여 이미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은 국가 스스로의 불법행위로 인한 기본권 침해시 국가가 손해를 배상함으로써 그 피해를 회복하여 주는 제도를 마련해 놓음으로써 자신의 입법의무를 이행하였다. 입법부가 위와 같이 입법 의무를 이행한 이상, 청구인들이 입은 기본권 침해의 특수한 성격에 비추어 기존 법 체계가 그 침해에 따른 피해 구제에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만을

근거로, 기존의 입법 외에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피해에 대하여 이를 배상 또는 보상을 실시하는 내용의 입법 의무가 헌법 위임이나 헌법 해석상 새로이 발생하였다고 할 수는 없다.

재판관 권성의 위헌 의견

전쟁이나 쿠데타등 위난의 시기에 국가조직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또는 그 비호나 묵인하에 이루어지는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개인의 기본권침해가 있었고 이에 대한 구제가 통상의 법체계에 의하여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는 법 부재적 상황이 발생한 때에는 헌법 제10조 제2문의 기본권보장의무를 근거로 하여 그 구제를 위한 국회의 특별한 입법의무가 발생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마땅하고, 이 사건의 경우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따라서 청구인들의 기본권침해가 발생한 날로부터 이미 22년이 경과하였고 헌정을 중단시킨 세력의 집권이 종료된 날로부터 이미 10년이상이 경과한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회가 아무런 특별입법이나 개정입법을 하지 아니한 것은 명백한 입법의무의 위반이어서 헌법에 위반된다.

참조판례

헌재 1989. 3. 17. 88헌마1 , 판례집 1, 9

헌재 1996. 11. 28. 93헌마258 , 판례집 8-2, 636

헌재 1999. 6. 13. 93헌마276 , 판례집 8-1, 493

당사자

청 구 인 정재문 외 2인

청구인들의 대리인 법무법인 씨에이치엘

담당변호사 이시윤 외 2인

주문

이 사건 심판청구를 각하한다.

이유

1. 사건의 개요

청구인들은 1980. 8. 23. 그들 소유의 부동산 및 주식 등을 대한민국에게 증여한 바 있다. 그런데, 청구인들은, 자신들의 위 증여가 당시 계엄사령부 소속 합동수사본부에 소속된 수사관들의 불법구금과 폭행 등으로 인하여 자유로운 의사결정권이 전적으로 박탈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증여한 재산의 반환을 구하는 민사소송 및 증여의 원인이 된 제소전화해의 취소를 구하는 준재심 소송을 각 제기하였으나 모두 패소하였다. 그러자 청구인들은, 국가가 부당한 공권력을 통하여 청구인들의 재산을 강제로 몰취한 것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아무런 보상입법을 하지 않음으로써 자신들의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였다고 주장하

면서 2002. 5. 25. 그러한 입법부작위에 대한 위헌확인을 구하는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2. 청구인들의 주장

가.국가가 1980년의 특수한 정치상황 하에서 초헌법적인 조치, 즉 현행범인도 아닌 사람을 법관의 영장없이 오랫동안 감금하여 공공의 필요성도 뚜렷하지 아니한데도 정식재판의 길조차 봉쇄하는 제소전화해절차를 이용하여 한 푼의 보상금도 지급함이 없이 청구인들의 재산권을 박탈하였고, 한편 기존의 법 체제로는 이러한 기본권의 침해에 대한 피해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보여지는 이상 국가로서는 응당 입법으로 이를 보호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나.최근 국회는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등에관한법률, 의문사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 제주 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을 제정함으로써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권위주의적 통치의 피해자들에 대하여 보상 등을 위한 입법을 하였는데, 위 특별법의 수혜의 범위에 든 피해자들과 청구인들은 권위주의통치의 희생자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음에도 불구하고 청구인들에 대한 보상입법을 하지 않고 있음은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

3. 판 단

가. 일반론 및 쟁점

(1)헌법소원은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규정한 바와 같이 공권력의 불행사에 대하여도 제기될 수 있지만, 입법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은 헌법에서 기본권보장을 위해 명시적으로 입법 위임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입법자가 아무런 입법조치를 하고 있지 않거나, 헌법 해석상 특정인에게 구체적인 기본권이 생겨 이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입법의무가 발생하였음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입법자가 전혀 아무런 입법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경우가 아니면 원칙적으로 인정될 수 없고, 또한 입법자가 헌법상 입법의무가 있는 어떤 사항에 관하여 입법은 하였으나 그 입법의 내용ㆍ범위ㆍ절차 등을 불완전ㆍ불충분 또는 불공정하게 규율함으로써 입법행위에 결함이 있는 이른바 부진정입법부작위의 경우에는 그 불완전한 규정을 대상으로 하여 그것이 헌법위반이라는 적극적인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을 뿐 입법부작위로서 헌법소원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확립된 판례이다(헌재 1989. 3. 17. 88헌마1 , 판례집 1, 9, 17, 헌재 1999. 6. 13. 93헌마276 , 판례집 493, 499 참조).

(2)따라서 이 사건의 쟁점은, 헌법 위임 또는 헌법 해석에 의하여 입법자에게,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은 기본권 침해에 대하여 그 피해 회복을 위한 입법 의무가 발생하였음이 명백한지 여부와 입법자가 이와 관련하여 아무런 입법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지 여부이다.

나. 쟁점에 대한 판단

(1) 입법자에게 입법의무가 발생하였는지 여부

헌법 제10조 제2문은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함으로써, 소극적으로 국가권력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을 금지하는데 그치지 아니하고 나아가 적극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타인의 침해로부터 보호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로부터 국가 자체가 불법적으로 국민의 생명권, 신체의 자유 등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경우 그에 대한 손해배상을 해주어야 할 국가의 행위의무가 도출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헌법 제29조 제1항 제1문은 “공무원의 불법행위로 손해를 받은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 또는 공공단체에 정당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한 기본권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을 위해서 필요한 입법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이 헌법 규정에 의해서도 국가는 관련 법률을 제정해야할 의무를 직접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입법부는 이미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은 국가 스스로의 불법행위로 인한 기본권 침해시 국가가 손해를 배상함으로써 그 피해를 회복하여 주는 여러 제도를 마련해 놓음으로써 헌법 위임 또는 헌법 해석에 따른 자신의 입법의무를 이행하였다.

먼저, 국가는 국가배상법의 제정을 통해서 국가 자체의 불법행위로 인한 기본권 침해시 발생하는 손해를 배상하는 법률을 제정함으로써 자신의 입법의무를 이행하였다.

또한, 청구인들이 이미 실현한 바 있는 민사적인 구제 제도가 이미 존재한다. 법률행위의 무효, 취소 등을 규정한 민법 제103조 내지 제109조, 준재심절차를 마련한 민사소송법 제431조가 바로 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구인들의 피해 회복이 되지 않았던 것은, 청구인들의 증여 당시의 사실관계가 그 증여의 의사표시를 무효로 평가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거나 준재심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법원의 사실 인정과 법률적 판단에 따른 것일 뿐, 피해 회복을 위한 제도의 부존재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결국 입법부가 위와 같이 입법 의무를 이행한 이상, 청구인들이 입은 기본권 침해의 특수한 성격에 비추어

기존 법 체계가 그 침해에 따른 피해 구제에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만을 근거로, 기존의 입법 외에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피해에 대하여 이를 배상 또는 보상을 실시하는 내용의 입법 의무가 헌법 위임이나 헌법 해석상 새로이 발생하였다고 할 수는 없다.

(2)평등원칙에 근거한 입법의무가 발생하였다는 취지의 주장에 대하여

청구인들은 앞서 본 바와 같이,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등에관한법률, 의문사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 제주 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의 적용 대상자와 청구인들의 피해가 본질적으로 같은 성격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구인들의 피해에 대한 보상 입법을 제정하지 않은 것은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고, 즉 위와 같은 법률 등이 제정되었으므로 입법자에게는 평등의 원칙에 따라 청구인들에 대한 보상 입법을 하여야 의무가 발생하였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므로 살펴본다.

먼저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등에관한법률은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희생된 자와 그 유족에 대하여 국가가 명예회복 및 보상을 행함으로써 이들의 생활안정과 복지향상을 도모하고, 민주주의의 발전과 국민화합에 기여함을”(제1조), 의문사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은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의문의 죽음을 당한 사건에 대한 진상을 규명함으로써 국민화합과 민주발전에 이바지함을”(제1조), 제주 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은 “제주 4·3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이 사건과 관련된 희생자와 그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줌으로써 인권신장과 민주발전 및 국민화합에 이바지함을”(제1조) 각 목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위 각 특별법의 규율대상과 청구인들이 입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법률’의 규율 대상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성격을 갖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가사 그것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보더라도 이를 근거로 입법자에게 청구인들에게도 적용될 유사한 내용의 입법을 하여야 할 헌법상의 의무가 발생한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평등원칙은 원칙적으로 입법자에게 헌법적으로 아무런 구체적인 입법의무를 부과하지 않고, 다만, 입법자가 평등원칙에 반하는 일정 내용의 입법을 하게 되면, 이로써 피해를 입게 된 자는 직접 당해 법률조항을 대상으로 하여 평등원칙의 위반여부를 다툴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헌재 1996. 11. 28. 93헌마258 , 판례집 8-2, 636, 646 참조).

(3) 소결론

그렇다면, 입법자에게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

은 입법 의무가 있다고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은 입법자가 헌법상 입법 의무가 있는 어떤 사항에 관하여 이미 입법을 한 이른바 부진정입법부작위의 경우에 해당함에도 불구하고 진정입법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의 형식으로 제기되었으므로 결국 이 사건 심판청구는 입법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으로서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여 부적법하다.

4. 결 론

이상의 이유로 이 사건 심판청구를 각하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이 결정은 재판관 권 성의 아래 5.와 같은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나머지 관여 재판관의 일치된 의견에 따른 것이다.

5. 재판관 권 성의 반대의견

가.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선언한 헌법 제10조 제2문을 새삼스럽게 원용할 것도 없이 개인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의무로서 국가의 존재의의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기본권보장을 위하여 입법이 필요한 경우라면 의회는 이를 입법할 헌법상의 의무를 부담하는 것 역시 자명한 이치이다.

그러므로 기본권보장을 위한 입법의 필요가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의회가 합당한 이유 없이 장기간 이를 게을리하고 있다면 이는 헌법위반에 해당하는 입법부작위라고 할 것이다.

나.전쟁이나 내란 또는 군사쿠데타에 의하여 조성된 위난(危難)의 시기에 국가기관이 조직을 통하여 집단적으로 자행한 개인의 기본권침해 또는 국가권력의 비호나 묵인하에 조직적으로 자행된 개인의 기본권침해에 대한 구제는 통상의 법절차에 의하여서는 사실상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첫째로 통상의 법절차가 제공하는 구제절차는 평상시의 일상적 분규에 의하여 야기된 기본권침해에 대한 구제를 목표로 하여 제정된 것이므로 위난의 시기에 발생하는 국가조직에 의한 기본권침해와 같은 특수한 상황의 구제에 대하여는 규정이 딱 들어맞지 아니하여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국가조직에 의한 기본권의 침해는 공무원이 개인적 차원에서 범하는 불법행위(다수의 공무원이 공모하여 범한 것을 포함한다)와는 근본적으로 성격을 달리하는 것인데도 통상의 법절차에서는 이러한 특수한 상황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이다.

둘째로 기본권침해의 사태를 야기한 국가권력이 집권을 계속하는 동안에는 국가를 상대로 하여 개인이

적기(適期)에 통상의 쟁송을 일으킨다거나 이에 의한 구제를 기대하는 것이 대개는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위난의 시기에 국가조직에 의하여 발생한 특수한 기본권침해에 대한 구제가 통상의 법체계에 의하여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는 법부재(法不在)의 상황이 발생한 때에는 국민의 기본권보장을 위하여 의회가 특별한 입법을 하여야 할 의무가 발생하는 것이고 이렇게 헌법을 해석하는 것이 헌법의 기본권보장 정신에 부합한다.

다.이 사건에서 보면 누차의 법원 판결이 확정한 사실관계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상황이 인정된다.

「군사정권의 등장으로 헌정질서가 중단된 1980년경, 계엄사령부 소속 합동수사본부(본부장 보안사령관 전두환)가 고위 공직자들의 권력형 부정축재를 조사하고 그 재산을 환수한다는 명목으로 위 합동수사본부 합동수사단장 이학봉 중령에게 당시 신민당 소속 국회의원이던 정해영의 부정축재, 개인비리, 이권청탁 등의 내용을 조사하고 그 재산을 환수할 것을 지시하여 그해 7월경 위 정해영이 합동수사단에 연행되고 이후 37일간 영장 없이 수사기관에 감금되어 외부와의 연락이 단절된 상태에서 강압적인 조사를 받은 사실, 정해영이 계속 재산헌납을 거부하고 그의 비리조차 발견되지 아니하자 그의 재산헌납을 받아내도록 지시받은 합동수사본부 조정관 소령 한길성이 정해영의 아들 정재문이 보는 앞에서 그를 나무의자로 때리고 쓰러진 그를 질질 끌고 가면서 서빙고로 보내어 죽인다고 위협을 한 사실, 이에 외포된 정해영과 그의 아들 정재문, 그의 처 송옥자 등이 그들의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는 데 동의하고 제소전화해절차에 의하여 재산을 이전할 수 있도록 수사관의 지시대로 소송위임장을 정해영이 작성하여 주고 바로 석방된 사실, 이후 제소전화해절차 등에 의하여 정해영 일가의 일부 재산이 국가의 요구대로 이전된 사실 및 정해영 등이 그 재산의 환수를 위하여 제기한 각종 소송에서 모두 패소, 확정된 사실 등이 인정된다.」

이러한 사실관계에 의하면 국가가 정해영 일가의 재산을 헌납의 이름으로 취득한 것은 국가조직이 저항할 수 없는 폭력으로 정해영을 강압하여 그의 자유로운 의사에 기초한 동의 없이 취득한 것이므로 이는 명백한 재산권의 침해이고 이른바 국가조직에 의한 개인의 기본권침해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해영 일가가 그들의 재산을 회복하기 위하여 제기한 각종 소송에서 모두 패소한 것은 통상의 법체계가, 위난의 시기에 국가에 의하여 또는 국가의 비호나 묵인하에

자행되는 기본권침해에 대하여는, 적절한 보장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위 소송의 경과에서 보듯이, 강박의 정도가 의사표시의 취소를 가능하게 하는 정도의 것에 불과하였는지 아니면 그 정도를 넘어서 의사표시의 무효를 가져오는 정도였는지 여부, 문제의 행위를 한 집단이 국가권력을 계속 장악하는 상황하에서 국가를 상대로 원상회복이나 배상 (또는 보상)을 구하는 소송을 적기에 제기하지 아니한 것에 대하여 소멸시효기간이나 제척기간의 진행을 중단시킬 것인지 여부, 수사관의 강압하에 작성된 소송위임장이 효력이 있는지 여부, 제소전화해의 기판력을 전복할 수 있는 상황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 등의 문제에 당면하여 통상의 법체계는 그것이, 국가조직에 의하여 기본권을 침해당한 개인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리는 데 전혀 적합치 아니한 체계임을 그대로 노정하였다. 통상의 법체계가 지닌 이러한 속성이 이 사건 이외의 다수의 유사한 사건에서도 되풀이하여 드러났음은 우리가 주지하는 바이다.

좀더 부연한다면, 우선 민법과 같은 사법(私法)은 대등한 (혹은 대등할 수 있는) 당사자 사이에 적용되는 법률인데 이 사건의 경우에는 국가가 개인과 대등한 지위에 서 법률행위를 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헌정중단사태를 빌미로 그 공권력을 무제한으로 증폭하여 사용한 경우이므로, 평범한 개인이 국가와 대등한 지위에 있었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는 그에 딱 들어맞는 실정법규정이 없다고 보기 쉽기 때문에 그 대신 이러한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 의사표시이론의 보편적인 법원칙(자유 없는 의사의 무효)을 재확인하는 차원의 새로운 결단 없이는 민법을 제대로 적용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또한 이와 같은 재산권의 귀속변동을 집행한 공무원의 행위는 법률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록 위법하긴 하지만 당해 공무원이 개인적 차원에서 고의나 과실로 법집행을 잘못한 경우가 아니고 정부가 결정한 정책의 집행을 담당한 것에 불과하여 대등한 관계에서 고의나 과실로 벌어진 불법행위와는 차이가 있는 것이므로 이러한 차이를 극복하고 이를 통상의 불법행위와 동일시하여 민법이나 국가배상법을 제대로 적용하려면, 시효의 진행이 마땅히 정지되어야 하는 사유가 시효규정의 배후에 선험적으로 전제되어 있음을 밝혀내는, 역시 새로운 법발견적(法發見的) 해석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규정의 흠결이든 해석의 흠결이든 그로 인하여 모두 궁극적으로 구제불능이 초래된다면 이는 동일하게 법부재적 현상을 조성하는 것인바, 청구인들이 그들의 재

산을 회복하기 위한 소송에서 실제로 모두 패소·확정되어 구제불능의 상태에 이른 것은 위에서 설명한 법부재적 현상에 그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이나 쿠데타 등 위난의 시기에 국가조직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또는 그 비호나 묵인하에 이루어지는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개인의 기본권침해가 있었고 이에 대한 구제가 통상의 법체계에 의하여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는 법부재적 상황이 발생한 때에는 헌법 제10조 제2문의 기본권보장의무를 근거로 하여 그 구제를 위한 의회의 특별한 입법의무가 발생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마땅하고, 이 사건의 경우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라.그런데 주지하는 바와 같이 헌법재판소는, 입법부작위에 대한 소원은「헌법에서 기본권보장을 위하여 법령에 명시적인 입법위임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입법자가 이를 이행하지 아니할 때, 그리고 헌법해석상 특정인에게 구체적인 기본권이 생겨 이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행위의무 내지 보호의무가 발생하였음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입법자가 전혀 아무런 입법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는 경우에 한하여 제한적으로 인정할 것이다.」라고 누차 판시한 바 있다(헌재 1991. 9. 16. 89헌마163 , 판례집 3, 506, 515 등 참조).

그러므로 첫째 이 사건의 경우가 위에서 말하는 이른바 ‘헌법해석상 특정인에게 구체적인 기본권이 생겨 이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행위의무 내지 보호의무가 발생하였음이 명백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지 하는 것과, 둘째로 ‘입법자가 전혀 아무런 입법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는 경우’로 볼 수 있는지 하는 점이 선례와의 관계에서 좀 더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1)선례에서 말하는 ‘특정인에게 구체적인 기본권이 생겨’라는 표현은 사실 적절한 것이 아니다. 침해의 태양은 새로운 것이 생겨날 수 있지만 기본권 자체는, 사람인 이상, 천부(天賦)·생래(生來)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 표현은,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은 새로운 종류의 기본권이 새롭게 발견·확인된 상황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특정인의 기본권에 대한 침해가 생겨’라는 정도의 의미라고 할 것이다.1)이것은 결국 특정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구체적인 사건이 발생하여 그 피해자가 기본권침해의 배제 내지 구제를 청구할 수 있는 지위가 형성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것이고 이렇게 볼 때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국가의「특별한 보호의무」를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에 집중된다. 이 사건의 청구인들이 재산권을 침해당하였음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탈취당한 재산의 원상회복을 청구할 권리 또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 (또는 수용유사적(收用類似的) 침해로 인한 손실보상을 청구할 권리) 그 어느 것 하나도 그 발생이나 존속을 보장받지 못한 사실이 기록상 명백하고 그렇게 된 이유는 “피해의 특수한 성격상 피해자들이 적기(適期)에 국가에 대하여 배상청구를 할 수가 없었으므로 국가가 사후에 별도의 특별법을 제정하여 총괄적인 배상방법을 모색하여야만 할”(헌재 1996. 6. 13. 93헌마276 , 판례집 8-1, 493, 497~498, 세칭 삼청교육대사건의 설시일부) 그러한 상황을, 사전(事前)에 배려한 입법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청구인들의 기본권이 구체적으로 침해되어 이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추가적인 입법행위가 필요하고 따라서 헌법해석상 기본권보장을 위한 국가의「특별한 보호의무」그리고 이에 상응하는 의회의「입법의무」가 새로이 발생하였음이 명백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2)선례에서 말하는 ‘입법자가 전혀 아무런 입법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는 경우’라는 것은, 비록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문제를 규율하는 기존의 입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는 뜻으로 종래 사용되어 왔다. 이에 따른다면 이 사건의 경우에는 민법이나 국가배상법과 같은 기존의 관계법률이 존재하는 경우라고 볼 수 있어 입법의무를 인정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의회의 보호의무 내지 입법의무에는 새로운 법률의 제정의무뿐만 아니라 기존의 관계법률을 개정할 의무도 포함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에 따른다면 여기서 말하는 의회의「입법의무」라고 하는 것은 특별법의 제정의무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관계법률 예컨대 민법이나 국가배상법 같은 것에 대한 개정의무까지를 가리키는 것이고 따라서 특별법의 제정의무이든 기존의 관계법률의 개정의무이든 이러한 입법의무를 정당한 이유 없이 게을리하는 것은 모두 입법부작위에 해당하여 위헌확인의 대상이 된다.

물론 이렇게 보는 것은 헌법재판소 기존 판례의 입장에는 배치된다. 왜냐하면 기존 입법의 개정의무를 불

이행하는 것은 진정한 입법부작위가 아니므로 이것이 문제될 때에는 개정을 요하는 특정의 법률조항을 심판대상으로 하여 그것이 평등원칙 등의 위배로 위헌임을 주장하는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것만이 허용되고 입법개선의무의 불이행 자체를 직접 심판대상으로 삼아 이를 입법부작위라고 하여 그 위헌확인을 구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헌법재판소 기존 판례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떠한 문제가 있을 때 이를 규율하는 새로운 입법을 할 것인지 아니면 기존의 법률 중 관련부분을 개정하는 입법을 할 것인지의 문제는 상황에 따라 결정되는 100% 입법기술의 문제이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므로 이 두가지를 절대적인 구분으로 보고 그 처리를 완전히 다르게 하여야 하는 것으로 취급하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다.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보는 이유는, 어떤 입법사항에 관하여 전혀 입법이 없어 쟁점을 규율할 수 없는 경우와 기존의 입법이 있지만 그것이 불완전하여 쟁점을 결국 규율할 수 없는 경우의 두가지는 쟁점의 규율을 법외(法外)에 두게 되는 점에서 모두 동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피해구제에 관한 민법이나 국가배상법의 규정이 이미 있지만 그 규정들 만으로는 마땅히 구제되어야 할 기본권침해가 사실상 방치되고 마는 경우에는 그 구제가 가능하도록 관계법률을 개선하든지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든지 할 입법의무가 의회에 있는 것이고 다만 어느 방법으로 입법의무를 이행할 것인지의 문제만 의회가 재량으로 정하면 되는 것이다.

원래 진정입법부작위를 부진정입법부작위와 구별하는 것 자체가, 위헌적인 입법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을 불가피한 경우에 부분적으로 허용하되 입법권에 대한 존중과 사법자제의 입장에서 그 범위를 되도록 줄여보려는 시도로 비교적 근래에 제출되어 형성과정중에 있는 하나의 이론이지, 오랜 세월에 걸쳐 탐구·확인된 법원칙은 아니므로 이 구별에 간단히 경도될 일이 아니다.2)또한 ‘입법권에 대한 존중’의 측면에서 보

더라

도,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은 예외적인 특수한 상황에 대하여 의회의 입법의무를 인정하는 것은, 그 범위가 지극히 제한되므로 결코 방만하게 의회의 입법권에 용훼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이 사건의 경우와 같이 통상의 법절차에서 기본권침해에 대한 구제가 모두 거부되어 달리 호소할 길이 두절된 상황하에서조차 헌법재판소가 ‘사법자제’를 내세운다면 이는 국민의 기본권옹호의 최종 책임을 지고 있는 헌법재판소 본연의 임무에 맞지 않는다. 부진정입법부작위를 다루는 많은 소원이 청구기간의 도과를 이유로 하여 부적법 각하되고마는 것을 보면 문제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의 경우에 피해구제에 관한 민법이나 국가배상법 등의 관계규정이 존재한다고 하여 이를 위 선례에서 말하는 이른바 ‘입법자가 전혀 아무런 입법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은 불합리하고, 오히려 민법이나 국가배상법 등 기존의 관계규정을 개정하여야 할 입법개선의무를 불이행하는 입법부작위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3) 요컨대 의회의 기본권보장에 관한 입법의무의 존부를 진정입법부작위 여부 하나만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아서 결정하여서는 안되고 기본권침해의 결과를 초래한 상황의 특수성, 그러한 상황의 조성에 대한 국가의 책임과 피해자의 책임, 기존의 통상적 법체계에 의한 구제의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기본권을 보장하는 헌법질서를 실현할 국가의 책임을 기준으로 하여, 국가의「국민보호의무」를 인정하는 것이 마땅한지 여부에 따라 결정하여야 할 것이다(물론 개선의무나 침해의 정도가 명백한지 여부도 문제가 될 것이지만 이 점에 대한 논의는 별론이다).

마.위난의 시기가 모두 지나가면 그 와중에서 불운을 겪은 일부 국민들의 상처를 치료하고 보상하여 주는 것이 국가의 의무이고 위난의 수습을 맡은 의회와 정부의 책임인 것이다. 위난의 시기에 입은 피해를 특정인의 개인적 차원의 불행이라고 치부하여 버리는 것은 건강한 사회의 법이 아니다. 중단되거나 위축되었던 헌정질서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의회가 위난의 시기에 피해를 입은 국민들을 구제하는 입법을 하는 것은, 국민을 다시 통합하고 국가를 전진시키기 위하여 의회가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되는 기본적인 의무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의 기본권 침해가 발생한 날로부터 이미 22년이 경과하였고 헌정을 중단시킨 세력의 집권

이 종료된 날로부터도 그리고 통상의 소송절차에서 그 구제가 모두 거부된 날로부터도 이미 10년 이상이 경과한 오늘에 이르기까지 의회가 아무런 특별입법이나 개정입법을 하지 아니한 것은 명백한 입법의무의 위반이어서 헌법에 위반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의회의 입법의무 존재를 부인하는 다수의견에, 나는 반대하는 바이다.

재판관

재판관 윤영철(재판장) 한대현 하경철 김영일

권 성 김효종 김경일 송인준 주선회(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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