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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2003. 6. 26. 선고 2000헌마509 2001헌마305 결정문 [입법부작위 위헌확인]
[결정문]
청구인

【당 사 자】

청구인 1.김○렬 외 73인 ((2000헌마509)

청구인들 대리인 법무법인 덕수 외 5인

2. 이○윤 외 97인 ( 2001헌마305 )

청구인들 대리인 법무법인 한결

담당변호사 차병직 외 1인

피청구인

국회

주문

청구인들의 심판청구를 각하한다.

이유

1. 사건의 개요와 심판의 대상

가. 사건의 개요

(1) 2000헌마509

청구인들은, 제주 모슬포경찰서에 수감 중이던 민간인 210명 내지 250명이 제주계엄사령부의 명령에 의하여, 1950. 8. 20. 02:00와 05:00경 2차례에 걸쳐 모슬포 동남쪽 속칭 ‘섯알오름’이라는 일본군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만들어 놓은 폭파된 탄약고 언덕에서 아무런 재판절차도 없이 총살·처형되어 암장된 것으로 추정됨(이하 편의상 이를 ‘속칭 섯알오름사건’이라 한다)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그동안 이에 대한 진상조사, 책임자문책 등 아무런 조치도 취한 바 없다고 주장하면서, 위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및 피해자들의 명예회복·호적정정·피해배상 등 국가의 의무이행을 위한 법률을 제정하지 아니한 입법부작위가 속칭 섯알오름사건 피해자들의 유족인 청구인들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및 평등권을 침해하였다고 하여 그 위헌확인을 구하고자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청구인들은 자신들이 1950. 8. 20.경 제주도 계엄사령부의 명령에 의하여 처형 등을 당한 사람들의 유족들인데,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당시 치안국장은 ‘전국요시찰인 단속 및 전국형무소 단속의 건’(6. 25.), ‘불순분자 구속의 건’(6. 29.), ‘불순분자 구속처리의 건’(6. 30.) 등을 치안국 통첩이라는 이름으로 각 도 경찰국에 통지하여 실시하도록 하였고, 그 결과 제주도 경찰국 산하 4개 경찰서에서는 1950. 8. 4.까지 민간인 820명이 구금되었는바, 같은 달 12일부터 20일 사이에 이들은 군에 인계되어 서귀포경찰서에 수감 중이던 약 200명은 행방불명, 모슬포경찰서에 수감 중이던 210명 내지 250명은 ‘섯알오름’에서 총살된 후 암매장, 제주경찰서에 수감 중이던 약 400명 내지 500명은 행방불명되었다고 주장하면서, 2001. 5. 4. 인권의 보호의무를 지고 있는 국가가 이에 대한 진상조사, 명예회복, 피해보상 등을 하는 입법을 하지 않은 것은 청구인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 행복추구권, 평등권을 침해한 것이라는 이유로 이에 대한 입법부작위의 위헌확인을 구하는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나. 심판의 대상

이 사건의 심판대상은 속칭 섯알오름사건 등 1950. 8. 20. 전후하여 제주도 각 경찰서에서 구금 중이던 민간인들을 처형한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및 그 사건 피해자들의 명예회복·호적정

정·피해배상 등 국가의 의무이행을 위한 법률을 제정하지 아니한 입법부작위의 위헌여부이다.

2.청구인들의 주장, 피청구인의 답변과 관계기관의 의견

가. 청구인들의 주장

(1)속칭 섯알오름사건 등은 특별한 상황에 처한 개별부대에 의하여 우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당시 군·경이 체계적인 과정을 통하여 연행과 학살을 분담하였고, 비슷한 시기에 남한 전역에서 벌어진 것으로 계획적이고 집단적이며 연속적인 학살행위이다. 그리고 위 사건의 구금부터 학살에 이르는 과정에서 어떠한 법규범이 적용된 바도 없다. 즉, 그 희생자는 자신의 구금이나 처형이유를 알지 못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혐의를 밝히기 위한 조사나 이에 대한 변명의 기회도 주어지지 아니하였고, 그에 대한 재판절차도 진행되지 아니하였다.

또한 위 사건 발생 후, 당시 군·경은 유족들에게 이 사실을 통지하지도 아니하였을 뿐만 아니라, 유족들이 시신을 발굴하는 것은 물론 학살장소를 그 후 7년간 무장병력에 의하여 경비하도록 함으로써 접근 자체를 금지시켰다. 학살행위를 담당한 어떤 당사자도 이 사건으로 조사·처벌받았다는 정보가 있지 아니하다. 위 사건은 국가의 공식적인 기록인 호적에서도 철저히 은폐되고 조작되었다. 유족들로서는 그 후 각 가족별로 사망신고를 하였는데, 그 사망시기도 구구하며, 그 원인도 당시 사회상황으로 인하여 사실대로 신고되지 못하고 병사(病死) 등으로 기재된 것이다.

(2)누군가 뜻밖의 죽음을 당하는 등 타인으로부터 부당한 침해를 당하였을 때, 피해자 본인 및 그 가족으로서는 그 진상을 밝혀내고, 그 결과 억울한 일이 있으면 법적 절차에 호소하여 그 원한을 풀거나 풀어줄 권리 이른바, ‘신원권’을 가진다고 할 것이다. 이는 인간의 생명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의 본질적인 내용이며, 이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민주주의국가의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속칭 섯알오름사건 등과 같은 국가 공권력에 의한 조직적인 인권유린행위는 일반적인 불법행위를 당한 경우와는 달리 국가가 마련한 일반적인 구제절차에 따라 구제받는 것이 사실상 또는 법률상 불가능하다. 오히려 진상조사, 명예회복 및 적절한 배상 등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탄압의 빌미가 되고 국가권력에 의하여 범죄로 낙인 찍혀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 보통이므로, 피해자 또는 그 유족은 이중의 고통을 감수하여야만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어, 오랜 기간 그 진상을 밝힐 권리를 심각하게 훼손당하며, 진상규명 이후의 순서라고 할 명예회복, 배상 등의 구제를 기대하는 것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사회 전체의 민주화에 힘입어 피해자들의 이러한 요구가 물리적으로 탄압을 받는 상황에서는 벗어난다고 하더라도, 국가가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구제방법을 마련하지 아니한 채, 피해자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부작위 또는 형식적인 무마조치로 일관할 경우, 이미 그 증거가 고의적으로 은폐되고 오랜 시간이 경과된 사건에 관하여 피해자 개인이 진실을 밝혀내는 것은 매우 어렵고, 실정법상 공소시효제도와 소멸시효제도 등의 법률적 장벽에 가로 막혀 있다. 따라서, 그 피해자와 유족들의 권리구제를 위하여는 특별히 다른 구제방법이 필요하다.

(3)국제인권법은 국가 공권력에 의한 조직적인 대규모 인권유린행위는 인간성에 대한 범죄이며, 이때 피해자에게 다음과 같은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 즉, 사실의

규명과 진실의 완전하고도 공적인 공개, 범하여진 침해에 대한 책임의 공개적인 인정, 책임자의 처벌, 희생자·그들의 친척과 친구·증인들에 대한 보호, 희생자들에 대한 기념과 애도의 표시, 희생자들을 돌보는 기관의 설립과 지원, 그들을 돕는 요원의 훈련, 침해의 재발방지조치, 현금 또는 그와 유사한 형태의 배상(진료, 고용, 교육 등) 등이다.

우리 헌법 제6조 제1항은,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헌법상 정해진 절차에 따라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 가입하였고, 위 규약은 1990. 7. 10. 그 효력이 발생하여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따라서, 진실의 조사와 공개 및 책임자의 처벌, 배상 등은 피해자들의 권리이자 국가가 저지른 중대한 인권침해로 인하여 국가가 피해자들 및 사회에 대하여 부담하게 되는 의무로 해석되므로, 국가는 이 보호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4)헌법 전문과 제10조의 규정에 따라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보전을 위하여 그 보호 및 증진에 노력하여야 하고, 특히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외부의 부당한 침해로부터 방어하여야 할 책임 즉, 보호의무를 지고 있다. 더구나 생명·신체에 대한 침해가 그 침해로부터 보호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 국가공권력의 인권유린행위로 인한 것이라면, 그 피해자 및 유족의 구제받을 권리를 보호할 국가의 의무는 더욱 가중되는 것이다.

나아가 대규모의 무차별적 민간인 학살은 국가의 성립과 존속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주권자인 국민에 대한 공격으로서 국민주권주의를 천명한 헌법 제1조 제2항의 규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며, 그 피해자 및 유족들에 대한 국가의 사죄차원에서라도 이들에 대한 국가의 보호의무가 발생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따라서 속칭 섯알오름사건 등의 피해자들과 그 유족들의 진실을 알 권리와 구제받을 권리는 헌법상 우선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기본권이고, 국가는 이를 보호하여야 할 의무를 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생명권과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시효가 없듯이 학살의 진상을 규명하고 국가의 의무이행을 촉구할 인권에도 시효는 적용될 수 없다.

(5)그런데, 그동안 역대 정부당국을 상대로 속칭 섯알오름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유족들의 계속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과없이 번번이 좌절되었다. 예컨대,4·19 이후 국회 등에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각종 청원 등을 하였고, 그 결과 제35회 국회에서는 이 사건을 ‘양민학살’로 규정하고 명예회복과 보상이 논의되었으나,5·16으로 인하여 특별조치법 제정이 무산되었다는 것 등이다.

한편, 1950년을 전후한 시기에 국가 공권력에 의하여 저질러진 양민학살 피해자들 모두에 대한 구제조치는 지역에 따른 특별법 제정의 형태로 나타나, 지난 1996년 거창사건등관련자의명예회복에관한특별조치법이 제정되어 호적등재조치 등이 이루어졌고, 1999년에는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조치법이 제정되어 진상조사 및 명예회복조치, 호적정정, 보상조치가 실시될 예정이다. 그러나 위 법률들은 각 그 해당지역의 학살사건만을 적용대상으로 하고 있으므로, 아직 그 외의 지역에서 발생한 동일한 성격의 학살사건에 관하여는 그 진상조사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근거법률이 없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국가의 입법부작위는 곧 동일

한 보호의무를 지고 있는 자들 중 일부에 대하여는 전혀 그 보호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함으로써 헌법상 보장된 청구인들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6)그러므로 국가에 속칭 섯알오름사건 등의 진상조사에 대한 의무를 부과하고, 누구든 위 사건에 관하여 진술하였다는 것으로 불이익을 받지 아니함을 명시하여 진실이 공개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그 결과를 국가의 이름으로 공적으로 확인하여야 하며, 국가가 다시는 인권유린행위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역사적 반성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조사·공개된 진실에 기하여 위령사업 등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조치를 시행하도록 규정되어야 하며, ‘공비를 위한 총살’이라는 국가의 공식기록인 호적의 기재사항을 진실에 맞도록 정정할 수 있는 규정을 두어야 하고, 유족들에게 배상청구권을 인정하거나 적절한 보상을 하게 하는 입법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위와 같은 입법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함으로써 청구인들은 헌법 제10조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과 제11조의 평등권을 침해받았으므로, 그 입법부작위는 헌법에 위반된다.

나. 피청구인의 답변

(1) 이 사건은 입법부작위적인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입법부에 입법재량이 부여된 부진정입법부작위에 불과하여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지 않아 각하되어야 하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용인되지 않을 정도의 입법부작위상태에 있지 않으므로 기각되어야 한다.

(2) 입법부작위는 명시적인 헌법상의 입법위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입법을 하지 아니한 채, 방치한 진정입법부작위의 경우에만 인정된다 할 것이고, 진정입법부작위의 경우에도 권력분립의 원칙 및 이로 인한 광범위한 입법형성의 자유를 고려하여 신중히 접근하여야 한다.

(3)이른바, 양민학살사건은 1950년 한국전쟁 전후에 일어난 것으로서 제35회 국회에서는 양민학살진상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이에 대한 보고서를 의결한 바 있는데, 이 보고서에 따르면, 양민학살사건은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경상남북도, 전라남북도, 제주도 등 전국적으로 발생하였고, 그 피해상황도 당시 행정, 사회 여건상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다.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위 사건도 그 발생 이후 50년 이상 경과하여 그 사실관계를 확인하기가 어렵고, 전국 각지에서 유사사건이 많이 발생하였기 때문에 입법부인 국회로서는 그 사건 사실관계의 확인가능성, 사회적 영향 등 여러 요인을 감안하여 개별지역의 사건에 관한 입법을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4)청구인들은 입법부인 국회가 입법을 고의적으로 해태하여 청구인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평등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국회는 이른바, ‘양민학살사건’ 이후에 이에 대한 입법조치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행정부에 진상조사와 특별법제정을 촉구하는 건의안을 의결한 바 있으며, 양민학살사건에 관한 1996년 거창사건등관련자의명예회복에관한특별조치법과 1999년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을 제정한 바 있으므로 그 의무를 해태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입법에 있어서는 필요성뿐만 아니라, 충실성이 요구되므로 단시일 내에 입법이 행해질 수 없고, 특히 위와 같은 입법은 구체적인 사실관계의 확인정도에 따라 순차적으로 입법화될 수밖에 없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는 분야여서 국회의 입법재량이 존중되어야 한다. 따라서, 국회가 입법대상을 선별하여 입법하였다

하더라도 이것은 평등권의 침해라 할 수 없고, 같고 다름을 신중하게 확인하는 과정에서 개별적 입법조치가 취하여진 것에 불과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 국방부장관의 의견

(1)어떤 사항을 법규로 규율할 것인가, 이를 방치할 것인가는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입법자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세계관적 고려 하에서 정해지는 사항인 것이므로, 일반 국민이 입법을 해달라는 취지의 청원권을 향유하고 있음은 별론이로되, 입법행위의 소구권은 원칙적으로 인정될 수 없다.

만일 법을 제정하지 아니한 것이 위헌임을 탓하여 이 점에 관하여 헌법재판소의 위헌판단을 받아 입법당국으로 하여금 입법을 강제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허용된다면, 결과적으로 헌법재판소가 입법자의 지위를 갈음하게 되어 헌법재판의 한계를 벗어나게 된다고 할 것이다.

(2)본건 사안은 입법기관이 국가작용의 어떤 영역에서 단순히 입법을 하지 않고 있는 단순입법부작위의 경우로서, 입법을 할 것인지의 여부와 입법의 내용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입법기관의 자유에 맡겨져 있는 것이어서, 입법자의 형성의 자유 또는 입법재량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사안에 대하여 청구인들의 주장과 같은 입법을 하려면, 입법자의 정치적, 정책적 결단이 있어야 할 것이며, 헌법재판으로 입법을 강요할 사안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3)청구인이 주장하는 바와 같은 생명권 및 신체불훼손권의 침해가 국가의 고의나 과실로 인하여 발생하였을 경우에 국가배상법민법의 일반원칙에 따라 국가에 배상신청을 하여 배상받는 것이 원칙이며, 진상조사의 문제도 일반검찰 및 군검찰권의 행사 등으로 조사·확인될 수 있는 것이다. 별도의 특별법이 제정되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청구인들이 위헌적인 기본권침해를 받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이 사안에 대한 입법의 필요성은 입법자가 판단할 입법재량의 문제로서 청구인의 평등권이 침해받았다며 이러한 입법을 강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 심판청구는 헌법소원의 대상성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각하되어야 할 것이고, 또한 이 사건 단순입법부작위는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3. 판 단

먼저 이 사건 입법부작위 헌법소원심판청구의 적법여부에 대하여 본다.

입법부작위는 헌법이 요구하는 입법자의 입법의무가 존재하여야 비로소 성립한다. 즉, 입법부작위는 헌법이 입법자에게 입법의무를 부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입법자가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 법적 상태를 의미한다. 헌법상의 입법의무를 어느 정도로 인정하는가의 문제는 바로 입법자와 헌법재판소 사이의 헌법을 실현하고 구체화하는 공동의무 및 과제의 배분과 직결되는 문제라 할 것이다. 입법자와 헌법재판소는 모두 헌법규범의 구속을 받고, 입법자는 입법작용을 통하여, 헌법재판소는 헌법의 해석과 적용을 통한 헌법재판의 형태로 각각 헌법을 구체화하고 실현한다. 헌법재판소가 헌법에 명시적으로 표현된 명백한 위임을 넘어 헌법해석을 통하여 입법자의 헌법적 의무를 폭넓게 인정하면 할수록 입법자의 입법형성의 자유는 축소된다.

따라서, 헌법상의 권력분립원칙과 민주주의원칙은 입법자의 민주적 입법형성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하여 입법자의 헌법적 입법의무는 예외적으로만 이를 인정하고, 되도록이면 헌법에 명시

적인 위임이 있는 경우만으로 제한할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입법부작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재판관할권은 한정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할 것이므로, 헌법에서 기본권보장을 위하여 법령에 명시적인 입법위임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입법자가 이를 이행하지 아니한 경우이거나, 헌법해석상 특정인에게 구체적인 기본권이 생겨 이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행위의무 내지 보호의무가 발생하였음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입법자가 아무런 입법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경우에 한하여 입법자에게 입법의무를 인정한다고 할 것이다(헌재 2000. 6. 1. 2000헌마18 , 판례집 12-1, 733, 738-739; 헌재 2001. 6. 28. 2000헌마735 , 판례집 13-1, 1431, 1437; 헌재 2001. 12. 20. 2001헌마484 참조).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에 대한 국가의 보호의무는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일반적으로 인정된다. 즉,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제12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29조 제1항은,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손해를 받은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 또는 공공단체에 정당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제30조는, “타인의 범죄행위로 인하여 생명·신체에 대한 피해를 받은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로부터 구조를 받을 수 있다.”라고 규정하여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아울러 위와 같은 국가의 보호의무는 법률의 규정 또는 그에 따른 집행행위로 구체화된다. 국민의 생명이 박탈되거나 훼손된 경우에 형법, 형사소송법 등 관련 법률규정에 의하여 수사권·소추권·재판권 및 형벌권을 발동하여 그 가해자를 처벌하고, 민법, 국가배상법, 소송촉진등에관한특례법 등 관련 법률규정에 의하여 훼손된 명예를 회복시키거나 그 관련 손해에 대한 전보 등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런데, 이 사건의 경우에 국방부장관·제주지방경찰청장·제주경찰서장·서귀포경찰서장의 사실조회 및 자료제출요구에 대한 회신, 청구인들에 대한 수 차례에 걸친 자료제출요구 결과, 호적 등 이 사건 기록에 드러난 자료를 자세히 살펴보아도 청구인들 관련 별지기재 망인들 중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사망한 사실은 이를 인정할 수 있으나,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위와 같은 사건이 발생하였는지, 그 사건의 원인과 경위 및 결과가 어떠한지, 청구인들 관련 별지기재 망인들이 그 사건의 피해자인지의 여부에 대하여는 이를 명확히 확인할 만한 자료가 없어 입법대상인 전제사실의 존부에 관하여 판단할 수 없어 결국 이를 인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사건의 존재를 전제로 하여 국회가 입법을 하여야 할 헌법규정 또는 헌법의 해석상 국가의 보호의무가 발생하였다고 판단할 수 없다 할 것이고, 나아가 입법자에게 이 사건 입법을 하여야 할 헌법의 명문상 또는 해석상 작위의무가 존재한다는 청구인들의 이 사건 입법부작위 위헌확인심판청구는 부적법하다고 할 것이다.

4. 결 론

따라서, 이 사건 심판청구는 부적법하므로 이를 각하하기로 하여 아래 5.와 같은 재판관 권 성의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관여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에 의한 것이다.

5. 재판관 권 성의 반대의견

가.다수의견이 인용한 청구인들의 주장 일부를 다시 읽어 본다.

「누군가 뜻밖의 죽음을 당하는 등 타인으로부터 부당한 침해를 당하였을 때, 피해자 본인 및 그 가족으로서는 그 진상을 밝혀내고, 그 결과 억울한 일이 있으면 법적 절차에 호소하여 그 원한을 풀거나 풀어줄 권리 이른바, ‘신원권’을 가진다고 할 것이다. 이는 인간의 생명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의 본질적인 내용이며, 이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민주주의국가의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속칭 섯알오름사건 등과 같은 국가 공권력에 의한 조직적인 인권유린행위는 일반적인 불법행위를 당한 경우와는 달리 국가가 마련한 일반적인 구제절차에 따라 구제받는 것이 사실상 또는 법률상 불가능하다. 오히려 진상조사, 명예회복 및 적절한 배상 등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탄압의 빌미가 되고 국가권력에 의하여 범죄로 낙인 찍혀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 보통이므로, 피해자 또는 그 유족은 이중의 고통을 감수하여야만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어, 오랜 기간 그 진상을 밝힐 권리를 심각하게 훼손당하며, 진상규명 이후의 순서라고 할 명예회복, 배상 등의 구제를 기대하는 것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사회 전체의 민주화에 힘입어 피해자들의 이러한 요구가 물리적으로 탄압을 받는 상황에서는 벗어난다고 하더라도, 국가가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구제방법을 마련하지 아니한 채, 피해자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부작위 또는 형식적인 무마조치로 일관할 경우, 이미 그 증거가 고의적으로 은폐되고 오랜 시간이 경과된 사건에 관하여 피해자 개인이 진실을 밝혀내는 것은 매우 어렵고, 실정법상 공소시효제도와 소멸시효제도 등의 법률적 장벽에 가로 막혀 있다. 따라서, 그 피해자와 유족들의 권리구제를 위하여는 특별히 다른 구제방법이 필요하다.

국제인권법은 국가 공권력에 의한 조직적인 대규모 인권유린행위는 인간성에 대한 범죄이며, 이때 피해자에게 다음과 같은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 즉, 사실의 규명과 진실의 완전하고도 공적인 공개, 범하여진 침해에 대한 책임의 공개적인 인정, 책임자의 처벌, 희생자·그들의 친척과 친구·증인들에 대한 보호, 희생자들에 대한 기념과 애도의 표시, 희생자들을 돌보는 기관의 설립과 지원, 그들을 돕는 요원의 훈련, 침해의 재발방지조치, 현금 또는 그와 유사한 형태의 배상(진료, 고용, 교육 등) 등이다.

우리 헌법 제6조 제1항은,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헌법상 정해진 절차에 따라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 가입하였고, 위 규약은 1990. 7. 10. 그 효력이 발생하여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따라서, 진실의 조사와 공개 및 책임자의 처벌, 배상 등은 피해자들의 권리이자 국가가 저지른 중대한 인권침해로 인하여 국가가 피해자들 및 사회에 대하여 부담하게 되는 의무로 해석되므로, 국가는 이 보호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헌법 전문과 제10조의 규정에 따라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보전을 위하여 그 보호 및 증진에 노력하여야 하고, 특히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외부의 부당한 침해로부터 방어하여야 할 책임 즉, 보호의무를 지고 있다. 더구나 생명·신체에 대한 침해가 그 침해로부터 보호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 국가공권력의 인권유린행위로 인한 것이라면, 그 피해자 및 유족의 구제받을

권리를 보호할 국가의 의무는 더욱 가중되는 것이다.

나아가 대규모의 무차별적 민간인 학살은 국가의 성립과 존속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주권자인 국민에 대한 공격으로서 국민주권주의를 천명한 헌법 제1조 제2항의 규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며, 그 피해자 및 유족들에 대한 국가의 사죄차원에서라도 이들에 대한 국가의 보호의무가 발생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따라서 속칭 섯알오름사건 등의 피해자들과 그 유족들의 진실을 알 권리와 구제받을 권리는 헌법상 우선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기본권이고, 국가는 이를 보호하여야 할 의무를 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생명권과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시효가 없듯이 학살의 진상을 규명하고 국가의 의무이행을 촉구할 인권에도 시효는 적용될 수 없다.

그런데, 그동안 역대 정부당국을 상대로 속칭 섯알오름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유족들의 계속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과 없이 번번이 좌절되었다. 예컨대,4·19 이후 국회 등에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각종 청원 등을 하였고, 그 결과 제35회 국회에서는 이 사건을 ‘양민학살’로 규정하고 명예회복과 보상이 논의되었으나,5·16으로 인하여 특별조치법 제정이 무산되었다는 것 등이다.

한편, 1950년을 전후한 시기에 국가 공권력에 의하여 저질러진 양민학살 피해자들 모두에 대한 구제조치는 지역에 따른 특별법 제정의 형태로 나타나, 지난 1996년 거창사건등관련자의명예회복에관한특별조치법이 제정되어 호적등재조치 등이 이루어졌고, 1999년에는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조치법이 제정되어 진상조사 및 명예회복조치, 호적정정, 보상조치가 실시될 예정이다. 그러나 위 법률들은 각 그 해당지역의 학살사건만을 적용대상으로 하고 있으므로, 아직 그 외의 지역에서 발생한 동일한 성격의 학살사건에 관하여는 그 진상조사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근거법률이 없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국가의 입법부작위는 곧 동일한 보호의무를 지고 있는 자들 중 일부에 대하여는 전혀 그 보호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함으로써 헌법상 보장된 청구인들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에 속칭 섯알오름사건 등의 진상조사에 대한 의무를 부과하고, 누구든 위 사건에 관하여 진술하였다는 것으로 불이익을 받지 아니함을 명시하여 진실이 공개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그 결과를 국가의 이름으로 공적으로 확인하여야 하며, 국가가 다시는 인권유린행위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역사적 반성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일련의 조치를 강구하는)……입법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위와 같은 입법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함으로써 청구인들은 헌법 제10조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과 제11조의 평등권을 침해받았으므로, 그 입법부작위는 헌법에 위반된다.」

나.청구인들의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아니할 이유를 나는 알지 못한다.

첫째는 피청구인인 국회 자신도,6·25 사변을 전후한 시기에 모슬포 등지에서 양민학살사건이 발생하였고 진상조사의 책임과 권능을 가진 국가기관이 이에 대한 조사를 한 바가 전혀 없었다 하여 행정부에 대하여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건의안까지 의결한 바 있었던 터에, 그리고 그 뒤

로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관계인들이 끊임 없이 줄을 잇고 있는 터에, 진상조사를 가능하게 하

고 이를 의무로 규정하는 특별입법을 어떻게 마다할 수 있는 것인지 나는 알 수 없는 것이다. 피청구인은 이러한 입법은 단시일내 행할 수 없는 것이라고 답변하고 있지만 사건발생 후 이미 5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과연 이런 답변이 설득력이 있는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

다수의견은 이렇게 말한다.「이 사건의 경우에 국방부장관·제주지방경찰청장·제주경찰서장·서귀포경찰서장의 사실조회 및 자료제출요구에 대한 회신, 청구인들에 대한 수차례에 걸친 자료제출요구 결과, 호적 등 이 사건 기록에 드러난 자료를 자세히 살펴보아도 청구인들 관련 별지기재 망인들 중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사망한 사실은 이를 인정할 수있으나,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위와 같은 사건이 발생하였는지, 그 사건의 원인과 경위 및 경과가 어떠한지, 청구인들 관련 별지기재 망인들이 그 사건의 피해자인지의 여부에 대하여는 이를 명확히 확인할 만한 자료가 없어 입법대상인 전제사실의 존부에 관하여 판단할 수 없어 결국 이를 인정할 수 없다.」

그러나 바로 이처럼 전혀 조사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 진상을 알아보도록 명하는 특별법의 입법이 필요한 것이었고 지금껏 이를 게을리 한 것은 위헌적인 입법부작위가 되는 것이다.

둘째로 진상조사와 배상 등을 가능하게 하는 형사소송법이나 민법국가배상법등이 이미 입법되어 있으므로 이들 법률 중에 진상조사와 배상 등에 장애가 되는 공소시효나 소멸시효 등의 관계규정이 있다면 그 조항들이 위헌임을 들어 그들 규정의 위헌확인을 구하는 헌법재판을 청구하는 것은 모르지만 그러한 개정입법을 하지 않는 것을 입법부작위라 하여 헌법소원을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선례의 입장은, 관계법률의 개정입법 미이행은 입법부작위의 문제가 아니라는 전제에 서 있는 것이고 이것은 역사와 풍토가 현저히 다르고 의회의 입법활동이 월등히 왕성한 독일의 이론인데 이것이 과연 우리나라의 헌법재판에서도 타당한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이 점에 관한 보다 상세한 논의는 헌재 2003. 1. 30. 2002헌마358 공보77, 205; 헌재 2003. 5. 15. 2000헌마192 , 508(병합) 공보81, 482 중 본 재판관의 반대의견을 원용하고 여기서는 재론을 생략한다). 보다 근본적인 것은, 관계법률을 개정하지 않는 것이나 별도의 특별법을 제정하지 않는 것이나 모두 입법부작위임에 틀림없는데 둘 사이에 무슨 본질적인 차이가 있어 양자의 취급을 반드시 달리 하여야만 하는 것인지 나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다.다수의견도 진상조사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이상 더 늦기 전에 그 진상을 알아보도록 명하는 특볍법의 입법이 필요한 것이고 50여년이 지난 지금껏 이를 게을리 한 것은 위헌적인 입법부작위가 되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진대 재판청구의 형식을 빌미로 본안심판을 마다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각하되어서는 아니되고 본안에 들어가 입법부작위에 대한 위헌확인을 하여야 옳다고 나는 생각한다.

재판관 윤영철(재판장) 한대현 하경철 김영일(주심) 권 성

김효종 송인준 주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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