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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2011. 2. 24. 선고 2009헌마94 결정문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 제2조 등 위헌확인]
[결정문]
사건

2009헌마94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 제2조 등 위헌확인

청구인

박○호

국선대리인 변호사 심봉석

주문

청구인의 심판청구를 기각한다.

이유

1. 사건의 개요와 심판의 대상

가. 사건의 개요

(1) 청구인은, 일제 강점하인 1945. 6. 12. 부산에 위치한 일본국 부대에 군인으로 징집되어 광복될 때까지 복역한 사실이 인정되어, 2007. 10. 10. 구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2010. 3. 22. 법률 제10143호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으로 폐지되기 전의 것. 이하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은 ‘강제동원진상규명법’이라 하고,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은 ‘대일항쟁기특별법’이라 한다) 관련규정에 따라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이하 ‘진상규명위원회’라 한다)로부터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자로 결정을 받았다.

(2) 2007. 12. 10. 법률 제8669호로 제정된 구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2010. 3. 22. 법률 제10143호 대일항쟁기특별법 제정으로 폐지되기 전의 것. 이하, ‘국외강제동원자지원법’이라 한다) 제2조, 제6조는 태평양전쟁 전후 강제동원된 자 중 ‘국외’로 강제동원된 자에 대해서만 의료지원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현행 대일항쟁기특별법은 구 국외강제동원자지원법과 실질적으로 동일한 취지의 규정을 담고 있다).

(3) 이에 청구인은 2009. 2. 18. 위 국외강제동원자지원법 제2조, 제6조로 인하여 청구인의 헌법상 평등권이 침해되었고, 동시에 국가는 국민에 대한 기본권보호의무를 위반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나. 심판의 대상

청구인은 구 국외강제동원자지원법 제2조, 제6조 전부에 대하여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고 있으나, 제2조 제1호 및 제3호 부분은 청구인과 무관하고, 제6조 제2항은 청구인 스스로도 그 부분에 관하여 위헌주장을 하는 것도 아니며, 달리 헌법재판소가 이 부분들에 대하여 그 위헌여부를 적극적으로 해명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볼 만한 사정도 없다. 따라서 청구인의 청구취지가 국내 강제동원생환자를 의료지원 대상자에서 제외한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임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의 심판대상은 구 국외강제동원자지원법 제6조 제1항 중 “강제동원생환자” 정의에 관한 제2조 제2호(이하 ‘이 사건 법률조항’이라 한다)의 위헌여부로만 한정함

이 상당하다.

심판대상조항 및 관련규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심판대상조항]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2. “강제동원생환자”란 1938년 4월 1일부터 1945년 8월 15일 사이에 일제에 의하여 군인․군무원 또는 노무자 등으로 국외로 강제동원되었다가 국내로 돌아온 사람 중 강제동원희생자에 해당되지 못한 사람으로서 제8조 제2호에 따라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생환자로 결정을 받은 사람을 말한다.

제6조(의료지원금) ① 국가는 (……) 강제동원생환자 중 생존자가 노령․질병 또는 장애 등으로 치료가 필요하거나 보조장구(補助裝具) 사용이 필요한 경우에는 치료 또는 보조장구의 구입에 사용되는 비용의 일부를 지원한다.

[관련조항]

제1조 (목적) 이 법은 1965년에 체결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과 관련하여 국가가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희생자와 그 유족 등에게 인도적 차원에서 위로금 등을 지원

함으로써 이들의 고통을 치유하고 국민화합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 (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강제동원희생자”란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을 말한다.

가. 1938년 4월 1일부터 1945년 8월 15일 사이에 일제에 의하여 군인․군무원 또는 노무자 등으로 국외로 강제동원되어 그 기간 중 또는 국내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사람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부상으로 장해를 입은 사람으로서 제8조 제1호에 따라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희생자로 결정을 받은 사람

나.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 제3조 제2항 제4호에 따라 피해자로 결정을 받은 사람으로서 1938년 4월 1일부터 1945년 8월 15일 사이에 일제에 의하여 군인․군무원 또는 노무자 등으로 국외로 강제동원되어 그 기간 중 또는 국내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사람

3. “미수금피해자”란 1938년 4월 1일부터 1945년 8월 15일 사이에 일제에 의하여 군인․군무원 또는 노무자 등으로 국외로 강제동원되어 노무제공 등을 한 대가로 일본국 및 일본 기업 등으로부터 지급받을 수 있었던 급료, 여러 가지 수당, 조위금 또는 부조료 등(이하 “미수금”이라 한다)을 지급받지 못한 사람으로서 제8조 제1호에 따라 미수금피해자로 결정을 받은 사람을 말한다.

제6조 (의료지원금) ② 제1항에 따른 지원금의 지급액, 지급방법, 그 밖에 지급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2. 청구인의 주장 요지

똑같이 일제에 의해 강제동원되었고 그로 인한 고통이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

고 국가가 강제동원된 지역을 기준으로 국외로 강제동원된 자에 대해서만 의료지원 등을 하는 것은 청구인과 같은 국내 강제동원자들을 합리적인 이유 없이 차별하는 것이고, 나아가 국민에 대한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에 위배되는 것이다.

3. 적법요건에 관한판단

가. 이 사건 심판청구의 성격

이 사건의 경우와 같이 입법자가 혜택부여규정에서 일정 인적 집단을 배제한 경우, 그 규정의 인적 대상범위의 확대를 구하는 헌법소원은 비록 외형적으로는 진정입법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과 유사하나, 실질은 그러하지 아니하다. 입법자의 하자있는 행위는 언제나 올바른 행위의 부작위로 해석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이러한 부작위는 입법자가 혜택부여규정의 제정을 통하여 내린 적극적인 결정의 반사적 효과일 뿐이기 때문이다(헌재 1996. 11. 28. 93헌마258 , 판례집 8-2, 636, 644-645; 헌재 2001. 11. 29. 99헌마494 , 판례집 13-2, 714, 723; 헌재 2009. 6. 25. 2008헌마393 , 판례집 21-1하, 915, 919 참조).

청구인의 이 사건 청구는 평등원칙의 관점에서 입법자가 구 국외강제동원자지원법의 적용대상에 ‘국내’ 강제동원자도 당연히 ‘국외’ 강제동원자와 같이 포함시켰어야 한다는 주장에 지나지 아니하므로, 이는 헌법적 입법의무에 근거한 진정입법부작위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혜택부여규정의 인적 범위의 제한에 따른 결과에 지나지 아니하여 이른바 부진정입법부작위에 해당할 뿐이다.

이러한 부진정입법부작위의 경우에는 불완전한 법규 자체를 대상으로 하여 그것이 평등원칙에 위배된다는 등의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하여야 하는바, 이 사건 심판청구에서도 청구인은 이 사건 법률조항이 ‘국내’ 강제동원자를 지원 대상에서

배제한 것이 청구인의 평등권을 침해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이 사건 법률조항 자체를 심판대상으로 하여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것이다(이상, 헌재 2009. 6. 25. 2008헌마393 , 판례집 21-1하, 919-920 참조).

따라서 이 사건 법률조항에 대한 심판청구는 일제하 강제동원자의 범위를 불완전하게 규율하고 있는 부진정입법부작위를 다투는 헌법소원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나. 청구기간

법령에 대한 헌법소원은 법령의 시행과 동시에 기본권의 침해를 받게 되는 경우에는 그 법령이 시행된 사실을 안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법령이 시행된 날로부터 1년 이내에 청구하여야 한다(헌법재판소법 제69조 제1항 참조). 한편 국선대리인의 선임신청이 있을 경우 위 청구기간 준수 여부는 국선대리인 선임신청이 있는 날을 기준으로 판단한다(헌법재판소법 제70조 제1항 후문 참조).

살피건대, 구 국외강제동원자지원법은 2007. 12. 10. 법률 제8669호로 제정되어 2008. 6. 11. 시행되었고(부칙), 지원위원회는 2008. 7. 31.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위로금 등 지급신청 공고’를 하였는바, 이 사건 청구인은 시행일로부터 1년 이내이자 공고일로부터 90일 이내인 2008. 10. 6.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사유서와 함께 국선대리인 선임신청서를 제출하였으므로, 이 사건 심판청구는 청구기간이 준수되었다 할 것이다.

4. 본안에 관한 판단

가. 평등권 침해 여부

(1) 헌법재판소가 평등위반 여부를 심사함에 있어 엄격한 심사척도에 의할 것인

지, 완화된 심사척도에 의할 것인지는 입법자에게 인정되는 입법형성권의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구체적으로, 헌법에서 특별히 평등을 요구하고 있는 경우와 차별적 취급으로 인하여 관련 기본권에 대한 중대한 제한을 초래하게 되는 경우에는 엄격한 심사척도(비례성원칙)를 적용하여야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완화된 심사척도(자의금지원칙)를 적용하여야 할 것이다(헌재 1999. 12. 23. 98헌마363 , 판례집 11-2, 770, 787-788; 헌재 2001. 2. 22. 2000헌마25 , 판례집 13-1, 386, 403-404 등 참조).

살피건대, 태평양전쟁 관련 강제동원자에 대한 지원 문제는, 우리 민족 현대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사안임이 분명하지만, 헌법에서 특별히 평등을 요구하는 경우라고 보기는 어렵고, 이 사건 법률조항으로 인한 일부 강제동원자에 대한 불이익이 인간의 생존이나 핵심적인 자유행사의 기본적 조건을 제약하는 관련 기본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고 보기도 어렵다.

구 국외강제동원자지원법에 규정된 각종 지원은 태평양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일제에 의한 강제동원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자와 그 유족에 대하여 국가가 의료지원금 등을 지원함으로써 이들이 입은 고통을 치유하기 위한 시혜적 조치인바, 이러한 성격의 지원의 범위와 내용 그리고 방법 등을 정함에 있어서는 입법자에게 입법의 목적, 대상자 현황, 국가예산 내지 재정능력 등 제반 상황을 고려하여 구체적 내용을 형성할 수 있는 재량이 인정된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은 자의금지원칙에 입각하여 평등원칙 위배여부를 판단하여야 할 것으로, 차별기준의 합리성 유무가 헌법적 정당성 여부의 판단기준이 될 것이다.

(2) 청구인은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인한 고통이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법률조항이 강제동원된 지역을 기준으로 국외로 강제동원된 자에 대해서만 의료지원을 하고 청구인과 같은 국내 강제동원자들을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은 헌법상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살피건대, 태평양전쟁 당시 수많은 조선인들이 일제의 무자비한 강제동원으로 인하여 국내 혹은 국외에서 신체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당하며 나라 없는 설움으로 인하여 입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은 굳이 상론을 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을 천명하기는 하였으나 대한민국이 사실상 조선인을 보호해 줄 조국이 없던 상황 하에서 발생한 그와 같은 피해에 대해서 경제적 지원을 해야 하는지 여부, 나아가 지원을 한다면 그 범위와 수준은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등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국가의 재정부담 능력이나 전체적인 사회보장 수준 등에 따라 결정하여야 할 광범위한 입법형성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즉, 국가의 재정여건이 허락하여 국가가 일제하 모든 강제동원자에게 의료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이것이 어렵다면 결국 입법자로서는 국가의 재정부담 능력 등을 고려하여 그 수혜자의 범위를 정할 권한이 있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무엇보다 이 사건 법률조항이 국가의 재정부담 능력 등을 고려하여 강제동원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이 일반적으로 더욱 크다고 볼 수 있는 ‘국외’ 강제동원자 집단을 우선적으로 처우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정의와 형평에 반한다거나 자의적인 차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일제가 침략적 제국주의 실현을 위한 태평양전쟁을 수행함에 있어서 최전방 전

선에 수많은 조선인들을 군인이나 위안부 등으로 차출하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물론 구체적 사안에 따라서 차이는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최전방 전선을 포함하여 국외로 강제동원되는 경우 가족과 유리되어 낯선 이국땅에서 겪을 정신적, 육체적 고통과 괴로움이 더욱 클 것이라는 점은 합리적인 추정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국가가 강제동원자에 대한 경제적 지원책을 마련함에 있어서 강제동원에 따른 개인적 고통을 사안별로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곤란한 점을 감안하여 일단 강제동원 지역이 국외인지 여부를 기준으로 하여 그 수급여부를 결정한 것이 입법재량을 벗어난 자의적인 판단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

한편 현실적인 문제로 국내 강제동원자는 그 수가 대규모로 추정되므로, 지원에 적지 않은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며, 오랜 시간이 경과되어 실태조사 자체에도 많은 시간과 인력이 소요될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사건 법률조항이 국가 재정부담 능력 등을 고려하여 태평양전쟁 전후 강제동원자에 대한 의료지원금의 수급자격을 ‘국외’ 강제동원자로 제한한 것이 입법재량의 범위를 넘는 자의적인 차별이라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조항이 헌법상 평등권을 침해하였다는 청구인의 주장은 이유 없다.

나. 기본권보호의무 위반 문제

(1) 국가가 국민의 생명․신체의 안전에 관한 기본권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하더라도 국가의 보호의무를 입법자 또는 그로부터 위임받은 집행자가 어떻게 실현하여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원칙적으로 권력분립과 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라 국민에 의하여 직접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고 자신의 결정에 대하여 정치적 책임

을 지는 입법자의 책임범위에 속하므로, 헌법재판소는 단지 제한적으로만 입법자 또는 그로부터 위임받은 집행자에 의한 보호의무의 이행을 심사할 수 있는 것이다(헌재 1997. 1. 16. 90헌마110 등, 판례집 9-1, 90, 121; 헌재 2008. 7. 31. 2006헌마711 , 판례집 20-2상, 345, 359; 헌재 2009. 2. 26. 2005헌마764 등, 판례집 21-1상, 156, 159 참조).

따라서 국가가 국민의 생명ㆍ신체의 안전에 대한 보호의무를 다하지 않았는지 여부를 헌법재판소가 심사할 때에는 국가가 이를 보호하기 위하여 적어도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취하였는가 하는 이른바 ‘과소보호 금지원칙’의 위반 여부를 기준으로 삼아,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인데도 국가가 아무런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았든지 아니면 취한 조치가 법익을 보호하기에 전적으로 부적합하거나 매우 불충분한 것임이 명백한 경우에 한하여 국가의 보호의무 위반을 확인하여야 하는 것이다(헌재 1997. 1. 16. 90헌마110 등, 판례집 9-1, 90, 122; 헌재 2008. 7. 31. 2006헌마711 , 판례집 20-2상, 345, 359 참조).

(2) 청구인은, 대한민국이 1919. 4. 13.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으므로(헌법 전문) 국가는 1938. 4. 1.부터 1945. 8. 15. 사이에 발생한 일제의 강제동원 사태에 대하여 책임이 있는데, 국가가 관련 입법을 하면서 ‘국내’ 강제동원자를 지원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하고 있다.

살피건대, 먼저 헌법 전문에 천명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의 계승 규정을 근거로 대한민국 헌법 제정 이전에 발생한 사실에 관하여 국가에 기본권보호의무

를 물을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설령 당시 강제동원으로 인한 생명권 내지 신체의 자유라는 기본권 침해에 대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법통의 계승을 천명한 국가에게 그와 관련된 책임이 있고 이를 현행 헌법상 기본권보호의 문제로 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와 같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금전적 지원을 해 주는 것만이 유일한 기본권 보호의 방법이라고 볼 헌법적 근거는 존재하지 아니한다. 국가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국내 강제동원자들을 비롯한 강제동원자들에 대한 진상 파악을 위하여 구 강제동원진상규명법을 제정하여 일정한 절차를 거쳐 신청자들을 강제동원 피해자로 지정하여 그들의 희생을 기리는 조치를 취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볼 때, 비록 태평양전쟁 관련 강제동원자들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충분하지 못한 점이 있다하더라도, 국내 강제동원자들을 위하여 국가가 아무런 보호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였다든지 아니면 국가가 취한 조치가 전적으로 부적합하거나 매우 불충분한 것임이 명백한 경우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조항이 국민에 대한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에 위배된다는 청구인의 주장은 이유 없다.

5. 결론

청구인의 이 사건 심판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아래 6.과 같은 재판관 김종대, 재판관 송두환, 재판관 박한철의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관여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6. 재판관 김종대, 재판관 송두환, 재판관 박한철의 반대의견

우리는 다수의견과 달리,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은 진정입법부작위에 관한 헌법소원으로서 입법자가 일제하 ‘국내’ 강제동원자에 대한 지원을 규정하는 법률을

제정할 헌법상 입법의무가 있음에도 상당한 기간 동안 입법을 하지 않아 입법재량의 한계를 넘었다고 판단하므로, 아래와 같이 반대의견을 밝힌다.

가. 이 사건 심판청구의 성격

구 국외강제동원자지원법은 제1조에서 1965년에 체결된 한일협정과 관련하여 국가가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희생자와 그 유족 등에게 인도적 차원에서 위로금 등을 지원함으로써 이들의 고통을 치유하고 국민화합에 기여함이 이 법률의 목적임을 선언하고 있다. 즉 이 법률은 태평양전쟁 관련 강제동원자 일반을 그 적용대상으로 하지 않고 있다. 이 법률은 입법 당시부터 그 적용대상을 ‘국외’로 강제동원된 자로 한정하고 ‘국내’ 강제동원자는 애초에 그 적용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것이다.

이 법률의 명칭 또한,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로서, ‘국내’ 강제동원자는 이 법률의 적용대상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태평양전쟁 전후 국내 강제동원자에 대한 지원에 관하여는 이 법률과 무관하게 아직까지 전혀 그 입법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므로, 이 사건 심판청구는 진정입법부작위를 다투는 헌법소원으로 봄이 상당하다.

다수의견과 같이 이를 부진정입법부작위로 보면 청구인의 청구를 받아들일 경우 이 사건 법률조항만 위헌이라 해야 하는데, 법률명과 제1조를 그대로 두고 이 사건 법률조항만 위헌이라고 하는 것이 법 체제상 가능한 것인지도 의문이다(이상, 헌재 2009. 6. 25. 2008헌마393 , 판례집 21-1하, 915, 923-924 참조).

나. 입법의무의 존재 여부

입법부작위를 이유로 한 헌법소원이 적법하려면 헌법이 요구하는 입법자의 입

법의무가 존재하여야 한다. 그 입법의무는 헌법에서 직접 도출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나, 그렇다고 해서 헌법에 입법의무를 직접 부여한 개별규정이 존재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헌법정신과 헌법규정을 종합적으로 해석하여 그러한 입법의무를 인정할 수 있으면 족하다고 할 것이다(헌재 2009. 6. 25. 2008헌마393 , 판례집 21-1하, 915, 924).

살피건대, 우리 헌법은 전문에서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의 계승을 천명하는 한편, 제10조에서 국가는 국민 개인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보장할 의무가 있음을 선언하고 있고, 특히 제30조는 국민이 타인의 범죄행위로 인하여 생명과 신체에 대한 피해를 받은 경우에는 국가로부터 구조를 받을 권리가 있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으로 인한 고통에 대한 치유 없는 임시정부 법통계승 천명은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며, 외세 침략 하에 착취 받은 자국민에 대한 보호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나라는 결코 영원무궁한 번영을 기약할 수 없다.

이러한 정신에 입각하여 헌법 전문, 제10조, 제30조를 종합적으로 해석해 보면, 국가는 태평양전쟁 전후 ‘국내’ 강제동원희생자에 대하여도 그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야 하는 헌법상 의무가 인정된다고 할 것이다.

다. 이 사건 입법부작위가 위헌인지 여부

입법자가 입법의무를 지고 있다고 하여서 그 불이행의 모든 경우가 바로 헌법을 위반한 경우라고는 단정할 수 없을 것이다. 입법자에게는 형성의 자유 또는 입법재량이 인정되므로 입법의 시기 역시 입법자가 자유로이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법자는 헌법에서 나오는 입법의무를 거부하거나 자의적으로 입법

을 무한정 지연시킬 수는 없는 것이므로, 입법자가 명시적으로 입법의무를 거부해 입법을 하지 않기로 결의하거나 입법했어야 할 상당한 기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입법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입법재량의 한계를 넘게 되고 이 같은 입법재량의 한계를 넘는 입법부작위는 위헌이 된다 할 것이다(헌재 1994. 12. 29. 89헌마2 , 판례집 6-2, 395, 413; 헌재 2009. 6. 25. 2008헌마393 , 판례집 21-1하, 915, 926 참조).

이 사건의 경우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이미 60여년이 지났다. 그 동안 우리나라는 경제대국이 되었고, 남의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남의 나라에 원조해 주는 나라로 발전했다. 그런데 아직도 입법자는 일제 강점기에 국내에서 강제동원된 자에 대한 지원에 관한 입법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이는 국가가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책무를 부당하게 지연시키는 것이며 국가의 품격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일이다(헌재 2009. 6. 25. 2008헌마393 , 판례집 21-1하, 915, 926 참조).

더구나 국외로 강제동원된 자에 대한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 시행하면서 국내 강제동원자에 대하여는 이에 상응하는 입법조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공평의 관점에서도 합리적인 이유를 찾아볼 수 없다.

무엇보다, 일제에 강제동원으로 인한 고통의 정도가 강제동원된 지역에 따라 본질적으로 달라질 수는 없다. 국외 강제동원자나 국내 강제동원자는 모두 일제에 의해 군인, 군무원, 노무자 등으로 강제동원되어 광복이 되기까지 견디기 힘든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은 것이며, 그 고통의 깊이가 강제동원된 장소의 차이에 따라 본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양 집단이 입은 고통의 차이를 일률적으로 가늠할 수는 없으며, 국외 강제동원자가 더 고통을 받았을 것이라는 것은 단순

한 추정에 불과하다. 강제동원된 지역이 아니라 강제동원되어 맡은 업무의 성격 또는 강제동원된 기간 등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인 추정이 될 수 있다.

국내 강제동원자에 관한 입법에 있어서 그 수가 대규모이고 오랜 시간이 경과되어 실태조사에 많은 시간과 인력이 소요된다는 현실적 어려움이 제기될 수도 있으나, 이러한 실태조사의 어려움은 기본적으로 강제동원을 주장하는 자에게 그 입증책임을 부과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헌재 2009. 6. 25. 2008헌마393 , 판례집 21-1하, 915, 926).

재정부담 문제와 관련하여서도, 강제동원자 대부분이 고령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수준과 재정규모에 비추어 볼 때 국내 강제동원자에 대한 지원이 국가예산에 큰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만약 큰 부담이 되는 것이라면, 가능한 예산 범위 내에서 지원액의 수준을 낮추어 전체 강제동원자에게 지급하거나, ‘국내’ 강제동원자 중에서도 피해가 중한 자에게는 일부라도 지원해 주는 안이 공평의 정신에 보다 부합하고, 일제 식민지배로 인한 개인과 민족의 고통을 치유하고 국민화합에 보다 기여하는 방안이 될 것이다.

국가가 일제하 강제동원자의 고통을 치유할 목적으로 그들을 지원하기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면서 ‘국내’ 강제동원자를 그 수혜 대상에서 전적으로 제외한다면 이는 함께 위로의 대상이 되어야 할 그들을 국가 스스로 외면하며 그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기는 부당한 입법 태도라 할 것이다.

라. 소결론

입법자에게 태평양전쟁 전후 ‘국내’ 강제동원희생자에 대한 지원을 규정하는 법

률을 제정할 헌법상 입법의무가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입법자가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상당한 기간이 지나도록 합리적 이유 없이 아무런 입법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것은 입법재량의 한계를 넘는 입법의무불이행으로서 헌법에 위반된다.

2011. 2. 24.

재판관

재판장 재판관 이강국

재판관 이공현

재판관 조대현

재판관 김종대

재판관 민형기

재판관 이동흡

재판관 목영준

재판관 송두환

재판관 박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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