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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22. 12. 15. 선고 2020다263567 판결
[보험금][미간행]
판시사항

[1]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에서 자살을 보험자의 면책사유로 규정하고 있더라도 피보험자가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의 결과를 발생케 한 직접적인 원인행위가 외래의 요인에 의한 것인 경우, 보험사고인 사망에 해당하는지 여부(적극) 및 이때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의 사망이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

[2] 감정인의 감정 결과의 증명력 /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살하였다고 볼 만한 의학적 견해가 증거로 제출되었고 정황들에 대한 증거가 이를 뒷받침하는 경우, 단순히 자살의 방법이 우발적이고 충동적인 방법이 아니었다는 사정만을 근거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를 부정할 수 있는지 여부(소극)

[3] 갑이 을 보험회사 등과 병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을 체결하였는데, 병이 군에 입대하여 소속 부대에 배치된 이후부터 소속 부대 선임병들로부터 지속적으로 모욕과 폭행, 따돌림을 당하다가 부대 내 화장실에서 스스로 목을 매어 사망한 사안에서, 병이 소속 부대원들의 가혹행위로 인하여 지속적이고 반복되는 우울증을 겪고 있었고 이에 따른 극심한 고통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살을 하였다고 인정할 여지가 있는데도, 이와 달리 본 원심판단에 심리미진 등의 잘못이 있다고 한 사례

원고,상고인

원고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링컨로펌 담당변호사 장인태)

피고,피상고인

에이비엘생명보험 주식회사 외 1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유한) 우일 외 3인)

원심판결

서울고법 2020. 8. 20. 선고 2019나2028384 판결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가.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에서 자살을 보험자의 면책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경우에도 피보험자가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의 결과를 발생하게 한 경우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므로, 피보험자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의 결과를 발생하게 한 직접적인 원인행위가 외래의 요인에 의한 것이라면, 그 사망은 피보험자의 고의에 의하지 않은 우발적인 사고로서 보험사고인 사망에 해당할 수 있다 ( 대법원 2015. 6. 23. 선고 2015다5378 판결 등 참조). 이때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의 사망이었는지 여부는 자살자의 나이와 성행, 자살자의 신체적·정신적 심리상황, 그 정신질환의 발병 시기, 그 진행경과와 정도 및 자살에 즈음한 시점에서의 구체적인 상태, 자살자를 에워싸고 있는 주위상황과 자살 무렵의 자살자의 행태, 자살행위의 시기 및 장소, 기타 자살의 동기, 그 경위와 방법 및 태양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 대법원 2011. 4. 28. 선고 2009다97772 판결 등 참조).

나. 감정인의 감정 결과는 감정 방법 등이 경험칙에 반하거나 합리성이 없는 등 현저한 잘못이 없는 한 이를 존중하여야 한다 ( 대법원 2014. 10. 15. 선고 2012다18762 판결 등 참조).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 자살하였다고 볼 만한 의학적 견해가 증거로 제출되었고 정황들에 대한 증거가 이를 뒷받침한다면 법원은 이러한 의학적 소견을 쉽게 부정하여서는 안 된다. 이와 다른 인과관계를 추단하려면 다른 의학적·전문적 자료를 근거로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하고 단순히 자살의 방법이 우발적이고 충동적인 방법이 아니었다는 사정만을 근거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를 부정하여서는 안 된다 ( 대법원 2021. 2. 4. 선고 2017다281367 판결 참조).

2.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다음 사실을 알 수 있다.

가. 망 소외인(이하 ‘망인’이라고 한다)은 2016. 12.경 군에 입대하였다. 망인은 신병 훈련을 마치고 소속 부대에 배치된 2017. 3. 2. 이후부터 소속 부대 선임병들로부터 지속적으로 모욕과 폭행, 따돌림을 당했다.

나. 망인은 2017. 8. 15. 13:15경부터 14:18경까지 사이에 소속 부대 내 화장실에서 전투화 끈을 이용하여 스스로 목을 매어 사망하였다.

다. 망인의 어머니인 원고는 2016. 8. 8. 망인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이 사건 각 보험계약을 체결하였다.

3.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이유로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다. 망인은 신체증상장애, 적응장애, 인격장애로 진단받았을 뿐 환청, 환시, 망상 등 의사결정능력에 의심을 가질 만한 증상이 없었고, 스스로 목을 매기 전까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기재한 진술서를 작성하였다. 또한 목을 매는 자살 방법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구체적 계획과 사망에 이르는 시간 동안 통제력이 필요한 것이어서 극도의 흥분상태나 정신적 공황상태에서 실행하기 어렵다.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보았을 때 망인이 자살 당시 심리적 우울상태를 넘어 자유로운 의사결정능력을 상실한 상태였다고 인정할 수 없다. 따라서 피고들은 원고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

4. 가. 이러한 원심의 판단은 그대로 수긍하기 어렵다.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에 비추어 보면, 망인이 자살 당시 극도의 흥분상태나 정신적 공황상태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더라도 소속 부대원들의 가혹행위로 인하여 지속적이고 반복되는 우울증을 겪고 있었고 이에 따른 극심한 고통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살을 하였다고 인정할 여지가 있다.

1) 망인이 소속 부대 선임병들을 비롯한 부대원들로부터 받은 가혹행위는 그 정도가 매우 중하였다. 소속 부대 선임병들은 망인에게 여러 차례 폭언을 하고 야구방망이를 사용하여 폭행하였다. 망인은 이러한 가혹행위를 소속 부대 간부에게 신고하였지만 간부가 망인의 신고 사실을 공개하면서 망인은 부대원들로부터 내부고발자로 인식되어 따돌림을 당하기도 하였다. 사망 전날 저녁 망인은 근무자교육 일정을 알지 못하여 근무자교육에 약 10분 늦게 참석하였는데 부대원들로부터 야유와 비난을 받았다.

2) 이러한 소속 부대원들의 가혹행위와 따돌림으로 망인은 우울증 증상을 보였다. 망인은 2017. 6. 9. 국군수도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서 불면, 불안 증세를 호소하였고 신체증상장애, 적응장애, 인격장애의 진단을 받았다. 당시 진료기록지에는 망인의 상태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숨을 좀 헐떡이면서 가슴이 빨리 뛴다고 하며 눈물을 보이는 모습’, ‘이대로 눈뜨기 싫다는 막연한 자살사고’ 등이 기재되어 있었다.

그후에도 망인은 2017. 7.에 1회, 2017. 8.에 2회의 진료를 받으면서 전신의 이상 증상을 호소하였으나 증상이 호전되지 않았고, 우울증의 원인인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를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도 어려웠으며, 자살에 이를 때까지 소속 부대 변경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3) 원심에서 한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장에 대한 진료기록감정촉탁 결과 및 사실조회 결과에서는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 망인의 우울, 불안상태, 자살사고 등이 자살 실행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이고, 초진 당시부터 지속되어 온 정신건강의학과적 증상은 자살 직전에는 더욱 심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망인은 사망 직전 극심한 우울 및 불안 증상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불가능한 상태였다는 취지의 의견을 제시하였다.

4) 한편 육군 보통전공사상[사망] 심사위원회는 망인의 사망 이후 군검찰 등의 수사, 조사 결과를 기초로 망인에 대하여 구 군인사법 시행령(2017. 6. 20. 대통령령 제28116호로 개정된 것) [별표 8] 순직자 분류기준표의 순직Ⅲ형(2-3-9)에 해당한다고 결정하였다. 순직Ⅲ형(2-3-9)은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과 관련한 구타·폭언·가혹행위 또는 업무과중 등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자해행위를 하여 사망한 사람’으로 규정되어 있다. 서울북부보훈지청은 위와 같은 육군 보통전공사상[사망] 심사위원회의 결정 등을 기초로 망인을 「보훈보상대상자 지원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항 제1호 의 ‘재해사망군경’ 적용대상으로 결정하고, 원고를 재해사망군경유족으로 결정하였다.

나. 사정이 이러하다면 원심으로서는 진료기록감정촉탁 결과 및 사실조회 결과 등을 바탕으로 망인이 우울증의 원인을 회피할 수 없는 상태에서 지속적이고 반복되는 우울증을 겪고 있었고 이로 인하여 극심한 고통에서 자살을 선택한 것인지 등을 심리하여 망인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였는지를 판단하였어야 했다. 그런데도 원심은 우울증과 직접 관련이 없는 환청, 환시, 망상 등의 증상이 없다는 사정 등을 근거로 들면서 자살 당시 망인에게 흥분상태나 공황상태 등 의사결정능력을 상실한 상태에 있었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었다는 이유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보험계약 약관의 면책 예외사유 해석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를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5. 그러므로 나머지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이흥구(재판장) 안철상(주심) 노정희 오석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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