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권이전등기][공1993.2.1.(937),454]
가. 종중의 성립요건 및 그 구성원이 될 수 있는 자
나. 종친회의 명칭이나 최근 제정된 종친회 회칙에서 특정지역 거주자나 특정범위 내의 자들만을 구성원으로 하고 있지만 공동선조의 분묘수호, 제사 등을 목적으로 하는 본래 의미의 종중으로 볼 것이지 그와 다른 권리능력 없는사단으로 볼 것이 아니라고 한 사례
다. 종원자격이 없는 자가 참가하여 대표자로 선정된 종중대표자선정결의의효력 유무(소극)
가. 종중은 공동선조의 분묘수호, 제사, 종원 상호간의 친목을 목적으로 하여 공동선조의 후손 중 성년 이상의 남자를 종원으로 하여 구성되는 종족의 자연적 집단으로서 혈족 아닌 자나 여자는 종중의 구성원이 될 수 없고, 타가에 출계한 자와 그 자손 역시 공동선조의 제사봉행이라는 종중의 주목적과 종래 관습상 양자제도의 취지에 비추어 볼 때 친가의 생부를 공동선조로 하는 종중의 구성원이 될 수 없으며, 또한 종중은 성립을 위하여 어떠한 조직행위를 필요로 함이 없이 관습상 당연히 성립하는 것으로서 공동선조의 후손 중 특정지역 거주자나 특정범위 내의 자들만으로 구성된 종중이란 있을 수 없고, 만일 특정지역 거주자나 특정범위 내의 자들만으로 분묘수호와 제사 및 친목도모를 위한 조직체를 구성하여 활동하고 있어 단체로서의 실체를 인정할 수 있을 경우라면 이는 본래의 의미의 종중으로는 볼 수 없으나 다만 그와 다른 하나의 권리능력 없는 사단으로 인정될 여지가 있을 뿐이다.
나. 종친회의 명칭이나 최근 제정된 종친회 회칙에서 특정지역 거주자나 특정범위 내의 자들만을 구성원으로 하고 있지만 공동선조의 분묘수호, 제사 등을 목적으로 하는 본래 의미의 종중으로 볼 것이지 그와 다른 권리능력 없는 사단으로 볼 것이 아니라고 한 사례.
다. 종중의 구성원이 될 수 없는 자에게 종원의 자격을 부여한 총회결의에 따라 제정된 회칙이나 그들이 참가한 가운데 종원자격이 없는 자를 대표자의 하나로 선임한 대표자선정결의는 종중의 본질에 반하여 부적법하고, 다른 종원들이 결의에 동의하였다 하더라도 결론이 달라질 수 없다.
가.나.다. 민법 제31조 , 민사소송법 제48조 다. 민법 제71조
김해김씨 감무공파 김취명자손 종친회 소송대리인 변호사 김충진
피고 소송대리인 변호사 김 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상고이유를 본다.
1.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거시증거에 의하여 원고 종친회는 김취명을 공동선조로 하는 그 후손 중에서 수대에 걸쳐 서산에 거주하여 이른바 서산파로 불려지는 주로 소외 1(김취명의 증손자)의 자손을 중심으로 하여 구성된 종친회로서 성문의 규약없이 관습에 따라 선조의 분묘수호, 제사봉행 등을 하여 오다가 1986.1.1. 개최된 정기총회에서 비로소 그 회칙(갑 제5호증)을 제정한 사실, 위 회칙에 의하면 원고 종친회는 그 명칭을 김해김씨 감무공파 김취명자손종친회라 하며 서산지방에 거주하는 김취명의 후손 108명을 그구성원으로 하고 그 대표자인 회장을 소외 2로 하여 그가 매년 1월초에 정기총회를, 기타 필요로 하는 경우에 임시 총회를 개최하고, 그 곳에 참석하여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는 남녀를 불문하고 위 구성원 중 분가 호주인 자만을 회원으로 정하여 그들로 한정하고 그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하도록 한 사실, 피고측이 위 소외 1의 후손이 아니라 하여 그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다투는 소외 3, 소외 4, 소외 5, 소외 6 및 소외 7 등은 당시 모두 그 자격이 인정되어 위 회칙제정에 참여하였고, 원심피고 3 및 나머지 원심피고들의 피상속인인 망 소외 8도 이에 참여하여 위 소외 3등의 회원자격을 인정한 사실 및 위 회칙제정 후 원고 종친회의 구성원 사이에 원고 종친회 소유의 부동산 명의를 원고종친회 앞으로 이전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분쟁이 발생하자 회장인 위 소외 2는 1990.1.23. 위 안건을 다루기 위한 종친회 총회소집 안내장을 그 당시 원고종친회의 구성원중 호주인 23인 전원에게 우편으로 발송, 소집통지를 하여 같은해 1.30. 13:00 서산시 소재 설악파크여관에서 위 소외 2를 포함한 5인이 위임장을 제출한 가운데 제7회 정기총회가 개최되어 그중 14명의 찬성으로 그 구성원 명의로 신탁되어 있는 원고 종친회 소유의 부동산에 관하여 명의신탁을 해지하고 이를 원고 종친회 앞으로 이전하기로 하는 결의를 하고 이에 관련된 소송 등을 수행함에 있어 그 대표로서 회장인 소외 2, 감사인 소외 9, 소외 3을 선임한 사실 등을 인정한 후, 이에 의하면 원고 종친회는 위 김취명의 후손중 서산지역에 거주하거나 이와 연고가 있는 일정한 범위 내의 후손들만을 그 구성원으로 하는 모임이므로 이는 종족의 자연적 집단으로서 관습상 당연히 성립되고 조직행위로 구성원을 제한 또는 확장할 수 없는 고유한 의미의 종중과는 다르고, 따라서 원고 종친회가 그 회칙으로 피고들 주장과 같이 소외 1 아닌 소외 10(소외 1의 형)의 후손인 소외 3, 소외 4, 소외 5, 소외 6과 남계혈족이 아닌 위 소외 7 등에 대하여 그 구성원자격 및 분가호주로서 회원자격을 인정하였다 하여 그것이 원고 종친회의 본질에 반한다고 할 수 없고 따라서 위 소외 2가 그들을 포함하여 그 회원 모두에게 소집통지하여 개최한 1990.1.30.자 정기총회에서 소정의 절차를 거쳐 대표자로 선임된 위 소외 2, 소외 9, 소외 3은 원고 종친회의 적법한 대표자라고 판시하여 동인들이 적법한 대표자가 아니라는 피고측의 본안전 항변을 배척하였다.
2. 종중은 공동선조의 분묘수호, 제사, 종원 상호간의 친목을 목적으로 하여 공동선조의 후손중 성년 이상의 남자를 종원으로 하여 구성되는 종족의 자연적 집단으로서 혈족 아닌 자나 여자는 종중의 구성원이 될 수 없고, 타가에 출계한 자와 그 자손 역시 공동선조의 제사봉행이라는 종중의 주목적과 종래관습상 양자제도의 취지에 비추어 볼 때 친가의 생부를 공동선조로 하는 종중의 구성원이 될 수 없으며, 또한 종중은 그 성립을 위하여 어떠한 조직행위를 필요로 함이 없이 관습상 당연히 성립하는 것으로서 공동선조의 후손 중 특정지역 거주자나 특정범위 내의 자들만으로 구성된 종중이란 있을 수 없고, 만일 특정지역 거주자나 특정범위 내의 자들만으로 분묘수호와 제사 및 친목도모를 위한 조직체를 구성하여 활동하고 있어 그 단체로서의 실체를 인정할 수 있을 경우라면 이는 본래의 의미의 종중으로는 볼 수 없으나 다만 그와 다른 하나의 권리능력 없는 사단으로 인정될 여지가 있을 뿐인바 ( 당원 1983.2.22. 선고 81다584 판결 , 1991.1.29. 선고 90다카22537 판결 , 1992.4.14. 선고 91다28566 판결 각 참조), 원심이 원고 종친회를 본래의 의미의 종중과 다른 권리능력 없는 사단으로 본 것은 결국 그 실체를 당초부터 김취명의 후손 중서산이라는 특정지역에 거주하거나 이와 연고가 있는 일정한 범위내의 후손들만을 구성원으로 하여 조직되고 활동하여 온 단체를 파악한 결과이고, 따라서 출계자나 여자가 종중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는 종중에 관한 판례의 법리도 여기에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록을 자세히 검토하여 보면 과연 원고 종친회를 원심판시와 같이 본래의 의미의 종중과는 다른 구성상의 실체를 갖고 종래부터(적어도 위 1986.1.1. 개최된 총회 이전에) 활동하여 온 단체로 볼 것인지는 다음과 같이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즉, 원심이 채택하였거나 배척하지 아니한 여러 증거들을 기록과 대조하여 살펴보면, 원고 종친회가 중시조로 삼고 있는 김취명은 김해김씨 감무공(김익경)의 후손으로 원래 전남 영암 출신이며 조선조 순조 때 현재의 충남 서산군 등지에서 영장(영장)을 지낸 무장인데, 슬하에 홍직, 홍택,홍보, 홍락등 4형제를 두었고, 홍직은 진성, 진기 형제를 두었다가 홍택이 무후하자 진기가 홍택에게로 출계하여 소외 10, 소외 1 형제를 두었으며, 위 진성 역시 무후하자 소외 10이 진성에게로 출계하여 큰집의 대를 이었으며, 홍택-진기의 대를 이은 소외 1은 인태, 정태, 노태, 신태 등 4형제를 두었으나 홍직-진성의 대를 이은 소외 10이 또다시 무후하자 그중 노태가 소외 10에게로 출계하였고, 인태, 정태 등은 나중에 절손되어 결국 신태의 자손만이 홍택의 가계를 잇게 된 결과가 된 사실, 한편 원고 종친회는 본래 명칭과 규약이 없이 일반 관습에 따라 소외 1대를 전후하여 마련된 이 사건 계쟁토지를 비롯한 재산을 소유, 관리하면서 김취명 이하 선조들의 분묘수호와 제사봉행 및 족보관리 등의 활동을 하여 왔는데 그 활동의 주체는 홍택-소외 1의 가계를 잇는 신태의 후손들이었을 뿐 홍직의 가계를 이은 노태의 후손들은(비록 혈통상으로는 소외 1의 후손이지만) 적어도 1980년대 이후 이 사건 토지와 관련된 종친회 내부의 분쟁이 있기까지는 종친회 활동에 거의 관여하여 오지 않았고, 김취명의 아들 중 홍보, 홍락의 후손은 당초부터 광주, 함안 등지에 살면서 충남 서산일대에 거주하는 홍직 또는 홍택의 후손들과는 전혀 교류가 없던 사실, 원고종친회의 재산인 이 사건 계쟁토지의 명의수탁자들 역시 모두 신태의 후손들이며 종산이나 원고 종친회의 사당에도 김취명-홍택-진기-소외 1등의 묘나 위패만 있을 뿐 홍직과그의 가계를 잇는 후손들의 것은 안치되어 있지 아니하며, 또한 위 1986.1.1.개최된 총회에서 제정된 원고 종친회의 회칙(갑 제5호증)을 보더라도 종친회장을 대종손인 소외 2가 맡는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소외 2는 혈통상으로나 가계상으로나 김취명의 종손격인 노태의 후손이 아니라 홍택의 가계만으로 한정할 때 비로소 종손에 해당하는 신태의 후손인 사실 등을 각 인정할 수 있는바, 이러한 점들을 종합하여 보면 종래부터 단체로서 존속하며 활동하여 왔고 또한 이 사건 계쟁토지에 대한 명의신탁자로서의 지위를 주장할 수 있는 원고 종친회의 실체는 위 1986.1.1. 비로소 제정된 명칭이나 회칙상의 구성원의 자격에 관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결국 홍택(또는 진기나 소외 1)을 공동선조로 하는 후손들로 구성되어 선조의 분묘수호, 제사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단체로서 본래의 의미의 종중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서 본 판례의 법리에 따라 출계자인 노태의 후손으로서 원고 종친회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고 보여지는 소외 3, 소외 4, 소외 5, 소외 6 등과 남자가 아님은 물론 혈족관계도 없는 소외 7 등에게 종원의 자격을 부여한 1986.1.1.자 총회결의에 따라 제정된 회칙이나 그들이 참가한 가운데 종원자격이 없는 소외 3을 대표자의 하나로 선임한 1990.1.30.자 대표자선정결의는 종중의 본질에 반하는 부적법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고, 피고측을 비롯한 다른 종원들이 그 결의에 동의하였다 하더라도 그 결론이 달라질 수는 없는 것이다 ( 당원 1983.2.22. 선고 81다584 판결 참조).
3. 결국 원심판결에는 채증법칙을 위반하여 사실을 그릇 인정하였거나 종중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할 것이므로 이를 지적하는 논지는 이유 있다.
이에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관여 법관의 의견이 일치되어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