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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10. 12. 9. 선고 2010도10895 판결

[살인·산지관리법위반·약사법위반][미간행]

판시사항

[1] 형사재판에서 유죄를 인정하기 위한 증거의 증명력 정도

[2] 살인죄 등 법정형이 무거운 범죄의 형사재판에서 간접증거의 증명력 및 간접사실의 증명 정도

[3] 피고인이 자신의 처(처) 갑이 마시는 음용수에 청산가리를 녹여놓아 갑을 사망하게 하고, 을과 병의 집 앞에도 마치 등산객이나 지인이 놓고 간 피로회복제인 것처럼 위장하여 청산가리가 든 캡슐을 올려놓아 이들을 사망하게 하였다는 각 살인의 공소사실에 관하여, 청산가리의 입수 경위, 청산가리가 독극물로서 효능을 유지하고 있었는지 여부 및 을, 병의 사망과 관련한 간접증거와 간접사실만으로는 위 각 살인 범행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한 사례

피 고 인

피고인

상 고 인

피고인

변 호 인

변호사 김영호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형사재판에서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그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 대법원 2006. 3. 9. 선고 2005도8675 판결 등 참조). 한편 살인죄 등과 같이 법정형이 무거운 범죄의 경우에도 직접증거 없이 간접증거만에 의하여 유죄를 인정할 수 있으나, 그러한 유죄 인정에 있어서는 공소사실에 대한 관련성이 깊은 간접증거들에 의하여 신중한 판단이 요구된다 ( 대법원 2008. 3. 13. 선고 2007도10754 판결 참조). 특히 간접증거에 의한 간접사실의 인정에 있어서도 그 증명은 합리적인 의심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에 이르러야 하고, 그 하나하나의 간접사실은 그 사이에 모순, 저촉이 없어야 함은 물론 논리와 경험칙, 과학법칙에 의하여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2. 원심은, 피고인은 2009. 4. 29.경 보령시 청소면 (이하 생략)에 있는 피고인의 집에서, 처인 피해자 공소외 1이 평소 마시는 보리차, 둥굴레차 등의 음용수에 치사량 0.1 내지 0.2g 이상의 청산가리를 녹여 놓아 위 피해자가 같은 날 20:00경 위 음용수를 마시고 사망하게 하여 위 피해자를 살해하고, 같은 날 피고인의 집에서 평소 피고인이 복용하던 캡슐 약의 내용물을 뺀 빈 캡슐 2개에 치사량 0.1 내지 0.2g을 넘는 약 0.27g의 위 청산가리를 각각 집어넣고, 준비한 신문지에 평소 사용하던 사인펜으로 “나물캐러 와다가 들려더니 않계셔서 돌아가며 피로회복제를 두어개 놓고 가오 다음에 들리계소”라고 기재한 다음, 피해자 공소외 2, 3의 집 앞에 위 신문지를 놓고 그 위에 청산가리가 든 캡슐 2개 및 인근에서 딴 당귀 잎을 올려놓아 마치 지나가던 등산객이나 지인이 위 피해자들을 만나러 왔다가 그들이 없자 놓고 가는 것처럼 위장하여, 다음날인 2009. 4. 30. 05:00경 피해자 공소외 2, 3이 위 캡슐을 1개씩 나누어 먹고 즉석에서 청산가리 중독으로 사망하게 하여 위 피해자들을 살해하였다는 이 사건 각 살인의 공소사실에 관하여, 그 채용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바와 같은 범행의 동기, 피해자 공소외 1의 사망 당시의 피고인의 행적 및 이와 관련한 피고인의 행동, 피해자 공소외 2, 3의 사망과 관련한 필적감정결과 등 간접증거들, 피고인에게 청산가리를 교부하였다는 공소외 4, 5의 각 진술 등을 종합하면, 위 각 공소사실은 유죄로 인정하기에 충분하다고 하여 제1심판결의 유죄판단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3. 원심과 제1심이 그 채용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한 그 판시와 같은 사정, 특히 피고인과 피해자들의 관계, 이 사건 각 범행을 전후한 무렵의 피고인의 행적, 피고인이 범인임을 뒷받침하는 여러 증인들의 증언 및 과학적인 증거방법 등을 종합하여 보면, 위 각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원심의 조치가 무리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사건과 같이 중대한 범죄에 있어서는 유죄의 인정에 더욱더 신중을 기하여야 하고, 그 과정에 한 치의 의혹도 남겨서는 안 된다는 견지에서 볼 때 원심의 판단에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의문스럽거나 미흡한 부분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가. 먼저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에 사용하였다는 청산가리의 입수 경위에 관하여 본다.

(1) 원심은, 이 사건 각 범행에 사용된 청산가리를 피고인에게 건네주었다는 공소외 4, 5의 다음과 같은 진술, 즉 공소외 4와 공소외 5는 2008. 12.경부터 피고인으로부터 꿩 등을 사냥하는 데 필요하니 청산가리를 구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으나 구하지 못하던 중, 공소외 4가 우연히 자신이 운영하는 ‘ ○○기계’에서 이를 발견하여 2009. 1. 6. 10:30경 평택시 청북면 소재 △△△ 휴게소에서 공소외 5에게 건네주었고, 공소외 5는 같은 날 17:30경 서해안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피고인에게 이를 건네주었다는 진술은 신빙성이 있고, 피고인이 이를 이용하여 위 각 범행을 저질렀다고 인정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하였다.

(2) 그러나 공소외 4, 5의 위와 같은 진술에는 다음과 같은 의문도 있다.

우선, 공소외 4는 청산가리를 발견한 경위에 관하여 2009. 8. 24. 경찰 제1회 진술에서는 “ ○○기계의 진열장에서 뚜껑이 없는 종이 포장지 종류에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여 에어컴프레서로 먼지를 털어내었고, 당시 상태는 먼지가 많이 쌓여 있었고 색깔도 흰색을 띠지 않았다.”(증거기록 1,129면, 1,132면)라고 진술하다가 곧이어 2009. 8. 29. 경찰 제2회 진술부터는 “ ○○기계 진열장에서 부품을 넣어두는 뚜껑이 있는 여러 개의 철제 분유통 중 하나에서 발견하였고, 색깔은 겉 표면 일부분만 약간 변해 있었을 뿐 다른 부분은 흰색으로 변함이 없었다.”(증거기록 1,168면, 1,171면)라고 하여 종전과 확연히 다른 진술을 하고 있고, 이와 같이 진술을 번복한 이유에 관하여는 위 청산가리를 공소외 5에게 전해줄 당시 종이컵에 넣은 다음 비닐봉지에 싸서 주었는데 그것과 혼동하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위 주장과 달리 공소외 5는 청산가리를 비닐봉지에 그대로 싼 상태로 받았다고 진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증거기록 1,138면, 1,151면, 1,213면 등), 번복 전후의 진술내용과 번복 시점 등에 비추어 그것이 단순히 기억의 부정확성이나 착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청산가리의 효능과 관련하여 처음 진술의 문제점이 드러나자 이를 시정하기 위한 것으로 의심할 여지가 없지 않다.

그리고 공소외 4의 변경된 진술에 관하여 보더라도, 그 진술에 따르면 공소외 4는 1993년 봄 무렵 안산으로 ○○기계를 이전한 이후에는 청산가리를 사용한 적이 없다는 것이어서 위 청산가리는 적어도 16년가량(제1심 법정에서는 20~30년 전에 사용하다가 남은 것이라고 진술하였다) ○○기계 진열장 위 부품을 담아두는 철제 분유통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가 2009. 1. 우연히 발견되었다는 것이 되는데, 위 ○○기계의 내부사진 영상(증거기록 659~660면)에 의하더라도 분유통에 부품 등을 보관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더욱이 공소외 4는 위 분유통이 없어졌다고 하며 이를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위 사진영상에 나타난 ○○기계의 규모나 진열장의 상태 등에 비추어 볼 때 16년 이상 한 번도 열어보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었다는 것은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또한 공소외 5는 피고인에게 청산가리를 전해준 당일의 행적에 관하여, 서해안고속도로 청북톨게이트로 진입하여 ▽▽휴게소에서 피고인에게 청산가리를 전해준 후 해미톨게이트로 나와서 볼일을 보았고, 같은 날 18:30경 해미톨게이트로 진입하였다가 18:39경 홍성톨게이트로 진출하고, 다시 21:07경 홍성톨게이트로 진입하여 21:49경 서평택톨게이트로 진출하는 등 3회에 걸쳐 고속도로를 이용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나(증거기록 679, 686면의 각 수사보고), 그날 공소외 5가 운전한 차량의 하이패스 통행료 결제기록에는 나중 2회의 결제내역만 나타날 뿐 정작 피고인에게 청산가리를 전해주기 위하여 ▽▽휴게소에 갔다는 때의 결제내역은 나타나지 않고 있어서(위 수사보고 참조), 유독 그 부분만 객관적인 증거에 의하여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다.

(3) 물론 공소외 4, 5에게 무고한 피고인을 범인으로 만들 만한 원한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점 등 원심과 제1심판결이 들고 있는 여러 사정에 비추어 그들이 허위진술을 하였을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아니하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의문점에 관하여는 이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할 것이다.

나. 나아가 공소외 4, 5의 각 진술과 같이 그들이 피고인에게 청산가리를 교부하였다고 볼 경우에도, 그 청산가리가 독극물로서의 효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고 단정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 본다.

흔히 ‘청산가리’라고 불리는 사이안화칼륨(또는 시안화칼륨)은 조해성(조해성)이 강하여 보존할 때 마개를 꼭 막아 밀폐하지 않으면 습기를 흡수하여 녹기 시작하고, 또 가수분해에 의하여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맹독성의 사이안화수소를 방출하고 탄산칼륨이 된다는 것이 확립된 과학법칙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 있어서 만약 공소외 4의 최초 진술과 같이 피고인에게 건네주었다는 청산가리가 뚜껑이 없는 종이 포장지에 담겨 흰색을 띠지 않을 정도로 먼지가 쌓인 채 짧게는 16년, 길게는 20~30년간 방치되어 있었던 것이라면 그것이 더 이상 독극물로 남아 있지 아니할 것임은 과학법칙상 명백하다. 나아가 설령 위 청산가리가 공소외 4의 번복된 진술과 같이 뚜껑이 있는 철제 분유통(다만, 그 뚜껑의 재질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느 정도의 밀폐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에 담겨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위와 같이 긴 시간 동안 독성을 유지한 채 남아 있었다고 단정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따라서 원심으로서는 공소외 4의 변경된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는 경우에도 마땅히 청산가리가 보관되어 있었다는 철제 분유통의 밀폐 정도 및 그 경우의 독성의 유지 여부 등에 관하여 더 심리하여 보았어야 할 것이다(한편 원심이 판단을 유지한 제1심판결은 위 청산가리가 16년 이상 방치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시하고 있는바, 만약 그 취지가 공소외 4가 실제로는 위 청산가리를 최근에 입수하였음에도 형사처벌 등이 두려워 오래전에 사용하다 남은 것처럼 허위진술을 하였을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그 가능성에 관하여도 심리하여 보았어야 할 것이다).

다. 이어서 피해자 공소외 2, 3의 사망과 관련한 간접증거에 관하여 본다.

(1) 먼저 기록에 의하면, 피해자 공소외 2, 3의 집 부엌 아궁이 앞에 당귀 잎을 싼 ‘ □□□□□□뉴스’ 신문지가 구겨져 있었는데, 그 신문지에는 “나물 캐러 와다가 들려더니 않계셔서 돌아가며 피로회복제 두어개 놓고가오 다음에 들리계소”라고 적혀 있었던 사실(증거기록 79면, 144~146면), 위 신문지에 대한 필적 및 필기구를 감정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위 필적이 피고인의 필적과 동일하고, 그 잉크 또한 피고인의 집에서 발견된 사인펜과 동일한 성분이라는 감정결과를 제출하고 있는 사실(증거기록 448면, 1,040면)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만약 위 신문지에 피로회복제로 위장한 청산가리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면 이는 피고인을 범인으로 추단케 하는 결정적인 간접증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나, 기록상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는 찾아볼 수 없다.

(2) 다만 피고인의 집에서 빈 캡슐이 발견된 점에 비추어 만약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위 피해자들이 먹은 청산가리가 캡슐에 들어 있는 것이었다면 이 또한 피고인을 범인으로 추단할 수 있는 강력한 간접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원심은, 피해자들에 대한 사체부검 결과 위장 점막에서 국소적인 미란성 울혈이 발견된 피해자 공소외 1과 달리 피해자 공소외 2, 3은 위장 점막에 전반적인 출혈 및 미란이 발견되었음을 이유로 그것이 청산가리가 담긴 캡슐이 터지면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 제1심의 판단을 지지하고 있으나, 기록을 살펴보아도 위와 같이 추정할 수 있는 과학적인 근거를 찾아볼 수 없으므로, 위와 같은 판단은 근거가 박약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3) 한편 피해자 공소외 2, 3은 사망 전날 20:00경 꽃박람회 관광을 마치고 귀가하면서 건강음료 2개를 가지고 집으로 갔는데, 위 건강음료는 사망 이후 피해자들의 사체 옆에서 빈병으로 발견되었고 그 중 하나의 병 입구에서 피해자 공소외 3의 유전자형이 발견되었으므로(증거기록 70면의 사진영상, 394면의 수사보고, 546면의 감정결과 등), 위 피해자들은 일응 사망 전에 위 건강음료를 한 병씩 마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수사기관에서 위 건강음료에 대하여 독극물 검사까지 하였는지 여부는 분명하지 아니하나, 만약 검사를 하였음에도 독극물이 검출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면, 위 건강음료에 청산가리가 들어 있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으므로, 이에 관하여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라. 결론적으로 앞에서 본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제1심과 원심이 들고 있는 간접증거와 간접사실만으로는 이 사건 각 살인 범행이 피고인의 소행이라고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원심으로서는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은 여러 사항에 관하여도 면밀하게 심리한 다음, 그와 같은 사정을 모두 참작하더라도 위 각 범행을 피고인의 소행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 때에 한하여 유죄의 증명이 있는 것으로 보았어야 할 것임에도, 이에 이르지 아니한 채 그 판시와 같은 이유만으로 위 각 범행을 유죄로 인정하고 말았으니, 원심판결에는 경험칙에 어긋나는 사실을 인정하였거나 유죄의 인정을 위한 증거의 증명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한 위법이 있고, 이는 판결에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하다. 한편, 위 각 살인의 공소사실은 나머지 산지관리법 위반 및 약사법 위반의 공소사실과 형법 제37조 전단의 경합범 관계에 있으므로, 원심판결은 전부 파기를 면할 수 없다.

4. 그러므로 나머지 상고이유에 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신영철(재판장) 박시환 안대희(주심) 차한성

심급 사건
-대전지방법원홍성지원 2010.2.9.선고 2009고합67
-대전고등법원 2010.8.6.선고 2010노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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