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집48(1)형,263;공2000.4.15.(104),916]
[1] 목격자의 진술 등 직접증거가 전혀 없는 사건에 있어서 유죄 인정의 방법
[2] 살인죄로 기소된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에 대하여 피해자의 사망이 피고인의 고의에 의한 살해행위가 아닌 우발적인 사고로 인한 것일 가능성이 합리적인 의심 없이 배제되지 않았음을 이유로 파기한 사례
[1] 목격자의 진술 등 직접증거가 전혀 없는 사건에 있어서는 적법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간접사실들에 논리법칙과 경험칙을 적용하여 공소사실이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로 추단될 수 있을 경우에만 이를 유죄로 인정할 수 있다.
[2] 살인죄로 기소된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에 대하여 피해자의 사망이 피고인의 고의에 의한 살해행위가 아닌 우발적인 사고로 인한 것일 가능성이 합리적인 의심 없이 배제되지 않았음을 이유로 파기한 사례.
[1] 형사소송법 제308조 [2] 형법 제250조 , 형사소송법 제308조
피고인
피고인
변호사 이창구
원심판결을 파기하여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피고인과 변호인의 상고이유를 함께 판단한다.
1.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는, 피고인은 평소에 남편인 피해자와 자주 부부싸움을 하여 왔는데, 1999. 3. 12. 01:20경 주거지에서 경영하던 갈비집의 내실에서 피해자와 또다시 부부싸움을 하다가 격분하여 피해자를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출입구 쪽 도마 위에 있던 칼을 집어들고 피해자의 왼쪽 가슴을 1회 찔러서 피해자로 하여금 그 자리에서 심장자창으로 사망하게 하여서 살해하였다는 것이다.
2. 피고인의 주장
피고인은 검찰 이래 원심에 이르기까지 줄곧 범행을 극구 부인하면서, 피해자는 평소 피고인과 부부싸움을 하다가 칼을 드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사건 당시에도 피고인이 피해자와의 말다툼 끝에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방문 앞의 도마 위에 있는 칼을 집어 든 다음 피고인과 서서 마주 보는 자세로 오른손에 칼을 들고 왼손으로 피고인의 오른쪽 어깨 부분을 붙잡은 상태에서 피고인의 몸을 잡아끌며 그대로 뒷걸음을 치다가 뒤에 있던 책상에 부딪쳤고, 이에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놓으라고 하면서 피고인의 오른쪽 어깨 부분을 잡고 있는 피해자의 왼손을 뿌리치면서 피해자의 손에서 칼을 빼앗았는데, 그 때 피해자가 빼앗기지 않으려고 힘을 주거나 저항이 없이 칼을 피고인에게 내주기에 피고인이 칼을 받아서 처음에 칼이 놓여 있던 도마 위에 이를 놓아두고 되돌아오는 순간 피해자가 가슴을 움켜쥐고 스르르 넘어진 사실이 있을 뿐이고, 피고인이 칼로 피해자를 찌른 사실이 없으며, 피고인이 칼을 피해자로 빼앗을 당시에도 서로 실랑이를 함이 없이 피해자가 칼을 주었으므로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찔린 것도 아니며, 피고인으로서는 피해자가 피고인의 왼쪽 어깨를 붙잡고 뒷걸음을 치다가 책상에 부딪친 순간부터 피고인이 피고인의 오른쪽 어깨 부분을 잡고 있는 피해자의 왼손을 뿌리칠 때까지의 사이에 피해자가 칼에 찔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이 들기는 하나 그 순간을 보지 못하여 어떻게 피해자가 칼에 찔린 것인지 알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3. 원심의 판단
원심은 우선 기록상 나타난 증거들에 의하면, 공소사실 기재 일시에 부부사이인 피고인과 피해자 두 사람만 있는 집에서 제3자의 행위에 의하지 않고 피해자가 칼에 찔려 그 자리에서 심장자창으로 사망한 사실, 피해자가 칼을 들고 피고인을 위협할 당시 서로 마주보고 있었고, 피해자가 칼을 잡은 모양은 칼을 쥐었을 때 칼날부위가 새끼손가락 쪽을 향하고, 손잡이 뒷 부분이 엄지손가락 쪽으로 향하는 자세였던 사실, 사망한 피해자의 좌측 가슴에는 칼날방향이 외측으로 나 있는 길이 2.5㎝ 정도, 깊이 15㎝ 정도의 자창이 1개 있는데, 외부에서 볼 때 거의 수평으로 되어 있을 뿐 아니라 좌우로 기울어지지 않고 곧바로 뒤를 향하고 있으며, 곧바로 찔린 뒤 내부에서 흔들리지 않은 채 그대로 다시 칼이 빠져 나온 형태로 되어 있고, 피해자의 신체 부위에는 다른 손상이 없으며 주저흔이나 방어흔 등도 없는 사실 등을 인정한 다음, 피고인도 피해자가 자살을 한 것은 아니라고 진술하고 있고, 피해자의 몸에 주저흔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살할 만한 사유가 없었으며, 사망 당시 오리털 조끼, 남방, 티셔츠를 입고 있는 상태에서 칼에 찔려서 위 옷들에도 심장에 있는 자창과 같은 위치, 같은 모양의 칼자국이 나 있으므로, 피해자 스스로가 칼로 자신을 찔렀다고 보이지는 않는다는 취지로 피해자의 자살 가능성을 배제한 후, 따라서 이 사건의 쟁점은 피해자가 칼을 붙잡고 있는 상태에서 피고인이 그 칼을 빼앗으려고 실랑이를 하였거나, 피해자가 다른 장애물에 부딪치는 등의 사유로 잘못하여 칼에 찔렸는지 아니면 피고인이 살해의 고의로 피해자를 칼로 찔렀는지 여부라고 전제하고 나서, 피해자가 칼을 잡고 어깨 높이로 칼을 들고 있었다면 칼날은 지면을 향하게 되므로, 뒷걸음을 치다가 책상에 부딪치는 등 외부의 다른 물체와 충돌되거나 잘못하여 넘어지거나 피고인이 자신의 오른쪽 어깨 부분을 잡고 있는 피해자의 왼손을 뿌리치면서 피해자로부터 칼을 빼앗는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자창이 생겼다면 자창의 칼날 방향은 신체 내측을 향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자창의 모양이 수평으로 되기도 어렵고, 따라서 피해자가 칼을 붙잡고 있는 상태에서 피고인이 피고인의 오른쪽 어깨를 잡고 있는 피해자의 왼쪽 손을 뿌리치면서 그 칼을 빼앗으려고 실랑이를 하거나 혹은 피해자가 다른 장애물에 부딪치거나 넘어지는 등의 사유로 잘못하여 칼에 찔린 것이 아니며, 피해자의 자창 부위, 자창의 모양과 칼날방향, 피해자 신체의 상황 등 제반 사정을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피해자를 칼로 질렀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고, 피고인이 칼로 피해자의 가슴을 찌른 이상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판단함으로써, 결론에 있어서 피고인에 대한 위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제1심판결의 결론을 유지하였다.
4. 대법원의 판단
가. 우선 피고인이 피해자를 고의로 칼로 찔러서 살해하였다는 공소사실 부분에 부합하는 직접증거로서는, 사법경찰리 작성의 피고인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 중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일부 자백하는 취지의 진술기재 부분과 사법경찰관 작성의 검증조서 중 피고인이 범행을 순순히 재연하였다는 취지의 기재, 그리고 "사고 직후 피해자를 후송한 병원에서 피고인이 공소외 최분이(일명 최봉은)에게 '제가 죽였어요 형님'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최정철, 최분이, 조헌하의 검찰에서의 각 진술 및 최정철, 최분이의 제1심 공판정에서의 각 진술과, "피고인이 경찰에서 처음 조사를 받을 때에도 경찰관의 추궁에 대하여 머리를 떨구면서 '제가 죽였어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최정철의 검찰에서의 진술 등이 있으나, 경찰에서의 피고인의 위 진술 부분 및 피고인이 수사기관에서 범행을 자백하였다는 취지의 최정철의 위 진술, 그리고 위 검증조서의 위 기재는 피고인이 법정에서 그 내용을 부인하고 있는 이상 모두 증거능력이 없고, 피고인이 이 사건 직후 병원에서 최분이에게 한 위 진술은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하에서 한 것이어서 비록 피고인이 그와 같은 진술을 한 사실을 부인하고 있더라도 일응 증거능력이 있다고 할 수 있으나, 그와 같이 "제가 죽였어요"라는 피고인의 진술은 고의로 피해자를 살해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법적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기보다는 피고인 자신의 실수나 도의적인 잘못으로 피해자를 해쳤다는 죄책감에서 나온 회한적 의미의 독백에 불과할 뿐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우리 나라의 언어관행에 비추어 본 경험칙에 합당하다고 할 것이어서 위 진술을 곧바로 피고인의 자백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고 보여지므로, 결국 이 사건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직접증거는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위와 같이 목격자의 진술 등 직접증거가 전혀 없는 사건에 있어서는 적법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간접사실들에 논리법칙과 경험칙을 적용하여 공소사실이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로 추단될 수 있을 경우에만 이를 유죄로 인정할 수 있다 는 것이 형사소송의 대원칙이므로, 이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자살 가능성이나 더 나아가 피해자가 우발적인 사고로 인하여 칼에 찔려서 공소사실과 같은 상해를 입고 사망하였을 가능성까지도 합리적인 의심이 없이 배제됨으로써, 최종적으로 피해자의 사망이 피고인의 칼로 찌른 행위로 인한 것이라고 밖에는 도저히 볼 수 없다고 추단되어야만 비로소 피고인에 대한 이 사건 살인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돌이켜 이 사건을 살펴보면, 피해자의 자살 가능성을 배제한 원심의 판단 부분은 충분히 수긍할 수 있고, 나아가 적법한 증거조사를 거쳐서 채택한 증거들에 의하여, 피해자가 칼을 들고 피고인을 위협할 당시 서로 마주보고 있었고, 피해자가 칼을 잡은 모양은 칼을 쥐었을 때 칼날부위가 새끼손가락 쪽을 향하고, 손잡이 뒷 부분이 엄지손가락 쪽으로 향하는 자세였던 사실과, 사망한 피해자의 좌측 가슴에는 칼날방향이 외측으로 나 있는 길이 2.5㎝ 정도, 깊이 15㎝ 정도의 자창이 1개 있는데, 외부에서 볼 때 거의 수평으로 되어 있을 뿐 아니라 좌우로 기울어지지 않고 곧바로 뒤를 향하고 있으며, 곧바로 찔린 뒤 내부에서 흔들리지 않은 채 그대로 다시 칼이 빠져 나온 형태로 되어 있고, 피해자의 신체 부위에는 다른 손상이 없으며 주저흔이나 방어흔 등도 없는 사실 등을 인정한 조치도 기록상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원심이 위와 같은 사실들에 근거하여, 피해자가 칼을 잡고 어깨 높이로 칼을 들고 있었다면 칼날은 지면을 향하게 되므로, 뒷걸음을 치다가 책상에 부딪치는 등 외부의 다른 물체와 충돌되거나 잘못하여 넘어지거나 피고인이 자신의 오른쪽 어깨 부분을 잡고 있는 피해자의 왼손을 뿌리치면서 피해자로부터 칼을 빼앗는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자창이 생겼다면 자창의 칼날 방향은 신체 내측을 향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자창의 모양이 수평으로 되기도 어렵다는 이유로 위와 같은 우발적인 사고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그에 따라 곧바로 피고인이 피해자를 고의로 살해한 사실을 인정한 조치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원심이 지지증거로 인용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장 작성의 사실조회회보서에는 그와 같은 판단을 지지할 만한 아무런 기재도 없는 반면, 오히려 함께 지지증거로 인용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이윤성 작성의 사실조회회보서는, "피해자의 치명적인 자창은 칼이 갈비뼈나 물렁뼈를 다치지 않고 순전히 근육만을 자르고 들어감으로써 특별히 인체조직의 저항이 없었을 것으로 보여지므로 칼을 빼는 행위도 특별한 힘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여져서 당시 피해자가 칼을 손에 쥐고 있었다면 자창 직후 스스로 칼을 뺐을 수도 있으며, 타살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으나, 이 사건과 같이 피해자가 피고인과 서로 실랑이를 하던 중 칼에 찔리는 상황이 현실에서 드물지 않고, 피고인이 피해자와 마주서서 피해자를 칼로 찔렀다면 자창의 방향이 아래로 향하여야 할 것인데도 이 사건에서 자창의 방향이 거의 수평이라는 점과 피해자가 정상적인 건강상태여서 비록 짧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찔린 뒤라도 행동이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는데도 자신보다 약한 피고인으로부터 공격을 받았으면서도 그 신체에 아무런 방어손상이 없다는 점 등에서 오히려 일반적인 타살과는 다르므로, 결론적으로 이 사건은 피해자와 피고인이 서로 실랑이를 하던 도중에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고로 인한 것일 가능성도 있다."는 취지로 되어 있을 뿐이고, 그 밖에 우발적인 사고로 인한 가능성을 배제할 만한 자료는 찾아볼 수 없으므로, 이 사건에서 피해자의 사망이 피고인의 고의에 의한 살해행위가 아닌 우발적인 사고로 인한 것일 가능성도 엄연히 존재한다고 할 수 있고, 그와 같은 가능성이 합리적인 의심 없이 배제되지 않는 이상 피고인이 피해자를 칼로 찔러서 살해하였다는 사실 또한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피고인이 피해자를 고의로 칼로 찔러서 살해하였다는 이 사건 공소사실에 대하여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지지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원심이 단지 피해자가 자살을 하였을 가능성이나 우발적인 사고로 인하여 사망하였을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위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조치는 결국 증거가치의 판단을 잘못한 나머지 채증법칙에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넘어서 증거 없이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판결의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을 저지른 것이라고 할 것이므로, 이를 지적하는 상고논지는 이유가 있다.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