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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_flag_2서울중앙지방법원 2012.11.20. 선고 2012가합63613 판결

손해배상(기)

사건

2012가합63613 손해배상(기)

원고

1. A

2. B

3. C.

4. D

5. E

6. F

7. G

8. H

피고

대한민국

변론종결

2012. 10. 30.

판결선고

2012. 11. 20.

주문

1. 피고는 원고 A, B, C, D, E, F에게 각 1,666,666원, 원고 G에게 15,000,000원, 원고 H에게 10,000,000원 및 위 각 금원에 대하여 2012. 10. 30.부터 2012. 11. 20.까지는 연 5%의,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각 지급하라.

2. 원고들의 각 나머지 청구를 기각한다.

3. 소송비용 중 4/5는 원고들이, 나머지는 피고가 각 부담한다.

4. 제1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청구취지

피고는 원고 A, B, C, D, E, F에게 각 8,333,000원, 원고 G, H에게 각 50,000,000원 및 위 각 금원에 대하여 1982. 1. 1.부터 이 사건 소장부본 송달일까지는 연 5%의,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각 지급하라.

이유

1. 인정사실

가. 당사자들의 지위

1) 원고 G는 주식회사 I에서 근무하면서 노조의 조합원으로, 소외 망 J은 주식회사 K에서 근무하면서 K노조의 지부장 등으로, 원고 H는 주식회사 L에서 근무하면서 M노조의 조합원 및 지부장 등으로 활동하였다.

2) 망 J은 1992. 3. 11. 사망하였고, 망 J의 상속인으로는 형제자매인 원고 A, B, C, D, E, F이 있다.

나. 피고의 노조활동 방해 등

1) 신군부는 1980. 5. 17. 비상계엄령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1980. 5. 31. 행정, 사법 업무를 조정, 통제하는 기능을 갖는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한 후 각 부분별로 이른바 사회정화사업을 추진하였는데 그 일환으로 노동조합에 대해 정화조치를 하였다.

2) N 등 노조 간부 6명은 1980. 12. 8. 합동수사본부 수사관들에 의해 보안사 서빙 고분실로 강제연행되어 20여 일 동안 감금된 채 구타와 성희롱 등을 당하였고, 1981. 5. 20. 노조기관지인 'O' 발행으로 남부경찰서로 연행된 후 노조결성 및 농성을 한 사실에 대하여 국가보위에관한특별조치법 위반 등으로 구속기소되었다. 위와 같이 노조가 피고로부터 탄압을 받던 중 원고 G는 1981. 12, 12. I노조 대의원선거에서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는데 주식회사 I은 1981. 12. 19. 원고 G를 포함하여 대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대의원 중 16명을 해고하였고, 남부경찰서는 원고 G 등 해고자들에 대하여 다른 조합원들과 접촉하지 못하도록 강제 귀향조치를 하였다.

3) 망 J은 1981년경 K노조의 위원장으로 당선되어 활동하였는데 노동부 익산지청은 망 J이 도산계 근로자라는 이유로 활동을 감시하였고, 주식회사 K는 노동조합을 와해할 목적으로 조합원들을 비방하고 회사 직원들로 하여금 조합원들을 폭행하고 노조위 원장이던 망 J 등을 해고하라는 성토대회를 열도록 부추기는 등 노노갈등을 통하여 K노조를 와해하고 1982. 6. 1. 망 J을 해고하였다.

4) 원고 H는 M노조의 부분회장, 분회장으로서 M가 결성한 어용노조를 민주화시키고 M의 고의적인 임금체불 등 탄압에 맞서기 위하여 작업거부, 퇴근거부 등의 단체행동을 주도하였는데, 피고로부터 노동계 정화조치 대상자로 지목되어 합동수사본부의 지명수배를 받게 되었다. 이에 원고 H는 합동수사본부의 지명수배를 피하기 위하여 12일간 조합사무실을 비웠는데 주식회사 L는 이를 이유로 1980. 12. 27. 원고 H를 해고하였다.다. 블랙리스트를 이용한 취업방해 중앙정보부, 노동부, 경찰 등의 국가기관은 노동조합의 활동을 통제하기 위하여 1970년대부터 1980년대 말까지 개별 사업장의 사용자들과 함께 노동조합 소속 해고노동자들의 명단을 취합하고, 취합된 해고 노동자 명단을 바탕으로 '업체, 성명, 본적, 주소, 주민번호, 활동사항, 근속기간' 등이 기재된,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여 각급 공단 및 노동부 지방사무소 등에 배포·관리함으로써 원고 G, H, 망 J(이하 편의상 '원고들'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등 해고근로자들의 재취업을 방해하였다.

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결정N, P, 원고 H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에 따라 설치된 '진실 ·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정리위원회'라 한다)에 노조, K노조, M노조 조합원들에 대한 국가기관의 강제연행 및 구금 등 인권침해 사건에 관한 진실을 규명해 달라는 신청을 하였고,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직권조사를 의결하고 조사를 개시하였다. 과거사정리위원회는 노조, K노조, M노조사건을 Q 노조사건, R 노조사건, S 노조사 건 등 7개의 다른 유사 사건과 병합하여 'R노조 등에 대한 노동기본권 등 인권침해사 건'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조사하였고, 각종 기록 검토 및 사건관련자와 국가기관 직원 등에 대한 면담조사 등을 실시한 끝에 2010. 6. 30. 다음과 같은 진실규명 결정(이하 '이 사건 결정'이라 한다)을 하였다. 즉,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는 'R노조 등에 대한 노동기본권 등 인권침해사건은 피고가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노동조합활동을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조합원들의 해고를 지시하여 노동조합을 와해시킨 사건으로, 이른바 블랙리스트의 형태로 해고 노동자의 명단을 관리하고 배포하여 그들의 생존권을 위협하였는바, 피고의 이러한 행위는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서 신청인들을 포함한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직업선택의 자유,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중대한 인권침해에 해당함'을 확인하고, 피고에 대하여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신청인을 비롯한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한다는 것이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1 내지 6, 8, 10호증(가지번호 있는 것은 각 가지번호 포함)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손해배상책임의 발생

가. 청구원인에 관한 판단

우리 헌법제10조에서 국가의 기본권 보장의무를, 제15조에서 직업선택의 자유, 제32조에서 근로의 권리 및 제33조에서 근로3권 등을 규정하여, 직업의 자유 및 근로에 관한 권리를 헌법상의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인정사실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피고가 국가의 경제성장 및 수출증대를 꾀한다는 명목으로 조직적·체계적으로 노조활동을 탄압하고 종국적으로는 노조를 와해시켰으며 블랙리스트를 관리 · 유통시켜 원고 G, H, 망 J의 정상적인 취업을 방해하였는바, 이러한 일련의 행위를 살펴보면, 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지니는 국가가 오히려 가해자가 되어 원고 G, H, 망 J에게 위헌적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피고는 원고 G, H, 망 J에게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 따라 위와 같은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 G, H, 망 J이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

나. 항변에 관한 판단

1) 피고는 이 사건 소가 원고들이 주장하는 최종 불법행위일인 1982년경부터 5년 이상이 경과하여 제기되었으므로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제소 전에 이미 시효로 소멸하였다고 항변한다.

2) 살피건대,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금전의 급부를 목적으로 하는 국가에 대한 권리로서 구 예산회계법(1991. 11. 30. 법률 제4408호로 개정되기 전의 법률 제2826호, 제4017호, 제4102호) 제96조에 따라 5년간 행사하지 아니할 때에는 소멸시효가 완성된다 할 것인바, 앞서 인정한 사실에 의하면 피고의 불법행위가 늦어도 1982년경에 완료된 것으로 보이고, 원고들의 이 사건 소는 그로부터 5년이 경과된 후인 2012. 7. 25. 제기되었음이 기록상 명백하다.

3) 그러나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대법원 2002. 10. 25. 선고 2002다32332 판결, 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4다33469 판결, 대법원 2011. 1. 27. 선고 2010다1234 판결 등 참조).

4) 이 사건에서 보건대, 위 인정사실 및 앞서 든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 즉, ① 원고 G, H, 망 J이 국가기관의 개입으로 주식회사 I, 주식회사 L, 주식회사 K에서 각 해고되었더라도 구체적으로 어떠한 국가기관이 어떠한 방식으로 개입한 것인지는 알기 어려웠다고 보이는 점, ② 블랙리스트는 그 작성 주체를 알기 어렵게 하여 비밀리에 작성되고 관리 · 유통되었으며, 피고가 블랙리스트의 작성 사실 자체를 은폐하여 왔기 때문에 피고가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였다는 점에 관하여 원고들이 막연한 의혹을 가질 수는 있었더라도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이 사건 결정이 있기 전까지는 그 의혹을 넘어 블랙리스트에 관한 피고의 구체적인 위법행위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였던 점, ③ 따라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 이전에는 원고들이 피고의 해고 개입 및 블랙리스트 작성·배포 사실을 입증할 만한 증거를 수집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곤란하였고, 피고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④ 피고가 조직적이고 은밀한 방식으로 노사관계에 개입하여 원고들의 노동조합 활동을 방해하고, 원고들이 해고되도록 하였으며, 나아가 원고들의 명단이 포함된 블랙리스트를 비밀리에 작성 · 배포함으로써 원고들은 직업을 선택하고 그 직업에 종사할 수 있는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당하여 생계에 큰 어려움을 겪는 동시에 오랜 기간 사회적 편견과 차별대우를 겪으며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아 온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적어도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이 사건 결정이 있었던 2010. 6. 30.까지는 원고들이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할 것이다.

또한 원고들이 오랜 기간 받아 온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금전적으로나마 위자해야 할 필요성이 크고, 피고의 불법행위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 국가가 오히려 공권력을 불법으로 개입시켜 국민인 원고들의 노동기본권과 직업선택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한 행위로서 그 불법성이 중대하므로, 소멸시효에 기한 피고의 채무이행거절 항변을 인정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고 불공평하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채권자 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채무자의 채무이행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바, 진실을 은폐한 피고가 이제 와서 뒤늦게 원고들이 국가기관 개입의 전모를 어림잡아 미리 소를 제기하지 못하는 것을 탓하는 취지로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할 것이므로, 결국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은 이유 없다.

3. 손해배상책임의 범위

가. 위자료의 액수

앞서 본 바와 같은 이 사건 불법행위의 내용 및 정도, 원고들이 겪었을 정신적 고통, 경제적 궁핍 기타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사정들을 참작하면, 원고 G의 위자료를 15,000,000원, 원고 H, 망 J의 위자료를 각 10,000,000원으로 정함이 상당하다. 나. 지연손해금의 기산점

원고들은 1982. 1. 1.부터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구하므로 살피건대, 불법행위가 없었더라면 피해자가 그 손해를 입은 법익을 계속해서 온전히 향유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무에 대하여는 원칙적으로 별도의 이행 최고가 없더라도 공평의 관념에 비추어 그 채무성립과 동시에 지연손해금이 발생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위자료를 산정함에 있어서는 사실심 변론종결 당시까지 발생한 일체의 사정이 그 참작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위자료 산정의 기준되는 국민소득수준이나 통화가치 등도 변론종결시의 것을 반영해야만 하는바, 불법행위가 행하여진 시기와 가까운 무렵에 통화가치 등의 별다른 변동이 없는 상태에서 위자료 액수가 결정된 경우에는 위와 같이 그 채무가 성립한 불법행위시로부터 지연손해금이 발생한다고 보더라도 특별히 문제될 것은 없으나, 불법행위시와 변론종결시 사이에 장기간의 세월이 경과되어 위자료를 산정함에 있어 반드시 참작해야 할 변론종결시의 통화가치 등에 불법행위시와 비교하여 상당한 변동이 생긴 때에도 무조건 불법행위시로부터 지연손해금이 발생한다고 보는 경우에는 현저한 과잉배상의 문제가 제기된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과 같이 불법행위시와 변론종결시 사이에 장기간의 세월이 경과되어, 위자료를 산정함에 있어 반드시 참작해야 할 변론종결시의 통화가치 등에 불법행위시와 비교하여 상당한 변동이 생긴 때에는, 예외적으로라도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 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은 그 위자료 산정의 기준시인 변론종결 당일로부터 발생한다고 보아야만 할 것이다(대법원 2011. 1. 13. 선고 2009다103950 판결 등 참조).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불법행위일인 1982년경으로부터 이 사건 변론종결일인 2012. 10. 30.까지 약 30년 이상의 오랜 세월이 경과하여 그 사이에 우리나라의 물가와 국민소득수준 등이 몇 배나 상승함으로 말미암아 변론종결시의 통화가치 등에 불법행위시와 비교하여 상당한 변동이 생겼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의 원고들에 대한 지연손해금은 이 사건 변론종결일인 2012. 10, 30.부터 발생한다고 할 것이다.

다. 소결론

따라서 피고는 망 J의 상속인들인 원고 A, B, C, D, E, F에게 각 1,666,666원(= 10,000,000원 X 상속지분 1/6, 원 미만은 버림), 원고 G에게 15,000,000원, 원고 H에게 10,000,000원 및 위 각 금원에 대하여 변론종결일인 2012. 10. 30.부터 피고가 이 사건 이행의무의 존재여부나 범위에 관하여 항쟁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인정되는 이 판결선고일인 2012. 11. 20.까지는 민법이 정한 연 5%의,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정한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지연손해금을 각 지급할 의무가 있다.

4. 결론

그렇다면 원고들의 이 사건 청구는 각 위 인정범위 내에서 이유 있으므로 인용하고, 각 나머지 청구는 이유 없으므로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재판장판사이건배

판사백소영

판사이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