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급여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미간행]
[1] 근로자가 업무 수행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에 따른 우울증으로 자살한 경우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는지 여부의 판단 방법
[2] 자살한 근로자의 우울증이 평균적인 근로자로서 극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중한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고 나아가 그 우울증으로 심신상실 내지 정신착란 상태 또는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정신장애 상태에 빠져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추단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업무와 사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한 사례
[1] 대법원 1993. 12. 14. 선고 93누9392 판결 (공1994상, 377) 대법원 1999. 6. 8. 선고 99두3331 판결 (공1999하, 1423)
원고 (소송대리인 변호사 류재철)
근로복지공단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구 산업재해보상보험법(2007. 4. 11. 법률 제8373호로 전문 개정되기 전의 것) 제4조 제1호 에서 말하는 ‘업무상의 재해’라 함은 업무수행 중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근로자의 부상·질병·신체장애 또는 사망을 뜻하는 것이므로 업무와 재해발생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그 인과관계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증명하여야 하는바, 그 인과관계 유무는 반드시 의학적,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의 유무로써 판단되어야 하므로, 근로자가 업무로 인하여 질병이 발생하거나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가 질병의 주된 발생원인에 겹쳐서 질병이 유발 또는 악화되고, 그러한 질병으로 인하여 심신상실 내지 정신착란의 상태 또는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정신장애 상태에 빠져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추단할 수 있는 때에는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지만 ( 대법원 1993. 12. 14. 선고 93누13797 판결 , 대법원 1999. 6. 8. 선고 99두3331 판결 등 참조), 자살은 본질적으로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것이므로 근로자가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말미암아 우울증이 발생하였고 그 우울증이 자살의 동기 내지 원인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정만으로 곧 업무와 자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함부로 추단해서는 안 되며, 자살자의 나이와 성행 및 직위,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자살자에게 가한 긴장도 내지 중압감의 정도와 지속시간, 자살자의 신체적·정신적 상황과 자살자를 둘러싼 주위상황, 우울증의 발병과 자살행위의 시기 기타 자살에 이르게 된 경위, 기존 정신질환의 유무 및 가족력 등에 비추어 그 자살이 사회평균인의 입장에서 보아 도저히 감수하거나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업무상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우울증에 기인한 것이 아닌 한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
이러한 법리에 비추어 원심판결의 이유를 살펴보면, 원고의 남편인 망 소외인(1961년생. 이하 ‘망인’이라고 한다)이 한국전력공사에서 근무하던 중 2004. 3. 23.경 근무지 인근에서 농약을 마시고 자살한 이 사건에서 원심이 “망인은 업무상 발생된 스트레스로 인하여 극심한 우울증의 상태에 있었고, 나아가 이로 인하여 정상적인 선택능력이나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자살충동을 이기지 못한 채 자살에 이르게 되었다고 추단함이 상당하므로 망인의 사망은 업무와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할 것이어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고, 망인의 자살에 망인의 내성적이거나 소극적인 성격이 기여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업무상 스트레스에 의하여 생겨난 우울증이 자살의 본질적 원인이라고 보이는 이상 이와 달리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은 그대로 수긍하기 어렵다.
원심이 인용한 제1심판결 이유에 따르면, 망인은 1981. 7. 한국전력공사에 입사하여 여주변전소 등에서 송·변전 업무를 담당하던 중 2003. 4. 1. 동서울전력소 소속 이천순회점검팀 팀장으로 발령받아 근무한 사실, 이천순회점검팀에서는 망인을 포함한 5명의 직원이 이천, 여주, 감곡 변전소의 정비업무를 담당하다가 2003. 12. 율현 변전소가 신설되자 이를 함께 관리하였으며 2004. 2.에는 직원이 1명 줄어든 사실, 동서울전력소에는 이천순회점검팀 외에 성현순회점검팀과 잠실순회점검팀이 있는데, 성현순회점검팀은 5개의 변전소를, 잠실순회점검팀은 4개의 변전소를 관리하고 있는 사실, 망인은 팀장으로서 09:00부터 18:00까지 주간근무를 하였고 토요일은 격주로 휴무하되 근무일에는 09:00부터 13:00까지 근무하였으나, 근무시간 이외에도 직원들과 순번으로 자택대기근무를 하였으며 대기시간이 아니더라도 사고 대비를 위하여 주로 관내에 머무른 사실, 망인은 팀장으로서 업무경험이 부족한 상태에서 팀장을 맡아 부담이 많았고 전력사고 발생에 대한 걱정이나 다른 팀과의 비교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 사실, 망인은 2003. 10.과 2004. 4. 있었던 5직급 과장승진에서 누락되어 6직급 대리로 계속 팀장을 맡았으며, 한국전력공사 내에서 6직급 대리로 팀장을 맡고 있는 사람은 15명에 이르는 사실, 5직급 승진은 근속연수와 인사고과에 의하여 이루어지는데 망인과 입사동기이거나 입사선배이면서 과장으로 승진을 못 하여 망인처럼 6직급 대리직에 있는 직원은 없고 이로 인하여 망인이 스트레스를 받은 사실, 2003. 7. 11. 남서울전력관리처장의 이천순회점검팀 방문을 앞두고 설비현황 등에 관한 브리핑을 준비하던 망인이 변전소를 순시한다며 나가버리는 바람에 브리핑이 생략되는 일이 발생하였고, 이 때문에 망인은 동서울전력소의 상급자로부터 질책을 받은 후 상당기간 우울한 상태에 있었던 사실, 또 망인은 팀원들의 비협조로 업무에 있어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는바, 예컨대 망인이 변전소 내 제초작업을 하자고 하여도 팀원들이 자신의 업무가 아니라며 거부하여 망인 혼자서 제초작업을 하기도 한 사실, 망인은 팀장으로 발령받은 이후 점차 회사 내의 동호회활동을 하지 않는 등 동료와 어울리지 아니하였고, 식사량이 줄어들고 불면증을 호소하였으며, 2004. 초 금연을 하였다가 2004. 2.경부터 다시 피우기도 하였고, 자살하기 얼마 전에 가족들에게 회사 다니는 것이 힘든다며 회사를 그만둘 뜻을 표시하기도 하였고 사직서를 작성하기도 한 사실, 2004. 3. 22. 망인이 귀가하지 아니하고 다음날에도 출근을 하지 않아 가족들이 찾아 나선 결과, 2004. 3. 23. 09:00경 망인의 사무실에서 1km가량 떨어진 이천시 갈산동 복하2교 부근 인삼밭 고랑에서 소주와 농약을 마시고 쓰러져 있는 채 발견되었으며, 인근 이천의료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이미 사망한 상태였던 사실, 망인의 책상에서 “동료 여러분께. 모든 분께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못난 저를 용서하세요(부디). 능력이 없고 무능하여 세상 살기가 힘들어서 먼저 갑니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모든 가족이 눈앞에 어른거리지만 이 길을 택할 수밖에 없는 나를 용서하고 부디 열심히 살아주길 바라오. 면목이 없구료.”라는 내용의 유서 2장이 발견된 사실, 평소 망인은 내성적이며 남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고 화가 나더라도 혼자 속으로 삭이는 성격이었으며 매사에 꼼꼼하고 정리정돈된 것을 좋아한 사실, 망인은 정신과적 치료를 받은 적이 없으나, 주변 사람들의 진술 등을 종합해 볼 때 팀장 발령 후 망인의 상태는 우울증 진단기준의 하나인 DSM-IV(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편람 제4판)상의 주요 우울증 삽화기준을 만족시켰을 가능성이 크고, 한편 전체 우울증 환자의 약 2/3가 자살을 고려하며 10~15%가 자살을 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는 사실 등이 인정된다.
그러나 위와 같은 사실관계를 살펴보아도, 망인이 업무와 관련하여 어느 정도의 정신적 부담과 스트레스를 받았고 또 그로 인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더 나아가 망인이 담당하고 있던 업무의 내용이나 업무시간이 망인과 비슷한 경력을 가지고 동종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의 통상적인 업무 내용 및 시간에 비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과도하여 극심한 우울증을 초래할 정도였다고 보기는 어렵고, 부하직원 등 회사동료나 상급자와의 관계 등 주위 상황도 망인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열악하였다고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망인이 남서울전력관리처장에 대한 브리핑을 준비하다가 자리를 비워 버리는 바람에 상급자로부터 질책을 받았다는 것과 같은 사정은 직장생활에서 통상 있을 수 있는 일로서 우울증의 원인이 된 업무상 스트레스로 거론하기는 부적합하다고 하겠다.
더욱이 기록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망인은 한국전력공사에 입사한 후 군복무를 위해 2년 6개월 정도 휴직한 사실이 있다고 하므로 입사동기들보다 과장승진이 늦었다고 단정하기 어려우며, 한국전력공사에서 과장승진 누락을 이유로 망인에게 명예퇴사 등을 지시·종용한 사실은 없는 점, 망인은 월 2~3회 열리는 다른 순회점검팀장들과의 회의에도 종종 빠지고 상급부서에 정례보고를 하는 자리에도 참석을 하지 않는 등 동료와의 업무협조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는데 이는 과중한 업무부담 때문이라기보다는 망인 자신의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 때문인 것으로 보이는 점, 팀원들이 거부하였다는 변전소 내 제초작업은 본래 외부 용역회사에 도급하여 시행하는 것으로서 팀원들의 담당업무가 아니므로 이 점을 이유로 팀원들을 탓하기는 어려우며, 그 밖에 달리 팀원들의 비협조로 망인의 업무처리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는 점, 제1심법원의 서울대학교병원장에 대한 감정촉탁결과는 “오직 제공받은 자료에 기초하여 망인의 우울증 여부에 대한 판단을 시도할 때, 그 자료의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망인의 팀장 발령 후 증세가 우울증일 가능성이 크다고 의심되고 그 우울증이 자살과 무관하다고 판정하기는 어렵다.”라는 것에 지나지 않고, 오히려 원심법원의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안암병원장에 대한 감정촉탁결과를 보면 “망인이 우울증에 걸렸을 가능성이 추정되나, 망인이 받았다는 업무상 스트레스가 반드시 우울증을 유발시키는 것은 아니고 우울증의 발병에 개인의 소인과 생물학적 취약성도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므로 망인이 정신병적 증상 등으로 인해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또는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추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고, 망인이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업무상 재해로 요양 중에 자살을 시도한 것도 아니어서 질병과 자살을 직접적으로 연관짓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라고 기재되어 있는 점, 한편 망인은 자살 당일 또는 그 전날 무렵에 친구의 분신자살 소식을 들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소식이 자살을 감행하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하였을 가능성이 있는 점 등의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망인의 우울증이 평균적인 근로자로서 감수·극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과중한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었고 나아가 그 우울증으로 인하여 심신상실 내지 정신착란 상태 또는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정신장애 상태에 빠져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추단하기는 어렵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와 반대로 판단하여 망인의 자살에 의한 사망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 원심판결에는 업무상 재해에 있어서의 상당인과관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논지는 이유 있다.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