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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00. 7. 28. 선고 99다6203 판결

[손해배상등][공2000.10.1.(115),1925]

판시사항

[1] 의견 또는 논평을 표명하는 표현행위가 민법상 불법행위가 되는 명예훼손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

[2] 원고 등이 경제위기의 책임자로 지목되면서 검찰수사 등이 거론되고 새로 출범할 정부가 경제위기의 원인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강한 의지를 피력하고 있는 상황에서 원고 등이 항공권을 구입하거나 해외도피를 의논하고 있는 장면을 담고 있는 풍자만화를 기고하여 이를 일간지에 게재한 경우, 원고 등이 경제위기와 관련된 책임 추궁 등을 면하기 어려운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희화적으로 묘사하거나 원고 등이 해외로 도피할 가능성이 없지 않음을 암시함과 아울러 이들에 대한 출국금지조치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우회하여 표현한 것일 뿐 원고 등이 해외로 도피할 의사를 갖고 있다거나 해외 도피를 계획 또는 모의하고 있다는 구체적 사실을 적시하였다고는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명예훼손의 성립을 부정한 원심판결을 수긍한 사례

판결요지

[1] 민법상 불법행위가 되는 명예훼손이란 사람의 품성, 덕행, 명성, 신용 등 인격적 가치에 대하여 사회로부터 받는 객관적인 평가를 침해하는 행위를 말하고, 그와 같은 객관적인 평가를 침해하는 것인 이상, 의견 또는 논평을 표명하는 표현행위에 의하여도 성립할 수 있는바, 다만 단순한 의견 개진만으로는 상대방의 사회적 평가가 저해된다고 할 수 없으므로, 의견 또는 논평의 표명이 사실의 적시를 전제로 하지 않은 순수한 의견 또는 논평일 경우에는 명예훼손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은 성립되지 아니하나, 한편 여기에서 말하는 사실의 적시란 반드시 사실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경우에 한정할 것은 아니고,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표현에 의하더라도 그 표현의 전 취지에 비추어 그와 같은 사실의 존재를 암시하고, 또 이로써 특정인의 사회적 가치 내지 평가가 침해될 가능성이 있을 정도의 구체성이 있으면 족하다.

[2] 원고 등이 경제위기의 책임자로 지목되면서 검찰수사 등이 거론되고 새로 출범할 정부가 경제위기의 원인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강한 의지를 피력하고 있는 상황에서 원고 등이 항공권을 구입하거나 해외도피를 의논하고 있는 장면을 담고 있는 풍자만화를 기고하여 이를 일간지에 게재한 경우, 원고 등이 경제위기와 관련된 책임 추궁 등을 면하기 어려운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희화적으로 묘사하거나 원고 등이 해외로 도피할 가능성이 없지 않음을 암시함과 아울러 이들에 대한 출국금지조치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우회하여 표현한 것일 뿐 원고 등이 해외로 도피할 의사를 갖고 있다거나 해외 도피를 계획 또는 모의하고 있다는 구체적 사실을 적시하였다고는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명예훼손의 성립을 부정한 원심판결을 수긍한 사례.

원고,상고인

원고 (소송대리인 변호사 김동환)

피고,피상고인

주식회사 경향신문사 외 1인 (소송대리인 변호사 김종훈)

주문

상고를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원고의 부담으로 한다.

이유

상고이유(기간 경과 후에 제출된 추가상고이유서의 기재는 상고이유를 보충하는 범위 안에서)를 본다.

1. 민법상 불법행위가 되는 명예훼손이란 사람의 품성, 덕행, 명성, 신용 등 인격적 가치에 대하여 사회로부터 받는 객관적인 평가를 침해하는 행위를 말하고, 그와 같은 객관적인 평가를 침해하는 것인 이상, 의견 또는 논평을 표명하는 표현행위에 의하여도 성립할 수 있다 (대법원 1988. 6. 14. 선고 87다카1450 판결, 1997. 10. 28. 선고 96다38032 판결, 1999. 2. 9. 선고 98다31356 판결 등 참조). 다만 단순한 의견 개진만으로는 상대방의 사회적 평가가 저해된다고 할 수 없으므로, 의견 또는 논평의 표명이 사실의 적시를 전제로 하지 않은 순수한 의견 또는 논평일 경우에는 명예훼손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은 성립되지 아니하나, 한편 여기에서 말하는 사실의 적시란 반드시 사실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경우에 한정할 것은 아니고,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표현에 의하더라도 그 표현의 전 취지에 비추어 그와 같은 사실의 존재를 암시하고, 또 이로써 특정인의 사회적 가치 내지 평가가 침해될 가능성이 있을 정도의 구체성이 있으면 족하다 (대법원 1991. 5. 14. 선고 91도420 판결 참조).

2. 원심은 제1심판결 이유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은 요지로 인정·판단하였다.

가. 사실관계

피고 주식회사 경향신문사는 피고 2가 기고한 만평으로서, ① 1997. 12. 20.자 경향신문 제1면의 '경향만평란'(지면 크기 약 10㎝×10.5㎝)에, 출입문에 '미국여행사'라고 표시된 여행사 사무실 안에 '전 경제수석', '○○○', '전 한은총재'로 표시된 세 사람이 여행용 가방을 들고 서서 그 중 '전 경제수석'으로 표시된 사람이 오른 손가락 3개를 들어 보이며 항공권을 주문하고 있고, '△△△', '□□□', '재'라고 표시된 세 사람이 여행사 문 밖에서 "우리도 가자"라고 말하는 장면과 여행사 사무실 벽에 설치된 텔레비전 화면에 한 사람이 오른 손을 들고 "경제 망친 ×들 사그리…"라고 말하고 있으며, 여행사 직원들이 항공권을 주문하는 세 사람을 쳐다보거나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웃는 장면 및 컴퓨터 단말기 모니터에 'LA 3장'이라는 자막이 나와 있는 장면을 담고 있는 제1심판결 별지 제1만평을, ② 1998. 1. 21.자 같은 신문 제1면 같은 난에, 공항의 출국장 한 쪽 구석에 '윤', '◇×◇', '☆☆×', '▽▽×', '강'으로 표시된 다섯 사람이 모여 서서 "'어른'은 살릴 거야. 퍼뜩 튀자"고 말하고 있고, 출국심사대에 앉아 있는 경찰관과 그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이 그 다섯 사람이 있는 쪽을 쳐다보고 있으며, 출국심사대가 놓인 벽면에 '출국금지 ◎◎◎ 마약복용'이라고 표시된 출국금지 포스터가 부착되어 있고, 출국심사대 옆으로 보이는 공항 활주로에 미국 항공기가 착륙해 있는 장면이 담긴 제1심판결 별지 제2만평을 각 게재하였다.

나. 원고의 주장

원고가 해외로 도피하려는 의도를 가지거나 해외 도피를 계획 또는 모의한 적이 전혀 없음에도, 피고들이 이 사건 각 만평을 통하여 원고 등이 외환위기에 대한 처벌을 면하기 위하여 해외로 도피하려 하고 있거나 도피를 모의하고 있다는 내용의 허위사실을 각 적시함으로써 명예를 훼손하였다.

다. 판단

언론보도에 의한 명예훼손이 성립하기 위하여는 특정인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가 있어야 하고,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에는 사실을 직접 표현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그와 같은 사실의 존재를 암시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그 사실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경우도 포함된다. 그러한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 없이 단지 특정 인물이나 사건에 관하여 비평하거나 견해를 표명한 것에 불과할 때에는 명예훼손이 되지 않고, 나아가 이 사건과 같이 한 두 컷(Cut)의 그림과 이에 관한 압축된 설명 문구를 통해 인물 또는 사건을 희화적(희화적)으로 묘사하거나 풍자(풍자)하는 만평(만평) 또는 풍자만화(Cartoon)의 경우에는 인물 또는 사건 풍자의 소재가 되는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직접 적시하지 아니하고 이에 풍자적 외피(외피)를 씌우거나 다른 사실관계에 빗대어 은유적(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기법을 사용하는 만큼, 그 만평을 통하여 어떠한 사상(사상)이 적시 또는 표현되었는가를 판단하는 데에는 이와 같은 풍자적 외피 또는 은유를 제거한 다음, 작가가 그 만평을 게재한 동기, 그 만평에 사용된 풍자나 은유의 기법, 그 만평을 읽는 독자들의 지식 정도와 정보 수준, 그리고 그 만평의 소재가 된 객관적 상황이나 사실관계를 종합하여 그 만평이 독자들에게 어떠한 인상을 부여하는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이 사건 각 만평의 경우에도 원고 등 3인 또는 5인이 항공권을 구입하거나 해외 도피를 의논하고 있는 장면은 그 자체가 표현의 목적 또는 대상이라기보다는 어떤 사상을 희화적으로 묘사하기 위하여 사용된 풍자적 외피 또는 은유에 지나지 않는 만큼, 이 사건 각 만평이 원고 등이 해외 도피를 계획하거나 모의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나아가, 이 사건 각 만평이 게재된 시점을 전후하여 원고 등이 실제로 해외 도피를 계획 또는 모의한 적이 없고, 그와 관련된 소문이나 언론보도도 없어서 이 사건 각 만평을 기고한 피고 2나 독자들로 하여금 원고 등이 해외로 도피하려 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할 만한 사정이 전혀 없었던 점, 그 무렵 우리 나라의 경제위기를 둘러싸고 전개된 여론 및 정치권의 동향과 그와 관련된 언론보도의 내용 및 이 사건 각 만평과 같은 정치만평을 읽는 독자들의 지식 정도와 정보 수준, 그 밖에 원고를 비롯하여 이 사건 각 만평에 등장한 인물들의 과거 경력이나 행적 등 변론에 나타난 사정들을 종합하면, 이 사건 각 만평은 원고 등이 경제위기의 책임자로 지목되면서 이들에 대한 검찰수사와 감사원 특감이 거론되는 한편, 새로 출범할 정부가 경제위기의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대하여 강한 의지를 피력하고 있어, 원고 등이 경제위기와 관련된 책임 추궁이나 처벌을 면하기 어려운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공항 출국장을 빌려 희화적으로 묘사한 것이거나, 원고 등이 그와 같은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는 만큼 해외로 도피할 가능성이 없지 않음을 암시함과 아울러 이들에 대한 출국금지조치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우회하여 표현한 것일 뿐, 원고 등이 해외로 도피할 의사를 가지고 있다거나 해외 도피를 계획 또는 모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이를 대하는 독자들 또한 그와 같은 판단을 하거나 그러한 인상을 받았으리라고는 보기 어려우며, 달리 이 사건 각 만평이 원고의 명예를 훼손할 만한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하였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

3. 의견이나 논평 또는 만평의 형식에 의한 명예훼손의 성립에 관한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사실인정과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가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사실을 은폐, 왜곡하는 등 사실인정을 그르치거나, 명예훼손의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상고이유는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므로 상고를 기각하고, 상고비용은 패소자의 부담으로 하기로 하여 관여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이규홍(재판장) 송진훈(주심) 윤재식 손지열

심급 사건
-서울고등법원 1998.12.24.선고 98나475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