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2020구단61488 요양불승인처분취소
원고
*
피고
*
변론종결
2021. 6. 23.
판결선고
2021. 7. 7.
주문
1. 피고가 2020. 2. 27. 원고에 대하여 한 요양급여불승인처분을 취소한다.
2.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주문과 같다.
이유
1. 처분의 경위
가. 원고는 주식회사 C 소속 근로자로서, 2019. 11. 20. 09:38경 원동기장치자전거운전면허 없이 전동킥보드를 타고 출근하던 중 서울 ○○구 ○○로 *** ○○빌딩 앞에 있는 보행신호등의 녹색 등화가 점멸될 때 횡단보도에 진입하여 횡단하다가, 보행신호등이 적색등화로 바뀐 후 차량신호등의 녹색등화에 따라 편도 3차로 도로의 3차로에서 주행을 시작한 화물차에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당하였다(자세한 것은 별지 참조, 이하 '이 사건 사고'라 한다).
나. 이로 인하여 원고는 '좌측 경골 상단의 분쇄골절, 좌측 슬관절 내측 및 외측 반달연골의 찢김, 좌측 슬관절 내측 측부인대의 파열, 좌측 하퇴부 외상성 근육 허혈'로 진단받고, 2020. 1. 6.경 피고에게 요양급여를 신청하였다.
다. 피고는 2020. 2. 27. '이 사건 사고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제2항 제1호(신호위반)에 해당하는 중과실에 의한 범죄행위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것이므로, 산업재해 보상보험법에서 정한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위 요양급여 신청을 불승인하였다(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내지 4호증, 을 제1, 2, 3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처분의 적법 여부
가. 원고의 주장 요지
이 사건 사고는 원고와 화물차 운전자의 과실이 경합하여 발생한 것으로, 원고의 범죄행위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사고라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이와 다른 전제에서 이루어진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므로 취소되어야 한다.
나. 판단
1)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이라 한다) 제37조 제2항 본문은 ‘근로자의 고의·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은 업무상의 재해로 보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① 산재보험법이 산업재해보상보험 사업을 시행하여 근로자의 업무상의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며 재해근로자의 재활 및 사회 복귀를 촉진하기 위하여 이에 필요한 보험시설을 설치·운영하고 재해 예방과 그 밖에 근로자의 복지 증진을 위한 사업을 시행하여 근로자 보호에 이바지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는 점(제1조), ② 산업재해보상보험 제도가 경제·산업 발전 과정에서 소외될 수 있는 근로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하는 기능을 하고 있는 점, ③ 헌법재판소가 보험급여 제한사유를 규정한 구 국민의료보험법(1999. 12. 31. 법률 제6093호로 개정된 국민건강보험법 부칙 제2조에 의하여 2000. 7. 1.자로 폐지되기 전의 것) 제41조 제1항의 '범죄행위'에 대하여 고의와 중과실에 의한 범죄행위 이외에 경과실에 의한 범죄행위가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한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한 점(헌법재판소 2003. 12. 18. 선고 2002헌바1 결정 등 참조) 등을 고려하면, 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 본문에서 규정한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부상'이라 함은 오로지 또는 주로 근로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범죄행위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부상을 말하고, 이때 중대한 과실이라는 요건은 되도록 엄격하게 해석 · 적용하여야 한다.
2) 앞서 든 각 증거 및 갑 제5, 6호증의 각 기재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을 위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고의 위와 같은 전동킥보드 운전행위는 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 본문에서 정한 범죄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결국 출근 중 발생한 이 사건 사고는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 따라서 원고의 위 주장은 이유 있고, 이와 다른 전제에 선 피고의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
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제2항 단서, 제4조 제1항 단서 제1호는 일상생활에서 자동차 운전이 필수적으로 되었음을 고려하여 운전자에게 피해자와 합의나 종합보험 등의 가입을 유도함으로써 교통사고로 인한 피해의 신속한 회복을 촉진하기 위하여 차의 교통으로 업무상과실치상죄 등을 범한 운전자에 대하여 피해자와 합의나 종합보험 등의 가입이 있는 경우 공소를 제기하지 않는 형사처벌의 특례를 부여하되, 교통신호 위반 등의 경우에는 그러한 특례의 예외로 인정함으로써 교통신호 준수 등을 운전 시 지켜야 할 중대한 의무로 정한 것이다. 이와 같이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관계 규정의 입법 취지는 업무상 재해의 배제사유를 정한 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 본문의 입법 취지와 다르다. 그뿐만 아니라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제2항 단서가 '차의 운전자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로 인하여 업무상과실치상죄 또는 중 과실치상죄를 범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하여 중과실이 아닌 경과실로 교통신호를 위반하는 경우 등도 있을 수 있음을 예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운전자가 신호위반 등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제2항 단서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다가 교통사고를 야기하였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그 사고가 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 본문에서 정한 업무상 재해 배제사유에 해당한다고 단정하여서는 아니 되고, 그 사고가 발생한 경위와 양상, 운전자의 운전 능력과 교통사고 방지 노력 등과 같은 사고 발생 당시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21. 2. 4. 선고 2020두41429 판결 등 취지 참조).
나) 보행신호등의 녹색등화가 점멸될 때 보행자는 횡단을 시작하여서는 아니 되고, 횡단하고 있는 보행자는 신속하게 횡단을 완료하거나 그 횡단을 중지하고 보도로 되돌아와야 한다{구 도로교통법 시행규칙(2020. 12. 10. 행정안전부령 제21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6조 제2항 [별표 2]}. 그리고 횡단보도는 보행자가 도로를 횡단할 수 있도록 안전표지로 표시한 도로의 부분으로, 다만 전동킥보드 운전자의 경우에는 킥보드에서 내려서 킥보드를 끌고 가는 경우에만 횡단보도를 따라 보행할 수 있을 뿐이고, 킥보드를 타고 횡단보도를 횡단할 수는 없다{구 도로교통법(2020. 5. 26. 법률 제17311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같다) 제2조 제12호, 제13조의2 제6항, 제18조 제1항}.
앞서 본 바와 같이 원고는 보행신호등의 녹색등화가 점멸되고 있는 상태에서
전동킥보드를 타고 횡단보도를 횡단하기 시작하여 횡단을 완료하기 전에 보행신호등이 적색등화로 변경된 후 차량신호등의 녹색등화에 따라 주행을 시작한 화물차에 충돌하였는바, 원고에게 과실이 있었음은 충분히 인정된다.
그러나 ① 이 사건 사고 당시 전동킥보드의 이용자가 급격히 증가하는데 비해 도로의 통행방법 등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를 규제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도 미비하여 다소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던 점, ② 이 사건 사고와 관련하여 원고가 도로교통법 위반(무면허운전)죄로 기소유예처분을 받은 것 이외에 다른 범죄로 기소되거나 처벌받은 적은 없는 점, ③ 원고의 위와 같은 전동킥보드 운전행위가 산재보험법의 보호대상에서 배제될 정도로 그 위법의 정도나 비난가능성이 크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 ④ 전동킥보드를 타고 횡단보도를 횡단하는 킥보드 운전자는 횡단보도를 통행 중인 보행자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상대방 화물차 운전자에게 구 도로교통법 제27조 제1항에서 규정한 보행자보호의무가 있다고는 할 수 없으나, 이 사건과 같이 보행신호등의 녹색등화가 점멸되고 있음에도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자전거나 전동킥보드 운전자가 흔히 있고, 또 횡단 도중에 녹색신호가 적색신호로 바뀐 경우에도 그 교통신호에 따라 정지함이 없이 나머지 횡단보도를 그대로 횡단하는 자전거나 전동킥보드 운전자가 흔히 있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며, 이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므로 보행신호등이 '녹색신호에서 정지신호로 바뀔 무렵 전후'에 횡단보도를 통과하는 자동차 운전자는 자전거나 전동킥보드 운전자가 교통신호를 철저히 준수할 것이라는 신뢰만으로 자동차를 운전할 것이 아니라 좌우에서 이미 횡단보도에 진입한 자전거나 전동킥보드가 있는지 여부를 살펴보고 또한 그의 동태를 두루 살피면서 자동차를 운전하여야 할 업무상의 주의의무는 있는 점, ⑤ 이 사건 사고 지점은 편도 3차로 도로로 그 양쪽에 빌딩이 연이어 들어서 있어서 차량과 사람의 통행이 비교적 번잡한 곳이고, 상대방 화물차 운전자는 원고가 횡단을 거의 끝마칠 무렵에 편도 3차로 도로의 3차로에서 주행을 시작하였으며, 당시 화물차 운전자의 전방 시야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도 찾아볼 수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사고가 오로지 또는 주로 원고의 중과실로 인한 범죄행위가 원인이 되어 발생하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 피고는 이 법정에 이르러 이 사건 사고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제2항 제7호(무면허운전)에 해당하는 중과실에 의한 범죄행위도 원인이 되어 발생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앞서 든 여러 사정에다가, ① 구 도로교통법 제154조 제2호가 원동 기장치자전거 무면허운전에 대하여 30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전동킥보드 무면허운전이 자동차나 오토바이 무면허운전에 비하여 도로교통의 안전을 해치는 위험성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점, ② 서울○○지방검찰청 주임 검사도 이러한 사정을 참작하여 원고의 무면허운전에 대하여 기소유예처분을 내린 점, ③ 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 본문에서 규정하고 있는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부상'이라 함은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부상의 직접 원인이 되는 경우를 의미하는 것이지, 간접적이거나 부수적인 원인이 되는 경우까지 포함된다고 볼 수는 없는 바(대법원 2017. 4. 27. 선고 2016두55919 판결 등 참조), 원고의 무면허운전이 이 사건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보태어 보면, 피고의 위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행정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항고소송에 있어서 행정청은 당초 처분의 근거로 삼은 사유와 기본적 사실관계가 동일하다고 인정되는 한도 내에서만 다른 처분사유를 새로 추가하거나 변경할 수 있을 뿐, 기본적 사실관계가 동일하다고 인정되지 않는 별개의 사실을 들어 처분사유로 주장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할 것인바(대법원 2004. 5. 28. 선고 2002두5016 판결 등 참조), 피고의 위 무면허운전 주장은 피고가 이 사건 처분의 근거로 삼은 당초의 사유(신호위반)와 기본적인 사실관계가 동일하다고 볼 수 없어 이를 처분사유로 추가할 수도 없다}.
3.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이유 있으므로, 이를 인용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