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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23. 7. 27. 선고 2023도3477 판결
[살인·컴퓨터등사용사기][미간행]
판시사항

[1] 형사재판에서 범죄사실을 인정하기 위한 증거의 증명력 정도(=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 및 증명책임 소재(=검사)

[2] 살인죄와 같이 법정형이 무거운 범죄의 경우에도 직접증거 없이 간접증거만으로 유죄를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적극) 및 간접증거만으로 유죄를 인정하기 위한 요건

피고인

피고인

상고인

피고인 및 검사

변호인

변호사 이리나 외 2인

원심판결

수원고법 2023. 2. 9. 선고 2022노495 판결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관련 법리

형사재판에서 범죄사실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엄격한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검사의 증명이 그만한 확신을 가지게 하는 정도에 이르지 못한 경우에는 설령 피고인의 주장이나 변명이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면이 있어 유죄의 의심이 가는 등의 사정이 있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 대법원 2012. 6. 28. 선고 2012도231 판결 등 참조).

한편 살인죄와 같이 법정형이 무거운 범죄의 경우에도 직접증거 없이 간접증거만으로 유죄를 인정할 수 있으나, 그러한 유죄 인정에는 공소사실과 관련성이 깊은 간접증거들에 의하여 신중한 판단이 요구되므로, 주요사실의 전제가 되는 간접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의 증명이 있어야 하고, 그 하나하나의 간접사실이 상호 모순, 저촉되지 않아야 함은 물론 논리와 경험칙, 과학법칙에 의하여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유죄의 인정은 범행 동기, 범행수단의 선택, 범행에 이르는 과정, 범행 전후 피고인의 태도 등 여러 간접사실로 보아 피고인이 범행한 것으로 보기에 충분할 만큼 압도적으로 우월한 증명이 있어야 한다. 피고인은 무죄로 추정된다는 것이 헌법상의 원칙이고, 그 추정의 번복은 직접증거가 존재할 경우에 버금가는 정도가 되어야 한다 ( 대법원 2017. 5. 30. 선고 2017도1549 판결 등 참조).

2. 쟁점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은 2008년경 수원시 ○○동에서 일식집을 운영하던 피해자 공소외 1(남, 48세)을 만나 2010. 5.경 혼인을 하여 2014년경 아들 1명을 출산하였고, 2015년경부터 화성시 아파트에서 피해자 및 아들과 함께 살아오던 중 2018년경 봉사단체 모임에서 만난 공소외 2와 교제하기 시작하여 2020년경부터 공소외 2로 하여금 피고인이 운영하는 공방에서 숙식을 하며 지내도록 하고, 공소외 2와 함께 3차례 일본으로 여행을 다녀오는 등 내연관계로 지내왔다.

피고인은 피해자와 혼인한 이후 2016년경까지 전세자금 대출 등 8,700만 원의 대출금 채무가 있었고, 2018년경부터는 휴대전화 요금, 아파트 임대료 등을 미납하기 시작하여 2019년경에는 화장품 다단계 영업으로 인해 채무가 늘어나게 되었으며, 2020년경부터 코로나19로 인해 공방의 매출이 줄어드는 등 채무가 지속적으로 늘어나자 이를 변제하기 위해 피해자 몰래 추가로 대출을 받고 소지하고 있는 예물을 팔아 채무를 변제하려고 하였으나 결국 2021. 5. 중순경에는 전기요금, 도시가스 요금, 정수기 렌탈료, 고속도로 하이패스 통행료 등의 공과금뿐 아니라 대출금이자, 신용카드 대금 등을 미납하거나 연체하게 되는 등 금전적으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한편 뒤늦게 위와 같은 사실들을 알게 된 피해자는 피고인을 크게 질책하면서도 피고인의 채무를 대신하여 변제해주기도 하였으나, 피고인이 채무를 변제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오히려 2021년 초순경 피고인이 피해자 몰래 결혼 예물을 팔고 추가로 대출을 받았으며 공소외 2와 내연관계였음을 알게 되자 2021. 3. 중순경 피고인의 위와 같은 행태에 대해 경각심을 주기 위해 ‘목을 매다는 영상’ 등을 보낸 적도 있었다.

피고인은 공소외 2와 함께 거주할 생각으로 공소외 2와 집을 물색하면서 돈을 벌기로 약속하였으나, 당시 공소외 2는 직업이 없이 실업수당을 받고 있었고 이혼 소송 중인 처에게 양육비까지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나 방법이 없었다.

결국 위와 같은 상황에서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피고인은 피해자가 사망할 경우 사망보험금, 피해자 소유의 부동산 및 예금 등을 상속받는 한편 공소외 2와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여 평소 자신이 전자담배를 피우는 과정에서 소지하게 된 니코틴 원액을 이용하여 피해자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피고인은 2021. 5. 26. 06:40경에서 같은 날 07:00경 사이에 피고인의 위 주거지에서, 출근하려는 피해자에게 미숫가루, 꿀, 우유에 불상량의 니코틴 원액을 넣어 혼합한 음료와 햄버거를 주어 피해자로 하여금 먹도록 하고 같은 날 07:29경 피해자로부터 ‘가슴이 좀 쿡쿡 쑤시고 타는 것 같다.’라는 전화를 받자 같은 날 07:46경 피해자에게 전화하여 사실은 꿀이 상하지 않았음에도 ‘꿀이 상한 거 같다. 유통기한이 2016년도였다.’라고 말하여 마치 피해자가 상한 꿀을 먹어 복통이 온 것처럼 하였다.

한편 피해자가 니코틴 원액이 들어간 미숫가루 음료를 다 마시지 않아 속쓰림과 오심 증상만 보일 뿐 사망하지 않자 피고인은 같은 날 20:00경부터 같은 날 20:30경 사이에 위 주거지에서, 속이 좋지 않아 식사를 거부한 피해자에게 “흰죽을 해 줄테니 먹어.”라고 말하고 흰죽을 만든 후 그 안에 다량의 니코틴을 넣어 피해자로 하여금 흰죽(국그릇 반 정도의 양)을 먹게 하였다.

위와 같이 니코틴 원액이 들어간 흰죽을 먹은 피해자는 같은 날 22:30경 극심한 흉통을 호소하면서 구토를 하고 식은땀을 흘리는 등 혼자서는 거동하지 못하여 피고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이에 피고인의 신고로 출동한 119 구급대에 의해 같은 날 23:26경 (병원명 생략) 응급진료센터로 이송되어 의사 공소외 3에게 “유통기한이 2016년까지인 꿀을 미숫가루 타먹은 뒤 배가 아프다.”라는 말을 하여 그와 관련한 치료인 수액과 진통제를 맞는 등 치료를 받은 후 그다음 날인 2021. 5. 27. 01:30경 귀가하였다.

피고인은 이와 같이 피해자를 살해하려고 하였으나 실패하자, 같은 날 01:30경부터 02:00경 사이에 위 주거지에서 피해자에게 물을 마시라고 권유하면서 다량의 니코틴 원액을 탄 찬물을 건네주고 피해자로 하여금 이를 마시도록 하여 같은 날 03:00경 피해자로 하여금 급성 니코틴 중독 등으로 사망하게 하였다.

이로써 피고인은 피해자를 살해하였다.

3. 원심의 판단

가. 원심은 쟁점 공소사실 중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미숫가루, 꿀, 우유에 니코틴 원액을 넣어 혼합한 음료 및 다량의 니코틴 원액을 넣은 흰죽을 먹게 하여 피해자를 살해하려고 하였다는 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이유로 무죄로 판단하였다.

피해자가 응급실에 이송되었을 당시 채취한 피해자의 혈액을 수사기관에서 적기에 확보하였더라면 이 부분 혐의를 판단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가 되었을 것인데, 해당 병원에서는 보관기간 경과로 피해자의 해당 혈액을 폐기하였다. 피해자가 미숫가루 음료나 흰죽을 섭취하고 호소한 증상들, 응급실 이송 후 피해자의 상태,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해자가 미숫가루 음료를 마시거나 흰죽을 먹고 호소한 증상들이 니코틴 음용에 따른 것이 아닐 가능성을 합리적으로 배제하기 어려우므로 이 부분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한다.

나. 한편 원심은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다량의 니코틴 원액을 탄 찬물을 건네주고 피해자로 하여금 이를 마시도록 하여 피해자를 살해하였다는 공소사실은 다음과 같은 사실 내지 사정 등을 종합하면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되었다는 이유로 유죄로 판단하였다.

1) 피해자의 사인은 급성 니코틴 중독이고, 니코틴이 피해자에게 투여된 방법은 경구 투여로 추정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속 부검의는 피해자가 응급실을 다녀온 후 2021. 5. 27. 01:20~02:00경 피고인이 준 물을 마신 직후 사망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진술하였고, 검사 측 증인 공소외 4 교수는 ‘2차 음용 후 증상이 호전된 뒤 피해자의 니코틴 음용 정황은 01:30∼02:00경 피고인이 건네준 찬물 한 컵을 마실 때밖에 없기 때문에 이때 니코틴을 음용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어떤 상황이든 2차 음용 후 다시 과량의 니코틴 경구 투여가 있어야 피해자의 사망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니코틴의 음용 여부는 상황과 방법, 개인의 감수성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서 의식이 있는 피해자에게도 피해자 몰래 물에 니코틴을 타서 마시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이지 않는다.

2) 피고인의 공소외 2와의 내연관계 및 피해자의 사망으로 인하여 취득하게 되는 피해자의 재산, 사망보험금 등의 경제적 목적이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할 만한 충분한 동기로 작용하였다고 판단된다.

3) 피고인은 여러 차례 니코틴 제품을 구매한 적이 있고, 피고인에게 니코틴 제품을 판매한 가게 업주는 피고인의 주거지에서 압수된 액상 니코틴(제품명 1 생략)에 관하여 니코틴 원액을 5방울 정도 추가로 첨가해 주었다고 진술하였다. 피고인은 니코틴을 과다 복용할 경우 사망에 이를 만큼 위험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진술하였다.

4) 피해자는 주거지 안에서 상의는 런닝셔츠를 입고 하의는 완전히 탈의한 모습으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피해자의 사망 현장인 주거지에서 피해자가 스스로 니코틴을 음용하였다고 볼 만한 어떤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고 유서가 발견된 바도 없다. 피해자의 사망 전 행적이 평소의 일상생활과 다를 바 없어 자살을 염두에 둔 사람의 행동으로는 보이지 않는 사정 등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가 스스로 니코틴을 음용하여 자살하였을 가능성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배제할 수 있다. 제3자 및 사고에 의한 사망 가능성은 관념적인 의심이나 추상적인 가능성에 기초한 것에 불과하여 이 부분 공소사실에 대한 합리적 의심에 포함된다고 할 수 없다.

4. 검사의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

원심판결 이유를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쟁점 공소사실 중 무죄 부분에 관한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난 잘못이 없다.

5. 피고인의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

가. 쟁점 공소사실 중 유죄 부분에 관한 개요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은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니코틴 원액을 탄 찬물을 마시게 하여 피해자를 살해한 것이 아닌지 의심케 하는 정황이다. 즉, 피해자는 2021. 5. 27. 07:21경 피고인과 아들만 있는 집안 현관에서 상의는 런닝셔츠를 입고 하의는 탈의한 채 엎드려 사망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위 부검의와 공소외 4 교수의 감정의견 등에 의하면, 피해자의 사인은 급성 니코틴 중독으로 감정되었고, 피해자에 대한 부검 결과 위 내용물에서 과량의 니코틴이 검출되었으며 부검 당시 피해자 사체에서 주사바늘 자국 및 경피 패치를 붙인 자국이 발견되지 않아 니코틴은 경구 투여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강발생에 의한 피해자 추정 사망시각은 02:30~03:30경 사이일 것으로 추정되는데, 피고인은 2021. 5. 27. 01:30경 (병원명 생략) 응급진료센터에서 피해자, 아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 후 같은 날 01:30경부터 02:00경 사이 피해자에게 찬물을 준 사실이 있다고 진술하였다. 그 밖에 피해자의 사망 현장인 주거지에서 스스로 니코틴을 음용하였다고 볼 만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피고인은 최초 경찰수사 단계부터 일관하여 살인 범행을 부인하고 있고, 피해자의 사망 경위나 피고인의 범행 실행 및 준비 정황을 인정할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 직접증거 없이 간접증거만으로도 유죄를 인정할 수 있지만, 주요사실의 전제가 되는 간접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의 증명이 있어야 하고, 그 하나하나의 간접사실이 상호 모순, 저촉되지 않아야 함은 물론 논리와 경험칙, 과학법칙에 의하여 뒷받침되어야 함은 앞서 본 바와 같다. 그런데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쟁점 공소사실 중 유죄 부분에 대하여 제시된 간접증거들이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적극적 증거로서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고, 이를 유죄로 확신하는 것을 주저하게 하는 의문점들이 남아 있으며 그에 대하여 추가적으로 심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이는 이상 원심의 결론을 그대로 유지하기 어렵다.

나. 범행 준비 및 실행에 관하여

1) 이 사건처럼 피해자의 사체에서 치사량의 니코틴이 검출된 원인이 무엇인지를 밝혀낼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경우, 제시된 간접증거들이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적극적 증거로서 충분한지, 그 간접증거들이 공소사실과 관련하여 갖는 의미를 보다 면밀히 살펴야 한다.

원심은 ‘부검 결과 심혈에서 5.21㎎/L, 말초혈액에서 2.49㎎/L의 치사 농도에 해당하는 니코틴이 검출되어 피해자가 급성 니코틴 중독으로 사망한 것은 확실하고, 증상이 호전된 뒤 피해자의 니코틴 음용 정황은 피고인이 건네준 찬물 한 컵을 마실 때밖에 없으므로, 이때 니코틴을 음용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는 위 공소외 4 교수의 감정의견 등을 유죄를 인정하는 간접증거로 취신하고 있다.

그러나 부검의나 공소외 4 교수의 감정의견 등은 피해자의 사인이 급성 니코틴 중독이라는 점 및 어떤 상황이든 피해자가 응급진료센터를 다녀온 후 피해자에게 과량의 니코틴 경구 투여가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증거방법으로서는 그 의미가 있으나, 니코틴 음용의 경위에 관한 부분은 피해자의 니코틴 음용 정황이 수사기관이 제시한 ‘피고인이 건네준 찬물을 마실 때밖에 없음’을 전제로 한 것으로서, 이로써 ‘피고인이 찬물에 니코틴 원액을 타서 피해자로 하여금 음용하게 하였다.’는 공소사실이 증명된다고 볼 수는 없다.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찬물을 준 후 밝혀지지 않은 다른 경위로 피해자가 니코틴을 음용하게 되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기록에 따르면, 니코틴에 노출 시 오심, 구토, 설사 등 증상이 통상 15분 이내로 발현되고, 경구 투여 시 최고 농도에 이르는 시간은 약 30~66분으로 알려져 있으며, 투여 후 최고 농도 시기를 지나면 빠르게 회복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피해자의 휴대전화 포렌식 결과에 의하면, 피해자가 2021. 5. 27. 02:45경 가상화폐 시세 호가창 등 캡처 화면을 확인한 로그기록이 발견되고, 이 시각은 피고인이 찬물을 준 때부터 45분 내지 1시간이 경과한 때로(피고인은 같은 날 01:42경부터 공소외 2와 메신저를 통해 대화하기 시작하였는데, 이에 대해 “피해자에게 물을 준 후에 안방으로 들어가 공소외 2와 메시지를 주고받은 후 잠에 들었다.”라고 진술하고 있다), 니코틴 노출로 인한 초기 증상이 발현되는 것을 넘어 니코틴이 최고 농도에 도달하게 되는 시점이다. 만약 피해자가 01:30경부터 02:00경 사이에 피고인이 건넨 치사량에 이르는 니코틴이 든 찬물을 마셨다면 위 시각까지 특별한 증상의 호소나 구조 요청 등이 없이 휴대전화를 보고 있는 피해자의 행적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건네준 찬물에 치사량이 넘는 니코틴이 들어 있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기록에 따르면, 피해자가 사망한 후 피해자의 방 안을 촬영한 사진을 보면 책상 위에 물이 2/3 정도 차 있는 물컵이 놓여있고, 피고인은 그것이 찬물을 따라 피해자에게 준 물컵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피해자가 피고인이 준 찬물을 거의 마시지 않고 남긴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컵의 용량, 물의 양, 피고인이 넣은 니코틴 원액의 농도와 양 등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2) 원심은 다음과 같은 사정을 피고인의 범행 준비 정황으로 들었다. 즉, 피고인은 2020. 8. 18.부터 2021. 5. 14.까지 (상호명 생략)이라는 가게에서 5회에 걸쳐 합계 407,000원을 결제하였는데, 위 가게 업주는 “피고인이 처음에는 플라스틱 용기에 든 액상 니코틴을 구입하였으나 이후 상자에 든 (제품명 2 생략) 니코틴 제품을 주로 구입하였고, 경찰이 압수한 액상 니코틴 (제품명 1 생략)은 피고인에게 한 번 판매한 적이 있는데, 판매 당시 피고인의 요청으로 불법이긴 하나 니코틴 원액을 5방울 정도 추가로 첨가해 주었다.”라고 진술하였다. 전자담배에 사용되는 니코틴 용액은 니코틴 원액을 희석시켜 만들고, 인터넷 등을 통해 불법 경로로 유통되는 니코틴 원액은 순도 99% 이상으로 990㎎/㎖의 니코틴을 함유하고 있는데, 피고인은 경찰에서 니코틴을 과다 복용할 경우 사망에 이를 만큼 위험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진술하였다.

그러나 피고인은 전자담배 흡연자로 평소 액상 니코틴 제품을 구매·사용하였으므로 액상 니코틴 용액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이를 살해 수단으로 준비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피고인이 니코틴을 이용한 살해 범행을 계획하고 실행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니코틴 원액의 일반적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니코틴의 치사량, 시중에서든 불법적인 경로로든 구할 수 있는 니코틴 원액 내지 희석액의 농도와 사망의 결과에 이를 만한 투입량, 투입 방법 등에 대한 정보와 분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수사기관은 범행 전후 피고인의 행적, 피고인의 휴대전화 등 정보통신매체, 주거지 압수수색 등을 통하여 범행 계획이나 준비와 관련된 단서를 확보하기 위하여 노력한 것으로 보이지만, 피고인이 사전에 범행을 준비하거나 계획하였다고 볼 만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였다.

또한 살해에 직접 사용된 니코틴 원액이나 도구가 특정되거나 그 출처가 밝혀지지 않았고, 피고인이 가지고 있다가 압수된 (제품명 1 생략)이 피해자의 사망과 관련되어 있음을 인정할 증거도 없다. 피해자의 생체시료에서 검출된 니코틴과 피고인으로부터 압수한 (제품명 1 생략)의 연관성이 밝혀진 바 없고, 수사기관은 피고인의 요청으로 (제품명 1 생략)에 니코틴 원액을 몇 방울 추가하였다는 가게 업주의 진술을 확보하고도 위 압수된 (제품명 1 생략)에 대한 니코틴 함량 시험을 시행하지 않았다. 압수된 (제품명 1 생략) 중 사용분에 포함된 니코틴 함량은 약 95㎎(=1㎖당 9.5㎎ x 전체 용량 30㎖ 중 사용량 약 10㎖)에 불과하여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약 2,465.1㎎ 정도로 추정되는 피해자의 니코틴 음용량과 비교할 때 그 차이가 상당히 크고, 가게 업주가 첨가하였다는 니코틴 원액의 정확한 농도나 양도 알 수 없어 압수된 (제품명 1 생략)이 피해자를 살해한 범행에 사용된 제품이라거나 그 존재가 피고인의 범행 준비 정황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피해자의 말초혈액에서 검출된 혈중 니코틴 농도 등에 비추어 볼 때, 피해자의 살해에 니코틴을 탄 찬물이 사용되었다면 시중에서 유통되는 일반적인 액상 니코틴 제품이 아닌 고농도의 니코틴 원액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데,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위하여 어떠한 경로로든 니코틴 원액을 구매하거나 확보하여 준비하였다고 볼 만한 정황도 뚜렷이 확인되지 않는다.

3) 의식이 명료한 피해자가 다량의 니코틴 원액이 든 물을 아무런 저항 없이 음용할 수 있었을지도 의문이다. 이 사건의 심리에 참여한 의학교수들은 일반적으로 의식 있는 사람에게 몰래 니코틴 원액을 음용하게 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는 점에 대하여 공통된 의견을 보이고 있다. 기록상 ‘니코틴 원액보다 70배 이상 낮은 농도의 니코틴 용액을 혀에 살짝 대는 정도로 대보았을 뿐인데도 타는 맛이 나며 혀를 찌르는 듯한 자극적인 감이 오래도록 지속되었다.’는 진술이나 ‘니코틴 원액을 1%로 희석한 용액도 역겹고 타는 맛이 나 섭취하기 쉽지 않다.’는 진술이 확인되기도 한다. 원심 증인 공소외 5의 진술과 의견서에 따르면, 피해자의 말초혈액에서 검출된 혈중 니코틴 농도 2.49㎎/L을 기준으로 니코틴 음용량을 계산하면 2,465.1㎎이고, 이는 99% 니코틴 용액으로 환산할 때 2.49㎖에 이르며, 직접 음용한 시기의 니코틴 음용량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원심 증인 공소외 4의 진술과 감정서에 따르면, 경구 투여 시 니코틴의 최소 치사량은 500㎎~1,000㎎이고 990㎎/㎖인 니코틴 원액을 0.5~1㎖ 경구 투여하면 사망할 수 있다는 것으로, 2.49㎖는 최소 치사량을 상당히 초과하는 수준임을 알 수 있다. 게다가 피해자 방 안에 있는 물컵에는 물이 2/3 이상 남아 있었으므로 만일 피해자가 피고인이 건네준 물컵의 물을 1/3 정도 마심으로써 위와 같은 혈중 니코틴 농도에 이르렀다면 컵에 든 니코틴 함량은 위 추정 음용량보다 더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정들을 종합해 보면, 의식이 뚜렷한 피해자에게 니코틴 원액을 탄 물을 몰래 마시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매우 특이한 맛이 나는 다량의 니코틴 원액을 발각될 위험을 무릅쓰고 찬물에 타서 피해자에게 주고 이를 피해자로 하여금 마시게 하는 살해 방법을 선택한다는 것은 경험칙상 쉽게 납득하기 어려우므로, 음용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가능성에 기대어 공소사실 증명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형사재판의 증명 책임과 엄격한 증명의 정도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4) 기록에 의하면, 피해자는 2021. 3. 14. 새벽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고, 그로 인해 당시 피해자의 목에 상흔이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의 휴대전화 포렌식 결과에는 피해자가 ‘자살방법’을 검색한 내역이 있고, 그 검색을 전후한 시간의 통화 또는 메시지 발송 내역에 비추어 볼 때 피해자 본인이 위 단어를 검색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또 원심 증인 공소외 5의 진술에 따르면 피해자의 니코틴 음용량이 상당히 높을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즉사에 이를 정도의 양은 아니었음에도(이는 원심 증인 공소외 4의 진술도 일치한다) 피해자의 방 안을 비롯한 사건 현장에서는 피해자가 피고인이 준 찬물을 마신 직후 피고인에게 저항하거나 구토 등 반사 반응을 일으키거나 구호 요청을 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한편 피해자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았다는 내용의 피해자 아들의 진술, 피해자의 차 안에 유통기한이 남은 니코틴 배출 용도의 알약 형태 제품이 있었다는 내용의 공소외 2의 진술은 피해자에게 흡연 습관이 없었다고 단정하기에 장애가 되는 사정에 해당한다. 이러한 반대 사정들을 배척하고 피해자의 사망 원인에 밝혀지지 않은 피해자에 의한 다른 행위가 개입되었을 가능성이 완전히 배제된다고 단정하는 데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다. 범행 동기에 관하여

기록에 따르면, 공소외 2와의 내연관계 유지 및 피해자의 사망으로 인하여 취득하게 되는 피해자의 재산, 사망보험금 등 경제적 목적이 계획적으로 배우자인 피해자를 살해할 만한 충분한 동기로 작용하였다는 원심 판시 범행 동기에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있다.

1) 피해자는 2021. 3. 13.경 피고인이 자신 몰래 대출을 받은 사실과 공소외 2와 오랜 기간 내연관계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2021. 3. 14. 새벽 피고인이 아들을 데리고 공소외 2와 함께 여행을 간 사실을 알고 자살을 시도하는 등 피고인과 피해자의 부부관계가 매우 악화된 상황에 있기는 하였다. 그러나 그 후 피고인과 피해자의 카카오톡 대화내용에 의하면, 피고인과 피해자는 이전처럼 일상적인 대화를 하고 있고 서로 간에 극심한 다툼이나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모습은 확인되지 않는 등 부부관계가 다소나마 회복되어가고 있었던 것으로도 보인다. 피고인과 피해자는 결혼기념일을 맞이하여 2021. 5. 22.부터 같은 달 23일까지 아들을 데리고 함께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였다. 한편 피고인은 피해자의 자살시도 이후에도 공소외 2와 내연관계를 유지하였으나, 피고인과 공소외 2의 관계에서 범행의 동기나 계기가 될 만한 별다른 사정변화가 드러난 바가 없다. 따라서 피고인이 공소외 2와 내연관계를 형성한 무렵이나 그 이후로 피해자와의 부부생활에 불만이나 증오, 갈등이 형성되거나 유지, 강화된 정황이 있는지 등 공소외 2와의 내연관계 유지가 살인 동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는 정도인지 좀 더 심리할 필요가 있다.

2) 일반적으로 금전적 이득의 기회가 살인 범행의 중요한 동기가 될 수 있음은 부인할 수 없고, 행위자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클수록 더욱 강한 동기로 작용하여 부도덕하고 반사회적인 범죄행위를 감행하는 유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은 경험칙상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원심이 인정한 사실에 의하면, 피고인은 과거에도 피해자 몰래 대출을 받아 사용한 문제 등으로 피해자와 갈등을 겪은 바 있고, 피고인이 운영하는 공방은 심각한 경영난으로 실수입이 거의 없어 피해자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었으며, 대출금 채무 연체나 공과금 등 미납으로 변제 독촉을 받는 등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다만 기록에 나타난 아래의 사정에 비추어 보면, 그러한 경제적 어려움이 피고인으로 하여금 살인을 결심하게 할 만큼 매우 견디기 힘든 절박한 것이었는지는 보다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이 사건과 같이 계획적이고 범행 상대가 배우자 등 가족인 경우 그 범행은 단순히 인륜에 반하는 데에서 나아가 범인 자신의 생활기반인 가족관계와 혈연관계까지 파괴하므로, 가정생활의 기반이 무너지는 것을 감내하고라도 살인을 감행할 만큼 강렬한 범행 유발 동기가 존재하여야 한다. 피고인이 경제적으로 견디기 힘든 궁박한 상태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자신이 보유한 재산이 있거나 주변으로부터 경제적인 원조를 기대할 수 있음에도 만 6세의 어린 아들을 두고 가정생활을 무너뜨리면서까지 살인을 감행하였다고 보려면 그 범행 동기가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① 피고인 명의의 금융기관 대출채무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피고인과 피해자 주거지의 임대차보증금 관련 가계 전세자금 대출채무로서 이는 피고인이 오롯이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대출이자나 차임 등 미납내역이 있다 하더라도 피해자의 수입으로 변제하거나 채무액을 상회하는 임대차보증금이 여전히 남아 있는 등 해결 가능성이 없었다고 볼 수 없다. 그 외에 다른 대출액은 비교적 소액이고, 피고인이 재정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사채나 악성 부채를 부담하고 있었다는 뚜렷한 사정은 찾아볼 수 없다.

② 피고인이 주거지와 공방 차임, 대출금 채무 변제, 각종 공과금 납입 등 매월 납입하여야 하는 돈 때문에 유동성 부족으로 인한 경제적·심리적 압박을 느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피해자가 부담해 온 부부공동생활을 위한 생활비적 성격의 비용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보이고, 피해자 사망 무렵 기준으로 개별 미납 액수나 미납액 누적 규모가 피고인과 피해자가 혼인생활을 유지하며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③ 피고인의 재산 내역에 비추어 피해자의 사망으로 피고인이 얻게 될 재산은 이혼 시 재산분할 상황과 비교할 때 다액이라고 보이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가 사망할 경우 피고인이 감당하여야 할 피해자의 금융기관 채무도 존재한다. 피고인은 자신의 명의로 공방 가게 보증금, 부동산, 콘도 회원권 등 재산을 보유하고 있었고, 피해자가 사망한 후 피고인은 자신의 모친으로부터 돈을 빌려 채무 변제 등에 사용하였는바, 이와 같이 주변의 도움을 받아 급박한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날 방법도 없지 않았다고 보인다.

④ 피해자 명의의 보험은 혼인 직후 피고인 모친의 지인을 통해 가입한 것으로 상해 또는 질병 사망, 암 진단 및 치료, 수술비용 등 다른 보험사고도 함께 보장하는 일반적인 형태의 손해보험 2건뿐이다. 피고인은 피해자가 사망한 후 2021. 6. 25.경 보험 담당자에게 자신의 운전면허증 사진을 전송하고, 보험 담당자는 같은 달 28일경 피고인에게 문자메시지로 사망진단서 등 사망보험금 청구를 위한 구비서류를 안내한 바 있으나, 한편 위 보험 담당자의 수사기관에서의 진술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은 피해자 사망 직후 적극적으로 피해자 사망 관련 보험금 지급 절차를 알아보지 않았고 보험금 청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⑤ 피고인이 피해자를 속이거나 부부로서의 신뢰를 가벼이 여기고 훼손시킨 점 등에 비추어 피고인에게 비난받을 만한 심리적 특성이나 성향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피고인은 아들 1명을 양육하고 공방을 운영하며 각종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등 양육과 일을 병행하며 생활해 온 사람으로, 이 사건 유형과 같은 지능적이고 악랄한 살인 범죄를 저지를 만한 심리적, 정서적 위험요인이나 범죄성, 반사회성을 가지고 있다고 추단할 자료는 찾을 수 없다.

라. 범죄 후 정황에 관하여

기록에 따르면, 피고인은 피해자 사망 직후 스스로 수사기관에 부검을 원한다고 진술함으로써 사망원인을 밝힐 가장 직접적이고 유일한 단서인 피해자의 시신에 대한 부검을 통하여 구체적인 사망원인이나 경위를 확인할 수 있게 하였다. 피고인은 피해자의 사망사실을 신고하고 경찰이 도착하기까지 니코틴 관련 증거를 인멸할 충분한 시간이 있어 보이는데도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찬물을 따라 주었다는 컵은 피해자의 방 안 책상 위에 그대로 놓여 있었을 뿐만 아니라 수사기관이 불법으로 니코틴 원액을 추가하였다고 주장하는 (제품명 1 생략)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이처럼 독극물을 이용하여 계획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사람의 행동으로 보기에 석연치 않은 사정들도 존재한다.

마. 소결론

피해자에 대한 부검결과 및 감정의견은 피해자의 사체에서 치사량에 달하는 니코틴이 검출되었다는 의미에 불과하다. 피고인의 살인 동기, 범행 준비 정황이나 범행방법, 사건 당시 상황 등에 대한 본질적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고, 형사재판에서 공소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이 검사에게 있는 이상 피고인의 변소에 타당성이 부족하거나 피고인이 일부 의문점을 해소해 주지 못한다고 하여 객관적인 증거와 이에 기초한 치밀한 논증의 뒷받침 없이 살인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할 수는 없다. 원심으로서는 피해자가 사망하기 전 피고인이 준 물을 마신 시각을 피고인의 진술과 달리 인정할 수 있는 정황이 있는지와 그러한 시각을 전제로 하면 피고인과 공소외 6의 메신저 대화 내용 및 피해자의 휴대전화 로그기록, 피해자의 증상 및 사망 시각 등과 상호 모순, 저촉되지 않는 설명이 가능한지, 피해자의 휴대전화 포렌식 결과 ‘자살방법’ 등의 검색 내역이나 사망 당일의 로그기록이 피고인 등에 의해 작출되었을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피고인이 (상호명 생략)에서 구입한 니코틴 용액 이외에 고농도의 니코틴 원액을 별도로 구매하거나 확보한 정황이 있는지, 압수된 (제품명 1 생략)이 범행 준비 정황으로서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는지와 그 의미가 무엇인지, 피해자의 생체시료에서 검출된 니코틴이 피고인이 구입한 니코틴 용액 이외의 것으로부터 유래하였을 가능성을 합리적 의심 없이 배제할 만한 객관적인 정황이 존재하는지, 니코틴 용액을 각종 첨가제의 혼합 등을 통해 큰 거부감 없이 음용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 가능한지 등 범행의 준비나 범행 수단, 방법 등에 관하여 좀 더 면밀히 심리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원심은 여러 의문점이 있는 소견이나 자료들에 의존하여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하였다는 쟁점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아 이를 유죄로 인정하였다.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형사재판에서 요구되는 증명의 정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하거나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6. 파기의 범위

위에서 본 이유로 원심판결 중 살인의 점에 대한 유죄 부분은 파기되어야 한다. 그런데 원심은 형법 제37조 전단의 경합범 관계에 있는 나머지 유죄 부분과 위 파기 부분 전체에 대하여 하나의 형을 선고하였고, 원심판결 중 살인의 점에 대한 이유 무죄 부분은 위 파기 부분과 일죄의 관계에 있어 함께 파기될 수밖에 없으므로, 결국 원심판결은 전부 파기되어야 한다.

7. 결론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오석준(재판장) 안철상 노정희(주심) 이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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