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시사항
[1]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의 의미 /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병역법 제88조 제1항 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적극) / 구체적인 병역법 위반 사건에서 피고인이 주장하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진정한 양심’에 따른 것인지 판단하는 방법 / 정당한 사유가 없다는 사실에 대한 증명책임 소재(=검사) 및 증명 방법
[2] 현역입영 대상자인 피고인이 지방병무청장 명의의 현역입영통지서를 전달받고도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입영일부터 3일이 경과한 날까지 입영을 거부하여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안에서, 피고인으로부터 병역거부에 이르게 된 그의 양심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이라는 사실의 존재를 수긍할 만한 구체적인 소명자료를 제출받아 이를 자세히 심리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이와 달리 종교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법 제88조 제1항 의 정당한 사유에 속한다는 점을 일반론으로서 밝히는 정도에 그쳤을 뿐, 구체적으로 피고인의 병역거부가 그의 진정한 양심에 의한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한 충분한 심리 없이 피고인이 특정 종교를 신봉하고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에 심리미진 등의 잘못이 있다고 한 사례
참조조문
[1] 헌법 제19조 , 제39조 , 병역법 제88조 제1항 , 형사소송법 제308조 [2] 병역법 제88조 제1항 제1호
참조판례
[1] 대법원 2018. 11. 1. 선고 2016도10912 전원합의체 판결 (공2018하, 2401) 대법원 2020. 7. 9. 선고 2019도17322 판결 (공2020하, 1622)
피고인
피고인
상고인
검사
변호인
변호사 임성호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창원지방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피고인은 현역입영 대상자이다. 피고인은 2018. 1. 12. 주거지에서 피고인의 모 공소외인으로부터 2018. 2. 12.자로 논산시 (주소 생략)에 있는 육군훈련소로 입영하라는 경남지방병무청장 명의의 현역입영통지서를 전달받고도 입영일부터 3일이 경과한 날까지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아니하였다.
2. 원심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피고인의 입영 거부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 이 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아,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피고인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가. 비군사적 영역에서의 사회복무(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집총 등 군사적 행동을 수반하는 병역의무를 부과한 후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형사처벌하는 것은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반된다.
나.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수단이 오로지 군사적 행동을 수반하는 것만이 유일무이하지 않음에도 양심의 자유와 병역의 의무를 조화롭게 양립할 수 있는 제3의 선택을 배제한 채 군사적 행동을 수반하는 병역의무의 이행만을 강제하는 것은 양심에 반하는 행위의 강제금지에 저촉되고, 우리 헌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정신적 기본권의 하나인 양심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제약이다.
다.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더라도 우리의 국방력에 유의미한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대체복무 편입 여부를 판정하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심사절차를 마련하고 현역복무와 대체복무 사이의 형평성이 확보되도록 제도를 설계한다면, 병역자원을 확보하고 병역부담의 형평을 기하고자 하는 입법 목적을 병역종류조항과 같은 정도로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
라. 따라서 피고인이 군사훈련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 현역병 입영을 거부한 것은 확고하게 정립된 양심의 자유에 따른 것이다. 순수 민간 사회복무(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병역법하에서의 현역병 입영 통지에 대한 피고인의 입영 거부에는 ‘정당한 사유’가 있다.
3. 그러나 원심의 이러한 판단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그대로 수긍하기 어렵다.
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는 종교적·윤리적·도덕적·철학적 또는 이와 유사한 동기에서 형성된 양심상 결정을 이유로 집총이나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병역의무의 이행을 거부하는 행위를 말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병역의무의 이행을 일률적으로 강제하고 그 불이행에 대하여 형사처벌 등 제재를 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비롯한 헌법상 기본권 보장체계와 전체 법질서에 비추어 타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이라는 자유민주주의 정신에도 위배된다. 따라서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면, 이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 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
구체적인 병역법 위반 사건에서 피고인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할 경우, 그 양심이 과연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인지를 가려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간의 내면에 있는 양심을 직접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으므로 사물의 성질상 양심과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 또는 정황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
예컨대 종교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 주장에 대해서는 종교의 구체적 교리가 어떠한지, 그 교리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명하고 있는지, 실제로 신도들이 양심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고 있는지, 그 종교가 피고인을 정식 신도로 인정하고 있는지, 피고인이 교리 일반을 숙지하고 철저히 따르고 있는지, 피고인이 주장하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오로지 또는 주로 그 교리에 따른 것인지, 피고인이 종교를 신봉하게 된 동기와 경위, 만일 피고인이 개종을 한 것이라면 그 경위와 이유, 피고인의 신앙기간과 실제 종교적 활동 등이 주요한 판단요소가 될 것이다. 피고인이 주장하는 양심과 동일한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 이미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유로 실형으로 복역하는 사례가 반복되었다는 등의 사정은 적극적인 고려요소가 될 수 있다 .
그리고 위와 같은 판단 과정에서 피고인의 가정환경, 성장과정, 학교생활, 사회경험 등 전반적인 삶의 모습도 아울러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양심은 그 사람의 삶 전체를 통하여 형성되고, 또한 어떤 형태로든 그 사람의 실제 삶으로 표출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
정당한 사유가 없다는 사실은 범죄구성요건이므로 검사가 증명하여야 한다. 다만 진정한 양심의 부존재를 증명한다는 것은 마치 특정되지 않은 기간과 공간에서 구체화되지 않은 사실의 부존재를 증명하는 것과 유사하다. 위와 같은 불명확한 사실의 부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사회통념상 불가능한 반면 그 존재를 주장·증명하는 것이 좀 더 쉬우므로, 이러한 사정은 검사가 증명책임을 다하였는지를 판단할 때 고려하여야 한다. 따라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하는 피고인은 자신의 병역거부가 그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서는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에 따른 것이며 그 양심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이라는 사실의 존재를 수긍할 만한 소명자료를 제시하고, 검사는 제시된 자료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방법으로 진정한 양심의 부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 이때 병역거부자가 제시하여야 할 소명자료는 적어도 검사가 그에 기초하여 정당한 사유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구체성을 갖추어야 한다 ( 대법원 2018. 11. 1. 선고 2016도10912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나. 이러한 법리에 따라 이 사건 공소사실의 유무죄를 가림에 있어서는 피고인으로부터 병역거부에 이르게 된 그의 양심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이라는 사실의 존재를 수긍할 만한 구체적인 소명자료를 제출받아 이를 자세히 심리할 필요가 있다.
종교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법 제88조 제1항 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는 점이 이제는 위 전원합의체 판결에 의하여 일반론으로 자리잡게 되었으나, 어느 추상적인 법개념이 현실세계에 실제로 적용되기 위해서는 주어진 사실관계가 해당 법개념에 포섭되는지를 구체적·개별적으로 살펴야 하는 것처럼 양심적 병역거부가 문제 되는 사건에서도 병역거부를 하게 된 원인이 진정한 양심에 따른 것인지는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개별적인 심리·판단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인간의 내면에 있는 양심 자체는 직접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없을지라도, 피고인이 특정 종교를 신봉하고 있다는 취지로 변소하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양심에 기반을 둔 병역거부라고 단정할 수 없다. 종교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의 주장에 관해서는 앞서 주요한 판단요소로 예시한 바를 중심으로 양심과 관련된 간접사실 또는 정황사실이 객관적으로 증명되었는지를 신중하고 충실하게 심리하여야 한다는 점이 간과되어서는 아니 된다.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피고인이 병역거부에 이르게 된 원인으로 주장하는 ‘양심’이 과연 그 주장에 상응하는 만큼 깊고 확고하며 진실된 것인지, 종교적 신념에 의한 것이라는 피고인의 병역거부가 실제로도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에 따른 것으로서 병역법 제88조 제1항 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여야 한다.
그런데도 원심은 종교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법 제88조 제1항 의 정당한 사유에 속한다는 점을 일반론으로서 밝히는 정도에 그쳤을 뿐, 구체적으로 피고인의 병역거부가 그의 진정한 양심에 의한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한 충분한 심리 없이 피고인의 변소를 그대로 받아들여 이 사건 공소사실을 무죄라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한 채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병역법 제88조 제1항 의 정당한 사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 점을 지적하는 검사의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4.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