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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민사지법 1995. 2. 17. 선고 94가단59637 판결 : 항소
[약속어음금][하집1995-1, 110]
판시사항

독립적 은행보증 관계에 있어서 보증은행의 구상채권에 기한 어음금 청구를 기각한 사례

판결요지

독립적 은행보증 관계에 있어서 보증의뢰인(주채무자)이 보증은행의 구상채권을 담보하기 위한 역보증에 기하여 백지어음을 발행한 사안에서, 보증은행이 소재국 정부로부터 영업정지 명령을 받고 곧이어 파산 내지 청산 절차에 들어가 신용 있는 은행으로서의 역할을 하거나 향후 수익자(채권자)에게 보증금을 지급하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보증은행의 어음금 청구를 기각한 사례.

원고

주식회사 비시시아이국제은행 (소송대리인 변호사 이재후 외 2인)

피고

삼환기업 주식회사 (소송대리인 변호사 김성수 외 2인)

주문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원고의 부담으로 한다.

청구취지

피고는 원고에게 금 247, 322, 274원 및 이에 대한 1994. 4. 12.부터 이 사건 소장송달일까지는 연 6푼의, 그 익일부터 완제일까지는 연 2할 5푼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이유

1. 갑 제1호증의 1 내지 갑 제8호증의 2, 을 제1호증의 1 내지 을 제4호증의 각 기재에 다툼 없는 사실을 종합하면 다음의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가. 피고는 1989. 6. 27. 소외 예멘국 고속도로청(이하 예멘당국이라고 한다)과 사이에 예멘국 내 자비드 호데이다 케이엠 16 도로공사에 관하여 예멘 당국을 도급인, 피고를 수급인으로 하는 도급계약을 체결함에 있어, 예멘당국은 건설장비 및 자재와 관련하여 예멘국이 피고에게 미리 지급한 선급금의 반환(이하 피고의 이 선급금 반환채무를 원인채무라고 한다)을 담보하기 위하여 공사금액의 20% 상당액인 미화 1, 019, 447.28달러 및 예멘화 6, 640, 000리알을 보증액으로 하는 예멘국 내 은행 또는 예멘국에 등록된 국제은행 예멘지점이 발행하는 이행보증서를 요구하였다.

나. 서울에는 원고 은행(Bank of Credit and Commerce International (Overseas), Limited)의 서울지점이 있었고 예멘국의 수도인 사나에는 원고 은행과 같이 비시시아이(BCCI)은행으로 통칭되고 동일한 지주회사에 의하여 소유되나 설립준거법이 다르고 룩셈부르크를 본점소재지로 하는 별개의 법인체인 소외 비시시아이 소시에떼 아노님(Bank of Credit and Commerce Int- ernational, societe anonyme, 이하 소외 은행이라고 한다)의 사나지점이 있었는데(소외 은행은 BCCI SA, 원고 은행은 BCCI OS로 약칭되었다), 피고는 원고 은행과 소외 은행을 동일한 은행으로 알고 원고 은행의 서울지점에 그 은행 사나지점 발행의 위 보증서를 발급하게 하여 줄 것을 요청하자 원고 은행 서울지점은 소외 은행 사나지점에 대하여 보증서 번호는 APB-7/89, 발급일자는 같은 해 7. 4., 수익자는 소외 은행 사나지점, 금액은 위 같은 미화 및 예멘화, 유효기간은 1991. 9. 4.로 하는 내용의 역보증서를 제공하고 위 보증서의 발급을 요청하였는바, 이에 따라 소외 은행 사나지점이 보증서 번호는 229/89, 발급일자는 1989. 7. 4., 수익자는 예멘당국, 금액은 위 같은 금액, 유효기간은 1991. 8. 20.로 하는 내용의 보증서를 발급하여 이 보증서가 예멘당국에 제공되었다.

다. 위 보증서에 의하면 보증인인 소외 은행은 시공자인 피고의 태만이나 결함으로 인하여 발생되는 채무나 손실로부터 발주자인 예멘 당국을 보호하기 위하여 발주자가 서면 지시를 하는 경우 보증금액 한도 내에서 시공자의 태만이나 결함이 실질적인 것이든 추정된 것이든 또는 예측된 것이든 불문하고 사전 통고나 판결 또는 행정절차 없이 또 시공자의 태만이나 결함을 보증인에게 증명할 필요도 없이 무조건 즉각적으로 발주자가 요구하는 금액을 지급하여야 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라. 위 보증서의 발급과 관련하여 원고 은행의 서울지점은 소외 은행 사나지점이 보증금을 지급하는 경우 그 비용의 상환을 확보토록 하기 위하여 위 역보증서 발급시에 소외 은행 사나지점과 사이에 역보증계약을 체결하면서 계약당사자나 서울지점 기타 어느 당사자에 의한 이의제기에도 불구하고 소외 은행 사나지점의 서면 또는 확인된 텔렉스에 의한 청구가 있으면 위 보증금액을 초과하지 않는 금액을 무조건 지급하기로 하였으며(이하 제1 역보증이라고 한다), 피고 또한 제1 역보증과 관련하여 원고 은행의 서울지점에 대하여 위 보증금의 범위 내에서 원고에 대하여 적법한 또는 정당한 면책 또는 방어가 될 수 있는 시공자 또는 다른 당사자 또는 기타 상황에 의한 어떠한 이의제기, 분쟁, 가압류, 압류 및 가처분에도 불구하고 예멘 당국이 소외 은행의 보증서에 기하여 지급을 청구하였다는 취지의 진술서를 첨부한 원고 은행 서울지점의 청구만에 의하여 위 보증금액 및 그에 대한 이자의 지급을 상환하기로 하는 역보증을 하였고(이하 제2 역보증이라고 한다), 이에 따른 피고의 의무 이행을 담보하기 위하여 피고가 원고 은행 서울지점에 발행인은 피고, 발행일은 1991. 4. 23., 수취인은 원고 은행 서울지점, 액면은 백지, 지급기일은 공란, 지급지는 서울, 지급장소는 소외 제일은행 돈화문지점으로 된 액면 백지의 약속어음 1매를 교부하고 그 백지 보충권을 수여하였다.

마. 예멘 당국은 1991. 5. 14. 소외 은행 사나지점에 대하여 위 보증서에 의한 보증금의 지급을 청구하였고, 위 사나지점 또한 같은 날 원고 은행 서울지점에 대하여 제1 역보증에 따른 보증금의 지급을 청구하였으며, 원고 은행 서울지점은 같은 달 15. 피고에게 제2 역보증에 의한 보증금의 지급을 청구하였는데, 피고가 원고 은행 서울지점을 상대로 제기한 가처분신청에 대한 이 법원 91카62607 가처분이의 사건, 그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 91나44225 사건, 그 상고심인 대법원 93다44524 사건에서 원고 은행 서울지점이 소외 은행 사나지점에 발행한 위 보증서에 따른 보증금 중 미화 259, 601.95달러를 초과하는 부분은 그 지급을 금지한다는 취지의 판결이 확정됨으로써, 원고 은행 서울지점은 1994. 4. 11. 위 어음의 보충권을 행사하여 위 판결금액과 이에 대한 피고에의 위 지급청구일부터 보충권행사일까지 연 6푼의 비율에 의한 지연손해금을 합한 금액을 그 당시의 환율에 따라 한화로 환산한 금 247, 322, 274원{(259, 601.95×811.10×(1+0.06×1, 062/365)}을 그 액면으로 보충하였다.

2. 가. 원고가 위 어음금의 지급을 구함에 대하여, 피고는 원고 은행과 소외 은행은 모두 부정한 자금 거래에 관련된 혐의로 각국에 산재한 본점과 지점에서 영업이 정지되고 청산절차 등이 개시되었기 때문에 피고가 제2 역보증에 따라 원고 은행에, 원고 은행이 제1 역보증에 따라 소외 은행에 각 그 보증금을 지급하더라도 소외 은행이 위 도급계약상의 발주자인 예멘 당국에 그 보증금을 지급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고, 따라서 가사 피고가 원고 은행에 그 보증금을 지급하더라도 피고의 예멘 당국에 대한 도급계약상의 채무는 그대로 남게 되어 피고로서는 2중 변제의 위험에 빠지게 되므로, 원고의 이 건 청구에 응할 수 없다는 취지로 항변하므로 살펴보기로 한다.

나. 갑 제2 내지 5호증, 갑 제9호증의 1, 2, 을 제5호증의 1 내지 을 제13호증의 각 기재에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면, 원고 은행과 소외 은행은 모두 모기업인 룩셈부르크의 비시시아이 홀딩스 에스에이(BCCI Holdings, SA)가 100% 출자한 은행들로서 대외적으로 엄밀한 구별 없이 비시시아이은행이라는 통칭으로 영업을 하여 온 사실, 원고 은행과 소외 은행을 포함하여 위 모기업에 의하여 소유되고 비시시아이은행으로 통칭되는 세계 각국의 은행들이 불법자금에 관여하고 회계부정 등을 저질렀다는 등의 이유로, 위 각 보증과 역보증 및 이에 따른 지급청구 이후인 1991. 7.경 각 소재국 정부로부터 영업활동의 정지명령을 받고 곧이어 파산 내지는 청산절차에 들어감에 따라 향후 그 절차의 종료와 함께 소멸되기에 이른 사실, 그 청산 등의 절차에서는 자산을 동결하고 채권을 회수한 다음 그 예금주와 다른 채권자들에 대한 채무를 변제하게 되는데, 아직 그 절차가 종료되지는 아니하였으나 원고 은행 서울지점의 경우에는 그 자산으로 모든 채무를 변제하고도 잉여가 있어 이를 본점에 송금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소외 은행의 경우에는 그 총자산으로 예멘 당국에 대한 위 보증채무를 포함한 총채무를 변제할 수 있을지 여부가 극히 불투명한 사실, 위와 같은 영업정지 이후 통칭 비시시아이은행들은 더 이상 새로이 위와 같은 보증서를 발급할 수 없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명의로 이미 발행된 것도 그 지급이 극히 불확실하고 설령 지급된다고 하더라도 청산 등 절차의 진행 경과에 따라서 그 지급시기가 지연될 수밖에 없게 됨으로써 국제적 신용이 추락된 사실, 한편 현재까지 원고 은행이 소외 은행에, 소외 은행이 예멘 당국에 그 각 보증금을 현실로 지급하지는 아니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다. 소외 은행의 위 보증과 원고 은행의 제1 역보증은 수익자의 서면에 의한 청구가 있으면 그 보증은행으로서는 피보증인의 책임 유무에 대한 증거의 제출 없이 보증한도액 내에서 그 청구금액을 무조건 지급하기로 하는 약정으로서 원인관계와는 분리되어 독립적, 추상적으로 채무를 부담하는 이른바 제1차적 청구의 보증(First Demand Guarantee)이고 피고의 제2 역보증 역시 그 약정 내용이 위와 같지만, 그 본질에 있어서는 소외 은행의 제1차 청구보증은 최종 수익자인 예멘 당국과 그 보증의 원인된 거래관계상의 채무자인 피고 사이의 원인채무에 대한 직접의 보증이고 원고 은행의 제1 역보증은 소외 은행의 구상채권에 대한 구상보증이며 피고의 제2 역보증은 주채무자의 구상의무의 담보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것이고, 위 각 보증 및 역보증에서의 법률관계는 은행과 수익자 내지는 채권자, 은행과 채무자 사이의 관계로 나눌 수 있는데, 은행과 수익자 사이의 관계는 별론으로 하고, 이 사건에서 문제된 은행과 채무자 사이의 법률관계를 살펴볼 때, 제1, 2 역보증에 있어서 보증채무의 이행과 이로 인한 주채무자의 주채무의 소멸이라는 일반적인 구상권 행사 요건을 무시하고 위와 같이 보증인인 은행의 일방적인 청구만으로 각 구상권을 바로 행사할 수 있게 한 것은, 우리 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엄격한 기준에 따라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에 한하여 은행의 설립을 인가하고 그 영업이 부정하게 이루어지지 않도록 적절한 감독을 하고 있으며, 상거래에 있어서 은행, 특히 자산 규모나 영업 실적 등에 의하여 국제적으로 신용이 있다고 인정되는 은행에 대하여는 약정을 위반하거나 거래 상대방에게 사기적인 청구를 하지 않음은 물론 그 영업이 안정적이고 지속적이므로 서로 다른 나라에 있는 상인들 사이의 국제적인 물품거래나 도급계약에 있어서 계약당사자들의 채무불이행이나 신용 악화와 관계없이 그 대금의 결제와 관련하여 공정한 제3자로서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는 사정 등을 배경으로 하여, 비록 은행이 수익자에 대한 채무를 이행하지 아니한 채 보증약정에 따라 먼저 그 채무자에 대하여 구상권을 행사하더라도 은행이 최종적으로 그 보증채무를 이행하여 채무자의 주채무를 소멸시키거나 다른 사정이 있어서 보증금을 지급하지 못하게 되었다면 이미 채무자로부터 지급받은 구상금을 반환하리라는 기대를 전제로 은행의 구상권 행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다고 할 것인바, 위에서 인정한 바와 같이 원고 은행과 소외 은행의 경우에는 이미 그 영업이 정지되고 그 채무의 이행도 국가의 감독에 따른 청산 등 절차의 진행 상황에 전적으로 좌우되게 됨으로써 그 각 보증의 원인이 된 위 도급계약의 어느 당사자도 원고 은행과 소외 은행에 대하여 위에서 본 바와 같은 신용 있는 은행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예멘 당국도 비록 소외 은행의 청산 등 절차가 시작되기 이전에 위 보증금의 지급청구를 하기는 하였으나 이제는 더 이상 다른 장애 없이 그 보증서에 따른 청구의 효력에 의하여서만 그 보증금을 지급받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으며, 무엇보다도 피고가 원고 은행에 대하여 제2 역보증에 의한 보증금을 지급한다는 것은 경제적으로는 예멘 당국에 대한 원인채무의 변제로서의 실질을 갖는다고 할 것인데, 위와 같은 상황하에서라면 피고가 이를 지급하더라도 또는 나아가 원고 은행이 소외 은행에 제1 역보증에 의한 보증금을 지급하더라도 과연 소외 은행이 그 청산 등 절차에서 채무 초과 상태에 이르거나 기타 어떤 법적 장애도 없이 예멘 당국에 그 보증금을 지급하리라고 기대하기는 몹시 어렵게 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원·피고 사이의 약정만을 내세워서 피고로 하여금 원고 은행에 대한 제2 역보증에 의한 구상금채무를 변제하도록 강요한다면 피고는 이와 함께 예멘 당국에 대한 원인채무까지도 2중으로 변제하게 될 위험에 빠지는 결과가 될 것이고 이러한 결과는 사정변경의 원칙에 비추어 보더라도 몹시 부당하여 법이 이를 강제하여서는 아니된다는 것은 명백하며, 그렇다면 이미 소외 은행의 보증과 원고 은행의 제1 역보증, 피고의 제2 역보증은 그 경제적, 법적 전제가 무너짐으로써 그 각 보증계약 당시 기대되었던 정상적 기능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할 것이고, 또한 제2 역보증 당시의 당사자들의 의사도 이러한 경우까지 그 구상채무의 이행을 강요하고 이를 이의 없이 수락한다는 취지는 아니었음은 법률행위의 해석에 관한 일반 원칙에 비추어 보아도 분명하다.

3. 결국 위와 같은 이유로 피고에 대한 구속력을 인정할 수 없는 제2 역보증에 기하여 위 어음의 보충권을 행사하였음을 원인으로 한 원고의 이 사건 어음금 청구는 부당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이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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