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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2019. 12. 27. 선고 2012헌마939 공보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제3조의 분쟁해결 부작위 위헌확인]
[공보279호 178~187] [전원재판부]
판시사항

가. 청구인들의 대일청구권이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조약 제172호, 이하 ‘이 사건 협정’이라 한다) 제2조 제1항에 의하여 소멸하였는지 여부에 관한 한·일 양국 간 해석상 분쟁을 이 사건 협정 제3조가 정한 절차에 의하여 해결할 피청구인(외교부장관)의 작위의무가 인정되는지 여부(적극)

나. 피청구인이 위 작위의무를 불이행하고 있는지 여부(소극)

결정요지

가. 헌법 전문, 제2조 제2항, 제10조와 이 사건 협정 제3조의 문언에 비추어 볼 때, 피청구인이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라 분쟁해결의 절차로 나아갈 의무는 일본국에 의해 자행된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불법행위에 의하여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당한 자국민들이 청구권을 실현하도록 협력하고 보호하여야 할 헌법적 요청에 의한 것으로서, 그 의무의 이행이 없으면 청구인들의

기본권이 중대하게 침해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피청구인의 작위의무는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로서 그것이 법령에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라고 할 것이다.

특히, 우리 정부가 직접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한 것은 아니지만, 일본에 대한 청구권의 실현 및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의 회복에 대한 장애상태가 초래된 것은 우리 정부가 청구권의 내용을 명확히 하지 않고 ‘모든 청구권’이라는 포괄적인 개념을 사용하여 이 사건 협정을 체결한 것에도 책임이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그 장애상태를 제거하는 행위로 나아가야 할 구체적 의무가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나. 우리 정부는 2013. 6. 3. 구술서로 일본국에 대하여 사할린 한인의 대일청구권 문제에 대한 한·일 양국 간의 입장이 충돌하고 있으므로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른 한·일 외교당국 간 협의를 개최할 것을 제안한다는 취지를 밝힌 바 있고, 그 후 수차례에 걸쳐 협의 요청에 대한 대응을 촉구해 왔으며, 현재에도 그와 같은 기조가 철회된 바는 없다.

피청구인이 청구인들이 원하는 수준의 적극적인 노력을 펼치지 않았다 해도, 이 사건 협정 제3조상 분쟁해결절차를 언제, 어떻게 이행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국가마다 가치와 법률을 서로 달리하는 국제환경에서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를 다루는 외교행위의 특성과 이 사건 협정 제3조 제1항, 제2항이 모두 외교행위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피청구인에게 상당한 재량이 인정된다. 이러한 사실을 종합하면, 설사 그에 따른 가시적인 성과가 충분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피청구인이 자신에게 부여된 작위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재판관 이종석의 별개의견

헌법 제10조, 제2조 제2항의 규정이나 헌법전문으로부터 우리 정부가 청구인들에 대하여 부담하는 작위의무가 도출된다고 볼 수 없다. 또한 이 사건 협정으로부터도 청구인들을 위하여 협정상 분쟁해결절차로 나아가야 할 작위의무가 도출되지 않는다. 나아가 그러한 작위의무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이는 일반적·추상적 의무를 의미할 뿐, 구체적인 작위의무라고 볼 수 없다.

참조조문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조약 제172호, 1965. 6. 22. 체결, 1965. 12. 18. 발효) 제2조, 제3조

참조판례

가. 헌재 2011. 8. 30. 2006헌마788 , 판례집 23-2상, 366

당사자

청 구 인한○○ 외 2295인

청구인들의 대리인 법무법인 인앤인

담당변호사 경수근외 3인

피청구인외교부장관

주문

이 사건 심판청구를 모두 각하한다.

이유

1. 사건개요

가. 청구인들은 일제에 의한 강제징용 등으로 사할린에 동원되었다가 그 후 대한민국에 영주귀국한 자 및 그 가족으로서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진 자들이다. 청구인들은 일본국 소속 회사가 경영하던 광산의 탄광 등에서 강제노동을 하면서 수령한 급여를 일본국에 우편저금이나 간이생명보험 형태로 강요에 의하여 적립하였지만, 아직까지 그 돈을 지급받지 못한 상태이다. 피청구인은 외교, 경제외교 및 국제경제협력외교, 국제관계 업무에 관한 조정, 조약 기타 국제협정, 재외국민의 보호·지원, 재외동포정책의 수립, 국제정세의 조사 분석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국가기관이다.

나. 대한민국은 1965. 6. 22. 일본국과의 사이에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조약 제172호)을 체결하였다.

다. 청구인들은, 자신들이 일본국에 대하여 가지는 환불청구권과 배상청구권이 위 협정에 의하여 소멸되었는지 여부에 관하여, 이미 소멸되었다고 보는 일본국과 소멸되지 않았다고 보는 대한민국 간에는 위 청구권에 관한 해석상 분쟁이 존재하므로, 피청구인은 위 협정 제3조가 정한 절차에 따라 해석상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는데도 이를 전혀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2012. 11. 23. 피청구인의 부작위가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여 위헌이라는 확인을 구하는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2. 심판대상

이 사건 심판대상은 청구인들이 일본국에 대하여

가지는 청구권이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조약 제172호, 이하 ‘이 사건 협정’이라 한다) 제2조 제1항에 의하여 소멸되었는지 여부에 관한 한·일 양국 간 해석상 분쟁을 위 협정 제3조가 정한 절차에 따라 해결하지 아니하고 있는 피청구인의 부작위가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이다.

이와 관련된 위 협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관련규정]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조약 제172호, 1965. 6. 22. 체결, 1965. 12. 18. 발효)

대한민국과 일본국은, 양국 및 양국 국민의 재산과 양국 및 양국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를 해결할 것을 희망하고, 양국 간의 경제협력을 증진할 것을 희망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제1조

1. 일본국은 대한민국에 대하여,

(a)현재에 있어서 1천 8십억 일본 원(108,000,000,000원)으로 환산되는 3억 아메리카합중국 불($300,000,000)과 동등한 일본 원의 가치를 가지는 일본국의 생산물 및 일본인의 용역을 본 협정의 효력발생일로부터 10년 기간에 걸쳐 무상으로 제공한다. 매년의 생산물 및 용역의 제공은 현재에 있어서 1백 8억 일본 원(10,800,000,000원)으로 환산되는 3천만 아메리카합중국 불($30,000,000)과 동등한 일본 원의 액수를 한도로 하고, 매년의 제공이 본 액수에 미달되었을 때에는 그 잔액은 차년 이후의 제공액에 가산된다. 단, 매년의 제공 한도액은 양 체약국 정부의 합의에 의하여 증액될 수 있다.

(b)현재에 있어서 7백 20억 일본 원(72,000,000,000원)으로 환산되는 2억 아메리카합중국 불($200,000,000)과 동등한 일본 원의 액수에 달하기까지의 장기 저리의 차관으로서, 대한민국 정부가 요청하고, 또한 3의 규정에 근거하여 체결될 약정에 의하여 결정되는 사업의 실시에 필요한 일본국의 생산물 및 일본인의 용역을 대한민국이 조달하는 데 있어 충당될 차관을 본 협정의 효력 발생일로부터 10년 기간에 걸쳐 행한다. 본 차관은 일본국의 해외경제협력기금에 의하여 행하여지는 것으로 하고, 일본국 정부는 동 기금이 본 차관을 매년 균등하게 이행할 수 있는데 필요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 전기 제공 및 차관은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에 유익한 것이 아니면 아니된다.

2.양 체약국 정부는 본조의 규정의 실시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권고를 행할 권한을 가지는 양 정부 간의 협의기관으로서 양 정부의 대표자로 구성될 합동위원회를 설치한다.

3.양 체약국 정부는 본조의 규정의 실시를 위하여 필요한 약정을 체결한다.

제2조

1.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에 샌프란시스코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

2.본조의 규정은 다음의 것(본 협정의 서명일까지 각기 체약국이 취한 특별조치의 대상이 된 것을 제외한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a)일방체약국의 국민으로서 1947년 8월 15일부터 본 협정의 서명일까지 사이에 타방체약국에 거주한 일이 있는 사람의 재산, 권리 및 이익

(b)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으로서 1945년 8월 15일 이후에 있어서의 통상의 접촉의 과정에 있어 취득되었고 또는 타방체약국의 관할 하에 들어오게 된 것

3.2의 규정에 따르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으로서 본 협정의 서명일에 타방체약국의 관할 하에 있는 것에 대한 조치와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타방체약국 및 그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으로서 동일자 이전에 발생한 사유에 기인하는 것에 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

제3조

1.본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 체약국 간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한다.

2.1.의 규정에 의하여 해결할 수 없었던 분쟁은

어느 일방 체약국의 정부가 타방 체약국의 정부로부터 분쟁의 중재를 요청하는 공한을 접수한 날로부터 30일의 기간 내에 각 체약국 정부가 임명하는 1인의 중재위원과 이와 같이 선정된 2인의 중재위원이 당해 기간 후의 30일의 기간 내에 합의하는 제3의 중재위원 또는 당해 기간 내에 이들 2인의 중재위원이 합의하는 제3국의 정부가 지명하는 제3의 중재위원과의 3인의 중재위원으로 구성되는 중재위원회에 결정을 위하여 회부한다. 단, 제3의 중재위원은 양 체약국 중의 어느 편의 국민이어서는 아니 된다.

3.어느 일방 체약국의 정부가 당해 기간 내에 중재위원을 임명하지 아니하였을 때, 또는 제3의 중재위원 또는 제3국에 대하여 당해 기간 내에 합의하지 못하였을 때에는 중재위원회는 양 체약국 정부가 각각 30일의 기간 내에 선정하는 국가의 정부가 지명하는 각 1인의 중재위원과 이들 정부가 협의에 의하여 결정하는 제3국의 정부가 지명하는 제3의 중재위원으로 구성한다.

4.양 체약국 정부는 본조의 규정에 의거한 중재위원회의 결정에 복한다.

제4조

본 협정은 비준되어야 한다. 비준서는 가능한 한 조속히 서울에서 교환한다. 본 협정은 비준서가 교환된 날로부터 효력을 발생한다.

3. 청구인들의 주장

가. 청구인들은 이 사건 협정이 체결될 당시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므로 이 사건 협정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 사건 협정에 의하여 타결된 것은 우리 정부의 국민에 대한 외교적 보호권만이고, 우리 국민의 일본국에 대한 개인적 청구권은 포기되지 않았다.

일본국은 청구인들이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했으므로 이 사건 협정 제2조 제1항에 의해 일본국에 대한 청구권이 소멸했다고 주장하는 데 반해, 우리 정부는 청구인들의 청구권이 이 사건 협정에 의하여 소멸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고 보아, 한·일 양국 간에 이에 관한 해석상의 분쟁이 존재한다.

나. 이 사건 협정 제3조는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한·일 양국 간의 분쟁이 있을 경우 외교상 경로나 중재절차에 의한 해결방법을 규정함으로써 체약국에게 위 협정의 해석과 관련한 분쟁해결의무를 부과하고 있으므로, 우리 정부는 이 사건 협정의 해석과 관련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작위의무가 있으며,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음을 명시한 헌법 전문,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국가의 기본적 인권 보장의무를 선언한 헌법 제10조, 재산권의 보장에 관한 헌법 제23조 및 이 사건 협정의 체결 당사자로서 행정상 신뢰보호의 원칙에 입각해 있다.

다. 우리 정부는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실효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행정부작위는 헌법에 위배된다.

4. 이 사건의 배경

이 사건을 판단하기 위한 전제로서, 이 사건의 배경 및 전체적 경위를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가. 이 사건 협정의 체결 경위 및 그 후의 보상처리과정

(1) 해방 후 한국에 진주한 미군정 당국은 1945. 12. 6. 공포한 군정법령 제33호로써 재한 구 일본재산(在韓 舊 日本財産)을 그 국유·사유를 막론하고 미군정청에 귀속시켰고, 이러한 구 일본재산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직후인 1948. 9. 20.에 발효한 ‘한미간 재정 및 재산에 관한 최초협정’으로 한국 정부에 이양되었다.

(2) 한편, 1951. 9. 8. 샌프란시스코에서 체결된 연합국과 일본국과의 평화조약에서는 한국에게 일본에 대하여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되지 않았고, 다만, 위 조약 제4조 a항에 일본의 통치로부터 이탈된 지역의 시정 당국 및 주민과 일본 및 일본 국민 간의 재산상 채권·채무관계는 이러한 당국과 일본 간의 특별약정으로써 처리한다는 것을, 제4조 b항에 일본은 전기 지역에서 미군정 당국이 일본 및 일본인의 재산을 처분한 것을 유효하다고 인정한다는 것을 각 규정하였다.

(3) 위 조약 제4조 a항의 취지에 따라 대한민국 및 대한민국 국민과 일본국 및 일본 국민 간의 재산상 채권·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하여, 1951. 10. 21. 예비회담 이후 1952. 2. 15. 제1차 한·일회담 본회의가 열려 우리나라와 일본의 국교정상화를 위한 회담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래, 7차례의 본회의와 이에 따른 수십 차례의 예비회담, 정치회담 및 각 분과위원회별 회의 등을 거쳐, 1965. 6. 22. 이 사건 협정과 어업에 관한 협정, 재일교포의 법적 지위 및 대우에 관한 협정,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 등 4개의 부속협정이 체결되기에 이르렀다.

(4) 제1차 한·일회담(1952. 2. 15.∼4. 25.) 시 우리

정부는 ‘한·일간 재산 및 청구권 협정 요강 8개항’(이하 ‘8개 항목’이라 한다)을 제시하였는데, 이는 1. 한국에서 반출된 고서적, 미술품, 골동품, 그 외 국보, 지도원판 및 지금, 지은을 반환할 것, 2. 1945. 8. 9. 현재, 일본 정부의 대 조선총독부 채무를 변제할 것, 3. 1945. 8. 9. 이후, 한국에서 이체 또는 송금된 금액을 반환할 것, 4. 1945. 8. 9. 현재, 한국에 본사 또는 주 사무소가 있는 법인의 재일 재산을 반환할 것, 5. 한국법인 또는 자연인의 일본 및 일본국민에 대한 일본국채, 공채, 일본은행권, 피징용 한국인의 미수금, 그 외 한국인의 청구권을 변제할 것, 6. 한국 법인 또는 한국 자연인 소유의 일본 법인 주식 또는 그 외 증권을 법적으로 인정할 것, 7. 전기 재산 또는 청구권에서 발생한 과실을 반환할 것, 8. 전기 반환 및 결제는 협정 성립 후 즉시 개시하고 늦어도 6개월 이내에 종료할 것의 8개 항목이다.

(5) 그러나 제1차 회담은 위 8개 항목의 청구권 주장에 대응한 일본 측의 대한·일본인재산청구권 주장으로 결렬되었고, 이후 독도 문제 및 평화선 문제에 대한 이견, “일본에 의한 36년간의 한국통치는 한국에 유익한 것이었다.”는 일본 측 수석대표 구보타(久保田) 망언 및 양국의 정치적 상황 등으로 제4차 한·일회담까지는 청구권 문제에 관한 실질적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6) 그 뒤 8개 항목에 대한 실질적 토의가 이루어진 것은 제5차 한·일회담(1960. 10. 25.∼1961. 5. 15.)이었는데, 8개 항목 각 항에 대한 일본 측의 입장은 대체로, 제1항과 관련하여서는, 지금 및 지은은 합법적인 절차에 의하여 반출한 것이므로 반환의 법적 근거가 없고, 제2, 3, 4항과 관련하여서는, 한국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은 미군정법령 제33호가 공포된 1945. 12. 6. 이후의 것에 한하며, 제5항과 관련하여서는 한국 측이 개인의 피해에 대한 보상 문제를 들고 나오는 것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한국 측에 철저한 근거의 제시를 요구, 즉, 구체적인 징용, 징병의 인원수나 증거자료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제5차 회담의 청구권 위원회에서는 1961. 5. 16. 군사정변에 의해 회담이 중단되기까지 8개 항목의 제1항부터 제5항까지 토의가 진행되었으나 근본적인 인식의 차이를 확인하였을 뿐, 실질적인 의견 접근을 이루는 데는 실패하였다.

(7) 이에 1961. 10. 20. 제6차 한·일회담이 재개된 후에는 청구권에 대한 세부적 논의는 시일만 소요될 뿐 해결이 요원하다는 판단 하에 정치적 측면의 접근이 모색되었다. 1961. 11. 22. 박정희·이케다 회담 이후 1962. 3. 외상회담에서는 한국 측의 지불요구액과 일본 측의 지불용의액을 비공식적으로 제시하기로 하였고, 그 결과 한국 측의 순변제(純辨濟) 7억 불에 대하여 일본 측의 순변제 7만 4천불 및 차관 2억 불이라는 차이가 확인되었다.

(8)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 측은 당초부터 청구권에 대한 순변제로 하면 법률관계와 사실관계를 엄격히 따져야 될 뿐 아니라 38선 이남에 국한되어야 하며 그 금액도 적어져서 한국 측이 수락할 수 없게 될 터이니, 유상과 무상의 경제협력의 형식을 취하여 금액을 상당한 정도로 올리고 그 대신 청구권을 포기하도록 하자고 제안하였다. 이에 대하여 한국 측은 청구권에 대한 순변제로 받아야 하는 입장이나 문제를 대국적 견지에서 해결하기 위하여 청구권 해결의 테두리 안에서 순변제와 무상조 지불의 2개 명목으로 해결할 것을 처음에 주장하였고, 그 후에 다시 양보하여 청구권 해결의 테두리 안에서 순변제 및 무상조 지불의 2개 명목으로 하되 그 금액을 각각 구분 표시하지 않고 총액만 표시하는 방법으로 해결할 것을 제의하였다.

(9) 이후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일본에서 이케다 일본 수상, 오히라 일본 외상과 회담하고, 오히라 외상과의 1962. 11. 12. 회담 시 청구권 문제의 금액, 지불세목 및 조건 등에 관하여 양측 정부에 건의할 타결안에 관한 원칙적인 합의를 하였고, 구체적 조정과정을 거쳐 제7차 한·일회담이 진행 중이던 1965. 4. 3. 당시 외무부 장관이던 이동원과 일본의 외무부 대신이었던 시이나 간에 ‘한·일 간의 청구권 문제 해결 및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졌으며, 1965. 6. 22. 명목을 구분표시하지 않고 일본이 대한민국에 일정 금액을 무상 및 차관으로 지불하되,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를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이 사건 협정이 체결되었다.

(10) 그 후 우리 정부는 1966. 2. 19. ‘청구권자금의운용및관리에관한법률’(1982. 12. 31. 법률 제3613호로 폐지)을 제정하여 무상자금 중 민간보상의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였고, 이후 1971. 1. 19. ‘대일민간청구권신고에관한법률’(1982. 12. 31. 법률 제3614호로 폐지)을 제정하여 보상신청을 받았으나, 그 대상은 일제에 의해 강제로 징용·징병된 사람 중 사망자와 위 회담 과정에서 대일 민간청구권자로 논의되어 알려졌던 민사채권 또는 은행예금채권 등을 가지고 있는 민사청구

권 보유자에 한정되었고, 그 뒤 1974. 12. 21. ‘대일민간청구권보상에관한법률’(1982. 12. 31. 법률 제3615호로 폐지)을 제정하여 1975. 7. 1.부터 1977. 6. 30.까지 합계 91억 8,769만 3천 원을 지급하였다(헌재 2011. 8. 30. 2006헌마788 ).

한편, 이 사건 협정의 체결과정에서 사할린 한인의 문제는 취급되지 않았다.

나. 사할린 한인 관련 청구권 문제에 대한 한·일 양국의 입장

(1) 일본국은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1905년 포츠머스 조약에 따라 사할린 남부를 지배하게 되었고,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해 조선인들을 데려가 탄광이나 군수시설에서 강제노동을 시켰다. 전쟁이 끝난 후 사할린은 소련에 편입되었는데, 한인들은 일본으로 귀환하지 못한 채 사할린에 남게 되었다.

일본국은 저축 장려 등의 명분을 내세워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급여를 우편저금이나 간이생명보험 등의 형태로 강제로 적립시켰는데, 이들은 전후 사할린에서 이처럼 적립된 저금 등을 수령할 수 없었다.

(2) 사할린 잔류 한인 중 일부는 2007. 9. 25. 사할린에서 강제적으로 가입했지만 돌려받지 못한 우편저금 등에 관한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에서 일본국은 이 사건 협정에 의하여 한·일 양국 간 및 양국민의 청구권 문제는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본국에 대한 청구권을 가지고 있던 사할린 잔류 한인 및 그 상속인은 1965년 당시 한국 국적이 없었다 해도 그 후 영주귀국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했으므로 그 시점부터 이 사건 협정에 의해 그들이 일본국에 대해 가지고 있던 청구권은 모두 소멸했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 정부는 이 사건 협정으로 사할린 잔류 한인의 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았고, 더욱이 위 협정 서명일 이후 국적을 취득했다는 이유로 청구권이 소멸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5. 판 단

가. 행정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

행정권력의 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은 공권력의 주체에게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가 특별히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이에 의거하여 기본권의 주체가 행정행위 내지 공권력의 행사를 청구할 수 있음에도 공권력의 주체가 그 의무를 해태하는 경우에만 허용된다. 위에서 말하는 ‘공권력의 주체에게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가 특별히 구체적으로 규정되어’가 의미하는 바는, 첫째, 헌법상 명문으로 공권력 주체의 작위의무가 규정되어 있는 경우, 둘째, 헌법의 해석상 공권력 주체의 작위의무가 도출되는 경우, 셋째, 공권력 주체의 작위의무가 법령에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 등을 포괄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헌재 2011. 8. 30. 2006헌마788 ).

나. 피청구인의 작위의무

만약 공권력의 주체에게 위와 같은 작위의무가 없다면 헌법소원은 부적법하게 되므로, 이 사건에서 피청구인에게 위와 같은 작위의무가 존재하는지를 살핀다.

이 사건 협정은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으로서 헌법 제6조 제1항에 따라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런데 위 협정 제3조 제1항은, “본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 체약국 간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한다.”, 같은 조 제2항은, “1.의 규정에 의하여 해결할 수 없었던 분쟁은 어느 일방 체약국의 정부가 타방 체약국의 정부로부터 분쟁의 중재를 요청하는 공한을 접수한 날로부터 30일의 기간 내에 각 체약국 정부가 임명하는 1인의 중재위원과 이와 같이 선정된 2인의 중재위원이 당해 기간 후의 30일의 기간 내에 합의하는 제3의 중재위원 또는 당해 기간 내에 이들 2인의 중재위원이 합의하는 제3국의 정부가 지명하는 제3의 중재위원과의 3인의 중재위원으로 구성되는 중재위원회에 결정을 위하여 회부한다.”라고 각 규정하고 있다.

위 분쟁해결조항에 의하면, 이 사건 협정의 해석에 관하여 우리나라와 일본 간에 분쟁이 발생한 경우, 정부는 이에 따라 1차적으로는 외교상 경로를 통하여, 2차적으로는 중재에 의하여 해결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것이 앞에서 본 ‘공권력 주체의 작위의무가 법령에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지를 본다.

청구인들은 일제에 의하여 강제로 동원되어 일본국 소속 회사가 경영하던 광산의 탄광 등에서 강제노동을 당했으며, 그 노동의 대가로 수령한 급여를 강요에 의해 우편저금 등의 형태로 적립했지만 아직 돌려받지 못한 상태이다. 일본국은 이 사건 협정에 의하여 위 저금에 관한 청구권과 배상청구권이 모두 소멸되었다며 청구인들에 대한 환불이나 손해배상을 거부한 반면, 우리 정부는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청구인들의 위 청구권은 이 사건 협정에 의하여 해결된 것이 아니어서 아직까지 존속한다는 입장이므로, 결국 이 사건 협정의 해석에 관하여 한·일 간에 분쟁이 발생한 상태이다.

우리 헌법제10조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때 인간의 존엄성은 최고의 헌법적 가치이자 국가목표규범으로서 모든 국가기관을 구속하며, 그리하여 국가는 인간존엄성을 실현해야 할 의무와 과제를 안게 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간의 존엄성은 ‘국가권력의 한계’로서 국가에 의한 침해로부터 보호받을 개인의 방어권일 뿐 아니라, ‘국가권력의 과제’로서 국민이 제3자에 의하여 인간존엄성을 위협받을 때 국가는 이를 보호할 의무를 부담한다.

또한 헌법 제2조 제2항은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바, 이러한 재외국민 보호의무에 관하여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2조 제2항에서 규정한 재외국민을 보호할 국가의 의무에 의하여 재외국민이 거류국에 있는 동안 받는 보호는 조약 기타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와 당해 거류국의 법령에 의하여 누릴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의 정당한 대우를 받도록 거류국과의 관계에서 국가가 하는 외교적 보호와 국외거주 국민에 대하여 정치적인 고려에서 특별히 법률로써 정하여 베푸는 법률·문화·교육 기타 제반영역에서의 지원을 뜻하는 것이다.”라고 판시함으로써(헌재 1993. 12. 23. 89헌마189 ), 국가의 재외국민에 대한 보호의무가 헌법에서 도출되는 것임을 인정한 바 있다.

한편, 우리 헌법은 전문에서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의 계승을 천명하고 있는바, 비록 우리 헌법이 제정되기 전의 일이라 할지라도 국가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의무를 수행하지 못한 일제강점기에 강제 동원되어 강제노동에 처해졌고 그 노동의 대가까지 잃었던 자들의 훼손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회복시켜야 할 의무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지금의 정부가 국민에 대하여 부담하는 가장 근본적인 보호의무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

위와 같은 헌법규정들 및 이 사건 협정 제3조의 문언에 비추어 볼 때, 피청구인이 위 제3조에 따라 분쟁해결의 절차로 나아갈 의무는 일본국에 의해 자행된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불법행위에 의하여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당한 자국민들이 아직 돌려받지 못한 재산과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에 대한 청구권을 실현할 수 있도록 협력하고 보호하여야 할 헌법적 요청에 의한 것으로서, 그 의무의 이행이 없으면 청구인들의 기본권이 중대하게 침해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피청구인의 작위의무는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로서 그것이 법령에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라고 할 것이다.

나아가 특히, 우리 정부가 직접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한 것은 아니지만, 청구인들의 일본에 대한 배상청구권의 실현 및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의 회복을 하는 데 있어서 현재의 장애상태가 초래된 것은 우리 정부가 청구권의 내용을 명확히 하지 않고 ‘모든 청구권’이라는 포괄적 개념을 사용하여 이 사건 협정을 체결한 것에도 책임이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피청구인에게 그 장애상태를 제거하는 행위로나아가야 할 구체적 작위의무가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다. 공권력의 불행사

피청구인에게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가 있음을 인정할 수 있다 하더라도, 피청구인이 이를 이행하고 있는 상태라면, 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청구는 부적법하다. 피청구인의 작위의무 이행은 이행행위 그 자체만을 가리키는 것이지 이를 통해 청구인들이 원하는 결과까지 보장해 주는 이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기록에 의하면, 피청구인은 다음과 같은 여러 외교적 경로를 이용하여 사할린 한인의 청구권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였음이 인정된다. 즉, 우리 정부는 2013. 6. 3. 구술서로 일본국에 대하여 사할린 한인의 대일청구권 문제에 대한 한·일 양국 간의 입장이 충돌하고 있으므로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른 한·일 외교당국 간 협의를 개최할 것을 제안한다는 취지를 밝힌 바 있고, 2014. 11. 27.자, 2015. 3. 16.자, 2015. 9. 18.자, 2015. 12. 15.자 각 국장급 면담, 2016. 1. 21.자 실무협의를 통해 2013. 6. 3.자 구술서에서 제안한 바와 같은 협의 요청에 대한 성의 있는 대응을 촉구해 왔으며(을 제32호, 제35호, 제39호, 제41호, 제42호), 현재에도 그와 같은 기조가 철회된 바는 없다.

피청구인이 2013. 6. 3.자 구술서를 통해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의한 분쟁해결절차로서 외교 협의를 개시할 것을 일본국 정부에 제의한 사실, 그리고 여러 차례에 걸쳐 위 제의에 대한 성의 있는 대응을 일본 측에 요청한 사실을 고려한다면, 설사 그에 따른 가시적인 성과가 충분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피청구인이 자신에게 부여된 작위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피청구인이 청구인들이 원하는 수준의 적극적인 노력을 펼치지 않았다 해도, 이 사건 협정 제3조상 분쟁해결절차를 언제, 어떻게 이행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국가마다 가치와 법률을 서로 달리하는 국제

환경에서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를 다루는 외교행위의 특성과 이 사건 협정 제3조 제1항, 제2항이 모두 외교행위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피청구인에게 상당한 재량이 인정된다. 사정이 이와 같다면, 현재 피청구인이 이 사건 협정 제3조상 분쟁해결절차 이행에 관한 작위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부작위상태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비록 피청구인이 청구인들의 대일청구권 문제에서 청구인들의 기대만큼 신속하고 적극적이지 않았다 해도, 이 사건 협정 제3조상 분쟁해결절차와 관련하여 피청구인이 작위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으므로, 작위의무 불이행을 전제로 그것이 위헌임을 주장하는 이 사건 심판청구는 부적법하다.

6. 결 론

그렇다면 이 사건 심판청구는 부적법하므로 모두 각하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이 결정은 재판관 이종석의 아래 7.과 같은 별개의견이 있는 외에는 나머지 관여 재판관의 일치된 의견에 의한 것이다.

7. 재판관 이종석의 별개의견

나는 이 사건 심판청구가 모두 부적법하다는 결론에 동의하나, 그 이유에 관해서는 법정의견과 견해를 달리하므로 다음과 같이 의견을 밝힌다.

가. 행정부작위의 헌법소원 대상성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의하면 공권력의 행사뿐 아니라 공권력의 불행사도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공권력의 불행사로 말미암아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가 위 헌법소원을 제기할 자격이 있는 것이므로, 행정권력의 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은 공권력의 주체에게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가 특별히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이에 의거하여 기본권의 주체가 행정행위 내지 공권력의 행사를 청구할 수 있음에도 공권력의 주체가 그 의무를 해태하는 경우에 한하여 허용된다. 여기서 말하는 ‘공권력의 주체에게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가 특별히 구체적으로 규정되어’란, 헌법상 명문으로 작위의무를 규정하고 있거나, 헌법의 해석상 작위의무가 도출되거나, 법령에 구체적으로 작위의무가 규정되어 있는 경우를 말한다(헌재 2004. 10. 28. 2003헌마898 ; 헌재 2018. 3. 29. 2016헌마795 참조). 또한, 이러한 공권력 주체의 구체적 작위의무는 ‘기본권의 주체인 국민에 대한’ 의무를 의미한다(헌재 1991. 9. 16. 89헌마163 ; 헌재 2000. 3. 30. 98헌마206 등 참조).

나. 피청구인에게 이 사건 협정 제3조가 정한 절차에 따라 해결하여야 할 헌법상 작위의무가 인정되는지 여부

(1) 우선, 헌법 제10조, 제2조 제2항, 전문의 규정 자체 또는 그 해석에 의하여 ‘헌법에서 유래하는 구체적 작위의무’가 도출될 수 있는지를 본다.

‘국민의 불가침의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규정한 헌법 제10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규정한 헌법 제2조 제2항은 국가가 국민에 대하여 기본권 보장 및 보호의무를 부담한다는 국가의 일반적·추상적 의무를 규정한 것일 뿐 그 조항 자체로부터 국민을 위한 어떠한 구체적인 행위를 해야 할 국가의 작위의무가 도출되지 않는다. 헌법 전문(前文)이 국가적 과제와 국가적 질서형성에 관한 지도이념·지도원리를 규정하고 국가의 기본적 가치질서에 관한 국민적 합의를 규범화한 것으로서 최고규범성을 가지고 법령해석과 입법의 지침이 되는 규범적 효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 자체로부터 국가의 국민에 대한 구체적인 작위의무가 나올 수는 없는 것이므로,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 전문(前文)의 문구로부터도 국민을 위한 어떠한 구체적인 행위를 해야 할 국가의 작위의무가 도출되지 않는다(헌재 1998. 5. 28. 97헌마282 ; 헌재 2000. 3. 30. 98헌마206 ; 헌재 2005. 6. 30. 2004헌마859 등 참조). 따라서 아무리 청구인들의 기본권 침해상태가 중대하고 절박하다 하더라도 헌법 제10조, 제2조 제2항, 헌법 전문만으로는 청구인들에 대하여 국가가 어떤 행위를 하여야 할 구체적인 작위의무를 도출해 낼 수는 없다.

(2) 다음으로,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규정된 분쟁해결절차에 관한 조항이 위에서 말하는 ‘법령에 구체적으로 작위의무가 규정되어 있는’ 경우에 해당하여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가 도출될 수 있는지에 관하여 본다.

(가) 먼저, 법령에 구체적으로 작위의무가 규정되어 있는 경우에서의 ‘법령에 규정된 구체적 작위의무’란 국가가 국민에 대하여 특정의 작위의무를 부담한다는 내용이 법령에 기재된 경우를 의미한다(헌재 2000. 3. 30. 98헌마206 ). 이는 국가가 위와 같은 구체적 작위의무를 이행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기본권을 침해당하였다고 주장하는 헌법소원에 있어서 기본권 침해 가능성 내지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위해서도 당연히 요구되는 전제이다.

기본적으로 국회가 제정하는 법률이나, 국민에 대하여 구속력을 가지는 행정법규에 구체적인 권리를 국민

에게 부여하는 내용이 있다면 이는 ‘법령에 구체적으로 작위의무가 규정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행정권력의 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에서 헌법재판소는 해당 법령에 문제된 구체적 작위의무가 행정권력의 국민에 대한 기속행위로 규정되어 있거나(헌재1998. 7. 16. 96헌마246 ; 헌재 2004. 5. 27. 2003헌마851 참조), 재량행위로 규정되어 있지만 공권력 불행사의 결과 청구인에 대한 기본권 침해의 정도가 현저하다는 등(헌재 1995. 7. 21. 94헌마136 참조)의 사유로 기속행위로 해석해야 할 때에 구체적 작위의무를 인정하였고, 반대로 순수한 행정청의 재량행위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에는 청구인에 대한 구체적 작위의무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헌재 2005. 6. 30. 2004헌마859 ).

하지만, 이 사건 협정과 같은 조약 기타 외교문서에서, 체약국이 서로 어떠어떠한 방식으로 분쟁을 해결하자는 내용과 절차가 규정되어 있다면 이는 기본적으로 체약국 당사자 사이에서 체약상대방에 대하여 부담할 것을 전제로 마련된 것이므로, 일정한 의무사항이 기재되어 있다 하더라도 체약국 당사자가 상대방 국가에 대하여 요구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조약에 근거하여 자국이 상대방 국가에 대하여 취할 수 있는 조약상 권리의무를 이행하라’고 자국 정부에 요구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러한 요구를 할 수 있는 권리를 자국 국민에게 부여하는 내용’의 구체적 문구가 해당 조약에 기재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조약에 그러한 내용의 명시적 문구가 없는 이상, 해당 조약이 국민의 권리관계를 대상으로 한다는 이유만으로 조약상 정해진 절차상 조치를 취할 것을 자국 정부에 요구할 권리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이 사건 협정은 양국 간 또는 일국 정부와 타국 국민 간, 양국 국민 상호간의 ‘재산, 권리, 이익, 청구권’에 관한 문제를 대상으로 하였는바(이 사건 협정 제2조 제1항), 이 사건 청구인들과 같은 사할린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국의 배상책임문제가 위 협정의 대상에 포함되었는지 여부에 관하여 ‘분쟁’이 발생한 상태라고는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사건 협정에서 관련국 국민에게 이 사건 협정 제3조상의 분쟁해결 절차에 나아갈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있지 않은 이상, 청구인들의 기본권이 관련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는 위 협정상 분쟁해결절차를 이행하라고 자국 정부에 대하여 요구할 구체적 권리가 인정될 수는 없다.

따라서 이 사건 협정 내용을 근거로 국가의 국민에 대한 구체적 작위의무를 도출해 낼 수는 없고, 이는 이 사건 협정과 헌법 제10조, 제2조 제2항, 헌법 전문을 종합하여 보더라도 마찬가지이다(헌재 2011. 8. 30. 2006헌마788 재판관 이강국, 재판관 민형기, 재판관 이동흡의 반대의견 참조).

(나) 다음으로, 이 사건 협정 제3조가 규정하고 있는 내용 자체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협정의 해석에 관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제3조의 규정에 따른 외교행위를 할 작위의무’라는 것이 ‘구체적인’ 행위를 해야 하는 ‘의무’라고 볼 수도 없다.

1) 이 사건 협정 제3조는, “본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 체약국간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한다.”(제1항), “1.의 규정에 의하여 해결할 수 없었던 분쟁은 어느 일방 체약국의 정부가 타방 체약국의 정부로부터 분쟁의 중재를 요청하는 공한을 접수한 날로부터 … 로 구성되는 중재위원회에 결정을 위하여 회부한다.”(제2항)라고 규정하고 있다. 어느 조항에도, 분쟁이 있으면 ‘반드시’ 외교적 해결절차로 나아가야 한다거나 외교적 해결이 교착상태에 빠질 경우 ‘반드시’ 중재절차를 신청해야 한다는 ‘의무적’ 내용은 기재되어 있지 않다.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한다.”라는 문구는 외교적으로 해결하자는 양 체약국 사이의 외교적 약속 이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없다. “중재위원회에 결정을 위하여 회부한다.”는 것 역시 ‘중재를 요청하는 공한이 접수되면’ 회부되는 것인데, 어느 문구에도 중재를 요청하여야 한다는 ‘의무적’ 요소가 들어 있다고 해석할 만한 근거는 발견할 수 없다. 결국 이 사건 협정 제3조 제1항, 제2항 어디에서도 외교상 해결절차로 나아가야 할 ‘의무’, 외교상 해결이 안 되면 중재절차로 나아가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해석해 낼 수는 없다(헌재 2011. 8. 30. 2006헌마788 재판관 이강국, 재판관 민형기, 재판관 이동흡의 반대의견 참조).

2) 나아가 이 사건 협정 제3조가 규정하고 있는 ‘외교적 해결’, ‘중재절차회부’에 어떤 의무성이 있다고 본다 하더라도, 그것이 ‘구체적인’ 작위를 내용으로 하는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이 사건 협정으로부터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할 의무’가 도출된다고 하여도, 이는 국가의 기본권 보장의무, 재외국민 보호의무,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할 국가의 의무, 신체장애자 등의 복지향상을 위하여 노력해야 할 국가의 의무, 보건에 관한 국가의 보호의무나 마찬가지로, 국가가 계속하여 추구하여야 할 의무이지만 그 자체로는 일반

적·추상적 의무 수준에 불과할 뿐이다. 이러한 국가의 일반적·추상적 의무는 그 자체가 ‘구체적인’, 즉 ‘어떠한 특정한 내용’의 작위의무가 아니므로, 비록 헌법에 명시적인 문구로 기재되어 있다 하더라도 국민이 국가에 대하여 그 의무의 이행을 직접 구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작위의무로 탈바꿈되지 않는다(헌재 2011. 8. 30. 2006헌마788 재판관 이강국, 재판관 민형기, 재판관 이동흡의 반대의견 참조).

또한 외교문제의 특수성으로 인하여 ‘외교적 해결을 할 의무’는 원칙적으로 정치·외교적 행위에 관한 정책판단·수립 및 집행 권한을 가지는 행정부의 영역에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데, 고도의 정치·외교적 성격으로 인하여 그러한 의무 이행의 주체나 방식, 이행정도, 이행의 완결 여부를 사법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 판단기준을 마련하기도 힘들고, 따라서 헌법재판소가 그 의무가 종국적으로 불이행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인지를 사법적으로 평가하는 것도 매우 어렵다. 즉, 이 사건 협정이 체결된 지 50년 이상 지나는 동안 피청구인이 초기에는 외교적 해결노력을 하다가 현재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거나, 피청구인의 노력이 청구인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였다거나, 피청구인의 노력에도 청구인들이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다거나 하는 등 외교적 해결의무의 이행 여부를 평가할 수 있는 사법적 기준을 설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에 따라 이 사건 협정 제3조 제2항의 중재절차회부의무는 언제쯤 발생한다고 보아야 할 것인지 등 그 이행 또는 불이행여부를 판단할 명확한 기준도 발견하거나 확정할 수 없다. 과연 이러한 ‘외교상 의무’를 국민이 국가에 대하여 그 이행을 요구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작위의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조약에 기재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구체적인 작위의무라고 보아 이를 이행하라고 하는 것은, 헌법재판소가 그 구체적인 작위의무의 내용도 확정하지 못한 채 정부에 그저 막연히 ‘외교적 노력을 하라’고 선언하는 것에 불과하다.

나아가, 헌법재판소가 이 사건 협정에 따른 해결절차를 진행하라고 한 결과, 피청구인이 그 절차를 이행하여 오히려 청구인들과 우리나라에 불리한 결과가 발생하게 된다면, 그 때에도 과연 ‘외교적 노력을 한 것’이라고 평가할 것인지, 어쨌든 이 사건 협정에 따른 해결절차에 나아갔으므로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은 것이라고 평가할 것인지도 의문이다. 결국 헌법재판소가 이 사건 협정에 따른 외교적 노력을 하라고 선언하는 것은 그 작위의무의 내용도 구체적으로 확정하지 못하고, 반드시 청구인들과 국가 전체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도출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어려운 가운데, 헌법상 권력분립원칙에 반하여 외교적 행위들에 관한 정책판단, 정책수립 및 집행에 관한 행정부의 권한을 침해할 소지만 발생시킨다.

다. 소결론

일제강점기 침략전쟁 수행이라는 명목 아래 사할린으로 강제징용되었음에도 긴 시간과 힘겨움 끝에 대한민국으로 귀환할 수 있었던 사할린 강제징용 피해자 또는 그 가족인 청구인들이 일본국으로부터 진정한 사과도 배상도 받지 못한 데 따른 참담한 심정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구든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에 대하여 우리 정부가 국가적·외교적 노력을 다하였으면 하는 바람 또한 국민 모두가 간절하다. 그러나 외교적 경로를 통한 이 사건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분쟁의 해결방식은 매우 다양하고, 행정부의 재량범위가 상당히 넓으므로, 헌법재판소가 행정부에 ‘외교적 노력을 하라’는 의무를 강제적으로 부과한들 이는 막연하고 선언적인 의미 이상을 가진다고 보기 어렵다. 헌법재판소가 행정부에 청구인들과 관련하여 이 사건 협정 제3조 제2항이 정한 중재절차에 나아가라는 등의 특정한 작위를 할 의무를 부과한다면, 이는 오히려 헌법재판소가 헌법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넘어 정치적· 외교적 행위들에 관한 정책판단·수립 및 집행에 관한 권한을 부여받은 행정부의 권한을 침해할 위험만 불러온다. 그렇다면 헌법재판소로서는 이 사건 심판청구에 관하여 국가에게 일반적·추상적 의무가 있음을 확인할 수밖에 없다.

이상과 같이 피청구인에게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은 헌법상 작위의무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청구인들이 다투는 부작위는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 ‘공권력의 불행사’라고 할 수 없다. 이를 대상으로 한 청구인들의 심판청구는 모두 부적법하다.

재판관

재판관 유남석 이선애 이석태 이은애 이종석 이영진 김기영 문형배 이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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