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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부지법 2008. 7. 10.자 2008카합822 결정
[무의미한연명치료행위중지등가처분] 항고〈인공호흡기 제거청구 사건〉[각공2008하,1616]
판시사항

[1] 치료 중단으로 환자가 사망하거나 생명이 단축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지는 경우, 헌법상 생명권에 기초한 자기결정권으로부터 치료의 중단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도출되는지 여부(소극)

[2] 의식불명환자의 치료 중단에 대한 진정한 의사를 추정함에 있어 고려하여야 할 요소

[3] 소위 ‘식물인간상태’에서 인공호흡기를 부착하고 항생제 투여 등의 치료를 받고 있던 환자에 대하여 그 가족들이 무의미한 연명치료행위의 중지를 구하는 가처분을 신청한 사안에서, 환자의 회복 가능성이 없다거나 혹은 환자에 대한 치료가 의학적으로 의미 없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치료 중단에 대한 환자 본인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 의사를 인정할 수도 없다고 하여 기각한 사례

결정요지

[1] 무릇 의료행위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따른 승낙에 의하여 시작되고 종료되므로 의료행위에 있어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최대한 존중되어야 하고, 환자가 자기결정권에 기초하여 의료행위의 계속을 원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더 이상 그 의료행위를 계속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한편, 생명권은 인간존엄성의 기초를 의미하는 절대적 기본권이고, 인간존엄성을 존중하고 생명권을 보장하는 헌법 정신에 비추어 볼 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법익이므로, 의료행위에 있어서 환자의 자기결정권, 즉 환자 스스로 의료행위의 시작과 종료를 결정하고 치료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이미 진행되고 있는 치료를 중단하는 것으로서, 치료를 계속하지 아니하는 경우 단지 환자의 건강이 회복되는 속도가 늦어진다거나 생명에 위험이 없는 정도로 상태가 악화될 것이 예측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사망하거나 환자의 생명이 단축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지는 결과에 이르게 되는 것이라면, 그와 같은 자기결정권을 인정하는 것은 결국 생명에 대한 포기권 또는 처분권을 인정하는 것과 같아질 수 있는 것인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절대적 생명 보호의 원칙을 고려하여 볼 때 그와 같은 경우까지도 의료행위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무제한적으로 인정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므로 법령 등을 통하여 환자에 대한 치료 중단의 허용 요건이나 시행 방법 등이 엄격하게 규정되고, 사전적·사후적 통제 시스템 등 제도적 안전장치가 갖추어지는 경우에 그와 같은 치료의 중단이 허용될 수 있는지 여부는 별론으로 하고, 치료를 중단하게 되면 환자가 사망하거나 환자의 생명이 단축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지는 경우까지도 헌법상 생명권에 기초한 자기결정권으로부터 치료의 중단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직접 도출된다고 할 수는 없다.

[2] 환자가 의식불명상태에 있어 치료 중단에 대한 명시적인 의사표시가 없거나 의사표현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환자의 생전의 의사표시, 질병 등에 대한 환자의 태도, 종교적 신념, 개인적 가치관 등을 종합하여 환자의 진정한 의사를 추정할 수도 있지만, 이때의 ‘추정적 의사’라 함은 일반적·추상적 의사가 아니고, 특정한 상황에서의 구체적이고 명확한 의사를 의미하는 것이다. 한편, 위와 같이 환자의 진정한 의사를 추정함에 있어서는, 환자 가족들의 개인적인 판단 기준이나 생각에 따라 환자의 진정한 의사와 관계없이 함부로 그 의사를 추단하거나, 환자 본인의 의사가 아닌 환자의 가족 등 주변 사람들의 의사를 추정하는 것에 그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될 것인바, 환자가 의식을 회복할 가능성, 치료를 계속할 경우 환자의 상태 변화, 환자가 받게 될 통증, 후유증 등도 종합하여 객관적 관점에서 신중하게 그 의사를 추정하여야 한다.

[3] 소위 ‘식물인간상태’에서 인공호흡기를 부착하고 항생제 투여 등의 치료를 받고 있던 환자에 대하여 그 가족들이 무의미한 연명치료행위의 중지를 구하는 가처분을 신청한 사안에서, 자발적으로 눈을 뜨는 정도의 개안 반응이나 비정상적인 굴곡 반응만을 할 수 있고 동공 및 각막의 반사 반응과 언어 반응 등이 전혀 없는 상태라는 사정만으로는, 환자의 의식 등이 회복될 가능성이 없다거나 혹은 환자에 대한 치료가 의학적으로 의미 없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치료 중단에 대한 환자 본인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 의사를 인정할 수도 없다고 하여 가처분신청을 기각한 사례.

채권자

채권자 1외 4인 (소송대리인 변호사 신현호)

채무자

채무자 학교법인외 1인 (소송대리인 변호사 신동선)

주문

1. 채권자들의 주위적 신청과 예비적 신청을 모두 기각한다.

2. 소송비용은 채권자들이 부담한다.

주위적으로, 채무자들은 채권자 1에 대하여 인공호흡기 적용, 약물투여 및 영양·수분 공급 등 일체의 연명 치료를 하여서는 아니되고, 채권자 1이 심정지에 이른 경우 응급심폐소생술을 시행하여서는 아니되며, 채권자 2, 채권자 3, 채권자 4, 채권자 5의 연명치료 중단요구를 거절하거나 방해하여서는 아니되고, 집행관은 위 명령의 취지를 적당한 방법으로 공시하여야 하며, 채무자들이 위 명령을 위반하는 경우 각 위반행위마다 채권자들에게 각 1,000,000원씩을 지급하여야 한다.

예비적으로, 채무자들은 채권자 1이 퇴원하는 것을 방해하여서는 아니되고, 집행관은 위 명령의 취지를 적당한 방법으로 공시하여야 하며, 채무자들이 위 명령을 위반하는 경우 각 위반행위마다 채권자들에게 각 1,000,000원씩을 지급하여야 한다.

이유

1. 기초 사실

이 사건 기록과 심문 전체의 취지에 의하면 다음의 각 사실이 소명된다.

가. 당사자들의 지위

(1) 채권자 1은 저산소증에 의한 뇌손상을 입고 채무자 학교법인 산하 신촌세브란스 병원(이하 ‘이 사건 병원’이라 한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이고, 채권자 2, 채권자 3, 채권자 4, 채권자 5(이하 ‘나머지 채권자들’이라 한다)는 채권자 1의 자녀들이다.

(2) 채무자 학교법인는 이 사건 병원을 운영하는 학교법인이고, 채무자 2는 이 사건 병원의 호흡기내과 전문의로서 채권자 1의 주치의이다.

나. 이 사건 치료 및 환자( 채권자 1)의 상태

(1) 채권자 1은 2008. 2. 18. 폐암 발병 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이 사건 병원에서 기관지내시경을 이용한 폐종양 조직 검사를 받던 중 과다 출혈 등으로 인하여 저산소증에 의한 뇌손상을 입었다.

(2) 이에 따라 채권자 1은 2008. 2. 18. 무렵부터 이 사건 병원의 중환자실에 입원하여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상태에서 항생제 투여, 인공영양 공급, 수액 공급 등의 치료(이하 ‘이 사건 치료’라 한다)를 받고 있다.

(3) 현재 채권자 1은 소위 ‘식물인간 상태(Vegetative state)’로서, 자발적으로 눈을 뜨는 정도의 개안 반응(Eye opening)과 목적 없이 팔을 펴는 정도의 비정상적인 굴곡 반응(Abnormal flexion to pain)은 있으나, 동공 및 각막의 반사 반응과 언어 반응은 전혀 없는 상태이다.

2. 채권자들의 주장

채권자들은, 채권자 1의 의식 등이 회복불가능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이 사건 치료는 채권자 1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생명 징후만을 단순히 연장시키는 것에 불과하므로 의학적으로 의미가 없고, 채권자 1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생명권으로부터 도출되는 자기결정권에 기초하여 치료의 중단을 결정할 수 있는바, 채권자 1이 평소 무의미한 생명 연장을 거부하고 자연스럽게 죽고 싶어 하였으므로 채권자 1의 이 사건 치료 중단 의사를 인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채권자들은 설령 채권자 1의 이 사건 치료 중단 의사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채권자 1에 대한 치료와 관련하여서는 가족들인 나머지 채권자들의 권리 및 이해관계도 고려되어야 하는 것인데, 이 사건 치료를 계속하는 것은 나머지 채권자들에게 경제적·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야기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평등권, 양심의 자유권, 건강권, 재산권 등을 침해하므로 나머지 채권자들도 독자적으로 이 사건 치료의 중단을 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주장하면서, 채무자들에 대하여 주위적으로는 채권자 1에 대한 이 사건 치료의 중단을 구하고, 예비적으로는 채권자 1이 이 사건 병원에서 퇴원하는 것의 방해 금지를 구한다.

3. 이 사건 가처분의 성질

살피건대, 가압류·가처분 등 보전소송은 본안소송의 판결의 집행을 용이하게 하거나 확정판결이 있을 때까지 손해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할 목적으로 일시적으로 현상을 동결하거나 임시적 법률관계를 형성하게 하는 재판이다.

그 중 민사집행법 제300조 제2항 에서 규정하는 임시의 지위를 정하기 위한 가처분은 다툼 있는 권리관계 또는 법률관계가 존재하고, 그에 대한 확정 판결이 있기까지 현상의 진행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권리자에게 현저한 손해 또는 급박한 위험이 발생될 수 있어 장래 확정 판결을 얻더라도 그 실효성을 잃게 될 염려가 있는 경우에 권리자에게 임시의 지위를 주어 그와 같은 손해나 위험을 피할 수 있도록 하는 보전처분으로서, 본안소송에 의하여 권리관계가 확정될 때까지 가처분권리자가 현재의 현저한 손해를 피하거나 급박한 위험을 막기 위하여 또는 그 밖의 필요한 이유가 있을 때에 한하여 허용되는 잠정적인 처분이며, 이러한 가처분을 필요로 하는지의 여부는 당해 가처분신청의 인용 여부에 따른 이해득실관계, 본안소송에 있어서의 장래의 승패의 예상, 기타의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법원의 재량에 따라 합목적적으로 결정하여야 할 것이다.

더구나 이 사건 가처분과 같이 본안판결을 통하여 얻고자 하는 내용과 실질적으로는 동일한 내용의 권리관계를 형성하는 이른바 만족적 가처분의 경우에는, 본안판결 전에 가처분채권자의 권리가 종국적으로 만족을 얻는 것과 동일한 결과에 이르게 되기 때문에 그 피보전권리 및 보전의 필요성에 관하여 통상적 보전처분의 경우보다 높은 정도의 소명이 요구된다고 할 것이고, 더욱이 이 사건 가처분의 경우에는 본안판결이 확정되기도 전에 이 사건 치료를 중단하게 되는 결과 채권자 1의 생명이 단축되거나 채권자 1이 사망에 이르게 되는 위험까지도 발생할 수 있다고 할 것인데, 이는 영원히 회복할 수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법원이 사법절차를 통하여 의료행위에 사전적으로 개입하여 생명권을 제한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그 필요성을 인정함에 있어서 더욱 신중하여야 할 것이다.

4. 주위적 신청에 관한 판단

가. 의료행위에 있어서 환자의 자기결정권

무릇 의료행위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따른 승낙에 의하여 시작되고 종료된다고 할 것이므로 의료행위에 있어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최대한 존중되어야 하고, 환자가 자기결정권에 기초하여 의료행위의 계속을 원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더 이상 그 의료행위를 계속할 필요가 없게 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 생명권은 인간존엄성의 기초를 의미하는 절대적 기본권이고, 인간존엄성을 존중하고 생명권을 보장하는 헌법 정신에 비추어 볼 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법익이라고 할 것이므로, 의료행위에 있어서 환자의 자기결정권 즉 환자 스스로 의료행위의 시작과 종료를 결정하고 치료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이미 진행되고 있는 치료를 중단하는 것으로서, 치료를 계속하지 아니하는 경우 단지 환자의 건강이 회복되는 속도가 늦어진다거나 생명에 위험이 없는 정도로 상태가 악화될 것이 예측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사망하거나 환자의 생명이 단축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지는 결과에 이르게 되는 것이라면, 그와 같은 자기결정권을 인정하는 것은 결국 생명에 대한 포기권 또는 처분권을 인정하는 것과 같아질 수 있는 것인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절대적 생명 보호의 원칙을 고려하여 볼 때 그와 같은 경우까지도 의료행위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무제한적으로 인정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므로 법령 등을 통하여 환자에 대한 치료 중단의 허용 요건이나 시행 방법 등이 엄격하게 규정되고, 사전적·사후적 통제 시스템 등 제도적 안전장치가 갖추어지는 경우에 그와 같은 치료의 중단이 허용될 수 있는지 여부는 별론으로 하고, 치료를 중단하게 되면 환자가 사망하거나 환자의 생명이 단축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지는 경우까지도 헌법상 생명권에 기초한 자기결정권으로부터 치료의 중단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직접 도출된다고 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의 전통적 생명경외사상 등에 비추어 볼 때 죽음의 선택이나 생명의 단축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치료 중단에 대한 자기결정권의 인정 여부에 대하여 사회적 합의 또는 승인이 있다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촉탁·승낙에 의한 살인 및 자살방조를 처벌하고 있는 형법이나, 응급의료종사자에게 응급환자에 대한 응급의료라는 공법상의 의무를 부과함과 동시에 이를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거나 중단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및 아직 뇌사 상태에 이르지 아니한 환자의 경우에는 가족이 동의하는 경우에도 장기를 적출하는 등의 행위를 할 수 없도록 한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등 현행 법률의 입법 취지 등을 종합하여 보면, 채권자들이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이 사건 치료 중단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채권자들의 주장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설령 환자가 회복될 가능성이 없음이 명백하고, 죽음의 시기가 임박해 있으며, 환자에 대한 치료가 의학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음이 의학적 전문가인 의사나 제3의 기관에 의하여 객관적으로 확인·진단된 상태에서 환자 본인이 자기결정권의 행사로서 명확하고 분명하게 치료 중단을 요구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허용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요건은 엄격하게 해석하여야 하는 것인바, 아래에서는 채권자들의 주장과 같이 채권자 1이 회복될 가능성이 없으며 이 사건 치료가 의학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인지 여부 및 이 사건 치료 중단에 대한 채권자 1의 진지하고도 명확한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나. 채권자 1이 회복될 가능성이 없으며, 이 사건 치료가 무의미한 치료인지 여부

채권자들은 채권자 1의 의식 등이 회복될 가능성이 없으며 이 사건 치료가 의학적으로도 의미가 없는 치료라고 주장하면서 이 사건 가처분을 구한다.

그러므로 살피건대, 채권자 1이 소위 ‘식물인간 상태’에 있음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으나, 의학 기술의 진보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보면 식물인간 상태에 있는 환자라고 하더라도 일률적으로 의식 등이 회복될 가능성이 없다거나 현재의 치료가 단지 생명을 연장시킬 뿐인 것으로서 의학적으로 의미가 없는 치료라고 단정할 수는 없고, 구체적인 상황에서 환자의 상태, 치료 방법, 예후, 후유증 등을 종합하여 이를 판단하여야 할 것이며, 의료행위의 전문성을 고려해 볼 때 환자가 회복하기 어려운 의식상실 상태인지 여부나 환자에 대한 치료 방법이 적절한지 등에 관하여는 의학적 전문가로서 환자의 치료를 담당하고 있는 주치의 및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다른 의사들의 의학적 진단이 일응의 기준이 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돌이켜 이 사건에서 보건대, 채권자 1의 주치의인 채무자 2 또는 객관적으로 판단을 할 수 있는 다른 의사들이 채권자 1의 상태가 객관적으로 회복이 불가능하다거나 이 사건 치료가 궁극적인 치료 효과를 거둘 수 없는 것으로서 이 사건 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채권자 1에 대한 보다 적절한 치료 방법이라고 진단하였다는 등의 사정을 인정할 수 있는 아무런 자료가 없고, 오히려 채권자 1의 주치의인 채무자 2를 포함한 채무자들은 일반적으로 식물인간 상태가 3개월 내지 6개월 동안 지속되는 경우에도 의식이 돌아올 가능성이 8% 정도 있으므로 채권자 1도 그 의식이 돌아올 가능성이 있으며, 이 사건 치료를 계속하는 경우 채권자 1이 12개월 내지 29개월 정도 생존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그 사망이 임박한 것도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이 사건 치료를 계속할 필요가 있다고 다투고 있다.

이와 같은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채권자 1이 자발적으로 눈을 뜨는 정도의 개안 반응이나 비정상적인 굴곡 반응만을 할 수 있고, 동공 및 각막의 반사 반응과 언어 반응 등이 전혀 없는 상태라는 사정만으로는, 채권자 1의 의식 등이 회복될 가능성이 없으며 이 사건 치료가 의학적으로 의미가 없는 치료라고 단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도 없다.

다. 이 사건 치료 중단에 대한 채권자 1의 의사의 존부

(1) 명시적 의사의 존부

살피건대, 환자의 치료 중단 의사는 원칙적으로 그 치료 중단 당시에 명시적으로 표시되어야 한다고 할 것이나 채권자 1이 현재 의식불명 상태라는 것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으므로, 이 사건 치료의 중단을 구하는 이 사건 가처분 신청 계속 중에 채권자 1이 명시적으로 치료 중단의 의사를 표시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한편 채권자들은, 채권자 1의 자녀들인 나머지 채권자들도 이 사건 치료로 인하여 경제적·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으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평등권, 양심의 자유권, 건강권, 재산권 등이 침해되고 있으므로 채무자들에 대하여 독자적으로 이 사건 치료의 중단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하면서, 설령 이 사건 치료의 중단에 대한 채권자 1의 명시적 의사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채권자들이 치료 중단을 요구하는 이상 채무자들은 이 사건 치료를 중단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타인의 생명을 단축할 수도 있는 치료 중단 결정을 대신할 수 있는 권한이 인정될 수는 없고, 다만 가족 등의 의사가 환자 본인의 진지한 의사와 합치한다고 인정될 수 있는 경우에 한하여 이를 환자 자신의 의사로 인정할 수는 있다고 할 것이다(그와 같은 경우에도 가족 등의 의사가 환자 본인의 진지한 의사와 합치한다고 인정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하여는 엄격하고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할 것이고, 이 사건에서 나머지 채권자들의 의사가 채권자 1의 의사와 합치된다고 단정할 수 없음은 다음에서 보는 바와 같다).

또한, 나머지 채권자들이 채권자 1에 대한 이 사건 치료로 인하여 경제적·정신적 고통을 받게 된다고 하더라도, 의료보장을 비롯한 기타 사회보장 장치를 통하여 그와 같은 고통을 덜어 주어야 할 국가적·사회적 필요가 있음은 별론으로 하고, 나머지 채권자들이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평등권, 양심의 자유권, 건강권, 재산권 등의 법익과 채권자 1의 생명권을 비교 형량할 수는 없다.

따라서 채권자들의 주장과 같이 나머지 채권자들이 채권자 1을 대신하여 치료 중단의 의사표시를 할 수 있다거나, 나머지 채권자들에게 이 사건 치료 중단을 요구할 수 있는 독자적인 권리가 인정된다고 볼 수는 없고, 다만 채권자 1의 가족들인 나머지 채권자들의 의사는 채권자 1의 추정적인 의사를 추단함에 있어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있을 뿐이라고 할 것이다.

(2) 추정적 의사의 존부

이 사건과 같이 환자가 의식불명상태에 있어 치료 중단에 대한 명시적인 의사표시가 없거나 의사표현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환자의 생전의 의사표시, 질병 등에 대한 환자의 태도, 종교적 신념, 개인적 가치관 등을 종합하여 환자의 진정한 의사를 추정할 수도 있다고 할 것이지만, 이때의 ‘추정적 의사’라 함은 일반적·추상적 의사가 아니고, 특정한 상황에서의 구체적이고 명확한 의사를 의미하는 것이다.

한편, 위와 같이 환자의 진정한 의사를 추정함에 있어서는, 환자 가족들의 개인적인 판단 기준이나 생각에 따라 환자의 진정한 의사와 관계없이 함부로 그 의사를 추단하거나, 환자 본인의 의사가 아닌 환자의 가족 등 주변 사람들의 의사를 추정하는 것에 그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될 것인바, 환자가 의식을 회복할 가능성, 치료를 계속할 경우 환자의 상태 변화, 환자가 받게 될 통증, 후유증 등도 종합하여 객관적 관점에서 신중하게 그 의사를 추정하여야 할 것이다.

살피건대, 채권자 1이 사전에 문서에 의하여 이 사건 치료와 같은 종류의 치료를 중단하기를 원한다는 의사를 표시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자료는 전혀 없고, 채권자들이 제출한 소명자료(소갑 1호증의 1 내지 5, 소갑 6호증)는 채권자 1이 나머지 채권자들에게 사전에 구두로 ‘혹시 병원에서 안 좋은 일이 생기면 호흡기를 절대 끼우지 말라’거나 ‘소생하기 힘들 때 억지로 기계에 의해 연명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등의 의사를 표시하였다는 것이나, 위 소명자료는 채권자 1의 자녀들인 나머지 채권자들이 작성한 진술서로서 객관적인 증거라고 보기 어려우며, 설령 위 진술서에 기재된 바와 같이 채권자 1이 평소에 기계 등에 의한 연명치료에 대하여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일반적인 상황에서 장래의 상황을 가상으로 예측하여 추상적이고 막연하게 형성된 의사일 뿐이므로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의 채권자 1의 구체적이고 진정한 의사와 곧바로 합치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할 것이다.

또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환자가 의학적 전문가인 의사로부터 알기 쉬운 설명을 듣고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은 상태에서 자유로운 의사에 기초하여 의료행위를 선택 또는 거부할 수 있는 권리라고 할 것인데, 채권자 1이 사전에 질병의 상태나 치료 방법 및 치료 효과 등에 관하여 의사로부터 충분한 정보를 얻어 정확하게 인식한 상태에서 기계 등에 의한 연명치료를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였던 것이라거나, 그와 같이 의사로부터 충분한 정보를 얻고 정확하게 인식한 경우에도 치료의 중단을 결정하였을 것이라고 볼 수 있는 자료도 역시 없다.

위와 같은 사정을 종합해 보면, 채권자 1이 기독교인이고, 남편이 죽음에 임박하였을 때 인위적인 기관절개술을 통하여 생명을 연장하는 것을 반대하였으며, 평소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아픈 모습을 보이는 것을 싫어하였다는 등의 채권자들의 주장과 같은 사정만으로는, 이 사건 치료를 거부할 것이라는 채권자 1의 의사를 추정하거나 나머지 채권자들의 의사가 채권자 1의 의사와 부합한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며,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자료가 없다.

라. 소 결

그렇다면 채권자 1은 원칙적으로 의료행위에 대하여 자기결정권을 가지는 것이지만, 이 사건 치료를 중단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채권자 1의 생명이 단축되게 되는 것이어서, 자기결정권에 기초하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치료 중단의 허용 여부나 허용 요건, 방법, 통제 등에 대한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이상, 채권자 1에게 이 사건 치료의 중단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곧바로 인정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므로 채권자들의 주장은 이유가 없다.

설령 엄격한 요건이 갖추어진 경우 예외적으로 이 사건 치료의 중단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채권자 1의 명백한 치료 중단 의사가 인정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채권자 1의 의식 등이 회복될 가능성이 없다거나 이 사건 치료가 의학적으로 의미가 없는 치료라는 점을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자료도 없으며, 또한 채권자들이 이 사건 치료를 중단하기 위한 절차로서 이 사건 병원의 윤리위원회의 승인 등도 거치지 아니하였으므로(채권자들이 이 사건 치료 중단이나 퇴원을 하기 위한 절차로서 이 사건 병원의 윤리위원회에 치료 중단이나 퇴원을 신청하거나, 병원윤리위원회의 결정의 당부에 대하여 다툴 수 있는지 여부는 별론으로 한다), 이 사건 치료의 중단을 구하는 채권자들의 주장은 어느 모로 보나 이유가 없다고 할 것이다.

5. 예비적 신청에 관한 판단

채권자들은 예비적으로, 채무자들에 대하여 채권자 1이 이 사건 병원에서 퇴원하는 것을 방해하지 말 것을 구한다.

살피건대, 환자 및 그 가족들에게는 의료기관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되는 것이고 스스로의 의사결정에 의하여 원하는 시기에 진료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권리 즉 퇴원할 수 있는 권리도 역시 인정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에 있어서의 퇴원과 치료 중단은 사실상 하나의 사실관계의 양면으로 상호 결합되어 있는 것이고, 또한 이 사건 기록과 심문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보면 채권자들의 주장은 채권자 1이 이 사건 병원이 아닌 다른 의료기관이나 집 등에서 치료를 받도록 하면서 계속하여 이 사건 치료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채권자 1을 이 사건 병원에서 퇴원하게 한 다음 이 사건 치료와 같이 인공적으로 생명을 연장시키는 치료를 일체 하지 않겠다는 것인바,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보면 채권자들의 이 사건 예비적 신청은 채무자들에 대하여 단순히 채권자 1이 이 사건 병원에서 퇴원하는 것의 방해 금지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채권자 1이 이 사건 병원에서 퇴원하고 이 사건 치료와 같이 인공적으로 생명을 연장시키는 치료를 중단하는 것의 방해 금지도 함께 구하는 취지라고 할 것이어서, 결국 이 사건 치료의 중단을 구하는 주위적 신청과 다를 것이 없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이 사건 치료 중단에 대하여는 채권자 1의 자기결정권이 제한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채권자 1의 이 사건 치료 중단에 대한 명시적 또는 추정적 의사를 확인할 수도 없고, 채권자 1이 회복될 가능성이 없다거나 이 사건 치료가 의학적으로 무의미하다는 점을 인정할 만한 자료도 부족한 이상 채권자들의 예비적 신청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할 것이다.

6. 보전의 필요성의 존부에 관한 판단

이 사건 가처분의 경우 본안판결이 확정되기도 전에 이 사건 치료가 중단되게 되는 결과 채권자 1의 생명이 위협을 받게 될 수도 있는 등 그 피해가 영원히 회복될 수 없다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가처분의 필요성을 신중하게 인정하여야 할 것임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다.

그런데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가처분의 피보전권리에 대한 소명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채무자들이 채권자 1의 의식이 돌아올 가능성이 있고 그 사망이 임박한 것도 아니므로 이 사건 치료를 계속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다투고 있는 이상, 이 사건 기록에 나타난 사정만으로는 본안소송에서 당사자 사이의 권리 관계에 대하여 확정을 하기도 전에 이 사건 가처분을 명할 보전의 필요성을 소명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도 없다고 할 것이다.

7. 결 론

그렇다면 채권자들의 이 사건 가처분 신청은 그 피보전권리 및 보전의 필요성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므로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판사 김건수(재판장) 장윤미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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