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2021고합456 신체수색
피고인
A (85년생 여), 서점 운영
검사
박수민(기소, 공판), 이형철, 김도형(공판)
변호인
변호사 송도근, 박무늬
판결선고
2022. 1. 26.
주문
피고인은 무죄.
이 판결의 요지를 공시한다.
이유
1.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은 2020. 12. 18. 15:11경 대구 북구에 있는 피고인이 운영하는 'B 서점' 내에서, 피해자 C(여, 9세, 가명)가 문구류인 펜을 훔친 것으로 오인하여 피해자를 다른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서점 구석의 책상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피고인은 피해자와 둘만 있는 자리에서 피해자를 책상 앞에 세워두고 자신은 의자에 앉아 피해자에게 "내가 널 왜 불렀게?"라고 하여 피해자가 "몰라요."라고 하자, 피고인은 "내가 CCTV 보고 있었는데 니가 펜 훔치는 거 봤다, 저 펜 훔쳤잖아."라고 말하면서 겁에 질려 있는 피해자의 패딩 점퍼 주머니와 조끼 주머니에 손을 넣어 뒤져 그 안에 펜이 들어있는지 확인하였다.
이로써 피고인은 피해자의 신체를 수색하였다.
2. 배심원 평결결과
○ 유 · 무죄에 관한 평결: 무죄 7명(만장일치)
3. 피고인 및 변호인의 주장
가. 피해자의 승낙 또는 정당행위로 인해 위법성이 없다는 주장
사건 당시 피해자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주머니를 뒤지는 것을 승낙하였으므로 피고인의 행위에는 위법성이 없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이 피해자가 펜을 훔친 것으로 생각하여 피해자의 주머니를 뒤진 것은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없다.
나. 위법성조각사유의 전제사실에 관한 착오로 인해 죄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
사건 당시 피고인은 피해자가 펜을 훔친 것으로 오인한 나머지 피해자의 주머니를 뒤지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였는데, 이는 위법성조각사유의 전제사실에 관한 착오로서 위와 같은 오인에는 정당한 사유가 있다. 따라서 피고인의 위 행위에는 고의나 위법성 또는 책임이 없다.
다. 기대불가능성으로 인하여 책임이 없다는 주장
피고인과 같이 서점을 운영하는 업주의 입장에서는 이 사건에서와 같이 아동이 절도 범행을 하였다고 의심되는 경우 피고인과 같은 행위를 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할 수 없으므로, 피고인의 행위에는 책임이 없다.
4. 판단
가. 인정사실
1) 피고인은 2020. 2.경부터 대구 북구에 있는 'B 서점'(이하 '이 사건 서점'이라고 한다)을 운영하는 사람이다.
2) 피해자는 2020. 12. 18. 15:00경 친구인 D과 함께 이 사건 서점에 들어와, 문구류인 펜이 진열되어 있는 이 사건 서점의 벽면 쪽으로 팔을 내밀면서 여러 가지 펜을 살펴보다가 오른쪽 손에 쥐고 있던 '멘토스'(길쭉한 막대 모양으로 포장된 민트 캔디로서, 이하 '멘토스'라고 한다)를 피해자가 입고 있던 겉옷 상의(이하 '패딩'이라고 한다) 오른쪽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피해자가 위와 같이 행동한 장면은 이 사건 서점 내부 CCTV(이하 'CCTV'라고 한다)에 녹화되었다.
3) 피고인은 2020. 12. 18. 15:00경 이 사건 서점 외부에서 휴대전화기로 CCTV 영상을 확인하던 도중 위와 같이 피해자가 펜이 진열되어 있는 서점의 벽면 쪽에서 팔을 펜 진열대 쪽으로 수차례 뻗었다가 길쭉한 물체를 주머니에 집어넣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피고인은 피해자가 이 사건 서점에 진열된 펜을 훔친 것이라고 생각하여 이 사건 서점 안으로 들어왔다.
4) 피고인은 2020. 12. 18. 15:11경 이 사건 서점 계산대 앞에서 2개의 펜(형광펜, 모찌볼펜) 값을 계산하고 있던 피해자에게 다가갔다.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말을 건 다음 이 사건 서점의 구석에 있는 테이블(이하 '테이블'이라고 한다)로 걸어가 그 앞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았고, 피해자는 피고인을 뒤따라가 피고인의 앞에 서 있었다.
5) 피고인은 위 의자에 앉아 피해자에게 몇 마디 말을 하였고, 피해자는 앞서 계산한 2개의 펜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뒤 패딩 오른쪽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기를 꺼냈으며, 피고인은 피해자의 패딩 주머니에 손을 넣어 멘토스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피해자의 패딩 주머니에서 펜이 나오지 않자, 피고인은 휴대전화기를 이용하여 피해자에게 피해자의 모습이 녹화된 CCTV 영상을 보여주면서 몇 마디 말을 하였다. 이에 피해자는 패딩 안쪽에 입고 있던 조끼의 양쪽 주머니를 뒤집어 피고인에게 보여 주면서 피고인이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다.
6) 이어서 피고인은 피해자로 하여금 D을 데려오도록 하여 D과 대화를 나누고, 피해자가 다시 조끼 주머니를 손으로 벌리자 조끼 주머니와 패딩 주머니를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그런 다음 피고인은 이 사건 서점의 펜 재고를 확인해봄으로써 비로소 피해자가 펜을 훔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피해자에게 'CCTV 영상을 보고 피해자가 펜을 가져간 줄로 오해하였다.'는 취지로 말하며 사과한 후 피해자를 귀가시키고 피해자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앞선 상황을 설명하면서 사과하였다.
나. 피해자의 승낙으로 인해 위법성이 없다는 주장에 대한 판단
1) 형사재판에서 공소가 제기된 범죄의 구성요건을 이루는 사실은 그것이 주관적 구성요건이든 객관적 구성요건이든 그 증명책임이 검사에게 있고, 검사는 피고인이 위 법성조각사유를 주장하는 때에는 그 부존재에 대하여 증명하여야 한다.
2)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할 수 있는 아래와 같은 사실 내지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사건 당시 피해자는 피고인의 수색행위를 적어도 묵시적으로 승낙하였다고 보여,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사건 당시 피해자가 피고인의 수색행위를 승낙하지 않은 사실이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
가) 이 사건 서점의 직원으로서 사건 당시 계산대 근처에 위치하면서 피고인을 대신하여 이 사건 서점을 관리하고 있었던 E은 이 법원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사건 당시 피해자가 계산대 앞에서 2개의 펜 값을 계산하고 나서 피고인의 요청에 따라 테이블 쪽으로 간 다음 본인(E)은 계산대에 있는 모니터로 피고인과 피해자의 모습을 지켜 보았다. 계산대와 테이블 사이에는 7m 정도의 거리가 있었고, 피고인과 피해자의 대화내용을 거의 듣지 못했으나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확인해도 될까.'라고 말하는 소리나 '아줌마 집에 와서 다른 친구들도 (물건을) 가져간다.'라고 말하는 소리는 들었다."라고 진술하였다. 위와 같은 E의 진술은 "사건 당시 피해자에게 주머니에 있는 물건을 확인해도 되냐고 물어 피해자의 '네.'라는 대답을 듣고 나서 수색행위를 하였다."는 피고인의 주장과 부합한다. 아래에서 살펴볼 것과 같이 CCTV 영상에 의하여 확인되는 피고인 및 피해자의 행동, 피고인의 수색행위를 허락한 바 없다는 피해자의 진술을 믿기 힘든 점 등을 고려하여 보면, 피고인의 주장과 같이 피해자가 수색행위를 명시적으로 허락하였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나) 2020. 12. 18. 15:11경 무렵 녹화된 CCTV 영상을 살펴보면, 피고인은 피해자의 패딩 주머니에 손을 넣어 멘토스를 꺼내기 전에 피해자에게 몇 마디 말을 하였고, 피해자는 이에 응하여 앞서 계산한 2개의 펜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뒤 패딩 오른쪽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기를 꺼내는 행동을 하였다. 또한, 피해자는 피해자의 모습이 녹화된 CCTV 영상을 본 다음 패딩 안쪽에 입고 있던 조끼의 양쪽 주머니를 뒤집어 피고인에게 보여주면서 피고인이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을 뿐만 아니라, D이 피고인 및 피해자가 있는 서점 구석으로 오고 난 다음에도 조끼 주머니를 손으로 벌려 피고인이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다. 위와 같은 피해자의 행동은 상당한 시간적 간격을 두고 나타난 것으로서 전체적으로 피고인이 피해자의 상의 주머니에 들어 있는 내용물을 살펴보아도 좋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으로 보기에 충분하고, 그렇다면 피해자는 적어도 피고인의 수색행위를 묵시적으로 승낙하였다고 볼 수 있다.
다) 피해자는 해바라기센터에 출석하여 '사건 당시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미리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피해자의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은 것 같다.', '피고인에게 주머니에 손을 넣도록 허락해 준 적이 없다.'라고 진술하였다. 그러나 위와 같은 피해자의 진술은 앞서 살펴본 CCTV에 녹화된 피해자의 모습과 상당히 다르다. 뿐만 아니라 피고인의 구체적인 수색행위에 관한 피해자의 진술["그 서점 사장님(피고인)이 주머니 계속 뒤졌는데", "(피고인이) 주머니 속에 계속 손을 만지작거리면서 계속... 빼내고 그... 넣고 빼내고 넣고 하면서 계속 그러셨어요."]은 CCTV를 통해 확인되는 피고인의 모습(시간적 간격을 두고 두 차례 피해자의 상의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가 빼는 모습)과 전혀 다르다. 여기에 ① 피해자는 "사건 당시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지속적으로 '훔쳤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하였으면서도, 한편으로 "피고인이 당시 사용한 표현은 '집어넣었다'였고, 피고인이 정확히 무슨 말을 하였는지에 관해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진술하는 등 일관된 진술 태도를 보이지 않은 점, ② 피해자는 "사건 당시 E이 이 사건 서점 계산대에서 피해자가 고른 두 개의 펜 값을 계산하던 도중 피고인에게 전화를 걸어 '사장님, 여기 도둑이 있어요. 빨리 와주세요.'라고 말하였다."고 진술하였으나, 위와 같은 진술은 전혀 사실이 아닌 점 등까지 더하여 보면, 사건 당시 피고인이 강제로 피해자의 상의 주머니를 뒤졌다는 취지인 피해자의 진술은 믿기 어렵다.
3) 따라서 피고인의 행위는 피해자의 승낙으로 인해 형법 제24조에 따라 위법성이 없다고 판단된다.
다.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없다는 주장에 대한 판단
1) 어떠한 행위가 위법성조각사유로서의 정당행위가 되는지의 여부는 구체적인 경우에 따라 합목적적, 합리적으로 가려야 하는바, 정당행위로 인정되려면 첫째 행위의 동기나 목적의 정당성, 둘째 행위의 수단이나 방법의 상당성, 셋째 보호법익과 침해법익의 균형성, 넷째 긴급성, 다섯째 그 행위 이외의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다는 보충성의 요건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대법원 2000. 3. 10. 선고 99도4273 판결 등 참조).
2)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할 수 있는 아래와 같은 사실 내지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사건 당시 피고인이 피해자의 상의 주머니를 수색한 행위는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상당성, 법익의 균형성, 긴급성, 보충성의 요건을 모두 갖춘 것으로 보이고,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사건 당시 피고인의 수색행위를 사회통념상 허용될 만한 정도를 넘어서는 위법성이 있는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
가) 피고인의 수색행위는 이 사건 서점에 진열된 펜이 도난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루어진 것으로서, 피고인의 재산을 지키고 향후의 도난 사고 발생을 예방하기 위한 위 수색행위의 목적은 정당하다.
나) 피고인은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이 사건 서점 계산대 부근에 서 있던 피해자를 이 사건 서점 구석에 위치한 테이블 부근으로 오도록 하여 피해자의 상의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거나 피해자가 보여주는 상의 주머니 속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세 차례 정도 피해자가 펜을 훔친 것이 아닌지 확인하였다. 그 과정에서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피해자의 모습이 녹화된 CCTV 영상을 직접 보여주기도 하였다. 위와 같은 일련의 행위 태양에 비추어 보면, 사건 당시 피고인이 취한 행동은 피고인의 재산을 지키려는 앞선 목적을 달성하는 데 상당한 수단임이 인정된다.
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피고인은 사건 당시 피해자를 다른 사람들의 눈이 잘 미치지 않는 테이블 부근으로 오도록 한 다음, 다른 사람들이 쉽게 들을 수 없는 낮은 목소리로 피해자에게 말을 걸었다. 테이블 부근은 밀폐된 공간이 아니고 조명도 밝아 당시 피해자가 주위 환경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위축되었을 것이라고 보이지 않는다. 그와 같은 사정에 더하여, ① 피고인은 피해자가 펜을 숨긴 것으로 의심되는 상의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내용물을 확인한 것이고, 상의의 다른 부분이나 피해자의 품속까지 수색한 것은 아닌 점, ② 피고인이 직접 피해자의 상의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은 행동은 두 차례에 그친 점, ③ 피고인이 피해자를 테이블 쪽으로 오도록 한 때 (15:10:50경)부터 피해자에 대한 오해를 풀고 피해자를 안아주면서 위로할 때(15:18:44경)까지 7분 54초 정도의 비교적 짧은 시간이 소요된 점, ④ 피해자는 해바라기센터에 출석하여 사건 당시의 심리상태에 관해 "피고인이 지금 다시 (피해자의 겉옷을) 만지면 불쾌하겠지만, 사건 당시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라고 진술하였고, 사건 이후에도 다섯 차례(2021. 1. 27., 2021. 8. 13., 2021. 9. 15., 2021. 9. 26., 2022. 1. 17.) 이상 이 사건 서점에 방문한 사실로 미루어 피해자는 피고인의 수색행위로 인해 별다른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까지 아울러 고려하여 보면, 피고인의 수색행위와 관련하여 피고인이 지키려고 한 법익과 위 수색행위로 인해 제한을 받은 피해자의 법익은 균형을 이루고 있음이 인정된다.
라) 피해자는 2020. 12. 18. 15:11경 이 사건 서점 계산대에서 피해자가 고른 2개의 펜 값을 계산하고 있었고, 위 계산이 끝나면 D과 함께 이 사건 서점을 떠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와 같이 피해자가 이 사건 서점을 떠날 경우 피고인은 더 이상 피해자가 이 사건 서점에서 펜을 훔쳤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될 수도 있었으므로, 피해자를 테이블 쪽으로 오도록 하여 주머니 속의 내용물을 확인한 피고인의 행위에는 긴급성이 인정된다.
마) 피고인에게는 이 사건에서와 같이 행동하는 것 이외에 달리 피해자가 이 사건 서점에 진열된 펜을 훔쳤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적절한 수단이 없었다고 판단되므로 피고인의 수색행위에는 보충성도 인정된다.
피고인이 피해자의 패딩 주머니를 직접 확인하지 않고 경찰에 신고하여 출동한 경찰관으로 하여금 피해자의 펜 절취 여부를 확인하게 하는 방법은 피고인이 실제로 취한 방법에 비하여 9세 아동인 피해자의 심리를 훨씬 더 위축시키고 향후 피해자의 건전한 정서발달을 방해할 여지가 매우 커서 적절한 방법이라고 보이지 않는다. 진열된 펜 1개를 몰래 주머니에 넣는 듯한 CCTV 영상만을 근거로 어린 아동을 수사관서에 신고하는 것은 명백한 과잉대응이다.
검사는, 피고인이 사건 당시 피해자의 의사를 물어 피해자의 승낙을 받은 다음 피해자의 상의 주머니를 확인했어야 하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고, 만일 피해자가 끝까지 피고인의 수색행위를 거절하는 의사를 밝혔다면 피고인으로서는 피해자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피해자의 어머니가 현장에 오도록 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피고인은 사건 당시 적어도 피해자의 묵시적인 승낙에 따라 피해자의 상의 주머니를 확인한 것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검사가 제시한 바와 같이 피해자의 어머니를 현장에 오도록 하는 방법 역시 피고인이 실제 취한 방법과 마찬가지로 피해자가 이 사건 서점에 진열된 펜을 훔쳤다는 의심 하에 피해자를 상대로 펜 절취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야 할 것이라는 점에서 별반 다르지 않다. 게다가 ① 피고인은 이 사건 서점을 운영하는 성인 여성으로서, 9세의 어린 아동인 피해자가 실제로 이 사건 서점의 물건을 훔쳤다는 사실이 확인될 경우 피해자를 적절히 계도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점, ② 피고인이 피해자의 어머니를 현장으로 오도록 한 다음 피해자가 실제로 이 사건 서점의 물건을 훔쳤다는 사실이 확인될 경우 피해자의 어머니가 받을 수 있는 정신적 충격이나 피해자가 가질 수도 있는 심한 모욕감 등에 비추어, 물건을 절취하였다는 의심을 받는 피해자의 어머니를 현장에 오도록 한 다음 절취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이 교육적으로 반드시 합리적이고 적절한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점 등까지 고려하여 보면, 검사가 위와 같이 제시한 방법은 피고인이 실제로 취한 방법에 비하여 더욱 합리적이고 적절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3) 따라서 피고인의 행위는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정당행위에 해당하여 형법 제20조에 따라 위법성이 없다고 판단된다.
라. 위법성조각사유의 전제사실에 관한 착오로 인해 죄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한 판단
1) 이 사건에서 피고인은 CCTV의 영상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면서 피해자가 이 사건 서점에 진열된 펜을 훔쳤다고 착각하고 피해자의 패딩과 조끼를 확인하는 등의 수색행위로 나아갔고, 위와 같은 행위를 모두 마친 후에야 비로소 피해자가 펜을 훔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피고인은 위법성조각사유의 전제사실에 관한 착오를 일으켜 위와 같은 행위에 이른 것이다.
2) 대법원은 피고인이 위법성조각사유의 전제사실에 관한 착오를 일으켰더라도 그러한 착오에 정당한 사유가 인정된다면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견지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대법원 1986. 10. 28. 선고 86도1406 판결, 대법원 2004. 3. 25. 선고 2003도3842 판결, 대법원 2014. 2. 27. 선고 2011도13999 판결 등 참조). 대법원은 피고인의 행위 시를 기준으로 하여 피고인이 놓인 상황, 법익을 침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행위의 태양, 그러한 행위가 이루어지는 주변의 상황, 법익을 침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행위에 대한 피고인의 인식 등을 규범적 ·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피고인의 착오에 정당한 사유가 인정되면 객관적 · 사후적으로는 피고인에 대한 법익의 침해가 없었다고 판명되었더라도 위법성의 조각을 인정하는 입장인 것으로 분석된다.
3) 이 사건의 경우,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할 수 있는 아래와 같은 사실 내지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이 사건 당시 피해자가 이 사건 서점에 진열된 펜을 훔쳤다고 착오한 것에는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된다. 이와 같은 측면에 비추어 살펴보더라도 피고인의 행위에는 위법성이 없다.
가) 이 사건이 발생하기 전 이 사건 서점에는 어린 학생들로 인한 도난 사고가 빈발하였다. 과거의 도난 사고에 관한 CCTV 영상을 살펴보면, 학생들이 진열된 물건을 팔소매, 주머니 또는 메고 온 가방에 넣거나, 여러 개의 물건을 고른 다음 그 중 일부는 주머니에 넣고 일부는 계산대로 가지고 와 계산하는 모습 등이 확인된다.
나) 피고인과 피고인의 남편은 CCTV를 통해 이 사건 서점에 진열된 물건을 훔치는 학생들의 모습을 확인하고 직접 학생들을 훈계하거나 학생들의 부모에게 알리는 등의 방식으로 대처하여 왔다. 피고인은 동생이나 친구들에게 학생들로 인한 도난 사고 때문에 힘들다고 자주 하소연하였다. 이 사건 당시에도 피고인은 도난 사고를 우려하여 CCTV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다) 사건 당시인 2020. 12. 18. 15:00경 CCTV에 찍힌 피해자의 모습 중 멘토스를 패딩 오른쪽 주머니에 집어넣는 모습은 흡사 피해자가 이 사건 서점에 진열된 물건을 들어 손에 쥐고 있다가 주머니에 집어넣는 것처럼 보인다. 피해자가 들고 있었던 멘토스는 CCTV 영상을 통해서는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식별되지 않고 단지 긴 막대 모양의 물체로만 보일 뿐이다. 마침 피해자는 펜이 진열되어 있는 서점의 벽면 쪽으로 팔을 내밀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피고인으로서는 피해자가 진열되어 있는 펜 중한 개를 집어 몰래 패딩 주머니에 넣은 것으로 오해할 여지가 충분하였다. 당시 피해자의 오른쪽 팔이 잠시 머뭇거리다 패딩 주머니로 들어간 모습은 그와 같은 피고인의 오해를 더욱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
라) E이 이 법원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진술한 내용에 따르면, 피해자는 사건 당일 위와 같이 멘토스를 패딩 주머니에 집어넣기 전에도 D과 함께 이 사건 서점에 진열된 물건들을 구경하면서 계속하여 지우개나 볼펜 등을 손으로 집었다가 내려놓으면서 흩뜨리는 행동을 하였고, E은 피해자에게 다가가 물건을 제자리에 정리하면서 구경해 달라는 취지로 말하였다. 피고인은 CCTV를 통해 피해자가 위와 같이 수상한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고 연속되는 피해자의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다가 피해자가 위와 같이 멘토스를 패딩 주머니에 집어넣는 모습까지 본 다음 비로소 피해자가 펜을 훔친 것이라는 판단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마) 피고인이 이 사건 발생 이전 CCTV를 통해 확인한 학생들의 의심스러운 행위는 모두 이 사건 서점에 진열된 물건에 대한 절취행위로 밝혀졌던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은 그와 같은 인지적 배경 하에서 CCTV에 담긴 피해자의 매우 의심스러운 행동을 보고 피해자가 펜을 훔쳤다는 강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피고인이 자신이 착각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마. 소결론
피고인의 행위는 피해자의 승낙에 따른 것이거나 정당행위에 해당하여 위법성이 없다. 또한, 피고인의 행위는 위법성조각사유의 전제사실이 존재한다고 착오한 결과 이루어진 것으로서 그와 같은 착오에 정당한 사유가 인정되므로 위법성이 없다(이와 같이 피고인의 행위에 위법성이 없다고 판단하는 이상, 기대불가능성으로 인하여 피고인에게 책임이 없다는 주장에 관해서는 더 나아가 판단하지 않는다).
5. 결론
이 사건 공소사실은 죄가 되지 않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에 의하여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형법 제58조 제2항 본문에 의하여 무죄판결의 요지를 공시하기로 한다.
이상과 같이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에 따른 국민참여재판을 거쳐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재판장 판사 이상오
판사 이경한
판사 이원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