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시사항
과점시장에서 경쟁사업자들 사이에 가격결정에 관한 합의가 있었는지 및 어느 사업자가 그러한 합의에 가담하였는지를 판단하는 방법
판결요지
과점시장에서는 경쟁사업자가 가격을 책정하면 다른 사업자는 이에 적절한 방법으로 대처하기 마련이고, 이때 어느 사업자가 경쟁사업자의 가격을 모방하는 것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할 것으로 판단되면 경쟁사업자와 명시적 합의나 암묵적인 양해 없이도 독자적으로 실행에 나아갈 수 있는 것이므로, 과점시장에서 경쟁상품의 가격이 동일·유사하게 나타나는 외형상의 일치가 상당한 기간 동안 지속되고 사업자들이 이러한 사정을 모두 인식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에 더하여 사업자들 사이에 가격결정과 관련된 명시적·묵시적 의사 연락이 있다고 볼 만한 추가적 사정이 증명되지 아니하면 가격결정에 관한 합의가 있다고 인정할 수 없다. 그리고 경쟁사업자들 사이에 가격결정에 관한 합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어느 사업자가 그러한 합의에 가담하였다고 볼 만한 사정은 제한적인 반면, 사업자가 시장 여건에 따라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독자적으로 행동하였다거나 또는 경쟁사업자들과 사이에 담합을 한 것과는 일반적으로 양립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였다고 볼 만한 사정이 상당한 기간 동안 지속되는 등 경쟁사업자들과 사이에 의사 연락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에는 사업자가 합의에 가담하였다고 인정할 수 없다.
원고, 상고인
현대오일뱅크 주식회사 (소송대리인 변호사 이재홍 외 4인)
피고, 피상고인
공정거래위원회 (소송대리인 변호사 최수희 외 1인)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상고이유서 제출기간이 경과한 후에 제출된 상고이유보충서의 기재는 상고이유를 보충하는 범위에서)에 대하여 판단한다.
1.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이라 한다) 제19조 제1항 이 금지하는 ‘부당한 공동행위’는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에 대한 합의’로서 이때 ‘합의’에는 명시적 합의뿐 아니라 묵시적인 합의도 포함되지만, 그 합의는 둘 이상 사업자 사이에 의사의 연락이 있을 것을 본질로 하므로 단지 위 규정 각 호에 열거된 ‘부당한 공동행위’가 있었던 것과 일치하는 외형이 존재한다고 하여 당연히 합의가 있었다고 인정할 수는 없고 사업자 사이에 의사연결의 상호성을 인정할 만한 사정에 대한 증명이 있어야 한다( 대법원 2013. 11. 28. 선고 2012두17421 판결 등 참조).
과점시장에서는 경쟁사업자가 가격을 책정하면 다른 사업자는 이에 적절한 방법으로 대처하기 마련이고, 이때 어느 사업자가 경쟁사업자의 가격을 모방하는 것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할 것으로 판단되면 경쟁사업자와의 명시적 합의나 암묵적인 양해 없이도 독자적으로 실행에 나아갈 수 있는 것이므로, 과점시장에서 경쟁상품의 가격이 동일·유사하게 나타나는 외형상의 일치가 상당한 기간 동안 지속되고 사업자들이 이러한 사정을 모두 인식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에 더하여 사업자들 사이에 가격결정과 관련된 명시적·묵시적 의사 연락이 있다고 볼 만한 추가적 사정이 증명되지 아니하면 가격결정에 관한 합의가 있다고 인정할 수 없다. 그리고 경쟁사업자들 사이에 가격결정에 관한 합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어느 사업자가 그러한 합의에 가담하였다고 볼 만한 사정은 제한적인 반면, 그 사업자가 시장 여건에 따라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독자적으로 행동하였다거나 또는 경쟁사업자들과 사이에 담합을 한 것과는 일반적으로 양립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였다고 볼 만한 사정이 상당한 기간 동안 지속되는 등 경쟁사업자들과 사이에 의사 연락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에는 그 사업자가 그 합의에 가담하였다고 인정할 수 없다.
2. 원심은 채택 증거에 의하여 인정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실과 사정, 즉 ① 액화석유가스(이하 ‘LPG’라 한다) 시장은 수입사인 주식회사 이원(이하 ‘E1’이라 한다), 에스케이가스 주식회사(이하 ‘SK가스’라 한다), 정유사인 에스케이에너지 주식회사(이하 ‘SK에너지’라 한다), 지에스칼텍스 주식회사(이하 ‘GS칼텍스’라 한다), 에스대시오일 주식회사(이하 ‘S-Oil’이라 한다), 원고 등이 과점 체제를 이루고 있는데, 법령에 규정된 정제시설 및 저장시설 등을 갖추어야 하는 등의 사유로 진입장벽이 높은 점, ② 정유사들은 LPG 가격자유화 이전인 1999년경부터 수입사들로부터 LPG를 구매하면서 수입사들의 충전소 판매가격을 통보받은 후 그 통보가격과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각자의 충전소 판매가격을 결정하여 왔는데, 이러한 관행 아래 수입사들은 2001. 1. 1.의 LPG 가격자유화조치 이후에도 자신들이 서로 거의 동일한 가격으로 충전소 판매가격을 결정하면 정유사들이 이에 동조하여 가격을 결정할 것이라고 예견하고 그 판매가격을 정유사들에 통보하여 주었고, 특히 SK가스는 통보문서의 수신자란에 정유사들을 모두 표시하고 자신의 충전소 판매가격까지 알려 줌으로써 그 무렵부터 합의 기간인 약 6년 동안 LPG 판매가격이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결정되도록 한 것으로 보이는 점, ③ 원고의 임직원이 다른 LPG 사업자 소속 임직원들과 함께 모임을 가지면서 가격 정보를 확인하기 위하여 실제 판매가격을 유선으로 확인하기도 하였고, E1은 원고의 협조를 얻어 ‘SK가스가 기존에 원고가 거래하던 스폿(SPOT)거래업자와의 거래를 유치한 사실’을 파악하기도 한 것으로 보이는 사정 등에 비추어 원고가 다른 LPG 사업자들과 교류를 통하여 경쟁 자제, 판매가격 유지 등에 관한 공감대를 유지하여 온 것으로 보이는 점, ④ GS칼텍스가 수입사의 판매가격과 차이를 두어 판매가격을 정하자, 원고의 직원은 E1에 ‘LPG 가격차이 발생이 시장경쟁 촉발의 도화선이 될 수 있음’을 우려한다는 의사를 표명한 일도 있는 점, ⑤ 스폿거래는 계절적 요인 등에 따른 잉여물량을 일회성으로 처분하기 위한 것인데도, 원고는 전체 물량 중 연 20% 가량의 물량을 스폿거래로 하면서 그 가격도 ‘충전소 판매가격 - 60원/kg’의 저가로 거래하였고 그러한 가운데에도 수입사로부터 스폿거래 물량을 초과하는 LPG를 계속 구매하였는바, 이는 이 사건 합의를 용이하게 하고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고, 또한 수입사들은 LPG 판매가격의 하락을 방지할 목적에서 정유사들의 스폿거래를 억제하기 위하여 잉여물량을 구매해 주는 영업전략으로 SK에너지나 S-Oil의 잉여물량을 구매해 주었으며, 원고도 2회에 걸쳐 SK에너지에 잉여물량을 판매한 적이 있는데 그 가격은 S-Oil이 SK가스에 잉여물량을 판매한 가격과 유사한 점 등에 비추어, 원고가 이 사건 합의에 가담하였다고 본 피고의 이 사건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단하였다.
3. 그러나 원심의 이러한 사실인정과 판단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수긍하기 어렵다.
가. 원심판결 이유와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한 증거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정을 알 수 있다.
(1) LPG 시장은 과점시장으로서 한 사업자가 경쟁사업자의 가격을 모방하는 것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할 것으로 보이면 합의 없이도 독자적으로 실행에 나아갈 수 있으므로, LPG 판매가격이 거의 동일하게 유지되었다는 사정만으로는 가격결정에 관한 합의의 존재나 그 합의에 가담한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
(2) LPG 수입사들이 원고에게 거래기간 동안 판매가격을 통보하였으나 그것이 원고와의 합의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만한 자료는 없고, 수입사 중 SK가스가 자신의 충전소 판매가격을 통보하면서 그 수신자란에 원고도 표시한 것은 SK가스의 일방적 행위이므로, 이러한 사정을 들어 원고와 다른 LPG 사업자 사이에 가격결정에 관하여 상호 의사 연락이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
(3) 원고의 임원 또는 팀장급 직원이 LPG 수입사 및 정유사들의 모임에 참석한 것은 피고가 주장하는 이 사건 합의기간 중 2회에 불과하므로, 그 모임에 참석한 것이 이 사건 합의와 관련이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4) 정유사 직원들의 진술 중 ‘SK가스가 기존에 원고가 거래하던 스폿거래업자와의 거래를 유치한 사실’을 E1이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만으로 원고와 E1이 긴밀한 협조관계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GS칼텍스가 가격인하 조치를 단행하자 E1 소속 직원이 대비책을 마련하면서 원고의 직원으로부터 청취하였다는 ‘LPG 가격차이 발생이 시장경쟁 촉발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취지의 의견도 기존에 원고와 다른 LPG 사업자들 사이에 합의가 존재하였음을 인정한 것이라고 볼 근거가 될 수 없다.
(5) 피고가 주장하는 이 사건 합의는 수입사들 사이의 10원 내외의 판매가격 차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인데, 원고는 스폿거래를 통하여 자신의 물량 중 20% 가량을 계속하여 충전소 판매가격보다 kg당 60원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여 왔고 그로 인하여 이 사건 합의에 반하는 가격혼란이 초래될 위험이 있었음에도 원고의 이러한 행위는 줄곧 유지되어 왔으며, 수입사들은 이러한 스폿거래 억제를 위하여 정유사들의 잉여물량을 구매해 주는 전략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수입사들이 원고의 잉여물량을 구매해 준 적은 없고, 다만 원고가 같은 정유사인 SK에너지에 잉여물량을 판매한 적이 있을 뿐이다.
(6) 한편 원고는 LPG 시장에서 점유율이 가장 낮고 2003년 이후 그 점유율이 계속하여 하락하였는데, 그 기간에도 수입사들로부터 LPG를 구매하면서 줄곧 수입사들의 가격을 추종해 왔다.
나. 이러한 사정들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보면, 비록 피고가 주장하는 이 사건 합의기간 동안 LPG 사업자들의 충전소에 대한 판매가격이 거의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었고 수입사들이 원고에게 판매가격을 통보하여 왔으며, 원고와 다른 LPG 사업자들 사이에 직원 모임 등이 있었거나 직원들 사이에 연락이 이루어진 사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원고와 다른 사업자들 사이에 가격결정에 관한 의사 연락을 추인할 만한 사정은 제한적인 반면, 원고가 주어진 시장상황에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독자적으로 행동하였거나 또는 가격결정에 관하여 다른 사업자들과 담합을 한 것과는 일반적으로 양립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였다고 볼 만한 사정이 상당한 기간 동안 지속되었다고 할 것이므로, 원고가 다른 LPG 사업자들과 LPG 가격에 관하여 상호 의사연락을 함으로써 이 사건 합의에 가담하였다는 점이 증명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
다. 그럼에도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사정만으로 원고가 이 사건 합의기간 동안 다른 사업자들과 LPG 가격결정에 관하여 묵시적 합의를 하였거나 그러한 합의에 가담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으니,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공정거래법상 ‘부당한 공동행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하거나, 논리와 경험법칙에 위배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난 잘못이 있다.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의 주장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
4.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이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