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고 인
피고인
검사
신상규(기소), 변철형, 이영창(공판)
변 호 인
법무법인 덕수 외 3인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을 징역 1년 및 자격정지 1년에 처한다.
압수된 별지2 기재 물건들을 몰수한다.
이 사건 공소사실 중 자살방조의 점은 무죄.
이 판결 중 무죄 부분의 요지를 공시한다.
이유
1. 사건의 경과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인정된다.
가. 공소외 2는 1991. 5. 8. 08:07경 서울 (주소 1 생략) 소재 ○○대학교 본관 5층 옥상에서 분신 후 투신하여 같은 날 08:25경 사망하였는데, 공소외 2가 옥상에 벗어 놓은 양복 상의에서 유서 2장(이하 이 사건 유서라 한다)이 발견되었다.
나.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는, 1991. 7. 12. 피고인이 이 사건 유서를 대필하여 공소외 2의 자살을 방조하였다는 공소사실로 기소( 서울형사지방법원 91고합1126 )하고, 1991. 8. 21. 피고인이 이적단체에 가입하고 이적표현물을 소지하였다는 공소사실로 추가기소( 서울형사지방법원 91고합1328 )하여, 1991. 8. 28. 위 두 사건이 병합되었다. 서울형사지방법원은 1991. 12. 20. 위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하면서 피고인에게 징역 3년 및 자격정지 1년 6월을 선고하였다.
다. 피고인과 검사는 위 판결에 대하여 서울고등법원에 항소(92노401) 를 제기하였다. 서울고등법원은 1992. 4. 20. 피고인의 사실오인, 법리오해 항소이유는 모두 이유 없으나, 제1심판결에는 국가보안법위반죄에 대하여 누범가중을 하지 않은 위법이 있으므로 그 죄와 형법 제37조 전단의 경합범관계에 있는 자살방조죄 부분도 함께 파기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제1심판결 전부를 파기한 후 피고인에게 징역 3년 및 자격정지 1년 6월을 선고하였다(이하 ‘재심대상판결’이라 한다).
라. 피고인은 재심대상판결에 대하여 대법원에 상고( 92도1148 )하였으나, 1992. 7. 24. 상고가 기각되어 재심대상판결이 확정되었다.
마. 한편, 경찰청은 2004. 11. 18. 경찰청 과거사위원회를 발족시키고, 2005. 3. 22. 회의에서 해방 후 발생한 10대 의혹 사건을 조사대상 사건으로 확정하고 그 중 하나인 소위 ‘△△△ 유서대필사건’에 관하여 조사활동을 전개하면서 공소외 3으로부터 ‘전대협노트’와 ‘낙서장’을 제출받게 되었고, 일련의 조사활동을 거쳐 2005. 12. 16. ‘현재까지의 조사결과로 보아 이 사건 유서는 공소외 2의 필체로 보이고, 재심대상판결의 제1심에서 증거로 제출되었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그 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변경되었으나, 이하에서는 당시의 명칭에 따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또는 ’국과수‘라고 표시한다)의 필적감정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감정이 아니었다는 의문이 있다. 검찰이 미리 유서 대필 쪽으로 결론을 내리고 불리한 증거를 배척하는 등 무리한 수사를 한 것이라 의심되는 부분이 있으나, 유서 원본에 대한 필적감정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고 판단된다.’라는 내용으로 과거사 진상규명 중간조사결과를 발표하였다.
바. 그 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따라 구성된 진실·화해위원회(이하 ‘진화위’라고만 한다)는 피고인의 진실규명신청을 받고 사전조사를 거쳐 2006. 4. 25. 조사개시를 의결하였고, 피고인 작성의 ‘출정거부이유서’ 및 ‘봉함엽서’, 공소외 4가 제출한 ‘각서’, 공소외 3이 제출한 ‘전대협노트’ 및 ‘낙서장’에 대한 필적감정을 국과수 및 사설감정원에 의뢰하여 필적감정결과를 제출받았으며, 2007. 11. 13. 필적감정결과 등을 기초로 피고인이 이 사건 유서를 작성한 것으로 볼 수 없고, 경험칙상 타인의 유서를 대필한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임에 비추어 공소외 2가 자신의 유서를 작성하였다고 볼 수 있음에도 필적감정 및 정황에 의거 기소하고 유죄판결을 한 것은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을 요구하는 증거재판주의의 원칙에 위반한 것이므로, 국가는 확정판결에 대하여 피해자(이 사건 피고인을 가리킨다)와 그 가족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형사소송법이 정한 바에 따라 재심 등 상응한 조치를 취하고, 종전 국과수의 필적감정, 기소 및 유죄판결에 대하여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사과하고 화해를 이루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진실규명결정을 하였다.
사. 피고인은 2008. 5. 1. 진화위의 진실규명결정과 그 결정의 이유에서 언급된 감정결과 등을 기초로 재심대상판결 중 자살방조의 점에 관하여 이 사건 재심청구를 하였다. 이 법원은 2009. 9. 15. 자살방조의 점에 관하여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2호 , 제5호 의 재심사유가 있다고 인정하면서, 이와 국가보안법위반죄가 경합범 관계에 있어 재심대상판결에서 하나의 형이 선고되었다는 이유로 재심대상판결 전부에 대하여 재심개시결정을 하였다.
아. 검사는 2009. 9. 17. 재심개시결정에 대하여 재항고(즉시항고)를 하였다. 대법원은 2012. 10. 19. 위 재심개시결정에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 에서 정하는 증거의 명백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였거나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한 잘못이 있기는 하나,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2호 소정의 재심사유가 인정된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다는 이유로 검사의 재항고를 기각( 2009모1181 )하였고, 위 재심개시결정은 확정되었다.
2. 이 법원의 심판범위
가. 경합범 관계에 있는 수개의 범죄사실을 유죄로 인정하여 한 개의 형을 선고한 불가분의 확정판결에서 그 중 일부의 범죄사실에 대하여만 재심청구의 이유가 있는 것으로 인정된 경우에는, 형식적으로는 1개의 형이 선고된 판결에 대한 것이어서 그 판결 전부에 대하여 재심개시의 결정을 할 수밖에 없지만, 비상구제수단인 재심제도의 본질상 재심사유가 없는 범죄사실에 대하여는 재심개시결정의 효력이 그 부분을 형식적으로 심판의 대상에 포함시키는데 그치므로, 재심법원은 그 부분에 대하여는 이를 다시 심리하여 유죄인정을 파기할 수 없고, 다만 그 부분에 관하여 새로이 양형을 하여야 하므로 양형을 위하여 필요한 범위에 한하여만 심리를 할 수 있을 뿐이다( 대법원 2001. 7. 13. 선고 2001도1239 판결 참조).
나. 이 사건에서 재심대상판결은 자살방조죄와 국가보안법위반죄를 경합범가중하여 한 개의 형으로 처벌하였는데, 그 중에서 자살방조죄 부분에만 재심사유가 있음은 위에서 본 바와 같다. 위 법리에 의하면 재심사유가 없는 국가보안법위반죄의 범죄사실은 재심개시결정의 효력이 국가보안법위반죄 부분을 형식적으로 심판의 대상에 포함시키는데 그치므로, 이 법원은 국가보안법위반죄 부분에 대하여는 이를 다시 심리하여 유죄인정을 파기할 수 없다. 따라서, 재심대상판결 중 국가보안법위반죄 부분에 관하여는 피고인의 사실오인 내지 법리오해 항소이유에 대하여 다시 판단하지 아니하고, 다만 위 부분에 관하여 새로이 양형을 하여야 하므로 양형을 위하여 필요한 범위에 한하여만 심리하기로 한다.
3. 항소이유의 요지
가. 주1) 피고인
(1) 법리오해
이 사건 공소장 중 자살방조의 점에 관한 공소사실에는 공소외 2가 언제, 어떻게 자살을 결심하였고, 피고인은 언제, 어떤 경위로 그 자살의도를 알게 되었으며, 유서대필의 시기, 장소, 방법 등은 어떠한지 등에 대해 그 구체적 상황 등이 적시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사건 공소장에는 이러한 사정이 전혀 적시되어 있지 않고, 단지 1991. 4. 26. 이른바 ‘◇◇◇군 치사사건’이 발생할 무렵 공소외 2가 분신자살할 결심을 갖게 되었고, 피고인이 이를 알고서 유서를 대신 써주었다고 기재되었을 뿐인바, 자살한 공소외 2의 유서대필 사실만으로 바로 자살방조죄가 성립될 수는 없는 것이므로, 이 부분 공소에는 범죄가 될 만한 사실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 형사소송법 제328조 제1항 제4호 에 따라 결정으로 공소가 기각되어야 한다.
또한, 이 사건 공소장에는 막연히 1991. 4. 27.경부터 같은 해 5. 8.까지 사이의 일자불상경 서울 이하 불상지에서 피고인이 이 사건 유서를 대필하였다고만 기재되어 있을 뿐이어서, 실질적인 의미에 있어서도 전혀 특정되어 있지 아니하여, 피고인으로 하여금 현장부재증명 등에 관한 무죄의 항변이나 기타 공소사실에 대한 방어를 불가능하게 하고 있어 형사소송법 제254조 제4항 의 규정에도 위반된 것이므로 판결로써 공소가 기각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원심이 이 사건 공소를 적법하다고 판단한 것은 법리를 오해한 것이다.
(2) 사실오인
자살방조의 구성요건적 범죄사실인 공소외 2가 분신자살을 하려는 사실을 피고인이 알고 있었다는 점과 피고인이 그 자살결행을 용이하게 도와주겠다는 의사를 품게 되었다는 점을 인정할 만한 아무런 증거가 없다. 원심이 그 증거로서 인용한 것들은 조작된 자료들로서, 특히 원심이 인용한 증거들 중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정인 공소외 1 작성의 각 감정서는 그 접수 과정에서 자의적인 접수 생략, 감정의뢰사항에 대한 자의적인 감정사항 변경, 회보 누락, 감정방법의 비과학성(특히 ‘ㅎ’의 필법 누락), 감정의뢰된 필적들에 관한 작성시기의 현격한 차이 무시, 대조자료에 포함된 필적의 기재한 사람 수에 대한 착오 내지 무지, 공소외 1이 뇌물수수죄로 구속 기소되어 감정인으로서의 도덕적 기초를 상실한 점, 그 후 진화위에서 이루어진 공소외 2와 피고인 작성의 각 문서, 공소외 3이 제출한 전대협노트, 낙서장에 대한 각 필적감정 결과, 공소외 1이 공동심의에 관하여 원심 법정에서 위증한 것이 밝혀진 점 등에 비추어 그 자체로 아무런 신빙성이 없을 뿐더러 공소외 1이 수시로 검사와 상의하여 감정한 것으로서 객관성과 공정성이 결여되어 있다.
검사 제출의 증제11-1호(공소외 2의 전민련수첩, 이하 이 사건 수첩이라 한다)가 조작되었는지 여부에 관한 위 감정서의 기재도 수첩 본래의 완전한 형태나 제반 형상에 관한 과학적 검증 없이 내려진 것이고, 이에 관한 공소외 5의 진술 역시 그녀가 변호인 제출의 증제8호(공소외 2 등의 노트)에 관하여 사실과 다르게 잘못 진술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믿을 수 없으므로, 이 사건 수첩은 공소외 2가 생전에 사용하던 수첩 그대로임이 명백하다. 검사 제출의 증제7-1호(공소외 5의 수첩)에 표시된 공소외 2의 전화번호도 피고인이 기재한 것이라는 공소외 5의 검찰 제2회 진술 또한 피고인이 왜, 어떤 경위로 공소외 2의 전화번호를 기재하였는지에 관하여 아무런 설명이 없는 점과 공소외 5의 검찰에서의 피고인과의 대질신문시의 진술, 원심법정에서의 진술 등에 비추어 믿을 수 없다.
반대로 변호인이 제출한 증거들은 모두 이 사건 유서(검찰 제출의 증제1-6호)를 공소외 2가 직접 썼다고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들로서 그 관계자의 증언들에 의하여 모두 성립의 진정함이 인정되었고 이를 배척할만한 아무런 자료가 없는데도, 원심은 일방적이고도 근거가 박약한 논리를 내세우거나 검사에게 입증책임이 있음을 무시하고 이에 관한 필적감정결과가 없어 믿을 수 없다는 이유 등으로 이를 배척하였다.
원심이 위와 같이 믿을 수 없는 증거들에 의해 피고인에 대해 자살방조죄를 인정하였음은 채증법칙을 그르친 나머지 사실을 오인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나. 검사
원심이 선고한 형량(징역 3년 및 자격정지 1년 6월, 몰수)은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
4. 이 부분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은 1982. 3. ☆☆대학교 문리과대학 화학과에 입학하여 1985. 8. 31. 학사경고 제적을 당한 자로서, ☆☆대학교 “군부독재 타도와 민중민주정부수립 및 민족자주통일을 위한 투쟁위원회(약칭 : 삼민투위)” 위원장으로 활약하던 중 1984. 11. 5. 서울형사지방법원에서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죄로 구류 10일을, 1985. 8. 8. 같은 법원에서 같은 죄명으로 구류 10일을 각 선고받고, 1985. 11. 18. 서울 (주소 2 생략) 소재 ◎◎당 중앙정치연수원에 침입, 농성, 방화한 소위 “가락동 ◎◎당연수원 점거농성사건”을 주동한 혐의로 1986. 3. 28.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에서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및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죄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아 마산교도소에서 복역하다가 1987. 7. 8. 가석방으로 출소(형기 종료 예정일 : 1987. 11. 30.)하고, 1988. 12. “노동자계급이 중심으로 기층민중이 단결, 무장봉기하여 현정부를 타도한 후 임시혁명정부를 구성, 사회주의혁명을 완성한다”는 등의 강령으로 학생운동권 출신인 공소외 6, 공소외 7 등 4명이 결성한 이적단체인 ‘혁명의 불꽃’ 그룹에 ‘▷▷’라는 가명으로 가입하고, 위 단체가 1989. 8. ‘혁명적 노동자계급 투쟁동맹’(약칭 : 혁노맹)으로 확대 개편된 후 계속 위 공소외 6 등과 접촉하면서 ‘◈◈◈’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하는 한편 1989. 5.경부터 현재까지 ‘◐◐◐’라는 가명으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약칭 : 전민련)에 가입, 그 총무국 부장직에 있는 자인바, 피고인과 함께 전민련에 근무하는 사회부장 공소외 2가 1991. 4. 중순경 가족들에게 결혼하겠다는 의욕을 보이다가 같은 달 26. 소위 ‘◇◇◇군 치사사건’이 발생하여 재야운동권의 반정부투쟁 분위기가 고조되자 민중을 자극하여 고조된 반정부투쟁 분위기를 더욱 확산시키기 위하여 분신자살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음을 알고 공소외 2의 분신자살 결행을 용이하게 할 의도로,
1991. 4. 27.경부터 같은 해 5. 8.까지 사이의 일자불상경 서울 이하 불상지에서 ♧♧♧♧대학 리포트용지에 검정색 사인펜으로 공소외 2 명의의 유서 2매를 작성함에 있어, 공소외 2는 1982.경 경기 파주군 (주소 3 생략) 소재 ♠♠종합고등학교 1년을 중퇴한 학력의 소유자로 지식과 문장력이 부족함에도 피고인의 지식과 문장력을 이용, “단순하게 변혁운동의 도화선이 되고자 함이 아닙니다. 역사의 이정표가 되고자 함은 더욱이 아닙니다. 아름답고 맑은 현실과는 다르게, 슬프게, 아프게, 살아가는 이 땅의 민중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는 고민 속에 얻은 결론이겠지요... 이하 생략 -공소외 2-”이라는 내용의 유서 1장과, 공소외 2는 6세 때 생모가 사망한 후 주로 누나 손에서 자라나 생모에 대한 기억은 물론 계모에 대한 정이 전혀 없어 유서의 내용에는 어머니에 대한 언급이 있을 수 없고 오히려 큰누나 공소외 8을 비롯한 3명의 누나와 3명의 자형들에 대한 언급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반대로 누나들과 자형들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이, 아버지, 어머니만을 대상으로 “아버지, 어머니 어버이날입니다. 오늘 이 행위를 일삼겠다는 생각을 하기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여지껏 한번도 아버지, 어머니에게 효도라는 것을 해보지 못했지요. 이제 ■■이가 아버지, 어머니의 아들이 아닌 조국의 아들이 됨을 선포하면서 마지막 효도를 하려 합니다. 모든 주2) 문제는 대책위 사무실에 위임하세요. 전민련 ●●●형, 공소외 9 인권위원장님에게 위임하세요. 제 목숨보다 아끼고 사랑하는 선배님들입니다. -■■-”이라는 내용의 유서 1장을 작성하여 줌으로써 공소외 2의 분신자살을 조국과 민중을 위한 행위로 미화하여 공소외 2로 하여금 분신자살의 결의를 확실하게 함과 동시에 이후 장례의식 등 모든 문제를 공소외 9, 공소외 10 등 전민련과 소위 ◇◇◇사건 대책위에서 책임진다는 것을 암시하는 방법으로 공소외 2의 분신자살 결심과 결행을 용이하게 도와주어 공소외 2가 1991. 5. 8. 08:07경 서울 (주소 1 생략) 소재 ○○대학교 본관 5층 옥상에서 피고인이 작성하여 준 유서 2매와 사진 및 상의 등을 남겨놓고 전신에 시너 1통(약 2리터)을 뿌리고 소지한 1회용 가스라이터로 불을 붙인 후 약 16.5미터 아래 지상으로 뛰어내리게 하여 동인으로 하여금 서울 (주소 4 생략) 소재 ◆◆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병원으로 후송 중인 같은 날 08:20경 전신화상, 전두골함몰골절, 골반골절 및 두개강내출혈, 골반강내출혈로 인하여 사망에 이르게 함으로써 공소외 2의 자살을 방조한 것이다.
5. 피고인의 법리오해 주장에 대한 판단
가. 형법 제252조 제2항 의 자살방조죄는 자살하려는 사람의 자살행위를 도와주어 용이하게 이를 실행하도록 함으로써 성립되는 것으로서, 그 방법에는 자살도구인 총, 칼 등을 빌려주거나 독약을 만들어 주거나, 조언 또는 격려를 한다거나 기타 적극적, 소극적, 물질적, 정신적 방법이 모두 포함된다.
이 사건 자살방조죄에 관한 공소사실은, 피고인이 공소외 2가 공소장에 기재된 상황에서 분신자살을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음을 알고 그 실행을 용이하게 도와주겠다는 의도로 1991. 4. 27.경부터 같은 해 5. 8.까지 사이의 일자불상경 서울 이하 불상지에서 리포트 용지에 검정색 사인펜으로 공소장에 기재된 내용의 유서 2장을 작성하여 줌으로써 그 유서내용에 의하여 위 공소외 2에게 그의 분신자살이 조국과 민족을 위한 행위로 미화될 것이며 사후의 장례의식을 포함한 모든 문제도 공소외 9, 공소외 10 등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약칭 전민련, 이하 ‘전민련’이라 한다)에서 책임진다는 것을 암시하는 방법으로 분신자살의 실행을 용이하게 도와주어 공소외 2의 자살을 방조하였다는 내용이므로, 이는 결국 적극적, 정신적 방법으로 자살하려는 사람에게 자살의 동인(동인)과 명분을 주어 자살을 용이하게 실행케 하였다는 것으로서 자살방조죄에 해당되는 공소임이 명백하므로, 공소장에 자살방조죄가 될 만한 사실이 포함되지 아니하였다고는 볼 수 없다.
나. 또한, 공소사실에 범죄의 일시와 장소로서 ‘1991. 4. 27.경부터 같은 해 5. 8.까지 사이의 일자불상경 서울 이하 불상지에서’로 되어 있고, 유서 작성의 방법에 관하여 구체적인 기재가 없다 하더라도, 유서 대필 여부가 문제로 되는 한 이는 자살자와 유서 대필자 사이에 일어난 일이어서, 결국 그 유서가 대필되었는지 여부가 그 범죄성립의 핵심을 이루는바, 이 사건과 같이 자살이 이미 실행되어 버렸고 그 유서가 압수되어 특정되어 있는 경우, 그 일시와 장소는 범죄의 동일성 인정과 이중기소방지, 시효저촉 여부, 토지관할을 가름할 수 있는 범위에서 그 유서대필 사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도로만 기재되어 있으면 충분하므로, 이점에서 위 공소사실은 특정되어 있다고 봄이 상당하고, 따라서 위와 같은 정도의 사유만으로는 현장부재 등의 증명 또는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장애를 초래한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다. 결국, 피고인의 법리오해 주장은 모두 이유 없다.
6. 피고인의 사실오인 주장에 대한 판단
가. 공소외 2의 분신자살 경위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1) 공소외 2는 1965. 11. 27.생으로서 6세 무렵에 생모를 여읜 채 아버지와 계모 밑에서 성장하였고, 경기 파주군 소재 ♠♠상고 1학년 때 상경하여 큰누나 공소외 8의 집에서 그 부부와 함께 살면서 한때 대학입학시험자격 검정고시 준비를 하다가 1985. 12.경부터 1988. 6.경까지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한 뒤, 1989년부터 성남민주화청년연합에 가입하여 활동하였고, 1990. 12.말경부터는 전민련에 가입하여 활동해 오면서 1991. 4. 26. 이른바 ‘◇◇◇군 치사사건’이 발생되어 전국적으로 시위 열기가 고조되고 재야운동권 인사들이 범국민대책회의를 결성하면서 전민련도 그 대책회의에 참가하게 되자 전민련 파견자로서 위 대책회의 본부가 설치되어 있었던 ◆◆대학교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2) 공소외 2는 처음 전민련 총무국에 근무할 때에 실제와는 다르게 학력을 속여 ⊙⊙대학교 3학년 중퇴자로 행세하였고, 이미 그 전부터 전민련 총무국에 근무하던 피고인과 일상접촉을 통해 친하게 되자 1991. 1. 20. 피고인과 그 애인인 공소외 11의 소개로 공소외 11의 대학동창생인 공소외 5를 소개받아 공소외 5와 교제하기에 이르렀는데, 공소외 2는 공소외 5에게도 ⊙⊙대학교 3학년 중퇴자로 행세하였다.
3) 그 후 공소외 2는 공소외 5와 주 1, 2회 가량 만나 교제하였고, 같은 해 3. 17. 함께 춘천 청평사에 놀러갔다가 공소외 5에게 청혼을 하였으며(그달 말경에는 중학교 동창생인 공소외 12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자랑을 하였고, 같은 해 4. 중순경에는 둘째 누나인 공소외 13에게 결혼하게 될 것 같다는 말까지 하여, 누나들이 결혼하면 방을 얻어주어야겠다고 상의하기도 하였다), 공소외 5도 위 청혼에 대해 대답은 하지 않았으나 같은 해 4. 말에서 5. 초에 이르러서는 공소외 2에게 애정을 느끼게 되었다.
4) 한편, 공소외 2는 공소외 14로부터 ▶▶▶▶▶▶대생 몇 명의 모임인 ‘소리 새벽’의 진로를 지도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같은 해 5. 5.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있는 ▶▶▶▶▶▶대학교에서 공소외 14, 공소외 15, 공소외 16 등 회원들과 첫 모임을 갖고 자기소개와 모임의 진로 등을 논의하였는데, 공소외 2는 위 모임의 지도자로 추대되어 있는 셈이고 그 회원들보다 대체로 6, 7세 정도 나이가 많은 사회인인데도, 모임 도중에 위 모임의 성격에 걸맞지 않게 두 차례나 술을 사오게 하여 낮부터 술을 많이 마셨는가 하면, 모임이 끝난 후에도 그 회원들과 식당, 술집 등을 옮겨 다니며 대취하도록 술을 마시다가, 다시 여자 회원들인 공소외 16, 공소외 15와 함께 술을 사들고 백제장 여관에 들어가 그곳에서도 술을 마시게 되었다.
5) 공소외 2는 위 백제장 여관에서 술에 만취하여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가족들 이야기 등 신변 잡담을 하고, 주먹으로 방바닥을 치고 울기까지 하면서 ‘5. 8.에 자살하겠다. 이러한 사실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 못하겠고 처음 하는 말이다.’고 5. 8.에 자살하려는 결심을 토로하였고, 그때 ‘왜 우리에게 얘기 하느냐. 의문이 난다.’고 물어보는 공소외 15의 뺨을 때리기까지 하면서 ‘개새끼들’, ‘죽는 의미를 생각해 보자’는 등의 표현을 쓰기도 하였으며, 5. 6. 오후까지 함께 있으면서 자살을 만류하는 공소외 16에게 다시 5. 8. 자살할 계획임을 확인해 주었다.
6) 공소외 2는 1991. 5. 7. 19:30경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 있는 카페에서 공소외 5를 만나 ‘분신한 사람들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분신한 사람들은 어떠하였을 것 같은가’라는 등의 심각한 말을 하여, 공소외 5는 전날과 그날 공소외 2와 두 차례 전화통화를 할 때에도 ‘당분간 못 만날 것 같다. 잘 살아라.’는 등의 말을 들은 바 있고 그때는 이른바 ‘◇◇◇군 치사사건’으로 분신자살이 잇따르던 상황이어서 공소외 2가 자살을 하려는 것으로 눈치채고 울면서 ‘우리는 왜 이제까지 만났느냐. 그러면 나는 어떻게 된단 말이냐’고 애원반 항의반 자살하려는 결심을 돌리도록 노력하였으나, 공소외 2는 끝내 그날 22:30경 공소외 5를 아현 전철역 플랫폼에 밀어넣다시피 들여보낸 뒤 공소외 5와 헤어져 버렸다.
7) 한편, 공소외 16은 공소외 2와 1991. 5. 7. 18:00에 만나기로 약속하였는데 공소외 2가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자, 같은 날 21:30경 ◆◆대에 설치된 위 범국민대책회의 사무실에 찾아가 전민련 관계자인 공소외 17을 만나서 공소외 2가 위와 같이 공소외 16, 공소외 15에게 5. 8. 자살할 계획임을 토로한 사실을 알렸다. 공소외 17은 전민련 관계자를 통하여 공소외 2와 함께 자취하고 있던 공소외 18, 공소외 19(공소외 18, 공소외 19는 서울 서대문구 (주소 5 생략)에 있는 공소외 20의 집 옥상 방에서 공소외 2와 함께 자취하고 있었던 사람이다)를 수소문하였다.
8) 공소외 18과 공소외 19는 위와 같은 사정을 듣게 되자, 공소외 19는 공소외 5를 찾으러 갔고, 공소외 18은 1991. 5. 7. 22:00경 위 자취방에 갔다가 자취방으로 들어오는 공소외 2를 만나 부근 포장마차로 데려가 술을 마셨으며, 공소외 18의 전화를 받고 포장마차에 온 공소외 17과 함께 그곳에서 대학로까지 가서 공소외 2와 함께 지냈다.
9) 공소외 2는 공소외 18, 공소외 17과 대학로에서 함께 있던 중 1991. 5. 8. 05:30경 전화를 걸겠다고 그곳 공중전화 박스로 간 뒤 그곳에서 잠적하였고, 그날 06:30경 공소외 5에게 신촌 이대 부근이라고 하면서 ‘열심히 살아라. 사랑한다.’는 내용의 전화를 하였다. 그 후 공소외 2는 신나 2통을 신문지에 싸들고 서울 (주소 1 생략) 소재 ○○대학교 본관 5층 옥상에 올라가 그날 08:07경 신나를 몸에 뿌리고 라이터 불을 붙인 뒤 약 16.5m 아래 땅바닥으로 뛰어 내려 분신자살을 하였고, 공소외 2가 위 옥상에 벗어 놓은 양복 상의 안에서 이 사건 유서가 발견되었다.
나. 원심의 증거관계에 대한 판단 요지
원심은, 피고인의 수사기관과 원심 법정에서의 일부 진술, 공소외 5의 수사기관과 원심 법정에서의 진술, 공소외 5에 대한 1심 제1회 공판기일 전 증인신문조서, 공소외 21, 공소외 22, 공소외 23, 공소외 1의 원심 법정에서의 각 진술, 공소외 1 작성의 각 감정서, 현장검증조서, 사체검안서, 각 압수물 등의 증거들을 종합하여 피고인에 대한 이 부분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면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정인 공소외 1 작성의 각 감정서는 공소외 1의 경력, 감정과정, 감정에 사용된 기구 및 감정방법, 공소외 1의 원심 법정 진술 등을 종합하면 공정하고 정당하게 감정이 이루어졌다고 보여 신뢰할 수 있고, 전민련이 공소외 2의 수첩이라고 주장하며 제출한 이 사건 수첩은 그 수첩 본체와 수첩에서 떨어진 채로 남아있는 전화번호부 기재란 3장의 절취선이 중복되고, 그 수첩의 형상, 글씨의 색깔, 사용된 필기구의 종류 등에 관한 공소외 5의 증언에 비추어 조작된 것으로 판단되며, 공소외 5는 검찰 제1회 진술시에는 자신의 수첩에 표시된 공소외 2의 전화번호가 공소외 2가 적어주었던 것이라고 허위로 진술하였다가 검찰 제2회 진술시에는 피고인이 공소외 2의 전화번호를 적어 넣은 것이라고 진술하였고, 원심 법정에서는 누가 썼는지 기억이 확실하지 않다, 피고인이 써 주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고 다시 번복하였는바, 공소외 5가 진술한 경위 등에 비추어 다시 번복된 진술은 믿기 어렵고, 검찰 제2회 진술이 사실에 부합된다고 판단하였다.
다. 당심의 증거관계에 대한 판단
(1) 이 사건의 쟁점 및 증거관계
이 부분 공소사실의 요지는 피고인이, 공소외 2가 분신자살을 하려는 것을 알고 공소외 2에게 유서를 대필하여 주어 공소외 2의 자살을 방조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피고인은 공소외 2의 유서를 대필하여 준 사실이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고, 공소외 2는 이미 분신자살을 실행하여 사망하였으며, 피고인이 유서를 대필하여 주는 것을 직접 목격한 사람은 없고, 자살 현장에는 이 사건 유서만이 남겨져 있었으므로, 결국 이 사건 유서의 필적이 과연 피고인의 필적인지 여부가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이다.
그런데, 이 부분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듯한 직접증거로는 국과수 감정인 공소외 1 작성의 각 감정서가 있고, 정황증거로는 공소외 5, 공소외 21, 공소외 23의 수사기관 및 원심 법정에서의 진술, 공소외 24의 재심대상판결 법정에서의 진술, 각 압수물, 피고인의 일부 진술 등이 있으므로, 아래에서는 공소외 1 작성의 각 감정서의 신빙성 여부를 중심으로 차례로 살펴보기로 한다.
다만, 원심이 채택한 증거 중 서울형사지방법원의 공소외 5에 대한 제1회 공판기일 전 증인신문조서( 91초1844 사건)는 구 형사소송법(1995. 12. 29. 법률 제5054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21조의2 제2항 , 제5항 에 따라 이루어진 것인데, 헌법재판소가 1996. 12. 26. 선고 94헌바1 결정 에서 구 형사소송법 제221조의2 제2항 및 제5항 중 같은 조 제2항 에 관한 부분은 헌법상 적법절차의 원칙과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여 위헌이라는 결정을 선고하였고, 이러한 위헌결정의 효력이 그 결정 당시 법원에 계속 중이던 사건에도 미치며, 기록에 의하면 공소외 5에 대한 위 공판기일 전 증인신문절차에서 피고인과 변호인에 대하여는 참석의 기회가 주어지지 아니하여 공격·방어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보장되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위 공소외 5에 대한 제1회 공판기일 전 증인신문조서는 비록 그 신문이 법관의 면전에서 행하여졌지만 결과적으로 헌법 제27조 가 보장하는 공정하고 신속한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여 수집된 증거로서 증거능력이 없다고 할 것이다( 대법원 1997. 12. 26. 선고 97도2249 판결 등 참조).
(2) 국과수 감정인 공소외 1 작성의 각 감정서의 신빙성 여부
가) 각 감정서의 요지
감정인 공소외 1이 5차례에 걸쳐 작성한 감정서에는 이 사건 유서의 필적과 피고인의 필적은 동일한 반면, 공소외 2의 필적과는 상이하다는 내용의 감정결과가 기재되어 있는데 각 감정서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문서작성자 | 대조자료 (작성연대) | 5. 15.자 감정서 | 5. 17.자 감정서 | 5. 25.자 감정서 | 5. 29.자 감정서 | 7. 4.자 감정서 |
공소외 2 | 1.책표지 (1981) | 논단불가 | ||||
2.누나에게 선물한 책 속 메모 | 논단불가 | 유서와 상이 | ||||
3.주민등록증 분실신고서 (1989) | 논단불가 | 유서와 상이 | ||||
4.이력서 (1990) | 유서와 상이 | |||||
5.편지 (1987) | 유서와 상이 | |||||
6.카드 (1987) | 유서와 상이 | |||||
전민련 제출 | 1.업무일지(1991) | 유서와 동일 | ||||
2.전민련수첩(1991) | 공소외 2 필적의 2~6과 상이, 절취선 불일치 | 유서와 동일 | 유서와 동일 | |||
공소외 5 제출 | 3.메모지(1991) | 유서와 동일 | 유서와 동일 | |||
피고인 | 1.진술서2(1985) | 유서와 동일 | 유서와 동일 | 유서와 동일 | ||
2.화학노트(1985) | 유서와 동일 | 유서와 동일 | ||||
3.진술서1(1985) | 유서와 동일 | |||||
4.자술서(1985) | 유서와 동일 | |||||
5.항소이유서(1986) | 유서와 동일 | |||||
6.수첩(1990) | 유서와 동일 | |||||
7.문건(Two Tac) | 유서와 동일 | |||||
8.문건(what is) | 유서와 동일 |
나) 이 사건 유서의 필적과 피고인의 필적이 동일하다는 감정결과 부분
공소외 1은 1991. 5. 17.자, 1991. 5. 29.자, 1991. 7. 4.자 감정서에서 이 사건 유적의 필적과 피고인의 진술서, 화학노트, 자술서, 항소이유서, 수첩, 문건 등의 필적이 동일하다고 판단하였는데, 이 사건 유서의 필적에서 별지5 필적대조결과 설명요지(필적대조표 포함, 이하 별지5 필적대조표라고만 한다)와 같은 14개의 특징이 희소성이 있는 주요 특징으로 추출되었고, 그와 동일한 특징이 피고인의 진술서 등에서도 발견되었음을 주된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은 사정을 종합하면 공소외 1의 위 각 감정서 중 이 사건 유서의 필적과 피고인의 진술서 등의 필적이 동일하다는 감정결과 부분은 신빙성이 없어 이를 그대로 믿기 어렵다.
① 공소외 1은 별지5 필적대조표에서 이 사건 유서의 필적에 나타난 희소성 있는 특징들을 추출하였다고 하나, 우리 한글은 그 문자형태가 단조롭고 쓰기가 쉬워 많은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인 유사성이 상당부분 나타나는 특징이 있으므로, 그와 같은 특징들을 근거로 감정문서와 대조자료의 필적 이동성을 판별하기 위해서는 그 특징들이 다소 희소성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이 사건 유서의 필적에 일관되고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항상성’이 있는 특징들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 별지5 필적대조표 중 “생”자의 ‘ ’부분이 제2획에서 제3획으로 연결되는 부분의 각도가 위에서부터 차츰 좁아지는 특징은, 이 사건 유서 중 “행”자에서는 같은 ‘ ’의 형태임에도 연결부분의 각도가 차츰 좁아지는 특징이 나타나지 아니하고[이 사건 유서의 ‘이 행 위를’( ), ‘ 행 위만을’( ), ‘ 행 진을’( ) 부분 참조], 더욱이 공소외 1이 이 사건 유서와 동일한 필적이라고 감정한 메모지(검사 제출의 증제7-2호)에서는 같은 ”생“자임에도 위와 같은 특징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생 각한다’( ), ‘ 생 명의’( ), ‘ 생 각하는’( ) 부분 참조]. ㉡ 또한 별지5 필적대조표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선, 준, 인, 진“ 등의 글자에서 모음의 종필이 받침인 ‘ㄴ’의 필획을 침범하여 그 아래까지 내려오는 특징이 있는지에 관하여 보면, 이 사건 유서에서도 받침이 ‘ㄴ’인 글자 중 그 모음 부분이 받침인 ‘ㄴ’의 필획을 침범한 경우보다 침범하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이 나타나고 있어(이 사건 유서 중 ‘ㄴ’이 받침으로 사용된 글자는 총 37개인데, 그 중 모음이 아래 ‘ㄴ’ 받침의 필획을 침범한 경우는 6개이고, 침범하지 않는 경우는 31개이다)항상성이 있는 특징이라고 보기 어렵다. ㉢ 또한, 별지5 필적대조표에는 통상적인 필법에서는 ”형“자의 ‘ ’부분이 제2획에서 제3획이 올라갔다 내려와야 하는데 이 사건 유서에서는 이와 같은 통상적인 형태를 취하지 아니하고 제2획에서 바로 아래로 내려가는 형태로 기재되어 있는 특징이 있다고 하나, 이 사건 유서 중 ”면, 련, 력“자의 ‘ , ’ 부분 제2획과 제3획에서는 그와 같은 특징이 보이지 아니하고(별지5 필적대조표상 10번째 항목 ”면, 련, 력“ 부분 참조), 공소외 1이 이 사건 유서와 동일한 필적이라고 감정한 이 사건 수첩(검사 제출의 증제11-1호)에서도 그와 같은 특징이 반복적으로 항상 나타나지는 않고 있다[‘공소외 14’(그림 1 생략), ‘공소외 61’(그림 2 생략), ‘공소외 62’(그림 3 생략) 부분 참조]. ㉣ 또한, 별지5 필적대조표에서 ”고“의 ‘ㄱ’자 부분의 곡선이 짧게 이루어졌고, 제2, 3획을 단번에 연결시켰으며, 특히 ‘ㄱ’의 종필이 제3획을 침범하는 형태가 나타나는 극히 희소성 있는 특징이 있다고 하나, 이 사건 유서에도 ‘ㄱ’의 종필이 제3획을 침범하는 형태가 나타나는 것은 단 1회에 불과하고['아끼 고 ‘( ) 부분에서만 위와 같은 형태가 나타나 있고, 나머지 ’도화선이 되 고 자’( ), ‘이정표가 되 고 자’( ), ‘선포하 고 ’( ) 부분에서는 침범하지 않고 있다], 공소외 1이 이 사건 유서와 동일한 필적이라고 감정한 메모지(검사 제출의 증제7-2호)에서도 위와 같이 침범하는 형태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안 고 있 고 ’( ), ‘찔러 넣 고 ’( ), ‘자 고 ’( ), ‘흐려지 고 ’( ), ‘책임지 고 ’( ), ‘제시되 고 ’( ), ‘좋 고 ’( ), ‘사라지 고 ’( ), ‘아니냐 고 ’( ), ‘사 고 를'( ), 갖 고 ’( ), ‘이해하 고 ’( ), ‘아니냐 고 ’( ), ‘떨치 고 ’( ), ‘펴 고 ’( ), ‘발딛 고 ’( ), ‘품 고 ’( ) 부분 등 참조].
② 공소외 1은 별지5 필적대조표에서, 이 사건 유서의 ”오“자 부분에 관하여, 정상적으로 기재하면 제1획으로 ‘ㅇ’를 기재한 후 제2, 3획으로 ‘ㅗ’를 연결하여 쓰는데 이 사건 유서에서는 이와 같은 정상적인 순서에 의하지 아니하고 모든 획을 바로 연결시켜서 기재하면서 그 과정에서 ‘ㅗ’를 구성하는 제2획이 ‘ㅇ’의 중앙을 뚫고 바로 아래로 내려오는 형태를 구성하는 특징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공소외 1이 별지5 필적대조표에서 위와 같은 특징이 나타난 글자로 판단한 ‘오지’( )의 ‘오‘( )자는 아래 다)항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해보지’( )의 ‘보’자를 잘못 판독한 것임이 명백하다. 오히려 이 사건 유서에 포함된 ‘오’ 자는 ‘9’자를 반시계방향으로 쓴 것과 같은 형태를 보이고 있고[‘오늘’( ), ‘일삼아온’( ) 부분 참조], 이와 같은 형태는 공소외 1이 이 사건 유서와 동일한 필적이라고 감정한 업무일지, 전민련수첩, 메모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원진레이 온 ’( ), ‘공소외 39’(그림 4 생략), ‘ 옳 은것을’( ), ‘살아 온 날이’( ), ‘ 오 면서’( ) 부분 주3) 참조]. 이에 반해 피고인의 진술서 등에는 ‘오’자, ‘옥’자 부분에서 공소외 1이 지적하는 위와 같은 희소성 있는 특징이 보이고 있으므로[‘ 올 라 왔 고’( ), ‘ 옥 상에서’( ) 부분 등 참조], 위와 같은 특징은 오히려 피고인의 진술서 등의 필적과 이 사건 유서의 필적이 서로 다르다고 보아야 할 유력한 자료로 주4) 보인다.
(주3") 다만, 공소외 5가 제출한 메모지(검사 제출의 증제7-2호)에서는 ‘살아오지’( ) 부분과 같이 ‘ㅇ’와 ‘ㅗ’가 연결되지 않은 형태로 나타나 있다.
③ 공소외 1은 원심 법정과 재심대상판결 법정에서 이 사건 유서에는 ‘ㅎ’ 부분에서 제1획의 기재방향이 우하방과 좌하방으로 기재하는 두 종류가 혼재하여 나타나는데, 이와 같은 특징은 공소외 2의 필적과 피고인의 필적 모두 나타나지 않는 반면, 이 사건 유서와 피고인의 필적에 희소성이 있는 다른 특징이 많이 나타나므로, 이 사건 유서상의 ‘ㅎ’의 필법은 최근에 변형된 것으로 판단하여 이를 제외하고 다른 유사한 부분을 분석하여 동일 필적인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진술하였다. 그러나, 필적감정시 대조자료로 제출된 피고인의 수첩(일터에서 90, 검사 제출의 증제9-23호)은 이 사건 유서가 작성되기 직전 무렵인 1990년 1년 동안 작성된 것인데, 위 수첩에서는 ‘ㅎ’ 부분 제1획의 기재방향이 모두 우하방이고 좌하방은 전혀 보이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이 사건 유서상의 ‘ㅎ’의 필법이 최근에 변형된 것으로 단정하고 희소성 있는 필적 특징에서 제외하였다는 공소외 1의 진술은 쉽게 납득하기 주5) 어렵다. 더구나, 공소외 1이 이 사건 유서와 동일한 필적이라고 감정한 이 사건 수첩, 메모지에서도 ‘ㅎ’ 부분에 동일한 특징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④ 그 밖에도 이 사건 유서에는 ‘겠, 있, 했’자의 종성인 ‘ㅆ’의 제2획의 점획을 생략하여 기재하는 특징이 있고[‘일삼 겠 다는’( ), ‘ 있 으리라’( ), ‘못 했 지요’( ), ‘결론이 겠 지요’( ) 부분 참조], 앞서 본 메모지에도 동일한 특징이 나타나며[‘ 있 음을’( ), ‘어디쯤 왔 을까’( ), ‘ 있었 는데’( ) 부분 등 참조], 이는 정자체로 기재된 공소외 2의 편지(검사 제출의 증제13-2호)에서도 ‘ㅆ’ 부분에 동일한 특징이 나타나는데[‘전할 수 있는’( ), ‘부정할 수 있는’( ) 등 참조] 반해, 피고인의 진술서 등에는 ‘ㅆ’의 제2획 부분이 생략된 글자가 보이지 않아(속필체로 쓸 때도 제2획과 제3획을 연결하여 기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임), 이 사건 유서의 필적과 상이점이 있는 것으로 보임에도 공소외 1의 위 각 감정서에는 이 부분에 대한 평가도 포함되어 있지 주6) 않다.
⑤ 뿐만 아니라 공소외 1은 위 1991. 5. 29.자, 1991. 7. 4.자 감정서에서 피고인의 화학노트의 필적도 이 사건 유서의 필적과 동일하다고 감정하였으면서도, 2007. 8. 8. 진화위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피고인의 화학노트의 필적은 이 사건 유서와 동일 특징을 찾기가 대단히 힘들었고, 유서와 화학노트를 단순하게 비교하면 상이한 점이 많아 처음 화학노트가 의뢰되었다면 판단 불능으로 나갔을 가능성이 많음에도 피고인이 작성자로 제시되었기 때문에 동일인 필적으로 감정하였다고 진술하기도 하여, 위 감정서에서 이 사건 유서와 동일 필적이라고 판단하였던 대조자료들 중 적어도 일부에서는 그 필적의 동일성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 것도 있었음을 시인하고 주7) 있다.
다) 이 사건 유서에 나타난 “보”자 부분의 필적 특징
이 사건 유서 중 ‘ ’의 ‘ ’ 부분은 ‘오’가 아니라 ‘보’자임이 주8) 명백하다. 즉, 이 사건 유서 중 ‘오늘’( ) 부분의 ‘오’( )자는 ‘9’자를 반시계방향으로 쓰듯이 하면서 ‘ㅗ’에 해당되는 부분이 ‘ㅇ’와 자연스럽게 이어져 위에서 원형으로 매끄럽게 내려오는 형태이나, ‘ ’ 부분의 ‘ ’는 ‘9’자를 반시계방향으로 쓰듯이 하다가 ‘ㅗ’가 시작되는 꼭지점 부분에서 곡선이 오른쪽 방향으로 꺾여 아래로 내려오는 형태로서 서로 상이하고, 전체 문장으로 보더라도 ‘여지껏 한번도 아버지, 어머니에게 효도라는 것을 해오지 못했지요’보다는 ‘여지껏 한번도 아버지, 어머니에게 효도라는 것을 해보지 못했지요’가 자연스러운 표현이다(이 사건 공소장에도 해당 부분이 ‘해보지’로 되어 있고, 원심 판결의 범죄사실에도 ‘해보지’로 되어 있는 점에 비추어 보더라도 해당 부분을 ‘해보지’로 읽는 것이 문맥상 자연스럽다).
또한, 위와 같은 ‘보’자의 특징은 이 사건 유서와 같은 필적이라고 감정된 메모지[‘초두봉지를’( ), ‘그때 보 다’(그림 5 생략), ‘ 본 다’( ), ‘되돌아 본 다’( ), ‘내다 보 면’( ), ‘위치로 보 아’( ), ‘ 봄 바람에’( ), ‘그 보 다는’( ) 부분 주9) 참조 ], 업무일지[‘공소외 63’( ) 부분 참조], 이 사건 수첩[‘ 복 지다방’( ), ‘국· 보 철폐’( ) 참조], 공소외 3이 제출한 주10) 전대협노트 [‘정 보 관리’( ), '보이콧 이후의‘( ), ‘홍 보 ’( ), ‘선거 보 이콧’( ), ‘환자 보 호’( ), ‘경과 보 고’( ), ‘ 보 도자료’( ), ‘정 보 ’( ) 등 주11) 참조 ]에 기재된 거의 모든 ‘보’자가 위와 동일한 형태(또는 ‘ㅗ’ 부분이 ‘ㄱ’처럼 휘거나 꺾이어 내려오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보면 명확하다고 할 주12) 것이다.
(주9) 다만, ‘보신적인’( )의 ‘보’자는 다른 형태로 보인다.
(주11) 다만, 전대협노트 중 ‘보상문제’( )의 ‘보’자는 다른 형태로 보인다.
(주12) 이 사건 유서 중 ‘제 목숨보다’( ) 부분에 기재된 ‘보’( )자는 ‘오’자처럼 보이지 않는 형태이나, 이 부분 ‘보’( )자는 ‘ㅂ’의 제2획 첫부분이 ‘ㄱ’자처럼 꺾여 시작하는 매우 독특한 형태이고, 그와 같은 필체는 이 사건 유서와 동일 필적이라고 감정된 메모지, 업무일지, 이 사건 수첩, 전대협노트의 그 어떤 문서에서도 전혀 나타나지 않는바, 이를 항상성 있는 특징이라고 볼 수 없다. 이와 달리 만일 이 사건 유서의 ‘해보지’ 부분이 ‘해오지’가 맞고, 이 사건 유서의 작성자는 ‘보’자를 위 ‘목숨보다’에서 보이는 형태로만 쓴다고 가정한다면, 그와 같은 특징은 메모지, 업무일지, 이 사건 수첩, 전대협노트에서 전혀 나타나지 않으므로, 오히려 위와 같은 특징은 이 사건 유서와 메모지, 업무일지, 이 사건 수첩, 전대협노트의 필적이 상이하다는 유력한 자료가 될 것이다. 또한, 반대로 설령 이 사건 유서의 글자가 ‘해보지’가 아니라 ‘해오지’라고 하더라도, 이 사건 유서와 메모지, 업무일지, 이 사건 수첩, 전대협노트 등의 필적이 상호 동일하다는 판단을 유지하는 한, 논리필연적으로 이 사건 유서의 작성자가 ‘오’자처럼 보이는 ‘보’자를 쓰는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위와 같이 마치 ‘오’자처럼 보이는 ‘보’자를 쓰는 특징은 전문적인 필적 감정인마저 ‘보’자를 ‘오’자로 잘못 주13) 판독 할 정도로 희소성이 매우 높고, 이 사건 유서와 동일한 필적이라고 감정된 대조자료에 기재된 거의 모든 ‘보’자에서도 반복하여 나타나고 있으므로 항상성 또한 매우 높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피고인의 진술서 등에 나타나는 ‘보’자는 이와 전혀 다르게 ‘ㅂ’을 쓸 때 제1획을 쓰고 제2획을 따로 시작하여 제4획, 제3획 순으로 이어서 쓴 뒤 ‘ㅗ’부분까지 이어서 써 내려오면서 ‘9’자처럼 쓰는 형태[‘보( )’]를 일관되게 반복적으로 보이고 있고[예컨대, ‘본인은( ), ‘도 보 로( )’ 부분 등 참조], 피고인이 작성한 모든 문서에서는 이 사건 유서와 같이 ‘오’자처럼 보이는 ‘보’자가 전혀 발견되지 아니하므로, 위 특징은 피고인의 진술서 등에 나타나는 필적과 이 사건 유서의 필적이 동일하다는 공소외 1의 위 각 감정서의 신빙성을 의심하게 하는 유력한 자료로 보인다(오히려, 위와 같은 ‘보’자의 필습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피고인의 진술서 등의 필적과 이 사건 유서의 필적이 서로 다르다는 유력한 자료로 평가되어야 한다).
라) 이 사건 유서의 필적과 공소외 2의 필적이 상이하다는 감정결과 부분
공소외 1은 1991. 5. 25.자 감정서에서 이 사건 유서와 공소외 2가 누나에게 선물한 책 속 메모, 주민등록증 분실신고서, 이력서, 편지, 카드 등에 나타난 필적이 서로 상이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은 사정을 종합하면 공소외 1의 위 감정서 중 이 사건 유서의 필적과 공소외 2의 필적이 상이하다는 감정결과 부분도 신빙성이 없어 이를 그대로 믿기 어렵다.
① 이 사건 유서는 속필체인 반면에 공소외 2의 책 속 메모, 주민등록증 분실신고서, 이력서, 편지, 카드 등은 모두 정자체이다. 따라서 속필체와 정자체로 서로 필체가 다른 위 문서들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필적감정의 일반원칙에 어긋나고, 대조자료로도 주14) 부적합하다 (같은 이유로 진화위의 조사과정에서 위의 편지 등 문서 5건과 이 사건 유서와의 필적대조감정을 한 사설감정인들은 모두 그 필체가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사실상 감정을 하지 아니한 채 감정불능 의견을 내거나, 일부 필적의 동일점이 발견됨에도 필적의 이동여부를 단정짓기 어렵다는 의견을 주15) 밝혔다).
② 공소외 1은 진화위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공소외 2가 작성한 편지 3장(검사 제출의 증제13-2호)에서 ‘소주 한 잔의 힘을 빌어’ 등의 표현이 나오는 것을 보고 그가 술을 마시고 편지를 작성한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편지 3장이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정자체로 써져 있었기 때문에 ‘아. 이 사람은 평소 정자체만 쓰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였으며, 술을 마시고도 이렇듯 정자로 쓸 수 있는 사람이면 평소 정자체 필적만을 쓰는 사람이라고 판단하였다고 주16) 진술하였다. 그러나, 공소외 2의 친구였던 공소외 25 주17) , 공소외 3 주18) , 공소외 26 주19) 등의 진술에 의하면, 공소외 2는 정자체와 속필체를 쓰는 필습이 함께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공소외 2의 속필체라고 주장되는 문서들에 대하여는 수사기관이나 원심법정에서 필적감정이 이루어지지 주20) 않았다. 위와 같은 사정을 고려하여 보면, 공소외 1은 공소외 2가 술을 마시고도 정자체를 고수할 정도로 한 가지 필체만을 사용하는 것으로 단정하고 필적의 변화성을 간과한 결과 필적감정의 기본원칙에 어긋나게 속필체의 이 사건 유서와 공소외 2가 정자체로 쓴 편지 등 문서 5건에 대한 필적대조감정을 무리하게 시도함으로써 상이하다는 결론을 성급하게 낸 것으로 보인다.
마) 공소외 1의 공동심의 관련 위증
국과수에서 위와 같이 필적감정을 할 당시 그 감정은 이 사건 유서의 필적감정을 담당하던 공소외 1이 거의 전적으로 주관하였고, 공동감정인 공소외 28, 공소외 29는 직접적으로 필적감정에 참여한 바 없이 감정서 부본 공동심의란에 서명, 날인한 것이 전부임에도, 공소외 1은 원심 제5회 공판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제시할 때 현미경 관찰 등을 하였나요”라는 재판장의 질문에 “예, 4명이 돌아가면서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나름대로의 판단을 가지고 토의를 하고, 이 사건의 경우도 그렇게 하였습니다.”라고 증언하여 마치 당시 국과수에 재직중이던 감정인 4명이 모두 직접 감정에 참여하여 공동심의를 한 것처럼 허위의 증언을 하였다.
바) 소결론
위와 같은 사정을 모두 종합하면, 감정인 공소외 1이 작성한 감정서 중 이 사건 유서의 필적과 피고인의 필적이 동일하다는 부분과 이 사건 유서의 필적과 공소외 2의 필적이 상이하다는 부분은 모두 신빙성이 없어 이를 그대로 믿기 어렵다[오히려, 이 사건 유서에 나타난 희소성과 항상성이 있는 필적 특징(위에서 본 ‘오’, '보‘, ’ㅆ‘ 부분 등)과 아래 다.의 (4)항에서 보듯이 그 후 진화위에서 필적감정을 의뢰받은 사설감정인들과 국과수도 모두 이 사건 유서의 필적과 피고인의 진술서, 화학노트, 자술서, 항소이유서, 수첩, 문건, 출정거부이유서, 봉함엽서 등의 필적은 상이하다고 판단하였음을 고려하면, 이 사건 유서의 필적과 피고인의 진술서 등의 필적은 서로 상이하다고 판단된다].
(3) 업무일지의 조작 여부
업무일지(검사 제출의 증제5-1호)는 전민련 인권위원장인 공소외 9가 1991. 5. 11. 검찰에 제출한 것인데, 검사는 업무일지가 이 사건 유서와 동일 필적으로 감정되었으므로, 피고인이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하여 피고인이 전민련 조직국 부장인 공소외 30, 공소외 31 등이 1991. 5. 10. 11:00경 공소외 2의 책상에서 업무일지를 찾을 때 그들과 함께 책상 위 책꽂이에서 업무일지를 발견하여 함께 살펴 본 사실이 주21) 있음에도, 검찰 제1회 피의자신문 당시에는 업무일지를 본 사실이 없다고 허위진술을 한 사실은 주22) 인정된다. 그러나,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은 사정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위와 같이 허위진술을 한 사실만으로 피고인이 업무일지를 조작하였다고 단정하기에는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① 업무일지는 표지를 제외한 3장으로서, 1991. 3. 20.부터 같은 해 4. 15.까지 그 행사 내용 등이 적혀 있는데, 그 첫째 장에는 3. 20.자 행사 내용만 기재되어 있는 채 그 아랫부분이 찢어져 남아 있지 아니하고, 마지막 장에는 상단에 4. 15.자 행사 내용만 기재되어 있는 채 그 아랫부분이 여백이며, 둘째 장 다섯째 칸 ‘4. 9. 4월 혁명 기념대회 준비’부분만 파란색 볼펜으로 기재되어 있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연필로 기재되어 주23) 있다.
② 공소외 1은 업무일지 중 첫째 장과 둘째 장 중 파란색 볼펜으로 기재된 필적은 나머지 필적들과 달라 동일인이 쓴 필적이 아님을 알고 주24) 있었음에도, 1991. 5. 15.자 감정서에서 동일인이 작성하지 않은 부분을 명확하게 특정하지 아니한 채 감정결과를 이 사건 유서의 필적과 업무일지의 필적은 상호 동일한 필적으로 사료된다고만 기재하였다[공소외 1은 이에 대해 검찰로부터 업무일지가 여러 사람에 의해 써졌을지도 모르니 그 중 이 사건 유서와 같은 필적만 감정해 달라는 의뢰를 받아, 전부 검토한 후 유서와 동일한 필적만 대상으로 감정하여 회보하였다고 원심에서 증언하였다. 그러나, 공소외 1이 업무일지의 일부 필적이 상이한 필적임을 검찰에게 알려주지 않지 않아, 검찰이 피고인만을 조사하다가 뒤늦게 다른 필적의 작성자(공소외 33 등)를 확인하고 공소외 33의 필적을 감정까지 한 점에 비추어 보면, 공소외 1의 위 증언은 쉽게 믿기 어려워 보인다].
③ 한편, 이 사건 수사과정에서 검사는 당초 피고인을 상대로 1991. 6. 25. 제1회 피의자신문시부터 1991. 7. 3. 제5회 피의자신문시까지는 업무일지의 필적과 이 사건 유서의 필적이 동일하다는 감정의견이 기재된 위 1991. 5. 15. 감정서를 제시하면서 유서의 대필여부에 관한 피의자신문을 진행하다가, 피고인이 1991. 7. 5.자 자술서와 1991. 7. 9. 제6회 피의자신문에 이르러 비로소 업무일지의 필적 중 첫째 장과 둘째 장의 파란색 볼펜 기재 부분이 나머지 필적들과 상이하다는 의혹을 제기하자, 그때서야 검사는 피고인으로부터 위 첫째 장과 둘째 장의 파란색 볼펜 기재 부분의 작성자로 지목된 공소외 32와 공소외 33을 주25) 조사하였다.
④ 그런데, 만일 피고인이 공소외 2의 사망 이후 위 업무일지를 공소외 2가 작성한 것처럼 자신의 필적으로 조작한 것이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피고인 본인의 필적으로 작성하는 방법으로 조작하는 것이 훨씬 더 용이하였을 터임에도 일부 다른 사람의 필적을 남겨 놓거나 다른 사람에게 해당 부분을 기재하여 줄 것을 요청하는 방법으로 조작할 이유를 찾기 힘들고(특히 첫째 장 부분은 이미 그 윗부분에 다른 사람의 필적이 기재되어 있는 상태였는바, 그 부분을 남겨 놓고 그 아랫부분만을 찢어 버릴 이유도 없다), 만일 그것이 피고인이 업무일지를 조작하면서 업무일지가 여러 사람에 의하여 작성된 것이어서 신빙성이 있는 것처럼 보일 의도로 다른 사람의 필적을 남겨 놓은 것이었다면, 피고인이 검찰 제1회 피의자신문시 업무일지를 본 적이 없다고 허위 진술할 이유를 찾아보기 어렵고, 검사의 신문에 답변하면서 처음부터 업무일지 중 첫째 장과 둘째 장의 파란색 볼펜 부분이 다른 사람의 필적임을 밝히지 않을 이유도 없어 보인다.
⑤ 마지막으로, 업무일지 중 첫째 장과 둘째 장의 파란색 볼펜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의 필적은 모두 이 사건 유서의 필적과 동일함에 다툼이 없는바, 피고인의 필적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유서의 필적과 상이한 점에 비추어 볼 때, 설사 업무일지가 조작되었다 하더라도 그 조작자는 적어도 피고인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4) 이 사건 수첩의 조작 여부
이 사건 수첩(검사 제출의 증제11-1호)은 전민련이 공소외 5로부터 전달받아 보관하고 있던 공소외 2의 수첩이라고 주장하면서 전민련 상임집행위원인 공소외 35가 1991. 5. 20. 검찰에 제출한 주26) 수첩 인데, 검사는 이 사건 수첩도 이 사건 유서와 동일 필적으로 감정되었으므로, 피고인이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사건 수첩의 본체와 글씨가 기재되어 있는 전화번호 기재용지 3장의 각 절취선이 일치하지 아니하고, 전화번호 기재용지 3장의 연필로 기재되어 있는 문자 밑에 강한 필압형태가 나타나 있으나 그 뒷장에 나타나 있어야 할 필압흔적이 필흔재생기에 의하여도 관찰되지 않으며, 공소외 2가 ♠♠중학교 동창생으로 절친했고 자주 전화통화를 했던 공소외 24의 직장인 서울 서부경찰서 수사계의 전화번호가 ‘(전화번호 1 생략)’임에도 위 전화번호 기재용지에는 그 전화번호가 ‘(전화번호 2 생략)’으로 기재되어 있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수첩이 누군가에 의하여 조작된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은 사정을 종합하면, 위와 같은 사정만으로 이 사건 수첩이 조작되었다거나 피고인이 이 사건 수첩을 조작하였다고 단정하기에는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① 공소외 5는 검찰과 원심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공소외 2는 1991. 5. 7. 22:00경 신촌 소재 카페에서 공소외 5에게 자신이 다음날 자살할 것이라는 취지로 말하고 자신의 수첩(전민련수첩)을 꺼내어 전화번호 기재용지 부분을 찢어 공소외 5에게 주면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전화번호가 표시된 사람들에게 연락을 취해달라고 부탁하였다가, 나머지 수첩도 쓸 만하다고 하면서 위와 같이 찢은 전화번호 기재용지 부분을 원래의 수첩에 끼워서 공소외 5에게 모두 주었다. 공소외 5는 1991. 5. 8. 12:00경 공소외 2의 자살 소식을 듣고 ◆◆대 학생회관에 갔다가 전민련 선전국 부장인 공소외 36에게 위 수첩을 넘겨주었고, 같은 날 16:00-17:00경 그곳 사무실에서 전민련 관계자인 여자 1명이 위 수첩의 전화번호 기재 부분의 복사본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옆에 있던 남자가 위 복사본의 한쪽 귀퉁이를 찢기에 이상하게 생각하여 물어보았더니 공소외 38 의장이 머무는 곳의 전화번호라고 하였다.
② 그런데, 공소외 26은 원심 법정에서, 1991. 5. 8. 당시 ◆◆대 학생회관 1층 복사실에서 자신이 공소외 37과 함께 이 사건 수첩의 전화번호 기재 부분을 2부 복사하여 1부씩 나눠가졌는데, 그 중 ‘진선생’으로 표시된 것이 누구인지 이상하여 전민련 관련 남자에게 물었더니 공소외 38 의장인데 수배중이니 찢는 게 좋겠다고 하여 그 부분을 찢었고, 변호인이 제출한 증제20-1호(수첩 복사본, ‘진선생’ 부분이 찢겨져 없는 상태이다)가 당시 자신이 받은 복사본이라고 주27) 증언하였는바, 공소외 26의 증언은 공소외 5의 위 진술과도 부합한다.
③ 공소외 5, 공소외 26의 위 각 진술 및 변호인이 제출한 증제20-1호(수첩 복사본)와 이 사건 수첩(검사 제출의 증제11-1호)의 기재 형상이 동일함을 고려할 때, 이 사건 수첩(검사 제출의 증제11-1호)이 조작된 것이려면, ㉠ 공소외 26이 수첩을 복사할 당시 이미 그 수첩이 조작되어 있었던 것이거나, 아니면 ㉡ 위 수첩 복사본(변호인 제출의 증제20-1호)을 1991. 5. 8. 당시 복사하였다는 공소외 26의 진술이 허위이어야 한다. 그런데, 공소외 26은 공소외 2와 성남민주화청년연합에서 같은 회원으로 지낸 사이일 뿐 피고인이나 전민련과 별다른 관련이 없어 보이고, 공소외 37도 원심법정에서 당시 공소외 26과 함께 수첩을 복사하였고 변호인 제출의 증제20-2호(수첩 복사본, ‘진선생’ 부분이 남아 있다)가 당시 자신이 받은 복사본이라고 증언하여 공소외 26의 진술에 부합하며, 복사본의 한쪽 귀퉁이를 찢는 것을 보았다는 공소외 5의 진술도 공소외 26의 진술에 부합하는바, 공소외 26이 허위로 진술한 것으로는 보이지 아니한다.
④ 위와 같은 사정을 고려하여 볼 때, 이 사건 수첩이 조작되었다면 남은 가능성은 공소외 5가 공소외 36에게 전민련수첩을 건네준 1991. 5. 8. 12:00경 이후 같은 날 16:00-17:00경 사이 불과 4 ~ 5시간 안에 조작되었다는 것인데, 당시 공소외 2의 분신자살로 어수선한 상태였고 전민련수첩 중 글자가 기재된 부분만도 30쪽에 달하며, 사용된 필기구도 검정색 볼펜 또는 수성펜, 연필, 청색 필기구, 녹색 하이테크펜, 분홍색 형광펜 등 다양한 종류이고, 일부 글자를 지운 부분(5. 7.자 일정 기재란 참조)도 나타나 있는 등 꼼꼼하게 기재되어 있는 점을 고려하면, 불과 4 ~ 5시간 안에 조작을 완료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봄이 주28) 상당하다.
⑤ 또한, 공소외 5는 원심 법정에서, 1991. 5. 7. 밤에 공소외 2로부터 전민련수첩을 받아 집에 돌아와 자세히 살펴보니 전민련수첩의 일정표란은 검은색 볼펜 또는 수성펜으로 기재되어 있었고, 연필이나 샤프로 기재되거나 다른 색 싸인펜 또는 형광펜으로 기재되어 있는 부분은 없었으며, 특히 5. 7.자 ‘가든호텔’이라는 약속장소는 검정색 수성펜으로 기재되어 있었고, 회원단체 주소 및 전화번호란은 바뀐 번호 등이 검정색으로 기재되어 있었다고 증언하여 이 사건 수첩(검사 제출의 증제11-1호)에 기재된 글자와 일부 사용된 필기구가 다르다는 취지로 증언하였다. 그러나, 만일 이 사건 수첩이 조작된 것이라면 조작자의 입장에서는 공소외 5의 진술과 같이 검은색 볼펜 또는 수성펜만을 사용하여 원본 수첩과 동일하게 조작하는 것이 훨씬 용이하고 시간도 훨씬 적게 소요될 것임이 명백함에도 굳이 원본 수첩과 다르게 이 사건 수첩(검사 제출의 증제11-1호)과 같이 검정색 볼펜 또는 수성펜, 연필, 청색 필기구, 녹색 하이테크펜, 분홍색 형광펜 등 다양한 색깔과 다양한 종류의 필기구를 사용하여 조작하여야 할 이유를 찾아보기 어렵다.
⑥ 또한, 전민련수첩의 본체와 전화번호 기재용지 3장의 각 절취선이 일치하지 아니함은 명백한바, 만일 이를 근거로 하여 이 사건 수첩이 조작된 것이라고 볼 경우에는 이 사건 본체에 남아있는 필적과 전화번호 기재 부분의 필적도 동일하므로, 결국 조작자가 적어도 2개 이상의 새로운 수첩을 사용하여 조작하였다는 것인데(절취선이 불일치하려면, 한 수첩에서 전화번호란 부분을 떼어내고, 다른 수첩에서도 전화번호란 부분을 떼어내어 앞의 수첩에 끼워 넣어야 한다), 조작자의 입장에서 볼 때 1개의 수첩에서 전화번호란 부분만 떼어내었다가 다시 끼워 넣으면 될 것을 굳이 2개의 수첩을 사용하여 조작하였어야 할 이유를 상정하기 어렵다(조작자의 입장에서 굳이 이유를 상정하여 보면, 전혀 사용하지 않은 수첩이 없었고, 일정란이나 전화번호란에 다른 필적이 기재되어 있는 수첩 2개만 가지고 있었던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그러나, 조작자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필기구의 색깔도 다르게 사용하여 조작하고, 일부 글자를 지우기도 한 점을 고려하면, 일정란이나 전화번호란에 다른 필적이 기재되어 있으면 5. 7.자 일정란처럼 여러 번 빗금칠하거나 덧칠하여 필적을 지우면 되지 굳이 2개의 수첩을 사용하고, 그럼에도 일부 글자를 지운 부분까지 그대로 흉내 내어 남겨둘 이유가 없어 보인다).
⑦ 또한, 공소외 5는 원심 법정에서 공소외 2가 1991. 5. 7. 22:00경 서울 신촌 소재 상호불상 카페에서 분신자살의사를 밝힌 후 공소외 2의 전민련수첩의 전화번호란을 3 ~ 4장 찢어내어 분신 후 연락해 줄 사람의 전화번호가 기재되어 있는 부분에 녹색 하이테크펜과 샤프로 표시를 해 주었다고 증언하여, 전화번호란 부분 기재 형상에 대한 자신의 기억이 정확한 것처럼 증언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 수첩(검사 제출의 제11-1호)의 전화번호란을 보면, 그곳에 기재된 ‘공소외 5’의 이름 중 ‘성’자 부분에도 녹색 하이테크펜으로 동그라미 표시가 되어 있는바, 공소외 5와 바로 마주 앉아 있으면서 사후 연락을 부탁하던 공소외 2가 그 자리에서 전화번호란에 기재된 공소외 5의 이름에도 동그라미를 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이 사건 수첩이 조작되었다는 전제하에, 공소외 5의 이름 부분에도 동그라미가 쳐진 이유를 상정하여 보자면, 조작자가 전민련수첩을 조작하면서 실수로 공소외 5의 이름에도 동그라미를 하였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으나, 5. 7.자 일정란에서 보듯이 글자를 지운 부분까지 그대로 기재하고 있는 꼼꼼함을 고려할 때, 조작자가 위와 같이 눈에 보이는 실수를 하였을 가능성도 높아 보이지 않는다. 또한, 이 부분이 조작된 것이라면, 공소외 5가 이 사건 수첩 중 자신의 기억과 다른 부분을 자세하게 모두 지적하면서도, 정작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전화번호란 중 자신의 이름 부분의 상이점만을 지적하지 않았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
⑧ 오히려, 공소외 2와 1991. 5. 5.부터 5. 6.까지 함께 있었던 공소외 16은 재심대상판결 법정에서, 1991. 5. 6. 오후 백제장 여관에서 나온 후 설렁탕집에서 공소외 2와 함께 식사를 할 때, 공소외 2가 전민련수첩을 꺼내 놓고 전화번호란을 펴더니 녹색 하이테크펜으로 동그라미를 치면서 자신의 분신 후 그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달라고 하면서 전민련수첩을 공소외 16에게 건네주려고 하다가, 저녁 때 연락할 사람이 있다고 하면서 다시 집어넣었고, 공소외 15와 5. 7. 만날 약속을 하고 전민련수첩의 5. 7.자 일정란에 ‘▣▣’이라고 기재했다가 공소외 15가 5. 7.에는 시간이 없다고 하여 위 ‘▣▣’을 펜으로 지우고 5. 11.자로 다시 약속을 하고 5. 11.자 일정란에 다시 ‘▣▣’이라고 기재하였다고 주29) 증언하였다. 공소외 16은 당시 공소외 2와도 3번째 만난 사이일 뿐이고 피고인이나 전민련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던 점에 비추어 공소외 16이 허위로 진술할 이유를 찾기 어려운바, 공소외 16의 증언은 이 사건 수첩(검사 제출의 증제11-1호)의 5. 7.자 일정란에 글자가 빗금칠로 지워진 부분과도 부합하며, 전화번호란 중 공소외 5의 이름에도 녹색 하이테크펜으로 동그라미가 쳐져 있는 이유도 합리적으로 설명이 된다(공소외 2는 공소외 16 앞에서도 일부 전화번호란에 녹색 하이테크펜으로 동그라미를 쳤고, 이후 공소외 5와 만나서 나머지 동그라미를 치고, 공소외 3의 전화번호도 마지막 여백 부분에 기재하여 준 것으로 보인다).
⑨ 마지막으로, 전민련수첩의 필적은 이 사건 유서의 필적과 동일함에 다툼이 없는바, 피고인의 필적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유서의 필적과 상이한 점에 비추어 볼 때, 만일 전민련수첩이 조작되었다 하더라도 그 조작자는 적어도 피고인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5) 공소외 5가 제출한 메모지의 작성자 여부
메모지(검사 제출의 증제7-2호)는 공소외 5가 1991. 5. 13. 검찰에서 조사를 받을 때 공소외 2로부터 받은 것이라며 제출한 주30) 것인데, 메모지의 내용에는 작성자가 기재되어 있지 않다. 검사는 메모지도 이 사건 유서와 동일 필적으로 감정되었으므로, 피고인이 작성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은 사정을 종합하면, 메모지의 작성자는 피고인이 아니라 공소외 2인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
① 공소외 5는 1991. 5. 14. 검찰 제1회 진술시에는 1991. 2. 18. 10:00경 슈베르트 카페에서 공소외 2를 만났을 때 공소외 2가 ‘자기가 낙서한 것인데 잘된 것 같다. 읽어보라.’면서 주었다고 진술하였으나, 1991. 5. 17. 검찰 제2회 진술시에는 공소외 2가 자기 글씨라거나 자기가 썼다고 말은 하지 않았고 다만 자기가 보기에도 잘 쓴 글이라고 하면서 읽어보라고 주었으며, 이제 와 생각하니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피고인이 쓴 것을 읽어보고 근사하다고 생각하여 준 것으로 짐작된다고 진술하였다. 그러나, 1991. 5. 17. 제2회 진술은 아래 (6)항에서 보는 바와 같이 피고인이 이 사건 유서의 작성자라고 의심하고 있는 상태에서 진술한 것이고, 그 내용도 공소외 5의 추측에 불과하여 그 진술만으로 메모지를 피고인이 작성하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② 오히려, 공소외 2는 1991. 1. 20. 피고인과 그 애인인 공소외 11의 소개로 공소외 5를 만나 교제하기 시작하였고, 1991. 2. 18.은 4번째 만나는 자리였던바, 공소외 5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자신이 작성한 글 중 마음에 드는 글을 주었다고 보는 것이 경험칙상 자연스러워 보인다(공소외 2가 자신이 쓴 글도 아니고 여자친구를 소개해 준 남자가 쓴 메모지를 마치 자신이 쓴 것처럼 가장해서 읽어보라고 주었다는 것은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더구나 메모지는 줄도 맞지 않고 끄적거리거나 지저분하게 지운 부분도 있다. 또한, 피고인이 1991. 4. 26. ◇◇◇ 사망사건 이후 발생한 공소외 2의 분신자살, 유서 대필 공방을 미리 예견하여 공소외 2를 통해 공소외 5에게 메모지를 주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③ 또한, 공소외 2는 1965. 11. 27.생으로 1991년(1991. 2. 15.이 음력 설이었음)은 우리 나이로 27세가 되는 해인바, 메모지 내용 중에 “새해 이제 27 적어도 지금 나이의 나는”이라는 표현도 공소외 2의 나이에 부합한다(한편, 피고인은 1964. 3. 29.생으로 1991년은 우리 나이로 28세가 되는 해이다).
④ 마지막으로, 메모지의 필적은 이 사건 유서의 필적과 동일함에 다툼이 없는바, 피고인의 필적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유서의 필적과 상이한 점에 비추어 볼 때, 적어도 피고인은 메모지의 작성자가 아니라고 할 것이다.
(6) 공소외 5의 수첩과 공소외 5의 진술의 신빙성
① 공소외 5는 1991. 5. 14. 검찰 제1회 진술시 공소외 2의 필적 자료로 공소외 5의 수첩을 제출하면서, 1991. 4.경 어느 카페에서 공소외 2를 만났을 때 공소외 2가 장난으로 공소외 5에게 수첩을 달라고 한 후 공소외 2의 이름과 전민련 사무실 전화번호, 팩스번호를 직접 기재하여 준 것이라고 주33) 진술하였다.
② 공소외 5는 1991. 5. 17. 검찰 제2회 진술시에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여 위 진술을 번복하였다. 즉, 위 공소외 2 전화번호 부분은 1991. 5. 10. 15:00경 봉쥬르 카페에서 피고인이 작성하여 준 것인데, 그것을 써 주는 것을 보고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고 죽은 사람의 이름을 적는 것을 불쾌하게 여겼다. 검찰 1회 조사시 그것이 공소외 2의 필적이라고 진술한 이유는 제가 피고인의 글씨라고 말하였다가는 피고인을 위태롭게 할까 걱정이 되고 피고인이나 그 애인인 공소외 11과의 정을 생각하여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다른 자료들을 보니 이 사건 유서의 필적은 피고인이 쓴 것이 틀림없고 더 이상 제가 감추어도 소용이 없겠기에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다. 당시 피고인으로부터 위 공소외 2의 이름 등 기재 부분이 공소외 2의 자필이라고 말하라고 부탁받은 사실은 없으나, 검찰에서 1회 조사를 받을 때 피고인이 죽은 사람의 전화번호를 제 수첩에 적은 뜻을 알아차리고 공소외 2의 글씨라고 말하였다.
③ 공소외 5 그 후 피고인과 대질신문을 받으면서, 전에 검찰 조사를 받을 때는 피고인이 써 준 것으로 기억하고 진술하였는데, 집에 가서 곰곰이 생각하여보니 누가 써주었는지 혹은 제가 모르는 사이에 누가 제 수첩에 써 놓은 것인지 기억이 확실치 않다고 진술하였고, 원심 법정에서도 같은 취지로 진술하면서 검찰에서 피고인과 대질신문을 하기 전에는 피고인이 쓴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에서 그렇게 진술했으나 그 후 그 사실이 알려져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누가 썼는지 확실치 않다고 증언하였다(공소외 5는 누가 썼는지 기억에서 없어졌다고 하다가, 변호인의 ‘5. 10. 피고인이 쓰지 않은 것은 틀림없나요’라는 질문에 ‘예’라고 답변하기도 하였다).
④ 살피건대, 공소외 5의 검찰 제2회 진술에 의하더라도 1991. 5. 10. 피고인이 공소외 5의 수첩에 공소외 2의 이름 등을 적어줄 때 그것을 피고인이 아니라 공소외 2의 글씨라고 말하라고 부탁한 사실도 없고, 공소외 5에게 혹시 공소외 2의 편지나 필적이 남아 있는 것이 있느냐고 묻지도 않았다는 것인바, 공소외 5가 1991. 5. 14. 검찰 제1회 조사를 받으면서 메모지와 위 수첩을 피고인과 상의도 주34) 없이 임의로 제출한 점, 1991. 5. 14.경에는 피고인의 이 사건 유서의 대필 여부 수사가 언론을 통하여 알려지지 않았던 시점이었던 주35) 점 등을 고려하면, 공소외 5가 1991. 5. 14. 자신의 수첩을 임의로 검찰에 제출하면서 공소외 2의 이름 등 연락처가 기재된 부분이 1991. 4.경 어느 카페에서 공소외 2가 장난으로 썼던 것이라고 한 진술이 허위의 진술이라고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
⑤ 또한, 공소외 5의 1991. 5. 17.자 자술서에서, ‘맨 처음 조사받을 때 제출한 쪽지(메모지)가 ■■씨가 쓴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 썼고, 그것이 유서를 쓴 사람과 같다는 말을 들었을 때 당황했다. 쪽지를 ■■씨가 안 썼다면 누가 썼을까 하고 추적했을 때 설마 현우형(피고인을 지칭함)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씨를 소개해 준 사람이고 ▥▥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고 진술하였고, 같은 날 검찰 제2회 조사를 받으면서는 검찰이 제시한 이 사건 유서와 책표지, 공소외 2의 주민등록 분실신고서와 피고인의 자술서, ‘수신 ◈◈◈, 발신 ▨▨▨’으로 된 문서(검사 제출의 증제9-1호) 등을 제시받고 이 사건 유서가 피고인의 필적과 같다고 생각하였다고 원심 법정에서 진술하고 있는바, 사정이 이와 같다면, 공소외 5는 검찰 제2회 진술 당시 검찰이 제시하는 공소외 2와 피고인의 필적 자료(특히 검사 제출의 증제9-1호, 사실은 피고인의 필적이 주36) 아니다) 를 본 후 매우 당황한 상태에서 공소외 2와 피고인에 대한 의혹과 혼란에 빠져 모든 것을 피고인이 하였을지 모른다는 추측하에 메모지도 피고인이 공소외 2에게 준 것이고 공소외 2의 전화번호 등도 피고인이 써 준 것으로 생각하여 진술하였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하기 주37) 어렵다.
⑥ 마지막으로, 이 사건 유서의 필적과 피고인의 필적이 상이함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은바, 공소외 5의 검찰 제2회 진술이 제1회 진술보다 신빙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피고인이 이 사건 유서를 작성하였다고 단정하기에 부족하다.
(7) 피고인의 행적과 일부 진술
가) 공소외 5가 1991. 5. 7. 공소외 2와 마지막으로 헤어져 집에 돌아온 후 23:30경 피고인에게 전화하였을 때, 피고인은 “▩▩아, ▩▩아,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고 미안하다는 말을 세번이나 되풀이 하였던 점, 당시 공소외 5가 공소외 2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집에 연락해 달라면서 공소외 2 부친댁 전화번호를 두번이나 불러주었는데, 피고인은 그 후 이에 대해 전화번호를 불러준 것은 맞는데 그것이 어디 전화번호인지 알지 못했고 그 전화번호를 적어놓은 일도 없다고 진술하는 점, 피고인은 1991. 5. 8. 09:30경 애인인 공소외 11로부터 공소외 2가 분신자살을 하였다는 전화를 받고도 아무 말이 없었고, 공소외 5는 물론 공소외 11도 그날 12:00까지 공소외 2의 유해가 안치된 ◆◆대 영안실에 나와 있었는데도 피고인은 그날 14:00경에야 그곳에 나타난 점, 공소외 5가 1991. 5. 10. 15:00경 피고인을 찾아와 검찰출두시의 진술대책을 물어보자, 피고인은 ‘검찰에서는 말조심하고, 예, 아니오라고만 대답하고 쓸데없는 말이나 쓸데없는 사람을 끌어들이지 말라’고 말한 점, 피고인과 공소외 40, 공소외 5, 공소외 11이 1991. 5. 12. 21:00경 종로5가 도이취 호프집에서 만났을 때, 공소외 40이 ‘내가 공소외 41 등 분신사건 장례 등에 관여하였지만 이번 일(공소외 2 분신자살 사건을 지칭하는 것)에 여자인 공소외 5를 개입시킨 것이 최대의 실수다’라고 하자, 피고인이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고 말한 점, 피고인은 5. 5. 공소외 11 집에서 만난 날 공소외 5에게 ‘공소외 2가 좋은 사람이니 잘 사귀어 보라’고 말하고는 분신자살 후인 5. 10.에는 공소외 5에게 ‘공소외 2가 죽기 일주일 전쯤부터 공소외 2와 사이가 안 좋았다’고 모순되는 말을 한 주38) 점, 공소외 5가 1991. 5. 13. 검찰에 1차 소환되어 조사를 받고 3일 후 2차 소환되어 조사를 받게 되자, 피고인은 1991. 5. 17. 피고인의 어머니를 공소외 5의 집에 보내어 공소외 5의 어머니에게 ‘왜 변호사를 안 대느냐, 홍양이 얘기를 잘하지 못하면 아들 입장이 난처해진다.’고 말하며 공소외 5를 위해 변호사 선임까지 하여 대응하도록 적극 권유한 점, 피고인은 1991. 5. 18. 고 ◇◇◇군 장례행렬에 참가하였다가 그날 연대 앞 로터리에서 일간지를 보고 자신이 공소외 2의 유서를 대필해 준 혐의를 받고 있음을 처음 알았다고 하면서도 특별한 사유 없이 같은 달 13.부터 귀가하지 않고 전민련 사무실, ◆◆대학교, 명동성당에 머물며 검찰의 소환이나 사전발부된 구속영장의 집행을 거부해 오다가 한달이 넘은 같은 해 6. 24. 검찰에 출두하여 조사를 받은 점, 피고인은 검찰 조사과정에서 처음에는 업무일지를 본 일이 없다고 부인하였다가 그 후 공소외 31, 공소외 30의 진술에 의하여 피고인도 1991. 5. 10. 전민련 사무실에서 이를 본 일이 있음이 밝혀진 뒤에야 진술을 번복한 점, 피고인은 검찰에서 ‘전민련수첩이 조작된 것임을 부인할 수는 없겠다’, ‘전민련수첩, 업무일지, 이 사건 유서의 글씨는 모두 똑같아 보이는데 공소외 2의 글씨가 아니고 다른 한 사람의 글씨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이 사건 유서, 업무일지, 전민련수첩의 글씨가 피고인이 작성한 진술서의 몇 가지 글씨와 똑같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이 사건 유서가 다른 사람에 의해 대필된 것은 명백하다’는 등의 진술을 한 점 등 피고인의 행적과 진술에 의혹이 가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나) 그러나, 피고인은 위와 같은 자신의 행적에 대해 1991. 5. 7. 공소외 5와 전화통화하면서 ‘미안하다’고 한 것은 그 이틀 전 술을 먹고 실수한 것에 대해 사과한 주39) 것이고, 1991. 5. 8. 공소외 11이 전화했을 때 아무 말을 못한 것은 너무 충격을 받아 그런 주40) 것이며, 영안실에 늦게 간 것은 공소외 2의 자살에 따른 기자들 접견, 전화문의 등으로 바빠서 늦은 것이고,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라고 말한 사실은 주41) 없다고 하는 등 변소하고 있고, 일부는 자신의 애인인 공소외 11을 보호하기 위하여 위와 같은 행위를 한 것으로 보이는바, 공소외 5, 공소외 11의 진술에 비추어 피고인의 위와 같은 변소에 일부 수긍이 가는 측면도 있고, 피고인은 수사기관에서부터 당심 법정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이 사건 유서를 대필하여 준 적은 없다고 진술하고 있는바, 피고인이 검찰에서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유서가 다른 사람에 의해 대필된 것임이 명백하다는 등의 진술을 하였다고 하여 이를 공소사실을 자백한 것으로 볼 수도 없고(공소외 1이 작성한 각 감정서에는 이 사건 유서와 피고인의 진술서 등이 동일 필적으로 감정되어 있었고, 이 사건 수첩의 절취선이 불일치하며, 이 사건 유서와 피고인의 진술서 등의 몇 가지 글자가 얼핏 보기에 일부 유사한 측면도 있음을 고려할 때, 피고인이 검찰에서 위와 같은 진술을 한 것도 일응 수긍할 수 있다), 이 사건 유서와 피고인의 필적이 상이함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은바, 위와 같이 피고인의 행적과 진술에 일부 의혹이 있다는 것만으로 피고인이 이 사건 유서를 작성하였다고 단정하기에는 부족하다.
(8) 공소외 21, 공소외 22, 공소외 23, 공소외 24의 각 진술
가) 공소외 2의 아버지인 공소외 21, 공소외 2의 셋째 매형인 공소외 22, 공소외 2의 이종사촌 동생인 공소외 23은 모두 수사기관과 원심 법정에서 이 사건의 유서의 글씨가 공소외 2의 글씨가 아니라는 취지로 진술하였고, 공소외 2의 ♠♠중학교 동기 동창인 공소외 24는 재심대상판결 법정에서 이 사건 유서의 글씨가 자신이 공소외 2로부터 받은 편지 및 카드(검사 제출의 증제13-1, 2호)의 글씨와 달라 보여 위 편지와 카드를 검찰에 제출하였다고 진술하였다.
나) 그러나, 이 사건 유서의 필적과 피고인의 필적이 상이함은 앞에서 본 바와 같으므로, 이 사건 유서가 공소외 2의 글씨가 아니라는 취지의 공소외 21, 공소외 22, 공소외 23, 공소외 24의 각 진술만으로는 피고인이 이 사건 유서를 작성하였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
(9) ‘폭행건-태림사(성적 유린)’ 문서
가) 검사는 ‘폭행건-태림사(성적 유린)’ 문서(검사 제출의 증제9-4호)는 피고인의 집에서 압수한 것으로, 피고인이 증거로 함에 동의하여 피고인의 필적임을 자인하고 있는 문서인데, 위 문서에 나타난 필적이 이 사건 유서, 전대협노트에 나타난 필적과 너무나 유사[특히, ‘ 위원 장’( ) 부분]하므로, 피고인이 이 사건 유서를 작성하였다는 유력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나) 살피건대, 위 문서가 피고인의 집에서 압수된 것이기는 하나, 피고인의 집에서 압수되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압수된 문서가 모두 피고인이 작성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예컨대, 피고인의 집에서 압수된 ‘수신 ◈◈◈, 발신 ▨▨▨’으로 된 문서(검사 제출의 증제9-1호)도 피고인이 작성한 것이 아니었음은 앞에서 본 바와 같다], 위 문서에 대하여는 피고인이 작성한 진술서 등 다른 문서와의 필적감정을 통하여 위 문서의 필적이 피고인이 필적임이 확인되지도 않았으며, 육안으로 보더라도 위 문서에 나타난 필적[예컨대, ’ 옵 셋‘( ), ’ 있 는‘( ), ’ 보 장이다‘( ), ’ 싸 워서‘( ) 부분 참조]은 이 사건 유서와 메모지, 전대협노트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필적 습관(위에서 본 ‘오’, '보‘, ’ㅆ‘ 부분)과는 전혀 달라 보이므로, 피고인이 위 문서를 작성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위 문서와 이 사건 유서, 메모지, 전대협노트 등의 작성자가 동일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10) 소결론
따라서, 국과수 감정인 공소외 1 작성의 각 감정서 중 이 사건 유서의 필적과 피고인의 필적이 동일하다는 부분과 이 사건 유서의 필적과 공소외 2의 필적이 상이하다는 부분은 신빙성이 없어 이를 그대로 믿기 어렵고, 검사가 제출한 나머지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이 사건 유서를 작성하였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
라. 공소외 2가 이 사건 유서를 작성하였는지 여부
공소외 2가 이 사건 유서를 작성하였는지 여부는 엄밀하게는 공소사실 그 자체는 아니나, 공소사실과 논리적으로 양립 불가능한 사실로서 공소사실과 직접 관련이 있으므로, 아래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1) 공소외 18의 진술
가) 공소외 2, 공소외 19와 함께 자취하고 있었던 공소외 18은 1991. 5. 8. ◆◆대 ★★★★병원 1층 회의실에서 공소외 2의 분신자살과 관련하여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1991. 5. 7. 공소외 33의 전화를 받고 자취방에 가봤을 때 편지지 같은 종이의 뒷면에 약 3줄 정도로 “역사의 이정표가 되고자 함은 아니고”라는 등의 말이 써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고, 그것을 명륜동에서 공소외 2에게 주어 공소외 2가 손수 찢도록 하였다’고 진술하였고, 당시 명륜동에서 공소외 2, 공소외 18과 함께 있었던 공소외 17도 공소외 18이 공소외 2에게 메모를 건네주어 공소외 2가 이를 찢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하고 있어 공소외 18의 위 진술에 부합하며, 공소외 18이 경찰 조사를 받은 시기인 1991. 5. 8.은 피고인에 대하여 이 사건 유서 대필 수사가 개시되기 이전인 점을 고려하면, 공소외 18의 위 진술은 신빙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나) 사정이 위와 같다면, 공소외 2가 이 사건 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위와 같이 흔적을 남기게 되었다가 공소외 18이 이를 발견한 것으로 보는 것이 경험칙상 자연스럽다(만일, 피고인이 이 사건 유서를 대필해 준 것이라면, 피고인이 공소외 2의 자취방에 위와 같은 흔적을 남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2) 공소외 16의 진술
공소외 2와 1991. 5. 5.부터 5. 6.까지 함께 있었던 공소외 16은 재심대상판결 법정에서, 1991. 5. 6. 공소외 2와 설렁탕 집에서 함께 식사를 한 후 ‘장미빛 인생’이라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실 때, 공소외 2가 가지고 다니던 봉투에서 노트를 꺼내 끄적거리면서 ‘유서에 무어라고 쓰면 좋겠냐’고 물어보기에, ‘무슨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 정말 분신하려는 것이냐,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하면서 말린 사실이 있다고 증언하였다.
(3) 공소외 5의 진술
공소외 5는 원심 법정에서, 공소외 2와 1991. 5. 7. 밤에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공소외 2가 전민련수첩을 건네주면서 무슨 일 있으면 주소란에 동그라미 표시한 사람에게 곧바로 연락을 해달라고 부탁했고, 유서를 써야 하는 등 신변정리를 위해 집에 가봐야 한다면서 공소외 5의 손길을 뿌리치고 집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고 증언하였다.
(4) 전대협노트와 낙서장에 관한 진화위와 당심의 필적감정결과
가) 전대협노트와 낙서장의 발견
공소외 3은 2005. 8.경 경찰청 과거사위원회에 공소외 2가 작성한 문서라고 하면서 전대협노트와 낙서장을 제출하였는데, 그 발견 및 보관 경위에 대하여 진화위와 당심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공소외 2가 당시 기초의회선거일로 공휴일인 1991. 3. 26. 공소외 3 집에 놀러 와서 다음날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전대협노트에 메모를 하고 낙서장에서 낙서를 하면서 함께 대화를 나누다가 잠들었고 아침에 전대협노트와 낙서장을 그대로 남겨둔 채 공소외 2가 돌아간 적이 있다. 1991. 5. 8. 공소외 2 분신자살사건이 발생한 이후 유서대필 여부가 사회적 쟁점이 된 가운데 수사관 및 기자들이 공소외 3의 집에 찾아 왔고, 공소외 3은 자신이 보던 사회과학 서적들로 인하여 수사기관으로부터 귀찮게 추궁당하게 될까 봐 형수에게 자신이 보던 사회과학서적들을 치워달라고 부탁하였으며, 형수는 5박스 정도 되는 분량의 서적을 정리하여 다른 집에 보관하다가 석 달 후 찾아 온 적이 있다. 공소외 3은 1991. 12.경 결혼하여 분가하였는데, 1997. 초경 본가에서 서적을 옮기던 중 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전대협노트와 낙서장을 발견하게 되었다. 공소외 3은 진실규명에 도움이 되는 계기가 마련되었을 때 공개하리라는 생각으로 그때부터 전대협노트와 낙서장을 사무실 금고 안에 보관하고 있다가 2005. 8.경 경찰청 과거사위원회에 이를 제출하였다.
나) 진화위의 필적감정결과
진화위는 2006. 10.부터 2007. 5.까지 4차례에 걸쳐 공소외 3이 제출한 전대협노트와 주42) 낙서장, 공소외 4가 제출한 각서(변호인 제출의 증제23-1호)와 피고인이 작성했던 출정거부이유서, 봉함엽서 등에 대한 필적감정을 국과수와 사설감정원에 의뢰하여 필적감정결과를 제출받았는바, 필적감정결과는 아래와 같다.
문서작성자 | 대조자료(작성연대) | 사설감정원 1차 감정 | 사설감정원 2차 감정 | 사설감정원 3차 감정 | 사설감정원 4차 감정 | 국과수(2007) |
공소외 2 | 1.책표지(1981) | 유서와 판단불명 | ||||
2.주민등록증분실신고서(1989) | 유서와 판단불명 | |||||
3.이력서(1990) | 유서와 판단불명 | |||||
4.편지(1987) | 유서와 판단불명 | |||||
5.카드(1987) | 유서와 판단불명 | |||||
6. 수첩메모(1988) | 유서와 상이 | |||||
유서와 동일 | ||||||
유서와 판단불명 | ||||||
공소외 4 제출 | 각서(1991) | 유서와 동일 | 유서와 동일 | |||
공소외 3 제출 | 전대협노트, 낙서장(1991) | 유서와 동일 | 유서와 동일 | |||
전민련 제출 | 1.업무일지(1991) | 피고인 작성의 1~8문건과 상이 | ||||
2.전민련수첩(1991) | 피고인 작성의 1~8문건과 상이 | |||||
공소외 5 제출 | 3.메모지(1991) | 피고인 작성의 1~8문건과 상이 | ||||
피고인 | 1.진술서2(1985) | 유서와 상이 | 유서와 상이 | |||
2.화학노트(1985) | 유서와 상이 | 유서와 상이 | ||||
3.진술서1(1985) | 유서와 상이 | 유서와 상이 | ||||
4.자술서(1985) | 유서와 상이 | 유서와 상이 | ||||
5.항소이유서(1986) | 유서와 상이 | 유서와 상이 | ||||
6.수첩(1990) | 유서와 상이 | 유서와 상이 | ||||
7.문건(Two Tac) | 유서와 상이 | 유서와 상이 | ||||
8.문건(what is) | 유서와 상이 | 유서와 상이 | ||||
9.출정거부이유서(1986) | 유서와 상이 | 유서와 상이 | ||||
10.봉함엽서(1986~1987) | 유서와 상이 | 유서와 상이 |
다) 당심의 필적감정결과
당심은 공소외 2의 필적인 책표지, 주민등록증 분실신고서, 이력서, 편지, 카드 등(이하 본항에서는 ①감정대상물이라 한다)과 공소외 3이 제출한 전대협노트, 낙서장(이하 본항에서는 ②감정대상물이라 한다)에 대한 필적감정을 국과수에 촉탁하였는바, 국과수는 2013. 12. 10.자 감정서에서 ①감정대상물은 대부분 정서체로 기재되어 있고, ②감정대상물은 흘림체의 필적이어서 서로 기재조건이 부합되지 않아 대부분의 자획에서 차이점이 관찰되지만 ①감정대상물의 필적은 일부 반흘림체 필적이 존재하므로 이들 필적과 ②감정대상물의 필적 내에서 각각 일관성 있게 관찰되는 특징들을 기준으로 서로 비교분석한바, 아라비아 숫자 ‘8’, ‘9’의 구성형태, ‘학’, ‘책’, ‘각’ 등의 종성 ‘ㄱ’을 다른 자획보다 작게 기재하는 습성, ‘파’, ‘풀’의 초성 ‘ㅍ’, ‘만’, ‘막’, ‘민’의 초성 ‘ㅁ’, ‘있’의 종성 'ㅆ‘의 구성형태 및 ’는‘의 초·중·종성간 상대 위치와 각도 및 구성형태 등에서 유사점이 관찰되므로, ①감정대상물과 ②감정대상물은 동일한 필적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5) 이 사건 유서
가) 공소외 2가 공소외 24에게 보낸 편지에 기재된 내용, 문장력, 표현력 등을 고려하면, 공소외 2가 공소사실에 적시된 바와 같이 이 사건 유서에 기재된 내용 정도를 작성할 문장력이나 표현력 등이 없었다거나 부족한 것으로 보이지 아니한다.
나) 또한, 분신자살을 하면서 유서를 남기는 경우 자신의 손으로 직접 유서를 쓰는 것이 통상적일 것인바, 설령 공소외 2가 피고인의 문장력이나 표현력을 빌릴 생각으로 피고인에게 부탁하여 유서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을 직접 다시 자신의 글씨로 쓰지 못할 사정이 있었다고도 보이지 아니한다.
다) 또한, 이 사건 유서는 부모에 대한 존칭을 전혀 사용하고 있지 않은 반면, 피고인이 자신의 부모에게 보낸 봉함엽서에는 부모에 대한 존칭을 사용하고 마지막에 ‘소자, 올림’이라고 기재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만약 피고인이 이 사건 유서를 대필하였다면 부모에 대한 존칭을 사용하고 그 마지막에 ‘소자, 올림’ 등을 기재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6) 소결론
위와 같은 공소외 18, 공소외 16, 공소외 5 등의 진술에서 나타나는 공소외 2의 분신자살 전후의 행적, 피고인과 공소외 2의 필적에 대한 감정결과, 이 사건 유서의 내용 등을 모두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 유서는 피고인이 아니라 공소외 2가 직접 작성한 것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된다.
마. 결론
형사재판에서 공소가 제기된 범죄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는 것이고,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엄격한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검사의 입증이 위와 같은 확신을 가지게 하는 정도에 충분히 이르지 못한 경우에는 비록 피고인의 주장이나 변명이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면이 있는 등 유죄의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대법원 2006. 4. 27. 선고 2006도735 판결 , 대법원 2011. 4. 28. 선고 2010도14487 판결 등 참조).
위 법리에 비추어 볼 때, 국과수 감정인 공소외 1이 작성한 감정서 중 이 사건 유서의 필적과 피고인의 필적이 동일하다는 부분과 이 사건 유서의 필적과 공소외 2의 필적이 상이하다는 부분은 신빙성이 없어 이를 그대로 믿기 어렵고, 검사가 제출한 나머지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공소외 2에게 이 사건 유서를 대필하여 주어 공소외 2의 자살을 방조하였다는 공소사실이 합리적인 의심이 없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할 정도로 입증되었다고 보기에 부족하다.
결국, 이 부분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따라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여야 할 것인바, 이와 달리 유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에는 사실을 오인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피고인의 사실오인 주장은 이유 있다
7. 결 론
그렇다면, 피고인의 법리오해 주장은 이유 없으나, 사실오인 주장은 이유 있으므로, 검사의 양형부당 주장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6항 에 의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변론을 거쳐 다시 아래와 같이 판결한다.
범죄사실
별지1 범죄사실 기재와 같다.
증거의 요지
1. 피고인의 원심 법정 진술
1. 피고인에 대한 각 검찰 피의자신문조서
1. 공소외 42, 공소외 6, 공소외 7, 공소외 43에 대한 각 진술조서
1. 공소외 7, 공소외 43의 각 진술서
1. 별지2 기재 각 압수물
1. 판시 전과 : 범죄경력조회, 수사보고(형기 종료일자 확인)
법령의 적용
1. 범죄사실에 대한 해당법조 및 형의 선택
국가보안법(1991. 5. 31. 법률 제4373호) 부칙 제2항, 구 국가보안법(1991. 5. 31. 법률 제4373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같다) 제7조 제3항 , 제1항 [이적단체 가입의 점, 다만 그 형의 상한은 구 형법(2010. 4. 15. 법률 제10259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같다) 제42조 본문에서 정한 징역 15년으로 한다], 구 국가보안법 제7조 제5항 , 제1항 (각 이적표현물 소지의 점)
1. 누범가중
1. 경합범가중
형법 제37조 전단, 제38조 제1항 제2호 , 제50조 (형이 가장 무거운 판시 제1의 이적단체 가입으로 인한 국가보안법위반죄에 정한 형에 구 형법 제42조 단서의 제한 내에서 경합범가중)
1. 자격정지형의 병과
1. 몰수
양형의 이유
피고인이 1986. 3. 28.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에서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및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죄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아 그 누범기간 중에 있었음에도 이 사건 국가보안법위반 범행을 저지른 점에 비추어, 피고인에게 징역형의 실형 선고는 법률상 불가피하다. 다만 피고인에 대하여 자살방조의 점에 관하여는 무죄를 선고하는 점과 그 밖에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여러 양형의 조건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주문과 같은 형을 선고한다.
무죄부분
이 부분 공소사실의 요지는 위 제4항 기재와 같은바, 이는 앞서 제6항에서 본 바와 같이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하고, 형사소송법 제440조 에 의하여 무죄 부분의 요지를 공시한다.
[별지 2 이하 생략]
주2) 공소장에는 ‘모든 문제를’로 기재되어 있으나 오기로 보인다.
주4) 진화위에서 감정을 의뢰받은 일부 사설감정인과 국과수는 이 사건 유서 중 ‘오늘’의 ‘오’자와 피고인의 진술서, 봉함엽서 등에 나타난 ‘오’, ‘옥’자 사이에 일부 상사점이 간헐적으로 보인다고 판단하였으나(진화위 조사기록 제2418, 2419, 2431, 2479쪽과 3625쪽 참조),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유서와 동일한 필적이라고 감정한 업무일지, 전민련수첩, 메모지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오’자의 필적 습관과 피고인의 진술서 등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오’자의 필적 습관을 비교하면 양자 사이에 상사점이 있다고 단정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일부 사설감정인도 이 사건 유서와 피고인의 봉함엽서에 나타나는 ‘오’자가 서로 상이하다고 판단하였다(진화위 조사기록 제1425쪽 참조).
주5) 위 수첩에 대한 감정결과는 1991. 7. 4.자 감정서에 기재되어 있다.
주6) 진화위 조사기록 제3612, 3633쪽 참조.
주7) 진화위 조사기록 제3728 ~ 3731쪽 참조.
주8) 진화위에서 감정을 의뢰받은 일부 사설감정인은 이 부분 글자를 ‘보’자로 판독하고 있다(진화위 조사기록 제1441, 1470쪽 참조).
주10) 검사도 전대협노트에 나타난 필적이 이 사건 유서의 필적과 동일하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주13) 실제로, 국과수 감정인 공소외 1은 ‘보’자를 ‘오’자로 잘못 판독하였고, 진화위에서 감정을 의뢰받은 일부 사설감정인도 ‘보’자를 ‘오’자로 잘못 판독하였다(진화위 조사기록 제1570, 1578, 1578-1쪽 참조).
주14) 공소외 1도 1991. 5. 15.자 감정서에서는 이 사건 유서는 속필체인 반면에 책 속 메모, 주민등록증 분실신고서는 정자체로 기재되어 있고, 필기구도 다르기 때문에 정서체와 속필체, 필기구에 의한 변화상태를 알수 없어서 이동여부를 논단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고, 1991. 5. 25.자 감정서에서는 공소외 2가 누나에게 선물한 책 속 메모, 주민등록증 분실신고서, 이력서, 편지, 카드와 이 사건 유서는 그 기재된 형태가 정서체로 기재된 형태와 싸인펜에 의하여 속필체로 기재된 형태의 차이가 있어 여기에서 나타날 수 있는 변화상태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대조자료로써 부적합하지만, 현재에 나타난 상태에서 대조한바, 일부 받침과 연결부분, 자음의 구성에서 유사성은 있으나, 필의 구성과 운필각도, 직선적이고 곡선적인 운필형태, 모음의 연결부분 등에서 다수의 차이점이 관찰된다는 이유로 정서체와 속필체의 변화상태는 알 수 없으나, 현재상태에서는 상이한 필적으로 생각된다고 하였다.
주15) 진화위 조사기록 제3155, 3215~16, 3310~11쪽 참조.
주16) 진화위 조사기록 제3712~23쪽 참조.
주17) 공소외 25은 원심 법정에서 공소외 2가 정자체를 쓰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하였고, 흘림체로 쓰는 글씨만을 자주 보았다고 증언하였다. 공소외 25에 대한 원심 증인신문조서 참조.
주18) 공소외 3은 당심 법정에서 공소외 2가 필요에 따라 글씨를 또박또박 쓰기도 하고 흘려서 쓰기도 하였다고 증언하였다.
주19) 공소외 26은 원심 법정에서 공소외 2가 대자보 등 큰 글씨를 적을 때는 정자체를 썼고, 사적인 글을 쓸 때는 흘림체를 썼다고 증언하였다. 공소외 26에 대한 원심 증인신문조서 참조.
주20) 공소외 2가 작성한 것으로 판단되는 문서들 중 공소외 27이 제출한 수첩 1장, 공소외 5이 제출한 공소외 5 수첩 중 ‘복지다방’ 약도 기재 부분(검사 제출의 증제7-1호)과 변호인들이 공소외 2가 작성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제출한 성남 터사랑학우회 방명록(변호인 제출의 증제1호), 전교조 원주지회 방명록(변호인 제출의 증제3호), ▲▲▲▲ 메모(변호인 제출의 증제5호), 수원민주화 청년연합 방명록(변호인 제출의 증제10호), 각서(변호인 제출의 증제23-1호) 등은 모두 증거가치가 없다거나 그 작성자, 작성시기, 작성경위, 제출경위 등에 의문이 있다는 이유로 필적감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주21) 공소외 30에 대한 검찰 진술조서, 공소외 31의 진술서 참조.
주22) 피고인은 원심 법정에서, 검찰 조사시 업무일지를 본 일이 없다고 부인한 이유를 묻는 재판장의 질문에 대해 ‘업무일지를 본 것은 사실이나 불리할 것이라고 생각되어 반사적으로 거짓말을 하였다’고 답변하였다.
주23) 피고인과 변호인은 첫째 장은 전민련 사회국 부장인 공소외 32이, 둘째 장 중 파란색 볼펜으로 기재된 부분은 전민련 사회국 부장인 공소외 33이 쓴 것이라고 주장한다.
주24) 공소외 1에 대한 원심 증인신문조서 참조. 국과수 감정인 공소외 34도 재심대상판결 법정에서 업무일지 중 첫째 장과 둘째 장 중 파란색 볼펜으로 기재된 필적은 나머지 필적들과 달라 동일인이 쓴 필적이 아니라고 증언하였다. 공소외 34에 대한 재심대상판결 법정 증인신문조서 참조. 검사도 첫째 장과 둘째 장 중 파란색 볼펜으로 기재된 필적이 나머지 다른 필적과 상이하다는 점에는 다툼이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주25) 피고인에 대한 각 검찰 피의자신문조서, 공소외 32의 진술서, 공소외 33에 대한 검찰 진술조서 각 참조. 검찰은 이 사건 유서와 공소외 33의 진술서에 나타난 필적의 이동여부를 감정하였는데, 서로 상이한 필적으로 감정되었다.
주26) 공소외 35의 진술서 참조.
주27) 공소외 26에 대한 원심 증인신문조서 참조.
주28) 더구나, 피고인은 1991. 5. 8. 14:00경에야 공소외 2의 유해가 안치된 ◆◆대 영안실에 나타났다.
주29) 공소외 16의 증인신문조서 참조.
주30) 다만, 공소외 5이 메모지를 제출한 내용이 기재된 제1회 검찰 진술조서는 1991. 5. 14. 작성되었다.
주31) “공소외 2 (팩스번호 생략) f)(팩스번호 생략)”로 기재되어 있다.
주32) 공소외 5의 1991. 5. 17.자 자술서, 공소외 5에 대한 제2회 검찰 진술조서 참조.
주33) 공소외 5에 대한 제1회 검찰 진술조서 참조.
주34) 공소외 5은 검찰이 필적감정을 할 만한 것을 가지고 오라고 전화하였고 그 후 수사를 받게 되어 전민련에 전화를 하였더니 공소외 39이 ‘꿀릴 것이 없다’고 하여 1991. 5. 13. 메모지와 자신의 수첩을 검찰에 가져갔던 것이라고 원심 법정에서 증언하였다.
주35) 피고인은 1991. 5. 18.경 언론보도를 통하여 자신이 이 사건 유서의 대필자로 지목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
주36) 공소외 5은 원심 법정에서 ‘수신 ◈◈◈, 발신 ▨▨▨’으로 된 문서(검사 제출의 증제9-1호)가 이 사건 유서와 가장 확실하게 비숫하였다고 증언하였는데, 위 문서는 피고인이 작성한 것이 아니라 피고인이 수신인(가명 ◈◈◈)으로 표시된 서면이다. 피고인에 대한 검찰 제1회 피의자신문조서 참조.
주37) 공소외 5도 원심 법정에서 공소외 2의 분신자살 이후 공소외 2가 학력을 속인 것을 알게 되어 기분이 언짢았고, 공소외 2를 소개해 준 피고인을 원망하는 마음도 있었으며, 공소외 2와 피고인 모두에게 배신당하였다는 기분을 가졌고, 1991. 5. 17. 검찰에서 진술할 때 공소외 2와 피고인에 대한 의혹과 혼란을 품은 상태에서 진술하였다고 증언하였다.
주38) 공소외 5은 이에 대해 검찰 제2회 진술에서, 당시 피고인이 구체적인 이유를 말하지는 않았으나 공소외 2가 학력이나 경력을 속였기 때문에 피고인이 공소외 2에게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진술하였다.
주39) 이와 관련하여 공소외 5은 검찰 제2회 진술시, 피고인으로부터 위와 같은 말을 듣고 혹시 피고인이 공소외 2가 내일 죽으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아니면 5. 5. 술을 과음하고 주정을 부린 일을 사과한 것인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아마도 술주정 때문인가 생각하고 ‘괜찮다’고 말하였고, 공소외 2가 죽은 후 1991. 5. 8. ◆◆대학교에서 피고인을 만났을 때 피고인에게 ‘왜 이상하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였느냐’고 물었더니 피고인이 5. 5. 술을 많이 먹고 길바닥에 주저앉았던 것에 대한 사과라고 하였다고 진술하였다.
주40) 공소외 11는 피고인과 전화통화 당시 공소외 2의 유해가 안치된 ★★★★병원에 함께 가보자는 등의 이야기는 없었는데, 서로 공소외 2의 분신에 대하여 알고서 놀란 나머지 그런 말을 하지 못한 것 같다고 진술하였다. 공소외 11에 대한 검찰 진술조서 참조.
주41) 피고인은 그런 말을 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나, 공소외 5은 검찰 제2회 진술에서 당시 공소외 40가 1991. 5. 8. 공소외 5이 ◆◆대에서 기자회견을 한 것과 관련하여 위와 같은 말을 하면서 ‘만약 ▤▤▤▤ 전문대 학생들이나 원진레이온 근로자들이 있었으면 그 사람들이 공소외 2의 성실성이나 투쟁성향을 잘 아니까 그 사람들이 인터뷰를 하면 되고 공소외 5을 기자회견이나 인터뷰에 내세울 필요가 없었는데 실수다’라고 하였고, 그러자 피고인이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라고 하였다고 진술하였다.
주42) 전대협노트와 낙서장은 원본이 국가기록원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당심에서 필적감정을 위해 압수하였다가 감정을 마친 뒤 반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