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시사항
근로자의 동의 없는 전보처분이 인사권의 남용에 해당한다고 본 사례
판결요지
보일러기사로 채용돼 15년 이상 기능직 사원으로 경주에서만 근무한 자를 영업소 판촉직으로 전보하여 대구에서 근무하도록 한 조치는, 근로조건의 중대한 변경을 가져오는 것으로서 근로자의 동의가 없는 한 부당하며 나아가 인사권의 남용에 해당되어, 그 전보처분이 위법하다고 본 사례.
참조조문
원고
이성렬
피고
중앙노동위원회위원장
주문
1. 피고가 원고와 소외 주식회사 오운개발코오롱호텔과 사이의 94부해178호 부 당인사구제재심신청사건에 관하여 1994. 8. 29.자로 한 재심판정을 취소한다.
2. 소송비용은 피고의 부담으로 한다.
청구취지
주문과 같은 판결.
이유
1. 이 사건 재심판정의 경위
아래 각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거나, 갑 제1호증, 갑 제2호증(을 제6호증과 같다), 갑 제5, 6호증의 각 1, 2, 갑 제22호증, 갑 제23호증의 1, 2, 을 제9호증, 을 제10호증의 1, 2, 을 제11, 12호증의 각 기재와 증인 이재관의 일부 증언 및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여 인정할 수 있고 반증 없다.
가. 원고는 1978. 8. 1. 경주시 마동 111의 1에서 코오롱호텔을 경영하는 소외 주식회사 오운개발코오롱호텔(이하 "소외 회사"라 한다)에 입사하여 줄곧 기계영선과 소속 보일러 기사로 근무하여 오다가 1992. 4. 1.에는 가스소방담당 계장으로 임명되었는데, 만성적인 경영적자에 시달려 온 소외 회사가 그 타개책의 일환으로 2본부 3부 14과이던 종전의 조직을 1본부 16개팀으로 개편하면서 기존의 기계영선과가 인원이 축소조정되어 기술팀으로 흡수되자 1994. 5. 12.자로 기능직 사원으로 근무하던 원고를 소외 회사 소속 대구영업소 영업담당(판촉사원)으로 전보·배치(전배)시키는 인사명령(이하 "이 사건 전보처분"이라 한다)을 하였다.
나. 소외 회사는 위와 같이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시행하기에 앞서 1994. 3. 30. 경영쇄신책으로 세종경영연구원이라는 호텔경영전문업체에 소외 회사의 경영을 위탁하기로 원래 결정하였으나, 소외 회사 소속 직원들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할 목적으로 조직되어 그 동안 교섭단체로도 활동하여 온 호텔상조회가 중심이 되어 같은 해 4. 1. 위탁경영결사반대투쟁위원회를 결성하여 위 상조회와 별도로 조직된 약 20명의 노동조합원들(원고는 1994. 4. 2. 노동조합에 가입함)을 제외한 전 직원이 이에 극력 반대하자 소외 회사의 실질적인 경영주체인 코오롱그룹은 그 동안의 위탁경영계획을 철회하는 대신 중간경영층과 상조회회원들로 구성된 '경영쇄신추진위원회'를 발족시켜 동 위원회로 하여금 경영쇄신종합계획서를 작성하도록 한 다음 그 계획서에 기하여 위와 같은 대규모 조직개편을 시행한 것이다.
다. 그러나 원고는, 자신이 처음부터 소외 회사에 보일러기사로 채용되어 15년 이상을 기능직 사원으로 근무하면서 경주시에 정착하여 생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전 상의도 없이 전혀 생소한 업무인 대구영업소 소속 판촉직으로 전보시킨 것은, 위탁경영에 반대하여 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원고가 다른 계장급 이상 사원들과 함께 사표를 제출하였다가 단독으로 그 사표를 철회하고 노동조합에 가입한 데에 대한 보복조치로 취하여진 것으로 부당한 인사명령에 해당한다는 전제하에, 1994. 4. 2. 근로기준법 제27조의3 , 노동조합법 제40조 의 규정에 의하여 경상북도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하였다. 그 결과, 위 지방노동위원회는 1994. 6. 25.자로 "소외 회사의 인사규정 제23조 제1항 제4호에 기구개편으로 인원조정이 불가피할 때에는 보직변경을 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고 제28조에 '동일부서에 근무하는 2인 이상의 동일한 능력을 가진 자가 동시에 전배대상이 되는 경우 장기근무자를 우대한다.'라고 규정되어 있으며 종전의 기계영선과 소속 보일러기능사 중에는 원고보다 근속기간이 짧은 직원이 있는데도 표창을 수차례 받아 온 원고를 강제전보배치한 것은 인사권의 범위를 일탈한 인사권남용에 해당한다."라는 이유를 들어 "소외 회사의 원고에 대한 전보처분을 부당인사로 인정하는 한편, 소외 회사는 원고를 즉시 원직에 복직시켜야 한다."라는 내용의 판정 및 명령을 하였다.
라. 이에 소외 회사는 위 지방노동위원회의 구제명령에 불복하여 피고에게 94부해178호로 재심판정을 신청하였고, 피고는 1994. 8. 29.자로 "소외 회사가 경영혁신을 기하기 위하여 기계영선과의 정원을 축소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원고를 전보처분한 것이고 위 인사규정 제28조의 규정을 장기근무자를 우대한다는 취지로 해석할 수 없다."라는 이유로 "초심 결정을 취소하고, 본건 재심신청은 재심신청인의 정당한 인사권 행사로 판정한다."라는 재심판정(이하 "이 사건 재심판정"이라 한다)을 하였다.
2. 이 사건 재심판정의 적법 여부
가. 이 사건 전보처분이 근로조건의 중요한 변경에 해당하는지 여부
근로자에 대한 전직이나 전보는 원래 피용자가 제공하여야 할 근로의 종류와 내용 또는 장소 등에 변경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피용자에게 불이익한 처분이 될 수도 있으나 이는 원칙적으로 인사권자인 사용자의 권한에 속하여 업무상 필요한 범위 안에서는 상당한 재량을 인정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 내용이 근로의 종류, 장소와 같은 근로조건의 중대한 변경을 가져오는 것으로서 이미 약정한 근로계약의 범위를 현저히 넘어서서 통상 예측할 수 없는 불이익을 가져오는 것이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근로자의 개별적 동의 내지 근로계약이나 취업규칙 또는 단체협약에 의한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돌이켜 이 사건에 관하여 보면, 앞서 믿은 증거들에 갑 제8호증, 갑 제9호증의 1, 2, 갑 제10호증, 갑 제11호증의 1, 2, 갑 제18, 26, 28호증, 을 제11호증, 을 제15호증의 1, 2, 3의 각 기재 및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면, 원고는 입사 당시부터 보일러기능사 1급 자격증 소지자로서 그가 담당할 업무가 기계영선과 소속 기능직으로 특정되어 있었고 입사 후 줄곧 보일러기사로서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1992. 4. 1. 가스소방계장으로 임명된 후 1992. 10. 30.에는 소정교육을 이수하고 한국소방안전협회장으로부터 방화관리자수첩을 교부받았으며 또 1993. 10. 4.부터 같은 달 8.까지 사이에는 한국가스안전공사에서 실시하는 사용시설안전관리원의 교육과정까지 이수하여 방화관리 및 가스안전관리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축적한 사실, 한편 소외 회사는 사원들의 전직이나 전보 등에 관하여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에는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고 1984. 1. 1.부터 시행된 인사규정에 상세한 규정을 두고 있는데 그 제5조에서 정원을 관리직·영업직·기능직 및 별정직으로 구분하고, 사원의 보직은 각 부서별 직무정원과 현재원을 상호 고려하여 적재적소의 원칙, 기회균등의 원칙 및 자격실증의 원칙에 따라 시행하며 최단보직기간은 1년으로 하고(위 인사규정 제19조, 제20조, 제21조) 보직변경은 결원보충이 긴급할 때, 기구개편으로 인원조정상 부득이한 때 등에 최단보직기간에 관한 규정에 불구하고 실시할 수 있으며, 정기전배(정기전배)는 매년 4월 일괄적으로 실시하고 기구개편 등으로 인하여 충원이 불가피할 때에는 부정기적으로도 전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사실(위 인사규정 제26조, 제27조), 소외 회사의 1992. 12. 31. 현재 총직원의 수는 329명이고 그 중 반수 이상이 객실과, 식음연회과, 조리과, 또는 레저스포츠과 소속이고 기계영선·전기와 같은 기술분야에는 26명(기계영선과 16명, 전기과 10명)이 소속되어 있었으며 전문적인 판매촉진분야에는 판촉팀장 1인, 국내판촉과 6인 및 국제판촉과 4인이 소속되어 있었던 사실, 또한 일부 영업직 사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원들은 그 근무장소가 위 코오롱호텔이고 특히 기계영선과 같은 기술분야에 근무하는 사원들은 위 호텔 내의 각종 시설이나 기계기구 등을 주된 업무대상으로 하므로 대부분 위 호텔이 소재한 경주시에 주소를 두고 출퇴근을 하여 온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반증 없다. 사실관계가 이와 같다면 원고는 소외 회사에 보일러기사로 입사한 후 계속하여 기계영선과 소속 기능직 사원으로 근무하는 동안에 그 업무 및 기능이 고정되어 근로계약의 내용도 기계영선분야의 직종으로 한정되었다고 할 것이고, 또 소외 회사가 경영하는 호텔이 다른 곳으로 이전하거나 새로운 호텔을 개설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근무장소도 기존의 호텔로 한정되기로 하는 묵시적 합의가 그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고, 위 인사규정상의 전배에 관한 규정(위 인사규정 제26조, 제27조)도 사원보직에 대한 기본원칙으로 적재적소의 원칙을 들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전보를 실시하는 경우라도 기능직 사원을 그 기술에 관한 전문적 지식이 필요 없는 전혀 다른 직종으로 전보배치하는 것까지를 예상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렇게 볼 때, 15년 동안 경주시에 있는 위 호텔에서 보일러기사와 같은 기술분야에 근무하여 온 원고를 그가 가진 전문적 지식과는 전혀 무관할 뿐만 아니라 근무장소도 멀리 떨어진 대구영업소 영업담당으로 전보한 소외 회사의 인사조치는 근로조건의 중대한 변경을 가져오는 것으로서 이미 약정한 근로계약의 범위를 현저히 넘어서서 통상 예측할 수 없는 불이익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원고가 이러한 전보처분에 대하여 원고의 개별적 동의 내지 근로계약이나 취업규칙 또는 단체협약에 의하여 동의한 사실이 인정되지 않는 이상 이 사건 전보처분을 정당하게 행한 것으로 볼 수 없다.
나. 인사권의 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
나아가 살피건대, 가사 이 사건 전보처분이 근로계약에 근거를 두고 그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지라도 과연 정당한 인사권의 범위 내에서 행하여진 것인지 여부가 문제로 된다.
앞서 믿은 증거들과 갑 제3호증의 1, 2(을 제8호증과 같다), 갑 제29호증, 을 제13, 14호증의 각 1, 2, 3의 각 기재를 종합하면, 소외 회사는 1994. 5. 12.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실시하면서 각 지역별 영업소를 신설하고 그 영업담당 직원을 충원하기 위하여 원고를 비롯한 다른 부서 소속 직원 15인을 전보조치하였는데 그 중에 원고만이 기능직 사원으로서 그가 가진 전문적 지식이나 소양이 고객을 유치하는 영업분야와 무관할 뿐이고 다른 직원들은 원래 영업분야에 근무하였거나 음식연회과나 장외사업과 또는 당직지배인 등으로 근무하면서 고객들과 빈번히 접촉하여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전문지식이 영업분야와 직·간접적으로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사실, 원고는 소외 회사에 입사한 이래 가족들과 함께 경주시에 정착하여 생활하여 왔는데 이 사건 전보처분으로 대구로 이사하거나 가족들과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게 된 사실, 원고는 위 기계영선분야에 장기간 근무하여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된 데다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그 분야에 필요한 다수의 전문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었던 사실, 소외 회사의 대표이사는 원고를 전보조치한 후 시설팀 소속 직원 2인이 1994. 5. 31. 사직하자 같은 해 6. 4. 신설된 시설팀에게 기술직 사원 2, 3명을 충원할 것을 지시한 사실 등을 인정할 수 있고 위 인정에 반하는 듯한 증인 이재관의 일부 증언은 믿지 아니하고 달리 반증 없다.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소외 회사가 비록 만성적인 경영적자를 타개하기 위하여 매출을 적극적으로 증대시키는 방책의 일환으로 영업분야를 확대개편하였다고 하여도 종래 기능직에만 근무하여 온 원고를 전혀 생소한 영업담당으로 전보시킨 것은 영업업무의 능률이란 측면에서 보더라도 합리적인 것이라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한 달도 못되어 기술분야 사원을 2, 3명 충원할 수밖에 없게 된 점에 비추어 볼 때 기계영선업무의 면에 있어서도 업무상 필요성이 있었다고 인정하기도 어렵다. 더구나 원고가 이 사건 전보처분에 의하여 경주시를 떠나 대구에서 근무하여야 하는 바람에 생활상 적지 않은 불이익을 받게 되리라는 점은 쉽게 엿 볼 수 있는데도 피고의 전 거증에 의하더라도 소외 회사가 이 사건 전보처분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원고와의 협의 등 신의칙상 요구되는 절차를 거친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 전후 사정이 이와 같다면 소외 회사의 원고에 대한 이 사건 전보처분은 업무상 필요성도 인정하기 어려운 데다가 그로 인하여 원고의 생활상 중대한 불이익을 가져온 인사명령으로서 인사권의 남용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3. 결 론
그렇다면, 소외 회사의 원고에 대한 위 전보처분이 정당한 것임을 전제로 한 피고의 이 사건 재심판정은 위법하여 취소할 것인바, 그 취소를 구하는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이유 있어 이를 인용하고 소송비용은 패소자인 피고의 부담으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