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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2002. 11. 28. 선고 2001헌바50 결정문 [한국보건산업진흥원법 부칙 제3조 위헌소원]
[결정문]
청구인

【당 사 자】

청 구 인 이○열 외 18인

대리인 변호사 김선수 외 1인

당해사건

서울고등법원 2000누14124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취소

주문

한국보건산업진흥원법(1999. 1. 21. 법률 제5671호로 제정된 것) 부칙 제3조는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이유

1. 사건의 개요 및 심판의 대상

가. 사건의 개요

(1) 정부는 1998. 8.경 “정부출연·위탁기관 경영혁신 추진계획”에 의하여, 청구외 한국식품위생연구원(이하 “식품연구원”이라 한다)과 한국보건의료관리연구원(이하 “의료연구원”이라 한다)을 통폐합하여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하 “진흥원”이라 한다)을 설립하고, 정원을 기존의 연구원 197명에서 137명으로 감원하고, 경상비도 20% 삭감한다는 계획을 세웠고, 이에 따라 진흥원의 설립을 위하여 1999. 1. 21. 법률 제5671호로 한국보건산업진흥원법(이하 “법”이라 한다)이 제정되었다.

식품연구원은 1999. 1. 22. 이사회에서 식품연구원의 재산과 권리·의무(퇴직금 등)를 포괄적으로 진흥원에 승계시키기로 의결하였고, 이에 대하여 같은 해 2. 1.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부터 승인을 받았으며, 식품연구원과 의료연구원은 같은 해 2. 6. 해산등기가 마쳐졌고, 같은 날 진흥원에 관한 설립등기가 마쳐짐으로써 진흥원이 설립되었으며, 진흥원은 1999. 2. 12. 및 같은 달 27. 인사위원회에서 직원 선정기준을 설정하고, 이에 따라 같은 해 3. 10. 청구인들을 포함한 식품연구원 소속 직원 일부를 선정에서 배제하였다.

(2)청구인들은 “진흥원의 이러한 행위가 승계된 자신들과의 근로관계를 일방적으로 소멸시키는 것으로 해고에 해당한다” 하여 1999. 3.경과 4.경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명령을 신청하여 같은 해 6. 8. 동 위원회로부터 “진흥원의 1999. 3. 10.자 해고는 부당해고로서, 진흥원은 청구인들을 원직에 복직시키고 해고기간 중 정상적으로 근무하였더라면 받을 수 있었던 임금 상당액을 지급하여야 한다”는 구제명령을 받았고, 진흥원이 이에 불복하여 중앙노동위원회(이하 “중노위”라 한다)에 재심신청을 하자 중노위는 1999. 11. 29. 진흥원의 재심 신청을 기각하는 재심판정을 하였다.

(3)이에 진흥원은 중노위 위원장을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위 재심판정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2000구139호)을 제기한바, 위 법원은 2000. 10. 17. 중노위가 한 재심판정을 취소한다는 판결을 선고하였고, 중노위 위원장은 이에 불복하여 서울고등법원에 항소(2000누14124호)하였으며, 청구인들은 그 사건의 피고인 중노위 위원장을 보조하기 위하여 위 소송에 참가하여 재심판정의 적법 여부 판단의 기초가 되는 법 부칙 제3조에 대하여 위헌여부심판의 제청신청(2001아34)을 하였는데, 서울고등법원이 2001. 6. 22. 피고의 항소와 위 제청신청을 기각하자, 청구인들은 2001. 7. 4. 이 사건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하였다. 한편 위 서울고등법원의 항소기각 판결에 대한 피고의 상고(대법원 2001두6579)는 2002. 5. 14. 기각되었다.

나. 심판의 대상

이 사건 심판의 대상은 법 부칙 제3조(이하 “이 사건 법률조항”이라 한다)의 위헌여부이며, 그 규정 및 관련 규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법 제1조(목적)이 법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을 설립하여 보건산업의 육성·발전과 보건서비스의 향상을 위한 지원사업을 전문적·체계적으로 수행함으로써 보건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이

고 국민보건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부칙 제2조(설립준비)①보건복지부장관은 이 법 시행일부터 30일이내에 7인이내의 설립위원을 위촉하여 진흥원의 설립에 관한 사무와 설립당시의 이사 및 감사의 선임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게 하여야 한다.

②설립위원은 진흥원의 정관을 작성하여 보건복지부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③설립위원은 제2항의 규정에 의한 인가를 받은 때에는 지체없이 연명으로 진흥원의 설립등기를 한 후 원장에게 사무를 인계하여야 한다.

④설립위원은 제3항의 규정에 의한 사무인계가 끝난 때에는 해촉된 것으로 본다.

⑤진흥원이 설립될 때까지 진흥원의 설립을 위하여 지출하는 경비는 식품위생법에 의한 한국식품위생연구원과 재단법인 한국보건의료관리연구원(이하 “각 연구원”이라 한다)이 공동으로 부담한다.

제3조(권리·의무의 승계)①이 법 시행당시의 각 연구원은 그 이사회의 의결에 의하여 그 재산과 권리·의무를 이 법에 의하여 설립될 진흥원이 승계하도록 보건복지부장관에게 신청할 수 있다.

②각 연구원은 보건복지부장관의 승인을 얻은 때에는 이 법에 의한 진흥원의 설립과 동시에 민법중 법인의 해산 및 청산에 관한 규정에 불구하고 해산된 것으로 보며, 각 연구원에 속하였던 재산과 권리·의무는 진흥원이 이를 승계한다.

③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진흥원에 승계되는 재산의 가액은 진흥원 설립등기일 전일의 장부가액으로 한다.

2. 청구인들의 주장 및 관계기관의 의견

가. 청구인들의 주장

통폐합되는 식품연구원 및 의료연구원의 권리·의무의 승계에 관한 규정인 이 사건 법률조항을 보건복지부 장관의 승인이 없으면 통폐합되는 각 연구원의 재산과 권리·의무를 진흥원이 승계하지 않는다고 해석하고, 위 규정에서 승계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규정한 권리·의무를 재산상의 것으로 한정하여 해석한다면, 이는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특수법인을 설립할 경우에는 근로관계의 승계를 인정하지 아니함으로써 근로자의 의사에 반하여 근로자를 해고하여 근로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으로서, 일반적으로 합병의 경우 합병 후 존속하는 회사는 합병으로 인하여 소멸된 회사의 권리의무를 승계하고, 영업이 포괄적으로 양도되면 반대의 특약이 없는 한 양도인과 근로자간의 근로관계도 원칙적으로 양수인에게 포괄적으로 승계된다고 보고, 정당한 이유없는 해고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는 노동법의 원칙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법률조항은 헌법 제11조의 평등의 원칙에 위배되고, 헌법 제10조 전단에서 규정한 인간의 존엄성, 같은 조 후단의 행복추구권, 헌법 제32조의 근로의 권리, 헌법 제15조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위헌이다.

나. 서울고등법원의 위헌제청신청 기각이유

(1)정부의 방침에 의하여 식품연구원과 의료연구원이 통폐합되고 그 대신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진흥원이 설립되고, 진흥원이 수행할 업무중에 위 각 연구원이 수행하던 업무가 포함되어 규정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위 각 연구원의 업무가 진흥원으로 이관되었다 하더라도 이는 정부의 정책적 고려에 의한 것으로서 이를 위 각 연구원 사이의 약정에 의한 영업의 포괄적 양도나 법인의 합병과 마찬가지로 볼 수는 없으므로 위 각 연구원 직원들의 근로관계는 진흥원으로 당연히 포괄적으로 승계된다고 할 수 없고, 이러한 경우에 있어 근로관계의 승계가 있다고 보기 위하여는 법 부칙 등에 근로관계의 승계에 관한 경과규정을 두어야 할 것이고, 한편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가능한 여러 수단들 가운데 구체적으로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는 그 선택이 현저하게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것이 아닌 한 입법자의 재량에 속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2)그런데 법 부칙 제3조 제2항에서 위 각 연구원에 속하였던 재산과 권리·의무는 “보건복지부 장관의 승인을 얻은 때”에 진흥원이 승계하는 것으로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고, 각 연구원 소속 직원의 근로관계에 대하여는 이를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지 아니하며 오히려 같은 조 제3항에서 “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진흥원에 승계되는 재산의 가액은 진흥원 설립등기일 전일의 장부가액으로 한다”라고 규정함으로써 진흥원으로 승계되는 위 각 연구원의 권리·의무는 재산상의 것임을 밝히고 있는바, 종전 각 연구원들은 민간단체로서 정부가 지원금을 보조하는 기관이었으나, 진흥원은 정부가 보건산업기술 및 정보의 개발, 기술개발지원사업 등을 하기 위하여 정부출연금으로 설립·운영하는 기관으로서 그 운영비 전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조달되고 진흥원에 대한 정부의 업무감독 또한 종전 연구원보다 강화되며, 그동안 비능률적이고 방만하게 운영되던 정부출연·위탁기관의 구조조정의 필요성도 절실하게 요구되는 데다가, 진흥원의 업무중 종전 각 연구원으로부터 이관된 업무의 비중에 비추어 종전 각 연구원 직원들 전부를 그대로 승계할 필요가 없었을 뿐 아니라, 각종 환경의 오염 및 이로 인한 질병으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고 국민들에게 양질의 보건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경쟁력있는 우수한 인재를 채용하는 방법으로 직원을 충원하는 것이 공익에 부합되기도 한 점에 비추어 볼 때, 법 부칙 제3조를 보건복지부장관의 승인이 없으면 통폐합되는 각 연구원의 재산과 권리·의무를 진흥원이 승계하지 않는다고 해석하고, 위 규정에서 승계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규정한 권리·의무를 재산상의 것으로 한정하여 해석하는 것이 현저하게 불합리하거나 불공정한 것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위 규정의 위와 같은 해석은 헌법 제11조의 평등의 원칙이나, 헌법 제10조 전단에서 규정한 인간의 존엄성, 같은 조 후단의 행복추구권, 헌법 제32조의 근로의 권리, 헌법 제15조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헌법에 위배된다고 할 수 없다.

다. 진흥원의 의견

(1)청구인들은 이 사건 법률조항에 고용관계 승계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 것을 다투고 있으므로 이는 진정입법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이라 할 것인데, 그러한 승계규정을 두어야 할 입법의무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이 사건 심판청구는 부적법하다.

(2)이 사건 법률조항이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점에 관하여는 법원의 위헌제청신청 기각이유와 대체로 같다.

3. 적법요건에 대한 판단

법 제정의 연혁과 취지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법률조항에는 식품연구원과 의료연구원이라는 두 조직을 진흥원으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재산관계만 승계하는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그 반면으로 근로관계는 적어도 당연히 승계시키지 않겠다는 입법자의 의지가 소극적으로 천명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이 근로관계의 당연승계를 소극적으로 배제한 것은 청구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불충분한 입법적 규율이 되는 것이고, 청구인들은 이것을 다투고 있으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 자체가 지닌 위헌성을 다투는 것으로 보아야지, 진정입법부작위에 대한 청구로 보아서는 아니된다. 따라서 진흥원의 본안전 항변은 이유없다.

4. 본안에 대한 판단

가. 진흥원의 법적 성격과 근로기준법의 적용관계

(1)진흥원은 기존의 식품연구원과 의료연구원을 통·폐합하기 위하여 신설되었다.

관련 국회회의록에 의하면, 정부의 민간보조연구기관이 중복 운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있었고, 효율성 측면에서 두 연구기관을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되, 단순한 물리적 변화가 아니라 체제의 변화를 통해 산업지원 기능을 제고할 수 있도록 인적 구성의 재편이 있어야 할 것이라는 점이 통·폐합의 취지였음을 알 수 있다.

(2)진흥원은 법인으로서 법에 규정한 것을 제외하고는 민법 중 재단법인에 관한 규정이 준용된다(법 제2조, 제17조). 진흥원의 재원은 정부 또는 정부외의 자의 출연금 기타 수입금에 의하여 설립·운영되며(법 제11조), 정부는 진흥원의 사업과 운영에 소요되는 경비를 출연금이라는 이름으로 예산에서 교부한다(제12조). 다른 정부출연기관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국가의 감독을 받는다. 사업목적의 법정(제6조), 정관 변경시의 인가(제5조 제2항), 원장 선임의 승인(제9조 제3항), 사업계획서·예산서·결산서의 승인(제14조) 같은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진흥원 임·직원에 대한 공무원 의제규정은 없다.

요컨대, 진흥원은 정부출연기관으로서 그 업무에 공공성이 있고, 정부위탁사업을 수행하기도 하지만, 법적으로는 국가와는 독립된 별개의 법인이어서, 진흥원의 임·직원은 사인(私人)으로서의 지위를 갖는다.

(3)근로기준법은 상시 5인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되며(제10조), 국가, 특별시·광역시 기타 이에 준하는 것에 대하여도 적용된다(제11조). 근로기준법에서 “사용자”라 함은 사업주 또는 사업경영담당자 기타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위하는 자를 말한다(제15조).

그러므로 식품연구원, 의료연구원, 진흥원은 근로기준법상의 사용자이고, 이들과 그 직원간에는 근로기준법이 적용된다.

나. 근로관계의 존속보호와 헌법

(1) 헌법상의 경제질서와 노동질서

우리 헌법상의 경제질서는 사유재산 및 사적 자치를 보장하고,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는 자유시장경제질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사회복지·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하

여 국가적 규제와 조정을 용인하는 사회국가원리를 수용하고 있다(헌재 1996. 4. 25. 92헌바47 , 판례집 8-1, 370, 380; 헌재 1998. 5. 28. 96헌가4 등, 판례집 10-1, 522, 533-534).

노동질서는 경제질서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노동시장 및 노동관계에 관하여 헌법제32조, 제33조에서 근로의 권리와 근로3권을 보장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제15조에서 직업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이 이와 같이 근로3권을 보장하는 취지는 원칙적으로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하는 시장경제의 원리를 경제의 기본질서로 채택하면서, 노동관계 당사자가 상반된 이해관계로 말미암아 계급적 대립·적대의 관계로 나아가지 않고 활동과정에서 서로 기능을 나누어 가진 대등한 교섭주체의 관계로 발전하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때로는 대립·항쟁하고, 때로는 교섭·타협의 조정과정을 거쳐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게 함으로써, 결국에 있어서 근로자의 이익과 지위의 향상을 도모하는 사회복지국가 건설의 과제를 달성하고자 함에 있다”고 밝힌바 있다(헌재 1993. 3. 11. 92헌바33 , 판례집 5-1, 29, 40).

이와 같은 우리 헌법상의 경제질서와 노동질서를 기초로 하여, 이 사건과 같이 근로관계의 존속보호가 헌법적으로 문제되는 경우 보다 구체적인 준거가 될 수 있는 헌법규정은 우선적으로 제15조(직업의 자유)와 제32조 제1항(근로의 권리)을 들 수 있다.

(2) 직업의 자유와 근로관계의 존속보호

(가)헌법 제15조가 보장하는 직업선택의 자유는 직업“선택”의 자유만이 아니라 직업과 관련된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직업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또한 직업의 자유는 독립적 형태의 직업활동 뿐만 아니라 고용된 형태의 종속적인 직업활동도 보장한다. 따라서 직업선택의 자유는 직장선택의 자유를 포함한다. 헌법재판소도 일찍이 직업선택의 자유에 직장선택의 자유가 포함된다고 설시한바 있다(헌재 1989. 11. 20. 89헌가102 , 판례집 1, 329, 336). 직장선택의 자유는 특히 근로자들에게 큰 의미를 지닌다.

(나)이러한 직장선택의 자유는 개인이 그 선택한 직업분야에서 구체적인 취업의 기회를 가지거나, 이미 형성된 근로관계를 계속 유지하거나 포기하는 데에 있어 국가의 방해를 받지 않는 자유로운 선택·결정을 보호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그러나 이 기본권은 원하는 직장을 제공하여 줄 것을 청구하거나 한번 선택한 직장의 존속보호를 청구할 권리를 보장하지 않으며, 또한 사용자의 처분에 따른 직장 상실로부터 직접 보호하여 줄 것을 청구할 수도 없다. 다만 국가는 이 기본권에서 나오는 객관적 보호의무, 즉 사용자에 의한 해고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할 의무를 질 뿐이다.

그런데 직장유지에 관한 근로자의 이익은, 자신의 계획에 부합하는 근로자를 채용하고 그 숫자 또한 자신의 기준에 따라 제한할 수 있는 사용자의 이익 -이 또한 직업의 자유, 경제활동의 자유에 의하여 보장되는 것인데-과 상충한다. 입법자는 이와 같이 충돌하는 기본권적 지위나 법익을 형량하고 조정하여야 한다. 이러한 형량과 조정은 일차적으로 입법자의 몫으로서, 입법자는 여기에서 광범위한 입법형성권을 가진다. 갈등관계를 야기하는 경제적, 사회적 조건에 대한 평가, 그에 대한 입법이 장차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한 예측은 정치적 책임에 맡겨야 한다. 합리적 형량이라고 도저히 볼 수 없을 정도로 근로자나 사용자 중 어느 일방의 기본권지

위가 다른 상대방에 비하여 현저히 낮게 평가된 경우에만 직업의 자유의 보호의무 위반을 인정

할 수 있을 것이다.

(3) 근로의 권리와 근로관계의 존속보호

(가)헌법 제32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라고 규정하여 근로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근로의 권리의 보장은 생활의 기본적인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생활수단을 확보해 주며, 나아가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과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해 주는 의의를 지닌다.

근로의 권리는 사회적 기본권으로서, 국가에 대하여 직접 일자리(직장)를 청구하거나 일자리에 갈음하는 생계비의 지급청구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증진을 위한 사회적·경제적 정책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에 그친다. 근로의 권리를 직접적인 일자리 청구권으로 이해하는 것은 사회주의적 통제경제를 배제하고, 사기업 주체의 경제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우리 헌법의 경제질서 내지 기본권규정들과 조화될 수 없다.

(나)마찬가지 이유로 근로의 권리로부터 국가에 대한 직접적인 직장존속청구권을 도출할 수도 없다. 단지 위에서 본 직업의 자유에서 도출되는 보호의무와 마찬가지로 사용자의 처분에 따른 직장 상실에 대하여 최소한의 보호를 제공하여야 할 의무를 국가에 지우는 것으로 볼 수는 있을 것이나, 이 경우에도 입법자가 그 보호의무를 전혀 이행하지 않거나 사용자와 근로자의 상충하는 기본권적 지위나 이익을 현저히 부적절하게 형량한 경우에만 위헌 여부의 문제가 생길 것이다.

(4) 소 결

그 밖에 사회국가원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예정하고 있는 헌법 제119조 제2항, 헌법 제10조의 기본권보호의무로부터도 국가에 대한 직접적인 직장존속청구권을 도출할 수 없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헌법 제15조의 직업의 자유 또는 헌법 제32조의 근로의 권리, 사회국가원리 등에 근거하여 실업방지 및 부당한 해고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여야 할 국가의 의무를 도출할 수는 있을 것이나, 국가에 대한 직접적인 직장존속보장청구권을 근로자에게 인정할 헌법상의 근거는 없다.

한편 근로관계의 존속여부에 관한 사용자의 결정권 또한 헌법 제15조의 직업의 자유, 헌법 제10조가 보장하는 행복추구권에서 도출되는 경제활동의 자유, 헌법 제23조의 재산권에 의하여 보장된다.

근로자와 사용자간의 상충하는 헌법적 이익을 조화롭게 형량하여 보호하는 것은 입법자의 몫으로서 여기에서는 광범위한 형성권이 인정되어야 하므로, 그 현저한 일탈의 잘못이 있는 경우에만 헌법위반이라 확인할 수 있다.

다. 이 사건 법률조항의 위헌 여부

(1)식품연구원과 의료연구원을 통폐합하고 진흥원을 설립함에 있어, 입법자는 이 사건 법률조

항을 통하여 ‘기존 연구원의 물적 조직은 그대로 이전하면서 인적 조직은 새로이 구성하여도

좋은 방식’을 택하였다.

입법자가 국가보조를 받는 연구기관의 운영이 방만하고 비능률적이어서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공익에 반한다고 판단할 때에 선택할 수 있는 구조개선 방안으로는, 기존 연구원을 해산하고 이와는 절연된 새로운 기관을 설립하여 물적, 인적 조직을 완전히 새로이 갖추는 방식, 기존 연구원의 물적 조직은 그대로 이전하면서 인적 조직의 전부 또는 일부를 새로이 구성하는 방식, 새로 설립되는 기관이 기존 연구원의 물적, 인적 조직을 포괄적으로 승계하면서 달리 업무의 효율성을 꾀하는 방식 등을 상정할 수 있다. 이 사건에서 입법자는 그 중 두 번째의 방식을 취하였다.

입법자가 이와 같이 두 번째의 방식을 취한 것 자체에, 즉 물적 조직은 이전하면서 근로관계는 승계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취한 것 자체에 어떤 헌법적 문제점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현재의 상황 및 조건에 대한 평가, 그에 대한 정책이 장차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한 예측, 다양하게 교착하는 이해관계를 반영하여 이를 형량, 조정하는 것은 그에 적합한 민주적 과정을 보장하고 있으며 아울러 민주적 책임을 맡고 있는 입법자에게 유보되어야 하고, 이를 함부로 사법적 잣대로 대체하여서는 아니된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기존 연구원의 운영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공익에 반하는지 여부, 반한다고 판단하였을 때에 위 방식 중 어느 방식이 가장 적합하고, 효율적일 것인지에 대한 입법자의 판단은 그것이 현저히 자의적이고 불합리한 것이 아닌 한 존중되어야 한다.

입법자는 기존 두 연구원의 통합이 효율성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본 다음, 식품부문과 의료부문을 단순히 물리적으로 통합하는 데에 그친 것이 아니라, 기존 연구원의 정책연구기능을 보건사회연구원으로 이관하고, 진흥원은 전문적인 보건산업지원 기능을 수행하도록 체제의 변화를 꾀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인적 구성의 재편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입법자의 판단과 정책방향에 비추어 위 두 번째의 방식을 취한 것에 헌법적으로 관여할 만한 불합리나 자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2)위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 헌법상 국가에 대한 직접적인 직장존속보장청구권을 인정할 근거는 없고, 따라서 근로관계의 당연승계를 보장하는 입법을 반드시 하여야 할 헌법상의 의무를 인정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조항에서 근로관계의 당연승계를 보장하지 않았다는 점만으로는 위헌이라고 할 수 없고, 그렇다면 이 사건 법률조항을 두고 종전의 근로관계가 당연승계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하는 한 위헌이라는 청구인들의 주장은 이유없다.

다만 우리 헌법상 국가(입법자)는 근로관계의 존속보호를 위하여 최소한의 보호를 제공하여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조항이 그러한 최소한의 보호의무마저 저버린 것이 아닌지 문제될 수 있다.

그러나 국가가 근로관계의 존속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취하고 있는지의 여부는 이 사건 법률조항만에 의할 것이 아니라, 노사관계에 관한 법체계 전반을 통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인바, 현행법제상 근로관계의 존속보호를 위하여 국가가 마련하고 있는 보호조치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고, 이로써 -청구인들을 포함하여- 근로자들에게 최소한의 보호조치는 제공되고 있다 할 것이다.

①집단적 근로관계법에 의한 사적 자치의 보충

헌법 제33조는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있다.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통하여 근로자로 하여금 사용자와 대등한 지위에서 근로조건을 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근로자들은 노동조합을 설립하여, 사용자와의 관계에서 근로관계의 승계를 관철하기 위한 여러 행동들을 헌법 제33조의 보호아래 할 수 있다.

이 사건의 경우에도 식품연구원과 의료연구원의 직원들은 헌법 제33조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로서 노동기본권을 보유하고 있었으므로, 통폐합 계획의 백지화 내지 축소, 고용승계의 규모와 대상자 선정, 비승계자에 대한 대상(代償)조치 등 고용승계를 위하여 사용자를 상대로 교섭을 벌이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처지에 있었다.

한편 근로자참여및협력증진에관한법률은 ‘해고 등 고용조정의 일반원칙’에 관한 사항을 협의사항으로(동법 제19조 제1항), ‘합병, 휴·폐업등 경영상 중요한 결정사항’, ‘증원 또는 감원 등 인력수급계획’을 보고사항으로(동법 제21조 제1항, 동법시행규칙 제6조) 규정함으로써 노사협의제도를 통해서도 근로관계의 존속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② 법원을 통한 근로관계의 보호

법원은 재판작용을 통하여 근로관계의 존속을 보호할 수 있다. 이 사건 법률조항은 당연승계를 규정하지 않았을 뿐 고용승계를 당연히 배제하고 있지도 않으므로, 법원은 여러 가지 자료와 사정을 종합하여 고용승계 여부에 관한 당사자의 의사와 태도를 합리적으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근로관계 존속보호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법원은 -물론 국고보조기관의 구조조정이라는 공익상의 요청과 조화하는 가운데- 직업의 자유 내지 근로의 권리라는 기본권의 의미와 작용을 충분히 고려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개별사안에서 근로관계 존속보호의 정도가 어디까지 미친다고 볼 것인지는 법원이 결정할 사항이다.

③ 고용보험제도 등

고용보험제도는 실업급여의 지급뿐만 아니라 고용안정사업, 직업능력개발사업을 내용으로 함으로써 실업중인 근로자의 생활안정이라는 소극적인 차원을 벗어나 고용증진을 위한 헌법상의 근로의 권리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입법이다. 고용보험제도는 1차적으로 취업중인 근로자의 고용안정을 촉진하며, 부득이 실업이 되더라도 2차적으로 실업급여를 지급하고 재취업을 촉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우리나라 고용보험법은 1993. 12. 제정되어 1995. 7. 1.부터 시행되고 있으며, 여러차례의 개정을 거쳐 실업금여의 수혜범위를 확대하는 등 개선·보완되어 왔다. 고용보험법의 내용은 크게 고용안정사업(고용조정의 지원, 지역고용의 촉진, 고령자 등의 고용촉진, 건설근로자 등의 고용안정 지원, 고용촉진시설에 대한 지원, 고용정보의 제공 및 직업지도 등), 직업능력개발사업(사업주의 직업능력개발훈련에 대한 비용지원, 근로자의 직업능력개발훈련에 대한 비용지원, 직업능력개발훈련시설에 대한 지원 등), 실업급여의 지급으로 나눌 수 있다.

고용보험제도 외에도 고용안정, 취업기회의 제공, 직업능력의 개발을 위하여 고용정책기본법, 직업안정법, 근로자직업훈련촉진법 등의 부수적 법제가 마련, 시행되고 있다.

(3)청구인들은 금융감독기구의설치등에관한법률 등 근로관계의 승계를 규정하고 있는 다른 법률조항에 비교하거나, 합병, 영업양도로 근로관계가 승계되는 경우에 비교하거나, 이 사건 법률조항은 기존 연구원 소속 직원들만을 합리적 이유없이 차별함으로써 평등원칙에 위반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법은 진흥원 설립이라는 개별적 사안을 규율하기 위하여 제정된 법이므로 특수법인 등에 관한 다른 법률들과 평면적으로 비교할 수 없다. 기존 기관의 통폐합이라는 유사한 목적을 띠고 있다 하더라도, 구체적 통폐합의 취지와 형태, 방식은 무수한 개별 요소들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그 특수성에 즉응하여 입법자는 각기 상이한 규율을 할 수 있고 여기에 합리적 이유가 있는 한 평등위반이라고는 할 수 없다. 고용승계를 명시한 다른 법률들과 달리 이 사건 법률조항이 ‘기존 연구원의 물적 조직은 그대로 이전하면서 인적 조직은 새로이 구성할 수 있는 방식’을 취하였다 하더라도 여기에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합리적 이유가 있으므로 평등위반이라 할 수 없다.

또한 이 사건 통폐합은 이 사건 법률조항 및 보건복지부 장관의 승인을 통하여 기존 연구원을 해산하고 그 권리·의무를 진흥원에 승계시키는 것으로서, 합병이나 영업양도와 같이 법률행위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과 다르므로 제반 입법정책적 고려에 의하여 그러한 경우와 달리 정할 수 있다 할 것이다.

(4)그러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은 헌법 제11조의 평등원칙에 위배되거나 헌법 제15조의 직업의 자유, 헌법 제32조의 근로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볼 수 없고, 달리 헌법에 위반되는 점을 찾을 수 없다.

5. 결 론

이상과 같은 이유로 이 사건 법률조항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하므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이 결정은 재판관 윤영철, 재판관 권 성, 재판관 주선회의 아래 6.과 같은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나머지 관여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에 의한 것이다.

6.재판관 윤영철, 재판관 권 성, 재판관 주선회의 반대의견

우리는 다수의견과 달리 이 사건 법률조항은 그 실질에 있어 진흥원의 손을 빌려 청구인들을 해고하는 것이면서도 아무런 절차적 보호장치를 마련하지 않음으로써 근로관계의 존속보호를 위한 국가의 최소한의 의무마저 저버린 것일 뿐만 아니라, 일반근로자들에 비하여 청구인들과 같이 ‘특정법률에 의해 그 사업장이 통폐합 당함으로 말미암아 실질적으로 해고된 근로자들’을 합리적 이유없이 차별하는 것이어서 헌법에 위반된다고 보므로 아래와 같이 반대의견을 개진한다.

(1)우리 헌법이 자유시장경제질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사회국가원리를 수용하고 있음은 다수의견이 지적한 바와 같다. 나아가 우리 헌법은 노동질서에 관한 헌법규정을 두고 있으며[헌법 제32조(근로의 권리, 최저임금제, 인간의 존엄성에 맞는 근로조건 등), 제33조(노동3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헌법 제34조) 등의 사회적 기본권을 명문으로 인정하고 있고, 적정한 소득분배, 경제의 민주화를 위한 규제와 조정을 예정하고 있다(헌법 제119조 제2항). 근로관계의 존

속보호를 위한 입법자의 최소한의 보호의무가 어디까지인지를 설정함에 있어서는 이러한 우리 헌법의 태도를 충분히 고려하여야 한다.

(2)다수의견에서 들고 있는 것과 같은 정도의 보호장치만으로는 특정법률에 의해 또는 법률에 근거를 둔 조치로 해산, 통폐합, 구조조정되는 등으로 그 운명이 좌우되는 사업장의 근로자들의 근로관계는 실질적으로 아무런 존속보호없이 입법자의 처분에 맡겨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가)법의 제정이유, 법 부칙 제3조 및 제4조의 내용, 진흥원 설립의 경과, 통폐합을 전후하여 물적·인적 조직의 기본적 동일성이 유지되고 있는 점(기존의 두 연구원의 재산, 권리·의무는 완전승계되었고, 진흥원은 그 설립 후 인사위원회를 열어 선정기준을 설정하고 그에 따라 기존 연구원의 직원들 중의 대다수를 다시 ‘채용’하면서 일부만을 선별적으로 ‘채용’에서 배제하였다. 한편, 진흥원이 산업지원 기능을 중점으로 둠으로써 연구·조사 기능이 중심이었던 기존 연구원에 비하여 어느 정도 달라진 것은 부인할 수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연구원의 업무의 상당부분은 진흥원의 업무로 이관되어 있다)을 생각할 때 이 사건 통폐합의 실질은 ‘기존 연구원을 절대적으로 소멸시키고, 완전히 새로운 진흥원을 설립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연구원을 진흥원이 합병·승계하되, 인적 조직을 감축시키는 것’에 있고, 이 과정에서 상당수 근로자들의 근로관계가 종료된 것은 그 실질에 있어 근로기준법 제31조 소정의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이하 ‘정리해고’라고 약칭 한다)에 다름아니다. 그것도 ‘제3자(진흥원)의 손을 빌린 입법적 정리해고’라고 요약할 수 있다.

(나)일반적으로 경기후퇴 등으로 인한 수요의 감소, 판매부진, 주문감소, 수지불균형 등과 같은 경영상의 사유에 대하여 기업주는 작업공정의 변경, 새로운 작업방법의 도입, 합리화조치, 경영의 축소, 휴업, 사업부서의 폐지, 하도급회사에 대한 업무의 위탁 등 경영내적 조치를 강구하게 된다. 이와 같은 경영상의 사유에 대한 경영내적 조치를 기업주에게 보장하지 않는다면 시장경제체제하에서 기업의 경영은 존립할 수 없다. 따라서 이와 같은 경영내적 조치에 의하여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고용인원감축 내지 정리해고는 원칙적으로 감수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근로기준법 제31조도 사용자의 경영상의 조직권으로서 해고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기본적으로 긍정하고 있다. 다만, 경영상의 이유에 의한 해고가 근로자측의 해고원인이나 귀책사유없이 행해진다는 점에서 고용인원감축의 효과를 가져오는 사용자의 경영조직상의 결정이 자의적이거나 남용되어서는 아니되기 때문에 그 정당성 요건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즉, ①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하고, ② 해고회피 노력을 다하여야 하며, ③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에 따라 해고대상자를 선정하여야 하고, ④ 해고회피 노력과 해고대상자 선발기준에 관하여 근로자대표와 성실하게 협의하여야 하며, ⑤ 일정규모 이상의 인원을 해고하고자 할 때에는 노동부장관에게 신고하여야 하는 것이다(근로기준법 제31조).

한편, 영업양도의 경우를 중심으로 기업의 조직변경에 있어 근로관계의 승계를 보장하는 입법이 유럽의 각국에서 속속 명문화된 것은 기업조직의 변경이 노동법상 엄격한 제한이 따르는 해고제한법리를 회피하기 위한 용이한 수단이 되어서는 아니된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 그러한 입법이 없지만, 영업양도의 경우 법원은 영업양도의 당사자가 근로관계의 승계를 배제하는 특약을 하더라도 거기에 해고제한법리를 적용하여 정당한 이유가 없으

면 그 특약을 무효화하고 있다(대법원 2002. 3. 29. 선고 2000두8455 판결; 대법원 2002. 7.

27. 선고 99두2680 판결; 대법원 1994. 6. 28. 선고 93다33173 판결).

이와 같이 일반기업의 근로자일 경우 근로기준법에 의한 정리해고 제한법리를 통하여 혹은 합병 또는 영업양도에 관한 판례에 의하여 일정한 실체적, 절차적 요건을 갖추지 않은 부당한 근로관계의 종료(직장상실)로부터 보호되고, 이를 위하여 중앙노동위원회, 법원이라는 구제기관의 도움을 받게 된다.

(다) 한편, 공무원의 경우 헌법 제7조에서 공무원의 신분을 법률로 보장하고 있으며, 국가공무원법은 의사에 반하는 퇴직, 면직, 해직 등으로부터 공무원을 보호하는 광범위한 신분보장 장치들을 두고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직제와 정원의 개폐 또는 예산의 감소 등에 의하여 폐직 또는 감원이 되었을 때의 직권면직에 관한 국가공무원법 규정이다. 동법 제70조 제3항 내지 제5항에 의하면, 이러한 사유로 인하여 면직시킬 때에는 면직기준을 정하여야 하고, 면직기준을 정하거나 면직대상자를 결정함에 있어서 심사위원회를 구성하여 그 심의·의결을 반드시 거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직권면직처분에 대하여는 소청과 행정소송이라는 구제절차가 마련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요컨대, 폐직·감원으로 인한 직권면직을 하더라도 그것이 자의적이 아니라 공정하게 이루어진 것인지를 심사하는 절차적 규율이 있으며, 불복하는 자에게 사법적 구제절차가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라) 다수의견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기존 연구원의 운영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공익에 반하는지 여부, 반한다고 판단하였을 때에 그 개선책으로서 어느 방식이 가장 적합하고, 효율적일 것인지에 관하여 입법자에게 광범위한 재량권이 있음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기존의 두 연구원을 통폐합하여 진흥원을 설립하되, 물적 조직은 승계시키고, 인적 조직은 감원한다는 방침을 택하고 이를 입법을 통하여 실현하는 것 자체는 입법자에게 유보된 권한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일정한 감원이 불가피하다고 보더라도 그 감원대상자의 선발기준의 정립 및 구체적 대상자의 선정에 있어 자의성을 배제하고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절차, 그리고 감원대상이 됨으로써 직장을 상실하게 된 근로자들에게 불복과 구제의 절차를 보장하여야 비로소 근로관계의 존속보호를 위한 국가의 최소한의 보호의무를 이행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 법률조항은 기존 연구원의 직원들을 실질적으로는 제3자인 진흥원의 손을 빌려 정리해고하면서도 그러한 최소한의 절차적 규율마저 생략함으로써 근로자들을 헌법보호의 밖으로 방치하고 있다. 그리하여 어느 정도 감원할 것인지, 어떤 기준으로 어떤 근로자를 감원할 것인지, 이에 관하여 근로자 대표들과 협의할 것인지, 감원대상이 된 근로자에게 어떤 대상(代償)조치를 취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관하여 전적으로 진흥원은 임의에 따라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진흥원의 결정에 대하여는 -그것이 아무리 불공평하고 자의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근로자에게 아무런 불복과 구제의 길이 열려져 있지 않다. 이 사건 당해사건에 관한 법원의 판단과 같이, 청구인들과 진흥원간에는 근로관계의 존재가 애초에 부인되므로 진흥원이 이른바 ‘채용’을 거부하더라도 ‘해고’가 아니게 되고, 따라서 해고제한법리의 일부라도 적용될 여지가 없는 것이다.

공무원이나 일반기업의 근로자들에게 조직변경이나 정리해고로부터 그 근로관계(직장존속)를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가 국가공무원법, 근로기준법이나 법원의 판례에 의하여 ‘일반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것에 비하여, 정부출연기관과 같이 특정법률에 의하여 설립, 해산되는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들의 경우 근로관계 존속 여부는 ‘오로지 그 특정법률에서 어떤 규정을 두는지에 전적으로 달려 있게 되는데’, 한편으로 입법자로 하여금 반드시 근로관계를 승계시키는 조항을 두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입법자가 위와 같은 최소한의 절차적 규율마저 두지 않을 경우 해당 근로자로서는 생존권과도 연결되는 갑작스런 직장의 상실이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상황에 대하여 전혀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된다. 국가가 고용증진을 위한 사회적·경제적 정책을 강구하기는커녕, 오히려 법률에 의거 실질적으로 정리해고를 하면서도 노동법상의 해고제한법리의 최소한마저 회피하고자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사건 법률조항이다.

(3) 다수의견에서 거론하고 있는 보호조치들이 이 사건과 같이 입법에 의한 정리해고를 당하는 근로자들에게 제공하는 보호의 효력은 실제로 매우 미약하다.

첫째, 이 사건과 같은 경우 노동조합이나 근로자대표를 통한 교섭의 형식적 상대방은 사용자이지만, 실제로 통폐합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것은 국가여서, 집단적 근로관계법을 통한 교섭력의 행사에는 한계가 있다. 이 사건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다시피, 정부가 짜놓은 구조조정 계획은 법률의 힘으로 관철되고, 이 과정에서 사용자는 통폐합의 대상일 뿐, 근로자와 협상을 주체적으로 이끌어 가는 지위에 있지 않았다. 정부는 통폐합 계획을 세웠고, 정부제출입법으로 법을 제정하였으며, 법 부칙에 규정된 진흥원의 정관 인가, 권리·의무의 승계신청 승인, 진흥원장 선임의 승인 등을 통하여 통폐합을 실현시켜 나갔다. 근로자들이 설립도 되지 않은 진흥원을 상대로 교섭력을 행사할 수도 없었다. 식품연구원은 해산직전 이사회를 열어 ‘새로 발족되는 진흥원이 해산되는 식품연구원의 직원을 최대한 흡수할 것을 제안’하였는바, 실제 기존 연구원의 근로자들이 할 수 있었던 일이란 이런 희망을 피력하는 외에 달리 없었을 것이다.

둘째, 법원을 통한 보호작용은 한계가 있다. 이 사건 법률조항과 같이 근로관계의 당연승계를 명시하지 않은 경우, 법원으로서는 당사자간의 합의를 인정할 만한 자료가 없는 한 근로관계의 승계를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반대로 법원에서 이 사건과 같이 법률에 의해 직접 통폐합이 이루어지는 경우에도 합병이나 영업양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근로관계의 당연승계를 인정하고 승계배제에 정당한 사유를 요구한다면 당연승계 조항을 두지 않은 입법자의 의도를 무시하는 셈이 된다.

셋째, 고용보험제도 등은 어디까지나 간접적이고 주변적인 제도일 뿐이다.

요컨대 다수의견에서 합헌의 근거로 들고 있는 국가의 보호장치라는 것들은 기실 공허하거나 대단히 미약한 것에 불과하여, 이것만으로 최소한이나마 국가의 보호의무를 다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4) 결론적으로 이 사건 법률조항은 두 가지 관점에서 헌법에 위반된다고 보아야 한다. 첫째, 청구인들과 같이 ‘특정법률에 의해 그 사업장이 통폐합 당함으로 말미암아 실질적으로 정리해고된 근로자들’에 대하여 해고대상자의 선발기준의 정립 및 구체적 대상자의 선정에 있어 자의성을 배제하고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절차, 그리고 해고대상이 됨으로써 직장을 상실하게

된 근로자들에게 불복과 구제의 절차를 전혀 보장하지 않음으로써 근로의 권리에서 도출되는,

근로관계의 존속보호를 위한 국가의 최소한의 보호의무조차 저버린 것이고, 둘째, 정리해고에 관하여 일반근로자들에게는 근로기준법에 의한 엄격한 보호조치를 제공하면서, 청구인들과 같이 ‘특정법률에 의해 그 사업장이 통폐합 당함으로 말미암아 실질적으로 정리해고된 근로자들’에 대하여는 그에 현저히 미치지 못하는 최소한의 보호조치마저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일반근로자들에 비하여 합리적 이유없이 이들을 차별하고 있다. 요컨대 이 사건 법률조항은 헌법 제11조헌법 제32조에 위반된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우리는 이 사건 법률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생각하므로 반대의견을 개진하는 것이다.

재판관 윤영철(재판장) 한대현 하경철 김영일 권 성 김효종

김경일(주심) 송인준 주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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