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beta
텍스트 조절
arrow
arrow
최희수, "민법 제3조 등 위헌소원 ", 결정해설집 7집, 헌법재판소, 2009, p.295
[결정해설 (결정해설집7집)]
본문

- 사산태아의 손해배상청구권 사건 -

(헌재 2008. 7. 31. 2004헌바81, 판례집 20-2상, 91)

최 희 수*1)

1. 민법 제3조에 대해 재판의 전제성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

2. 이 사건 심판청구가 법률해석의 위헌성을 다투는 것으로서 부적법한 것인지 여부

3. 태아가 생명권의 주체가 되는지 여부

4.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 위반 여부 판단에 있어서의 심사기준(과소보호금지원칙)

5. 민법 제3조제762조(이하에서 이를 “이 사건 법률조항들”이라 한다)가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는데 미흡하여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를 위반하고 있는지 여부(소극)

제3조(권리능력의 존속기간) 사람은 생존한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

제762조(손해배상청구권에 있어서의 태아의 지위) 태아는 손해배상의 청구권에 관하여는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

청구인 신○호와 같은 정○미는 부부이고 청구인 신○재와 같은 신○창은 이들의 자녀이다. 청구인 정○미는 셋째 아이를 임신한 후 2002. 5. 8.경부터 당해사건의 피고 김○수가 근무하는 ○○산부인과의원에서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았다. 청구인 정○미는 2002. 7. 22.(임신 16주 2일) 위 의원에서 기형아 검사를 위한 트리플마커 검사를 받았는데 그 결과 에드워드 증후군의 위험도가 1:100 이상으로 증가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이에 위 김○수는 태아가 기형아인지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양수검사가 필요하다고 권유하였고, 청구인 정○미의 동의 아래 2002. 7. 25. 양수천자검사를 실시하였다.

그런데 위 김○수1)는 위 검사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 및 유산의 위험성에 관하여 청구인 정○미에게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아 의사로서의 설명의무를 위반하였을 뿐만 아니라, 청구인 정○미가 양수검사에 따른 합병증으로 나타나는 감염 증상 및 조기양막파수를 일으키게 되어 다시 내원하여 감기몸살 및 복통을 호소하였음에도 필요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다. 청구인 정○미는 2002. 8. 3. ○병원에서 초음파검사를 받았고, 그 결과 양막이 터져 양수가 거의 없음이 확인되었으며 그 다음날(임신 19주) 태아는 태내에서 사망하였다.

청구인들은 태아도 권리능력이 인정되어 손해배상청구권을 가질 수 있고 태아가 사산할 경우 태아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정상적으로 태어났다면 친권자가 되었을 부모에게 상속된다고 주장하며 인천지방법원에 위 김○수를 피고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으나, 이러한 내용의 청구(당해사건의 소송물 중 태아의 손해배상청구권 상속을 전제로 한 부분)는 제1심에서는 물론 항소심에서도 기각되었다. 이에 청구인들은 2004. 5. 27. 대법원에 상고하여 상고심 계속중 민법 제3조제762조에 대하여 위헌법률심판 제청신청을 하였으나, 대법원은 2004. 9. 3. 상고를 기각함과 동시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신청도 기각하였고, 위 위헌법률심판 제청신청 기각결정은 2004. 9. 10. 청

구인들에게 통지되었다.

한편 청구인 신○호는 2004. 9. 15. 헌법재판소에 국선대리인 선임신청을 하였으나 2004. 10. 12. 기각되자,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한 후 2004. 10. 28. 위 조항들이 태아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면서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출생하지 않은 태아라고 하더라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하며, 따라서 태아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는 법적으로 보호를 받아야 한다. 또한 태아는 헌법 제10조 또는 제37조 제1항에 근거하는 생명권의 주체인데, 이 사건 법률조항들은 태아의 권리능력 자체를 부인함으로써 태아가 인간으로서 향유할 수 있는 기본권을 일체 부인하고 있으므로 헌법에 위반된다.

태아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고, 각국의 민법은 태아가 출생한 경우에 그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우리 민법도 이른바 개별적 보호주의를 취하여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의 청구(민법 제762조) 등에서 태아도 이미 출생한 것으로 간주하여 그의 권리능력을 예외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태아의 권리능력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여부는 각국의 입법정책에 따라 달리 규정되고 있는 것으로서, 우리 민법이 심판대상조항과 같이 개별적 보호주의를 취하고 있다고 하여 헌법 제10조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 심판대상조항에 따라 태아의 권리와 신생아의 권리가 차별되고 결과적으로 손해배상에 있어서 태아의 존재가치가 사람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들어 자의적인 차별을 금지한 헌법 제11조나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헌

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않는다는 헌법 제37조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

(1) 청구인 신○재, 신○창은 사산된 태아의 2순위 상속인인 태아의 형제들로서 가사 사산된 태아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상속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사건 각 심판청구 중 청구인 신○재, 신○창의 청구부분은 재판의 전제성이 없어 부적법하다.

(2) 청구인 신○호, 정○미의 각 청구에 관하여 보면, 민법 제3조, 제762조는 태아의 권리능력을 직접적으로 부인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위 조항들의 해석에 의해서 비로소 사람의 시기와 종기 및 손해배상에 있어서 보호되는 태아의 범위가 확정되는 것이므로 위 청구인들의 청구는 ‘법률조항’ 자체의 위헌성을 다투는 것이 아니라 ‘법률의 해석’의 위헌성을 다투는 것으로서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3) 가사 청구인 신○호, 정○미의 각 청구가 적법하다고 하더라도 위 청구인들의 청구는 이유 없다. 헌법 제10조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주체에는 태아도 포함되므로, 국가는 태아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이에 따른 우리의 현행법 규정으로는 형법상 낙태죄의 규정과 모자보건법상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모성보호책임규정,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규정 등이 있고, 이러한 규정들은 국가가 태아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기 위한 전제로서 태아의 생명권을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산된 태아의 손해배상청구권의 문제는 태아의 생명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측면이 아니고 일단 생명권이 침해된 이후에 사후적으로 금전적인 보상을 어떠한 법리를 통하여 인정하여 줄 것인가 하는 방법을 정하는 문제에 불과하고 이러한 방법을 정하는 데 있어서는 입법부의 광범위한 재량이 인정된다고 할 것이다. 또한 사산된 태아의 권리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태아의 부모는 모체의 손상 및 정신적 피해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따라서 민법 제3조, 제762조는 입법재량의 한계를

넘어 태아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였다고 볼 수 없다.

1.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이 세상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엄한 인간 존재의 근원이다. 이러한 생명에 대한 권리, 즉 생명권은 비록 헌법에 명문의 규정이 없다 하더라도 인간의 생존본능과 존재목적에 바탕을 둔 선험적이고 자연법적인 권리로서 헌법에 규정된 모든 기본권의 전제로서 기능하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모든 인간은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가 되며, 형성 중의 생명인 태아에게도 생명에 대한 권리가 인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태아도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가 되며, 국가는 헌법 제10조에 따라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2. 국가가 소극적 방어권으로서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경우 그 제한은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국가안전보장ㆍ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고,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는 없으며 그 형식은 법률에 의하여야 하고 그 침해범위도 필요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 그러나 국가가 적극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반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담하는 경우에는 설사 그 보호의 정도가 국민이 바라는 이상적인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여 언제나 헌법에 위반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의 이행은 입법자의 입법을 통하여 비로소 구체화되는 것이고, 국가가 그 보호의무를 어떻게 어느 정도로 이행할 것인지는 입법자가 제반사정을 고려하여 입법정책적으로 판단하여야 하는 입법재량의 범위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입법자가 기본권 보호의무를 최대한 실현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그러한 이상적 기준이 헌법재판소가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심사기준이 될 수는 없으며, 헌법재판소는 권력분립의 관점에서 소위 “과소보호금지원칙”을, 즉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하여 적어도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취했는가를 기준으로 심사하게 된다. 따라서 입법부작위나

불완전한 입법에 의한 기본권의 침해는 입법자의 보호의무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 있는 경우에만 인정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국가가 국민의 법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아무런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았든지 아니면 취한 조치가 법익을 보호하기에 명백하게 부적합하거나 불충분한 경우에 한하여 헌법재판소는 국가의 보호의무의 위반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3. 태아는 형성 중의 인간으로서 생명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국가는 태아를 위하여 각종 보호조치들을 마련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그와 같은 국가의 기본권 보호의무로부터 태아의 출생 전에, 또한 태아가 살아서 출생할 것인가와는 무관하게, 태아를 위하여 민법상 일반적 권리능력까지도 인정하여야 한다는 헌법적 요청이 도출되지는 않는다. 법치국가원리로부터 나오는 법적안정성의 요청은 인간의 권리능력이 언제부터 시작되는가에 관하여 가능한 한 명확하게 그 시점을 확정할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형성이 출생 이전의 그 어느 시점에서 시작됨을 인정하더라도, 법적으로 사람의 시기를 출생의 시점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헌법적으로 금지된다고 할 수 없다.

입법자는 형법모자보건법 등 관련규정들을 통하여 태아의 생명에 대한 직접적 침해위험을 규범적으로 충분히 방지하고 있으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들이 태아가 사산한 경우에 한해서 태아 자신에게 불법적인 생명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하여 단지 그 이유만으로 입법자가 태아의 생명보호를 위해 국가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보호조치마저 취하지 않은 것이라 비난할 수 없다.

생명의 연속적 발전과정에 대해 동일한 생명이라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동일한 법적 효과를 부여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동일한 생명이라 할지라도 법질서가 생명의 발전과정을 일정한 단계들로 구분하고 그 각 단계에 상이한 법적 효과를 부여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이 사건 법률조항들의 경우에도 ‘살아서 출생한 태아’와는 달리 ‘살아서 출생하지 못한 태아’에 대해서

는 손해배상청구권을 부정함으로써 후자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으나 이러한 결과는 사법(私法)관계에서 요구되는 법적 안정성의 요청이라는 법치국가이념에 의한 것으로 헌법적으로 정당화된다 할 것이므로, 그와 같은 차별적 입법조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곧 국가가 기본권 보호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입법적 조치를 다하지 않아 그로써 위헌적인 입법적 불비나 불완전한 입법상태가 초래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사건 법률조항들이 권리능력의 존재 여부를 출생 시를 기준으로 확정하고 태아에 대해서는 살아서 출생할 것을 조건으로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이러한 입법적 태도가 입법형성권의 한계를 명백히 일탈한 것으로 보기는 어려우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들이 국가의 생명권 보호의무를 위반한 것이라 볼 수 없다.

민법 제762조는 태아가 출생하기 전에도 손해배상청구권을 취득할 수 있는 권리능력을 인정하는 것이므로, 권리능력의 존속시기에 관한 일반원칙을 규정하고 있는 민법 제3조에 대한 예외를 규정한 특별규정이라고 할 것이다. 특별규정인 민법 제762조가 적용되는 경우에는 일반규정인 민법 제3조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대법원은 민법 제762조를 적용함에 있어, 태아는 살아서 출생한 경우에만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을 가진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법률해석은 태아가 살아서 출생한 경우에만 태아를 보호하는 것이므로, 살아서 출생한 사람만 태아 기간 중에 발생한 불법행위 시기에 소급하여 보호할 뿐, 태어나기 전의 태아 자체는 보호하지 않는 셈으로 된다. 그리고 타인의 불법행위로 태아가 부상하거나 부모가 사망한 경우에는 태아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하지만, 불법행위로 태아가 사망한 경우에는 태아의 손해배상청구권을 부정하게 된다. 이러한 법률해석은 태아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려는 민법 제762조의 취지를 축소시켜서 헌법 제10조에 의하여 보장되는

태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결국 태아가 살아서 출생한 경우에만 민법 제762조가 적용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헌법 제10조에 위반된다고 선언하여야 한다.

“태아는 손해배상의 청구권에 관하여는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한 민법 제762조민법 제3조에 대한 특칙으로 보지 않고, 제3조의 통상적 해석만을 내세워, ‘태아가 살아서 출생한 경우에만 손해배상청구권을 취득하되 다만 그 청구권의 발생 시기만 태아 당시로 소급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면, 생명을 침해당한 태아는 이미 살아서 출생할 수 없음이 명백해졌으므로 손해배상청구권을 취득할 수 없게 되고, 태아의 생명을 침해한 자는 태아에 대하여 아무런 사법상 책임을 지지 않게 된다. 이는 국가가 태아의 생명을 실체적인 가치로 인정하지 않고 허구적이고 조건적인 것으로 인식함으로써 태아의 생명을 경시하는 것으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개인의 생명을 보호하여야 할 국가가 그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결과이다.

그러므로 민법 제762조가 태아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살아서 출생한 태아의 경우에만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기본권 보호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10조 제2문에 위반하여 태아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생명권을 침해한 것으로서 헌법에 위반된다.

청구인 신○호의 경우 위헌법률심판 제청신청 기각결정문이 통지된 2004. 9. 10.로부터 5일이 지난 2004. 9. 15. 헌법재판소에 국선대리인 선임신청을 하였고 이 신청은 2004. 10. 12. 기각되어 2004. 10. 18. 위 청구인에게 통지되었다. 헌법재판소법 제70조 제4항에 의하면 국선대리인 선임신청이 기각

된 경우 신청인이 선임신청을 한 날로부터 기각통지를 받은 날까지의 기간은 헌법재판소법 제69조의 규정에 의한 청구기간에 이를 산입하지 않는다. 따라서 적어도 2004. 9. 15.부터 2004. 10. 18.까지의 기간은 청구기간에 산입되지 않으므로, 2004. 10. 28. 청구된 위 청구인의 심판청구 부분은 청구기간을 준수하였다고 볼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 청구인들인 정○미, 신○재, 신○창의 경우,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에 따라 위 기각결정문을 통지받은 날부터 30일 이내에 청구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49일이 지난 2004. 10. 28. 이 사건 헌법소원 심판청구를 하였으므로, 이들 청구인들의 심판청구는 청구기간을 도과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1) 민법 제3조의 경우

민법 제3조는 권리능력의 주체가 되는 사람의 시기와 종기에 관한 규정으로, 현재의 통설, 판례인 전부노출설에 의하면 태아의 권리능력은 이 조항에 의하여 원칙적으로 인정되지 않게 된다. 그런데 이 사안에서 문제된 당해사건은 사산한 태아의 손해배상청구권이 문제되는 사안이므로 일반적으로 태아의 권리능력을 부정하는 민법 제3조가 재판의 전제성을 가지는지 여부가 문제될 수 있다. 이 사건에서는 민법 제3조에서 일반적으로 태아의 권리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민법 제762조에서 태아가 불법행위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되어 사망한 경우까지 권리능력이 부정되어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면, 민법 제3조는 당해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성을 가지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법 제762조는 ‘태아는 손해배상의 청구권에 관하여는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바, 이 규정을 文理 그대로만 해석할 경우 사산된 태아의 손해배상청구권의 청구권을 인정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즉 태아는 손배배상에 관한 한 출생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태아 상태로 죽음에 이른 경우에도 손해배상청구권은 당연히 발생한다는 것이 민

법 제762조의 의미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산한 태아의 손해배상청구권을 부정하는 것은 법원이 동 사안에 민법 제762조 뿐만 아니라 ‘생존한 동안’에만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고 선언한 민법 제3조도 동시에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살아서 출생하지 못한 태아의 손해배상청구권이 부정되는 것은 민법 제762조의 해석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민법 제3조 때문인 것이다.

물론 사산된 태아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민법 제762조를 해석함에 있어 민법 제3조의 적용을 배제하는 것으로 충분하겠지만, 그렇다고 이 사건 당해사건에 현실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민법 제3조에 대해 그 ‘재판의 전제성’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2) 민법 제762조의 경우

청구인 신O호는 태아가 불법행위로 인하여 사산된 경우에 예외적으로 권리능력을 인정받게 될 경우 태아 자신에게 인정되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상속할 수 있는 1순위 상속인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사건 심판대상의 하나인 민법 제762조의 위헌 여부에 따라서 위 청구인에 대한 당해사건의 결론이나 주문에 어떤 영향을 주거나 재판의 내용이나 효력에 관한 법률적 의미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재판의 전제성이 인정된다.

법무부장관은 이 사건 심판청구가 ‘법률조항’ 자체의 위헌성을 다투는 것이 아니라 ‘법률의 해석’의 위헌성을 다투는 것으로서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의 헌법소원을 제기하면서 법률의 해석에 관한 청구, 즉, 법률 조항에 대한 ‘한정위헌’의 판단을 구하는 청구에 대하여 우리 재판소는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이 ‘법률의 위헌여부심판의 제청신청이

기각된 때에는’ 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심판의 대상을 ‘법률’에 한정하고 있으므로, 일반적으로 법률조항 자체의 위헌판단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조항을 ‘……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한 위헌’이라는 판단을 구하는 청구는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의 청구로 적절치 아니하지만, 청구인의 주장이 단순히 법률조항의 해석을 다투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해석의 여지를 주는 법률조항의 불명확성을 다투는 경우(헌재 1995. 7. 21. 92헌바40, 판례집 7-2, 34, 36-37; 헌재 1997. 2. 20. 95헌바27, 판례집 9-1, 156, 161-162 참조) 또는 소위 “법원의 해석에 의하여 구체화된 심판대상 규정의 위헌성”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볼만큼 일정한 사례군이 상당 기간에 걸쳐 형성, 집적된 경우(헌재 1995. 5. 25. 91헌바20, 판례집 7-1, 615, 626; 헌재 1998. 7. 16. 97헌바23, 판례집 10-2, 243, 251-252; 헌재 2001. 8. 30. 2000헌바36, 판례집 13-2, 229, 231-232)에는 한정위헌의 판단을 구하는 심판청구라 하더라도 이를 법률조항 자체의 위헌성을 다투는 경우로 이해하여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에 의한 적법한 청구로 받아들이고 있다.

살피건대, 비록 태아가 사산된 경우에 권리능력이 인정되지 않는 것은 이 사건 법률조항들에 대한 해석론을 전제로 한 것이기는 하지만, 법원은 민법 제762조의 출생의제조항을 민법 제3조에 비추어 해석하고 있고, 이러한 법원의 해석은 확립된 판례로서 “법원의 해석에 의하여 구체화된 심판대상 규정의 위헌성”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볼만큼 일정한 사례군이 상당 기간에 걸쳐 형성, 집적된 경우에 해당하므로, 비록 이 사건 심판청구가 한정위헌의 판단을 구하는 심판청구에 해당한다 할지라도 이는 법률조항 자체의 위헌성을 다투는 경우로 이해할 수 있어 이 사건 심판청구는 적법하다.

이 사건 심판대상인 민법 제3조는 “사람은 생존한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고 하여 권리능력의 존속기간, 즉 권리능력의 ‘시기’와 ‘종기’를

규정하고 있다. 민법 제3조에서 ‘생존하기 시작하는 때’, 즉 ‘출생한 때’를 언제로 볼 것인가와 관련하여 현재의 통설과 판례는 ‘전부노출설’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전부노출설’에 의하면 태아가 모체에서 전부 노출되면 족한 것으로, 탯줄이 끊어질 것 또는 태반이 전부 배출될 것 등은 필요하지 아니하다. 모체로부터 분리된 후에 독자적으로 생존할 능력이 있을 것도 필요하지 않지만 단시간이라고 하더라도 모체에서 전부 분리된 후 살아 있을 것이 요구된다. 또한 살아서 출생한 이상 기형ㆍ조산ㆍ쌍생 등은 문제로 되지 않고 인공수정에 의한 출산의 경우에도 차이가 없다.

그런데 사람의 권리능력은 출생한 때로부터 시작된다는 원칙을 관철한다면 임신 중의 태아는 아직 권리능력을 취득하지 않은 것이 되어 태아에게 불리한 경우가 생기게 되므로 각국의 민법은 구체적인 경우에 태아의 법적 지위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을 두고 있는데, 일반적 보호주의와 개별적 보호주의로 나눌 수 있다.

일반적 보호주의는 태아의 이익을 위하여 모든 법률관계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보는 주의로서 로마법상의 원칙이었고 오늘날에는 스위스민법이 이에 따르고 있다. 개별적 보호주의는 중요한 법률관계에 관하여서만 법률의 특별규정에 의하여 출생한 것으로 보는 주의로서, 오늘날에는 독일민법, 프랑스민법, 일본민법 및 우리나라 민법이 이에 따르고 있다.2)

이 사건 심판대상 조항인 민법 제762조는 개별적 보호주의에 입각하여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에 있어서 태아의 권리능력을 의제하고 있는 것으로 태아는 재산상 손해와 정신상 손해의 양자에 관하여 그 고유의 배상청구권을 취득할 수 있다. 불법행위가 태아 자신에 대한 것이든, 태아 이외

의 제3자에 대한 것이든 관계없다. 포태 중인 모친에 대한 불법행위로 인하여 태아가 기형아로 출생한 경우, 그 불법행위는 모친에 대한 것임과 동시에 태아 자신에 대한 것이므로 출생자는 재산상 및 정신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3)

여기에서 태아가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는 것의 법률적 의미에 대하여는 학설상으로 정지조건설과 해제조건설의 두 견해가 대립되고 있다. 정지조건설은 태아로 있는 동안에는 아직 권리능력을 취득하지 못하지만, 살아서 출생할 때에는 그 권리능력취득의 효과가 문제의 사건이 발생한 시기까지 소급하여 생긴다는 견해로서 판례의 입장이다.4)정지조건설의 경우에는 태아에게는 권리능력이 없으므로 법정대리인을 인정할 수 없어 태아 상태에서 취득 또는 상속한 재산을 태아인 동안에 보존하거나 관리할 수 없는 단점이 있으나, 죽어서 출산되더라도 타인에게 예측하지 않는 손해를 줄 염려가 없다.5)

반면, 해제조건설은 태아가 이미 출생한 것으로 간주되는 각 경우에 태아는 그 개별적인 사항의 범위 안에서 최초부터 권리능력을 가지나 사산인 경우에는 그 권리능력취득의 효과가 문제의 사건의 시까지 소급하여 소멸한다는 것, 즉 죽어서 출생한 시기가 과거의 일정시기까지 소급한다는 것으로 학계의 다수설이다.6)해제조건설에 의하면 태아로 있는 동안에도 법정대리인을 통하여 재산의 관리 기타의 권리 보존방법을 취할 여지가 있게 되어 태아를 보다 두텁게 보호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태아가 죽어서 출산하면

법정대리인의 행위가 소급해서 무효가 되므로 그 상대방이나 제3자에게 예측하지 못한 손해를 줄 염려가 있다는 단점이 있다.7)

태아가 불법행위로 인하여 사산된 경우에 태아의 생명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인정되는지의 여부와 관련하여 정지조건설에 의하면 태아가 출생한 경우에 비로소 불법행위시에 소급하여 권리능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 사산된 경우에는 처음부터 권리능력이 없는 것으로 되므로 태아에게 손해배상청구권이 없는 것으로 된다. 해제조건설에 의할 경우에도, 원칙적으로 불법행위시에 태아는 손해배상청구권을 취득하며 법정대리인을 통해서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만, 태아의 사산시에는 소급하여 손해배상청구권이 부정되므로, 정지조건설과 마찬가지의 결과가 된다. 대법원 76다1365 판결에서도 태아가 출생의 기회를 가지지 못한 경우에는 배상청구권을 논할 여지가 없으며 소위 해제조건설에 의하더라도 이는 마찬가지라고 판시하였다.8)

(1-1)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이 세상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엄한 인간 존재의 근원이다. 이러한 생명에 대한 권리, 즉 생명권은 비록 헌법에 명문의 규정이 없다 하더라도 인간의 생존본능과 존재목적에 바탕을 둔 선험적이고 자연법적인 권리로서 헌법에 규정된 모든 기본권의 전제로서 기능하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헌재 1996. 11. 28. 95헌바1, 판례집 8-2, 537, 545 참조). 모든 인간은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가 되며, 형성 중의 생명인 태아에게도 생명에 대한 권리가 인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태아도 헌법

생명권의 주체가 되며, 국가는 헌법 제10조에 따라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1-2) 이 사건 법률조항들은 생명에 대한 침해가 있고 난 이후에 손해의 조정에 관한 규정으로서 형법상의 낙태죄와 같이 생명의 직접적 보호에 관련된 규정들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생명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는 생명을 침해한 불법행위에 대하여 손해의 배상을 구하는 청구권이므로, 이와 같은 청구권은 비록 그것이 민법규정에 의해 규율된다고 할지라도 헌법상의 생명권적 고찰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가령 태아가 아니라 ‘출생을 완료한 갓난아기, 미성년자, 심지어 성년자에 대해 가해진 생명 침해’에 대해 어떤 민법질서가 손해배상청구권을 명시적으로 부정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입법태도를 취하고 있을 경우, 이 문제를 단순히 민법상의 재산권적 청구권 내지 단순히 헌법상의 재산권 문제로만 다룰 수 없을 것임은 자명하다 할 것이다. 이 사건의 경우에도 민법질서는 사산된 태아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일반적으로 부정함으로써 ‘태아의 생명을 쓸모없는 존재, 무가치한 존재로 취급하는 법적 평가’를 단행하고 있다는 혐의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1-3) 이 사건의 쟁점은 태아의 생명 침해에 대하여 태아 자신에게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하는 입법조치(또는 해석)를 국가가 취하지 않은 것이 위헌인지 여부이다. 그런데 설령 국가가 입법조치를 통해 태아 자신의 생명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그와 같은 청구권은 생명 침해가 있은 이후에 사후적으로 인정되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생명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생명권으로부터 직접 도출되는 것이라거나 생명권의 내용이라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아의 생명침해에 대하여 태아 자체에게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하게 되면, 그 위하력으로 인하여 태아의 생명이 침해되는 것을 일반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효과를 예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는 태아 자신에게 손해배상청구권을 허용하지 아니하는 현재의 법상태가 태아의 생명 존중을 위한 최소한의 보호조치로서 충분한 것인가의 여부에 대한 검토를 요구하게 된다.

(2) 한편,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들의 재산권 관련성은 생명권 관련성과 비교해 볼 때 심각한 것이 아니다.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들은 태아의 권리능력을 태아로서 향유하는 것을 부정함으로써 인간의 가장 본질적이고 포기할 수 없는 생명의 가치를 일정부분 배제하는 것을 그 본질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사건 법률조항들이 생명권의 관점에서 위헌으로 선언된다면 태아 자신의 손해배상청구권이 회복될 것이고 그 결과로서 현행법 질서에 따라 부모에 의한 상속9)도 가능해질 것이다.10)반대로 이 사건 법률조항들이 합헌으로 선언된다면 태아의 생명권에 대한 일정한 제약이 헌법상 생

명권의 관점에서 정당화되는 것이므로, 그러한 한에서 입법자가 헌법 제23조 제1항의 재산권의 내용과 한계를 법률로 정함에 있어 입법형성권의 범위를 일탈한 것으로 보기도 어려울 것이다.

(3) 평등권의 경우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살아서 출생한 태아의 경우 태아인 상태에서 입은 신체적 손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하면서도, 마찬가지로 태아인 상태에서 발생한 생명침해의 경우에는 살아서 출생할 수 없다는 이유로 태아 자신의 손해배상청구권을 부정하는 것은 ‘살아서 출생한 태아’와 ‘살아서 출생할 수 없는 태아’를 단지 출생이라는 사실을 요건으로 차별취급하는 결과가 되지만, 후자의 경우가 헌법상 생명권의 관점에서 합헌적인 것으로 평가되는 한 그와 같은 차별은 합리적 차별로서 평등권에 반하는 것이라 하기 어렵다.

(4) 그렇다면 이 사건 법률조항들의 위헌 여부는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기본권인 헌법상 생명권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것으로 족하다고 볼 것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 사건 법률조항들은 태아의 생명권에 관련되는 것으로 본다 할지라도, 이 사건 법률조항들에 의한 사산태아의 손해배상청구권 부정의 위헌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과잉금지원칙에 따른 심사를 할 것인가 과소보호금지원칙에 따른 심사를 할 것인가가 문제된다. 결론적으로 과잉금지원칙에 따른 심사가 아니라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론의 관점에서 과소보호금지 위반 여부를 심사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대국가적 방어권과 기본권보호의무는 양자 모두 기본권을 보호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하지만, 전자의 경우에는 국가와의 관계에서 개인의 자유가 문제되는 것인반면, 후자의 경우에는 사인 상호간에 있어서 기본권적 법익의 침해가 문제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즉, 주관적 방어권이나

객관적 보호의무는 양자 모두가 국가를 수범자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주관적 방어권의 경우에는 국가가 기본권의 危險源으로 나타나는 데 반해, 보호의무의 경우에는 제3자인 私人이 기본권에 대한 危險源으로 나타나고 국가는 보증인적 지위에서 이러한 제3자에 의해 야기되는 기본권적 법익에 대한 침해 내지 위험을 막아야 할 의무를 지게 된다는 점에서 구별된다.11)요컨대 사인의 행위에 의해 기본권의 침해 또는 침해의 위험이 발생하는 경우에도 국가는 적극적으로 이러한 위해의 발생을 방지하거나 위해에 따른 피해를 구제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되는데,12)이와 같이 국가가 기본권보호의무자로 나서게 되는 경우는 ‘국가가 침해의 당사자 내지 “基本權의 敵”으로 나타나게 되고 그에 따라 기본권의 기능도 대국가적 방어권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경우’와는 본질적으로 구별되어야 할 것이다.

(2) 이와 같은 기능적 차이는 심사기준에 있어서의 차이로 이어지게 된다. 대국가적 방어권은 기본권적 자유에 대한 일체의 국가적 침해를 금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기본권보호의무는 법익보호를 위하여 효과적인 모든 수단들의 투입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즉 보호의무의 일차적 이행자인 입법자에게는 기본권적 지위의 보호를 위하여 어떠한 수단을 택할 것인가를 결정함에 있어 충돌하는 타 법익들과의 형량, 보호수단과 보호효과에 대한 평가 등과 관련하여 원칙적으로 ‘폭넓은 입법재량의 여지’가 인정된다. 따라서 헌법재판소가 기본권보호의무를 수행하는 입법적 조치들에 대한 통제를 단행하

는 경우에도 그 심사기준은 ‘기본권적 자유에 대한 최소침해를 요구하는 과잉금지원칙(Übermaßverbot, 헌법 제37조 제2항)’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 의한 기본권적 법익에 대한 보호효과가 헌법이 명령하는 최저한도의 보호수준에 미달하여서는 아니된다’는 원칙, 즉 과소보호금지원칙(Untermaßverbot)이 적용된다.13)어느 정도의 보호가 최저보호수준에 해당하는가는 획일적으로 정할 수 없으며, 개별사례별로 특히 관련법익들의 종류, 그에 대한 위험의 정도 및 양상, 개인이 스스로 법익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과 자구행위의 허용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해석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정하여야 한다.

(3) 한편 우리 형법은 태아의 생명침해 행위를 범죄로 처벌하고 있고, 모자보건법은 낙태를 제한함으로써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고 있다. 민법 역시 제762조를 비롯한 개별적 태아보호규정들을 통해 태아가 출생한 경우 그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들을 마련하고 있다. 요컨대 태아의 생명이나 기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입법적 조치는 종전에도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보호조치들에 더하여 생명침해에 대한 태아 자신의 손해배상청구권을 반드시 인정하여야만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를 다한 것으로 볼 것인가의 여부가 이 사건의 관건인 것이다.

(1) 이 사건 법률조항들에 따르면 사산한 태아의 경우 불법적인 생명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그런데 태아에게 생명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할 것인가의 여부는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직접적인 수단이라기보다는 태아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행위가 있고 난 이후에 사후적으로 불법적 생명침해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을 허용할 것인가의 문제로서 그 인정 여부는 입법자에게 입법형성재량이 허용되는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고 볼 것이다.

물론 태아는 형성 중의 인간으로서 생명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국가는 태아를 위하여 각종 보호조치들을 마련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그와 같은 국가의 기본권 보호의무로부터 태아의 출생 전에, 또한 태아가 살아서 출생할 것인가와는 무관하게, 태아를 위하여 민법상 일반적 권리능력까지도 인정하여야 한다는 헌법적 요청이 도출되지는 않는다. 법치국가원리로부터 나오는 법적안정성의 요청은 인간의 권리능력이 언제부터 시작되는가에 관하여 가능한 한 명확하게 그 시점을 확정할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형성이 출생 이전의 그 어느 시점에서 시작됨을 인정하더라도, 법적으로 사람의 시기를 출생의 시점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헌법적으로 금지된다고 할 수 없다. 물론 인간의 권리능력의 시기를 출생 이전의 어느 시점으로 정하는 것이 반드시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될 경우 구체적인 법률관계에서 권리능력의 존재를 확정하고 입증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존재하게 될 것이라는 점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2) 입법자는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형법상의 낙태죄의 처벌 및 모자보건법 상의 예외적 적응사유 등 다른 수단들을 마련하고 있으므로 국민의 법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전혀 아무런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없으므로 태아의 기본권보호에 있어서 국가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보호의무를 위반하였다고 비난하기 어렵다. 즉 우리 형법은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기 자연적인 분만기 이전에 인위적인 수단으로 태아를 모체 밖으로 배출시키거나, 모체 내에서 태아를 살해하는 행위를 낙태에 관한 죄(형법 제269조, 제270조)를 처벌하고 있다.14)나아가 모자보건법 제14조는 예외

적으로 5가지 정당화사유에 한해 낙태를 허용하고 있고,15)동법 시행령 제15조는 모자보건법 제14조의 인공임신중절행위는 임신한 날로부터 28주 이내에 해야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낙태를 시간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와 같이 형법 및 보자보건법 관련 규정들을 통하여 태아의 생명권에 대한 침해위험은 규범적으로 충분히 방지되고 있으므로, 민법상 태아가 사산한 경우에 한해 태아 자신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태아의 생명권에 대한 국가의 최소한의 보호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없다. 더욱이 태아가 살아서 출생한 경우에 태아 상태에서 가해진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는 민법 제762조에 의해 유효하게 행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살아서 출생한 태아에 관한 한 태아의 신체, 건강침해에 대해서는 완전하게 보호되고 있는 것이다.

(3) 생명의 전체적 과정을 생명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두 동일한 법적 효과를 부여하여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될 수 없다. 동일한 생명이라 할지라도 법질서가 생명의 발전과정을 일정한 단계들로 구분하고 그 각각의 단계에 상이한 법적 효과를 부여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예컨대 형법은 태아를 진통시로부터 사람으로 취급하여 살인죄의 객체로 인정하면서, 그 이전 단계인 태아에 대해서는 낙태죄의 객체로 하여 처벌의 정도를 달리하고 있다. 또한 형법상 낙태죄의 시기는 착상(수태)시로 보고 있는바, 착상은 수정 후 14일 후에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그 이전의 생명에 대해 형법은 어떠한 보호도 행하고 있지 않다. 만약 생명의 전체적 과정에 대해 동일한 법적 보호를 요구한다면, 착상이 있을 때까지 아무런 형법적 보호도 행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물론 태아와 출생이후의 자를 차별적으로 보호하는 현행 형법 규정들에 대해서도 보호의무불이행을 이유로 위헌이라고 보아야 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이 사건 법률조항들은 ‘살아서 출생한 태아’와는 달리 ‘살아서 출생하지 못한 태아’에 대해서는 손해배상청구권을 부정함으로써 후자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으나 이러한 결과는 사법(私法)관계에서 요구되는 법적안정성의 요청이라는 법치국가이념에 의한 것으로 헌법적으로 정당화된다 할 것이므로, 그와 같은 차별적 입법조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곧 국가가 기본권 보호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입법적 조치를 다하지 않아 그로써 위헌적인 입법적 불비나 불완전한 입법상태가 초래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민법의 경우에만 생명에 대한 그와 같은 차별적 취급이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할 아무런 합리적 이유가 없는 것이다.

(4) 우리 민법은 모든 개인에게 재산 및 가족관계 등의 모든 사법관계에서 자유롭게 소유권을 누리고 계약관계를 맺을 수 있으며 친족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자격, 즉 권리능력을 평등하게 인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사법관계의 초석이 되는 사람의 권리능력은 그 취득시기가 무엇보다도 명확할 필요가 있고, 동일한 법적 이념을 추구하는 세계 각국과도 보조를 맞추어야 할 것이다.

비교법적으로 볼 때, 독일이나 스위스에서는 ‘출생의 완료’로서 사람의 권리능력이 시작됨을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민법제1조에 따르면 인간의 권리능력은 출생의 완료로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아는 상속권(민법 제1923조), 부양의무자가 살해된 경우에는 손해배상청구권(민법 제844조 제2항)을 가지며, 제3자를 위한 계약(민법 제331조 제2항)을 통해 수혜의 대상이 될 수는 있지만, 종국적인 권리취득(예컨대 상속재산의 귀속)은 어느 경우이든 태아가 살아서 출생한 경우에만 인정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16)또한 스위스 민법 제31조 제1항

의하면 ‘인격은 출생완료 이후의 생명과 더불어 시작되고 죽음으로써 종료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나아가 동조 제2항은 태아에 대해 살아서 출생할 것을 조건으로 권리능력을 가진다고 규정함으로써, 살아서 출생할 것을 전제로 일반적으로 태아의 권리능력을 인정하고 있다.17)그밖에 태아가 사산한 경우에 그 망아에게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하고 있는 입법례나 실무례를 찾아보기 어렵다(대법원 1976. 9. 14. 76다1365판결 참조; 또한 서울고법 2007. 3. 15. 2006나56833 판결). 이상과 같은 점들을 감안할 경우에도, 이 사건 법률조항들을 곧바로 위헌으로 보기는 어렵다.18)

(5) 그렇다면 이 사건 법률조항들이 권리능력의 존재 여부를 출생시를 기준으로 확정하고 태아에 대해서는 살아서 출생할 것을 조건으로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이러한 입법적 태도가 입법형성권의 한계를 명백히 일탈한 것으로 보기는 어려우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들이 국가의 생명권 보호의무를 위반한 것이라 볼 수 없다.

이 결정은 국가가 사인 상호간의 사법(私法) 질서 형성에 있어서도 헌법 제10조 제2문에 따라 헌법상 기본권이 존중되고 보호되도록 할 의무(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가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 또한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가 문제되는 경우 과소보호금지원칙이 적용된다는 점을 종전 판례인 ‘헌재 1997. 1. 16. 90헌마110, 판례집 9-1, 90’ 결정에 이어 다시 한 번 분명하게 적시하고 있다. 아울러 이 결정은 형성 중의 생명인 태아에게도 생명에 대한 권리,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가 됨을 최초로 판시하였다는 점에서도 그 의의가 있다.

arr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