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2015헌바136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6조 제4항 위헌소원
청구인
김○기
대리인 변호사 조기선
당해사건
광주고등법원 2014노439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장애인준강간등)
선고일
2016.11.24
주문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2012. 12. 18. 법률 제11556호로 전부개정된 것) 제6조 제4항 중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 또는 항거곤란 상태에 있음을 이용하여 사람을 간음한 사람은 제1항의 예에 따라 처벌한다.’ 부분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이유
1. 사건개요
청구인은 2014. 5. 26. 정신지체장애 3급인 피해자(여, 23세)가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 또는 항거곤란 상태에 있음을 이용하여 그녀를 간음하였다는 성폭력범죄의
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장애인준강간등)죄로 기소되어, 1심에서 징역 3년 6월의 유죄판결을 선고받고(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 2014고합110), 항소하였다(광주고등법원 2014노439).
청구인은 항소심 계속 중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6조 제4항에 대하여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2015초기3)을 하였으나, 당해 법원이 2015. 3. 4. 항소기각판결을 선고하면서 위 신청을 기각하자, 2015. 4. 6.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2. 심판대상
이 사건 심판대상은 당해 사건에서 청구인에게 적용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2012. 12. 18. 법률 제11556호로 전부개정된 것, 이하 ‘성폭력처벌법’이라 한다.) 제6조 제4항 중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 또는 항거곤란 상태에 있음을 이용하여 사람을 간음한 사람은 제1항의 예에 따라 처벌한다.’ 부분(이하 ‘심판대상조항’이라 한다. 또한 심판대상조항을 위반한 범죄를 ‘장애인준강간죄’라고 한다.)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이다.
심판대상조항 및 관련조항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심판대상조항]
제6조 (장애인에 대한 강간·강제추행 등) ④ 신체적인 또는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 또는 항거곤란 상태에 있음을 이용하여 사람을 간음하거나 추행한 사람은 제1항부터 제3항까지의 예에 따라 처벌한다.
[관련조항]
제6조(장애인에 대한 강간·강제추행 등) ①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에 대하여 「형법」 제297조(강간)의 죄를 범한 사람은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제297조(강간)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3. 청구인의 주장
가. 정신적 장애인이 자발적으로 성관계를 맺은 경우에도 상대방은 심판대상조항에 의하여 처벌받을 수 있으므로 심판대상조항은 정신적 장애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고, 그로 인하여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차별하므로 평등원칙에 위반된다.
나. 심판대상조항은 정신적 장애인의 항거불능 또는 항거곤란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한 사람을 처벌하는데, ‘이용하여’라는 부분이 추상적이고 광범위하여 금지되는 행위를 예견할 수 없으므로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
다. 심판대상조항의 법정형이 과중하여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원칙에 위반된다.
4. 판단
가. 장애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 및 평등원칙 위반 여부
(1) 성적자기결정권이란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 등을 바탕으로 사회공동체 안에서 각자가 독자적으로 성적 관(觀)을 확립하고, 이에 따라 사생활의 영역에서 자기 스스로 내린 성적 결정에 따라 자기책임 하에 상대방을 선택하고 성관계를 가질 권리를
의미한다(헌재 2002. 10. 31. 99헌바40 ; 헌재 2009. 11. 26. 2008헌바58 등).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은 성적인 자기 방어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원하지 않는 상대로부터 강제로 성행위를 당하게 될 위험에 처해 있으므로 국가가 이를 보호하기 위하여 심판대상조항과 같은 장애인 성폭력에 관한 특별한 규정을 마련한 것이다(대법원 2008. 7. 27. 선고 2005도2994 판결 등 참조).
(2) 심판대상조항은 정신적 장애인과 성관계를 한 모든 사람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장애를 원인으로 한 항거불능 혹은 항거곤란 상태를 이용하여, 즉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는 장애인을 간음한 사람을 처벌하는 조항이다.
13세 미만의 사람을 간음한 경우는 피해자의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미성년자의제강간죄로 처벌하고(형법 제305조), 19세 이상의 사람이 장애인인 ‘아동·청소년’과 간음한 경우도 형법 제305조와 마찬가지로 피해자의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처벌한다(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8조 제1항). 이처럼 19세 미만의 장애인과는 설사 합의 하에 성관계를 갖더라도 이를 처벌하고 있으며, 이는 19세 미만의 장애인들에게 성행위 여부 및 그 상대방을 결정할 수 있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능력이 없다고 보고 피해자를 두텁게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만약 입법자가 19세 이상의 정신적 장애인 모두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간주하였다면 심판대상조항 역시 위 의제강간죄 조항과 같은 형식으로 입법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능력이 있는 19세 이상의 정신적 장애인과 정상적인 합의 하에 성관계를 한 사람은 심판대상조항에 의하여 처벌되지 아니하므로, 심판대상조항이 정신적 장애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거나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차별한다는 청구인의 주장은 이유 없다.
나. 명확성 원칙 위반 여부
(1) 심판대상조항 중 ‘이용한다’의 의미는 피해자가 정신적인 장애로 인한 항거불능 또는 항거곤란 상태를 인식하고 이에 편승하여 간음에 나아갔다는 의미이다. 이는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 또는 항거곤란 상태에 있음’과 ‘간음’이라는 개념을 연결해주는 표현으로서, 장애인과 성관계를 하는 상대방은 장애인의 장애상태를 쉽게 확인할 수 있고 정신적 장애인은 일반인에 비하여 성관계를 시도하기가 용이하다는 인식하에 장애인과 성관계를 하게 되므로 바로 이러한 가해자의 행위를 처벌하기 위한 구성요건이다.
즉, 장애인준강간죄 사건에 있어 가해자가 간음 당시 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의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음을 인식하였음에도 간음행위로 나아간 행위가 바로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 또는 항거곤란 상태에 있음을 ‘이용한’ 행위로 평가된다(대법원 2013. 4. 11. 선고 2012도12714 판결 등).
(2) ‘이용하여’라는 표현은, 피해자의 비정상적인 상태가 범죄를 저지르기 용이한 조건이고 가해자가 이를 기화로 범죄에 나아간다는 의미로서, 형법 제299조(준강간, 준강제추행), 제348조 제1항(준사기), 제349조 제1항(부당이득) 등에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3) 따라서 통상의 판단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용하여’라는 표현을 통해 금지되는 행위가 무엇인지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으므로 심판대상조항 중 ‘이용하여’ 부분은 명확성 원칙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다.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원칙 위반 여부
(1) 어떤 범죄를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 하는 문제, 즉 법정형의 종류와 범위의 선택
은 그 범죄의 죄질과 보호법익에 대한 고려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와 문화, 입법 당시의 시대적 상황, 국민 일반의 가치관 내지 법감정 그리고 범죄예방을 위한 형사정책의 측면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입법자가 결정할 사항으로서 입법자에게 광범위한 입법재량 내지 형성의 자유가 인정되어야 할 분야이다. 따라서 어느 범죄에 대한 법정형이 그 범죄의 죄질 및 이에 따른 행위자의 책임에 비하여 지나치게 가혹한 것이어서 현저히 형벌체계상의 균형을 잃고 있다거나 그 범죄에 대한 형벌 본래의 목적과 기능을 달성함에 있어 필요한 정도를 일탈하는 등 헌법상의 비례원칙 등에 명백히 위배되는 경우가 아닌 한, 쉽사리 헌법에 위반된다고 단정하여서는 아니 된다(헌재 2015. 11. 26. 2014헌바436 참조).
(2) 성폭력처벌법 제정 당시 장애인준강간죄는 형법상 준강간죄와 법정형이 동일하였고 친고죄 여부만 달랐으나, 2011. 9. 개봉된 영화 ‘도가니’를 계기로 2011. 11. 17. 성폭력처벌법이 개정되면서 그 법정형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서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대폭 상향되었다. 이와 같이 형법규정의 법정형만으로는 어떤 범죄행위를 예방하고 척결하기에 미흡하다는 입법정책적 고려에 따라 이를 가중처벌하기 위하여 특별형법법규를 제정한 경우에는 단순히 형법규정의 법정형만을 기준으로 하여 그 특별형법법규의 법정형의 과중 여부를 쉽사리 논단해서도 안 될 것이다(헌재 2013. 7. 25. 2012헌바320 참조).
(3) 정신적 장애로 항거불능 또는 항거곤란인 상태에 놓여 있는 피해자는 성폭력에 쉽게 노출되어 있다. 정신적 장애인은 이웃, 근친, 채팅으로 만난 사람 등 주변 지인들로부터 성폭력을 당하는 예가 많고, 심리적 기질로 인하여 폭행, 협박이 없어도 성폭력의 피해자가 되기 쉬우며, 장기간 혹은 다수에 의한 성폭력 범죄의 피해자가 되
는 경우가 많다. 입법자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강력범죄로서 죄질과 범정이 무겁고 비난가능성이 큰 정신적 장애인들에 대한 성폭력 가해자를 강력하게 처벌함으로써 그 범행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고, 이러한 범죄를 예방함으로써 정신적 장애인들을 성폭력으로부터 보호하려는 형사정책적 고려에 따라, 형법상 준강간죄보다 가중하여 처벌하도록 규정하였다. 이는 정신적 장애인의 보호를 위하여 필요하고도 바람직한 입법조치라 할 것이다.
따라서 장애인준강간죄의 보호법익의 중요성, 죄질, 행위자 책임의 정도 및 일반예방이라는 형사정책의 측면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하여 본다면, 입법자가 형법상 준강간죄나 장애인위계등간음죄(성폭력처벌법 제6조 제5항)의 법정형보다 무거운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이라는 비교적 중한 법정형을 정한 것에는 나름대로 수긍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고, 그것이 범죄의 죄질 및 행위자의 책임에 비하여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할 수 없다.
(4) 물론 심판대상조항에서 정한 유기징역형의 하한이 7년으로 별도의 법률상 감경사유가 없는 한 작량감경을 하더라도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없게 되어 있지만, 이는 장애인준강간죄의 죄질과 비난가능성의 정도 등을 높게 평가하여 정신적 장애로 인하여 항거불능 또는 항거곤란 상태에 있는 장애인이 손쉽게 성폭력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것을 막기 위하여, 일정한 기간 동안 사회와 격리시킬 목적으로 법관의 작량감경만으로는 집행유예를 선고하지 못하도록 입법적 결단을 내린 것이다. 이러한 입법자의 결단은 위에서 본 여러 가지 사정에 비추어 수긍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헌재 2012. 5. 31. 2010헌바401 ; 헌재 2012. 5. 31. 2011헌바381 등 참조).
(5) 그러므로 심판대상조항의 법정형이 형벌 본래의 목적과 기능을 달성함에 있어
필요한 정도를 일탈하여 지나치게 과중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심판대상조항은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
5. 결론
심판대상조항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하므로 관여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에 따라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재판관
재판장 재판관 박한철
재판관 이정미
재판관 김이수
재판관 이진성
재판관 김창종
재판관 안창호
재판관 강일원
재판관 서기석
재판관 조용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