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시사항
1. 민법 제3조에 대해 재판의 전제성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적극)
2. 이 사건 심판청구가 법률해석의 위헌성을 다투는 것으로서 부적법한 것인지 여부(소극)
3. 태아가 생명권의 주체가 되는지 여부(적극)
4.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 위반 여부 판단에 있어서의 심사기준(과소보호금지원칙)
결정요지
1. 민법 제762조는 ‘태아는 손해배상의 청구권에 관하여는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바, 이 규정을 문면 그대로 해석할 경우 사산된 태아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할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산한 태아의 손해배상청구권이 부정되는 것은 법원이 민법 제762조를 해석함에 있어 생존한 동안에만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고 규정한 민법 제3조를 함께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서 출생하지 못한 태아의 손해배상청구권이 부정되는 것은 민법 제762조의 해석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민법 제3조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당해사건에는 민법 제3조도 적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하므로 민법 제3조는 재판의 전제성이 인정된다.
한 사례군이 상당 기간에 걸쳐 형성, 집적된 경우에 해당하므로, 이 사건 심판청구는 법률조항 자체의 위헌성을 다투는 경우로 이해할 수 있어 이 사건 심판청구는 적법하다.
4. 국가가 소극적 방어권으로서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경우 그 제한은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국가안전보장ㆍ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고,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는 없으며 그 형식은 법률에 의하여야 하고 그 침해범위도 필요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 그러나 국가가 적극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반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담하는 경우에는 설사 그 보호의 정도가 국민이 바라는 이상적인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여 언제나 헌법에 위반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의 이행은 입법자의 입법을 통하여 비로소 구체화되는 것이고, 국가가 그 보호의무를 어떻게 어느 정도로 이행할 것인지는 입법자가 제반사정을 고려하여 입법정책적으로 판단하여야 하는 입법재량의 범위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입법자가 기본권 보호의무를 최대한 실현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그러한 이상적 기준이 헌법재판소가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심사기준이 될 수는 없으며, 헌법재판소는 권력분립의 관점에서 소위 “과소보호금지원칙”을, 즉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하여 적어도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취했는가를 기준으로 심사하게 된다. 따라서 입법부작위나 불완전한 입법에 의한 기본권의 침해는 입법자의 보호의무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 있는 경우에만 인정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국가가 국민의 법익을 보호하기 위하
여 아무런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았든지 아니면 취한 조치가 법익을 보호하기에 명백하게 부적합하거나 불충분한 경우에 한하여 헌법재판소는 국가의 보호의무의 위반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5. 태아는 형성 중의 인간으로서 생명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국가는 태아를 위하여 각종 보호조치들을 마련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그와 같은 국가의 기본권 보호의무로부터 태아의 출생 전에, 또한 태아가 살아서 출생할 것인가와는 무관하게, 태아를 위하여 민법상 일반적 권리능력까지도 인정하여야 한다는 헌법적 요청이 도출되지는 않는다. 법치국가원리로부터 나오는 법적안정성의 요청은 인간의 권리능력이 언제부터 시작되는가에 관하여 가능한 한 명확하게 그 시점을 확정할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형성이 출생 이전의 그 어느 시점에서 시작됨을 인정하더라도, 법적으로 사람의 시기를 출생의 시점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헌법적으로 금지된다고 할 수 없다.
생명의 연속적 발전과정에 대해 동일한 생명이라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동일한 법적 효과를 부여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동일한 생명이라 할지라도 법질서가 생명의 발전과정을 일정한 단계들로 구분하고 그 각 단계에 상이한 법적 효과를 부여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이 사건 법률조항들의 경우에도 ‘살아서 출생한 태아’와는 달리 ‘살아서 출생하지 못한 태아’에 대해서는 손해배상청구권을 부정함으로써 후자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으나 이러한 결과는 사법(私法)관계에서 요구되는 법적 안정성의 요청이라는 법치국가이념에 의한 것으로 헌법적으로 정당화된다 할 것이므로, 그와 같은 차별적 입법조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곧 국가가 기본권 보호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입법적 조치를 다하지 않아 그로써 위헌적인 입법적 불비나
불완전한 입법상태가 초래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사건 법률조항들이 권리능력의 존재 여부를 출생 시를 기준으로 확정하고 태아에 대해서는 살아서 출생할 것을 조건으로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이러한 입법적 태도가 입법형성권의 한계를 명백히 일탈한 것으로 보기는 어려우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들이 국가의 생명권 보호의무를 위반한 것이라 볼 수 없다.
재판관 조대현의 한정위헌의견
그런데 대법원은 민법 제762조를 적용함에 있어, 태아는 살아서 출생한 경우에만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을 가진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법률해석은 태아가 살아서 출생한 경우에만 태아를 보호하는 것이므로, 살아서 출생한 사람만 태아 기간 중에 발생한 불법행위 시기에 소급하여 보호할 뿐, 태어나기 전의 태아 자체는 보호하지 않는 셈으로 된다. 그리고 타인의 불법행위로 태아가 부상하거나 부모가 사망한 경우에는 태아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하지만, 불법행위로 태아가 사망한 경우에는 태아의 손해배상청구권을 부정하게 된다. 이러한 법률해석은 태아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려는 민법 제762조의 취지를 축소시켜서 헌법 제10조에 의하여 보장되는 태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재판관 김종대의 한정위헌의견
의 통상적 해석만을 내세워, ‘태아가 살아서 출생한 경우에만 손해배상청구권을 취득하되 다만 그 청구권의 발생 시기만 태아 당시로 소급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면, 생명을 침해당한 태아는 이미 살아서 출생할 수 없음이 명백해졌으므로 손해배상청구권을 취득할 수 없게 되고, 태아의 생명을 침해한 자는 태아에 대하여 아무런 사법상 책임을 지지 않게 된다. 이는 국가가 태아의 생명을 실체적인 가치로 인정하지 않고 허구적이고 조건적인 것으로 인식함으로써 태아의 생명을 경시하는 것으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개인의 생명을 보호하여야 할 국가가 그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결과이다.
심판대상조문
민법(1958. 2. 22. 법률 제471호로 제정된 것) 제3조(권리능력의 존속기간) 사람은 생존한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
민법(1958. 2. 22. 법률 제471호로 제정된 것) 제762조(손해배상청구권에 있어서의 태아의 지위) 태아는 손해배상의 청구권에 관하여는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
참조판례
3. 헌재 1996. 11. 28. 95헌바1 , 판례집 8-2, 537, 545
4. 헌재 1997. 1. 16. 90헌마110 , 판례집 9-1, 90, 120-123
당사자
청 구 인 1. 신○호
2. 정○미
3. 신○재
4. 신○창
청구인 3, 4는 미성년자이므로 법정대리인 친권자 부 신○호, 모 정○미
청구인들 대리인 변호사 신창언 외 2인
당해사건 대법원 2004다29170 손해배상(의)
2. 청구인 정○미, 신○재, 신○창의 심판청구를 각하한다.
이유
1. 사건의 개요와 심판의 대상
가. 사건의 개요
(1) 청구인 신○호와 같은 정○미는 부부이고 청구인 신○재와 같은 신○창은 이들의 자녀이다. 청구인 정○미는 셋째 아이를 임신한 후 2002. 5. 8.경부터 당해사건의 피고 김○수가 근무하는 신세계산부인과의원에서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았다.
(2) 청구인 정○미는 2002. 7. 22.(임신 16주 2일) 위 의원에서 기형아 검사를 위한 트리플마커 검사를 받았는데 그 결과 에드워드 증후군의 위험도가 1:100 이상으로 증가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이에 위 김○수는 태아가 기형아인지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양수검사가 필요하다고 권유하였고, 청구인 정○미의 동의 아래 2002. 7. 25. 양수천자검사를 실시하였다.
(3) 그런데 위 김○수는 위 검사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 및 유산의 위험성에 관하여 청구인 정○미에게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아 의사로서의 설명의무를 위반하였을 뿐만 아니라, 청구인 정○미가 양수검사에 따른 합병증으로 나타나는 감염 증상 및 조기양막파수를 일으키게 되어 다시 내원하여 감기몸살 및 복통을 호소하였음에도 필요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다. 청구인 정○미는 2002. 8. 3. ○병원에서 초음파검사를 받았고, 그 결과 양막이 터져 양수가 거의 없음이 확인되었으며 그 다음날(임신 19주) 태아는 태내에서 사망하였다.
(4) 청구인들은 태아도 권리능력이 인정되어 손해배상청구권을 가질 수 있고 태아가 사산할 경우 태아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정상적으로 태어났다면 친권자가 되었을 부모에게 상속된다고 주장하며 인천지방법원에 위 김○수를 피고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으나, 이러한 내용의 청구(당해사건의 소송물 중 태아의 손해배상청구권 상속을 전제로 한 부분)는 제1심에서는 물론 항소심에서도 기각되었다. 이에 청구인들은 2004. 5. 27. 대법원에 상고
(5) 청구인 신○호는 2004. 9. 15. 헌법재판소에 국선대리인 선임신청을 하였으나 2004. 10. 12. 기각되자,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한 후 2004. 10. 28. 위 조항들이 태아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면서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나. 심판의 대상
이 사건 헌법소원의 심판대상은 민법(1958. 2. 22. 법률 제471호로 제정된 것) 제3조와 제762조(이하에서 이들 조항을 합하여 “이 사건 법률조항들”이라 한다.)가 위헌인지 여부이며, 심판대상 조항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민법 제3조(권리능력의 존속기간) 사람은 생존한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
민법 제762조(손해배상청구권에 있어서의 태아의 지위) 태아는 손해배상의 청구권에 관하여는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
2. 청구인들의 주장 및 관계기관의 의견
가. 청구인들의 주장
나. 대법원의 위헌제청신청 기각결정의 이유
그런데 태아의 권리능력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여부는 각국의 입법
다. 법무부장관의 의견 요지
(1) 청구인 신○재, 신○창은 사산된 태아의 2순위 상속인인 태아의 형제들로서 가사 사산된 태아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상속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사건 각 심판청구 중 청구인 신○재, 신○창의 청구부분은 재판의 전제성이 없어 부적법하다.
그러나 사산된 태아의 손해배상청구권의 문제는 태아의 생명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측면이 아니고 일단 생명권이 침해된 이후에 사후적으로 금전적인 보상을 어떠한 법리를 통하여 인정하여 줄 것인가 하는 방법을 정하는 문제에 불과하고 이러한 방법을 정하는 데 있어서는 입법부의 광범위한 재량이 인정된다고 할 것이다. 또한 사산된 태아의 권리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태아의 부모는 모체의 손상 및 정신적 피해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을
3. 적법요건에 관한 판단
가. 청구기간
(1) 청구인 신○호의 청구 부분
위 청구인은 위헌법률심판 제청신청 기각결정문이 통지된 2004. 9. 10.로부터 5일이 지난 2004. 9. 15. 헌법재판소에 국선대리인 선임신청을 하였고 이 신청은 2004. 10. 12. 기각되어 2004. 10. 18. 위 청구인에게 통지되었다. 헌법재판소법 제70조 제4항에 의하면 국선대리인 선임신청이 기각된 경우 신청인이 선임신청을 한 날로부터 기각통지를 받은 날까지의 기간은 헌법재판소법 제69조의 규정에 의한 청구기간에 이를 산입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적어도 2004. 9. 15.부터 2004. 10. 18.까지의 기간은 위 제69조의 청구기간에 산입되지 않는다. 따라서 2004. 10. 28. 청구된 위 청구인의 심판청구 부분은 청구기간을 준수하였다(헌법재판소법 제69조 제2항).
(2) 청구인 정○미, 신○재, 신○창의 청구 부분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에 의한 헌법소원심판은 위헌법률심판 제청신청 기각결정을 통지받은 날부터 30일 이내에 청구하여야 함에도(헌법재판소법 제69조 제2항), 위 청구인들은 위헌법률심판 제청신청 기각결정을 통지 받은 날인 2004. 9. 10.로부터 49일이 지난 2004. 10. 28. 이 사건 헌법소원 심판청구를 하였으므로, 위 청구인들의 심판청구는 청구기간을 도과한 것으로 부적법하다.
나. 재판의 전제성
(1) 민법 제3조 부분
민법 제762조는 ‘태아는 손해배상의 청구권에 관하여는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바, 이 규정을 문면 그대로 해석할 경우 사산된 태아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할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산한 태
(2) 민법 제762조 부분
다. 청구인 신○호의 청구가 법률해석의 위헌성을 다투는 것으로서 부적법한 것인지 여부
법무부장관은 이 사건 심판청구가 ‘법률조항’ 자체의 위헌성을 다투는 것이 아니라 ‘법률의 해석’의 위헌성을 다투는 것으로서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므로 살피건대, 태아가 사산된 경우에 권리능력이 인정되지 않는 것은 이 사건 법률조항들에 대한 해석론을 전제로 한 것이기는 하지만, 법원은 종래 민법 제762조의 출생의제조항을 민법 제3조에 비추어 해석해 왔고, 이러한 법원의 해석은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확립된 판례로서 “법원의 해석에 의하여 구체화된 심판대상 규정의 위헌성”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볼만큼 일정한 사례군이 상당 기간에 걸쳐 형성, 집적된 경우에 해당하므로, 이 사건 심판청구는 법률조항 자체의 위헌성을 다투는 경우로 이해할 수 있어 이 사건 심판청구는 적법하다.
라. 결 론
이 사건 헌법소원 심판청구 중 청구인 신○호의 청구 부분은 적법하나 나머지 청구인들의 청구 부분은 청구기간을 도과한 것으로 모두 부적법하다.
4. 본안에 관한 판단
가. 관련되는 기본권
이 사건 법률조항들은 생명에 대한 침해가 있고 난 이후의 손해의 배상에 관련된 규정으로서 가령 형법의 낙태죄와 같이 생명의 직접적 보호를 위한 것은 아니지만, 생명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는 생명을 침해한 불법행위에 대하여 손해의 배상을 구하는 청구권이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들의 위헌 여부
는 헌법상 기본권인 생명권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 그러므로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사건 법률조항들의 위헌 여부에 대한 판단은 국가가 생명권에 관한 기본권보호의무를 위반한 것인지 여부에 대한 심사를 필요로 한다.
한편, 살아서 출생한 태아에 대해서는 태아 상태에서 입은 신체적 손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하면서도, 살아서 출생하지 않은 태아에 대해서는 태아 상태에서 생명이 침해된 경우임에도 살아서 출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손해배상청구권을 부정하는 것은 ‘살아서 출생한 태아의 경우’와 ‘살아서 출생하지 않은 태아의 경우’를 단지 출생이라는 사실을 요건으로 차별취급하는 결과가 된다. 하지만 이 사건 법률조항들이 국가의 생명권에 관한 기본권보호의무를 위반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는 한 그와 같은 차별은 합리적 차별로서 평등권에 반하는 것이라 하기 어려우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들에 대해 국가의 생명권에 관한 기본권보호의무 위반여부를 심사하는 한 별도로 헌법상 평등권 침해 여부를 심사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이 사건 법률조항들의 위헌 여부에 대한 판단은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기본권인 헌법상 생명권에 관한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할 것이므로 평등권 침해 여부에 대해서는 더 이상 판단하지 아니한다.
나. 태아의 생명권 주체성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이 세상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엄한 인간 존재의 근원이다. 이러한 생명에 대한 권리, 즉 생명권은 비록 헌법에 명문의 규정이 없다 하더라도 인간의 생존본능과 존재목적에 바탕을 둔 선험적이고 자연법적인 권리로서 헌법에 규정된 모든 기본권의 전제로서 기능하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헌재 1996. 11. 28. 95헌바1 , 판례집 8-2, 537, 545 참조). 모든 인간은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가 되며, 형성 중의 생명인 태아에게도 생명에 대한 권리가 인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태아도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가 되며, 국가는 헌법 제10조에 따라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다. 이 사건 법률조항들의 의미와 이 사건의 쟁점
재산권의 보호나 불법행위로부터의 보호 등 특별히 태아를 보호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개별규정을 두어 태아를 보호하고 있다. 따라서 예외적이긴 하지만 출생 전 생명인 태아도 민법상 보호를 받을 수 있으며, “태아는 손해배상의 청구권에 관하여는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는 민법 제762조 또한 그러한 예외적 보호규정들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법원은 태아에 대한 개별적 보호규정들을 해석함에 있어 민법 제3조의 취지를 고려하여 태아가 살아서 출생한 경우에 한해 소급적으로 태아라도 권리능력을 갖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이른바 정지조건설. 대법원 1976. 9. 14. 선고 76다1365 판결 참조). 따라서 이 사건의 경우와 같이 태아가 살아서 출생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사망에 이른 경우에는 권리능력 내지 손해배상청구권이 인정될 여지가 없다.
결국 이 사건에서는 국가가 사인에 의한 태아의 생명 침해에 대하여 태아 자신에게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하는 입법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입법부작위 내지 불완전한 입법이 위헌인지 여부가 문제된다. 그런데 설령 국가가 입법조치를 통해 태아 자신에게 생명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그와 같은 청구권은 태아의 생명 침해가 있은 이후에 사후적으로 실현되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태아의 생명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이 태아의 생명권으로부터 직접 도출되는 것으로 보거나 태아의 생명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이 그 자체로서 태아의 생명권의 내용이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아의 생명 침해에 대하여 태아 자신에게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하게 되면, 그 위하력으로 인하여 태아의 생명이 침해되는 것을 일반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효과가 제고되는 측면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태아 자신에게 손해배상청구권을 허용하지 아니하는 현재의 법상태가 태아의 생명권 보호를 위한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를 다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검토를 요구하게 된다.
다한 것으로 볼 것인가의 여부가 이 사건의 관건인 것이다.
라. 이 사건 법률조항들이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는데 미흡하여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를 위반한 것인지 여부에 대해 본다.
그런데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 보호의무는 궁극적으로 입법자의 입법행위를 통하여 비로소 실현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입법자의 입법행위를 매개로 하지 아니하고 단순히 기본권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헌법상 광범위한 방어적 기능을 갖게 되는 기본권의 소극적 방어권으로서의 측면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국가가 소극적 방어권으로서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경우 그 제한은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국가안전보장ㆍ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고,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는 없으며 그 형식은 법률에 의하여야 하고 그 침해범위도 필요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 그러나 국가가 적극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반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담하는 경우에는 설사 그 보호의 정도가 국민이 바라는 이상적인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여 언제나 헌법에 위반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의 이행은 입법자의 입법을 통하여 비로소 구체화되는 것이고, 국가가 그 보호의무를 어떻게 어느 정도로 이행할 것인지는 입법자가 제반사정을 고려하여 입법정책적으로 판단하여야 하는 입법재량의 범위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입법자가 기본권 보호의무를 최대한 실현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그러한 이상적 기준이 헌법재판소가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심사기준이 될 수는 없으며, 헌법재판소는 권력분립의 관점에서 소위 “과소보호금지원칙”을, 즉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하여 적어도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취했는가를 기준으로 심사하게 된다. 따라서 입법부작위나 불완전한 입법에 의한 기본권의 침해는 입법자의 보호의무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
있는 경우에만 인정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국가가 국민의 법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아무런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았든지 아니면 취한 조치가 법익을 보호하기에 명백하게 부적합하거나 불충분한 경우에 한하여 헌법재판소는 국가의 보호의무의 위반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헌재 1997. 1. 16. 90헌마110 , 판례집 9-1, 90, 120-123 참조).
(2) 이 사건 법률조항들에 대해서도 입법자가 기본권 보호의무를 이행함에 있어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마련하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심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가가 생명을 보호하는 입법적 조치를 취함에 있어 인간생명의 발달단계에 따라 그 보호정도나 보호수단을 달리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예컨대 형법은 생명의 단계에 따라 살인죄, 영아살해죄, 낙태죄로 구분하여 생명침해행위를 처벌함으로써 보호수단을 차별화하고 있으며, 이 사건 법률조항들 역시 출생의 전후를 구분하여 보호를 차등화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보호의 차별화 내지 차등화가 정당화될 수 있는지 여부는 ‘기본권 보호의무의 이행’이라는 관점에서 논의될 성질의 것이지 과잉금지원칙의 관점에서 논의될 성질의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과잉금지원칙은 국가가 국민의 소극적 방어권으로서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경우에 적용되는 법리이지, 이 사건의 경우와 같이 국가와의 관계에서 개인의 기본권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사인 상호간에 기본권적 법익 침해가 문제되어 국가가 생명발전의 각 단계에서 그 각 단계별로 생명보호를 위해 어떤 수단을 투입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경우에 적용되는 법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3) 이 사건 법률조항들에 따르면 사산한 태아의 경우 불법적인 생명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그런데 태아에게 생명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할 것인가의 여부는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직접적인 수단이라기보다는 태아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행위가 있고 난 이후에 사후적으로 불법적 생명침해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을 허용할 것인가의 문제로서 그 인정 여부는 입법자에게 입법형성재량이 허용되는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고 볼 것이다.
법적안정성의 요청은 인간의 권리능력이 언제부터 시작되는가에 관하여 가능한 한 명확하게 그 시점을 확정할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형성이 출생 이전의 그 어느 시점에서 시작됨을 인정하더라도, 법적으로 사람의 시기를 출생의 시점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헌법적으로 금지된다고 할 수 없다. 물론 인간의 권리능력의 시기를 출생 이전의 어느 시점으로 정하는 것이 반드시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될 경우 구체적인 법률관계에서 권리능력의 존재를 확정하고 입증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존재하게 될 것이라는 점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4) 한편 우리 형법은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연적인 분만기 이전에 인위적인 수단으로 태아를 모체 밖으로 배출시키거나, 모체 내에서 태아를 살해하는 행위를 낙태에 관한 죄(형법 제269조, 제270조)로 처벌하고 있고, 모자보건법 제14조는 예외적으로 5가지 정당화사유에 한해 낙태를 허용하고 있으며, 또한 동법 시행령 제15조는 인공임신중절행위에 대해 임신한 날로부터 28주 이내에만 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낙태를 시간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와 같이 입법자는 형법과 모자보건법 등 관련 규정들을 통하여 태아의 생명에 대한 직접적 침해위험을 규범적으로 충분히 방지하고 있으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들이 태아가 사산한 경우에 한해서 태아 자신에게 불법적인 생명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하여 단지 그 이유만으로 입법자가 태아의 생명보호를 위해 국가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보호조치마저 취하지 않은 것이라 비난할 수는 없다. 더욱이 태아가 살아서 출생한 경우 태아 상태에서 가해진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는 민법 제762조에 의해 유효하게 행사할 수 있으므로 살아서 출생한 태아에 관한 한 태아의 신체, 건강침해는 완전하게 보호되고 있는 것이다.
(5) 생명의 연속적 발전과정에 대해 동일한 생명이라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동일한 법적 효과를 부여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동일한 생명이라 할지라도 법질서가 생명의 발전과정을 일정한 단계들로 구분하고 그 각 단계에 상이한 법적 효과를 부여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예컨대 형법은 태아를 통상 낙태죄의 객체로 취급하지만, 진통시로부터 태아는 사람으로 취급되어 살인죄의 객체로 됨으로써 생명의 단계에 따라 생명침해행위에 대한 처벌의 정도가 달라진다. 나아가 태아는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한 때로부터 낙태죄의 객체로 되는데 착상은 통상 수정 후 14일 경에 이루어지므로, 그 이전의 생
명에 대해서는 형법상 어떠한 보호도 행하고 있지 않다. 이와 같이 생명의 전체적 과정에 대해 법질서가 언제나 동일한 법적 보호 내지 효과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사건 법률조항들의 경우에도 ‘살아서 출생한 태아’와는 달리 ‘살아서 출생하지 못한 태아’에 대해서는 손해배상청구권을 부정함으로써 후자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으나 이러한 결과는 사법(私法)관계에서 요구되는 법적안정성의 요청이라는 법치국가이념에 의한 것으로 헌법적으로 정당화된다 할 것이므로, 그와 같은 차별적 입법조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곧 국가가 기본권 보호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입법적 조치를 다하지 않아 그로써 위헌적인 입법적 불비나 불완전한 입법상태가 초래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6) 우리 민법은 모든 개인에게 사법관계에서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자격, 즉 권리능력을 평등하게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전술한 바와 같이 사법관계의 초석이 되는 이 같은 권리능력은 그 취득시기가 무엇보다도 명확해야 할 필요가 있을 뿐만 아니라 동일한 법적 이념을 추구하는 세계각국과도 보조를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비교법적으로 볼 때, 독일이나 스위스에서는 ‘출생의 완료’로써 사람의 권리능력이 시작된다는 것을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고, 특히 스위스의 경우 태아의 권리능력을 일반적으로 인정하면서도 살아서 출생할 것을 조건으로 한다는 점을 명문화하고 있으며, 그 밖에 태아가 사산한 경우에 태아 자신에게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하고 있는 입법례나 실무례를 찾아보기도 어렵다.
(7) 그렇다면 이 사건 법률조항들이 권리능력의 존재 여부를 출생시를 기준으로 확정하고 태아에 대해서는 살아서 출생할 것을 조건으로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이러한 입법적 태도가 입법형성권의 한계를 명백히 일탈한 것으로 보기는 어려우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들이 국가의 생명권 보호의무를 위반한 것이라 볼 수 없다.
5. 결 론
6. 재판관 조대현의 한정위헌의견
태아는 형성 중인 인간이다. 태아는 모체(母體)의 자궁 속에서 모체로부터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받아 성장하지만, 모체의 일부가 아니라, 모체와 다른 별개의 인체(人體)를 형성하고, 모체와 다른 혈액을 만들고, 모체와 다른 독립된 뇌세포와 신경조직을 형성한다. 이처럼 태아는 독립된 인간으로 자라고 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출생하기 전에도 형성 중인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고 보아야 하고 이를 보호하여야 한다. 태아의 존엄과 가치도 헌법 제10조에 의하여 존중되고 보호된다고 보아야 한다.
민법은 제3조에서 “사람은 생존한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고 규정하는 한편, 태아가 불법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거나(민법 제762조) 아버지로부터 인지를 받거나(민법 제858조) 상속이나 유증을 받는 경우(민법 제1000조 제3항, 제1064조)와 같이 태아를 특별히 보호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태아가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의 일반적인 권리능력은 출생한 이후의 사람에게만 인정되고, 출생하기 전의 태아는 원칙적으로 권리능력을 가지지 못하고 법률이 태아의 권리능력을 인정하도록 특별히 규정한 경우에 한하여 권리능력을 가진다고 해석되고 있다.
권리능력은 권리와 의무의 주체로 될 수 있는 자격이다. 출생하기 전의 태아는 모체의 자궁 속에서 모체에 의존하여 인간으로 성장하면서,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일반적으로 법률관계나 권리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아니므로, 태아에게 일반적인 권리능력을 인정할 필요는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민법이 출생 전의 태아에게 일반적인 권리능력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태아에게 특별히 권리능력을 인정할 필요가 있는 경우(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인지, 상속, 유증 등)에만 개별적으로 권리능력을 인정하고 있는 것은, 전체적으로 보아 태아의 존엄과 가치를 무시하는 것이라거나 헌법에 위반된다고 보기 어렵다.
이처럼 태아의 권리능력을 일반적으로 부정하는 민법 제3조가 태아의 존엄
민법 제762조는 태아가 출생하기 전에도 손해배상청구권을 취득할 수 있는 권리능력을 인정하는 것이므로, 권리능력의 존속시기에 관한 일반원칙을 규정하고 있는 민법 제3조에 대한 예외를 규정한 특별규정이라고 할 것이다. 특별규정인 민법 제762조가 적용되는 경우에는 일반규정인 민법 제3조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태아는 출생하기 전에도 손해배상청구권을 취득·보유·행사할 수 있는 것이고, 그 태아가 출생하기 전에 사망한 경우에도 이미 인정되었던 권리능력은 소급적으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아의 사망시까지 존속하다가 사망으로 인하여 소멸되는 것이고, 태아가 살아서 출생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태아가 이미 취득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처음부터 취득하지 않은 것으로 되거나 소급하여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아의 사망시까지 태아가 보유하다가 태아의 사망을 원인으로 상속된다고 보아야 한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민법 제762조와 같은 특별규정을 둔 취지와 헌법 제10조의 요구에 맞추어 태아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길이다.
그런데 대법원은 민법 제762조를 적용함에 있어, 태아는 살아서 출생한 경우에만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을 가진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법률해석은 태아가 살아서 출생한 경우에만 태아를 보호하는 것이므로, 살아서 출생한 사람만 태아 기간 중에 발생한 불법행위 시기에 소급하여 보호할 뿐, 태어나기 전의 태아 자체는 보호하지 않는 셈으로 된다. 그리고 타인의 불법행위로 태아가 부상하거나 부모가 사망한 경우에는 태아의 손해배상청구
7. 재판관 김종대의 한정위헌의견
가. 태아의 기본권 주체성
태아가 기본권의 주체인지에 대한 판단은 태아를 사람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문제이다. 모든 인간은 기본권의 주체가 될 수 있으므로 태아를 사람이라고 보는 한 태아의 기본권 주체성을 부인할 수 없다. 태아의 기본권 주체성 인정 여부는 규범적 가치판단의 문제이지만 결국은 생물학적 인식의 결과에 따를 수밖에 없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인 이상 그 자체로 기본권의 주체가 되는 것이지 기본권의 주체가 될 만한 자격과 조건을 갖춘 인간에 한해서만 기본권 주체성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사람으로 볼 것인지에 관해서, 수태의 순간부터로 보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배아 단계를 넘어 수정 후 2주를 지난 때부터 사람의 개체성을 가진 생명체로 이해하는 것이 생물학적, 의학적으로 일반화된 견해이다.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사람의 나이를 출생과 동시에 한 살로 보았으며 태교라 하여 태아에 대해서도 교육이 필요한 것으로 관념하였는데, 이 또한 태아가 사람임을 전제로 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태아는 생물학적으로 사람으로 보아야 하며 사람인 이상 태아도 당연히 기본권의 주체가 된다.
나. 태아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생명권
태아도 생명체로서 사람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
치를 가지며 기본권의 주체가 되긴 하나, 모체 내에서 모체에 결합되어 있고 생명의 유지와 성장을 전적으로 모체에 의존하고 있다는 특성으로 인해 태어나기까지는 불완전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비록 관념적으로는 모든 기본권에 대해 태아의 기본권 주체성을 인정할 수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 태아에게 보장해 줄 기본권의 범위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예컨대 신체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직업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언론ㆍ출판의 자유 등 사실상 대부분의 기본권들은 태아에게 있어 무의미하다).
그러나 기본권 중에서도 생명권은 사람의 생명을 보장받는 권리이며 모든 기본권의 전제가 되는 시원적 권리로서, 출생 이후의 인간 못지않게 출생 전의 태아에게도 인정되어야 할 기본권이며, 이 점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10조의 규정상 명백하다. 따라서 태아의 생물학적 특성상 태아에게 기본권 주체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결국 태아에게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인정하여 생명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함이 타당하고, 이때 태아의 생명권의 내용을 이루는 것은 태아를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는 생명의 실체적 주체로 인정하고 그 생명을 직·간접적 침해로부터 보호하는 것을 말한다.
다. 이 사건 법률조항들의 위헌 여부
(1) 민법은 제3조에서 “사람은 생존한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고 규정하고 있고, 여기서 “생존한 동안”은 출생시부터 사망시까지로 해석되고 있다. 한편, 민법 제762조는 “태아는 손해배상의 청구권에 관하여는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함으로써 태아의 손해배상청구권에 관해서는 민법 제3조의 특칙을 정해놓고 있다. 민법 제3조가 재산권을 주된 대상으로 하는 조항이고 제762조는 그에 대한 특칙을 규정한 것으로 보아, 제762조를 제대로만 문리해석을 하게 된다면 굳이 위 조항들에 대한 위헌 논의는 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2) 헌법 제10조 제2문은 국가로 하여금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실현을 위해 개인의 생명을 보호하여야 할 의무가 있으며, 이를 위해 국가는 스스로 개인의 생명을 침해할 수 없음은 물론, 사인에 의한 침해로부터 개인의 생명을 보호할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야 한다.
타인의 생명을 침해한 자에 대해 살인죄로 처벌하여 형사적 책임을 지우고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통해 사법상의 책임을 묻도록 함으로써 국가는 개인의 생명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법적, 제도적 조치를 마련하고 있다.
태아도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생명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태어난 사람과 다를 바 없다. 그리하여 태아의 생명을 침해한 자에 대해서도 낙태죄 또는 모자보건법위반죄와 같은 형사적 책임을 지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태아는 손해배상의 청구권에 관하여는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는 민법 제762조를 ‘태아가 살아서 출생한 경우에만 손해배상청구권을 취득하되 다만 그 청구권의 발생 시기만 태아 당시로 소급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면, 생명을 침해당한 태아는 이미 살아서 출생할 수 없음이 명백해졌으므로 손해배상청구권을 취득할 수 없게 되고, 태아의 생명을 침해한 자는 태아에 대하여 아무런 사법상 책임을 지지 않게 된다. 이는 국가가 태아의 생명을 실체적인 가치로 인정하지 않고 허구적이고 조건적인 것으로 인식함으로써 태아의 생명을 경시하는 것으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개인의 생명을 보호하여야 할 국가가 그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결과이다.
(3) 민법 제762조를, 살아서 출생한 태아에 한해서만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함으로 인한 국가의 기본권 보호의무 해태는, 태아가 불법적인 침해행위로 사망한 경우와 단지 상해만을 입어 출생한 경우를 비교해 보면 더욱 명백해 진다. 불법적인 침해행위를 당한 태아가 상해를 입고 출생하면 태아는 가해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권을 취득하지만, 그 불법적인 침해행위로 사망한 경우에는 태아는 아무런 손해배상청구권을 취득할 수 없게 되는데, 이러한 결과는 태아의 신체를 훼손한 자는 사법상의 책임을 지지만 태아의 생명을 침해한 자는 아무런 사법상의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이는 헌법이 부여하고 있는 태아에 대한 기본권 보호 의무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라 할 것이다.
라. 결 론
그러므로 민법 제762조가 태아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살아서 출생한 태아의
재판관
재판관 이공현(재판장) 조대현 김희옥 김종대 민형기 이동흡(주심) 목영준 송두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