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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19. 7. 11. 선고 2017도15651 판결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도주차량)·도로교통법위반(사고후미조치)·도로교통법위반(무면허운전)][미간행]

판시사항

구 도로교통법 제54조 제1항 의 취지 및 교통사고를 일으킨 운전자가 취해야 할 조치의 내용과 정도 / 교통사고를 일으킨 운전자가 자신의 인적 사항이나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은 채 사고 후 즉시 차량을 운전하여 현장을 벗어나는 경우, 필요한 조치를 다한 것인지 여부(소극) 및 이때 사고로 인하여 피해 차량이 경미한 물적 피해를 입은 데 그치고 파편물이 도로 위에 흩어지지 않았더라도 마찬가지인지 여부(원칙적 적극)

피 고 인

피고인

상 고 인

검사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지방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원심 판단

가. 이 사건 공소사실 중 도로교통법 위반(사고후미조치) 부분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피고인은 2016. 12. 17. 16:51경 (차량번호 1 생략) 리베로 화물자동차(이하 ‘가해차량’이라 한다)를 운전하여 대전 ○구 △△△로□□번길에 있는 ◇◇아파트 ☆동 옆 도로를 상가 입구 쪽에서 관리사무소 쪽으로 우회전하여 진행하다가 후진을 하게 되었다. 피고인은 후방주시의무를 게을리한 채 그대로 후진하여 때마침 피고인의 진행 방향 뒤쪽에서 피고인의 화물차를 따라 진행 중이던 피해자가 운전하는 (차량번호 2 생략) 폭스바겐 승용차(이하 ‘피해차량’이라 한다)의 왼쪽 앞펜더 부분을 가해차량 뒤쪽 범퍼 부분으로 들이받았다.

피고인은 위와 같은 업무상 과실로 피해차량을 수리비 4,621,210원 상당이 들도록 손괴하고도 곧 정차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대로 도주하였다.

나. 원심은 이 부분 공소사실을 무죄로 인정한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피해차량의 견적수리비가 많이 나오긴 하였으나 실제 피해 정도가 경미하여 충돌로 인한 파편물이 도로에 흩어지지는 않았고, 피해자도 비교적 경미한 상해를 입었다. 피해자는 보험회사에 연락하고 경찰에 신고만 하였을 뿐 피고인을 추격하지는 않았다. 교통사고 장소는 아파트 단지 내의 도로로서 차량의 통행이 빈번하지 않고 주행 차량도 서행하는 곳이고, 날씨도 맑아 운전자들의 시야가 잘 확보된 상태여서 2차 사고의 위험성은 극히 낮았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이 사건 교통사고로 인한 교통상의 위험과 장해를 제거하여 원활한 교통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

2. 대법원 판단

가. 구 도로교통법(2016. 12. 2. 법률 제1435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도로교통법’이라 한다) 제54조 제1항 은 도로에서 일어나는 교통상의 위험과 장해를 방지·제거하여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교통사고를 일으킨 운전자는 사고 내용과 피해 정도 등 구체적 상황에 따라 건전한 양식에 비추어 통상 요구되는 정도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교통사고를 일으킨 운전자가 자신의 인적 사항이나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은 채 사고 후 즉시 차량을 운전하여 현장을 벗어나는 경우에는 도주의 운전 자체는 물론 이를 제지하거나 뒤쫓아 갈 것으로 예상되는 피해자의 추격 운전으로 또 다른 교통상의 위험과 장애가 야기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필요한 조치를 다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사고로 인하여 피해 차량이 경미한 물적 피해를 입은 데 그치고 파편물이 도로 위에 흩어지지 않았더라도 달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마찬가지이다 ( 대법원 1993. 11. 26. 선고 93도2346 판결 , 대법원 2010. 2. 25. 선고 2009도11057 판결 등 참조).

나.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따르면 다음 사정을 알 수 있다.

피고인이 운전상 과실로 교통사고를 일으켰는데, 당시 차량이 흔들릴 정도의 충격이 있었고 수리비가 4,621,210원일 정도로 피해차량이 손괴되었으며, 피해자는 경추 염좌 등의 상해를 입고 1주일간 입원치료를 받았다. 피고인은 사고 직후 불과 몇 초간 피해차량 쪽을 쳐다본 다음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은 채 곧바로 차량을 운전하여 현장을 벗어났다. 피해자의 경찰 진술에 따르면 피고인의 얼굴을 보았을 때 술을 마신 것으로 보였다는 것이고, 피고인의 진술에 따르더라도 음주·무면허운전으로 처벌받아 집행유예 기간 중에 무면허로 운전한 것이 발각될 것을 염려하여 도주하였다는 것이다. 피해자는 피고인이 도주할 때까지 운전석 쪽의 손괴로 운전석 문이 열리지 않아 피해차량에서 하차하지 못하였고 가해차량의 번호도 확인하지 못하였다.

다. 이러한 사정을 위에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판단할 수 있다.

피고인은 교통사고를 일으키고도 사고 직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채 가해차량을 운전하여 현장을 벗어났다. 피해자가 실제로 피고인을 추격하지는 않았지만 사고 내용이나 피해 정도, 가해자인 피고인의 행태 등에 비추어 피고인을 추격하려 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피고인이 경찰관 등을 피하기 위해 급하게 가해차량을 운전하여 도주함으로써 피고인의 도주 운전 자체는 물론 이를 제지하거나 뒤쫓는 피해자의 추격 운전으로 또 다른 교통상의 위험과 장애가 야기될 수 있었다. 교통사고로 파편물이 도로 위에 흩어지지 않았고 피해자가 실제 피고인을 추격하지 않았으며 사고 발생 장소가 아파트 단지 내 도로이고 날씨가 맑아 시야가 잘 확보된 상태였다는 등의 사정은 위와 같은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교통사고를 일으킨 피고인으로서는 구 도로교통법 제54조 제1항 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했어야 하는데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도주한 것이다.

도로교통법 위반(사고후미조치) 부분을 무죄로 인정한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한 원심판결에는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도로교통법 위반(사고후미조치)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3. 결론

원심판결 중 도로교통법 위반(사고후미조치) 부분은 파기되어야 할 것인데 이는 원심이 유죄로 인정한 나머지 부분과 상상적 경합범 관계에 있으므로 결국 원심판결은 전부 파기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이동원(재판장) 조희대 김재형(주심) 민유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