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보(제22호)]
처벌조항의 직접성을 인정하지 아니한 사례
부정수표단속법의 처벌조항은 그 자체로서 국민의 기본권에 직접 관련지어지는 법규범이 아니고 법원의 재판이라는 구체적 집행행위의 매개를 거쳐 비로소 특정인의 기본권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법규범이므로, 공소제기되어 재판계속중인 법원에 위헌여부심판의 제청신청을 한 후 그 신청이 기각된 때에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에 의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함은 별론으로 하고 직접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의하여 제기한 헌법소원심판의 청구는 직접성 요건을 갖추지 못하여 부적법하다.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제2항
1989. 3. 17. 선고, 88헌마1 결정
1989. 7. 21. 선고, 89헌마12 결정
1991. 3. 11. 선고, 91헌마21 결정
1991. 5. 13. 선고, 89헌마267 결정
청 구 인 이 ○ 식
대리인 변호사 우 영 제
이 사건 심판청구를 각하한다.
1. 사건의 개요와 심판의 대상
가. 사건의 개요
청구인은 1995. 10. 25. 부정수표단속법위반죄로 공소가 제기되어 1996. 1. 15. 서울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6월의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여 4. 18. 같은법원 항소부에서 징역 8월의 형을 선고받고, 4. 20.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나. 심판의 대상
이 사건의 심판대상은 부정수표단속법 제1조, 제2조 제2항, 제3조(동법은 1961. 7. 3. 법률 제645호로 제정되어, 1966. 2. 26. 법률 제1747호, 1993. 12. 10. 법률 제4587호로 2차에 걸쳐 개정되었으나 위 조항들은 개정된바 없다. 이하 “이 사건 법률조항”이라 한다)의 위헌 여부이고, 그 내용 및 관련조항은 다음과 같다.
제1조(목적) 이 법은 부정수표등의 발행을 단속처벌함으로써 국민의 경제생활의 안전과 유통증권인 수표의 기능을 보장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부정수표발행인의 형사책임) ② 수표를 발행하거나 작성한 자가 수표를 발행한 후에 예금부족·거래정지처분이나 수표계약의 해제 또는 해지로 인하여 제시기일에 지급되지 아니하게 한 때에도 전항과 같다.
제3조(법인·단체등의 형사책임) ① 전조의 경우에 발행인이 법인 기타의 단체일 때에는 그 수표에 기재된 대표자 또는 작성자를 처벌하며, 그 법인 또는 단체는 전조의 벌금에 처한다.
② 대리인이 수표를 발행한 경우에는 본인을 처벌하는 외에 그 대리인도 처벌한다.
제2조(부정수표발행인의 형사책임) ①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부정수표를 발행하거나 작성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수표금액의 10배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 가설인의 명의로 발행한 수표
2.금융기관(우체국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과의 수표계약없이 발행하거나 금융기관으로부터 거래정지처분을 받은 후에 발행한 수표
3. 금융기관에 등록된 것과 상위한 서명 또는 기명날인으로 발행한 수표
2. 청구인의 주장 및 관계기관의 의견
가. 청구인의 주장
(1) 수표는 수시요구불의 성격을 가진 유가증권인 점에서 약속어음과는 다르나, 현실의 거래관행에서는 수표도 약속어음의 경우와 같이 수취인이 발행인의 은행잔고가 없음을 알면서도 단지 지급기일에 수표금을 절대지급할 것이라는 신뢰를 가지고 교부하는 것이 통례라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민사책임만을 지는 어음과는 달리, 부정수표단속법 제1조가 국민경제생활의 안전과 수표의 기능 보장이라는 보호법익을 들어 수표발행자에 대하여 형사책임을 지도록 한 것은 형평에 반할 뿐 아니라, 헌법 제119조 제1항의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 존중 원칙에 위배된다.
(2) 개인간의 다양한 경제활동은 자유로운 경제질서 속에서만 그 비교가치가 창출되고 개인 또는 기업 상호간의 자연스러운 능력발휘, 조화, 보완 등을 통하여 발전해 나갈 수 있으므로 국가가 관여하여서는 아니됨에도, 수표발행이라는 개인간의 경제활동에 국가가 개입하여 수표부도시에 형벌권을 행사하는 것은 민법상 대원칙인 계약자유의 절대성에 반하고, 입법의 재량권의 한계를 일탈한 것이며, 나아가 벌금형 이외에 체벌까지 허용한 것은 헌법 제10조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 제34조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제37조 제2항의 기본권제한의 원칙에 위배된다.
(3) 부정수표단속법은 부정수표가 그 발행된 매수마다 각기 다른 원인과 내용을 가지고 있어 개별성과 고유성이 있음에도 이러한 특성을 무시하고 있으므로 형벌개별화의 원칙과 헌법 제27조의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 헌법 제10조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한다.
(4) 부정수표단속법 제3조가 수표발행인이 법인이나 단체일 때에는 그 수표에 기재된 대표자 또는 작성자를 처벌토록 하고, 특히 체형까지 규정하고 있는 것은 민법상 법인의 존재의의나 설립목적에 반하고 헌법 제37조 제2항의 기본권제한의 원칙에 위배된다.
나. 재정경제원장관의 의견
(1) 부정수표단속법은 1961년에 제정된 것으로 수표거래질서가 혼란스럽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 것이나, 오늘날 제도금융권이 확충되고 금융구조 및 신용의식이 확충되는 등 사회·경제적 여건이 확연히 변화하였다. 따라서 일시적인 자금부족으로 인한 부도발생시 기업주를 형사처벌하는 것보다는 회생을 위한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사회경제적인 비용을 줄일 수
있으며, 수표가 최종부도 처리될 경우 발행인은 금융거래가 정지되는 등 현실경제상의 제재가 있는 점, 수표법상 무자금수표 발행에 대하여는 5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규정이 있는 점, 수표는 결제수단인 성격상 어음과 큰 차이가 없고 우리와 같이 부도수표발행에 대하여 특별법을 통한 형사처벌을 규정하는 외국의 입법례도 없는 점 등에 비추어 일응 현행 법체계의 재고가 필요한 면이 있다.
(2) 그러나 아직도 금융거래에 있어 신용이 완전히 정착되지 아니한 상황에서 형사처벌규정이 폐지될 경우 수표부도가 크게 증가할 가능성이 있고, 현재 다수의 중소기업은 결제대금으로 어음보다는 지급이 확실히 담보되는 수표를 받는 것을 선호하고 있는바, 성급한 형사처벌의 폐지는 오히려 중소기업의 판매대금 회수를 더욱 어렵게 하여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으므로 신중한 판단이 요망된다.
다.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의 의견
(1) 이 사건 심판의 대상이 된 부정수표단속법은 1961. 7. 3. 제정되어 1966. 2. 26.과 1993. 12. 10. 개정, 보완을 거쳐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는 법으로서 그 개정 공포된 날인 1993. 12. 10.로부터 180일의 청구기간이 지나 제기된 이 사건 심판청구는 부적법하므로 각하되어야 한다.
(2)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이 사건 심판청구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기각되어야 한다.
첫째, 수표는 현금에 갈음하는 지급수단으로서 오늘날의 경제유통과정은 이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고 그 공신력의 보장 여부는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클 뿐 아니라, 우리의 현실은 부정수표의 증가로 인하여 경제계의 자율적인 규제만으로는 수표의 공신력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부정수표단속법에 의한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
둘째, 어음은 신용증권인 반면에 수표는 지급증권으로서 일람출급성이 있어 그 기능상 차이가 있고, 따라서 어음에는 민사책임만을 지우고 수표에는 형사책임을 수반하게 하는 것은 그 기능상의 차이에 따른 합리적 차별이므로 평등의 원칙에 반하지 아니한다. 또한 국민의 경제적인 개성 신장은 합리적인 경제질서를 전제로 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신용거래질서를 확립함으로써 국민경제생활의 안정을 기하려는 부정수표단속법은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성, 인간의 존엄과 가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등을 침해하는 것이라 할 수 없다.
셋째, 부정수표단속법은 수표거래질서 확보를 위한
본래의 법기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부도를 수습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부여하고(제7조 제1항의 금융기관의 고발의무기간 연장), 부도된 수표를 회수 한 경우에는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하며, 회수하지 못하였을 경우라도 수표소지인의 의사를 존중하여 처벌을 불원하는 때에는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제2조 제4항) 궁극적으로 부도를 낸 기업인에게 회생기회를 주어 국민경제발전에 이바지함과 아울러, 수표소지인을 보호하여 신용거래질서를 확립하는데 기여하고자 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 따라서 그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절성, 피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이 인정되므로 기본권제한의 원칙에 위배되지 아니한다.
넷째, 부정수표단속법위반 사건의 심리에 있어 법관은 발행된 부정수표의 매수마다 개별적·구체적으로 그 원인과 내용을 심리하고, 부정수표 회수를 위한 연기도 쉽게 해주고 있는 재판실무를 고려할 때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
다섯째, 오늘날의 사회경제생활에 있어서는 조직으로서의 기업의 활동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 기업조직에 의한 경제법규 위반행위가 있는 경우 실제로 행위를 한 자연인 외에도 기업조직 그 자체에 대한 규제조치가 요청되는 경우가 많다. 기업조직속에 있는 대표자, 대리인, 고용인 기타 종업원이 기업조직의 업무에 관하여 위반행위를 저지를 경우 업무주체에게도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이 때문이며, 이는 경제범죄의 특수성을 고려한 것으로서 형법 독자적인 입장에서 파악하여야 한다. 따라서 민법상의 법인의 법리와는 다르며, 이는 자연인의 자격이 아니라 기업조직의 대표로서 책임을 지는 것이므로 형사상 개별책임의 원칙에도 반하지 아니한다.
3. 판 단
먼저 직권으로 이 사건 심판청구의 적법여부에 관하여 살펴본다.
가.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의하면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하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고, 이 규정에 의한 공권력에는 입법권도 포함되므로 원칙적으로 법률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청구도 가능하다. 그러나 직접 법률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려면 먼저 청구인 스스로가 당해 법률에 의하여 별도의 구체적인 집행행위의 매개없이 직접·현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당하고 있는 경우이어야 한다(헌법재판소 1989. 3. 17. 선고, 88헌마1 결정;1989. 7. 21. 선고, 89헌마12 결정;1991. 3. 11. 선고, 91헌마21 결정;1991. 5. 13. 선고, 89헌마267 결정 등 참조).
나. 그런데 이 사건 법률조항은 그 자체로서 국민의 기본권에 직접 관련지어지는 법규범이 아니고, 구체적인 소송사건에서 법원에 의하여 해석, 적용되는 규범으로서 법원의 재판이라는 구체적인 집행행위의 매개를 거쳐 비로소 특정인의 기본권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법규범이다(헌법재판소 위 89헌마267 결정 참조).
그러므로 청구인으로서는 공소제기되어 재판 계류중인 법원에 이 사건 법률조항에 대한 위헌여부심판의 제청신청을 한 후 그 신청이 기각된 때에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에 의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함은 별론으로 하고, 이와 같은 절차를 거치지 않고 직접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의하여 제기한 이 사건 심판청구는 직접성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다 할 것이다.
다. 따라서 이 사건 심판청구는 부적법하므로 각하하기로 하여 관여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재판장 재판관 김 용 준
재판관 김 문 희
재판관 황 도 연
재판관 이 재 화
재판관 정 경 식
재판관 고 중 석
주 심 재판관 신 창 언
재판관 이 영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