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배상(기)][미간행]
원고 1 외 3인 (소송대리인 변호사 황용경 외 1인)
대한민국
2009. 2. 25.
1. 제1심 판결의 피고 패소부분을 취소하고, 그 취소부분에 해당하는 원고들의 청구를 각 기각한다.
2. 원고들의 부대항소를 모두 기각한다.
3. 소송총비용은 원고들이 부담한다.
1. 청구취지
피고는 원고 1에게 254,158,305원, 원고 2, 3, 4에게 각 119,438,870원 및 각 이에 대하여 1977. 10. 13.부터 이 사건 소장 부본 송달일까지는 연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2. 항소취지
주문 제1항과 같다.
3. 부대항소취지
제1심 판결 중 다음에서 지급을 구하는 돈에 해당하는 원고들 패소부분을 취소한다. 피고는 원고 1에게 15,000,000원, 원고 2, 3, 4에게 각 10,000,000원 및 각 이에 대하여 1977. 10. 13.부터 2008. 9. 18.까지는 연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1. 이 법원의 심판범위
원고들은 제1심에서 피고에 대하여 소극적 손해와 위자료의 지급을 구하였는데, 제1심은 그 중 소극적 손해에 대한 청구를 기각하고, 위자료 청구를 일부 인용하였다. 이에 대하여 피고가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원고들은 위자료 청구 부분에 대하여만 부대항소를 하였으므로, 이 법원의 심판범위는 위자료 부분에 한정된다.
2. 인정사실
이 법원이 이 부분에 관하여 설시할 이유는, 제1심 판결문 4면 11행의 “원고들은 소외 2에 대하여 실종신고를 하여 2005. 8. 23. 창원지방법원에서 1983. 4. 20. 실종기간 만료를 원인으로 한 실종선고심판( 2005느단31 )이 내려졌다.”를 “원고들의 청구에 따라 소외 2에 대하여 실종기간만료일을 1983. 4. 20.로 하는 실종선고심판( 창원지방법원 2005느단31호 )이 내려져 2005. 8. 23. 확정되었다.”로 고치는 외에는 제1심 판결 이유 1.항 기재와 같으므로, 민사소송법 제420조 본문에 의하여 이를 그대로 인용한다.
3.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의 발생
제1심 판결문 5면의 4행부터 13행까지의 기재와 같다.
4.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에 대한 판단
가. 피고의 주장
피고는, 피고의 불법행위책임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원고들은 1977. 10. 13.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알아 피고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고 할 것인데, 이 사건 소는 그때부터 소멸시효기간이 경과한 2007. 11. 22. 비로소 제기되었으므로, 원고들의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시효로 소멸하였다고 항변한다.
나. 소멸시효의 완성 여부
(1) 소멸시효기간
가) 원고들 주장의 손해배상채권은 원고들 고유의 손해배상채권(이하 ‘고유채권’이라 한다)과 원고들이 상속한 소외 2의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채권(이하 ‘상속채권’이라 한다)으로 구분되는바, 어느 것이든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본문 전단 규정에 따른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으로서, ① 금전의 급부를 목적으로 하는 국가에 대한 권리이므로, 구 예산회계법(1989. 3. 31. 법률 제4102호로 전문 개정되기 전의 것) 제71조 제2항 , 제1항 이 적용되므로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5년간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인하여 소멸하고(이하 장기시효라 한다), ② 국가배상법 제8조 의 규정에 의하여 민법 제766조 제1항 소정의 단기소멸시효제도가 적용되므로,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여도 시효로 소멸한다(이하 단기시효라 한다).
나) 그리고 ① 장기시효기간의 기산점이 되는 '불법행위를 한 날'이란 가해행위가 있었던 날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손해의 결과가 발생한 날을 의미하지만, 그 손해의 결과발생이 현실적인 것으로 되었다면 그 소멸시효는 피해자가 손해의 결과발생을 알았거나 예상할 수 있는가 여부에 관계없이 가해행위로 인한 손해가 현실적인 것으로 되었다고 볼 수 있는 때로부터 진행하고( 대법원 2005. 5. 13. 선고 2004다71881 판결 등 참조), ② 단기시효기간의 기산점이 되는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이라 함은 손해의 발생, 위법한 가해행위의 존재, 가해행위와 손해의 발생과의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는 사실 등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에 대하여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하였을 때를 의미하고, 국가배상청구 사건에서 가해자를 안다는 것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가해 공무원이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와의 간에 공법상 근무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또한 일반인이 당해 공무원의 불법행위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직무를 집행함에 있어서 행해진 것이라고 판단하기에 족한 사실까지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4다33469 판결 등 참조).
다) 한편, 피고 주장의 요지, 즉 ‘원고들이 1977. 10. 13. 손해 및 가해자를 알아 피고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었는데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여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주장에 의하면, 피고가 1977. 10. 14.을 기산일로 하여( 민법 제157조 소정의 초일불산입의 원칙상 1977. 10. 13.이 아니라 그 다음날을 피고 주장의 기산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단기시효기간을 주장하고 있음이 분명할 뿐만 아니라 그 주장 속에는 그 보다 장기간인 장기시효기간에 대한 주장이 포함되어 있다고 할 것이고, 나아가 어떤 권리의 소멸시효기간이 얼마나 되는지에 관한 주장은 단순한 법률상의 주장에 불과하므로 변론주의의 적용대상이 되지 않고 법원이 직권으로 판단할 수 있다 할 것이므로( 대법원 2006. 11. 10. 선고 2005다35516 판결 및 2009. 3. 12. 2008다76020 판결 등 참조), 이하에서는 피고 주장의 기산일인 1977. 10. 14.을 기준으로 단기시효나 장기시효가 완성되었는지 여부에 관하여 살피기로 한다(소멸시효의 기산일은 채무의 소멸이라고 하는 법률효과 발생의 요건에 해당하는 소멸시효 기간 계산의 시발점으로서 소멸시효 항변의 법률요건을 구성하는 구체적인 사실에 해당하므로 이는 변론주의의 적용 대상이므로, 법원으로서는 피고가 주장하는 기산일을 기준으로 소멸시효를 계산하여야 한다. 대법원 1995. 8. 25. 선고 94다35886 판결 등 참조).
(2) 고유채권의 소멸시효의 완성 여부
① 앞서 인정한 사실에 의하면, 소외 2가 1977. 10. 12. 직무수행중 같은 부대 소속 군무원인 소외 1에 의해 납북됨으로써 현실적으로 손해의 결과가 발생하였다고 할 것이므로 그 때가 '불법행위를 한 날'로서 장기시효기간의 기산점이 되는데, 피고 주장의 기산일인 1977. 10. 14.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1982. 10. 14. 장기시효가 완성하였다고 할 것이고, ② 갑 제11호증의 6, 15, 16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원고 1은 소외 2가 소외 1에 의해 납북된 다음날인 1977. 10. 13. 라디오 방송을 통해 사고 소식을 접한 후 소외 2가 소속한 부대 관계자로부터 ‘ 소외 1이 간통사실이 드러나자 이 사건 비행기를 몰고 월북하였고 소외 2는 정비점검차 탑승해 있다가 변을 당했다’는 취지의 얘기를 들어 이 사건 경위를 알게 된 사실, 이 사건 사고 당시까지 소외 2는 처인 원고 1과 사이에 금슬이 좋아 화목한 가정생활을 하면서 근검절약하는 등 가정생활이나 부대근무 등의 면에서 월북할만한 동기가 없었던 사실, 당시 사고를 조사한 보안부대도 소외 2에게는 하등의 월북용의점이 없고 단지 이 사건 비행기 점검차 탑승하였다가 소외 1이 돌발적으로 이륙하자 이를 저지 못하고 대동월북한 것으로 판단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어, 원고 1은 1977. 10. 13.경 피해자 본인 겸 다른 피해자들인 나머지 원고들의 법정대리인으로서 ‘손해 및 가해자’를 알았다고 할 것이므로, 그 다음날인 1977. 10. 14.을 기산일로 하여 3년이 지난 1980. 10. 14. 단기시효가 완성하였다고 할 것이다.
단기시효와 관련하여 원고들은 2007. 7. 25.경 통일부장관으로부터 소외 2를 납북자로 인정하는 내용의 통보가 있기 전까지는 소외 2가 소외 1에 의해 납북되었음이 규명되지 않아 원고들로서는 이 사건 사고가 소외 1의 불법행위로 인한 것인지를 인식하지 못하였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므로 살피건대, 단기시효기간의 기산일과 관련하여, 민법 제766조 제1항 소정의 ‘손해 및 가해자를 안다’고 함은 손해 및 가해자에 관하여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인식을 가지는 것을 의미하고 단순한 추측이나 추정을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아울러 그 가해행위가 불법행위로 인한 것임도 알아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기는 하나( 대법원 1995. 11. 10. 선고 95다32228 판결 등 참조) 이는 어디까지나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에 대한 인식의 문제로서 그 인식을 바탕으로 하여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는 판단과는 별개의 문제이고 또 불법행위가 있었음이 공적으로 확인되어야 할 필요까지 있다고 볼 수도 없다 할 것인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원고 1이 1977. 10. 13. 소외 2 소속 부대 관계자로부터 소외 2가 소외 1에 의해 납북되었다는 사실을 들었고 소외 2의 평소생활이나 당시에 이루어진 조사결과 역시 그와 같은 납북사실을 뒷받침하였으며 그 후 소외 2가 북한당국으로부터 종신특혜금을 받았다는 내용의 선전전단이 습득되어 소외 2의 월북혐의에 대해 다시 수사가 개시되기까지 그와 같은 납북사실을 부정하거나 의심케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도 아니므로, 원고 1은, 비록 공적인 확인이 없어 소외 2의 납북사실이나 피고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의 승소를 확신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1977. 10. 13.경 불법행위의 요건사실, 즉 군무원인 소외 1의 불법행위로 소외 2가 납북된 사실을 인식하였다고 할 것이어서, 원고들의 위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3) 상속채권의 소멸시효 완성 여부
(가) 소외 2는 직무수행중 같은 부대 소속 군무원인 소외 1에 의해 납북된 피해자 본인으로서 불법행위일인 1977. 10. 12. 그 손해 및 가해자도 알았다고 할 것이므로, 단기시효기간이나 장기시효기간은 모두 그 때가 기산점이 된다고 할 것인데, 피고 주장의 기산일인 1977. 10. 14.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1980. 10. 14. 단기시효가, 1982. 10. 14. 장기시효가 각 완성하였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소외 2는 납북으로 인하여 그 의사에 반하여 북한 치하에서 생활해 왔고 남북대치상황 등을 고려하면 소외 2가 피고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등 위 각 기간 내에 시효중단조치를 취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였다고 할 것인바, 이와 같은 경우에도 소멸시효의 완성을 인정하는 것은 권리자인 소외 2에게 가혹하므로, “천재 기타 사변으로 인하여 소멸시효를 중단할 수 없을 때에는 그 사유가 종료한 때로부터 1월 내에는 소멸시효가 완성하지 아니한다.”라는 민법 제182조 를 적용 또는 유추적용하여, 소외 2가 생환하거나 송환되는 등으로 스스로 시효중단조치를 취하거나 그 전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여 시효중단조치를 취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거나 또는 사망 후 그 상속인들이 시효중단조치를 취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 때로부터 1월 내에는 소멸시효가 완성하지 아니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소외 2에 대한 실종선고심판이 확정되어 상속이 개시됨으로써 상속인들인 원고들이 시효중단조치를 취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 2005. 8. 23.로부터 1월 내에는 소멸시효가 완성하지 아니한다.
(나) 한편, 상속재산에 속한 권리는 상속인의 확정 등이 있는 때로부터 6월 내에는 소멸시효가 완성하지 아니하고( 민법 제181조 ), 여기서 말하는 상속인의 확정은 상속인의 존부불명 내지 소재나 생사불명인 경우에 상속인이 확정된 경우뿐만 아니라 상속의 승인 여부가 확정되지 아니하다가 상속의 승인에 의하여 상속의 효과가 확정된 경우도 포함한다. 따라서 소외 2에 대한 실종선고심판이 확정된 후 원고들의 단순승인이 의제됨으로써 상속의 효과가 확정된 2005. 11. 23 주1) . 로부터 6개월이 되는 2006. 5. 22.까지는 소멸시효가 완성하지 아니하고, 그 기간이 경과함으로써 소멸시효가 완성하였다고 할 것이다.
(4) 소결론
이와 같이 2006. 5. 23.까지는 고유채권 및 상속채권의 장·단기시효가 완성하였고, 이 사건 소는 그 후인 2007. 11. 22. 제기되었으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고유채권 및 상속채권은 모두 시효로 소멸하였다고 할 것이다.
다. 원고들의 주장에 대한 판단
(1) 소멸시효 기산일과 관련한 주장에 대한 판단
먼저, 원고들은 2007. 7. 25.경 통일부장관으로부터 소외 2를 납북자로 인정하는 내용의 통보를 받기 전까지는 소외 2와 원고들이 피고를 상대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사실상 장애상태가 있었으므로, 소멸시효기간은 2007. 7. 25.경부터 기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므로 살피건대, 소멸시효는 객관적으로 권리가 발생하여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터 진행하고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동안은 진행하지 않지만, 여기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경우라 함은 법률상의 장애사유, 예컨대 기간의 미도래나 조건불성취 등이 있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고, 단순한 사실상 장애사유(예컨대, 권리자의 개인적 사정이나 법률지식의 부족, 권리 존재의 부지 또는 채무자의 부재 등)는 해당하지 않아( 대법원 2002. 12. 10. 선고 2002다56031 판결 , 대법원 2006. 4. 27. 선고 2006다1381 판결 등 참조), 원고들이 들고 있는 사실상의 장애사유를 이유로 소멸시효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으므로, 원고들의 위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2) 권리남용 주장에 대한 판단
(가) 원고들의 주장
원고들은, 소외 2가 소외 1에 의하여 강제로 납북된 후 피고 소속 수사기관은 소외 2의 월북 혐의에 관하여 조사하면서 원고 1을 수십 차례에 걸쳐 강압적 방법으로 조사하는 외에 소외 2의 형제들을 고문하기까지 하였고, 그 조사과정을 거쳐 소외 2의 납북사실을 확인하였음에도 이를 원고들에게 알리지 않았음은 물론, 소외 2의 북한에서의 행적을 내세워 자진 월북한 혐의를 그대로 둔 채 기소중지처분을 하는 한편 원고들에 대해 그 연고자라 하여 지속적으로 동향을 감시하고 단기하사관을 지원한 원고 2를 신원문제로 탈락시키고 그 후 사병으로 입대하여 복무 중에 있던 원고 2의 보직까지 변경하는 등 원고들을 차별적으로 처우하였으며, 그와 같은 차별을 겪은 원고 2는 전역 후에도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응시할 수 있는 공무원 채용시험에 응시 자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바(연좌제가 폐지되었다고는 하나 실질적인 차별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원고들로서는 그와 같이 국가권력을 내세워 불이익한 처우를 하는 피고에 대해, 시효완성 전에 피고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거나 시효중단조치를 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였고 이는 피고 측의 행위 등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것이어서 피고가 새삼스레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나) 판단
1)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①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이하 제1 사정이라 한다), ②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이하 제2 사정이라 한다), ③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이하 제3 사정이라 한다), ④ 채권자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이하 제4 사정이라 한다)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그러나 국가에게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사유만으로 국가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신의칙에 반하고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하려면 앞서 본 바와 같은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어야 하고, 또한 위와 같은 일반적 원칙을 적용하여 법이 두고 있는 구체적인 제도의 운용을 배제하는 것은 법해석에 있어 또 하나의 대원칙인 법적 안정성을 해할 위험이 있으므로 그 적용에는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4다33469 판결 등 참조).
2) 이 사건에서 보면, 앞서 인용한 제1심 판결 이유의 인정사실이나 갑 제4호증, 갑 제11호증의 1 내지 44의 각 기재에 변론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피고 산하 보안부대는 이 사건 사고 후에 이루어진 월북사건 조사 결과 제반정황상 소외 2가 자진 월북한 것이 아니라 이 사건 비행기 점검차 탑승하였다가 소외 1의 돌발적인 이륙을 저지하지 못하여 대동월북한 것으로 판단한 사실, 그 후 1982. 7. 19. 소외 1과 소외 2가 북한 당국으로부터 종신특혜금을 받았다는 내용의 북한의 선전전단이 습득된 후 보안부대에서 소외 1과 소외 2의 월북 혐의에 대해 다시 수사하여 소외 2에 대하여는 ‘ 소외 2가 소외 1의 월북 기도를 알지 못하고 정비차 이 사건 비행기에 탑승하여 소외 1의 조정으로 지상 시운전 중 불법이륙하게 되었으나 이를 저지하지 못하고 동조하여 월북하였다는 점에 관한 범증은 충분하나 북한으로 탈출하여 부재중이므로 기소중지함이 타당하다’는 의견으로 관할 검찰관에게 송치하였고 그에 따라 1984. 12. 4. 기소중지처분이 내려진 사실, 관계 보안부대는 그 후 1년 가까이 원고들이나 소외 2의 다른 친인척들에 대해 감시활동을 한 사실, 이 사건 사고 이후 원고 2가 군복무에 있어서 신원문제로 불이익을 받은 적이 있고 원고들 모두 월북자의 가족으로 알려져 사실상의 불이익을 받아 온 사실은 인정된다.
우선, 제1 사정과 관련하여 ① 위 각 사실에 의하더라도, 단지 피고가 이 사건 사고 발생 후에 이루어진 조사결과 소외 2가 자진월북한 것이 아니라 소외 1에 의해 납북된 것으로 판단하였다가 그 후 북한 당국에 의해 소외 2가 월북자로 취급되어 대남선전에 이용되자 다시 수사한 끝에 소외 1의 월북을 저지하지 못하고 동조 월북하였다는 혐의를 유지한 채 기소중지 처분을 하였다는 정도만 알 수 있을 뿐으로, 피고가 적극적으로 사실을 조작하거나 소외 2의 납북사실을 확인하고도 이를 은폐하였다는 등의 사정이 나타나지는 않는 이상, 이를 들어 피고가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의 행사를 막거나 곤란하게 하는 행위를 하였다고 볼 수는 없고, ② 피고가 원고들에 대하여 동향을 감시하고 단기하사관을 지원한 원고 2를 신원문제로 탈락시키고 사병으로 입대하여 근무하던 원고 2의 보직을 변경한 것도, 남북대치상황에 따른 국가안보 차원에서 또는 이를 빙자하여 이루어진 과도한 공권력의 행사나 남용으로 볼 수는 있어도, 그 자체로 직접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의 행사를 막거나 곤란하게 하는 행위는 아니며, ③ 원고들이 주장하는 수사과정에서의 고문이나 강압적 조사 등도 그와 같은 사실이 있었다면 이는 별개의 불법행위로서 손해배상청구의 대상이 된다고 할 것이나 그 행위가 이 사건에 있어서 원고들이 구하고 있는 납북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행사를 막거나 곤란하게 하는 행위라고 볼 수는 없다 할 것이고, 달리 채무자인 피고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인 소외 2나 원고들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다음으로, 제2 사정과 관련하여, 원고들이 피고로부터 동향감시를 당하고, 원고 2의 경우에는 신원문제로 단기하사관으로의 입대가 거부되고 사병으로 입대하여 근무하던 중에는 보직이 변경되는 등으로 불이익 처우를 받아 오던 상황에서 피고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할 경우 받게 될 추가적인 불이익 등을 우려하여 원고들이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원고들의 주관적인 우려만을 근거로 곧바로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할 수는 없고, 그와 같은 장애사유가 있다고 하려면 위와 같은 원고들의 우려가 합리적 근거가 있어 원고들 이외의 제3자가 원고들의 입장에 선다 해도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인정할만한 사정이 인정되어야 할 것인데, 원고들은 소멸시효 완성 전까지 소외 2의 납북사실을 확인받거나 또는 납북에 따른 보상이나 배상을 받기 위하여 어떠한 조치를 취하였는지, 그에 대하여 피고가 어떻게 대응하였는지에 관한 별다른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있고, 단지 2007년에 이르러서야 피고 산하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납북사실을 증명해 달라는 민원을 제기하였고, 이에 대하여 국민고충처리위원회는 소외 2가 그 의사에 반하여 납북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회신을 하였고, 그 무렵 통일부도 ‘납북자 인정절차 및 통계관리 지침’에 따라 소외 2를 납북자로 인정하여 달라는 원고들의 신청을 받아들였다는 점만 알 수 있어, 위와 같은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앞서 인정한 사실이나 원고들의 주장에 의하더라도, ① 상속채권의 경우 원고들이 소외 2의 상속인으로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된 2005. 8. 23.부터 그 소멸시효가 완성된 2006. 5. 23.까지에는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을 권리남용이 되게 하는 사정이 전혀 없었고, ② 고유채권의 경우에도, 설령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을 권리남용이 되게 하는 사정이 일정 시기까지 계속되었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사정은 늦어도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모두 해소되었음을 알 수 있는바, 이와 같이 소멸시효 항변을 권리남용으로 되게 하는 사정이 어느 시점에 이르러 소멸하였음에도 채권자가 상당한 기간, 심지어 다시 원래의 소멸시효기간에 해당하는 기간이 경과할 때까지도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않은 경우까지 채무자의 소멸시효 항변을 권리남용으로 배척할 수는 없다 할 것인바(채무자의 소멸시효 주장이 권리남용이 된다고 하여 채권자에 의한 소멸시효의 중단보다 더 강력한 효력을 부여할 수는 없고, 그와 같은 경우에도 계속해서 소멸시효의 주장을 권리남용으로 배척한다면 이는 영구히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는 채권을 창설하는 것이 된다), 2007. 11. 22.에야 제기된 이 사건 소송에서 피고가 하는 소멸시효 항변을 권리남용으로 볼 수는 도저히 없다.
끝으로, 제3 사정이나 제4 사정은 이를 전혀 발견할 수 없으며, 그밖에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을 권리남용으로 볼만한 다른 사정도 없다.
3) 결국 어느 모로 보나, 이 사건에 있어서 피고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이라고는 볼 수 없다.
5. 결론
그렇다면, 원고들의 피고에 대한 이 사건 위자료 청구는 모두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할 것인바, 제1심 판결의 피고 패소부분은 이와 결론을 달리하여 부당하므로 피고의 항소를 받아들여 이를 취소하고, 그 취소부분에 해당하는 원고들의 청구를 각 기각하며, 원고들의 부대항소는 모두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주1) 상속인은 상속개시있음을 안 날로부터 3월 내에 단순승인이나 한정승인 또는 포기를 할 수 있으므로(제1019조 제1항), 상속인이 위 기간 내에 단순승인을 하지 않는 한 상속의 효과가 확정되지 않고 한정승인 또는 포기를 하지 아니한 상태에서 위 기간이 경과하여야 비로소 단순승인을 한 것으로 의제되어(민법 제1026조 제2호) 상속의 효과가 확정된다. 한편, 실종선고심판은 확정되어야 효력이 발생하고(가사소송법 제40조, 제43조 제1항, 가사사송규칙 제57조), 다만 법률상 실종기간만료일인 1883, 4, 20. 사망한 것으로 의제되어 그 때 상속이 개시된 것으로 볼 뿐이다(민법 제28조). 따라서 이 사건에 있어서는 상속인인 원고들은 그 청구에 따라 상속심판이 내려져 확정된 2005. 8. 23. 상속개시있음을 알았다고 할 것이고, 그 후 원고들이 단순승인이나 한정승인 또는 포기를 하였다고 볼만한 자료도 없는 이상, 3월이 경과하여 단순승인으로 의제되는 2005. 11. 23. 상속인의 확정이 있었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