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배상
2018나10625 손해배상
1. 주식회사 B
2. C 주식회사
3. D 주식회사
4. E
5. F
6. H
7. J
8. M
9. N
10. O
11. P
12. Q
13. R
14. S
15. T
16. U
17. V
원고들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양재
담당변호사 최병모, 한택근
대한민국
서울중앙지방법원 2012. 5. 31. 선고 2008가합104890 판결
서울고등법원 2013. 5. 3. 선고 2012나56520 판결
2019. 11. 7.
2019. 12. 19.
1. 제1심판결 중 아래에서 지급을 명하는 금액에 해당하는 아래 원고들 패소 부분을 취소한다.
피고는 원고 주식회사 B, C 주식회사, D 주식회사, F, H, J, M, N에게 각 5,000,000원, 원고 Q, R, S, T, U, V에게 각 2,000,000원 및 위 각 돈에 대하여 2008. 8. 1.부터 2019. 12. 19.까지는 연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2. 제1항 기재 원고들의 나머지 항소 및 원고 E, O, P의 항소를 모두 기각한다.
3. 제1항 기재 원고들과 피고 사이에 생긴 소송 총비용 중 50%는 위 원고들이, 나머지는 피고가 각 부담하고, 원고 E, O, P의 항소비용은 위 원고들이 부담한다.
4. 제1항의 금전지급 부분은 가집행할 수 있다.
제1심 판결을 취소한다. 피고는, 원고 주식회사 B, C 주식회사, D 주식회사, E, F, H, J, M, N, O, P에게 각 10,000,000원, 원고 Q, R, S, T, U, V에게 각 5,000,000원 및 위 각 돈에 대하여 2008. 8. 1.부터 이 사건 소장 부본 송달일까지는 연 5%, 각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피고는 이 판결이 확정된 날부터 10일 이내에 피고의 비용으로 별지 1 기재 광고를 W, X, Y, Z 각 1면에 게재하라. 피고가 이 판결이 확정된 날부터 10일이 도과한 후에도 별지 1 기재 광고를 W, X, Y, Z에 게재하지 아니할 때에는 원고들에게 각 지연일수 1일 당 500,000원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각 지급하라.
1. 기초사실
가. 원고 주식회사 B, C 주식회사, D 주식회사는 도서 출판업 등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로서 별지 2의 각 해당 '출판서적 제목'란 기재 서적을 출판하였다. 원고 E, F, H, J은 별지 2의 각 해당 '출판사 상호'란 기재 명칭의 상호로 도서 출판업을 경영하는 자영업자로서 각 해당 '출판서적 제목'란 기재 서적을 출판하였다. 원고 M, N, O, P, Q, R, S, T, U, V는 별지 2의 각 해당 '출판서적 제목'란 기재 서적들의 저자 혹은 공동저자들이다(별지 2 기재 서적들을 통틀어 이하 '이 사건 서적들'이라 한다).
나. 국방부장관은 2008. 7. 15. 국군기무사령부로부터 AB단체(이하 'AB단체'이라 한다)이 군 장병들에 대한 반정부·반미 의식화 사업을 강화하기 위하여 현역 장병에게 교양도서 23종을 보내는 운동을 추진한다는 내용의 정보를 보고받았다. 국방부장관은 이미 대법원에서 이적단체라고 판단한 AB단체이 현역 장병에게 도서 보내기 운동을 벌이는 것은 국군의 정신전력을 해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고 이를 차단하기 위하여, 2008. 7. 22. 구 군인사법(2011. 5, 24, 법률 제10703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군인사법'이라 한다) 제47조의2, 구 군인복무규율(2016. 6. 28. 대통령령 제27263호로 폐지, 이하 '군인복무규율'이라 한다) 제16조의2 등에 근거하여 이 사건 서적들이 포함된 별지 3의 불온서적 목록 기재 서적들 총 23종을 불온도서로 지정한 후 국방부장관의 지휘를 받는 각 군 참모총장에게 위 불온도서의 반입을 차단하라는 취지의 별지 3 기재 '군내 불온서적 차단대책 강구(지시)' 공문을 하달하였다. 그리고 이를 받은 각 군 참모총장은 국방부장관의 위 지시 내용과 같은 내용의 지시 공문을 예하 부대의 지휘관들에게 하달하였다(국방부장관과 각 군 참모총장을 이하 '국방부장관 등'이라 하고, 국방부장관과 각 군 참모총장이 하달한 위 각 지시를 통틀어 이하 '이 사건 지시'라 한다).
[인정 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내지 16호증(가지번호 있는 것은 가지번호 포함), 을 제1 내지 5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원고들 주장의 요지
국방부장관 등은 이 사건 지시에 의하여 이 사건 서적들을 저작하거나 출판한 원고들의 언론·출판의 자유, 학문의 자유, 양심의 자유, 저작물의 배포권 등 헌법상의 기본권 또는 법률로 보호받는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하거나 그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였고(더구나 이 사건 지시는 헌법이 금지하는 검열에 해당하므로 그 자체로 위헌이다), 아울러 국방부장관 등이 이 사건 지시를 통하여 이 사건 서적들을 이른바 '불온도서'로 명명한 것은 원고들에 대한 명예훼손 또는 모욕에 해당한다. 따라서 피고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 따라 공무원인 국방부장관 등의 위와 같은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하고, 국가배상법 제8조, 민법 제764조에 따라 원고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적당한 조치로서 별지 1 기재와 같은 광고를 게재할 의무가 있다.
3. 국가배상 책임의 성립 요건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 의한 국가배상 책임은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때"에 인정되고, 여기서 법령위반이라 함은 엄격한 의미의 법령위반뿐만 아니라 인권존중, 권력남용금지, 신의성실, 공서양속 등의 위반도 포함하여 널리 그 행위가 객관적인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므로(대법원 2002. 5. 17. 선고 2000다22607 판결, 대법원 2012. 7. 26. 선고 2010다95666 판결 등 참조), 공무원이 고의 또는 과실로 헌법에서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이나 법률로 보장되는 사인의 권리를 침해하여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공무원의 그러한 위법행위로 피해를 본 자에 대하여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
4. 이 사건 지시의 내용과 불온도서의 개념
가. 이 사건 지시의 내용
이 사건 지시는 이 사건 서적들을 포함한 23종의 서적들을 각각 '북한찬양', '반정부, 반미', '반자본주의'로 유형화하여 군인복무규율 제16조의2 소정의 불온도서로 규정하면서, 구체적으로는 장병들의 정신교육, 불온서적 반입 여부 일제점검, 개인별 부대반입 통제 등을 통하여 위 서적들이 군부대로 반입되지 않게 차단하도록 하고 있다.
나. 이 사건 지시의 근거
이 사건 지시는 군인이 불온도서를 소지하는 행위 등을 금지한 군인복무규율 제16조의2를 그 근거로 명시하고 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다.
군인복무규율 제16조의2(불온표현물 소지 · 전파 등의 금지) 군인은 불온유인물∙도서∙도화 기타 표현물을 제작∙복사∙소지∙운반∙전파 또는 취득하여서는 아니되며, 이를 취득한 때에는 즉시 신고하여야 한다. |
다. 불온도서의 개념
'불온'이란 개념은 사전적으로 '사상이나 태도 따위가 통치 권력이나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질'이라는 의미로서 그 자체만으로는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의미를 표방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 사건 지시가 불온도서의 군부대 내 반입을 금지하는 근거로서 군인복무규율 제16조의2를 명시하고 있고, 군인사법 제47조의2에 따라 군인의 복무 기타 병영 생활에 관한 기본사항을 규정하기 위하여 제정된 군인복무규율은 국가를 방위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며 조국의 통일에 이바지함을 국군의 이념으로 하고(제4조 제1호), 대한민국의 자유와 독립을 보전하고 국토를 방위하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나아가 국제평화의 유지에 이바지함을 국군의 사명으로 규정하고 있는 점(제2호)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이 사건 지시에서 말하는 불온도서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해하거나,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할 내용으로서, 군인의 정신전력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도서'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헌법재판소 2010. 10. 28. 선고 2008헌마638 결정 참조).
5. 원고들의 기본권 침해 여부
가. 이 사건 지시가 헌법이 금지하는 검열에 해당하는지
1) 헌법 제21조 제2항은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의 자유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라고 하여 검열금지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헌법 제21조 제2항의 검열은 원칙적으로 행정권이 주체가 되어 사상이나 의견 등이 발표되기 이전에 예방적 조치로서 그 내용을 심사, 선별하여 발표를 사전에 억제하는, 즉 허가받지 아니한 것의 발표를 금지하는 제도를 뜻하는 것이고, 일반적으로 허가를 받기 위한 표현물의 제출의무, 행정권이 주체가 된 사전심사절차, 허가를 받지 아니한 의사 표현의 금지 및 심사절차를 관철할 수 있는 강제수단 등의 요건을 갖춘 경우에 해당하면 이를 헌법 제21조 제2항에서 금지되는 검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헌법재판소 1996. 10. 4. 선고 93헌가13, 91헌바10(병합) 결정 등 참조]. 그러나 사전검열뿐만 아니라 사후검열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사실상 사전검열과 같은 효과를 나타낼 경우에는 그와 같은 사후검열도 헌법 제21조 제2항에 의하여 금지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2) 이 사건에서 국방부장관은 이 사건 지시를 통하여 전투력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서적들을 불온도서로 지정하고 그 서적들을 군부대로 반입하거나, 군부대 내에서 소지하거나 읽는 것을 금지하였으므로, 이 사건 지시는 사상이나 의견 등을 그 내용을 기준으로 심사 · 선별한 행정권의 조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건 지시에도 불구하고 원고들이 이 사건 서적들을 출판하여 군부대 밖에서 유통하는 데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기 때문에 이 사건 지시로 인하여 사상이나 의견 등을 발표하는 행위가 일반적으로 금지된다고 볼 수는 없다.
국방부장관 등의 위와 같은 행위는 사실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이 사건 서적들을 저작하거나 출판한 원고들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효과가 있다. 설령 그렇더라도 이 사건 지시는 현역 장병의 정신전력을 강화한다는 목적으로 군부대라는 특수한 성격을 가지는 장소에서 사상이나 의견 등의 발표 또는 전파를 제한하는 경우로서, 표현행위자인 원고들이나 표현행위의 상대방 중 영내 생활을 하는 현역 장병이 아닌 일반 국민들을 구속하는 규범력을 가지고 있지 아니한 점을 고려할 때, 학교 또는 도서관 등 일반 국민들이 이용하는 공공장소에서 사상이나 의견 등의 발표 또는 전파를 제한하는 경우와는 달리 원고들의 사상이나 의견 등의 발표가 일반적으로 억제되는 사실상의 효과, 즉 사전검열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인정되지 아니한다.
3) 그렇다면 이 사건 지시가 헌법 제21조 제2항에서 금지하고 있는 검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원고들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
나. 이 사건 지시가 원고들의 언론 · 출판의 자유, 학문의 자유, 양심의 자유, 저작물의 배포권 등을 침해하는지
1) 기본권 제한 여부
가) 헌법 제2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사상이나 의견을 표명하고 전달할 자유는 언론·출판의 자유의 기본적인 내용이다. 언론 · 출판의 자유는 집회·결사의 자유와 함께 개인의 인격의 자유로운 형성과 전개의 필수적인 전제가 되고, 민주주의 존립과 발전의 기초가 되며, 진리의 추구 및 사회 안정과 변화 사이의 균형을 도모하는 역할과 기능이 있으므로 다른 자유권에 비하여 우월적 지위를 보장받고 있다. 따라서 언론·출판의 영역에서 국가는 단순히 어떤 표현의 내용이 가치가 없다거나 유해하다는 주장만으로 그 표현에 대한 규제를 정당화시킬 수는 없고, 대립되는 다양한 의견과 사상의 경쟁메커니즘에 의하더라도 그 표현의 해악이 처음부터 전혀 해소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거나 또는 다른 사상이나 표현을 기다려 해소되기에는 너무나 심대한 해악을 지닌 표현인 경우에 언론·출판의 자유에 의한 보장을 받을 수 없고 국가에 의한 내용규제가 허용되는 것이다. 또한, 민주사회에서 표현의 자유가 수행하는 역할과 기능에 비추어 볼 때, 공권력 작용의 직접적인 대상이 표현행위 그 자체가 아니고 표현행위를 한 자에 대하여 형사처벌 등 법적 제재가 수반되지 않더라도, 만일 해당 공권력의 행사가 사실상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켜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 표현행위를 자제하게 만든다면, 그러한 공권력 작용은 그 정도에 따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헌법 제22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학문의 자유는 진리를 탐구하는 자유를 의미하지만, 단순히 진리탐구에 그치지 않고 탐구한 결과에 대한 발표의 자유를 포함한다. 한편, 헌법 제19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의 양심이란 세계관·인생관·주의·신조 등이 포함되므로 거기에 사상의 자유가 내포되어 있다 할 것이고, 양심의 자유는 양심 형성의 자유와 양심상 결정을 외부로 표현하고 실현할 수 있는 자유를 포함한다. 특히 학문연구결과를 발표하는 자유나 사상의 외부표현이나 전달은 학문연구의 결과나 양심이 외부로 표현되었다는 점에서 표현의 자유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헌법 제22조 제2항은 "저작자· 발명가 · 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라고 규정함으로써 저작자 등의 지적재산권을 보호대상으로 삼고 있고, 이에 따라 저작권법 제20조 본문은 "저작자는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을 배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여 보호대상인 지적재산권의 일종으로서 저작물의 배포권을 규정하고 있다.
나) 이 사건 지시는 현역 장병이 이 사건 서적들을 군부대로 반입하거나, 군부대 내에서 소지 · 독서하는 행위를 규율할 뿐 원고들이 이 사건 서적들을 출판하거나 배포하는 행위를 직접 규율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선, 현역 장병이 이 사건 지시가 규율하는 바에 따라 이 사건 서적들을 군부대로 반입하지 않아 군부대 내에서 이 사건 서적들을 소지하거나 읽지 못함에 따라 반사적으로 이 사건 서적들의 저작자 또는 출판인인 원고들이 사상이나 의견 등을 전파할 자유 또는 이 사건 서적들을 배포할 자유도 그 범위에서 일정한 제한을 받게 됨은 부인할 수 없다.
더구나 국방부장관 등은 이 사건 서적들에 표현된 사상이나 의견 등이 현역 장병들의 정신전력에 해롭다는 이유로 그러한 사상이나 의견 등이 표현된 이 사건 서적들을 군부대로 반입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였는데, 이 사건 서적들에 나타난 사상이나 의견 등의 내용을 문제 삼아 이를 이유로 이 사건 서적들의 반입행위 등을 금지하는 공권력 행사는 설사 이 사건 지시의 직접적인 규율 대상이 현역 장병에 국한된다 하더라도 사실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이 사건 서적들을 저작하거나 출판한 원고들의 표현의 자유를 제약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사건 지시는 이 사건 서적들을 저작하거나 출판한 원고들의 사상이나 의견 등이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내용이라는 의미에서 불온한 것이라는 낙인이 찍히도록 만들거나, 원고들로 하여금 사상이나 의견 등을 발표하거나 전파하는 행위로 인하여 제재나 처벌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스스로 표현행위를 자제하게 만드는 위축효과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2) 헌법 제37조 제2항 준수 여부
가) 이 사건 지시가 원고들의 언론·출판의 자유, 학문의 자유, 양심의 자유, 저작물의 배포권 등을 제한함은 위에서 인정한 바와 같으나, 위와 같은 기본권 등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므로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고, 다만 제한하는 경우에도 그 본질적인 내용은 침해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사건 지시가 그와 같은 요건을 갖추었는지에 관하여 본다.
나) 비례의 원칙에 따른 심사
(1) 목적의 정당성 및 수단의 적합성
이 사건 지시는 군의 정신전력을 보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고, 정신전력이 국가안전보장을 확보하는 군사력의 중요한 일부분인 점은 분명하므로, 그 목적의 정당성은 인정할 수 있다.
또한 북한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우리의 국가안보상황에서, 국가안전보장과 직결되는 위치에 있는 군의 정신전력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주의체제를 해하는 도서로서 군인의 정신전력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불온도서에 대한 군인의 접근을 차단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하여 해당 도서의 소지 및 취득 등을 금지하는 것은 목적 달성에 일정 부분 기여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원고들은, 이 사건 서적들은 시중에 판매되고 있어 누구나 접근 가능한 서적이므로, 군 내외 모두에서 읽는 것 자체를 금하지 아니하는 이상 단순히 불온도서로 지정하여 군내 반입을 금지하는 것만으로는 위 서적들을 읽음으로써 초래되는 영향력을 배제하는 의미가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공권력 행사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를 심사하는 단계에서 수단의 적합성이란 입법목적 달성을 위하여 사용된 수단이 반드시 유일하거나 최적의 수단일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므로 원고들의 이 부분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2) 침해의 최소성 및 법익의 균형성
이 사건 지시는 이 사건 서적들을 군부대로 반입하거나, 군부대 내에서 소지하거나 읽는 행위만을 금지하고 있을 뿐 일반 국민이나 군부대 밖의 장소에서 이 사건 서적들을 소지하거나 열람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지 아니하고, 아울러 현역 장병이 이 사건 지시에 의하여 금지되는 행위를 한 경우 그 위반자인 현역 장병만이 징계처분 등 불이익을 받게 될 뿐 이 사건 서적들을 저작하거나 출판한 원고들에게 직접적인 제재가 가해지지는 않는다. 또한 이미 출판되어 시중에서 자유롭게 유통되고 있었던 이 사건 서적들은 이 사건 지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군부대 밖에서 이를 소지하거나 취득하는 데 아무런 제한이 없으므로 이 사건 서적들이 오로지 현역 장병들을 독자층으로 삼았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와 같은 기본권 또는 법률상의 권리의 제한이 필요한 범위를 넘거나 지나치게 광범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편, 이 사건 서적들이 국방부장관이 작성한 불온도서 목록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더라도, 이 사건 불온도서 목록이 군부대 내부의 지시사항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정과 우리의 특수한 안보 현실에 비추어 일반 국민들은 이 사건 지시를 현역 장병들에게 가하여진 특별한 제한으로 인식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일반 국민들이 이 사건 서적들에 표현된 사상이나 의견 등이 불온하다고 인식하여 이 사건 서적들을 소지하거나 열람하는 행위를 꺼리게 된다거나, 이 사건 서적들을 저작하거나 출판한 원고들이 이 사건 서적들에 표현된 사상이나 의견 등을 발표(출판)하거나 전파(배포)하는 행위로 인하여 제재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스스로 표현행위를 자제하도록 만드는 위축효과가 크게 우려할 정도에 이른다고 보기는 곤란하다. 또한, 이 사건 지시가 달성하고자 하는 군의 정신전력 보존과 이를 통한 군의 국가안전보장 및 국토방위의무의 효과적인 수행이라는 공익은 이 사건 지시에 의하여 제한될 수 있는 원고들의 표현의 자유 등에 비하여 결코 작다고 할 수도 없다.
(3) 다만 위와 같은 논의는 어디까지나 이 사건 지시의 불온서적 목록에 포함된 도서들이 앞에서 살핀 '불온서적'의 개념에 온전히 포섭되는 때에만 타당하다.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해하는 내용 혹은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할 내용을 담고 있지 않거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군인의 정신전력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정도에 이르지 못하는 도서들까지 이 사건 지시에 포함되어 있다면, 그 부분은 군의 정신전력 보존·강화에 어떠한 기여도 하지 못할 것임이 분명하므로, 그러한 경우에 대해서까지 헌법 제37조 제2항의 요건을 갖추었다고 볼 수는 없다. 이 사건 지시의 불온 서적 목록에 포함된 도서들이 불온서적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지시는 비례의 원칙에 반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러한 지시를 정당화할 법령상의 근거도 없게 되어(군인복무규율 제16조의2는 '불온한 도서' 등의 소지 등을 금지하고 있을 뿐이다) 위법하게 된다.
3) 구체적 검토
(1) BL, BM, BO(이하 'BL 등 3권'이라 하고, 위 도서들의 저자 및 출판업자인 원고들을 '원고 O 등'이라 한다)에 관한 판단
서울중앙지방법원이 2009. 4. 21. 선고 2008고합1165, 1458(병합), 2009고합 78(병합) 판결에서 BL 등 3권이 이적표현물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사실은 당사자들 사이에 다툼이 없고, 이와 같은 판단이 항소심과 상고심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었음은 이 법원에 현저하다.
위와 같은 판결 경과 및 이 사건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위 도서들의 내용에 비추어 보면, BL 등 3권이 북한의 군사전략과 체제를 옹호하고,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며 이를 선동하는 내용을 담고 있음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위 도서들은 반국가 단체를 이롭게 하는 내용으로서 군인의 정신전력을 심각하게 저해할 수 있는 도서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사건 지시 내용 중 위 도서들에 관한 부분은 위 도서들의 저자 내지 출판업자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
(2) 나머지 서적에 관한 판단(이하 나머지 서적들의 저자 및 출판업자인 원고들을 '이 사건 나머지 원고들'이라 한다)
이 사건 소송과정에서 제출된 자료들만으로 위 나머지 서적들이 불온서적에 해당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오히려 갑 제7, 9, 10, 11, 12호증의 각 기재에 의하면 위 도서들을 포함한 별지 2 기재 각 도서 중 일부는 정부기관, 학술단체, 언론기관 등으로부터 우수 · 추천도서로 선정되어 권장도서 목록에 포함되어 있는 도서들인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위 도서들 중 일부는 국가예산의 지원을 받아 공공도서관에도 비치되어 있다. 정부·학계·문화계 전문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 우수도서로 추천되고 양질의 교양 · 학술도서로서 평가받는 이들 도서들이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주의체제를 해하는 도서로서 군인의 정신전력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도서에 해당한다고는 볼 수 없다.
나아가 어떤 도서가 불온도서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엄격하고 신중한 심사절차를 거쳐야 하고, 그와 같은 심의과정 없이 불온도서 판정이 이루어진다면 해당 판단이 자의적으로 이루어질 위험을 피하기 어렵다. 국방부장관은 이 사건 불온도서 목록을 지정함에 있어 별다른 사전심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고, 피고의 주장에 따르더라도 이 사건 지시 발령 후에 비로소 정훈문화자료심의위원회의 심의절차를 거쳤다는 취지에 불과하다(이 사건 소송 진행 중 '장병 정신교육 부적합 도서 내용 분석'이라는 이름의 참고자료가 제출되기는 하였으나, 이는 각 도서의 주요 내용을 요약하고 부적합한 일부 표현 내지 문구 등을 뽑아 놓은 것에 불과하여 심의 · 판단의 구체적인 기준과 근거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이 사건 지시가 충분한 심사를 거치지도 않은 채 위 나머지 서적들까지 불온서적으로 지정하여 군대 내 반입을 금지한 부분은 위 도서들의 저자나 출판업자들의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하였다고 할 것이다.
6. 이 사건 지시로 원고들의 명예가 훼손되었는지
가. 이 사건 지시 중에 이 사건 서적들을 '불온도서'라고 표현한 부분이 있고, 이 사건 지시에서 말하는 불온도서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주의체제를 해하거나,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할 내용으로서, 군인의 정신전력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도서'를 의미함은 앞서 본 바와 같다. 따라서 이 사건 지시에서 이 사건 서적들을 '불온도서'라고 표현한 부분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 사건 서적들을 저작하거나 출판한 원고들에 대한 명예훼손적 또는 모욕적 표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나. 다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을 수립하여 시행하는 직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내부적으로 내린 결정이나 하급기관에 내린 행정상의 지시에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타인에게 모욕이 될 만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하더라도, 거기에 나타난 명예훼손 또는 모욕적인 표현이 관련 법령에 근거하여 직무수행의 일환으로서 또는 직무수행에 수반하여 그 권한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 경우라면, 이는 법령에 의한 행위로서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
다. BL 등 3권의 경우에는, 비록 이 사건 지시 이후의 사정이기는 하지만 위 각 도서가 이적표현물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확정되기까지 한 점에 비추어 보면, 국방부장관이 위 도서들이 현역 장병의 정신전력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군인복무규율 제16조의2 등을 근거로 이를 불온도서로 분류한 행위는 관련 법령에 따라 국방부장관의 직무권한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이 사건 지시 중 위 도서들에 대한 부분을 들어 객관적인 정당성을 결여한 위법한 행위라고 할 수는 없다.
라. 그러나 이 사건 나머지 서적들에 관하여 보면, 국방부장관은 이 사건 지시를 통해 나머지 서적들까지 '불온서적'으로 지정함으로써 위 도서들의 저자 내지 출판자업들이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주의체제를 해하거나,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는 글을 쓰거나 출판한 자들임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고, 이는 대상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내용이므로, 이 사건 지시 중 위 나머지 서적들에 대한 부분은 그 저자 내지 출판업자들의 외적 명예를 침해한 위법한 행위로 볼 수 있다. 나아가 국방부장관이 이 사건 지시를 함에 있어서 이 사건 나머지 서적들이 국군의 정신전력을 해칠만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에 관하여 충분히 심사하였음을 인정할 자료가 없는 이상 위 행위의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볼 수도 없다.
7. 피고의 손해배상책임
이 사건 지시 중 BL 등 3권을 제외한 나머지 서적들에 관한 부분은 해당 도서의 저자나 출판업자들의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하고, 나아가 이들의 명예를 훼손하였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는 객관적인 정당성을 결여한 이 사건 지시로 말미암아 위 저자 내지 출판업자들인 원고들이 입은 정신적 고통을 위자할 의무가 있고, 그 위자료 액수는 이 사건 변론 전체에 나타난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위 나머지 서적들의 단독저자와 출판업자인 원고들에게는 각 5,000,000원씩, 'BQ'의 공동저자인 원고들에게는 각 2,000,000원씩을 인정한다(피고는 군인복무규율 제16조의2는 공공 일반의 이익을 위한 것일 뿐 개인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 아니므로 위 규정에 따른 이 사건 지시와 원고들의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고, 국방부장관 등의 고의·과실도 인정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그러나 상당인과관계에 관한 위와 같은 논의는 근거규정에 위배된 공무원의 행위로 인하여 해당 규정이 부수적으로 보호하거나 또는 보호대상으로 의도하지 않은 개인의 이익이 침해된 경우에 대한 논의로서, 이 사건과 같이 근거규정에 따른 공무원의 행위로 인하여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보호되는 개인의 기본권 등이 침해된 경우에 대하여는 적용하기 적절치 않다. 또한 국방부장관 등이 이 사건 지시에 앞서 충분한 심사를 거쳤다고 볼 수 없는 이상 위 나머지 서적들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이를 모두 불온도서로 지정한 행위에 과실이 없다고 볼 수도 없다.).
그렇다면 피고는 원고 주식회사 B, C 주식회사, D 주식회사, F, H, J, M, N에게 각 5,000,000원, 원고 Q, R, S, T, U, V에게 각 2,000,000원 및 위 각 돈에 대하여 국방부장관이 이 사건 지시를 하달한 날 이후로서 원고들이 구하는 2008. 8. 1.부터 피고가 이 사건 이행의무의 존재 여부나 범위에 관하여 다투는 것이 타당하다고 인정되는 이 판결 선고일인 2019. 12. 19.까지는 민법에 따른 연 5%의, 그 다음날인 2019. 12. 20.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른 연 20%의 각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이 사건 지시 중 BL 등 3권에 관한 부분이 위법하다고 볼 수 없음은 앞서 본 바와 같으므로, 원고 O 등의 청구는 이유 없다).
8. 원고들의 나머지 청구에 대한 판단
원고들은 명예회복을 위한 적당한 조치로서 피고에게 별지 1 기재와 같은 광고를 게재할 것과 함께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각 지연일수 1일 당 500,000원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할 것을 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 지시가 내려진 때로부터 이미 10년 이상 경과하였고, 이 사건 지시가 더 이상 효력을 갖지도 않는 점, 피고가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 등을 받아들여 이 사건 지시의 근거 법령을 개정하는 등 자정 노력을 계속해 온 점, 이 법원이 피고에게 위자료, 지급을 명함으로써 원고들의 명예가 어느 정도 회복될 것으로 보이는 점, 이 사건 지시로부터 이미 상당한 시간이 흐르면서 일반 국민의 인식과 국가안보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에 따라 불온서적에 관한 논의가 폭넓고 충분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보이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이 부분 청구는 기각하기로 한다.
9. 결론
그렇다면 이 사건 나머지 원고들의 이 사건 청구는 위 인정범위 내에서 이유 있어 인용하고 나머지 청구는 기각하여야 하며, 원고 O 등의 청구는 모두 이유 없어 기각하여야 한다. 제1심판결은 이와 일부 결론을 달리하여 부당하므로 이 사건 나머지 원고들의 일부 항소를 받아들이고 위 원고들의 나머지 항소 및 원고 O 등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재판장 판사 설범식
판사 이재욱
판사 김길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