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재산국가귀속결정취소][미간행]
원고 1 외 4인 (소송대리인 제일종합 법무법인 담당변호사 최장섭)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소송대리인 정부법무공단 담당변호사 문병상)
2009. 11. 13.
1.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2. 소송비용은 원고들이 부담한다.
피고가 2009. 4. 10. 원고 1에 대하여 한 별지 목록 제1항 기재 토지에 관한 국가귀속결정, 원고 2에 대하여 한 같은 목록 제2항 기재 토지에 관한 국가귀속결정, 원고 3에 대하여 한 같은 목록 제3항 기재 토지에 관한 국가귀속결정, 원고 4에 대하여 한 같은 목록 제4항 기재 토지에 관한 국가귀속결정, 원고 5에 대하여 한 같은 목록 제5항 기재 토지에 관한 국가귀속결정을 각 취소한다.
1. 처분의 경위
다음의 각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거나, 갑1호증(이하 가지번호 포함), 갑2호증, 갑3호증, 갑4호증, 갑5호증, 갑6호증, 갑7호증, 갑8호증, 갑9호증, 갑21호증, 갑22호증, 갑23호증, 갑24호증, 갑25호증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더하여 인정할 수 있다.
가. 원고 1, 2, 4, 5는 망 소외 2의 자, 원고 3은 소외 2의 처이고, 소외 2는 망 소외 3의 자이며, 소외 3은 망 소외 1(대법원판결의 소외인)의 자이다.
나. 소외 1은 1911. 6. 30. 분할 전 화성시 봉담읍 덕우리 (지번 2 생략) 토지, 같은 리 (지번 3 생략) 토지, 같은 리 (지번 4 생략) 토지, 같은 리 (지번 5 생략) 토지, 같은 리 (지번 6 생략) 토지, 같은 리 (지번 7 생략) 토지, 같은 리 (지번 8 생략) 토지를, 1917. 10. 13. 분할 전 같은 리 (지번 9 생략) 토지를 각 사정받았다(이하 위 각 토지를 아울러 “분할전토지”라고 한다).
다. 그 후 같은 리 (지번 2 생략) 토지에서 별지 목록 제1의 가항 기재 토지(이하 같은 목록 기재 토지는 번지만으로 특정하여 “ (지번 10 생략) 토지” 등으로 약칭한다)가, 같은 리 (지번 3 생략) 토지에서 (지번 11 생략) 토지가, 같은 리 (지번 4 생략) 토지에서 (지번 12 생략) 토지, (지번 13 생략) 토지가, 같은 리 (지번 5 생략) 토지에서 (지번 5 생략) 토지가, 같은 리 (지번 6 생략) 토지에서 (지번 14 생략) 토지가, 같은 리 (지번 7 생략) 토지에서 (지번 15 생략) 토지, (지번 16 생략) 토지, (지번 17 생략) 토지가, 같은 리 (지번 8 생략) 토지에서 (지번 18 생략) 토지가, 같은 리 (지번 9 생략) 토지에서 (지번 19 생략) 토지, (지번 1 생략) 토지가 각 분할되었다.
라. 그 중 (지번 10 생략) 토지, (지번 14 생략) 토지에 관하여 소외 3, 2를 거쳐, (지번 11 생략) 토지, (지번 12 생략) 토지, (지번 19 생략) 토지에 관하여 소외 2를 거쳐 각 2005. 6. 20. 원고 1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가 마쳐졌고, (지번 5 생략) 토지, (지번 18 생략) 토지, (지번 1 생략) 토지에 관하여 소외 2를 거쳐 2005. 6. 20. 원고 1, 2 명의로 공유등기가 마쳐졌으며, (지번 15 생략) 토지, (지번 16 생략) 토지, (지번 17 생략) 토지에 관하여 소외 2 등 7인, 소외 2를 거쳐 2005. 6. 20. 원고 2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가 마쳐졌고, (지번 6 생략) 토지, (지번 20 생략) 토지는 소외 3, 2를 거쳐 2005. 6. 20. 원고 3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가 마쳐졌으며, (지번 13 생략) 토지는 소외 3, 2를 거쳐 2005. 6. 20. 원고 4, 5 명의로 공유등기가 마쳐졌다.
마. 피고는 2009. 4. 10. 소외 1이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이라 한다) 제2조 제1호 가목 이 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에 해당하고 위 각 토지가 같은 조 제2호 가 정한 친일재산으로 인정된다는 이유로, 원고들에 대하여 청구취지 기재 결정을 하였다.
2. 원고들의 주장
원고들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피고가 한 위 결정이 위법하다고 주장한다.
가. 피고가 한 위 결정의 근거가 된 특별법 제2조 제2호 , 제3조 제1항 (이하 “특별법조항”이라 한다)은 친일재산이 그 취득·증여 등 원인행위시에 소급하여 국가의 소유로 되도록 규정하고 있는바, 이는 소급입법에 의하여 재산권을 박탈하고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하여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위헌이다(이하 “제1 주장”이라 한다).
나. 친일재산의 요건으로서 특별법 제2조 제2호 가 정한 “취득”에 일제의 토지조사에 따른 사정을 원인으로 한 것까지 포함하여 해석한다면, 피고가 친일반민족행위자인 사실만 입증하면 그 소유의 모든 부동산이 국가에 귀속되게 되어 부당하므로, 특별법상의 취득에 이 사건과 같이 사정을 원인으로 한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이하 “제2 주장”이라 한다).
다. 소외 1이나 그 선조인 소외 4, 5가 일제시대 이전에 이미 높은 벼슬을 지낸 바 있어 상당한 재산을 소유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특히 (지번 1 생략) 토지상에 약 300년에 걸쳐 원고 3을 제외한 나머지 원고들의 8대조까지에 해당하는 조상들의 분묘가 설치되어 있는 등 분할전 토지는 소외 1이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고유재산일 뿐 친일재산이 아니다(이하 “제3 주장”이라 한다).
라. 소외 1이나 원고들을 비롯한 그 상속인들은 분할 전 토지나 분할 후 위 각 토지를 사정 이후 100년 가까이 소유자로 등기되어 과실 없이 점유함으로써 시효취득하였으므로, 피고는 원고들에게 소유권이전등기의무가 있고, 따라서 그러한 지위에 있는 피고는 위 결정을 할 수 없다(이하 “제4 주장”이라 한다).
3. 판단
가. 제1 주장에 대하여
(1) 헌법 제13조 제2항 위반 여부
(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건국강령 제3장은 제6항에서 일본제국주의 재산과 부적자의 재산을 몰수하여 국유로 함을 경제정책 8개 원칙 중 하나로 규정하고 있었고, 1948. 7. 17. 공포·시행된 대한민국 제헌헌법 제10장 부칙 제101조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서기 1945년) 8월 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었으며, 현행 헌법은 그 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라고 규정하고 있다.
위와 같이 헌법제정권력자인 국민의 헌법적 결단을 선포하고 있어 규범성이 있는 현행 헌법 전문이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가의 공헌과 희생을 바탕으로 이룩된 것으로 헌법의 출발점이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를 부정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러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건국강령, 제헌헌법 부칙 제101조 및 현행 헌법 전문의 입법정신은 과거 일제강점기에 일제에 협력하여 우리나라를 부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친일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권 등을 보호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일본강점기의 잔재를 청산함과 동시에, 대한민국의 민족정기를 회복하여 국가이념을 공고히 하려는 헌법제정권력자인 국민의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특별법은 친일재산을 헌법상 보호하지 않겠다는 우리 헌법의 기본이념에 근거하여 그 동안의 친일재산 처리에 관한 입법부작위 상태를 해소하고 뒤늦게나마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기 위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통치에 협력하고 우리 민족을 탄압한 친일반민족행위자가 그 당시 친일반민족행위의 대가로 축재한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킴으로써, 정의를 구현하고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며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한 3·1운동의 헌법이념을 구현하는 데 그 취지가 있다.
따라서 위와 같이 친일재산에 대한 국가귀속을 정하고 있는 특별법 규정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친일반민족행위의 대가로 취득 또는 상속·유증·증여받은 재산은 우리 헌법상 보호되는 재산이 될 수 없다는 헌법이념에 따라 국가귀속의 당위성을 규정한 것이므로, 원고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친일재산이 소급하여 국가에 귀속된다는 사정만으로는 특별법이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나) 한편, 기존의 법에 의하여 형성되어 이미 굳어진 개인의 법적 지위를 사후입법을 통하여 박탈하는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진정소급입법이라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국민이 소급입법을 예상할 수 있었거나 법적 상태가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워 보호할 만한 신뢰이익이 적은 경우와 소급입법에 의한 당사자의 손실이 없거나 아주 경미한 경우 그리고 신뢰보호의 요청에 우선하는 심히 중대한 공익상의 사유가 소급입법을 정당화하는 경우 등에는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헌법재판소 1999. 7. 22. 선고 97헌바76, 98헌바50·51·52·54·55(병합) 결정 등 참조].
그런데 친일반민족행위는 우리나라에 대하여 무력에 의한 강압적인 불법통치를 자행하는 일본 제국주의에 부역하여 침략행위를 정당화하고 국권 회복을 위한 항일독립운동을 탄압한 대가로 관직과 재산을 하사받아 자자손손 개인의 영달과 부귀영화를 추구한 행위로서 민족과 국가에 대한 중대한 반역행위에 해당하는바,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이러한 친일반민족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친일재산을 환수하는 것은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워야 할 공익적 필요성이 중대하여 이를 실현하는 특별법의 규정은 헌법에 위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헌법이념과 정신을 고양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 반면, 특별법에 의하여 재산을 환수당하는 상대방은 친일반민족행위자 또는 그 상속인, 친일재산임을 알면서 유증·증여를 받은 자로서 이러한 자들의 친일재산에 대한 소유권은 취득 자체의 정당성이 결여되어 있고 아무런 대가 없이 승계되어 온 재산이라는 점에서 친일재산의 박탈로 인한 사익의 침해는 미미한 것이어서 그 신뢰이익을 관철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따라서 특별법조항이 소급입법에 의한 재산권박탈을 금지한 헌법 제13조 제2항 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
(2) 헌법 제37조 제2항 위반 여부
(가) 친일재산에 대한 재산권이 우리 헌법에서 보호되는 재산권에 포함된다고 할 경우, 특별법조항이 헌법 제37조 제2항 에서 정한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반하였는지 여부에 관하여 살펴본다.
1) 입법목적의 정당성
특별법 제1조 는 “이 법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에 협력하고 우리 민족을 탄압한 반민족행위자가 그 당시 친일반민족행위로 축재한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키고 선의의 제3자를 보호하여 거래의 안전을 도모함으로써 정의를 구현하고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며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한 3·1운동의 헌법이념을 구현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이는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의 이념에 부합하면서도 선의의 제3자를 보호하여 거래의 안전을 도모하고 있으므로, 그 입법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
2) 수단의 적정성
위와 같은 입법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형사처벌, 공민권의 제한, 재산환수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으나, 특별법은 그 중 친일재산의 국가귀속이라는 방법을 택하였다. 특히 위와 같은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친일재산을 “친일반민족행위자가 국권침탈이 시작된 러·일전쟁 개전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하거나 이를 상속받은 재산 또는 친일재산임을 알면서 유증·증여를 받은 재산”으로 규정하고, 친일반민족행위자 또한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서 정한 자로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으므로, 입법목적과 입법 수단 사이의 인과관계의 명확성 등의 요건을 갖추고 있어서 수단의 적정성 또한 인정된다.
한편, 특별법 제2조 제2호 후문에서 “……러·일전쟁 개전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취득한 재산은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으로 추정한다”고 규정하여 소유권을 박탈당하는 소유자에게 입증책임을 전환하고 있으나, 입증책임은 입법목적, 기간의 경과, 생활영역 및 자료에의 접근성 용이 등을 고려하여 법령으로 정할 사항으로서 입증책임이 전환된다는 이유만으로 바로 헌법에 위반된다고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특별법의 위 규정은 반증을 허용하지 아니하는 간주규정이 아니라, 피고의 결정에 대하여 불복하여 다툴 수 있고, 구체적인 소송과정에서 법원의 판단으로 친일재산이 아니라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적용을 배제할 수 있는 추정규정에 불과하므로 위 규정이 수단의 적정성에 위배되어 헌법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 헌법재판소 2003. 12. 18. 선고 2002헌바99 전원재판부 결정 등 참조).
즉, 입증책임의 분담에 있어 피고 측의 입증책임을 전면적으로 면제하는 것이 아니고, 당해 인물이 친일반민족행위자에 해당한다는 점, 당해 재산이 러·일전쟁 개전시부터 해방 이전까지 사이에 당해 친일반민족행위자에 의하여 취득한 재산이라는 점에 관하여는 피고가 입증책임을 부담하도록 하고, 단지 그 취득한 재산이 친일협력의 대가로 취득한 것이라는 점만을 추정하도록 하고 있는 점, 해방시로부터도 이미 반세기 이상 경과한 상황에서 피고가 어떠한 재산이 친일협력의 대가로 취득한 것인지를 입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반면, 친일반민족행위자와 그 후손들은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재산의 내력에 대하여 가장 잘 알고 있고, 재산취득의 자금출처 등에 관한 근거자료를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점, 본래 행정행위의 적법성은 행정청이 입증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나 행정청이 상당한 범위의 근거사실을 입증한 경우에 그에 터잡아 합리적인 관련성이 있는 사실을 법률상 추정하도록 하는 것이 헌법상 반드시 금지된 것은 아닌 점, 위 추정조항은 단지 입증책임의 분담에 관한 규정일 뿐 친일재산의 내용과 범위에 실체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라는 점 등을 종합하면, 위 규정이 수단의 적정성의 원칙을 위반하였다고 볼 수 없다.
3) 침해의 최소성 여부
특별법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서 정한 여러 유형의 친일반민족 행위 중에서 사안이 중대하고 범위가 명확한 네 가지 행위를 원칙적인 적용대상으로 하고 다른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자는 친일의 정도가 지극히 중대하다고 인정한 자로 한정하면서, 원칙적 적용대상에 대하여도 “작위를 거부·반납하거나 후에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한 자 등”은 예외로 인정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또한, 특별법 제3조 단서에서는 친일재산의 거래로 인하여 선의의 제3자 등이 발생할 경우 이를 보호함으로써 재산상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고려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앞서 본 바와 같이 구체적인 소송과정에서 입증을 통하여 친일재산 여부를 다툴 수 있게 하고 있으므로, 특별법조항이 침해의 최소성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볼 수도 없다.
4) 법익의 균형성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친일반민족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친일재산의 환수는 비록 그 시기가 늦었다고 하더라도 헌법의 이념에 부합하는 것으로서 공익적 필요성이 중대한 반면, 재산을 환수당하는 상대방이 입는 불이익은 자신의 노력으로 정당하게 취득한 재산이 아닌 친일반민족행위의 대가로 형성된 재산을 환수당하는 것에 불과하여 극히 미미한 것으로 볼 수 있고, 헌법의 이념에 비추어 예상할 수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특별법조항이 법익균형성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
(나) 따라서 특별법조항은 헌법 제37조 제2항 에서 정한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할 수 없다.
나. 제2, 3 주장에 대하여
(1) 친일재산의 추정
(가) 특별법 제2조 제2호 는, “친일재산이라 함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국권침탈이 시작된 러·일전쟁 개전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하거나 이를 상속받은 재산 또는 친일재산임을 알면서 유증·증여를 받은 재산을 말한다. 이 경우 러·일전쟁 개전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취득한 재산은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으로 추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나)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소외 1이 1904. 2. 러·일전쟁 후 강원도 철원군수, 내부 참서관을 거쳐 1907. 6. 내부 서기관에 오른 자로서, 1908.부터 내부 지방국 지리과장을 맡아 일제 통감부 지휘 아래 지적행정실무를 총괄한 사실, 이러한 공으로 한일병합 직후인 1910. 10. 1.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찬의로 임명되고, 1912. 8. 1. 한일병합기념장을 받은 다음, 1913. 12. 10. 정7위에 서위되었으며, 중추원 관제가 개편된 후 1921. 4. 28. 중추원 참의로 임명된 후 1926. 5. 15. 정6위에 서위된 사실, 또 소외 1이 1915. 8.경 일제가 식민통치의 성과를 선전하고자 개최한 “시정 5년 기념 조선물산공진회”를 지원하기 위하여 경성협찬회에 기부금을 내고 부회원으로 활동하는 등 일제의 조선 강점을 정당화하는 데 가담하고 1916. 조선총독부의 “조선반도사” 편찬사업에 조사주임으로 참여하여 식민사관에 의한 한국사의 왜곡 편찬사업에 협력한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거나, 앞서 든 증거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보태어 인정할 수 있다.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소외 1은 특별법 제2조 제1호 가목 이 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에 해당한다.
한편, 토지 및 임야조사사업을 통한 사정은 그 결과 작성된 토지대장, 임야대장을 토대로 근대적 등기제도를 시행함으로써 근대적 의미의 소유권을 처음으로 창설하였고, 사정이 원칙적으로는 소유자의 신고에 의하여 진행되고 일정한 확인절차를 거쳐 신고자 명의로 사정이 이루어지기는 하였으나, 당시는 일제 강점기로서 매우 혼란한 시기여서 소유권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나 무주부동산, 귀속불명토지에 대한 사정이 이루어지기도 하였으므로, 사정이라는 제도가 반드시 사정명의인의 해당 토지나 임야에 대한 기존의 소유권을 확인받는 절차에 불과하다고 볼 것은 아니며, 토지나 임야의 사정명의인은 해당 토지나 임야를 원시취득하는 것으로서 당해 토지에 관한 기존의 권리관계는 모두 소멸되고 사정으로 인하여 소유권을 창설적으로 취득하게 되는 것이므로( 대법원 1986. 6. 10. 선고 84다카1773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특별법 제2조 제2호 가 규정한 “취득”에는 사정을 원인으로 소유권을 원시취득하는 경우도 포함된다고 봄이 상당하다.
(다) 따라서 친일반민족행위자인 소외 1이 위 각 시기에 사정받은 분할전토지는 모두 특별법 제2조 제2호 에 따라 친일재산으로 추정된다.
(2) 추정의 복멸 여부
갑10호증, 갑14호증, 갑17호증, 갑26호증, 갑27호증, 갑28호증, 갑32호증, 갑33호증, 갑34호증, 갑35호증, 갑36호증, 갑39호증의 각 기재 또는 영상에 의하면, (지번 1 생략) 토지상에 소외 2부터 소외 4에 이르기까지 8대에 이르는 원고 3을 제외한 나머지 원고들의 선대 분묘가 설치되어 있는 사실, 그 선대 중 일부가 가선대부, 한성부좌윤 겸 오위도총부부총관 등의 벼슬을 지낸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일제시대 이전에는 국유 임야 등에 분묘를 설치하는 예가 적지 않았던 데다가, 앞서 본 소외 1의 친일 경력 등에 비추어 보면, 그러한 사실만으로 바로 위 추정을 뒤집고 분할전토지가 소외 1이 일제시대 이전에 이미 소유하고 있었던 고유재산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 제4 주장에 대하여
먼저 원고들의 주장과 같이 분묘가 설치된 (지번 1 생략) 토지 외의 나머지 토지들을 점유한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
다음으로 특별법 제3조 제1항 본문은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은 그 취득·증여 등 원인행위시에 이를 국가의 소유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피고의 결정이 있어야만 국가귀속의 효력이 발생한다고 규정하고 있지 아니하고, 또한 피고의 활동기간은 4년에 불과하고 1회에 한하여 2년을 연장할 수밖에 없으므로( 특별법 제9조 ), 활동기간 종료 후에도 친일재산 국가귀속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다. 위와 같은 규정들의 취지와 내용에 비추어 보면, 특별법 제2조 제2호 에 정한 친일재산은 피고가 국가귀속결정을 하여야 비로소 국가의 소유로 되는 것이 아니라 특별법의 시행에 따라 그 취득·증여 등 원인행위 시에 소급하여 당연히 국가의 소유로 된다고 보아야 한다( 대법원 2008.11.13. 선고 2008두13491 판결 참조). 그러한 법리에다가 앞서 본 특별법의 입법취지 등의 사정을 보태어 보면, 특별법상 친일재산에 관하여는 적어도 친일반민족행위자나 그 상속인들에 의한 시효취득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봄이 옳고, 나아가 특별법이 시행되기 전부터 친일반민족행위자인 소외 1이나 그 상속인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는 원고들이나 그 선대 등이 친일재산인 분할전토지나 분할 후 위 각 토지를 자주점유하였다 하더라도, 특별법의 시행과 동시에 소급하여 타주점유가 된다고 보아야 한다.
라. 소결
따라서 원고들의 위 각 주장은 모두 이유 없고, 피고가 특별법 제2조 제2호 에 따라 위 각 토지가 친일재산임을 전제로 하여 한 위 결정은 적법하다.
4. 결론
그러므로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별지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