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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방법원 2015.4.23.선고 2014가합5803 판결

손해배상(기)

사건

2014가합5803 손해배상( 기 )

원고

양이

소송대리인 변호사 고창후

고 대한민국

법률상 대표자 법무부장관 황교안

소송수행자 공익법무관 최호웅

변론종결

2015. 4. 2.

판결선고

2015. 4. 23.

주문

1.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2.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피고는 원고에게 120,0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이 사건 소장부본 송달일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20 % 의 비율에 의한 돈을 지급하라 .

이유

1. 기초사실

가. 한국전쟁 발발 후 예비검속 실시 등

1950. 6. 25.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내무부 치안국은 전국 각 도의 경찰국에 과거 좌익 또는 반정부 활동에 관련된 사람들에 대하여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이른바 예 비검속(혐의자에 대한 사전 검거, 구금을 의미한다)을 실시하라고 지시하였다.

이에 따라 제주 지역 주둔 해병대 사령부 소속 군인들과 경찰들은 법적 근거나 기 준 없이 임의적으로 A, B, C, D의 4등급으로 분류한 예비검속 대상 중 C, D 등급으로 분류된 주민을 연행하여 경찰서 유치장, 제주읍 주정공장 창고, 서귀포 절간고구마 창 고 등에 불법 구금하였다가, 1950. 7. 중·하순경 및 1950. 8. 중순경 적법한 사법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채 정뜨르비행장(태평양전쟁 말기에 일본이 현재의 제주국제공항 자리 에 만든 비행장을 말한다)에서 비밀리에 집단 총살하거나 산지항 부근 바다에 수장하 였다( 이하 '제주예비검속사건'이라고 한다).

나 . 제주4 ·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의 조사 및 결정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설치된 제주4· 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 이하 '제주4·3사건 위원회'라고 한다 )는 제주 4 ·3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이를 통해 희생자와 그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기 위 한 목적으로 2000. 9.부터 2003. 2.까지 제주4·3사건 및 제주예비검속사건 등을 조사하 였고, 이를 바탕으로 2003. 12.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를 발행하였으며, 2008. 12. 에는 그동안의 위원회 활동을 정리한 '화해와상생-제주4·3위원회 백서' 를 발행하면서 제주예비검속사건의 희생자 결정 명단을 함께 수록하였다. 한편, 제주4·3사건 위원회는 그 무렵까지 위와 같은 조사결과를 토대로 망 양□□( 이하 '망인'이라 한다) 등을 포함 한 제주예비검속사건 희생자의 유족들에 대하여 사망자 및 유족결정을 통지하였다.

다 . 진실 ·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설치, 조사 및 결정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이하 '과거사정리법'이라고 한다) 에 따라 설치 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이하 '과거사정리위원회'라고 한다 )는 제주예비 검속사건에 대하여 조사하기로 결의하고 , 2006. 5.부터 신청인 면담 조사 , 목격자, 위 사건과 관련된 군, 경찰 출신자 등 참고인 조사, 사건 당시 경찰서에서 작성한 예비검 속자 명부, 총살자 및 동 가족 명부, 좌익계열실태조사표 형살자 명부 등을 비롯하여 위 사건과 관련된 군 , 검찰, 경찰, 일반 자료 등의 조사 , 정뜨르비행장 등에 대한 현장 조사 등을 실시하였다.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10. 6. 8. 위와 같은 조사를 바탕으로 망인을 포함한 195명 을 제주예비검속사건의 희생자로 판단하는 진실규명결정(이하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 이라고 한다) 을 하면서, 피고에 대하여 피해 유족들에 대한 사과와 피해보상, 위령사업 지원 등을 권고하였다.

라 . 원고 등의 지위 및 관련 사건의 진행 경과

원고는 제주예비검속사건에 관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에서 희생자로 확인된 망인의 딸이고, 양△△은 망인의 7촌이자 사후양자이다. 양△△은 망 인에 대한 제주4·3사건 희생자 및 유족신고를 하였고,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이 있은 후 2012. 3. 2. 피고를 상대로 3억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으며, 1심 법원은 2012. 11. 8. 피고의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하여 망인에 대한 위자료를 1억 원으로 정하 면서 이를 양△△이 단독상속하였으므로 양△△에게 1억 원을 인용하는 내용의 판결을 선고(제주지방법원 2012가합545호)하였으나, 항소심 법원은 2014. 6. 2. "양△△은 망 인 , 망 오○, 망양 이 각 사망한 이후인 1973. 6. 2. 사후양자로 입양된 사실을 알 수 있고, 신민법상 사후입양으로 인하여 호주상속은 개시되지만 재산상속이 개시되거 나 소급하는 것은 아니므로, 신민법 시행 이후 사후양자로 선정된 양△△은 망인, 망 망 오○, 망양 의 고유 위자료를 소급하여 상속할 수 없다" 는 이유로 양△△의 청 구를 모두 기각하였고[광주고등법원( 제주 ) 2012나 1261호], 위 항소심 판결은 대법원에 서 심리불속행기각으로 확정되었다.

[인정 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내지 5호증(각 가지번호 포함)의 각 기재, 변론 전 체의 취지

2. 청구원인에 관한 판단

가. 망인이 제주예비검속사건의 희생자인지 여부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에서 망인을 제주예비검속사건의 희생자 로 확인한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고, 나아가 위 인정사실 및 앞서 본 증거와 변론 전 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 즉, ① 양△△은 '당시 태어나지 않 았으나 아버지가 생전에 관련 얘기를 많이 해주어서 내용을 알고 있다. 6·25가 발발하 고 다음날 새벽에 예비검속이란 명분으로 망인을 군 트럭에 태운 후 서귀포 정방폭포 인근 고구마절간창고에 구금하였다. 친아버지(양○○)와 어머니가 음력 6. 18. 면회를 가서 옷을 집어넣었는데, 다음날 다른 사람이 가보니 창고에 사람들이 없어졌다고 한 다. 음력 6. 18. 군 트럭에 태워져 어디론가 갔고, 아버지에게 듣기로는 눈을 흰 천으 로 가린채 배에 태워져 바다로 갔다고 한다'라고 진술한 점 , ② 제4대 국회의 양민학살 진상조사특별위원회는 1960. 6. 한국전쟁 전후로 발생한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의 실태 를 조사하기 위하여 신고서를 접수하였는데, 위 '양민학살진상규명신고서'에는 망인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망인이 제주예비검속사건의 희생자임을 인정 할 수 있다.

나. 손해배상책임의 발생

피고 소속 군인 또는 경찰 등은 정당한 사유 없이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망인을 연행한 후에 살해함으로써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 생명권, 적법 절차에 따라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을 침해하였고, 이는 공무원인 군인 및 경찰들의 직 무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결국 위와 같은 행위는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에 해 당한다고 할 것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고는 소속 공무원들의 위법한 직무집 행으로 인하여 희생당한 망인과 그 유족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

3. 피고의 항변에 관한 판단

가. 소멸시효의 완성 여부

피고는 '원고의 손해배상청구권은 금전의 급부를 목적으로 하는 국가에 대한 권리 로서 불법행위일로부터 5년간 행사하지 않았으므로 소멸시효가 완성되었고, 적어도 원 고가 제주4·3사건 위원회로부터 사망자 및 유족 결정 통지를 받은 날에는 피고에 의한 불법행위로 망인이 사망한 사실을 알았으므로 그로부터 3년이 경과하여 소멸시효가 완 성되었다'는 취지로 항변한다.

살피건대,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불법행위일로부 터 5년 동안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소멸하고 , 이는 민법상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에서의 3년의 단기소멸시효 기간과 달리 불법행위일로부터 바로 진행되 므로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이 있었던 경우에도 그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망인 이 제주예비검속사건의 희생자가 된 때인 1950년경부터 5년이 경과한 때에 이미 완성 되었다고 할 것이다.

나. 피고의 항변이 권리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

이에 대하여 원고는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에 의하여 피고가 적어도 소멸시효의 완성을 들어 권리소멸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 대한 신뢰를 가질 만한 특별한 사 정이 있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피고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될 수 없다' 는 취지로 재항변한다 .

살피건대,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 칙과 권리남용금지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인바, 과거사정리법의 목적과 내용 등에 비 추어 볼 때 , 위 법률에 근거한 진실규명신청이 있고 이에 따라 피고 산하의 위원회에 서 희생자로 확인 또는 추정하는 진실규명결정을 하였다면, 그 결정에 기초하여 피해 자나 그 유족이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할 경우에, 국가가 적어도 소멸시효의 완성을 들어 권리소멸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 대한 신뢰를 가질 만한 특별한 사 정이 있다고 봄이 상당하고, 이에 불구하고 국가가 피해자 등에 대하여 소멸시효의 완 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될 수 없다 ( 대법원 2013. 5. 16. 선고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그러나 이처럼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이익을 원용하지 않을 것 같은 신뢰를 부여하 였다고 하더라도 채권자는 그런 사정이 있은 때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 하여야 소멸시효 항변을 저지할 수 있고,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 위 권리행사의 '상당한 기간'은 아무리 길어도 민법 제766조 제1항이 규정한 단기소멸 시효기간인 3년을 넘을 수는 없다고 할 것이므로, 피해자나 그 유족이 위원회의 진실 규명결정이 있은 때로부터 3년이 지난 후에 비로소 국가에 대하여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한 경우라면 국가의 소멸시효 항변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에 해당 한다고 할 수 없다(대법원 2013. 5. 16. 선고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과거사정리법이 시행된 후 2010. 6. 8. 과거사정리위원 회가 망인을 희생자로 확인하는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을 한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 고, 이와 같은 결정은 피해자나 유족이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할 경우에 피고 가 적어도 소멸시효의 완성을 들어 권리소멸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 대한 신뢰 를 부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 이 사건 소는 위 진실규명결정일로부터 3 년이 경과한 2014 . 8. 12. 제기되었음이 역수상 명백하다.

그렇다면 피고가 한 소멸시효 완성 항변이 신의성실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에 해 당하다고 볼 수는 없고, 설령 양△△이 진실규명신청을 하여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을 고지받고도 원고에게 이를 알려주지 않고 있다가 위 항소심 판결 이후인 2014. 7. 31. 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 사실을 원고에게 알려주었다고 하여 이와 달리 볼 것은 아니 다(대법원 2013. 7. 25. 선고 2013다203529 판결, 2013. 10. 17. 선고 2013다207323 판결, 2013. 12. 12. 선고 2013다210220 판결 등 참조).

다. 소결론

결국 피고의 소멸시효항변은 이유 있으므로 원고의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시효로 소멸하였다고 할 것이다 .

4.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이유 없으므로 이를 기각한다.

판사

유석동 (재판장)

김경태

이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