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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13. 4. 11. 선고 2012다44969 판결

[손해배상(기)][공2013상,848]

판시사항

[1] 횡령행위로 인한 장물을 취득하는 등 불법행위의 피해 발생에 공동으로 관련된 행위가 공동불법행위로 인정될 수 있는지 여부(적극)

[2] 갑 주식회사의 경영권을 확보하고 있던 을 등이 자신들이 보유하던 갑 회사의 주식과 경영권을 병 등에게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그 직후 병이 갑 회사 자금으로 양도성 예금증서를 발행받아 인수대금을 빌려준 사채업자 정 등에게 담보로 제공한 사안에서, 정 등은 병의 횡령행위에 구체적인 공모를 하지는 않았더라도, 병의 횡령행위와 정 등의 양도성 예금증서 취득행위가 객관적으로 관련공동성이 있다는 이유로, 이와 달리 본 원심판결에 법리오해 등 위법이 있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1] 민법상 공동불법행위는 객관적으로 관련공동성이 있는 수인의 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하면 성립하고, 행위자 상호간에 공모는 물론 의사의 공통이나 공동의 인식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러한 공동의 행위는 불법행위 자체를 공동으로 하거나 교사·방조하는 경우는 물론 횡령행위로 인한 장물을 취득하는 등 피해의 발생에 공동으로 관련되어 있어도 인정될 수 있다.

[2] 갑 주식회사의 대표이사로서 경영권을 확보하고 있던 을 등이 자신들이 보유하던 갑 회사의 주식을 경영권과 함께 별다른 재산이 없던 병 등에게 매각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하였는데, 위 계약 체결 직후 병이 갑 회사 자금으로 양도성 예금증서를 발행받아 인수대금을 빌려준 사채업자 정 등에게 담보로 제공한 사안에서,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정 등은 병 등의 횡령행위에 대하여 구체적인 공모를 하지 않았더라도, 병이 갑 회사의 자금을 이용하여 양도성 예금증서를 발행받는다는 사정을 적어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고 있었다고 볼 여지가 충분히 있고, 나아가 병 등의 횡령행위와 정 등의 양도성 예금증서 취득행위가 객관적으로 관련공동성이 있다고 볼 여지도 충분하다는 이유로, 이와 달리 본 원심판결에는 공동불법행위에 관한 법리오해 등 위법이 있다고 한 사례.

원고, 상고인

주식회사 에스티아이 (소송대리인 법무법인(유한) 화우 담당변호사 박현순 외 2인)

피고, 피상고인

피고 1 외 2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유한) 동인 외 1인)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상고이유서 제출기간 경과 후에 제출된 상고이유보충서의 기재는 상고이유를 보충하는 범위 내에서)를 판단한다.

1. 민법상 공동불법행위는 객관적으로 관련공동성이 있는 수인의 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하면 성립하고, 행위자 상호간에 공모는 물론 의사의 공통이나 공동의 인식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러한 공동의 행위는 불법행위 자체를 공동으로 하거나 교사·방조하는 경우는 물론 횡령행위로 인한 장물을 취득하는 등 피해의 발생에 공동으로 관련되어 있어도 인정될 수 있다 ( 대법원 2001. 5. 8. 선고 2001다2181 판결 등 참조).

2. 원심판결 이유 및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한 증거들에 의하면, 아래와 같은 사실들을 알 수 있다.

(1) 원고는 반도체 제조용 기기 및 장비 제조·판매업 등을 목적으로 하여 1997. 7. 10. 설립된 회사로서 코스닥 상장법인이고, 피고들은 명동에서 사채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원고의 대표이사로서 원고의 경영권을 확보하고 있었던 소외 1은 2009년 4월 초경 자신과 오성엘에스티 주식회사(이하 ‘오성’)가 보유하고 있던 원고 회사 주식을 원고 회사의 경영권과 함께 소외 2, 3에게 180억 원( 소외 1 몫 82억 원, 오성 몫 98억 원)에 매각하기로 합의하였다. 당시 별다른 재산이 없었던 소외 3은 사채시장에서 위 돈을 마련하기로 하여 2009. 4. 11.경 피고 2 등으로부터 180억 원을 차용하기로 하였다.

(2) 이 사건 경영권 양도계약을 체결하기로 한 2009. 4. 13. 오전에 100억 원의 사채를 빌려주기로 한 소외 4가 갑자기 회사 인수자금을 댈 수 없다고 하자, 소외 3은 피고 1에게 100억 원을 빌려달라고 하였다. 피고 1이 이에 응하여 결국 위 180억 원 중 100억 원은 피고 1, 50억 원은 피고 3, 15억 원은 피고 2가 각 빌려주기로 하였고(총 165억 원), 나머지 15억 원은 같은 사채업자인 소외 5가 빌려주기로 하였다.

(3) 피고 1은 2009. 4. 13. 14:00경 1차로 40억 원을 소외 3에게 주었고, 소외 3은 이 중 일부를 피고 2에게 주어 피고 2, 3으로 하여금 오성으로 가 오성 보유 주식인수대금 98억 원이 지급될 수 있도록 하였다. 소외 3은 같은 날 15:00경 피고 1에게 나머지 60억 원을 가지고 역삼동에 있는 원고 회사 사무실로 오도록 하였다. 피고 1은 원고 회사 사무실 앞에서 우연히 소외 5를 만나 원고 회사의 주식이 이미 소외 5에게 담보로 제공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에 피고 1이 소외 3에게 그 경위를 추궁하자, 소외 3은 소외 1로부터 취득한 원고 회사 주식은 이미 소외 5에게 담보로 제공되었으니 대신 양도성 예금증서(CD) 또는 표지어음을 담보로 제공해 주겠다고 하였다.

(4) 이어 원고 회사 사무실에 피고 1도 있는 자리에서, 소외 2 등은 소외 1에게 피고 1로부터 빌린 60억 원을 포함하여 주식양수대금 82억 원(이미 지급된 3억 원 포함)을 지급하면서, 원고 회사의 재무 관련 서류를 달라고 요구하였다. 소외 1은 직원을 통해 원고 회사의 통장, 도장 등을 가져오게 하여 소외 2 측에 주었고(원고의 이 사건 계좌의 비밀번호도 알려 주었다), 그 자리에서 소외 2, 3이 소외 1로부터 원고 회사의 주식 및 경영권을 양도받는 내용의 이 사건 경영권양도계약이 체결되었다. 한편 그 무렵 구로동 소재 오성의 사무실에서도, 위와 같이 피고 2, 3이 소외 3의 지시에 따라 오성에 98억 원을 지급하였고, 소외 3이 오성으로부터 원고 회사 주식을 98억 원에 매수하는 주식 양수도계약이 체결되었다.

(5) 소외 1은 소외 3 측의 요청에 따라, 같은 날 16:09경부터 16:12경 사이에 원고의 다른 계좌에서 이 사건 계좌로 약 30억 원을 이체하였고, 16:35경 한국실리콘 주식회사로 하여금 선급금 중 일부의 반환 명목으로 83억 원을 이 사건 계좌로 송금하도록 하였으며, 17:11경 원고의 증권회사 계좌에서 35억 원을 이 사건 계좌로 이체하여 총 165억 원 이상의 자금이 원고의 이 사건 계좌에 모이도록 하였다.

(6) 소외 3은 이 사건 경영권양도계약이 체결될 무렵 혼자 먼저 원고 회사 서울사무실을 떠나 우리은행 신청담지점으로 갔다. 이때 소외 3은 원고의 이 사건 계좌의 통장, 도장 등을 건네받고 비밀번호도 알아두었다. 소외 3은 그곳에서 자신의 명의로 신규 계좌를 개설하고, 이 사건 계좌의 통장, 도장, 비밀번호 등을 이용해 이 사건 계좌에서 위 신규 계좌로 165억 원을 이체하였다. 소외 3은 그 무렵 피고들에게 차용금에 대한 담보로 양도성 예금증서를 주겠으니 우리은행 신청담지점으로 오라고 연락하였다. 소외 3은 위 165억 원으로 같은 금액 상당의 양도성 예금증서(이하 ‘이 사건 예금증서’)를 발행받았고, 그곳으로 모인 피고 1(100억 원), 피고 2(15억 원), 피고 3(50억 원)에게 차용금액에 맞추어 이 사건 예금증서를 나누어 주었다.

(7) 위와 같이 이 사건 예금증서가 발행되기에 이른 경위와 관련하여, 검찰 수사과정에서 피고 1은 ‘원고 회사를 나와 은행으로 가면서 전화로 소외 3에게 발행자가 누구냐고 따지자 소외 3이 내 개인 명의로 발행하는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다고 진술하였다. 또 피고 2 역시 ‘그 당시 제 생각으로도 소외 3이 원고 회사 자금으로 양도성 예금증서를 매입하는 것 같았다’고 하고, 소외 3 역시 ‘ 피고 1, 2는 이 사건 예금증서가 회사 자금으로 매입한 사실을 당연히 알고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우리은행 신청담지점장인 소외 6은 ‘당시 소외 3이 투자자 2명과 함께 와서 양도성 예금증서를 누구 명의로 발행할 것인지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소외 3 명의로 발행하기로 하였다’고 진술하였고, 소외 3 등에 대한 형사사건의 공판기일에서 소외 3은 위 예금증서 발행 당시 소외 6에 소개한 투자자 2명이 피고 1과 피고 2라고 진술하였다.

(8) 소외 1은 원고 회사의 자금이 소외 3 명의의 통장에 입금되었다가 이 사건 예금증서로 발행되어 출급된 사실을 알고 소외 3 등에게 항의하였고, 소외 3은 그 다음날인 2009. 4. 14. 오전 위 신청담지점에 연락하여 이 사건 계좌에서 소외 3 명의 계좌로 입출금된 것을 취소하여 달라고 요청하였다. 우리은행은 이 사건 계좌에서 소외 3 명의 계좌로 입금된 것을 취소하고, 이 사건 계좌에서 이 사건 예금증서가 발행된 것으로 정정하였다. 같은 날 소외 3은 피고 2 등에게 이 사건 예금증서가 사채 시장에 돌아다니면 좋지 않으니 은행에 보호예수를 하여 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그 후 소외 3 등의 횡령행위에 관하여 검찰 수사가 개시되고 원고 회사의 2009. 6. 2.자 임시 주주총회 개최가 연기되자, 피고들은 2009. 6. 3.과 2009. 6. 4.에 걸쳐 이 사건 예금증서를 전액 해지하고 현금으로 인출하였다.

(9) 소외 3, 2는 공모하여 위와 같이 원고 회사의 자금 165억 원을 횡령하였다는 공소사실로 기소되어, 2009. 12. 15. 각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위 판결은 항소 및 상고기각으로 2010. 9. 9. 그대로 확정되었다.

3. 위와 같은 사실관계 및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알 수 있다. 즉 ① 피고들은 소외 3에게 165억 원에 이르는 인수대금을 빌려주면서도 소외 3의 자력은 고려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고 실제로도 소외 3은 별다른 자력이 없었으므로, 피고들로서는 이 사건 예금증서의 자금 출처가 원고 회사일 수밖에 없다는 사정을 알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② 피고 1은 이 사건 경영권양도계약 체결 자리에 입회하기 전에, 소외 3으로부터 당초 약속하였던 주식의 담보제공이 어렵게 된 대신 양도성 예금증서를 담보로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이미 받아 놓은 상태였으므로, 위 계약 체결 자리에서 소외 1이 소외 3 측에게 원고 회사의 통장, 도장 등을 건네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소외 3이 약속한 양도성 예금증서가 결국은 원고 회사의 자금으로 발행되리라는 사정을 더더욱 잘 알 수 있었다고 할 것이다. ③ 피고 1이 원고 회사의 서울사무소를 방문한 때로부터 불과 2~3시간 사이에 주식양수도대금의 지급, 이 사건 경영권양도계약의 체결, 이 사건 계좌로의 자금의 집중, 그 자금의 전액 인출과 이 사건 예금증서의 발행, 피고들에게로의 이 사건 예금증서의 교부 등의 과정이 빠르게 진행되었고, 피고들도 그러한 과정에 모두 관여하였음이 분명하다. ④ 소외 3 등이 소외 5로부터 차용한 사채 액수는 15억 원에 불과하고 담보로 제공된 주식도 소외 1과 오성이 보유하였던 315만 주 전체가 아니라 150만 주 정도였던 것으로 보이므로, 피고들은 나머지 주식을 담보로 제공받고 소외 5에게 제공된 주식에 대해서도 후순위의 담보를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피고들이 보다 더 확실한 담보를 요구한 데 따라 피고들의 사채 금액 전액에 해당하는 이 사건 예금증서가 발행·교부된 것이므로, 소외 3이 그와 같은 행위로써 원고 회사의 자금을 횡령한 직접적인 동기는 결국 피고들에 대한 담보제공을 하려는 데 있었다.

위와 같은 여러 사정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들이 설령 소외 3 등의 횡령행위에 대하여 구체적인 공모를 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소외 3이 원고의 자금을 인출하여 이 사건 예금증서를 발행받는다는 사정을 적어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고 있었다고 볼 여지는 충분히 있고, 나아가 소외 3 등의 횡령행위와 피고들의 이 사건 예금증서 취득행위가 객관적으로 관련공동성이 있다고 볼 여지도 충분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피고 1이 적극적으로 양도성 예금증서의 발행을 요구한 것으로 보기 어렵고, 피고들은 당초 양도성 예금증서가 아닌 주식을 담보로 받기로 하였으며 피고들이 위 신청담지점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이 사건 예금증서가 발행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등 그 판시와 같은 사정들만을 근거로[ 소외 3의 위 형사사건에서의 증언(기록 743쪽) 등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예금증서가 발행된 이후에 피고들이 위 신청담지점에 도착하였다고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소외 3이 원고의 자금을 인출하여 이 사건 예금증서를 발행받는다는 사정을 피고들이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였거나 인식할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원고의 이 사건 청구를 모두 배척하고 말았으니, 원심판결에는 공동불법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였거나 논리와 경험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난 위법이 있다. 이를 지적하는 상고이유의 주장은 이유 있다.

4. 이에 나머지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이 판결에는 관여 대법관의 의견이 일치되었다.

대법관 김창석(재판장) 양창수 박병대(주심) 고영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