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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1996. 4. 25. 선고 94헌마129 95헌마121 판례집 [의료기사법 제1조 등 위헌확인]

[판례집8권 1집 449~464] [전원재판부]

판시사항

가. 입법부작위(立法不作爲)에 대한 헌법소원의 적법요건

나. 물리치료사와 임상병리사에 대하여 독자적인 영업을 금지하고 의사의 지도하에서만 업무를 수행하도록 한 의료기사법(醫療技士法) 제1조같은 법(法) 시행령(施行令) 제2조 제2항이 위헌(違憲)인지 여부

결정요지

가. 물리치료사와 임상병리사에 대하여는 이 사건 법령조항이 의사의 지도하에서만 업무를 수행하도록 규정함으로써 그들의 독자적인 영업을 적극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므로, 이와 같이 적극적인 입법을 하고 있는 경우에는 그와 반대되는 취지의 입법을 따로 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며, 이를 가리켜 입법부작위(立法不作爲)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이러한 경우에는 언제나 그 법령조항의 위헌성을 적극적으로 다투는 형식으로 헌법소원을 제기하여야 하고, 소극적으로 그와 반대되는 취지의 입법을 하지 않은 부작위가 위헌(違憲)이라고 주장하여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는 없다.

나. 입법부가 일정한 전문분야에 관한 자격제도를 마련함에 있어서는 그 제도를 마련한 목적을 고려하여 정책적인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제도의 내용을 구성할 수 있고, 그 내용이 명백히 불합리하고 불공정하지 아니하는 한 원칙적으로 입법부의 정책적 판단은 존중되어야 한다.

의료기사(醫療技士) 제도의 입법목적의 의사의 진료행위를 지원하는 업무도 국민의 보건과 관련되어 있는 이상 일정한 자격자로 하여금 담당하게 함

으로써 위험을 예방하려는 것이므로, 의료기사가 국민을 상대로 독자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없도록 하고 반드시 의사의 지도하에서만 업무를 수행하도록 한 것은 그 입법목적에서 비추어 당연한 것이다.

의료기사(醫療技士) 제도의 구체적인 내용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는 입법부의 입법형성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고, 의료기사의 업무수행에 관한 자유와 권리는 입법부가 정책적인 판단에 따라 법률로써 그 제도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규정할 때 비로소 헌법상의 권리로서 구체화된다. 따라서 헌법상 의료기사의 직업수행(職業遂行)의 자유(自由) 내지 영업(營業)의 자유(自由)는 의료기사법(醫療技士法)에 의해 인정되는 자격제도의 내용에 의해 비로소 창출되는 것이고, 자격제도 자체가 위헌이 아닌 이상 의료기사가 그러한 자격제도하에서 허용되는 범위내에서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당사자

청구인 정○훈 외 1명

청구인들 대리인 변호사 이석연

참조판례

나. 1990.10.15. 선고, 89헌마178 결정

1991.2.11. 선고, 90헌가27 결정

주문

청구인들의 심판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이유

1. 사건의 개요와 심판의 대상

가. 사건의 개요

청구인 정○훈은 1994.2. 대구보건전문대학 물리치료학과를 졸업하고 의료기사 국가시험에 합격하여 1994.4.30. 보건복지부장관(당시 보건사회부장관)으로부터 물리치료사 면허증을 교부받았으며, 청구인 임○선은 1995.1. 군산전문대학 임상병리학과를 졸업하고 의료기사 국가시험에 합격하여 1995.4.6. 보건복지부장관으로부터 임상병리사 면허증을 교부받았다. 청구인들은 각 물리치료실과 임상병리실을 개설하여 독자적인 영업을 하려고 하였으나 의료기사법 제1조같은 법 시행령 제2조 제2항에서 의료기사는 의사의 지도를 받아서만 업무를 수행하도록 규정하고, 독자적인 업무수행에 관하여는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않은 관계로 독립하여 업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청구인들은 주위적으로는 위 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직접 기본권을 침해당했음을 이유로, 예비적으로는 국가가 물리치료사와 임상병리사제도를 마련하면서 독자적인 업무수행권에 관하여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않은 입법부작위로 말미암아 기본권을 침해당했음을 이유로 청구인 정○훈은 1994.6.29., 청구인 임○선은 1995.

4.20. 이 사건 헌법소원을 각 제기하였다.

나. 심판의 대상

이 사건 심판의 대상은, 주위적으로는, 의료기사법 제1조(1991.12.14. 법률 제4431호로 개정된 것) 및 같은 법 시행령 제2조 제2항(1992.7.2. 대통령령 제13687호로 개정된 것)이 물리치료사와 임상병리사인 청구인들의 기본권인 평등권,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였는지 여부이며, 예비적으로는, 의료기사법 및 그 시행령에서 물리치료사와 임상병리사의 독자적인 업무수행권에 관한 규정을 두지 아니한 입법부작위가 청구인들의 기본권인 평등권,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였는지 여부이다.

위 법률과 그 시행령 조항(이하 이 사건 법령조항이라 한다)은 다음과 같다.

의료기사법 제1조(1991.12.14. 법률 제4431호로 개정된 것)

이 법은 의사·치과의사의 지도하에 진료 또는 의화학적 검사에 종사하는 자(이하 "의료기사"라 한다), 의무에 관한 기록을 주된 업무로 하는 자(이하 "의무기록사"라 한다), 시력보정용 안경의 조제 및 판매를 주된 업무로 하는 자(이하 "안경사"라 한다)의 자격, 면허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보건 및 의료향상에 기여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동법 시행령 제2조 제2항

의료기사는 의사 또는 치과의사의 지도를 받아 제1항에 규정된 업무를 행한다.

2. 청구인들의 주장과 이해관계인의 의견

가. 청구인들의 주장

물리치료사와 임상병리사의 업무는 다른 의료기사의 업무와는 달리 의사의 일반적인 의료행위에 속하지 아니하는 독자적인 것으로서, 의사의 구체적인 지도나 지시를 받을 필요성이 없다. 의료기사가 아닌 의사가 자신의 전공분야가 아닌 물리치료사와 임상병리사의 업무를 지도한다는 것은 입법권행사에 있어서의 체계정당성의 원리에 반한다.

물리치료와 임상병리업무는 청구인들의 직업수행의 자유의 일환인 영업의 자유에 속하며, 의사의 지도를 받아서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거나 또는 독자적인 업무수행권에 관한 규정을 두지 않은 것은 직업수행의 자유에 대한 제한인데, 물리치료와 임상병리업무를 의료기사가 아닌 의사의 지도를 받아 수행하게 함으로써 물리치료사와 임상병리사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이 공공복리 즉 국민의 보건 및 의료향상이라는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불가결하다고 볼 수 없다. 설사 의사의 지도를 받게 하더라도 그 특성상 의사의 지시를 받아야 할 몇가지 경우에 한정되어야지 현행처럼 모든 분야에서 독자적인 업무수행권을 박탈하고 있는 것은 기본권제한에 있어서 요구되는 침해의 최소성의 원칙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국가가 엄격한 절차를 거쳐 물리치료사와 임상병리사 면허를 교부하면서 독자적인 업무수행이 가능하도록 하는 아무런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은 것은 직업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이다. 이는 기본권제한입법의 한계로서 요구되는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하여 직업선택의 자유의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한 것이고, 나아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으로부터 파생되는 일반적

행동의 자유권에도 어긋난다.

또한 조산사, 의료유사업자, 안마사, 약사, 안경사, 치과기공사 등은 일정한 범위 안에서 독자적인 업무수행이 가능하게 한 점과 비교하면, 이 사건 법령조항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물리치료사와 임상병리사를 차별한 것으로서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

결론적으로, 의료기사법 제1조의 "의사, 치과의사의 지도하에 진료 또는 의화학적 검사에 종사하는 자" 또는 동법 시행령 제2조 제2항의 "의료기사는 의사, 치과의사의 지도를 받아 제1항에 규정된 업무를 수행한다"는 규정에, 청구인들과 같은 물리치료사와 임상병리사를 포함시키는 것은, 청구인들의 직업선택의 자유(제15조), 평등권(제11조 제1항)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위헌이다.

설사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국가가 물리치료사와 임상병리사 면허제도를 마련하여 자격을 부여하면서 독자적인 면허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규정을 두지 아니한 것은 청구인들의 기본권인 직업선택의 자유 및 평등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고 국가의 기본권보장의무를 저버린 것이므로 그 입법부작위가 위헌이다.

나. 보건복지부장관의 의견

환자의 치료는 다양한 치료방법 중 어느 한 부분에 제한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의해 단편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아니되고, 모든 의학적 지식을 체계적으로 습득하고 다양한 치료방법을 체득한 의사에 의하여 연계된 다른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통합된 치료가 이루어지는 것이 국민의 건강보호증진에 적합하다.

물리치료의 경우 각각의 치료법 및 테크닉마다 의학적인 적응증과 금기증이 있으며 이를 환자에게 적응시킴에 있어서도 환자 개개

인의 병적인 상태와 정도에 따라 선택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러한 치료가 환자치료의 통합조정능력이 없는 물리치료사에 의하여 독자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이로 인한 부작용, 합병증 발생 등 국민의료에 심대한 지장이 우려된다. 따라서 물리치료사도 다른 의료기사와 마찬가지로 의사의 지도하에 한정된 범위의 업무에 종사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

임상병리업무도 원칙적으로는 광범위한 의학적 지식을 습득하고 환자 및 질병에 대한 이해가 충분한 의사가 행하여야 할 사항이나, 기능적·반복적 업무에 한하여 일정한 자격요건을 갖춘 임상병리사로 하여금 의사의 지도하에 그 업무를 행하도록 한 것이다. 부정확한 검사는 그릇된 진단과 부적절한 치료로 연결되어 오진 및 의료사고발생 등 국민건강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으므로 임상병리사가 독단적으로 업무를 수행하여야 한다는 것은 국민건강을 도외시한 불합리한 주장이다.

의료기사법 제11조에서 의료기사가 아니면 의료기사의 업무를 행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동법 제1조 및 동법 시행령 제2조 제2항에서 규정한 "의사의 지도"를 전제로, 물리치료사 자격이 없는 자에 의한 물리치료업무를 금지하는 것일 뿐, 의사의 진료행위를 배제하고 의료기사에게만 독자적인 업무를 허용하는 취지라고 볼 수 없다.

면허제에 의한 업무수행 영역은 헌법에 의하여 보장받는 것이 아니며, 국가의 입법정책에 의하여 범위가 결정되는 사항으로서 물리치료사나 임상병리사에게 독자적인 영업소를 개설하여 영업할 수 있도록 하지 않았다고 하여 면허제도의 본질에 반한다거나 헌법

보장된 직업선택 및 수행의 자유,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다른 의료기사 등과 차별하여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는 주장도 부당하다. 조산사, 의료유사업자 및 안마사의 경우에는 현행 의료법상 의료인에 대한 면허제도가 확립되기 전인 일제하에서, 산파·침구·접골·안마 등에 관한 단편적인 기술을 습득하여 자격을 수여받은 기존의 유자격자들의 기득권을 인정해 주는 측면에서 특별히 마련한 제도이고, 안경사의 경우 의료용구 판매업 등록만으로 자유롭게 영업이 허용되던 안경업에 대하여 국민보건을 위하여 1987년 의료기사법을 개정하여 안경사 국가시험에 합격한 안경사에게 안경의 조제 및 판매(콘텍트렌즈의 조제는 제외)만을 허용하고 약제를 이용한 시력검사 및 자동굴절검사기기를 사용하지 아니한 타각적 굴절검사를 못하도록 하며, 6세 이하의 아동에 대한 시력보정용안경의 조제, 판매는 의사의 처방에 의하게 함으로써 국민보건에 미치는 위해를 미치지 않는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영업을 허용하고 있다. 치과기공사의 경우에도 치과진료에 필요한 치과기공물, 충전물 또는 교정장치의 제작, 수리 또는 기타 치과기공업무만을 치과의사가 발행하는 치과기공물 제작의뢰서에 의하여 행하도록 하고 있으며, 치과기공소마다 지도치과의사를 두도록 하고 지도에 위반되는 행위를 한 치과기공소에 대하여는 면허취소를 하도록 하는 등 철저히 치과의사의 지도를 받도록 하고 있으며, 치과기공소는 직접 환자를 볼 수 없도록 함으로써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업무를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방사선사, 작업치료사, 치과위생사의 경우도 의사 또는 치과의사

의 지도를 받아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고 있으므로 물리치료사에게만 근거 없는 차별을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다. 대한물리치료사협회·대한임상병리사협회·의료기사단체연합회의 의견

물리치료 및 임상병리업무는 의사의 의료행위와 구분되는 그 자체 독립된 전문성을 지닌 의과학의 한 분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법령조항이 의사의 구체적인 지시나 지도하에서만 업무를 수행하도록 한 것은 결국 물리치료사·임상병리사 면허소지자의 대다수로 하여금 취업의 기회를 얻지 못하게 함으로써 헌법 제16조의 직업선택 및 수행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기본권제한은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는 헌법 제37조 제2항에 위배된다.

물리치료사와 임상병리사는 이 사건 법령조항으로 말미암아 의사에게 고용되는 것을 전제로 해서만 업무를 수행할 수 있고, 고용되는 것을 포기할 경우에는 평생 직업수행이 불가능한 바, 이는 물리치료사와 임상병리사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박탈하는 것이다.

의료법에 의하면 의료행위를 의사, 치과의사 및 한의사의 영역으로 구분하고, 약사법에 의하여 약사 및 한약사만이 의약품을 조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의료관계 종사자 중에서 조산사, 의료유사업자, 안마사, 안경사, 치과기공사 등에 대해서는 일정한 범위의 독자적인 업무수행이 가능하도록 하면서, 유독 물리치료사와 임상병리사만 반드시 의사의 지도를 받도록 하는 것은 헌법 제11조 제1항의 평등의 원칙에 위반된다.

라. 대한의사협회·대한재활의학회·대한정형외과학회·대한신경외과학회·대한병원협회의 의견

물리치료와 임상병리업무를 의료기사의 독자적인 업무영역으로 할 것인지의 여부는 입법정책의 문제이지 법률의 제정 이전에 반드시 물리치료사의 고유 업무영역으로 결정되어 있거나 결정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물리치료사와 임상병리사의 면허는 강학상 허가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일반적 금지의 해제에 해당하므로 이는 의료기사법이라는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비로소 가능한 것이지 법률 이전에 자연적으로 생긴 권리가 아니다. 따라서 의료기사법에서 의료기사의 업무수행에 의사의 지도가 필요하다고 규정하였다고 해서 청구인들의 직업수행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규정이라고 말할 수 없다.

현행 의료체계는 의료행위의 난이도에 따라 의사가 직접 전담하도록 하는 부분과 의료기사로 하여금 담당하도록 하되 반드시 의사의 지도를 받아 실시하도록 하는 부분으로 구분하고 있다. 물리치료사, 임상병리사 등 의료기사의 업무는 의사의 의료행위에 종속되는 보조적인 의료업무에 불과하지만, 이는 결국 의사의 의료행위의 결과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이므로 반드시 의사의 지도를 받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조산사, 유사의료업자, 안마사, 안경사, 치과기공사, 약사 등에 대하여 일정범위의 독자적인 업무수행이 가능하도록 한 것은, 그 업무의 성질이 그와 같이 허용하더라도 무방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물리치료사와 임상병리사의 업무내용은 이와 다르기 때문인 것이므로 이로써 평등권을 침해당했다고 할 수 없다.

입법부작위로 인한 기본권침해에 관한 주장에 대해서도, 헌법에서 물리치료사와 임상병리사의 업무수행에 의사의 지도를 받도록 한 법령조항을 삭제할 명시적인 입법위임을 한 것도 아니고, 도 헌법해석상 청구인들에게 위와 같이 의사, 치과의사의 지도없이 업무를 할 수 있는 기본권이 생겼고 이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행위의무 내지 보호의무가 발생하였다고 볼 수도 없다. 따라서 입법부가 청구인들에게 독자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입법을 하여야 할 헌법상의 의무까지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이 사건의 경우 물리치료사와 임상병리사의 업무수행에 의사의 지도를 받도록 한 제한을 철폐할 것인지 여부는 오로지 입법부의 재량에 속하는 문제이며, 그 제한을 철폐하는 입법을 하지 아니하였다고 해서 그 입법부작위가 헌법에 위반된다고 할 수는 없다.

3. 판단

가. 입법부작위에 관한 헌법소원의 적법 여부

먼저 입법부작위에 관한 헌법소원의 적법 여부에 관하여 본다.

청구인들은, 예비적으로 국가가 물리치료사와 임상병리사 면허제도를 마련하여 자격을 부여하면서 독자적인 영업행위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규정을 두지 아니한 것은 청구인들의 기본권인 직업선택의 자유 및 평등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고 국가의 기본권보장의무를 저버린 것이므로 입법부작위에 의한 위헌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입법부가 물리치료사와 임상병리사에 대한 독자적인 영업권의 배제에 관하여는 아무런 입법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 사건 법령조항이 의사의 지도하에서만 업무를 수행하도록 규정함

으로써 적극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므로 이와 같이 적극적인 입법을 하고 있는 경우에는 언제나 그와 반대되는 취지의 입법을 하지 않은 것은 그 당연한 이치이다. 청 구인들이 이 사건에서 말하는 이른바 입법부작위는 적극적 금지규정의 반면(反面)에 지나지 아니하므로 이를 가리켜 입법부작위에 해당하는 것이라 할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는 언제나 그 법령조항의 위헌성을 적극적으로 다투는 형식으로 헌법소원을 제기하여야 하고, 소극적으로 그와 반대되는 취지의 입법을 하지 않은 부작위가 위헌이라고 주장하여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는 없다. 다만 이 사건의 경우 청구인들은 반대취지의 입법을 하지 않은 부작위가 위헌이라는 주장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 사건 법령조항이 위헌이라는 전제 아래 예비적 청구까지 하고 있으나 이는 곧 주위적 청구를 뒤집어 말한 것에 지나지 아니하여 독립된 별개의 청구가 아니라 바로 주위적 청구와 같은 내용의 것이라고 볼 것이다. 따라서 입법부작위에 관한 청구인들의 헌법소원 부분의 적법성에 관하여는 따로 판단할 것 없이 이 사건 법령조항에 관한 위헌여부를 가림으로써 족하다 할 것이다.

나. 물리치료사 및 임상병리사 제도의 위헌 여부

(1) 입법부가 일정한 전문분야에 관한 자격제도를 마련함에 있어서 그 제도를 마련한 목적을 고려하여 정책적인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제도의 내용을 구성할 수 있고, 그 내용이 명백히 불합리하고 불공정하지 아니하는 한 원칙적으로 입법부의 정책적 판단은 존중되어야 한다(헌법재판소 1990.10.15. 선고, 89헌마178 결정 참조).

이 사건 법령조항에서 의료기사는 반드시 의사의 지도를 받아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고 독자적으로 영업을 할 수 없도록 한 것이 헌

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는, 의료기사 제도를 둔 입법취지와 의료기사 업무의 내용, 의료기사의 자격요건과 자격을 얻기 위하여 소요되는 교육기간, 업무면에서 의료기사와 의사와의 관계 등과 아울러 그 업무의 내용이 국민의 보건에 미치는 영향을 따져 보아야 한다.

(2) 당초 의료기사 제도를 둔 입법취지는 의사가 담당하는 진료와 검사업무를 보조하는 자를 일정한 시험에 합격하여 자격을 갖춘 자로 한정함으로써 국민의 건강과 위생을 보장하려는 것이었다. 과거 의료보조원법(1963.7.31. 법률 제1308호)에서도 의료보조원은 의사 또는 치과의사의 감독하에 진료 또는 의화학적 검사의 보조에 관한 업무에 종사하는 자로 규정함으로써(제2조) 독자적인 업무수행을 금지하였다. 그후 의료보조원법이 폐지되고 의료기사법이 제정되면서, 의료기사는 단순한 보조업무를 담당하는 자가 아니라 직접 진료 또는 의화학적 검사업무를 담당하는 자로 규정하였으나, 역시 의사의 지도를 받도록 하고 독자적인 업무수행을 금지하였다.

의료인이 아니면 의료행위를 할 수 없고 의료인도 면허된 이외의 의료행위는 할 수 없다(의료법 제25조). 의료인은 의사·약사·한의사·조산사 및 간호사를 말한다. 의료행위를 의료인에게만 담당하도록 한 것은 바로 의료행위가 직접 국민의 보건과 관련된 것으로 고도의 지식과 기술을 갖춘 자가 아니면 국민의 생명·신체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자격을 엄격하게 제한한 것이다.

의료기사의 업무는 의사의 지도하에 의사의 진료행위의 일부를 담당하거나 진료에 필요한 검사를 행하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한다. 시험에 합격하여 일정한 자격을 갖추고 면허를 받은 자만이 의료기

사가 될 수 있도록 한 것은, 바로 의료기사의 업무가 국민의 건강과 보건에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무자격자가 의료기사업무를 행할 경우 국민보건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염려가 있으므로 일정한 자격제도를 두어 전문기술을 갖춘 자격자로 하여금 업무를 담당하도록 한 것이다.

의료기사제도의 입법목적이 의사의 진료행위를 지원하는 업무도 국민의 보건과 관련되어 있는 이상 일정한 자격자로 하여금 담당하게 함으로써 국민의 건강에 대한 위험을 예방하려는 것이므로, 의료기사가 국민을 상대로 독자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없도록 하고 반드시 의사의 지도하에서만 업무를 수행하도록 한 것은 위와 같은 입법목적에서 비추어 당연한 것이다.

(3) 의료행위 중에서는 고도의 지식과 기술을 요하여 반드시 의사가 직접 수행하지 않으면 안되는 영역이 있는가 하면, 일정한 자격을 갖춘 의료기사로 하여금 수행하게 하여도 무방한 영역도 있다. 특정한 의료행위가 어느 쪽에 속하는가는 상대적인 것으로서 오늘날과 같이 의학지식이 널리 보급되어 상식화되어 가는 시대에는 후자의 범위가 점점 넓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의료행위 중에서 국민보건에 위험성이 적은 일정한 범위의 것을 따로 떼어서 이를 의사에게 맡기지 아니하고, 다른 자격제도를 두어 그 자격자에게 맡길 것인지 여부는 입법부의 입법형성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설사 물리치료사와 임상병리사의 업무가 의료행위 중에서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덜하고 의사로 하여금 직접 수행하게 하지 않아도 될 만한 것이라고 가정하더라도, 입법부가 여러 가지 정책

적인 고려하에 이를 의사로 하여금 담당하도록 하면서, 이와 별도로 물리치료사와 임상병리사제도를 두어 의사에게 고용되어 의사의 지도하에서 각 업무를 수행하게 함으로써 의사의 진료행위를 지원하도록 제도를 마련하였다고 하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를 두고 입법재량을 남용하였다거나 그 범위를 일탈하였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의료기사 제도의 구체적인 내용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는 입법부의 입법형성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고, 의료기사의 업무수행에 관한 자유와 권리는 입법부가 정책적인 판단에 따라 법률로써 그 제도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규정할 때 비로소 헌법상의 권리로서 구체화되는 것이기 때문이다(헌법재판소 1991.2.11. 선고, 90헌가27 결정 참조). 다시 말하면 헌법상 의료기사의 직업수행의 자유 내지 영업의 자유는 의료기사법에 의하여 인정되는 자격제도의 내용에 의하여 비로소 창출되는 것이고, 자격제도 자체가 위헌이 아닌 이상 의료기사가 그러한 자격제도하에서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더구나 물리치료사와 임상병리사의 업무는 의사의 진료행위에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어서, 물리치료사와 임상병리사가 의사를 배제하고 독자적으로 환자를 치료하거나 검사하여도 될 만큼 국민의 건강에 대한 위험성이 적은 것이라고 보이지도 않는다.

4. 결론

따라서 이 사건 법령조항이 물리치료사와 임상병리사를 의사의 진료를 지원하는 측면에서 의사의 지도하에서만 업무를 담당하

도록 하였다고 해서 물리치료사 또는 임상병리사인 청구인들의 직업선택의 자유, 평등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으로부터 파생되는 일반적 행동의 자유권을 침해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청구인들의 이 사건 심판청구는 모두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여야 할 것인바, 재판관 전원의 의견이 일치되었으므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1996. 4. 25.

재판관

재판장 재판관 김용준

주 심 재판관 김문희

재판관 김진우

재판관 황도연

재판관 이재화

재판관 조승형

재판관 정경식

재판관 고중석

재판관 신창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