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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고법 2017. 5. 10. 선고 2016나55042 판결

[손해배상] 상고[각공2017하,397]

판시사항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실시 직후 세계지리 문제에 대하여 이의신청이 제기되었으나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문제의 출제 및 정답결정에 오류가 없음을 전제로 응시자들의 과목 성적 및 등급을 결정하였는데, 세계지리 과목을 선택하여 응시한 갑 등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상대로 ‘세계지리 과목에 대한 등급 결정 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여 승소 확정 판결을 받은 후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에서,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국가는 공동하여 갑 등의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시험’이라 한다) 실시 직후 세계지리 문제에 대하여 이의신청이 제기되었으나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하 ‘평가원’이라 한다)이 문제의 출제 및 정답결정에 오류가 없음을 전제로 응시자들의 과목 성적 및 등급을 결정하였는데, 세계지리 과목을 선택하여 응시한 갑 등이 평가원을 상대로 ‘세계지리 과목에 대한 등급 결정 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여 승소 확정 판결을 받은 후 평가원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에서, 수능시험의 출제위원 및 검토위원들이 명백하게 틀린 지문이 포함된 문제를 출제하고 정답을 결정하는 오류를 범한 잘못은, 부적절한 문제의 출제 및 채점을 방지함으로써 출제나 채점의 잘못으로 응시자가 잘못된 성적을 받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는 평가원이 재량권을 일탈 또는 남용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고, 수능시험 실시 직후 문제에 대한 이의가 제기되었는데도 평가원이 이의처리 과정에서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다하지 아니한 과실이 있으므로, 평가원의 등급 결정 처분은 갑 등에 대한 불법행위를 구성하고, 이른바 ‘공무수탁사인’의 지위에 있는 평가원은 공무를 수행하는 범위 내에서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의 ‘공무원’이므로, 갑 등이 입은 손해에 대한 전보책임은 국가에게도 부담시키는 것이 상당하다는 이유로, 평가원과 국가는 공동하여 갑 등의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한 사례.

원고(선정당사자), 항소인

원고(선정당사자) (소송대리인 변호사 임윤태)

피고, 피항소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외 1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지평 담당변호사 박성철 외 1인)

변론종결

2017. 4. 5.

주문

1. 제1심판결 중 다음에서 지급을 명하는 금액에 해당하는 원고(선정당사자) 및 선정자들 각 패소 부분을 취소한다.

피고들은 공동하여 원고(선정당사자) 및 선정자들에게 별지2 표 해당 ‘인용금액’란 기재 각 돈 및 위 각 돈에 대한 2013. 11. 27.부터 2017. 5. 10.까지는 연 5%,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15%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각 지급하라.

2. 원고(선정당사자) 및 선정자들의 나머지 항소와 원고(선정당사자) 및 별지1 선정자 명단 순번 2 내지 22번 기재 선정자들이 이 법원에서 교환적으로 변경한 청구를 각 기각한다.

3. 소송총비용 중 2/3는 원고(선정당사자)가, 나머지는 피고들이 각 부담한다.

4. 제1항 중 돈 지급을 명하는 부분은 가집행할 수 있다.

청구취지 및 항소취지

1. 청구취지

피고들은 공동하여 원고(선정당사자, 이하 ‘원고’라 한다)와 선정자들(이하 원고와 선정자들을 포괄하여 ‘원고들’이라 한다)에게 별지2 표 ‘청구금액’란 기재 각 돈 및 위 각 돈에 대한 2013. 11. 27.부터 이 사건 소장부본 송달일까지는 연 5%,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각 지급하라(원고와 별지1 선정자 명단 순번 2 내지 22번 기재 선정자들은 당심에서 재산상 손해에 대한 청구를 위자료 청구로 교환적으로 변경하였다).

2. 항소취지

제1심판결을 취소한다. 연 20%의 지연이자율을 연 15%로 감축하는 것 이외에는 청구취지 기재와 같다.

이유

1. 전제 사실

가.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세계지리’ 과목 성적 및 등급 결정 과정

피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하 ‘피고 평가원’이라 한다)의 주관하에 2013. 11. 7. 실시된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시험’이라 한다)에는 약 60만 명의 수험생이 응시하였고, 그중 ‘사회탐구영역’의 선택 과목 중 이 사건에서 문제 되는 ‘세계지리’ 과목에는 원고들을 포함한 37,684명의 수험생들이 선택하여 응시하였다.

피고 평가원은 수능시험 종료 직후 세계지리 ‘8번’ 문제(이하 ‘이 사건 문제’라 하고, 그 내용은 별지3과 같다)의 정답을 ‘ㄱ’, ‘ㄷ’ 지문이 포함된 ②번(이하 이 사건 문제 중 ‘ㄷ’ 지문을 ‘이 사건 지문’이라 한다)으로 하여 2014학년도 수능시험의 정답을 발표하였는데, 원고들은 이 사건 문제의 정답을 ②번으로 기재하지 않았다.

이 사건 수능시험 실시 직후의 이의신청 기간에 이 사건 문제에 대하여 이의신청이 제기되었으나, 피고 평가원은 이 사건 문제의 출제 및 정답결정에 오류가 없음을 전제로 2014학년도 수능시험 응시자들 개개인의 과목 성적 및 등급을 결정하고, 2013. 11. 27. 이를 원고들을 포함한 수능시험 응시자들에게 통지하였다(이하 원고들에 대한 세계지리 과목 등급 결정 처분을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

나. 관련 행정소송의 경과

위 수능시험 응시자들에 대한 성적 및 등급 통지 직후, 선정자 29, 선정자 49, 선정자 56, 선정자 57, 선정자 58, 선정자 89 등을 포함한 응시자 21명은 이 사건 문제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피고 평가원을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대학수학능력시험 정답결정처분 취소소송’(이하 ‘관련 사건’이라 한다)을 제기하였다.

서울행정법원(2013구합29681) 은 2013. 12. 16. 이 사건 지문이 애매하거나 불분명한 점이 있기는 하지만 평균수준의 수험생이라면 이 사건 문제의 정답을 맞히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는 이유로 관련 사건 원고들의 위 청구를 기각하였다.

이에 대하여 선정자 49, 선정자 89 등 응시자 4명이 항소하였고, 그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2014누40724) 은 2014. 10. 16. 이 사건 문제 중 옳은 지문은 ‘ㄱ’ 지문밖에 없으므로 이 사건 문제에는 정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피고 평가원이 ‘ㄱ’ 지문과 ‘ㄷ’ 지문이 옳다고 보아 이 사건 문제의 정답이 ②번임을 전제로 2014년도 수능시험에서 세계지리 과목의 등급을 결정한 것은, 수능시험 출제 및 정답결정에 있어서의 재량권 범위를 일탈하거나 남용한 것이라고 판단하여, 제1심판결을 취소하고 피고 평가원이 관련 사건 원고들에게 한 ‘2014년도 수능시험 세계지리 과목에 대한 등급 결정 처분’을 취소한다는 내용의 판결을 선고하였다. 위 판결은 피고 평가원이 불복하지 않음에 따라 2014. 11. 7. 그대로 확정되었다.

다. 관련 사건 항소심판결 후의 상황

교육부장관과 피고 평가원은 2014. 10. 31. 관련 사건 항소심판결 결과를 수용하며, 세계지리 성적을 다시 산정하여 피해 학생들을 구제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였고, 이에 따라 피고 평가원은 2014. 11. 20. 세계지리 성적 재산정 결과를 발표하였다.

교육부장관은 대학들에게, 2014학년도 대학입학전형에 지원했던 수능시험 응시자에 대하여는 재산정된 세계지리 성적을 반영하여 추가합격 여부를 가리도록 하고, 추가합격한 학생들에게는 2014. 12. 17.부터 그 사실을 안내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원고들에 대하여 별지2 표 ‘구제조치’란 기재와 같은 구제조치(이하 ‘이 사건 구제조치’라 한다)가 시행되었는데, 그중 원고와 별지2 표 순번 2 내지 42번 기재 선정자들은 위 구제조치로 인하여 2014학년도 대학입학전형에서 불합격하였던 대학에 추가합격하게 되었다.

[인정 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23, 30, 34호증, 을 제2 내지 16호증(가지 번호 포함, 이하 같다)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원고들의 주장 요지

가. 피고 평가원의 책임

피고 평가원은 수능시험을 시행함에 있어 수험생의 권리나 정당한 이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할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주의의무를 게을리하여 이 사건 문제의 출제 및 정답결정에 오류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출제오류임을 인식하고서도 이 사건 구제조치에 이르기까지 거의 1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이를 인정하지 않고 버티는 위법행위를 하였으므로, 그로 인하여 원고들이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나. 피고 대한민국의 책임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에 의하면 공무원 또는 공무를 위탁받은 사인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국가가 그 손해를 배상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피고 대한민국은 교육부장관으로부터 이 사건 수능시험의 출제, 채점, 정답결정 및 성적 통지 등의 업무를 위탁받은 피고 평가원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들이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또한 대통령령인 ‘행정권한의 위임 및 위탁에 관한 규정’에 의하면 행정권한을 민간수탁기관에 위탁한 위탁기관은 민간위탁사무의 처리에 대하여 민간수탁기관을 지휘·감독하며,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에는 민간수탁기관에 민간위탁사무에 관하여 필요한 지시를 하거나 조치를 명할 수 있으며( 제14조 제1항 ), 민간수탁기관의 사무처리가 위법하거나 부당하다고 인정될 때에는 이를 취소하거나 정지시킬 수 있는바( 제14조 제3항 ), 이 사건에서 교육부장관은 민간수탁기관인 피고 평가원에 위탁하여 수능시험을 시행함에 있어 수험생의 권리나 정당한 이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피고 평가원을 적절히 지휘·감독하여야 함에도 이를 게을리하여 피고 평가원의 위와 같은 불법행위를 방치하였으므로, 피고 대한민국에게는 일반 불법행위책임도 있다.

3. 손해배상책임의 발생

가. 이 사건 문제의 객관적인 출제오류 여부에 관하여

1) 인정 사실

이 사건 지문은 유럽연합과 북미자유무역협정의 총생산량 비교우열을 묻는 내용인데, 다음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거나 앞서 든 각 증거, 갑 제23, 29, 31, 32호증, 을 제1 내지 4, 20 내지 22, 31호증의 각 기재, 갑 제25, 41호증, 을 제18, 19, 29, 30호증의 각 일부 기재, 제1심증인 소외 1, 소외 2의 각 일부 증언 및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이를 인정할 수 있다.

가) 이 사건 수능시험 실시 당시까지 사용되던 세계지리 교과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기는 하다.

즉, 교학사에서 출판된 세계지리 교과서에는 ‘한국·일본·중국이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면 유럽연합, 북미자유무역협정에 이어 세계 3대 경제권의 거대 통합 시장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된다’라고 기재되어 있고(제225쪽), 위와 같은 내용과 함께 표시된 지도에는 2009년도 국제통계연감을 기준으로 유럽연합의 총생산액이 18조 3,870억 달러, 북미자유무역협정 당사국의 총생산액(이하 ‘북미자유무역협정의 총생산액’으로 줄인다)이 16조 4,670억 달러로 표시되어 있다. 또한 천재교육에서 출판된 세계지리 교과서에도 특정 연도에 대한 언급 없이 ‘로테르담은 세계 최대의 단일 시장인 유럽연합의 관문으로서 ……’라고 기재되어 있다(제125쪽).

나) 반면 공신력 있는 아래 국제기구들에서 발표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2012년도를 기준으로 하면 북미자유무역협정의 총생산액은 유럽연합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즉, 세계은행(IBRD)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2012년의 경우 유럽연합의 총생산액은 17조 3,508억 달러, 북미자유무역협정의 총생산액은 19조 8,860억 달러이고, 2007년부터 2012년까지의 북미자유무역협정의 총생산액이 유럽연합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국제통화기금(IMF)의 ‘2012년도 국가별 총생산액’에 관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유럽연합의 총생산액은 16조 4,414억 달러, 북미자유무역협정의 총생산액은 18조 6,089억 달러로 나타난다. 또한 국제연합(UN)의 ‘2012년도 국가별 총생산액’에 관한 통계자료에 의하더라도, 유럽연합의 총생산액은 16조 5,977억 달러, 북미자유무역협정의 총생산액은 19조 2,497억 달러로 나타난다.

또한 우리나라 통계청의 통계자료에서도, 2008년 및 2009년에는 유럽연합의 총생산액이 북미자유무역협정보다 많았으나,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북미자유무역협정의 총생산액이 유럽연합보다 많았고, 2012년도를 기준으로 하면 북미자유무역협정의 총생산액은 18조 6,835억 달러, 유럽연합의 총생산액은 16조 5,775억 달러로 나타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주요 언론기관에서도 2012. 11.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우리나라·중국·일본 간의 자유무역협정 협상에 관한 전망에서 ‘한·중·일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면 GDP 18조 달러인 북미자유무역협정, 17조 5천억 내지 17조 6천억 달러인 유럽연합에 이어 한·중·일 자유무역협정이 세계 3위 규모의 지역 통합시장이 된다’라는 취지의 보도를 수차 내보내기도 하였다.

2) 이 사건 문제의 내용과 정답결정에 관하여

가)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수능시험 실시 당시 출판되어 있던 교과서 이외의 각종 자료들을 종합하면, 2009년 무렵까지는 유럽연합의 총생산액이 북미자유무역협정보다 많았지만, 2010년 무렵부터는 그것이 역전되어 북미자유무역협정의 총생산액이 유럽연합을 앞서게 되었고, 이러한 추세는 2012년을 지나 2013년 이 사건 수능시험 실시 무렵까지도 지속되었음을 알 수 주1) 있다.

나) 문제의 제기

이 사건 지문은 유럽연합과 북미자유무역협정의 총생산량 비교우열, 즉 ‘총생산액’ 규모를 비교하는 것인데, 앞서 본 바와 같이 이는 비교기준시점을 어떻게 설정하는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그 정오(정오)를 가리려면 비교기준시점이 문제에서 특정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사건 문제의 주2) 질문항 에는 아무런 비교기준시점의 특정이 없고, 다만 제시한 지도에 ‘2012’(이하 ‘이 사건 연도표시’라고 한다)라는 표시가 있다.

피고들은 이 사건 연도표시의 의미를 단순히 ‘지도’ 독법(독법)의 기준, 즉 ‘북미자유무역협정과 유럽연합의 가입국 수를 확정하는 기준’이 제시된 것에 불과하고, 총생산액 비교우열의 기준시점으로 제시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하 경우를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다) 이 사건 연도표시를 ‘지도’ 독법(독법)의 기준으로만 볼 경우

피고들의 주장과 같이 이 사건 연도표시를 지도 독법의 기준으로만 보고, 총생산액 비교우열의 기준시점은 문제에서 제시되지 않은 것으로 이해한다면, 비교기준시점에 따라 정오가 달라지는 이 사건 지문은 비교기준시점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오류가 있는 것으로서, 그 문항이나 답항의 문장구성 또는 표현용어 선택이 지나칠 정도로 잘못된 지문이라고 할 것이다.

라) 이 사건 연도표시를 총생산액 비교우열 기준시점으로 볼 경우

다음의 ① 내지 ④의 사정에 의하면, 이 사건 지문은 질문항 및 제시된 지도를 함께 고려하여 ‘2012년을 비교기준시점으로 하여, 유럽연합과 북미자유무역협정의 총생산액 비교우열을 묻는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

① 이 사건 문제와 같이 출제된 문제가 질문·제시문·답항으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에는, 질문·제시문·정답의 답항 내용이 모두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여야 할 것이므로, 따로 예외를 표시하지 않는 이상 제시문은 질문과 함께 문제를 구성하여 답항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될 수밖에 없는 점

② 이 사건 문제의 질문항과 이 사건 지문 자체에서는 아무런 비교기준시점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 점

③ 이 사건 문제에서 제시한 지도에서는 이 사건 연도표시를 특정함으로써 유럽연합 및 북미자유무역협정의 가입국가 현황의 기준시점을 2012년으로 제시하고 있는 점

④ 위 다)항에서 본 바와 같이 비교기준시점의 제시가 없다면 이 사건 지문은 그 자체로서 오류가 있는 지문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는 점

결국, 이 사건 지문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시점은 지도에 표시된 2012년이 될 수밖에 없고, 2012년의 총생산액은 북미자유무역협정이 유럽연합보다 더 크다는 사실은 앞서 본 바와 주3) 같으므로, 이 사건 지문은 객관적 사실에 반하는 명백히 틀린(오) 지문이라고 할 것이다.

3) 피고들의 주장에 대한 판단

가) 피고들은, 특정 연도의 통계치와 같은 단편적 정보의 비교는 수능시험에 출제되지 않기 때문에 이 사건 지문은 특정 연도의 통계치를 묻는 질문이 아닌 총생산액의 ‘추세’를 묻는 질문이며, 수능시험 출제 당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기간에 대한 학문적으로 유의미한 통계에 따르면 유럽연합의 평균 총생산액이 북미자유무역협정보다 높았으므로 이 사건 지문은 옳은 지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지문의 문언에 의하면, 이 사건 지문은 단순히 유럽연합과 북미자유무역협정의 총생산액의 비교우열을 묻는 것이지, 양자의 평균 총생산액 또는 총생산액 추세를 비교하는 것이 아님은 명백하다. 출제의도와 답항 선택의 지시사항은 시험문제 자체에서 문언에 따라 객관적으로 파악되어야 하는 것으로서, 수험생으로서는 숨겨진 주관적 출제의도를 임의로 짐작하여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므로 피고들의 이 부분 주장은 받아들이기 주4) 어렵다.

또한 피고들은, 이 사건 문제 중 ‘ㄱ’ 지문은 명백하게 옳은 지문이고 ‘ㄴ’ 지문과 ‘ㄹ’ 지문은 명백하게 틀린 지문이지만, 이 사건 지문은 이 사건 연도표시를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정오가 달라질 수 있는 지문이고, 따라서 명백하게 옳은 지문인 ‘ㄱ’이 포함되고 명백하게 틀린 지문인 ‘ㄴ’, ‘ㄹ’이 제외된 답항은 ②번밖에 존재하지 않으므로 이 사건 문제의 정답으로는 ②번만이 가능하며, 고등학교 교과과정을 통해 ‘ㄱ’, ‘ㄴ’, ‘ㄹ’ 지문의 옳고 그름을 배운 평균수준의 수험생으로서는 이 사건 문제의 답항을 ②번으로 고르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피고들의 위 주장은 이 사건 연도표시를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이 사건 지문의 정오가 달라질 수 있음을 전제로 한 것인데,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연도표시를 지도 독법의 기준으로만 이해하게 되면 이 사건 지문은 비교기준시점이 제시되지 않아 지문 자체에 오류가 있는 명백히 틀린 지문에 해당하고, 이 사건 연도표시를 이 사건 지문의 비교기준시점으로 이해하게 되면 이 사건 지문은 객관적 사실에 위배되어 명백히 틀린 지문에 해당한다.

결국, 이 사건 지문은 이 사건 연도표시를 어떻게 해석하든지 간에 명백히 틀린 지문에 해당하고, 이 사건 지문과 ‘ㄴ’, ‘ㄹ’ 지문이 모두 제외된 답항은 이 사건 문제에서 존재하지 않으므로, 이 사건 문제는 평균수준의 수험생으로 하여금 정당한 답항을 선택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거나, 문제 자체에 정답이 없는 것임이 명백하다.

다) 피고들은 또한, 앞서 본 바와 같이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교과서에서는 ‘유럽연합이 북미자유무역협정보다 총생산액 규모가 크다’라는 취지로 설명하고 있고, 이 사건 지문은 수험생들이 그 내용을 알고 있는지 여부를 테스트하기 위한 문항이므로, 수험생들은 그 교과서 기재 내용에 따라 이 사건 문제의 정답을 ②번으로 정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교과서의 기술이 ‘학문적 평가’에 관한 부분이라면 교과서가 문제 해결의 기준이 될 수도 있겠지만, 통계수치로 확인될 수 있는 ‘객관적 사실’에 관한 부분이라면 교과서의 내용도 특정 시점을 기준으로 한 통계에 따른 것이므로 이를 고정적, 확정적 사실로 일반화할 수는 없는 것이고, 그 이후 객관적인 새로운 통계자료가 기존의 통계와 달라진다면 종전 통계를 기초로 한 교과서의 기술 내용은 더 이상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게 됨은 당연하다.

앞서 본 바에 의하면 교학사에서 출판된 세계지리 교과서는 2009년도 국제통계연감을 기준으로 유럽연합과 북미자유무역협정의 총생산액에 관하여 기술하고 있고, 이는 2009년도를 기준으로 유럽연합의 총생산액이 북미자유무역협정보다 더 크다는 의미에 불과하다. 천재교육에서 출판된 세계지리 교과서는 유럽연합이 세계 최대의 단일시장이라고만 기술할 뿐 유럽연합과 북미자유무역협정의 총생산액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지는 않다. 교과서의 기술 내용이 이러하다면, 피고들의 주장처럼 교과서의 해당 내용을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유럽연합의 평균 총생산액이 북미자유무역협정보다 크다거나 유럽연합의 총생산액이 북미자유무역협정보다 항상 큰 추세를 보인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

라) 마지막으로 피고들은, 이 사건 연도표시를 이 사건 지문의 기준시점으로 보게 되면, 향후 수험생들은 사회탐구영역에 관련된 통계수치를 매년 새로이 암기하여야 하는 불필요한 부담을 받게 되어 고등학교 교육현장에 악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사건 지문과 관련하여 교학사에서 출판된 세계지리 교과서에는 2009년 통계라는 기준이 제시되어 있으므로, 피고 평가원이 이 사건 문제를 출제하면서 이 사건 지문에 2009년이라는 비교기준시점을 표시하기만 하였더라도 교과서를 기준으로 한 수능시험 출제가 이루어지게 되어 수험생의 학습 부담을 가중시키지 않을 수 있었다.

오히려 이 사건 문제의 출제오류 시비가 발생한 원인은 피고 평가원이 이 사건 지문에 필요한 비교기준시점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음으로 인한 것이고, 그와 같은 불명확성이 수험생으로 하여금 교과서를 기준으로 학습해야 할지 아니면 최신 통계자료를 기준으로 학습해야 할지에 관하여 혼란과 부담을 느끼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수능시험 문제가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정상적인 운영에 기여할 수 있도록 출제되었는지 아니면 문항의 내용이 너무 지엽적이거나 어려운 것은 아닌지 등을 검토하는 것은 피고 평가원의 기본적 역할과 의무이므로, 피고들이 주장하는 그러한 문제점은 출제 과정에서의 신중한 검토를 통하여 미리 제거되었어야 하는 것들이다. 피고 평가원이 이러한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여 생긴 이 사건 문제 출제오류의 결과, 수험생들의 입장에서는 부적합하거나 존재하지도 않는 답을 선택하여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었고, 이러한 잘못을 저지른 피고 평가원이 위와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4) 소결

결국, 이 사건 지문은 이 사건 연도표시를 어떻게 해석하든지 간에 지문 자체에 오류가 있거나 객관적 사실에 위배되는 것으로서, 명백히 틀린 지문이라고 할 것이다.

나. 피고 평가원의 불법행위 성립 여부

1) 피고 평가원의 법적 지위

피고 평가원은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에 의하여 설립된 정부출연연구기관이다. 위 법은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정의를 ‘정부가 출연하고 연구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기관’으로 정하면서( 제2조 ), 피고 평가원을 정부의 출연금과 그 밖의 수입금으로 운영하도록 정하고 있다( 제5조 ).

고등교육법은 교육부장관에게 대학의 학생 선발을 위한 입학전형 자료로 활용하기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시험을 시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고( 제34조 제3항 ), 같은 법 시행령은 교육부장관에게 위 법 제34조 제3항 에 따라 교육부장관이 시행하는 시험 즉, 수능시험의 시행에 관한 기본계획을 작성·공표하고 위 시험의 출제위원을 지정 또는 위촉하는 등 수능시험과 관련된 제반 업무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제35조 내지 제38조 ), 대통령령인 ‘행정권한의 위임 및 위탁에 관한 규정’은 수능시험 시행의 공고, 수능시험의 출제, 문제지의 인쇄, 채점 및 성적통지, 수능시험의 출제위원 및 관리요원의 지정 또는 위촉 등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른 수능시험에 관한 사항을 민간위탁사항으로 규정하면서 교육부장관이 위 규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위와 같은 사항을 피고 평가원에게 위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제45조 제3항 제2호 ).

2) 인정 사실

앞서 든 증거 및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다음의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가) 이 사건 문제의 출제 과정

피고 평가원은 교육부장관으로부터 위탁받아 이 사건 수능시험의 출제위원들을 위촉하였고, 이들로 구성된 출제위원단은 2013. 10.부터 외부와 차단된 상태에서 시험문항 초안을 작성한 후 사회탐구영역 내 검토, 1차 검토위원과 2차 검토위원의 개별·공통 검토, 영역 간 교차검토, 최종 상호검토 단계를 거쳐 시험문항을 완성하였다. 이 사건 문제는 최초 출제 당시에는 별지3과는 다른 내용으로 출제되었다가, 그 검토 과정에서 기존의 모의고사 문제와 거의 유사하다는 지적이 있어 이 사건 문제로 교체되었다.

나) 이 사건 문제의 이의처리 과정

이 사건 수능시험 실시 직후인 2013. 11. 7.부터 2013. 11. 11.까지의 이의신청 기간에 수험생 등 2명으로부터 이 사건 문제에 오류가 있다는 취지의 이의가 제기되었다.

이에 피고 평가원은 2013. 11. 13. 외부전문가 6명 등 17명의 실무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이의심사실무위원회를 개최하였다. 위 위원회에서 실무위원 16명은 별지4 기재와 같이 이 사건 지문은 유럽연합과 북미자유무역협정의 총생산액 비교우열의 전반적인 ‘추세’를 나타내는 문제라고 정의한 뒤, 2007년부터 2011년까지의 평균 총생산액을 비교하면 유럽연합의 평균 총생산액이 북미자유무역협정보다 많고 교과서에도 위와 같은 취지로 기술되어 있으므로, 이 사건 문제에는 오류가 없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나머지 실무위원 1명은 2012년도 통계를 인용하여 북미자유무역협정의 총생산액이 유럽연합보다 많고, 2007년부터 2012년까지의 평균 총생산액을 비교하여도 북미자유무역협정이 유럽연합보다 많으며, 교과서의 자료도 특정 연도의 통계에 의존한 것이므로 이를 전반적인 추세로 일반화하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이 사건 지문에 오류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였으나, 이의심사실무위원회는 이 사건 문제의 출제 및 정답결정에 이상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음 날 피고 평가원은 한국경제지리학회 및 한국지리환경교육학회에 이 사건 문제의 정답, 이 사건 연도표시의 의미, 이 사건 지문의 진위 여부 등에 관하여 자문을 구하였고, 그 학회들은 바로 그 다음 날인 2013. 11. 15. 별지5 기재와 같이 이의심사실무위원회의 다수의견과 비슷한 내용으로 이 사건 문제의 출제 및 정답결정에는 오류가 없다는 취지의 의견을 피고 평가원에게 제출하였다.

피고 평가원은 2013. 11. 18. 이의심사위원회를 개최하여 이 사건 문제의 출제 및 정답결정에 이상이 없다고 결정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문제 출제오류에 관한 지적은 다수의 언론, 사회 각층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3) 출제 과정에서의 피고 평가원의 과실

가) 행정행위로서의 시험의 출제업무에 있어서, 시험출제위원은 법령규정의 허용범위 내에서 어떠한 내용의 문제를 출제할 것인가, 그 문제의 문항과 답항을 어떤 용어나 문장형식을 써서 구성할 것인가를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재량권을 가진다고 할 것이지만, 그 재량권에는 그 시험의 목적에 맞추어 수험생들의 능력을 평가할 수 있도록 출제의 내용과 구성에서 적정하게 행사되어야 할 한계가 내재되는 바이어서 그 재량권의 행사가 그 한계를 넘을 때에는 그 출제행위는 위법하게 된다. 수능시험 객관식 문제의 출제에 있어서, 객관적인 사실에 어긋나는 사실을 진정한 것으로 전제하여 출제한 오류가 재량권의 남용 또는 일탈로서 위법한 것임은 당연하고, 객관적인 사실에 어긋나는 오류를 범하지는 아니하였더라도 그 문항이나 답항의 문장구성이나 표현용어 선택이 지나칠 정도로 잘못되어 결과적으로 수능시험의 평균수준의 수험생으로 하여금 정당한 답항을 선택할 수 없게 만들거나, 문제 자체에 정답이 없음이 명백함에도 그중 하나의 답을 정답으로 처리하고 이에 기초하여 수능시험의 성적과 등급을 결정하는 것은 재량권의 남용 또는 일탈에 해당된다( 대법원 2001. 4. 10. 선고 99다33960 판결 등 참조).

나) 이 사건으로 돌아와, 이 사건 수능시험의 출제위원 및 검토위원들은 ‘학문적 평가’에 관한 것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에 관한 정오를 묻는 이 사건 지문을 포함한 이 사건 문제를 출제함에 있어, 교과서에 기술된 내용과는 다른 객관적인 자료가 존재하여 비교기준시점을 언제로 잡느냐에 따라서 정오가 달라질 수 있는지를 세밀히 살펴 그러한 문제는 가급적 출제에서 제외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비교기준시점을 명확히 제시함으로써 응시생들로 하여금 하나의 정답을 추출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수능시험의 출제위원 및 검토위원들은, 출제 당시 이미 발표되어 있던 신뢰성 있는 국제기구인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국제연합의 통계자료를 확인하는 등의 방법으로, 교과서에 기술된 유럽연합과 북미자유무역협정의 총생산액 비교우열이 이 사건 수능시험 실시 당시에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지 여부를 재차 확인하지 아니한 주5) 채, 2009년도 통계에 따라 기술된 유럽연합과 북미자유무역협정의 총생산액 비교우열에 관한 교과서의 내용이, 몇 년이 경과한 이 사건 수능시험 실시 당시에도 객관적인 사실에 부합할 것이라고 만연히 신뢰한 나머지, 결과적으로 명백하게 틀린 이 사건 지문이 포함된 이 사건 문제를 출제하고 이 사건 문제의 정답을 ②번으로 결정하는 오류를 범하였다.

이 사건 수능시험의 출제위원 및 검토위원들의 위와 같은 잘못은, 수능시험의 출제 업무를 교육부장관으로부터 위탁받아 수능시험의 출제 및 채점에 있어서 일정수준 이상의 지식을 가진 응시자로 하여금 그 정답을 선택하는 데 장애가 없도록 시험위원의 위촉, 시험위원회에 의한 문제의 심의 등을 통하여 부적절한 문제의 출제 및 채점을 방지함으로써 출제나 채점의 잘못으로 인하여 응시자가 잘못된 성적을 받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는 피고 평가원이 그 재량권을 일탈 또는 남용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 이에 대하여 피고들은, 이 사건 문제 출제 및 검토 당시에는 출제위원 및 검토위원들 사이에서 구체적인 통계수치에 관하여 별다른 의견이 없었으므로 이 사건 문제의 출제에는 오류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사건 문제 검토단계에서 검토위원으로부터 몇 가지 검토의견이 제시되었던 사실은 피고들도 자인하는 주6) 바이고, 수능시험과 같이 중요한 시험에서 검토의견이 제시된 문제가 있다면 검토사항을 포함하여 해당 문제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피고 평가원은 설문 자체의 오류, 통계의 정확성 등을 꼼꼼히 살피지 주7) 않았다. 특히 이 사건 지문과 같이 통계수치를 단순비교하는 문항의 정오는 학문적 평가에 관한 부분이 아니고 ‘객관적 사실’에 관한 부분이어서, 피고 평가원이 출제 단계에서 해당 통계수치를 세밀히 확인했더라면 이 사건 지문에 나타난 오류를 발견·수정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피고 평가원이 해당 통계수치를 확인하지 않고 2009년도 통계가 반영된 교과서의 내용만을 만연히 신뢰하여 명백히 틀린 이 사건 지문을 출제한 데에는, 이 사건 문제를 출제함에 있어 필요한 주의를 다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

따라서 피고들의 이 부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4) 이의처리 단계에서의 피고 평가원의 과실

가) 이 사건 수능시험 실시 직후에 이 사건 문제에 대한 이의가 제기되었고, 그 이의를 처리하기 위한 이의심사실무위원회에서 실무위원으로부터 2012년도 통계를 근거로 북미자유무역협정의 총생산액이 유럽연합보다 많으므로 이 사건 지문에 오류가 있다는 의견이 제시되었음에도, 피고 평가원은 그 의견을 무시하고 한국경제지리학회 및 한국지리환경교육학회의 의견 등에 의존하여 이 사건 처분을 하기에 이른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다.

나) 피고들은, 이 사건 문제의 출제 당시 피고 평가원 외부에서 위촉된 다수의 출제위원들과 검토위원들이 수회에 걸쳐 검토하였으나 출제위원들과 검토위원들 사이에 이 사건 지문에 관하여 별다른 이견이 없었던 점, 관련 사건 제1심도 이 사건 문제에 출제오류가 없다고 판단한 점 등을 고려하면, 비록 관련 사건의 항소심에서 이 사건 문제의 출제오류가 인정되긴 하였지만 이 사건 문제의 이의처리 과정에서의 정답결정이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할 정도로 잘못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2010년 이후 북미자유무역협정의 총생산액이 유럽연합보다 많다는 사실은 각종 통계에 의하여 이미 객관적으로 드러나 있을 뿐 아니라, 이 사건 지문은 그 문언상 유럽연합과 북미자유무역협정의 총생산액 비교우열의 전반적인 ‘추세’를 묻는 내용으로는 보이지 않으며, 그 총생산액 비교우열을 특정 연도를 기준으로 묻는 내용으로 볼 수밖에 없고, 이의심사실무위원회에서도 그와 같은 점을 정확히 지적한 의견이 제시되었던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의심사실무위원회의 다수의견과 한국경제지리학회 및 한국지리환경교육학회는 이 사건 지문이 유럽연합과 북미자유무역협정의 총생산액 비교우열의 전반적인 추세를 묻는 내용이라고 정의하는 등 이 사건 문제와 지문을 문언 그대로 해석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잘못을 주8) 저질렀다.

이에 피고 평가원으로서는, 가사 이 사건 문제 출제 당시에 문제와 정답의 결정 과정에 직접 관여하여 오류를 시정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었다고 하더라도, 시험 실시 직후에 객관적 사실인 통계 부분의 출제오류에 관한 이의가 제기된 이상, 직접 교과서 내용뿐 아니라 각종 통계자료를 세밀히 확인하는 등의 방법으로, 이 사건 문제에 지문의 정오를 판단하는 데 혼란을 줄 수 있거나 객관적 사실의 정오 판단이 달라질 수 있는 오류가 있는지 여부를 다시 엄격히 판단하여 즉시 가능한 시정조치를 취하였어야 함에도, 이를 주9) 무시하고 출제자의 의도만을 앞세운 출제위원, 이의심사실무위원회, 위 학회들의 의견을 그대로 좇아 이 사건 문제와 정답결정에 아무런 오류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전제로 이 사건 처분을 하고 말았다.

이러한 피고 평가원의 이의처리 과정에는 그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다하지 아니한 과실이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5) 소결

따라서 피고 평가원은 이 사건 문제의 출제 과정 및 이의처리 과정에서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다하지 아니한 과실이 있고, 이러한 피고 평가원의 과실로 인한 이 사건 처분은 원고들에 대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

다. 피고 대한민국의 국가배상책임 성립 여부

1) 관련 법리

법령에 의하여 국가가 그 시행 및 관리를 담당하는 시험에 있어 시험문항의 출제 및 정답결정에 오류가 있어 이로 인하여 시험성적과 등급의 결정이 위법하게 되었다는 것을 이유로 공무원 내지 시험출제에 관여한 시험위원의 고의·과실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해당 시험의 실시목적이 시험에 응시한 개인에게 특정한 자격을 부여하는 개인적 이해관계 이외에 일정한 수준의 적정 자격을 갖춘 자에게만 특정 자격을 부여하는 사회적 제도로서 그 시험의 실시에 일반 국민의 이해관계와도 관련되는 공익적 배려가 있는지 여부, 그와 같은 시험이 시행 당시의 법령이 정한 요건과 절차에 따라 국가기관 내지 소속 공무원이 구체적 시험문제의 출제, 정답결정, 시험성적과 등급의 결정을 위하여 해당 시험과목별로 외부의 전문 시험위원을 적정하게 위촉하였는지 여부, 위촉된 시험위원들이 문제를 출제함에 있어 최대한 주관적 판단의 여지를 배제하고 객관적 입장에서 해당 과목의 시험을 출제하였는지 및 같은 과목의 시험위원들 사이에 출제된 문제와 정답의 결정 과정에 다른 의견은 없었는지 여부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시험관련 공무원 혹은 시험위원이 객관적 주의의무를 결하여 그 시험의 출제와 정답, 시험성적 및 등급의 결정 등의 행정처분이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고, 이로 인하여 손해의 전보책임을 국가에게 부담시켜야 할 실질적인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어야 한다( 대법원 2003. 11. 27. 선고 2001다33789, 33796, 33802, 33819 판결 등 참조).

또한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의 ‘공무원’이라 함은 국가공무원법 등에 의하여 공무원으로서의 신분을 가진 자에 국한하지 않고, 널리 공무를 위탁받아 실질적으로 공무에 종사하고 있는 일체의 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대법원 2001. 1. 5. 선고 98다39060 판결 등 참조).

2) 판단

가) 위 나. 1)항 ‘피고 평가원의 법적 지위’ 부분에서 본 바에 의하면, 피고 평가원은 피고 대한민국의 중앙행정기관인 교육부장관의 업무에 속하는 수능시험의 출제, 채점 및 성적통지, 출제위원 지정 등의 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하는 사인, 이른바 ‘공무수탁사인’의 지위에 있고, 따라서 그러한 공무를 수행하는 범위 내에서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의 ‘공무원’이다.

나) 피고 평가원의 이 사건 처분은 이 사건 문제의 출제 과정 및 이의처리 과정에서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다하지 아니한 과실에 기인한 것으로서 원고들에 대한 불법행위를 구성함은 앞서 본 바와 같고, 이는 이 사건 처분이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것을 의미한다.

다) 이러한 사정에 더하여, ① 수능시험은 2차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다른 시험과는 달리 그 결과가 바로 수험생의 대학입학전형 결과를 직접 좌우하거나 적어도 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고(실제로 원고들 중 일부는 이 사건 처분으로 세계지리 과목의 등급이 낮아진 결과 2014학년도 대학입학전형 당시 특정 등급 이상을 지원자격으로 하는 대학에 지원조차 하지 못하였다), ② 피고 평가원이 이 사건 문제 출제오류를 범한 직후에 그 이의처리 과정에서라도 신속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였더라면 원고들에게는 더 이상의 구체적인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고 보이며, ③ 비록 관련 사건 항소심판결 선고 이후에 이 사건 구제조치가 내려졌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고들의 손해가 모두 전보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라) 이러한 모든 사정을 종합하면, ‘공무수탁사인’의 지위에 있는 피고 평가원의 이 사건 문제 출제와 정답결정 등에 관한 오류를 이어받은 이 사건 처분으로 인하여 원고들이 입은 손해에 대한 전보책임은 피고 대한민국에게도 부담시키는 것이 주10) 상당하다.

라. 피고들의 책임 상호 간의 관계

1) 피고 평가원의 책임 면제 여부

공무원이 공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에 국가 등이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외에, 그 개인은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공동으로 손해배상책임을 진다. 이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본문 및 제2항 의 입법 취지가 공무원이 직무상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끼친 경우에는 변제자력이 충분한 국가 등에게 선임감독상 과실 여부에 불구하고 손해배상책임을 부담시켜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하되, 공무원에게 경과실만 있는 경우 공무원 개인에게는 배상책임을 부담시키지 아니하여 공무원의 공무집행의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 1996. 2. 15. 선고 95다38677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그러나 피고 평가원의 책임에 관하여는 공무원 개인의 경과실에 대한 면책을 통해 공무집행의 안정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대법원 2014. 4. 24. 선고 2012다36340, 36357 판결 등 참조), 그 소속 직원들 개개인과는 달리 피고 평가원은 경과실만 있다는 주11) 이유 로 그 업무집행으로 인하여 원고들이 입은 손해에 대한 배상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2) 부진정연대관계

따라서 피고 평가원은 피고 대한민국으로부터 위탁받은 공무인 이 사건 문제 출제 및 정답결정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피고 평가원의 잘못으로 손해가 발생한 원고들에게 민법 제750조 의 불법행위책임을, 피고 대한민국은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의 국가배상책임을 지며, 피고들의 각 책임은 부진정연대관계에 있다.

마. 소결

그러므로 피고들은 공동하여, 원고들이 구하는 바에 따라, 이 사건 처분으로 인한 원고들의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4. 손해배상책임의 범위

가. 손해의 발생

1) 원고들 중 이 사건 처분으로 인하여 2014학년도 대학입학전형 당시 목표로 하였던 대학의 입학에 실패하였다가 이 사건 처분의 구제조치로 인해 이 사건 처분이 있은 지 거의 1년이 경과한 후에 그 대학에 추가합격하게 된 원고 및 별지2 표 순번 2 내지 42번 기재 선정자들의 경우에는, 2014학년도 대학입학전형 당시 1차적으로 목표하였던 대학의 입학전형에 실패함으로써 상당한 좌절감을 겪었을 것이고, 그에 더하여 이 사건 처분으로 인하여 1년 더 대학입시를 준비하거나 추가합격한 대학에서 1학년 과정을 뒤늦게 이수하게 됨으로 인하여 그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서 그 손해가 있음이 분명하다.

2) 반면 그에 해당하지 않는 나머지 별지2 표 순번 43번 내지 94번 기재 선정자들의 경우에도, 일단 이 사건 처분을 전제로 하여 대학에 지원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이 사건 처분으로 인하여 대학입학전형 단계에서 불이익을 입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고, 뒤늦게나마 이 사건 구제조치가 내려지기는 했지만 이로써 원고들에게 이미 발생한 손해가 모두 회복되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점에서, 위 선정자들에게 아무런 손해가 없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나. 정당한 위자료 액수

위와 같은 사정에 더하여, 원고들과 같은 수험생의 입장에서 수능시험이 차지하는 현실적인 중요성과 국민적인 관심도, 이에 따라 요구되는 수능시험 관리자의 주의의무의 정도, 이 사건 구제조치가 내려진 경위 및 이 사건 처분과 구제조치 사이의 시간적 간격, 별지2 표 순번 43번 내지 94번 기재 선정자들에 대하여는 이 사건 처분으로 인하여 구체적, 실질적 손해가 발생하였다는 점에 대한 아무런 증거가 제출되어 있지 않은 점, 원고들의 나이, 직업, 경제적 환경 등 이 사건에 나타난 제반 사정들을 종합하면, 원고들에 대한 위자료의 액수는, 원고 및 별지2 표 순번 2 내지 42번 기재 선정자들에 대하여는 각 10,000,000원, 나머지 선정자들에 대하여는 각 2,000,000원으로 정함이 상당하다.

5. 결론

그렇다면 피고들은 공동하여 원고들에게 별지2 표 해당 ‘인용금액’란 기재 각 돈 및 위 각 돈에 대하여 이 사건 처분일인 2013. 11. 27.부터 피고들이 그 이행의무의 존부 및 범위에 관하여 항쟁함이 상당한 이 판결 선고일인 2017. 5. 10.까지는 민법에서 정한 연 5%,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 정한 연 15%의 각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각 지급할 의무가 있으므로, 원고들의 이 사건 청구는 위 인정 범위 내에서 이유 있어 인용하고, 나머지 청구는 이유 없어 기각하여야 한다.

제1심판결은 이와 결론을 달리하여 부당하므로 제1심판결 중 위에서 지급을 명한 원고들 패소 부분을 취소하여 피고들에게 위 돈의 지급을 명하고, 원고 및 별지1 선정자 명단 순번 2 내지 22번 기재 선정자들이 당심에서 교환적으로 변경한 청구와 원고들의 나머지 항소는 이를 모두 기각한다.

[[별 지] 생략]

판사 손지호(재판장) 김종기 구자헌

주1) 이러한 추세는 현재까지도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

주2) “지도는 지역 경제 협력체 A, B의 회원국을 나타낸 것이다. A, B에 대한 옳은 설명만을 〈보기〉에서 있는 대로 고른 것은?”이라고만 되어 있음은 앞서 본 바와 같다.

주3) 2007년부터 2012년까지의 ‘평균 총생산액’ 역시 북미자유무역협정이 유럽연합보다 더 크다는 사실도 앞서 본 바와 같다.

주4) 만약 피고들의 주장과 같이 2007년 이후의 평균 총생산액을 비교하는 문제라고 보더라도, 2007년부터 2012년까지의 평균 총생산액은 북미자유무역협정이 유럽연합보다 더 크다는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으므로, 이 점에서도 이 사건 지문은 명백히 틀린 지문이다.

주5) 2010년부터는 북미자유무역협정의 총생산액이 유럽연합보다 많았고 2010년도 통계는 늦어도 2012년 초까지는 확정적으로 발표된다고 보이므로, 이 사건 수능시험 출제 당시인 2013. 10.에 출제위원들이 제대로 주의를 기울였다면 북미자유무역협정의 총생산액이 이미 유럽연합을 앞질렀다는 점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주6) 다만 이 사건 지문의 정오에 관한 의견이 제시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주7) 더욱이 이 사건 문제처럼 검토 과정에서 교체되어 문제의 제작 기간이 짧은 관계로 다른 문제에 비해 더 집중적인 검토가 요구되었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주8) 앞서 본 바와 같이 한국경제지리학회 및 한국지리환경교육학회는 2013. 11. 14. 이 사건 문제와 정답결정의 오류 여부에 관하여 자문을 요청받고, 그 다음 날 이의심사실무위원회의 다수의견과 거의 유사한 내용으로 동일하게 잘못된 답변을 피고 평가원에 회신하였는바, 그 답변에 소요된 시간, 답변 내용 오류의 유사성 등을 고려해 보면 그 답변들이 학회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정상적인 과정을 통하여 작성된 것인지 의심이 든다.

주9) 이는 이미 실시된 수능시험 문제에 오류가 있다고 인정할 경우에 초래될 혼란과 그에 따른 책임을 우려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주10) 원고들은 피고 대한민국에게 국가배상책임 외에 민법상 사용자책임에 의한 손해배상도 구하고 있으나, 피고 평가원이 위탁받은 공무를 수행함에 있어 고의 또는 과실(경과실을 포함한다)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것으로 주장하는 경우는 특별법인 국가배상법이 적용되어 민법상의 사용자책임에 관한 규정은 그 적용이 배제된다(대법원 1976. 12. 28. 선고 76다2006 판결 등 참조).

주11) 피고 평가원의 과실이 경과실에 해당한다고 확정하는 취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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